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악마 현상 을 통해본 시민운동의 과제1. 스포츠 공화국 국민의 모두 발언이 글을 나에 대한 진술로 시작하자. 예기치못한 최근의 상황을 해석하는데 있어, 그리고 그것에 대한 해석이 난무하는 상황에 있어 나에 대한 진술부터 시작하는 것이 객관성의 신화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가장 객관적인 진술법일 것이다.나는 광화문이나 시청에 한번도 나가본 적이 없다. 나는 스포츠 공화국에서 태어난 정상(?)적인 남자로서 모든 스포츠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한국 경기를 보았지만 한국 축구의 미래를 위해 경기를 분석하고 전략을 짜야 했기 때문에 거리보다는 해설을 들을 수 있는 TV시청을 즐겼다. 그리고 축구는 시공간의 예술이고 호나우도의 움직임은 영혼의 울림이라 믿고 있기 때문에 거의 모든 경기를 시청했다. 사실 나에게 붉은악마보다 축구가 훨씬 재미있는 분석대상이었다. 물론 여기에는 우리나라 팀의 선전이 많은 기여를 했다.나는 거리 응원이라고 하는 붉은 악마 현상에 대해 그리 놀라지 않았다. 민족주의에 관해 귀동량을 조금은 한적이 있어 그것이 갖는 강력한 호소력을 알고 있었고, 뭐 재미있는게 없을까 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이라 사람들이 승리의 마력에 빠져드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스포츠 공화국의 국민답게 예전 월드컵에 대한 관심과 1998년의 차범근 열풍, 붉은 악마 의 응원을 너무나 잘 아는지라 담담하게 붉은 악마 현상을 받아들이고 있었다.그렇게 한달이 지났다. 사람들은 그 6월에 관한 담론을 무차별적으로 쏟아내었고, 나도 지금 그 6월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더구나 너무나 뜬금없게도 붉은 악마 현상 과 시민운동의 과제 라는 주제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내가 앞에 장황하게 내 이야기를 한 것은 거리응원에 참여하지 않거나 관심이 없었던 사람들이 많았다는, 혹은 월드컵을 체험하는 방식이 다양했음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또한 내심 이 주제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정치적으로 해석될 수 있지만, 때론 과도한 정치적 해석이 스포츠는 스포츠승한 민주와 통일의 상징이 될지, 30대 빨갱이를 때려잡는 20대와 50대의 극우보수적 연대의 상징이 될지는 아직은 모르는 일이다.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새겨져 있던 be the reds"가 단순히 붉은 악마가 되자 로 머물지, 레드컴플렉스의 극복을 상징하는 빨갱이가 되자 로 해석될지는 정말 모르는 일다.붉은악마현상에 있어 명확한 사실은 이 현상이 위로부터의 동원과 아래로부터의 자발적 참여의 결합이라는 점이다. 국가와 자본은 예고된 대중의 자발적 광화문습격사건 을 환영했고, 나아가 시청 앞의 열린음악회 로 화답했다.{) 이 용어는 이동연, 카리발의 문화와 시민운동의 과제 , 민주사회정책연구원, 문화개혁을 위한 시민연대, 체육시민연대 공동주최 월드컵 평가 대토론회, 자료집.2002.에서 인용.따라서 붉은 악마 현상 자체가 모호한 상징이다. 그것이 모호한 상징이기 때문에 6월항쟁처럼 그 자체로 명확한 성격규정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이 모호함을 일단 인정한다면 그 다음의 모든 것은 상징을 둘러싼 투쟁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리고 도정일의 말처럼 파시즘의 사회가 아니라면 이제는 그것을 둘러싼 다양한 해석이 이루어질 때이다.3. 왜 모였을까?붉은악마 현상은 무엇보다 그 숫자로 사람들을 압도한다. 700만이라는 사람(이 숫자는 분명히 과장되었을 것이다)들이 거리고 뛰쳐나왔다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이 현상은 해석될 가치가 있을 것이다. 그럼 먼저 직적접인 원인을 이야기해 보자.먼저, 누구나 이야기하듯이 우리 축구팀은 예상을 초월하는 성적을 거두었다. 지나간 월드컵의 성적을 잘아는 사람들에게, 이제는 스포츠 신문의 과잉보도에 너무나 식상해 있는 사람들에게 국가대표팀의 성적은 너무나 대단한 것이었다. 국가대표팀은 말그래로 신화를 창조했고 사람들은 그 성적을 놀라와했고 기뻐했다. 사람들은 대표팀의 승리를 자신의 승리로 동일시했고, 그곳에서 강해진 자신을 확인하는 기쁨을 누렸다. 승리는, 그것도 기대를 훨씬 초과하는 승리는 사람들을 모이게한 가장 중요한 원인일 것이다.둘째, 불가능하다. 그것은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지만 보다 구조적인 원인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나는 그것이 무엇보다도 억압적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욕구에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세대를 불문하고 우리 사회에서 일상의 삶은 억압과 짜증의 연속이다. 중고등학생들에게 학교는 억압의 장소이지 즐거움의 장소가 아니다. 성적과 취업의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대학생들에게, 실적을 강요당하고 실직을 위협받는 직장인들에게, 당위와 현실사이의 인지불일치를 겪고 있는 여성들에게, 일상에서 벗어난 새로운 탈출구가 필요했다. 나아가 짜증나는 비합리적인 지배세력들의 아귀다툼에 사람들은 지쳐있었다. 거리응원은 이 지겨운 일상으로부터의 탈출구를 공식적으로 제공했고, 사람들은 별 위험이 없는 이 놀이에 참여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다음으로, 그것이 무척이나 재미있다는 점일 것이다. 억압과 일상의 스트레스가 있다고 해도 그것을 배출할 분출구가 있었다면, 사람들은 이렇게 한꺼번에 모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론 우리 나라 사람들은 잘 논다. 사람들은 여러 가지 방문화를 통해, 다양한 술집을 통해 그들에게 할 수 있는 한계 내에서 스트레스를 풀어왔지만 그것은 상당히 감질나는 해소였다. 그러나 거리응원은 보다 호방했고 새로웠다. 그것은 이제까지 느끼지 못한 집합적 즐거움을 제공했고, 사람들은 이 새로운 하나됨의 즐거움에 탐닉했다.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 하룻밤에 수백번 하이파이프를 하고, 기차놀이를 하고, 어깨동무를 하는 즐거움. 이 생면부지의 즐거움에 사람들은 거의 광분할 수밖에 없었다.