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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고] 광고와 성의상품화 현상 평가B괜찮아요
    광고와성 상품화 현상목차1. 서론2. 성 상품화 현상이란?3. 두 가지 범주로 나눠 본 성 상품화 현상4. 자본주의와 광고1) 자본주의의 역사2) 자본주의에서의 광고5. 광고와 성1) 성의 개념변화2) 광고와 성 상품화 현상6. 성 상품화 현상, 그 실태7. 상품성과 관계없는 성적표현8. 성 상품화 현상의 문제접9. 결론1. 서론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의 성은 광고, 사교, 오락, 유흥, 향락과 퇴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목적의 소모품이 되고 있다. 여성의 성은 필요 이상으로 과장되고 강조되어 음란, 퇴폐 내용의 비디오나 성인 오락지, 도색잡지, 저속한 만화, 스포츠 신문에 공공연하게 묘사되어 여성을 남성의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 취급하도록 부추기고 있다.예전의 광고에 대한 비판이 과대광고나 허위광고에 대한 것이었으면, 현재는 여성의 성 상품화에 대한 비난이 끊이지 않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광고의 표면적인 목적에만 치중하여 어떤 특정한 광고가 얼마만큼 진실한 내용으로 되어 있는가 에만 관심이 모아졌으나 이제는 광고에서 여자가 상품과 아무 관련 없이 다만 장식적인 목적으로 쓰인다는 사실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다.그리하여 상품의 내용과는 관계없이 광고에서도 상품에 대한 흥미를 끌기 위한 선전의 수단으로 여성의 요염한 자태를 이용하고, 사람들의 성 본능을 자극하는 내용과 눈요기감으로 가득 찬 책이나 영화가 범람하고 있다. 또한 미스 코리아, 미스 유니버스 등 각종 미인대회 역시 여성을 벗겨 놓은 채 수치로 평가하여 여성을 상품화시키고 있다.더구나 100만이 훨씬 넘는 인구가 유흥업소와 향락 업소에 종사하며, 주거지역이나 학교 주변에까지 버젓이 침투하여 성을 상품화하는 영업이 번창하고 있는 현실은 심각한 사회 문제가 아닐 수 없다.오늘날 우리 사회의 성문화는 조선시대에 확립된 가부장적 성문화와 성의 개방과 자유화라는 서구의 성문화, 그리고 남성 중심의 상품화된 성문화가 혼합되어 혼란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결과는 여성을 성적 욕구를 채우는 대상으로 다. 또한 여성을 남성의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 보는 남성 중심의 사고 방식이 크게 작용한다. 상품의 내용과는 관계없는 광고에까지 필요 이상으로 여성의 육체를 강조하고 남성의 부와 권력을 이용하여 여러 여자를 성적 유희의 대상으로 삼는 유흥업소와 매춘이 흥행하게 된 것이다.인간이 가진 성적 특성이 하나의 유용한 도구로서 여타의 생산물이나 노동력처럼 교환 가치를 지닌 하나의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평가받는 것이다. 매춘이 성 상품화 현상의 다양한 방식중 나타나는 보수를 받고 특정하지 않은 상대와 성행위를 하는 그 대표적인 하나라면 여기에서 다루게 될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성적 특성을 이용하거나 성적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광고도 그 하나이다. 사실상 광고에 있어서 성 표현은 광고주들이 소비자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자주 사용하는 방법 중의 하나로 어느 사회에서나 광고가 생긴 이래 존재 해 왔다고도 할 수 있다. 또 인간의 성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성에 관한 윤리 기준이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긴 하다. 결국 그 정도와 지나침이 문제인데 자본주의 체제에서 이루어지는 광고는 기본적으로 경제적 목적을 위해 수단적으로 사용되어지는 영리적 커뮤니케이션 활동이기 때문에 이윤 추구를 위해서라면 지나친 성 상품화 현상도 확대 재생산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 여성이 - 여성이 남성과 다르게 갖는 생물학적인 차이뿐만 아니라 여성에게 부여된 고정적 이미지가 - 상품으로 이용됨으로써 성 상품화 현상이란 말을 여성의 상품화로 바꾸어 말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이다.성적 욕구 자체도 상품화되어 성에 대한 소비욕구를 끊임없이 만들어 내고 있다. 스포츠신문을 비롯한 황색 잡지, 포르노 비디오 거기다 미국이나 일본으로부터 수입된 저질문화가 말초적이고 흥미위주의 성을 추구하도록 유혹한다. 