1.구체시란 무엇인가?구체시의 역사와 개괄언어의 전달과 서술성격을 단념하고 언어를 겨우 구체적 물질로서 사용하므로, 비할 바 없이 극단적인 축소형식 구체시 라는 이름 밑에 알려진 이 문학은 50년대 초에 시작되어 자주 또한 추상적이고 언어학적이거나 절대적인 시가라고 불려진다. 그것은 어쩌면 가장 일찍이 실험적인 문학 이라는 개념 밑에 요약되어 있는지 모른다. 이 개념은 새로운 문학적 표현 가능성의 시험을 위한 모든 시도를 포괄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이센뷔텔의 절대 조합론 (absoulute kombinatorik)', 시각시, 청각시 그리고 방언시들, 얀들의 발성시, 클라우스 브레머(claus bremer)의 도형시, 프랑스의 문자주의와 끝으로 가장 극단적인 형식으로 컴퓨터시로 통하는 막스 벤제의 직렬시 등등.구체시는 개인주의적 표현 의 문학을 엄하게 거부하고, 마리네티(marinetti)(1912)의 기술선언 에 유사하게 인간은 자아를 무학 속에서 파괴해야 한다. 는 것이다. 구체시의 보다 나은 이해를 위해 구체시는 해설되는 것이 아니고 주해될 뿐이다. 곰링어는 구체시들의 해설이 이 시들의 독특하고 단순한 사용상의 성질로부터, 메마르고 유희적인 연상의 힘으로부터 빗나가고 있다고 한다.이 모든 실험적 노력의 바탕에는 이미 호프만슈탈에 의해 (1902)에 언급된 하나의 새로운 적합한 언어 의 문제가 놓여 있다. 그 적합한 언어 속에는 낱말과 사물, 언어와 세계5가 일치한다는 것이다. 하이센뷔텔은 구체시의 가장 저명한 대변인 중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의 언어가 보조를 맞추지 못한 현실에 우리가 살고 있으므로, 주어-술어-목적어-관계로 된 문법화된 언어 대신에 반문법적 시가 를 요구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50년대 초 곰링어의 최초의 저서들을 바로 해방의 행위 로서, 사회적 지배의 복제부수기 로서 환영했던 것이다.이러한 실험적, 구체적 시가의 대변자들(원리의 창시자 곰링어 외에도 몬, 벤제와 빈 그룹)은 그들의 전형을 무엇보다 먼저 이탈리아의 미래주의(마리네. 시적 언어는 자기 자신을 생각해 내려고 애쓰는 고유한 대상이 되는 것 이다. 그러므로 이 문학은 유희와 실험 속에 표현되는 인간의 근본태도의 표현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호머로부터 상속받은 낡은 구문론의 우스꽝스러운 공허 에 대한 반항의 표현이기를 원한다.현대시의 국제적인 한 흐름인 말을 해방시키는 구체시(1953년 스웨덴의 외이빈드 팔스트룀[ ywind Fahlstr m]의 최초의 구체시 선언)는 아직 말로 나타낼 수 없는 것, 다시 말해 언어로 실현할 수 있는 가장 먼 경계지역으로 나아가려고 한다. 구체시는 말하자면 언어의 내면으로 스며 들어가서 언어를 억지로 열고 언어의 가장 은밀한 관계 속에 문의하려고 한다. 그때 나온 것이 어떤 새로운 언어가 아닐 수 있다. 그것은 전래된 구문론과 전래된 언어사용에 대한 대조를 이용하는 화법이다. 구체시는 색과 형식이 내용과 대상에서 분리된 추상화와 유사하게, 언어학 이론에 의지하여 이제 더 이상 의미전달자로서가 아니라 겨우 물질로서 사용되는 언어의 새로운 효과가능성을 추구한다. 구체시는 대부분 비논리적이고, 무의미한 낱말과 문자의 조립으로 이뤄진다. 구체시는 관습적인 진술이나 전달을 포기하고 그 낱말과 문자의 조립을 새로이 결합하는 것이다. 그때 구체시는 자주 언어물질의 대조적인 효과에 좌우된다. 낱말 수의 제한은 관습적인 문장모형에서 나온 고립된 말이 가끔 예상 밖의 의미의 충만을 만들어 내게 하기도 한다. 