셋째, 새로운 매체의 발달, 즉 인터넷, 핸드폰이 없다면 거리의 응원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과거에 인터넷과 핸드폰은 개인주의를 상징하는 매체로 해석되었다. 그러나 게시판으로 상징되는 우리의 독특한 인터넷문화는 이미 참여적, 수평적 소통구조를 형성하고 있었고, 핸드폰은 움직이는 소통매체로서의 역할을 하였다. 그것이 자본의 광고판인 전광판과 어우러질 때 그것은 집단적 참여와 열광을 가능하게 하는 매체로 즉각적으로 활용되었다.넷째, 경기의 성적을 확인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월드컵은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라 또 하나의 삶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스포츠 공화국에서 스포츠는 민족주의와 긴밀히 결합되어 있다. 멀리 양정모부터 가까이는 박세리과 박찬호에 이르기까지 스포츠를 통해 절망과 희망을 세뇌받아온 사람들에게 월드컵의 열광은 미리 예정된 것이라 할 수 있다.4. 어떻게 읽을 것인가?앞에서 언급했듯이 나는 붉은 악마현상은 이제 놀때가 되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 생각한다. 다시 말해 붉은 악마 현상은 새로운 시대의 출현을 의미한다. 이런 의미에서 붉은 악마 현상에서 우리가 정말로 읽어야 할 것은, 사람들은 놀고 먹어야 한다는 단순한 사실이다 라는 주장에 전적{) 홍성태, 붉은 악마 현상에 대한 사회형성적 의미 , 민주사회정책연구원, 문화개혁을 위한 시 민연대, 체육시민연대 공동주최 월드컵 평가 대토론회, 자료집.2002.으로 동의한다. 홍성태에 따르면, 우리 사회는 소비사회로 전환하였고, 소비사회는 사람들이 각자의 취향을 중요시하면서, 개인주의의 우회로를 통해 공공성의 중요성을 새롭게 떠오르는 사회로, 이러한 구조적 전환를 배경으로 통치와 이윤의 논리에 지배되는 우리의 도시공간에 대한 범국민적 저항 으로서 붉은 악마 현상이 나타났다난 것이다.따라서 붉은 악마 현상은 정치, 경제적인 현상이라기 보다는 무엇보다 문화적인 현상이다. 다시 말해 6월 항쟁이 정치혁명이라면 붉은 악마 현상은 문화혁명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대안은 명확하다. 놀며 즐기려는 사람들을 다시 통제하려하기 보다는 놀며 즐기려는 사람들에게 멍석을 깔라주어야 한다. 그것은 공간의 재구조화(광화문 세종로 등 다양한 공간의 문화 공간화)하고, 문화교육운동, 축제의 활성화로 나타날 수 있다.{) 이동연, 앞의 글.붉은악마현상이 너무나 예기치 못한 압도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여기에 정치적인 해석이 없을 수 없다. 정치적인 해석에서 대세는 민족적 동질감의 확인이다. 이러한 동질감, 일체감은 국운융성의 계기로 해석되기도 하고, 민족적 자긍심의 회복으로운동에 관련해서 어떤 함의를 갖고 있는지를 이야기할 때다.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거리응원이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는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거리응원이 K-리그의 인기로, 유소년 축구의 활성화로 남기를 바랄 것이다. 그리고 시민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거리응원이 시민운동에 대한 자발적인 참여로 남기를 바랄 것이다. 그러나 아직 전자는 어느 정도 나타나고 있지만 후자는 다만 기대일 뿐이다. 1998년의 예를 볼 때 전자마저 언제 사그라들지 모를 일이다. 그만큼 거리응원의 영향은 아직 미지수다.거리응원이 우리에게 무엇을 남길 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다음의 세가지를 경험한 것은 분명하다. 자발성, 광장성, 민족적 자긍심이 그것이다.먼저, 모든 사람들이 지적하듯이 붉은악마현상의 압도적인 특징은 자발성이다. 그것이 즐거움에 대한 갈망이든 아니면 민족적 에너지의 분출이든 그것의 특징은 자발성의 분출이고, 그 자발성이야 말로 붉은악마현상을 매력적이게 만든 핵심적이 요소이다. 따라서 이 자발성을 시민운동과 연관시키는 것은 논리적으로 당연하다 할 수 있다.붉은악마현상의 1차적인 의미가 문화적인 현상이라면, 붉은악마현상이 시민운동에 주는 함의는 우선 문화운동적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월드컵 이후의 일에 가장 발빠르게 대응할 수 있었던 시민운동 단체가 문화개혁을 위한 시민연대, 체육시민연대였다는 사실은 이러한 의미를 명확히 해준다. 새로운 구조적 변동이 있었고, 그러한 문화적 욕구의 변동에 적합한 시공간의 창출되어야한다는 점은 분명히 붉은악마현상의 직접적인 문제제기이고 새로운 문화공간의 창출과 엘리트체육에서 생활체육으로의 전환은 시민운동이 적극적으로 제기할 문제이다.그러나 이 자발성이 시민없는 시민운동 을 시민있는 시민운동으로 직접적으로 전환시키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의미에서 붉은 악마 라는 조직은 자발성이 시민있는 시민운동 으로의 전환을 낳을 수 있는지에 대해 많은 시사점을 준다. 주지하듯이 붉은 악마는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뉴스와 선거보도뉴스는 그날 그날의 새로운 사건과 소식을 시청자에게 전해준다. 시청자들은 뉴스를 통해서 사건의 전모와 원인, 현상들을 접하게 된다.그러나 시청자가 접하는 뉴스는 취재와 편집 과정이라는 가공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가공의 과정을 거치면서 뉴스는 진실 이 아니라 보여지는 진실 로 변모하게 된다.취재기자와 데스크의 취사 선택 과정에서 뉴스는 사실 이 아니라 가공된 허구 로 변질되어질 수 있는 것이다.그렇기 때문에 뉴스 가치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뉴스가 선택되어지고 배열 순서에 따라 뉴스는 보도된다.뿐만 아니라 사건 지향의 뉴스는 드라마화를 강조함으로써 강화되기 때문에 사건의 내용보다는 형식적인 측면에 큰 비중을 두게되며 사건을 개인화 시키고 단순화시켜 복잡한 현실을 단순하게 이분화 시키며 흥미위주의 스캔달을 담은 뉴스를 전달하게 되어 현실은 사사화 되고 사람들의 관심을 정치나 사회문제에서 멀어지게 만든다.그러므로 뉴스는 사건의 원인이나 본질을 규명하기보다는 사건의 개략적인 소개에 그치게 되어 현실을 파편화 시켜 이해하고 총체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게 한다.그렇게되어 뉴스는 사회현실에 담긴 역사성을 제거하고 시청자로 하여금 심각한 사회구조보다는 흥미 있는 개인의 문제로 관심을 옮기게 만든다.결국 뉴스는 사건의 본질을 외면, 표피적인 현상이나 흥미위주의 개인문제로 단순화시켜 시청자들에게 사건의 원인이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도록 하며 사건의 축소나 확대, 왜곡 등을 통해 여론을 호도 하는 역기능을 하게 된다.