게다가 에로티시즘이 파급되고 있다. 이러한 성 상품화 현상의 확산은 성에대한 왜곡된 가치관을 심어주어 퇴폐적인 성문화를 조장한다. 특히 청소년에게 끼치는 해악은 심각해서 이러한 성 을 성 관계의 유무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추어 규정하는 것은 지나치게 협소한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성 관계까지 가지 않는다 해도 몸을 매우 다양한 형태로 성적 쾌락의 대상으로 제공하는 것은 결국 몸을 파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외모나 몸의 일부분을 성적 이미지나 상징으로 만들어 파는 것과 본질적으로 구분하기 어렵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사회에서는 몸을 팔고 사는 매매춘에 대해서는 이를 원칙적으로 금기시할 만큼 윤리적 제재를 가하고 있는 반면에 육체적 거래가 없는 성의 상품화 현상에 대해서는 아예 윤리적 잣대를 적용시키지 않는 경향이 있다. 즉, 성을 상품화하는 그 사실에 대한 윤리적 문제는 제기하지 않은 채, 주로 성 상품화 현상으로 파생되는 외설과 퇴폐의 측면에 대해서만 성 윤리적 규제를 가한다는 원칙을 내세우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는 여성의 성을 재화로 취급하고 매매하는 것에서 시작된 성의 상품화 현상이 자본주의에서 매매춘의 측면과는 다르게 여성의 몸이 재화가 아닌 물건을 파는 하나의 수단 즉, 새로운 생산수단으로서 묵인되어버린 것이다.4. 자본주의와 광고1) 자본주의의 역사1920년대에 생산방식이 대량생산과 대량분배로 넘어감에 따라 이전의 노동자는 소비자로 바뀌게 된다. 따라서 자본주의는 생산관계가 생산력과의 모순으로 지속될 수 없다는 마르크스의 이야기와는 달리, 현대 자본주의는 생산 현장의 모순을 다른 모순(예를 들어 상품을 구매하고 소비하는 능력간의 차이)으로 은폐함으로써 생산력의 발전을 도왔고, 지속시켜 나가고 있다. 이렇게 초창기 자본주의의 기본적인 모순이 끊임없이 새로운 모순들로 대체되어 가면서 모순이 은폐되고 사회적 갈등이 진공상태로 변하게 된다. 광고는 이러한 논리를 앞세워 자본주의의 위기를 관리할 수 있는 소비 시장의 팽창에 큰 기여를 했다. 그 결과 현대 자본주의는 생산관계와 생산력간의 모순을 다른 방식으로 풀어 나가는 데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즉 광고는 인간의 노동 생산력보다 훨씬 더 성에 관련된 폭력 또한 늘어가고 있다. 성의 개방인가 아니면 새로운 성의 구속인가? 이제 우리는 좀 더 냉정한 눈으로 성의 개방화를 검토해 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무자비하게 쏟아지는 성에 관계된 현상들을 파악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마저도 잃어버리게 될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취업을 위해서는 자기의 전문적 능력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성형외과를 찾고 살 빼는 약을 먹고서라도 날씬하고 아름다운 몸매를 가지는 것도 요구되는 시대. 성은 해방된 것이 아니라 또 하나의 억압으로, 폭력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이처럼 현대 사회는 성의 해방이라는 이름으로 갖가지 속박들이 제공되고 있는 것이다.2) 광고와 성 상품화 현상노동자가 소비자로 변하고 과거보다 늘어난 여가시간으로 인해 사람들이 이제는 몸을 가꾸고 치장하며 직장에 나간다. 거리를 지나다니다 보면 온갖 패션과 유행의 물결이 출렁인다. 이런 현상들은 이제 인간의 육체가 노동을 위한 것이 아니라 보호받고 배려되어야 할 대상임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 또한 성의 해방을 위시한 광고의 성 상품화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광고는 유행이라는 일정한 틀 속에 사람들을 가두고 조정하려 한다. 또한 욕망을 재창조하여 사람들을 따르게 만든다. 그리하여 우리는 광고가 만들어 낸 욕망 속에 살고 있고 그 속에서 물건을 소비한다.우린 현재 소비하고 있는 물건들 중 이미 상품화 되어버린 성을 논의하기로 하였다. 왜냐하면 조작되고 소비되는 사물들 중 성은 가장 사람들을 쉽게 유혹할 수 있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성의 상품화하면 대략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상품과 별 관계없는 야한 포즈의 여자가 광고에 나타난 경우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다. 