낱말 수의 제한은 한 단어 시(Ein- Wort -Gedicht) 의 극단적인 예이다.언어상의 요소들이란 어떤 구성에 대한 언어상의 의미파악을 단념하고 시각적이거나 청각적인 시점에 따라 조립된다는 간단한 공식에 도달한다. 인간은 언어로 하여금 무슨 말을 하도록 시키고 싶지만 더 이상 언어를 가지고 무슨 말을 내뱉기를 원치 않는다.구체시의 거의 모든 실험들은 하이센뷔텔이 축소 와 중앙의 경계설정의 추월 이라고 부르는 전위적 예술발전의 양 기본규칙을 따르고 있다. 즉 무엇보다 구문론의 축소, 더욱이 개개의 낱말을내부에서 우리는 시각시와 청각시 사이를 구별하는데, 중간형식인 시청각시는 드물게 나타난다. 본래의 시각시는 체코의 카렐 타이게(Karel Teige)가 이미 1928년 그의 에 수록한 인식들로 되돌아간다. 이 선언에서 그는 모든 감각에 맞는 시 를 요구하고, 말을 깃발의 언어라고, 문장학이라 부르고 있다. 표의문자들, 인쇄술의 텍스트들은 그에게 시가와 회화의 자기동일성 증명을 위한 하나의 중요한 수단 이 되는 것이다.구체시를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시각시에 속하는 것들: 표의문자들과 그림문자들, 성좌들과 순열들*청각에 관한 텍스트들: 음성시와 문자시들, 방언시들*시청각적인 시*직렬시구체시에 대한 평가구체시에 대한 평가는 아주 분열되어 있다. 예를 들면 막스 리히너, 프리드리히, 크롤로와 피온테크는 구체시를 부정적으로( 언어골편 이니, 자살경계 바로 옆에 있는 문학이니 하는 명칭을 붙여서) 평가한다면, 크리슈티안 바겐크네히트, 마리안네 케슈팅이나 카린 토마스는 구체시를 '포괄적인 표현기구의 총채를 제공하는 문학이라고 간주한다. 구체시는 언어상의 진상의 시적 탐색 에 봉사하며, 주변세계의 실험적인 문제탐구에 대한 미식가적 만족 의 변화과정에 기여한다는 것이다.하인리히 포름베그는 구체시를 스스로 빠르게 소모되는 전후 독일시의 형식들에 대한 유일한 문학적 대응명제라고 부른다. 구체시는 그만큼 더 직접적으로 사회적 실상들을 전달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해방의 노력을 자극하기 위하여 의식적으로 문학적인 요구들을 퇴짜놓기 때문이다.다른 문화영역(신문, 방송극) 및 주요 작가들에 대한 구체시의 영향은 확실하다. 그럼에도 구체시는 1960년의 최초의 전성기가 지난 후 다음의 10년의 끝 무렵 이미 정점을 넘어섰으므로, 70년대 초에는 문학적 위상으로서 전반적으로 완결된 것처럼 보인다.곰링어와 구체시의 다른 작가들은 전통적인 방식으로 그들의 텍스트들을 해석하는 것을 조심하라고 경고한다. 그들이 자신들의 유희적인 연상의 힘으로부터 단지 빗나갔기에 그들은 그러미에서 멀어진다.의미를 완전히 배제하고, 언어부호에서 다만 보고들을 수 있는 것만을 이용하는 사람은 일종의 음악이나 그래픽을 만드는 것이지 문학적인 것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구체시가 전적으로 의미 없이 출발하지는 않았으며, 다만 기대했던 의미와는 다를 뿐이다. 이런 작품은 다양하게 의사소통의 규범을 피한다. 이것은 의미의 이화(異化), 문맥의 해체, 단어의 해체, 철자 형태의 구성을 통해서 일어나는 것이다.후기 산업사회가 빚어내는 생활의 다기성, 매스 미디어의 범람, 정치와 사회분야에 쓰이는 공허하고 상투적인 미사여구들, 그리고 형이상학에 쓰이는 개념들의 언어조작 등은 언어를 노화시키고 마멸시킨 결과를 초래하여 언어와 객관적인 소여성(所與性) 사이의 괴리를 과속화시켰다는 것이 적어도 권위문학의 유파에 속하는 대부분의 작가들에게 공통되는 인식이라 할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극복하고 새로운 언표방식(Redeweise)을 창출하려는 것이 모든 권위문학의 공통욕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곰링어는 구체적으로 창작한다는 것은 …… 의식적으로 언어적 재료로써 창작한다는 것이다. 