뉴스를 바로 보고 바로 읽는 것은 이러한 역기능을 이해하고 보여지는 진실 뒤에 숨어있는 진실 을 찾아내는 것이다.또한 선택과 배열을 통해 드러난 의미가 어떤 의도에서 주의 깊게 선택되었는지를 살펴볼 수 있어야 한다.뿐만 아니라 뉴스가 확대, 과장과 축소, 은폐, 왜곡을 통하여 여론을 어떤 방향으로 끌고 가려하는지를 파악하여야 한다.그렇기 때문에, 우리 뉴스는 사건의 전모와 개략적인 소개, 흥미 있는 개인의 문제에 관심을 쏟아 여론을 호도 할 것이 아니라 사제4의 권력이라고 한다. 그러나 권력기관이지만 여전히 사회적 한계를 지니고 있는 존재다. 현대 사회의 매스 미디어는 수익을 그 목적으로 삼고 있으며 수익을 위해 매스 미디어와 관련된 각종 권력과 한시적인 동맹을 맺을 수 밖에 없다. 광고 없이 매스 미디어가 생존해나갈 수 없으며 정부와의 협력 관계없이 미디어 사업을 행해낼 수 없다. 다른 한편으로는 수용자 층의 동의를 구해야 하며 매스 미디어가 만들어내는 내용에 관한 한 내용 제공자와도 유기적 관계를 맺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매스 미디어를 두고 사회적 한계를 지닌 존재라고 말한다. 그 구체적인 한계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1) 정보원(情報源)2) 정치적, 법적 한계3) 경제적 한계4) 내적 한계5) 언어적 한계6) 수용자에 의해 만들어지는 한계2. 사회적 한계와 뉴스이와 같은 한계 탓에 매스 미디어는 세계로 향해 열려있는 순수한 창이라고 보기 힘들다. 뉴스가 보여주는 세계는 그와 같은 한계에 의해 찌그려져 있고 누군가의 의도가 숨어있으며 우리의 의식을 어느 한편으로 몰아가려 한다. 누구도 뉴스가 보여주는 세계를 있는 그대로 믿으려 하지는 않지만 뉴스를 보는 순간, 신문을 접하는 순간만큼은 그러한 비판의식은 사라지고 그 내용에 몰입된다. 몰입을 위해 뉴스는 참으로 잘 짜여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뉴스를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보여주는 미디어 행위 라고 보지 않고 미디어가 새롭게 만든 현실 이라고 말한다. 뉴스는 어떻게 현실을 새롭게 만들어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으며 그로 인해 우리가 갖게 되는 의식은 어떤 것인지 한번 살펴보자.1) 이야기 짜기 / 되돌려 놓기 / 안도감2) 의미 살리기 / 죽이기3) 세상사 쪼개기4) 뉴스 문법에 맞추기 (인물, 사건 등)5) 객관적인 것처럼 보이기3. 뉴스 횡간읽기우리는 나름대로 신문의 선호도, 방송 뉴스의 선호도를 가지고 있다. 대체로 신문의 경우 습관에 의해 결정을 내린다고 한다.방송의 경우 선택은 앵커의 이미지에 많이 따라 간다고 한다. 그래서 방송사들은 호감을 이미지로 읽는 것이 아니라 횡간 읽기를 해야 한다.뉴스 횡간 읽기를 위해서는 뉴스를 만드는 측의 이념, 정치적 위치, 정부와의 관계, 그리고 뉴스 제공자 등등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앞서 말한 매스 미디어의 사회적 한계를 기반으로 뉴스를 읽어내는 작업들이 요청된다.4. 뉴스 수용자의 몫뉴스에 수용자가 참여할 수 있는 몫은 많지 않다.방송은 방송의 바깥 여론에 상당한 신경을 쓴다. 시청률이라는 잣대로 자신들의 뉴스가 얼마만큼 인기가 있는지를 당장 파악해내기 때문에 방송감시에 대해 상당히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하지만 여전히 우리가 조금이라도 공정 에 가까운 뉴스를 접하기 위해서는 그와 같은 감시와 거부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리고 감시와 거부를 위해서는 뉴스의 횡간 읽기를 해내는 뉴스 독해력(news literacy)이 선행되어야 한다.5. 뉴스의 제작관행뉴스의 잘못된 제작관행을 보면 첫째, 방송사조직 논리가 반영되는 TV뉴스라는 점이다. 기자가 취재해 온 뉴스는 간부급의 데스크에 의해서 취사 선택된다. 데스크는 더 윗선인 사장의 지시나 경영진의 지시를 받을 수도 있으며 그 과정에서 뉴스가 취사 선택되며 뉴스의 방향도 결정된다.두번째는, 정보원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TV뉴스라는 점이다. 방송이나 신문의 경우, 출입처제가 실시되고 있기 때문에 출입처의 보도 자료에 근거하거나 의존해서 보도하기 때문에 정보원의 의도대로 보도되는 것을 막기가 어렵다.출입처제가 개선되고 전문기자 제가 활성화되어 전문적인 안목으로 발로 뛰는 뉴스가 될 때 비로소 공정하고 객관적인 뉴스가 될 수 있을 것이다.6. 뉴스제작의 실제(1) TV뉴스의 취재과정1 기사 취재 과정2 제작 편집과정(2) TV뉴스의 제작 편집과정 :기자, 취재 → 편집 → 데스크 → 편집7. TV뉴스제작의 문제점(1) 구조적 측면(2) 취재시스템의 개선(3) 뉴스의 편집 및 편성의 강화(4) 뉴스의 포맷 및 내용의 변화8. 뉴스가치뉴스는 다음과 같은 가치 기준에 의해 취사 선택되고 배열된다.(1) 즉시성과 새로움(2) 보도되기 때문에(1) 사회현상의 재생산 (불평등 구조)을 하게 되고(2) 이데올로기 동원기구로서 기능 하게 된다.결국 뉴스는 보수적이며 기득권을 유지하고 보호하는 쪽으로 기능 하게 된다.10. TV뉴스의 불공정 보도뉴스는 다음과 같은 유형으로 객관적이지 못한 불공정한 뉴스를 전달하여 사건을 재구성하기도 하며 왜곡한다.(1) 확대, 과장(2) 축소(3) 왜곡(4) 자의적인 판단(5) 일방보도11. 뉴스읽기(1) KBS, MBC, SBS의 뉴스를 보고 보도태도를 비교해 본다.(2) 신문의 보도태도와 방송 뉴스의 보도태도를 비교해 본다.(3) 아침뉴스와 저녁뉴스, 메인뉴스의 보도태도를 비교해 본다.(4) 사안별 뉴스 보도태도가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 본다.(5) 뉴스를 리드하는 앵커의 멘트와 기자멘트의 방향을 비교해 본다.12. 뉴스에서의 선거보도 읽기올해는 지자체 선거와 대통령선거가 치루어 지는 중요한 해이다.유권자는 후보자에 대한 정보를 쉽게 접근할 수 없기 때문에 후보자에 대한 언론의 보도태도에 대부분 의지하게 된다. 언론을 통해서 후보의 자질을 검증하고 후보의 정책 방향이나 후보의 도덕성 등을 검증하고 투표에 임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언론의 보도는 후보자의 선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특히 텔레비젼의 뉴스는 영상과 함께 전달되기 때문에 신문의 선거보도보다 유권자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과거 선거는 금권선거와 관권선거가 판을 쳤으나 올해 양대 선거는 언론과 인터넷의 선거 관련 보도가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많은 전문가들이 말하고 있다.