물론 그런 광고가 조건화 현상 을 일으켜 사람들로 하여금 그 상품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 모델의 이미지가 떠오르게 한다는 점은 무시할 수 없다.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성 상품화 현상의 뚜렷한 예이다.6. 성 상품화 현상, 그 실태대부분의 경히 많다. 첫째, 여성의 역할은 가정에 한정되며 둘째, 여성은 중요한 결정도 내리지 않고 중요한 일도 하지 않으며 세째, 여성은 의존적이며 남성의 보호를 필요로 하며 네째, 여성의 아름다움은 외모로 평가되며 여성은 남성에게 있어 단순한 성적 대상이라는 점이 그것들이다. 성의 상품화 현상은 이러한 고정 관념 중 네 번째와 관련하여 더욱 잘 드러난다.구체적인 예로는 등을 드러낸 여성이 상품을 들고 있는 다이어트 코크 음료수 광고, '속을 보여 드립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타이즈 차림의 여성이 리본 체조를 하는 모습인 에이스 침대 광고, '피로 없는 아빠, 사랑 받는 아내'라는 표현과 함께 목욕하는 여성의 모습을 담은 나쇼날 가스 순간 온수기 광고, 그 외 겉옷은 반쯤 벗고 속옷 차림으로 부엌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 여성이 나오는 한국 와코루의 광고도 있다. 또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시각 효과로 소비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 노출이 심한 여성이 상당히 등장하는 데 '가까이 더 가까이'라는 글과 함께 구강 청정제 광고, 과잉 노출된 여성용 속옷 광고, 목욕 후 수건만 착용한 여성이 등장하는 화장품 광고, 여성이 이상한 포즈로 다리를 벌린 채 나오는 변비약 광고, 선정적인 몸짓을 한 여성을 이용한 청바지 광고도 있다. 여기서는 특히 '그가 거칠게 다룰 때 싫은 척 했지만 속으론 좋았다'라는 글까지 있어 마치 요즘 떠들썩한 성폭력을 정당화하는 듯한 표현까지도 있다. 또한 '여성의 68%가 경험이 있다. 여성의 99%가 관심이 있다.' 수영복을 입은 여자의 전신사진 옆에 새겨진 이 문안을 보면서 사람들은 아마 대부분 여성의 성 경험을 상상시킬 변비치료와 다이어트에 좋다는 음료수를 선전하는 광고 문안도 있다. 이외에도 원색적인 표현과 선정적인 장면들을 그대로 내 보이는 영화광고는 더 이상 말 할 나위도 없다. 우리는 '수영복을 입은 여성모델이 등장하는 자동차 타이어 광고', '구두의 선(線)과 여성의 몸매가 비유되어 번갈아 클로즈 업 되는 CF', '남녀의 벗은 상반신이 나오는
    예체능| 2003.03.17| 16페이지| 1,000원| 조회(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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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축] 가우디의 모든것! 평가C아쉬워요
    Antoni GaudiAntoni Gaudi산업디자인 97761037 최주석목차1. 가우디의 생애 2. 가우디의 건축사고 3. 가우디의 오브제 4. 가우디의 건축물 5. 참고문헌가우디의 생애1852년 6월 25일 카탈로니아의 레우스에서 출생. 1883-1885 에르 카프릿쵸 1883-1926 사그라다 파밀리아 속죄 성당 (건축중) 1884-1887 핑카 구엘 1886-1889 파라시오 구엘 1887-1893 아스토르가 사교관 1888-1890 테레사 학원 1891-1892 카사 데 로스 보티네스 1895 보데에가스 구엘 1898-1900 카사 칼벳트 1898-1916 콜로니아 구엘의 클립터 1900-1909 베레스구아르드 1900-1914 파르게 구엘 1902-1914 마룔카 대성당의 수복 1904-1906 카사 바트료 1905-1910 카사 밀라 1926 6월 1일 교통사고로 별세(정년 74세) 바르셀로나에서 작고.가우디의 건축사고1) 포물선 아치(수직력을 횡력으로 전환) 2) 깨진 타일 (도자기 모자이크) 사용 3) 직선이 아닌 자연의 선인 곡선을 사용 4) 건축뿐만 아니라 공예, 조각, 가구, 장식 등의 디자인 탁월 5) 주변 여건을 최대한 활용한 기능적인 건축 6) 연구와 실험과 충분한 시간을 투자하여 발휘된 장인정신 7) 독신으로 일생을 건축에 헌신가우디의 건축사고▶ 집의 목적▶ 독창성의 의미▶ 경사지의 건축▶ 바람직한 건축재료가우디의 건축사고가우디의 오브제가우디의 건축물구엘 공원 (Parque Guell 1901~1914)가우디의 건축물가우디의 건축물물은 왕들이 지나다니는 계단이 있는 세 개의 분수중에 세라믹 재질로 된 용의 조각상이 물을 입으로 타하듯이 나오게 된다. 이것은 아폴로 신에 의해 죽임을 당해 땅속에 매장된 뱀과 용이 땅속에서 물을 지키고 있다는 그리스 신화에서 온것에서 착안한 것이다.가우디의 건축물사그라다 파밀리아(성가족 성당) (1882~1926)가우디의 건축물이 성당은 가우디가 살아서 완성 지으려 한 건물은 아니다. 다른 건물은 가우디 자신이 설계하고 공사를 했지만 이성당은 자신도 알지 못할 먼 훗날을 기약하며 설계와 시공을 했다. 