라고 정의하고 계속해서 새로운 창작의 형태는 그 수단인 단어에 종속되며 마찬가지로 오늘의 사회에서 문학에 부과되는 목적에 종속된다. 라고 말하고 있다. 언어의 완전한 재료화(materialisation)' 내지는 사물화(Verdinglichung)'의 뜻에 있어서의 언어적 재료를 수단으로 하는 창작 이 바로 구체시의 핵심적인 명제이다. 바로 이것이 구체적 의 내포를 형성한다. 언어의 재료성이 창작과 정의 근본대상이 되며, 그러므로 구체시는 언어로 된 새로운 차원의 세계 이중화(sprachliche Weltverdoppelung)'라고 칭한다.구체시 는 기존의 시적 어법을 구속력이 없고, 참되지 못하며, 효용성이 없는 까닭에 상대화하고 찢고 파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구체시인들은 언어조합법'에는 의식을 변경시킬 수 있고, 최종적으로 진실을 변경시킬 수 있는 힘이 잠재해 있다고 생각한다.실을 표현 또는 포착하기에는 미흡한 수단이라는 인식이다. 기존언어체계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에서 구체시 는 새로운 가능성을 지향하는 탈출구를 모색하고 있다.언어가 지니는 감각적 지평은 원래 언어음(Sparachlaut)'이며, 언어 현상이 아닌 문자까지를 예술적 표현의 수단으로 중시하는 구체시 를 음향적(akustish)'시와 시각적(visuell)'시로 분류할 수 있는 것은 논리적 귀결이다. 1953년 곰링어가 그의 연작시 을 상재했을 때 그는 벌써 시의 합리화와 가시화를 추구했다. 당시에 무비판적으로 수용되어 유행한 활자와 자체에 대한 커다란 기호가 구체시의 이상 비대증을 유발한다고 하여 그는 인쇄적인 면만을 중시하는 시를 거부했다. 그의 표의문자(Ideogramm)'(자신의 시를 때로는 이렇게 지칭함)에서 시각화는 서술에 봉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구체시는 개념적인 면과 시각적인 면이 하나로 융합되어, 표의문자로서 의미론적(semiotisch)'차원을 지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1954년에 발표한 라는 논문에서 곰링어는 전통적인 시련형식이 오늘날의 언어적 현실과는 괴리된 것으로 생각해서 다음과 같이 진단하고 있다. 시련형식의 시는 하나의 역사적 위대성이나 또는 오늘날에서 보면 일종의 예술수공업적인 유물이다. 시련은 이제는 살아 있는 질서원리는 아니다. 시련에 고유한 언어는 생동하는 생활의 언어가 아니다. 시련형식의 시와 사회 사이에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시는 현대의 고유의 시 형식을 제시하고 있다. 배열 에 쓰이는 단어들의 기능에 대해서 그는 단어는 다른 단어들과의 일정한 연결속에서 단어의 절대적 특성을 상실한다. 우리는 창작에서 이것을 회피하려고 한다. 우리는 다른 언어와의 연결 속에서도 단어의 개성을 유지시키고 그 때문에 단어를 다른 단어와의 배열 속에 남겨 두려는 것이다.구체시가 이론면에서 제시한 상당한 부분적 타당성에고 불구하고 1950년대 초반에서 1970년대에 이르는 동안 독자층에 넓게 수용되지 못한 원인은 바로 재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