요즈음의 노무현 돌풍 현상도 인터넷과 TV 토론으로 가감 없는 후보자의 모습을 그대로 유권자에게 보여주었기 때문이라고 한다.올해 선거는 방송 뉴스와 신문의 보도태도가 후보자의 당락에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인데, 선거보도는 첫째 특정 후보나 정당에 편파적이지 않은 공정성, 둘째 진실하고 정확한 정보를 전하는 진실성, 셋째 유권자가 후보자를 판별하는데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는 유용성을 목표로 해야 한다.1) 공정성과거 선거에.과거 뉴스의 선거보도에서 정당의 의석 수에 따라 보도 양을 달리 하였으나, 뉴스에 있어서 시간, 화면, 멘트 등에 있어서 형평성을 지키는 것이 원칙이다. 특히 정당간에 형평성을 지키되 그 비율은 의석 수에 지나치게 얽매이지 말고 관대해야 한다.또한 금품살포, 중상모략, 흑색선전, 욕설 등을 행한 정당이나 후보가 누구인지를 명확히 하지 않고 막연하게 보도하거나, 적절한 시시비비를 가리지 않은 채 무차별적으로 모든 후보나 정당을 싸잡아 비난하는 보도는 정정당당하게 싸우는 후보에게 불리한 편파적인 처사가 되므로 주의해야 한다.2) 진실성선거보도는 진실하고 정확해야 한다.선거 때는 터무니없는 비방과 중상모략 그리고 근거 없는 유언비어와 흑색선전이 난무한다. 특히 선거전야에 악의적인 중상모략이나 흑색선전에 의해 일방적으로 공격을 당한 후보는 그 피해를 구제할 길이 없으므로 언론의 선거보도는 확인된 사실만을 보도해야 한다.확인되지 않은 주장은 최대한 그 보도를 자제해야 하고 보도해야만 하는 경우에는 비난이나 공격의 대상이 된 후보나 정당에게 반드시 반론의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 그리고 투표일 2-3일 전에부터는 후보나 정당의 상대 후보나 상대 정당에 관한 비난이나 공격은 일체 보도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또 정당이나 후보의 공식적인 발표나 후보자 텔레비전 토론 등 공개적으로 행해지는 상대 당이나 후보에 대한 근거 없는 전력시비나 비방, 흑색선전에 대해서도 그 내용의 진실 여부를 가려주는 보도를 하여, 정당이나 후보간의 정책대결의 장이 아니라 확인되지 않은 전력시비나 비방이나 흑색선전을 되풀이하는 마당이 되어버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매체가 선거에서 전력시비나 흑색선전을 검증하기는커녕 오히려 그것들을 유포하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3) 유용성선거는 국정을 이끌어 갈 지도자를 선출하는 일이기 때문에 선거보도는 마땅히 후보자의 자질, 능력, 식견, 도덕성, 지도력, 판단력, 입장, 정책 등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그러나 실제로 선거보도는 판세분석, 후보의 지지도에 관한 한다.
Ⅰ. 서 론우리 나라도 1992년에 제7차 경제사회개발5개년(1992-1996년)을 발표하고 사회복지사업의 기본방향을 시설수용보호중심으로부터 재가복지서비스의 확충으로 전환하고, 또 사회복지서비스 이용대상에 있어서도 선별주의로부터 보편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보건사회부,1992,p.292).이것은 앞으로의 사회복지서비스를 추진해 가고자하는 기본방침으로서는 높이 평가할 수 있지만 노인복지에 대한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대응책은 미비한 상태이다. 예를 들면, 현실에서의 이용대상도 한정되어 있고 여전히 노인문제는 가정에서 가족이라는 방침에는 변함이 없다.물론, 오랜 가부장제사회의 전통을 가진 우리 나라에서는 장남이 부모와 동거하면서 노후의 부양을 책임지는 것을 우리사회의 큰 미덕으로 여겨왔다.이러한 관습이 현재에 있어서도 소멸한 것은 아니지만, 다음의 사례에서 보는 것처럼 1960년대 산업화가 시작된 이래 특히, 1980년대 이후에 급격한 사회변화는 가족의 생활에 많은 변화를 초래하고 노인의 가족부양에도 큰 곤란을 초래하고 있다.사례1)「현재, 우리 나라의 주된 노인복지시설은 양로원이 그 중심이고, 입소자 는 주로 65세 이상의 경제적 빈곤과 의지할 곳 없는 노인들이다. 어느 여 성노인이 거짓말을 해 시설에 입소했다. 시설에서 잠시 생활을 한 그 노인 은 병으로 위독하게 되어 같은 시설의 친구에게 내가 죽거든 내 아들과 딸에게 연락을 해서 장례식을 치러 달라고 부탁했다.그러나, 그 친구는 부모의 임종을 지켜볼 수 있기를 염원해서 자식들에 게 연락을 했다. 연락이 없었다. 돌아가셨다 라는 연락을 해도 끝내 연락 이 없었다.」사례2)「부인과 사별한 71세의 노인은 90세가 넘는 자신의 노모와 둘이서 시골 에서 살고 있었다. 병으로 건강이 좋지 않아 노모의 수발이 곤란하게 되어 서, 도시에서 생활하고 있는 자식들에게 상의를 하로 갔다. 하지만, 자식들 에게 전부 거절당해 시골에 돌아와 자살을 기도했다.」사례3)「시골에서 사는 현재 74세의 여성노인은 뇌졸중으로 3년째 와상생활을결혼후 자녀 양육이 끝난 기혼여성의 직장진출의 증가를 의미하는 것으로 동시에 노인부양의 곤란을 의미한다.기혼여성의 직장진출의 증가는 세대평균인원 및 자녀 동거율의 감소와 동시에 노인을 둘러싼 가족환경의 큰 변화이다.전통적으로 여성은 가정에서 가사, 양육, 부양이라는 3가지 큰 역할을 수행해 왔다. 그러나 가사 양육은 비교적 그 역할과 기능이 사회화되었음에 반하여 노인부양에 대해서는 가족의 책임 자녀의 책임이라는 기본방향에는 변함이 없다. 이러한 사회에서의 노인복지의 발전은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2. 노인인구의 변화 및 특성세계 최고의 고령화를 자랑하는 일본, 과연 어떠한 노인인구의 변화를 초래했으며 그 특성은 어떠한지 평균수명, 노인인구의 증가, 고령화 속도 등을 중심으로 한·일 양국의 특성을 비교 검토해 본다.1) 평균수명의 연장먼저, 한·일 양국의 평균수명을 살펴보면 다음의 표3과 같다.표3. 한·일 양국의 평균수명의 추이{년 도*************99019952000평균수명(단위:세)한국남성51.159.862.767.769.671.0여성53.766.769.175.777.478.6평균52.463.265.871.673.574.8일본남성65.469.373.375.976.377.4여성70.174.678.781.982.884.1평균67.771.976.078.979.580.7자료: ·통계청(1996)『장래인구추계』, ·일본전국사회복지협의회(1997)『고령자백서』우리 나라의 평균수명은 1960년에 남자51.1세, 여자 53.7세, 평균52.4세였다. 그 후 매년증가해서 1990년에는 남녀 평균70세를 넘게 되었고 다가오는 2000년에는 남녀 평균 약75세를 눈앞에 두고 있다.반면에 일본은 1960년에 남자65.4세, 여자70.1세, 평균67.7세였다. 1970년에 남녀 평균70세를 넘게 되었고 2000년에는 80세를 초과하게 되어 세계최고의 장수국임을 알 수 있다.