또한 1926년부터 지금까지 가우디의 작업을 계승하는 건축가들의 기술적인 연구에 바탕으로 진행되고 있다. 후기 자연주의와 가우디의 구성에 기본을 둔 작품으로 일 년에 백만 명 이상의 방문객이 들르는 곳이다. 그리고 그 중요성은 훌륭한 건축이란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교훈적인 작품이다.가우디의 건축물가우디의 건축물가우디의 건축물가우디의 건축물아스또르가 에삐스코팔 궁전(Palacio Episcopal de Astorga 1889~1893)가우디의 건축물가우디는 아스또르가의 건축양식과 마라가테리아 레온지방의 풍경을 전반적으로 파악한 후 그 당시에 유행하던 신고딕 양식으로 설계를 하였다.가우디의 건축물가우디의 건축물엘 카프리쵸 (EL Capricho/스페인어로 '변덕'이라는 뜻)가우디의 건축물독신자를 위한 주택으로 1883년부터 1885년에 걸쳐 꼬미야스에 세워졌다. 이 주택의 특징은 독신자를 위한 것이므로, 침실, 응접실, 식당, 화장실이 원룸의 방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반지하에는 여러 개의 보조방과 식당이 있다.가우디의 건축물1층평명도2층평면도지하 1층 평면도가우디의 건축물까사 밀라(Casa Mila 1906~1910)가우디의 건축물이 건물은 바요뜨 저택을 완성한 직후 1905년 가우디에게 주어진 행운이었다. 이계획은 천 평방미터가 넘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굉장한 관심을 끌었다. 가우디가 건설한 민간 건축 중 에 가장 중요한 공사이기도 했다.가우디의 건축물가우디의 건축물가우디의 건축물가우디의 건축물바뜨요 저택(Casa Batllo 1904~1906)가우디의 건축물가우디의 건축물가우디의 건축물가우디의 건축물1층평면도6층평면도기준층 평면도다락방 평면도가우디의 건축물비센스 저택(Casa Vicens 1883-1888)가우디의 건축물가우디의 건축물1층평면도2층평면도상부층평면도참고 문헌http://www.infocon.co.kr/man/kaudy/c.htmhttp://my.dreamwiz.com/architoy/warchi/gaudi.htmhttp://books.joins.com/books/book_detail.asp?goods_id=*************현대 디자인의 전개 / 퍼니스파크지음 / 미진사{nameOfApplication=Show}
    예체능| 2003.03.08| 36페이지| 1,000원| 조회(1,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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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큐비즘
    큐비즘은 1907년부터 1920년대 중반기 혹은 말기 사이에 탄생된 다양한 형태의 미술 작품들에게 주어진 총체적 명칭이다. 그러나 피카소, 브라크, 그리의 큐비즘과 다른 화가들의 큐비즘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존재한다. 이러한 차이는 궁극즉으로 문제되는 화가가 유럽의 환영주의적 전통과 결별함에 얼마나 큰 성공을 거두었나 하는데서 연유한다.큐비즘의 대변인들이 제시한 큐비즘의 설명으로 가장 표준적인 것 두가지는, 그것이 시각적 현실이 아니라 개념적 현실을 묘사한다는 설명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큐비스트들이 시각적 경험에서 진리를 추구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렇게 두가지를 써놓고 보면 이 두가지가 상호 모순된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큐비즘이 속하는 그 이전 반세기의 미술 전통을 검토해 보면 이 두가지의 모순이 해결될 수 있다.글레즈와 메칭거의 큐비즘 과 아뽈리네르의 큐비스트들의 작품세계 에서는 쿠르베가 큐비즘의 정신적 창시자로 언급되고 있다. 쿠르베는 자신의 예술세계로부터, 천년 넘도록 유럽 미술계의 중대 관심사였던 상징적 차원과 문학적 차원, 그리고 역사적 차원을 배제시키고 싶어했다. 그는 미술가로서 할 수 있는 기능들이 여러 가지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자기 자신의 눈으로 엄정하게 확인할 수 있는 것만을 포착하는데 노력을 집중시키기도 했다.{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시각적 경험 외에도 많은 것을 기록하는 실수를 범했지만, 그의 후계자들인 인상파 화가들은 오로지 이러한 목표에 집착했으며, 가능한 상징적 내용이 없는 주제를 선택함에 있어서 쿠르베를 능가했다. 그들은 1870년대 중반 경부터 이러한 중립적 주제에 망막에 의한 시지각의 경험적 사실주의라고 규정할 수 있는 기법을 적용하기 시작했다.이처럼 새롭게 성취된 양식으로부터 수많은 양식들이 파생되었지만, 큐비즘의 역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세잔느의 미술세계였다.세잔느는 중립적 주제라는 인상파의 제한된 영역을 유지하면서도, 예술을 위해 직접적 시각 경험을 배제하였다. 그에 세잔느의 예술세 지각 자체의 복잡한 심리적 과정을 반영했다.세잔느의 회화작품에서는 오브제들의 여러 측면이 상이한 시점들에서 지각되었고, 이렇게 지각된 결과들이 축적되면서 단 하나의 복합적 형태로 표현되었기 때문에 그것들이 왜곡되고 비-원근법적인 형태를 취하게 되었다. 또, 구성의 방법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세잔느는 인간 시계의 한계에 따른 별개의 제영역 안에서 자신의 형태를 조직했다.이들 영역 내부에서도 그는 형태의 대조를 달성할 목적에서 오브제들을 더욱 더 왜곡 시켰으며, 그 결과 선들이 직각으로 서로 만나는 일이 자주 벌어지기도 했다. 그밖에도 그는 이 더 조그만 영역들 내부에서 오브제들을 재배치하고 그것들에 새로운 형태를 부여함으로써 2차원적 구조의 전체적인 통일을 도모했다. 또 그는 passage'를 사용하여 가까운 오브제와 먼 오브제 사이의 회화적 통일을 창조했다.이러한 복잡한 양식은 초기 큐비즘의 주요한 근원 하나를 이루었다. 그러나 피카소와 브라크는 지각 과정의 조심스러운 기록과 그 과정의 미학적 정리를 전혀 상이한 목적을 위해 사용했다. 피카소와 브라크는 그 전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주제의 제한된 범위를 견지하면서 세잔느의 미술을 소화했다. 그러고 나서 이들은 세잔느의 일부 특징들-passage와 복합적 시각-을 크게 강화시켰으며, 그 결과 세잔느에게 있어서는 시각 과정에 대한 충실성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었던 것이 1912년 경에는 시각세계를 모사함에 있어서 철저하게 탈환영주의적이며 탈모방적인 새로운 방법의 기초가 되었다. 1910년 중반기에 그린 피카소의 까다께 작품들 이후로는 회화적 구조가 축적된 시각 경험보다 더 강력한 요소가 되었다. 세잔느가 합성 이미지로 만들었던 것이 1911-1912년 사이의 큐비즘에서는 중복되거나 교차되거나 연결되는 평면들로서 분리된 상태로 남아있다.1911년 이후 큐비스트들은 더 이상 자연 속의 모델을 직접적인 소재로 택하지 않았다. 그리고 빠삐에 꼴레와 1913-14년 사이의 회화작품들에는 환영주의적 공간이 존재하지 않았으며합적 지각을 통한 지식 축적도 찾아볼 수 없다. 그 대신에 큐비스트들은 직접적 형태의 관념적 표기로 나아갔다. 이때 형태는 시각세계의 오브제와 동등했으며 절대 이 오브제를 환영주의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아니었다. 빠삐에 꼴레의 발명과 함께 오브제의 공간적, 또한 질감적 제특징을 나타냄이 가능해졌다. 또한 종합적 큐비즘에서 부호가 발달됨과 함께 시각세계를 묘사함에 있어서 수단이 되는 형태 목록이 풍부하게 갖춰졌다. 하지만 1913-14년의 큐비즘은 이러한 시각세계의 표기에 특정한 오브제의 모든 속성을 포괄시킨 것이 아니라, 명료한 인식을 할 수 있도록 그것을 잘 특징지어주는 속성들-그것의 특징적인 형태, 색깔, 질감, 윤곽 등-만을 포함시켰다.1913-14년 사이의 피카소와 브라크의 큐비즘이 경험세계와 맺고 있던 관계는 훗설 현상학에서의 소위 직관적 환원의 방법과 아주 흡사하다고 한다. 훗설은 1914년이 되기 전의 몇 년 동안 심리학적 설명과는 무관할 수밖에 없는 존재를 파악하는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했으며, 이 방법을 1913년의 이데아 에서 제시했다. 이 직관적 환원의 방법은 구체적이고, 순수하게 묘사적이며, 직관에 기초한 것으로서 한 대상의 본질에, 달리 말하자면, 2차적인 결정요소들까지도 그것을 규정하는 경우에 그것을 규정하는 본질적인 요소들에 도달하는데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본질적인 요소들에는 이상적이고 추상적이며 기하학적인 개념들에 반대되는 것으로서의 형태학적 본질이 포함되어야 하지만 특별히 개별적인 내용은 철저히 배제되어야 한다. 후에 그의 저서 데카르트의 명상 에서 훗설은 주사위의 본질적 속성의 파악과 같은 구체적인 예를 통하여 자신의 접근방법을 밝혔다.비록 역사적인 우연이기는 하지만 훗설의 방법과 1913-14년 간의 피카소 및 브라크의 미술 사이에서 찾을 수 있는 놀라운 유사성은 세잔느 및 베르그송의 심리학 지향적인 방법들과 분명한 대조를 이룬다. 피카소와 브라크도 원칙이 아닌 직관에 따라서 움직였다. 오브제의 본질적 속성을 묘사할 때,스로를 나타내거나 한 부류의 유사한 오브제들 전체를 나타낼 경우를 제외하면, 절대로 형태를 특정한 오브제에 구속시키지 않았다. 빠삐에 꼴레에서 그리고 그후 종합적 큐비즘이 융합된 부호에서도 선택된 형태는 자연으로부터 모방한 것이 아니라 발명되었으며, 이러한 직관적 발명의 산물은 시각적 경험과의 밀접한 관계속에서 축적된 심리적 과정의 결과인 세잔느의 복합형태와 그 근본에 있어서 판이했다. 그밖에도 세잔느의 경우와 달리 선택된 형태는 선택이 가능한 여러 가지 중의 하나였다. 