우리 나라의 평균수명을 스웨덴 1990년에 77.61세, 프랑스는 1990년에 76.85세, 미국은 천만에 육박하고, 이러한 사회의 문제에 대해 사회복지대책으로는 GHQ(연합군총사령부)의 지도하에 복지삼법을 성립시키고 새로운 민주적인 사회복지시책을 위한 노력을 강구해 왔다. 이러한 사회복지의 근대화를 추진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 1951년 「사회복지사업」이 제정되고 동법의 제정에 의해 복지사무소와 사회복지협의회가 설치되어지고, 그 후 일본의 공사(公私) 사회복지전달시스템의 기본이 되어 노인복지서비스 뿐만 아니라 각종 복지서비스를 전개하고 있다.그러나, 생활보호법에 의한 노인이 복지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명확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구빈제도로서의 빈곤대책이 중심이었고 그것은 노인복지법 제정까지 계속되었다.(2) 노인복지법 제정(1963년) 이후일본에서의 노인복지제도의 근간이 되는 노인복지법은 1963년에 제정되었다. 법의 제정 배경에는 고도경제성장에 따른 급격한 사회변화 특히, 고령인구의 증가 및 지금까지 노인부양에 있어 주요한 역할을 담당해 온 가족의 변화 등을 들 수 있다. 또, 당시 일본의 노인복지법은 단독법률로서 세계 유일의 법률로서 획기적인 것으로 불리어지고 있다.이러한 노인복지법이 제정됨에 따라 첫째, 복지서비스가 상대적으로 공적부조로부터 분리되었다. 둘째, 복지서비스는 차츰 그 대상을 확대하고, 일반화·보편화되었다. 셋째, 복지서비스의 확대에는 지방자치제의 역할이 크게되고 지방단독사업이 선구적인 역할을 하게되었다. 넷째, 동시에 복지서비스의 전달체계에 있어서도 다원화 경향을 보이게 되었다(古川,1993,p.111).구체적으로 말하면, 1963년 노인복지법의 제정 당시에는 노인의 생활시설로서 양로시설이 중심이었으나, 1971년에 시작한 「사회복지시설 긴급정비 5개년 계획」에 의해 특히 특별양호노인홈이 급격히 증가했다.한편, 고도경제성장 하에서 발전을 거듭하던 노인복지서비스는 노인인구의 증가와 더불어 1973년 오일쇼크 이후 재정난이 심각하게 되었고, 마침내 정부는 1979년 「신 경제사회 7개년 계획」에서 「일본형 복지사회」건설을 위한 구상을 내세웠다.이으나 1994년도부터는 이용일수의 탄력화를 꾀해 최장 3개월까지 이용 가능하게 되었다. 신Gold Plan에서는 6만 침상을 정비할 계획으로 있다.(3) 시설복지서비스전술했듯이 일본에서의 노인복지의 중심은 구빈제도로서의 시설수용보호가 그 대표적인 형태였다. 이렇게 발전해 온 노인복지시설은 특히 1963년 노인복지법 제정 이후에 특별양호노인홈을 중심으로 많은 정비를 하게 되는데, 그 곳에는 생활시설로서 기능뿐만 아니라 재가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지역의 거점으로서 기능을 확대해 왔다.일본의 입소형 노인복지시설 및 보건관련시설의 연차추이를 보면 다음의 표7과 같다.표7. 일본의 입소형 노인복지시설 및 보건관련시설의 연차추이{1965년1975년1985년1990년1994년1995년양호노인홈시설수702934944950947947이용자수51,56971,03169,19167,93867,50567,219특별양호노인홈시설수275391,6192,2602,9823,201이용자수1,91241,606119,858161,612206,611220,916경비노인홈시설수*************6551이용자수2,2597,52716,52217,33123,65627,666유료노인홈시설수-*************이용자수-2,4996,77312,17718,65126,301노인보건시설시설수--74001,0241,268이용자수--22932,20887,612110,004·노인보건시설의 1985년 수치는 제도가 창설되어진 1987년 모델사업 7개소임.자료 : 후생성『사회복지시설조사』각년 참고2. 한국의 노인복지서비스 전개과정과 현황1) 노인복지서비스 전개과정(1) 노인복지법 제정(1981년)까지한국에 있어서도 일본과 같이 노인복지대책은 빈곤대책으로 구빈제도가 중심이었고 시설수용보호가 그 대표적인 형태였다.우리 나라 노인복지시설은 1885년 가톨릭 조선교구장이었던 Jean Blanc 주교가 서울에 기와집 한 채를 구입해서 의지할 곳 없는 노인 40명을 수용 보호한 것이 시작이다(박태룡,1990,p.55)라고 말서울시내의 생활보호대상 노인 60명을 대상으로 식사, 청소 등의 가사원조를 중심으로 볼런티어 가정봉사원을 파견한 것이 최초(김범수,1992,p.152)이다 라고 불리어지고 있다.이 가정봉사원 파견서비스는 1991년 10월 정부가 재가복지사업으로서 64억원을 책정하고 1992년부터는 정부의 지원을 받아, 1998년 현재 52개의 가정봉사원 파견기관과 265개의 재가복지봉사센터에서 약5,200명의 무급 가정봉사원과 104명의 유급 가정봉사원이 활동하고 있다.2 주간보호 서비스(day care service)주간보호 서비스는 부득이한 가족의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심신이 허약한 노인과 장애노인을 낮 동안 시설에 입소시켜 필요한 각종 편의를 제공하여 이들의 생활안정과 심신 기능의 유지·향상을 도모하고 , 그 가족의 신체적 ·정신적 부담을 덜어 주기 위한 사업으로서 1992년에 서울의 한국노인복지회, 은천노인복지회, 청암노인복지재단 등 민간단체에서 시범적으로 실시되었고 1998년 현재 전국에 30개소의 노인주간보호시설이 운영되고 있다.3 단기보호 서비스(short stay service)단기보호 서비스는 부득이한 가족의 보호를 받을 수 없어 일시적으로 보호가 필요한 심신이 허약한 노인과 장애노인을 시설에 단기간 입소시켜 보호함으로서 노인 및 가족의 복지증진을 도모하기 위한 사업이다.1992년부터 시범적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200년 12월 말 현재 전국에 21개소의 단기보호시설이 운영되고 있다.(2) 시설복지서비스우리 나라 노인복지시설은 전술한 1885년에 40명의 의지할 곳 없는 노인을 서울에서 수용 보호한 것이 시초로서, 1933년 조선사회사업개요에 의하면 당시 전국에 6개 양로시설에 58명이 수용 보호되고 있었다.대한민국 정부수립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우리 나라 노인복지시설의 추이를 보면 다음의 표8과 같다.표8. 우리 나라 노인복지시설의 추이{1950년1960년1970년1980년1985년1990년1995년1998년2000년시설수1129444*************다.