아뽈리네르가 말했듯이 의자가 의자의 본질적인 구성요소들만 갖추고 있다면 그것은 어느 시점에서 보아도 의자로 보이기 마련이다. 혹은 피카소가 1914년 이전 슈타인에게 말했듯이 얼굴에서 문제되는 것은 눈과 코와 입이며, 이것들은 당신 좋은 대로 배치될 수 있다. 그래도 머리는 여전히 머리이다.세잔느 혹은 초기 큐비즘과 1912년 이후의 큐비즘 사이의 차이는, 이상적인 내재적 본질을 향해 진행되는 귀납의 예술로부터 초월적인 본질에 도달하는 연역의 예술로의 변천이라고 규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 말한 연역과정은 베르그송식의 경험을 통해서 얻은 것이든 순수하게 창조적인 상상을 통하여 얻은 것이든 이미 존재하는 특정한 사상에 의존한다.인상파와 세잔느를 한파로 하고 1913-14년 사이의 피카소와 브라크의 큐비즘을 다른 유파로 하여 양자를 비교해보면 또 하나의 대조적 양상이 눈에 띈다. 19세기의 화가들이 현실을 묘사함에 있어서 추상적이고 양식화된 수단을 사용했다면 큐비스트들은 구체적이고 심지어는 꼴라쥬에서와 같이 실체적인 수단을 사용했다. 이는 다른 문화 영역, 특히 기술 영역에서 주목되는 19세기와 20세기 사이의 차이와 유사하다.큐비즘에 대한 또 다른 해석으로는 큐비즘이 16세기의 매너리즘적 미술과 연관이 되어 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비숫한 형태 수단을 사용한 결과 큐비즘과 매너리즘 모두에서 공간적 모호성이 나타난다는 사실에는 의문이 있을 수 없다.또한 16세기 이탈리아에는 뒤러의 미술이,영향을 끼쳤다는 식으로 외국 미술의 침투에 비슷한 역할을 부여함 역시 흥미있는 일이다. 오크는 뒤러, 깜비아소, 브라셀리의 큐비즘적 경향과 20세기 큐비즘의 매너리즘적 셩격을 유럽문화에서, 시시각 재등장하는 일반적 경향의 일부 측면으로 파악했다.하지만 뒤러를 비롯한 16세기 화가들의 큐비즘적 회화작품은 20세기 큐비스트들의 작품과 공통점이 전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밖에도 큐비즘의 확산은 16세기의 매너리즘이 1920년데에 드보르쟉과 프리드렌더 등의 개척자적인 역사가들에 의해 재평가 받도록 하는 계기가 되었지만 그것이 결코 매너리즘적 셩격을 띠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20세기에 큐비즘이 어느 정도는 그와 같이 규범적인 양식의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큐비즘이 쉬비터스와 뒤샹 같이 격조높은 화가들에게 그리고 그후에도 수없이 많은 화가들에게 하나의 규범을 제공해 줄 수 있었고, 이들이 그 규범으로부터 무엇인가를 빌려오거나 혹은 그것에 대해 반발하면서 자신들의 독자적 양식을 창조해 나갔다는 사실은 바로 큐비즘의 위대성을 말해주는 증거이다.그러나 큐비즘의 방법에도 한 가지 결점이 있다. 입체주의 창시자들은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그것은 이러한 방법은 어느 정도 익숙한 형태에 한해서만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림에 나타난 다양한 조각들을 서로 연관시킬 수 있으려면 그 사물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있어야 한다. 입체파 화가들이 기타, 병, 과일 그릇, 때로는 인물같이 우리에게 익숙한 소재를 다루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지금까지 양식사적 현상으로서의 큐비즘을 살펴보았다. 결국 큐비스트들의 처음 의도는 가시적 형태들로부터 새로운 형태들의 결합을 연역해내자 는 것이었다. 큐비스트들은 화가들이 과거에 신봉했던 낡은 원리, 즉 자연을 맹목적으로 모방하거나 아니면 흔히들 말하듯 자기 자신의 개성을 매개 로 모방해야 한다는 원리를 유치하고 불필요한 것으로 간주했다.-이때의 맹목적 모방이나 자신의 개성을 매개로 한 모방이 결국 같은 말인 것은 화가가 다.
    예체능| 2002.12.01| 8페이지| 1,000원| 조회(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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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축가] 프랭크로이드(프리젠테이션)
    약력 2. 라이트의 건축사고 3. 그의 작품들 4. epilogue2 3 4 . . . 라 그 e 이 의 p 트 작 i 의 품 l o 건 g 축 u 사 e 고1867 출생 1885 위스콘신 대학 입학 1887 대학 중퇴 평생 스승인 루이스 헨리 설리반 사무소에 들어감. 1893 시카고에 자신의 사무실 개설. 만국박람회를 통하여 일본과 동양의 건축에 관심을 갖기 시작함. 1893~1910 제 1황금 시대. 자연과 대지에 융합한 전원 주택을 설계한 시기. -윈슬로우 주택,로비 주택,라킨 빌딩,유니티 교회 등... 1911~1935 침묵의 시기. 해외 도피 및 은든 생활로 작품 활동이 전 시대에 비해 거의 없었다. -미드웨이 가든,일본의 제국 호텔,탈리아신 이스트 등... 1936~1959 제 2황금 시대.20여년의 공백 기간을 깨뜨리는 카프만 주택(일명 낙수장)과 존슨 왁스 회사를 설계하였다.또한 제 2황금시대 최대 걸작 중의 하나인 구겐 하임 박물관을 완성하였다. 1959 사망.(당시 91세)1867년 위스콘신州 리치랜드 센터에서 출생. 1959년 애리조나州 피닉스에서 작고. 1885-7년 매드슨에 있는 위스콘신 대학교에서 공학을 배웠고, 같은 기간 동안 A.D. 코노버 밑에서 일했다. 건축의 거장들,즉 발터 그루피어스,르 꼬르뷔제,미스 반 데어로에 등보다 10여년 먼저 태어난 그는 91세 10개월 이라는장수를 누리며,죽음 직전까지 설계작업을 계속해왔다. 다작이었던 그의 업적 모두가 걸작이었던 것은 아니지만 시대를 뛰어넘는 수 많은 걸작을 남긴것 또한 사실이다.그는 자연의 생명과 조형 속에서 그 창조 원리를 찾아내어 그의 건축 이념을 확립하였고,생명력 넘치는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그를 일컬어 근대 건축의 아버지라고도 한다. 싱글 스타일(널판 양식)의 원리들을 그에게 소개해 준 J.L. 실스비의 스투디오에서 잠깐 동안 실무 경험을 쌓았다. 이러한 짧은 전문적 경험 외에, 위스콘신州 스프링 그린 근교에 있는 그의 할아버지 농장에서 일을 배우기도 했다. 이러한 일들은. 1)근원의 탐구 원리를 실행한 것은 사라지나,원리는 불멸이다. 라이트는 건축을 함에 있어 본질과 근원을 찾고자 했고,그 것을 건축으로 나타내고자 하였다.그는 건축을 생명의 가장 진실한 기록,위대한 정신으로 보았다. 따라서 그에게 건축이란 인간을 위한, 인간에 의한 정신이고,또 시대와 장소의 정신이었다. 어느 직품이든 나를 모방할 필요는 없다.내 작품의 배후에 본질이 작용한다는 것을 여러분이 이해한다면,건축을 하는데 있어 자신의 방법에 완전성을 갖게 될 것이다.1 3 4 . . . 약 그 e 력 의 p 작 i 품 l o g u e마몯갯홰 shriot2). 기하학적 형태의 추구 라이트는 순수 기하학적인 형태와 자연으로부터 추출된 기하학적 형태로 그의 작품을 표현했다. 하학적 형태는 어린 시절 프레벨 교육시스템에 의해 깊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그에게 ①기하학적 체계와 그 디자인 특성에 대한 인식 ②3차원적 솔리드와 보이드에 대한 감각, ③다양한 요소의 구성 능력에 대한 이해, ④복잡한 2차원적 패턴과 3차원적 공간을 엮어내는 것 에 대 한 매력 ⑤2차원적인제도판 위에 그린 패턴들의 3차원적 관계들을 시각화 하는 능력을 가르쳐 주었다.이런 것들이 자연으로부터 추출된 형상과 더불어 더욱 발전하여 형태와 공간 구성으로 발전하였다.1 3 4 . . . 약 그 e 력 의 p 작 i 품 l o g u e3). 공간-건축의 실체 건축의 건실성과 본질은 지붕과 벽으로 둘러싸인 내부 공간에 있다. 근대 건축은 건물에 공간의 개념을 주었는데 특히 라이트는 둘러싼 공간을 건축의 실체로 보고 건축 이상으로써 공간 건축을 추구하였다. 이 공간은 빛이,생명이 들어오며,외부와 내부가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 서로 관입하여 공간에 흐름과 연속성을 준다.그에게 있어 단순한 상자는 마치 관과 같아서 사람을 감금시키고 에워 싼다. 이 것은 비 민주적인,자유롭지 못한 건축이었다.모서리를 열므로서 빛과 사람의 움직임이 해방과 자유를 얻는다.1 3 4 . . . 약 그 e 력 의 p 작 i 품 l o g였고,이를 발전시켜 라이트 자신의 독창적인 사상으로 완성시켜갔다. 자연에서 추출된 그의 건축적 모티브는 가장 원초적인 개념으로 읽을 수 있으며,이러한 자연에 대한 직관은 자연의 자태에서 형상화된 구조의 시스템을 비롯하여형태,내부와 외부 공간의 관입,수직과 수평의 상호 연관 관계 및 연속과 확장,반복 및 대립의 관계로 이어져 각각의 개체가 결합되면서 일체로 표현되는 유기적 건축의 맥을 이루고 있다.1 3 4 . . . 약 그 e 력 의 p 작 i 품 l o g u e라이트는 시대적 흐름의 격동과 역경 속에서도 많은 작품 활동을 통하여 자신의 건축적 사고의 근본인 유기적 건축론을 실제화 하면서 이론과 실체를 겸비하여 충실하게 표현한 건축가 이다. 자연을 디자인의 모든 원리,결과의 내부적인 요소로서 이해하였으며 기하학적인 평면의 전개와 입체 조형,그것에 의한 내부와 외부공간의 융합,자연과의 일체화 및 재료의 본질이 갖는 자연의 구조를 추상화해서 개발하는 것이 건축의 창조적 행위라고 여겼다.그러한 원리를 건축 작품으로 표현하고자 평생을 일관되게 추구한 거장이었다.1 3 4 . . . 약 그 e 력 의 p 작 i 품 l o g u e1 2 4 . . . 약 라 e 력 이 p 트 i 의 l o 건 g 축 u 사 e 고길게 뻗은 수평지붕선이 인상적인 주택작품이다. 그의 초기 수많은 주택작품중 가장 원숙함을 보여준다. 물을 쓰는 공간을 중앙부에 모으고 그곳으로부터 사방으로 공간이 확장, 변화하는 평면형식으로 내부공간의 다양함과 함께 외부공간의 내부공간화를 꾀한 돋보이는 건축이다.