■ 봉건과 반봉건 투쟁의 중국현대사1. 중국의 근 현대사의 의미ㅇ 기점 : 아편전쟁(1840)ㅇ 근대의 시작 : 아편전쟁이 갖는 성격1)영국, 프랑스의 청교도 혁명이나 프랑스대혁명 : 자유로운 자본과 임노의 성립. 평등한 개체로서 인격의 독 립을 확정한 기점.2)일본의 명치유신 : 독립된 자본주의 국가로의 기점.3)중국의 아편전쟁 : 봉건적 중국이 세계사적인 근대 속으로 편입되어, 어쩔 수 없이 변용하는 출발점이라는 점에서는 명치유신 과 같지만, 변용의 내용은 일본과 질적으로 달랐다 : 열강들의 식민지 혹은 반식민지화.ㅇ 근대를 채우는 주요내용 : 봉건과 반봉건의 대립1)봉건적 요소의 상존에 대한 농촌경제의 존재방식 변화 자본주의적 기업의 발전 등 반봉건화 노력.2)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궁극적으로 진정한 근대 내지는 독립한 자본주의 국가 를 실현하지는 못했다.ㅇ 현대로의 전환 :1)봉건과 반봉건 대립이 심화되고, 반봉건의 결실이 이루어지기까지는 중화인민공화국 의 성립에서 결실을 맺 는다.2)토지개혁과 농업집단화, 기업과 대자본의 국유화 등 사회주의 완성을 위한 개혁과 건설이 중국의 현대사를 이루는 주요한 내용이 되고있다.ㅇ 현대의 의미 :1)반제국주의, 반봉건이 혁명의 주요대상.2)이의 내적 에너지로 이념상 무산계급 전위의 중국공산당의 주도권. 국제적 조건으로는 소비에트와의 제휴.3)그러나 사회주의 혁명은 이미 많은 자본주의 국가가 실현한 생산력 문화 수준 등을 사회주의 변혁과 동시에 실현해야 한다는 문제점을 지녔다.(결) 근 현대사의 주요 흐름 : 아편전쟁으로 시작된 왜곡된 근대의 출발점은 이후 반제국주의 반봉건의 축선에서 사회주의 변혁과 자본주의국가가 실현한 성과를 동시에 완성해야한다는 목표를 지향하였다.2. 근,현대사의 변천1. 아편전쟁(1840) : 반식민지화의 기점ㅇ 외부세계의 중국에 대한 인식 :1)18세기 계몽주의자는 이상적으로 번영한 덕치국가.2)아담 스미스는 풍부한 자연조건을 살려 낼 수 없는 정체한 후진국.3)19세기 특히 1825는 과잉생산소작세의 인하)과 폭동. -->지주와 전호의 모순2)기타 주로 영세자작, 자소작의 소농민이 지배적 위치를 차지하고 이들에 의한 부업적 상품 생산이 활발한 지역에서 촌의 중소지주를 지도자로 하량폭동(지정은, 조미의 불법징수에 반대)이 전개. 생산자와 상업자본 의 왜곡된 구조ㅇ 발생조건 :1)소농민의 상품생산(생산발전에 의한 것이 아닌, 지주의 고율수탈에 부응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생겨난 생 산)에 대한 상업자본 고리대자본 관료 대지주의 불법적 지배.2)시장을 통한 재생산은 농민의 지주나 촌락 우두머리에 대한 의존도를 약화시켰다. 즉 직접 생산자로서의 자 립성이 강화.3)농민투쟁은 토지세나 지대의 수탈을 경감시킴으로써, 적극적 생산을 전개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ㅇ 태평천국의 발발 : 1851년 초 광서의 산간마을에서 1만명 내외의 빈농을 주력으로 거병, 남경에 혁명정권을 세우고 중국을 양분할 정도의 세력으로 발전.ㅇ 운동의 과제 :1)대내적 : 봉건적 토지소유나 전제군주주의의 압력을 배제하여, 소농민이나 수공업자의 상품생산을 본격화시 키고, 이를 통해 아래로부터의 자본주의 길을 개척.2)대외적 : 불평등조약이나 아편무역을 배제하고 독립 자주적 대등한 관계를 유럽국가들과 수립한다는 민족적 과제.ㅇ 사상적 바탕 :1)대내적 :ㅇ 대동사상과 평등사상. 사유를 불평등의 대립근원으로 보고 이를 부정. 토지 국유화와 생산물의 공유--> 농업사회주의적 유토피아.ㅇ 한계 : 봉건적 지주적 토지소유제도의 폐지로 나가지 못하고, 오히려후기에는 지주적 토지소유제를 보호 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2)대외적 :ㅇ 초기 :가)천주는 만국의 진주 로 유럽을 신하로 보려는 중화주의 적 태도. 단 아편을 금하고, 남경조약을 무 시, 태평천국 법의 준수를 강조.나)유럽인을 배제하지 않고 양형제 의 의식으로, 태평천국의 법을 준수하면 통상을 오히려 보호.ㅇ 후기 :가)유럽정세에 대한 인식이 호전되어, 정치 경제 학교제도를 수용.나)중화주의 소멸ㅇ 결과 :1)상해를 내전으로부터 독립시키려는 영국 반관반상의 형태로 생산되었지만, 독점권을 바탕으로 양무파의 사유화-->결과적으로 특유한 관료자본주의의 기점에 불과(권력 을 이용한 자본이나 기업의 집중과 독점화)2)질적으로 명치유신에 미치지 못하고, 오히려 불평등 개방(조계설치권과 치외법권).3)식민지형 무역구조화(원료의 생산지이자 상품구매시장화)4)농민전쟁을 외국세력의 원조 간섭에 의존하여 진압, 비록 자강 을 내세웠지만 실질적으로 민족주의가 결여 된 북양파관료집단(이홍장)의 자강 으로 끝나고, 이후 군벌의 싹을 키움.ㅇ 양무운동의 적극적 평가 :1)중국 민족자본기업의 창설을 자극. 즉 매판 부상고리 지주에 의해 집적된 화폐재산이 민족자본으로 전환된 측면이 있다.4. 중 일전쟁(1894) - 동아시아의 제국주의 성립ㅇ 중 일전쟁의 배경 :1)1870년 이후 유럽 열강의 아시아 침략은 주로 경제적 문화적 진출로 진행되고, 국제적 대립의 초점은 독일 프랑스의 대립 발칸 동지중해의 영 러 대립에 있음.2)베를린 회의(1878)으로 조선진출을 노리던 러시아와 이에 대한 영국의 견제.3)강화도조약(1876) 이후 일본의 조선진출. 청은 임오군란(1882) 갑신정변(1884)을 통해 조선의 내정간섭을 강 화함으로써 일본을 견제.4)동학혁명(1894)의 진압을 위해 조선의 청으로 출병한 청, 이에 대응키 위한 일본의 출병을 계기로 전쟁발 발. 황제를 개혁의 주체로 삼아 황제에게 권력을 집중하고, 의희 등에 의해 만민 이 최고권력과 일체화를 이 루워, 강력한 민족적 통일을 실현코자 함. 미지막 국가주의적 내셔널리즘 운동.ㅇ 시작 :1)1898년 광서제가 서태후 등 보수반동파의 세력을 누르고 변법을 포고(무술변법).2)궁정 쿠테타의 위로부터의 개혁.ㅇ 결과 :1)변법파는 대중적 기초가 없었고 오히려 대중적 이해와 상충되기도 했기 때문에, 보수파의 반격에 일시에 허 물어짐.ㅇ 의화단운동의 배경 :1)구교운동 :ㅇ 지방의 토착세력과 유교적 보수관료파의 결합.ㅇ 1890년 이후 외국자본의 침투에 대한 반만 반관의 결사조직을 중심후 중국의 완전한 제국주의 침탈대상화2)자산계급과 무산계급의 양분화3)자산계급(손중산 중심)의 혁명ㅇ 과정 :1)1905년 동맹회(이후 국민당)를 일본에서 설립하여, 외세를 몰아내고 민족주권을 되찾자는 민주주의 혁명을 주장.2)민족, 민권, 민생의 삼민주의3)1911. 10. 10 무창에서 무장봉기 성공, 1912년 1.1 중화민국 임시정부를 남경에 세움.ㅇ 의의 :1)봉건왕조 청왕조 260여 년을 종식시킴2)민족자본주의의 승리와 발전3)그러나 자산계급의 기반이 취약하여, 민중을 포함한 반제국주의 반봉건주의 혁명으로 나가지 못함.4)결국 1912.2 군주입헌파와 북양군벌의 우두머리 원세개의 협공으로 손중산은 임시대통령직에서 물러나고, 신해혁명은 봉권매판주의자 원세개에 의해 탈취됨.7. 5 4운동과 중국공산당의 성립ㅇ 5 4운동의 발발 배경 :1)신해혁명 실패 이후 중국은 반식민지 반봉건상태로 전락2)근대적 공업의 시작으로 근대산업노동자계급이 1919년 전후로 200만 이상으로 증가3)1917년 10월 러시아혁명의 성공과 사회주의국가 성립이 중국에 영향을 끼쳐, 이대초,진독수, 모택동 등 맑스 주의자 출현ㅇ 발생과정 :1)1919.5.4 북경대학학생의 반봉건반제국주의적 시위대가 천안문에서 집회ㅇ 1차대전 후 파리조약에서 중국에 대한 피통치적 조약 항목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자 북양군벌이 강제 진압ㅇ 상해 등지의 공장노동자, 학생, 상인 등이 봉기ㅇ 북양군벌로 하여금 파리조약의 내용을 거부토록 함.