-로비하우스--낙수장-계곡을 낀 자연속에 극적으로 어우러진 주택으로, 그의 동양적 사고를 읽을수 있다. 수평과 수직이 잘 결합된 입체조형의 풍부한 해석과 내외부공간의 상호관입, 적절한 재료의 사용능력, 공간의 연속성과 구조의 조형성을 추구한 유기적 건축의 원숙한 경지를 느낄 수 있다.과감하게 처리된 캔틸레버는 당시로서는 매우 대담하여, 시공자가 무너질까 겁이 나서 버팀대를 떼내려 하지 않았을 정도였다 경사로를 통로인 동시에 전시공간으로 사용했으며, 이는 기능면에서 비판되기도 했다. 여기서도 대형 내부공간의 확산을 위한 천창이 적극적으로 사용되었다.1 2 4 . . . 약 라 e 력 이 p 트 i 의 l o 건 g 축 u 사 e 고-구겐하임 미술관--1 2 4 . . . 약 라 e 력 이 p 트 i 의 l o 건 g 축 u 사 e 고-존슨 왁스 빌딩-상자형식에서 탈피하여 원통형상을 기조로 한 자유로운 조형의지를 나타낸다. 내부의 구조는 樹形구조의 연속에 의한 독특한 대형공간의 구성과 빛의 연출을 볼 수 있다.1 2 4 . . . 약 라 e 력 이 p 트 i 의 l o 건 g 축 u 사 e 고-존슨 왁스 빌딩-1 2 4 . . . 약 라 e 력 이 p 트 i 의 l o 건 g 축 u 사 e 고-탈리에신 이스트-언덕의 정상에 해당하는 곳이 언덕 위에 마치 낮은 벽으로 둘러싼 뜰과 같이 되어 있어 거기에 이르는 돌 계단이 언덕으로 둘러싸고 있는 곳이다. 그 바로 밑에는 굽은 큰 돌이 벽과 같이 둘러 싸서 좌석을 만들고 있고,거기서 돌이 층층으로 아래로 내려와 중앙에 있는 풀장 속에 물을 분출하고 있는 샘이나 또는 분수에 이르고 있다.언덕의 정상에 무성한 떡갈 나무 숲은 울창하게 뜰의 한쪽에 있다.1 2 4 . . . 약 라 e 력 이 p 트 i 의 l o 건 g 축 u 사 e 고- 탈리에신 이스트-1 2 4 . . . 약 라 e 력 이 p 트 i 의 l o 건 g 축 u 사 e 고-라킨 빌딩-이 건물은 전체가 하나의 큰 방화 볼트로 완전 방화 장치가 된 최초의 건물이다.가구는 모두 강철과 마그네사이트로 만들어 각각의 장소에 설비되어 있고,이 것은 건물에 속하거나 건물과 일체로 된 것이다. 마그네사이트는 건물의 내부 전체에 걸쳐 사용되었다.위엄이 있는 내부는 위에서 채광을 하고 햇빛으로 중앙의 사무실을 밝게 조절하고 깨끗하게 환기된 방에서 일을 하는 공장의 대 가족이라는 효과를 만들어 낸다. 분절화의 원리를 이용하여, 계단을 상하의 연결과 비상시의 피난을 위해서만호텔(제국)-이 호텔을 의뢰 받은 라이트는 6년간을 지진의 연구에 소비하였다.지진의 위협에 대한 해답은 강직함이 아니고 유연성과 탄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되었고,이 건물을 세웠다. 이 것은 구부러지지만 다시 원 상태로 돌아간다.그리고 어느 지진에도 넘어지지 않았다.1 2 4 . . . 약 라 e 력 이 p 트 i 의 l o 건 g 축 u 사 e 고-임페리얼 호텔(제국)-부지 지반은 표층 8피트정도 아래에 60~70피트의 무른 점토 층이었는데, '그 위에 건물을 뜨게하면 어떨까?극히 가볍고 화사하고 유연하게 만들면 어떨까?....'이리하여 건물의 설계가 시작 되었다1 2 4 . . . 약 라 e 력 이 p 트 i 의 l o 건 g 축 u 사 e 고-유니티 교회-도로에 면한 3면을 막고 안뜰에서 건물 중앙의 두쪽으로 들어가도록 하고, 유니티 하우스라고 붙인 세속적인 행사에 사용하는 장소를 교회의 뒤쪽에, 하나의 긴 건물로 만들어 이동 스크린으로 일요 학교나 그 밖의 행사를 위해 간막이를 해서 그것이 개별 건물이면서 교회와 조화를 이루게 하였다. 사방의 알코브 위에서 빛이 들어와 실내가 어둡지 않고 행복한 밝은 느낌을 갖도록 충분히 들게하여 비가 오나,햇빛이 쬐나 따뜻하게 느껴지게 했다.1 2 4 . . . 약 라 e 력 이 p 트 i 의 l o 건 g 축 u 사 e 고-유니티 교회-1 2 4 . . . 약 라 e 력 이 p 트 i 의 l o 건 g 축 u 사 e 고1 2 3 . . . 약 라 그 력 이 의 트 작 의 품 건 축 사 고라이트는 유럽 중심의 근대건축의 흐름에서 당당하게 자신만의 독특한 색깔을 지니고 유럽건축에 영향을 미친 미국의 자존심이었다. 그는 자연을 통하여 자연과 함께 호흡하는 유기적인 건축의 기수이며, 기하학적인 수평선과 자연의 조화, 내부공간의 리듬, 반복과 대비의 적절한 구성 등 현대건축의 중심언어를 훌륭히 사용했다. 이러한 그를 알아보며 작은 번거로움 조차 귀찬아 하며 나태해 질데로 나태해진 나 자신을 다시한번 돌아본다. 그리고 나 자신ow}
    예체능| 2002.12.01| 26페이지| 1,000원| 조회(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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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4월 23일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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