ㅇ 의의 :1)중국무산계급의 역량을 과시하고, 맑스주의와 중국혁명운동의 결합 계기.2)1921.7. 모택동,동필무 등이 상해에서 전국 공산주의자 1차 전국대표회의를 개최하고, 중국 공산당을 성립.8. 북벌전쟁(1926)ㅇ 1924년 손중산의 국민당과 합작하여, 광동에서 국민당과 공산당 연합.ㅇ 1926년 광동에서 북양군벌을 토벌을 위한 북벌을 시작ㅇ 1925년 손중산 사망후 장개석이 우파를 장악하고, 1927년 4월 북벌전쟁을 승리한 후, 쿠데타를 일으켜 공산당 과 결별-봉건통치,제국주의 결탁, 반식민지화의 심화{4. 중 일전쟁(1894) - 동아시아의 제국주의 성립{5. 무술정변(백일유신 : 1898)과 의화단(1900) : 봉건통치세력간의 투쟁, 보수와 개혁의 대립{6. 신해혁명(1911) : 손문의 국민당, 현대적 정권의 대두, 혁명진영의 의식화부족, 내부모순{7. 5 4운동(1919)과 중국공산당의 성립(1921) : 반봉건, 반전통의 세력화 / 계급투쟁으로 전환{8. 북벌전쟁(1926) : 국민당과 공산당의 대립, 계급모순{9. 2차 국내 혁명전쟁(1927-1937){10. 항일전쟁(1937-1945) : 민족모순{11. 해방전쟁(1946-1949) : P.T계급의 승리{12. 중화인민공화국의 성립(1949. 10. 1)3.당대 중국의 좌절과 극복1.신중국의 변화 :ㅇ 진정한 민족독립 실현.ㅇ 국가의 통일과 민족대단결ㅇ 경제산업의 부흥ㅇ 생활의 향상ㅇ 문화발전ㅇ 자주국방ㅇ 자주적 대외관계2.단계별 개관ㅇ 1949-1956 : 정권 공고화와 사회주의 개조를 통해 사회주의국가의 기초를 다짐ㅇ 1957-1966 : 사회주의의 전면적 전개. 그러나 대약진운동과 인민공사화의 실패와 기타 정치적 모순의 피해가 있었다.ㅇ 1966-1976 : 문화대혁명으로 인한 사회주의 건설의 좌절과 실패.ㅇ 1976 :1)사인방 타도2)과거 잘못에 대한 인정과 새로운 전망을 제시 : 경제건설 중심의 개혁개방ㅇ 1981-1990 : 국민총생산의 증가ㅇ 1991-2000 : 결실의 완성4. 근,현,당대사에 걸친 갈등 요소1. 민족모순(대외)과 계급모순(대내)2. 민족주의와 제국주의간의 갈등3.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간의 갈등4. 봉건성과 반봉건성과의 갈등5. 전통과 반전통의 갈등■ 중국 현대정치 체재의 특성1. 중국정치의 특징1. 전통정치의 특징 :ㅇ 유, 묵, 도, 법가사상의 혼재ㅇ 天下爲公 :1)正名觀 : 君君臣臣父父子子 (논어, 안연편)2)家國一致 : 修身齊家治國平天下 (예기, 대학편)ㅇ 民本主義 :1)기본개념 : 民爲貴, 社稷次之, 君爲輕 (귀국교포
― 目 次 ―Ⅰ. 서론1Ⅱ. 사회주의 경제체제11. 경제체제의 정의와 분류12. 사회주의 경제체제의 특징1(1) 생산요소의 소유형태 2(2) 의사결정구조의 차이 2(3) 규제의 구조 3(4) 이해와 동기의 구조 3(5) 조직구조3Ⅲ. 중국의 사회주의경제체제41. 사회주의 경제의 제법칙과 중국의 경제체제42. 중국 사회주의경제체제의 특징5Ⅳ. 중국의 경제체제 개혁71. 초기의 사회주의경제체제의 개혁72. 모택동 사후의 개혁73. 사회주의 초급단계론의 등장84. 계획적 상품경제론의 등장9Ⅴ. 중국경제체제의 평가와 전망11참고문헌13중국은 1949년부터 과거와는 달리 中央集權적 計劃經濟하의 社會主義 發展方式을 유지해 오고 있다. 그러므로 중국은 전형적인 中央計劃經濟體制로 운영되는 국가로서 경제문제에 대한 意思決定權限과 경제활동의 情報利用은 黨 政治局과 최고행정기관에 中央集權화 되어있다. 그리고 中國은 그 발전의 단계로 보아 아직은 後進性을 면치 못하고 있는 農業國이지만 최근들어 急速한 발전을 하고 있는 大國經濟의 特性을 동시에 보유하고 있다.그러나 1970년 초까지 위세를 떨쳤던 社會主義 經濟發展方式이 차츰 衰退하면서 中國은 다방면에 걸쳐 變化를 추구하고 있는 실정이다.경제체제를 유형별로 분류하면 資本主義經濟體制와 社會主義經濟體制, 市場經濟적 社會主義로 구분할 수 있다. 이러한 구분은 경제활동의 意思決定構造, 經濟活動情報의 利用, 生産要素의 所有狀態, 인센티브制度의 차이에 기준을 두고 있다. 각각의 特性은 매우 相異한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그 發展의 단계도 역시 많은 차이점이 있다.본 硏究에서는 中國의 社會主義經濟體制의 特性을 분석함에 있어서 먼저 社會主義經濟體制의 分類基準 및 特性을 설명하고 中國식 社會主義 經濟體制의 성격과 중국의 經濟改革過程을 설명함에 있어 계획적 商品經濟論을 대상으로 분석한다.Ⅱ. 社會主義 經濟體制1. 經濟體制의 定義와 分類經濟體制란 하나의 조직으로서 組織員의 集合으로 구성되며 어떤 행동을 실천에 옮기는 過程에서 규칙적으로 相互交流하고 영향을情報의 利用이라 할 수 있다. 중국처럼 고도의 中央集權적 計劃經濟의 경우, 의사결정의 권한은 통일된 中央命令體系 의하여 이루어지며 이러한 명령은 조직의 下部單位까지 전달된다. 한편 선진 자본주의국가에서는 意思決定權限이 매우 分權化되어 있으며 거의 모든 의사결정권한은 上級權威로부터 獨立되어 있는 가계나 기업과 같은 下部單位에 의존하는 기구를 가지고 있다.情報의 利用이란 觀點에서 中央計劃經濟體系는 意思決定권者만이 조직의 모든 구성원과 그들의 행동 및 이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환경의 情報를 所有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고도로 分權化된 經濟體制에서는 한 사람의 意思決定者가 모든 정보를 갖고 있을 수 없으며 部分的인 정보만을 소유하고 있다. 특히 정보면에서 분권화된 제도의 경우 조직상부와 정보를 교환함이 없이 하부단위에서 정보를 發生·交流하며 이용하는 제도라 할 수 있다.(3) 規制의 構造社會主義的 計劃經濟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無政府性을 극복하기는 하였지만 不均衡의 문제는 아직도 발생하고 있다. 따라서 人的, 物的 및 財政資源을 합리적으로 배분하고 계획하여 國民經濟의 조화롭고도 效率的인 성장을 가능케 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조정수단을 사용하여야 한다. 社會主義 經濟體制에서는 경제를 규제하는 수단으로 計劃과 市場mechanism이 포함된다. 이론적으로 볼 때 한 가지의 극단적인 경우는 모든 것을 行政的 指示를 통한 計劃에 의하여 規制하는 것이다. 다른 극단적인 경우로는 모든 것을 市場에 의해서 또는 시장메카니즘을 통한 計劃에 의하여 間接的으로 규제하는 경우가 존재할 수 있다. 一般的으로 計劃에 의한 規制와 市場에 의한 규제는 여러 부문에 걸쳐 여러 가지 방식으로 配合되기 마련이며, 이에 따라 그에 相應하는 情報와 情報流通體系(feed - back system)가 형성됨으로써 社會主義 下에서의 規制構造는 多樣性을 띠게 된다.(4) 利害와 動機의 構造社會主義體制는 그 자체가 資本主義體制의 상대적 모순에서 탈피한 것이며, 本質的으로 말하면 全社會의 이해관계는 일치과 物質의 관계 및 物質과 物質의 관계이며 生産關係는 생산활동을 하는데 발생하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말한다. 이 生産關係는 마르크스 경제학에 따르면 生産手段을 누가 소유하는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따라서 中國은 生産手段이 國有, 公有로 되어있고 私的企業의 존재, 또는 활동을 근본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둘째, 國民經濟의 計劃的·均衡的 成長法則이다. 資本主義國家에서는 國民經濟의 각 부문의 均衡이 주로 시장의 機能 및 平均利潤率 法則을 통해 자동적으로 조절되는 것이 원칙이나 社會主義國家에서는 이러한 均衡이 주로 국가의 計劃에의해서 달성된다. 또한 고도의 성장을위해서 의식적으로 均衡을 유지하고 특히 生産과 消費의 관계 및 農業, 輕工業, 重工業間의 비율관계를 적절히 按配하여야 한다. 中國의 경우 반드시 農業을 우위에 놓고 農業, 輕工業, 重工業의 順으로 견지하여 왔다.셋째, 價値의 法則이 社會主義經濟體制의 국가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共産主義의 전단계인 社會主義經濟體制에서는 아직 商品生産과 商品交換이 존재하므로 價値法則이 존재한다.全人民所有制工業과 集團所有制農業間에 工業製品과 農産物의 상품교환은 물론 等量의 勞動으로 等量의 生産物을 받는 원칙에의해 國家가 消費者에게 消費物資를 分配하는 것도 역사 商品交換을 통하여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價値法則이 아직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社會主義經濟體制國家에서는 國民經濟의 計劃的, 均衡的 成長法則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에 價値法則은 보조적인 역할을 한다.넷째, 勞動에 따른 分配의 原則이다. 이것은 社會主義經濟體制國家에서 나타나는 특유의 經濟的 特徵이다. 왜냐하면 共産主義段階는 능력에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받는다 라는 관념상의 이상적 사회인데 社會主義단계에서는 아직 능력에 따라 일할 수 있는 충분한 職場이 마련되지 못한 상태이며 더욱이 필요에 따른 分配를 실현하기에 충분한 物質的 기초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하는데 따라 分配하는 過渡期的인 制度를 채택한다. 따라서 生産手段을 즉시 고 있다. 따라서 經濟計劃 當局者들은 消費者의 選好를 크게 염두에 두지 않고 計劃者의 選好가 經濟活動의 意思決定에 강하게 작용한다.中國은 共産政權이 수립된 후 生産手段의 私的인 所有를 一掃하는 政策을 실시함으로써 현재까지 거의 모든 生産手段이 國家所有가 아니면 集團所有의 형태로 유지되어오고 있다. 이와 동시에 中國에서는 勞動者의 生産意慾을 고취시키는 제도로써 物質的인 補償制度보다는 道德的인 補償制度를 통하여 勞動者들의 勞動意慾을 높여 왔다. 그러나 이러한 道德的인 補償制度는 유력한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으로 分析되고 있다.이와 같은 中國만의 社會主義經濟體制의 特徵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첫째, 所有制에 있어서 國營經濟 下에서 여러 가지 經濟成分과 經營方式이 倂存한다.둘째, 計劃과 市場에 있어서는 計劃經濟를 위주로 하면서 市場調達은 그 補助作用을 부여하도록 한다.셋째, 中央과 地方의 관계는 각자의 責任과 權限을 정확히 구분하여 政經을 합리적으로 구분하고 現代化 過程에서 각 省市의 역할을 충분히 발휘토록 한다. 즉 「統一指導, 分散管理」와 「大權集中, 小權分散」의 原則을 必須的으로 실행한다.넷째, 國家와 企業의 관계는 國家統一政策과 統一計劃指導 下에서 國營企業은 生産經營에 있어 責任, 權限 및 利益의 상대적인 獨立을 유지하는 經濟實體가 되도록 하여 損益責任制를 시행한다.다섯째, 勞動賃金制度에 있어 여러 가지 적당한 방법을 채택하되 勞動에 따른 分配原則을 고수하는 동시에 共産主義思想敎育을 强化한다.여섯째, 自主獨立과 自力更生의 전제 하에서 對外開放을 유지하여 積極的으로 對外經濟交流를 전개한다는 것이다.Ⅳ. 中國의 經濟體制 改革1992년에 개최된 中國共産黨 14차 대회는 이른바 改革과 開放의 源泉인 등소평의 中國 特有의 社會主義 理論 을 당의 基本路線으로 재확인하였고, 이러한 중국 특유의 사회주의를 건설하기 위해서 사람들의 사상을 더 한층 解放시키고, 社會主義市場經濟를 확립함으로써 경제를 비롯한 각 분야의 신속한 발전을 성취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이처럼 등소평의 이러한 社會主義 초급단계론은 87년에 대대적으로 정식화되었으나 그 맹아는 81년의 역사결의 에 포함되어 있었는데, 資本主義를 통해 社會主義. 共産主義로 향하는 길과 더불어, 社會主義 商品經濟의 충분한 발전을 통해서도 마찬가지로 生産을 고도로 사회화하고 공산주의의 물질적 기초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었고, 이러한 社會主義 商品經濟槪念은 84년 이후 中國共産黨의 公式 立場이 된다.먼저 이론적 측면에서 보면 현존하는 각 社會主義 국가는 대부분 資本主義가 충분히 발전하지 않은 상태를 출발점으로 하여 성립하였던 것인만큼 고도로 발달한 자본주의하에서의 높은 生産力水準을 기반으로 하여 구상한 마르크스의 社會主義에 대한 기본구도는 오늘날의 社會主義 건설에 그대로 適用할 수 없으며, 마르크스의 생전에 社會主義 국가란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고, 따라서 그가 구상한 社會主義는 자본주의 사회의 발전에 대한 科學的 分析에 근거하여 인류역사 발전의 하나의 일반법칙을 제시한 것이지만, 자신이 살고 있던 시대의 歷史的 條件에 일정하게 제약되어 부분적으로는 空想的 요소를 띨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한다.이러한 반성의 전제 위에서 그들은 社會主義에 대한 재인식을 진행하여 社會主義는 하나의 獨立的이며, 자체내에 몇 개의 發展 소단계를 가지는 대단히 長期的인 역사과정이라는 것을 확인하였다. 이는 社會主義를 공산주의로 향한 하나의 過渡的 時期로 파악하던 종래의 관점과는 다른 것으로서, 社會主義를 그 자신의 獨自的 發展法則을 갖는 하나의 獨立된 社會構成體로 파악하게 된 것을 의미한다.4. 計劃的 商品經濟論의 登場이러한 바탕위에서 社會主義와 商品經濟를 상호 대립 배척하는 것으로 간주하던 종래의 관념을 타파하고, 社會主義 경제는 본래 공유제를 기초로 한 計劃的 상품경제라고 하는 새로운 社會主義관, 즉 計劃的 商品經濟論 을 제기하였다. 그리고 이는 1984년 10월 중국 공산당 12기 3중전회에서 통과된 中國共産黨 中央의 經濟體制改革에 관한 결정에서 公式的으로 확인되었다. 또한 社會主義 상품경제론에서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