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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시대의 왕권과 신권
    국왕 중심의 중앙집권적 양반관료체제 속에서 왕권과 신권의 조화: 중앙집권체제를 갖춘 조선은 국왕을 정점으로 하는 정치체제가 의정부·6조·승정원·삼사가 유기적으로 편성되어 왕권과 신권을 견제·조절하면서 이상적인 유교정치를 수행할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1) 왕권강화1 승정원왕명을 출납하는 비서기관으로 이곳에서는 도승지 이하 6승지가 6조를 분담하였다. 그러므로 승정원은 6조의 기능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래서 6조직계제가 실시되던 시기에는 승정원도 자연히 정치활동이 활발하였다. 특히 국왕은 국사를 의정부나 6조에 논의하기에 앞서 대개 승지와 의논하였고 여러 관아의 백관이 올린 국사도 먼저 승지와 논의하여 결정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의정부사서제가 시행될 때에는 보다 침체될 수밖에 없었다.2 의금부국왕의 직속 사법기관으로 대역, 모반 등 국가 및 국왕의 안위에 관계되는 중죄를 처리하였다.▶원상 : 국왕이 어리거나 병이 났을 때 원임·시임 대신들이 승정원에서 국가의 중요사를 의논 처리하며 국왕을 보좌하고 의정부 권력까지 초월한 비정규직책으로 세조 때 비롯되었다▶국청 : 왕명으로 열리는 임시 특별사법기구로서 모반·대역 등 국가적 중죄인 심문·재판하기 위한 제도로 국청은 조선중기 이후 상설화 되었다. 의금부는 경국대전에 규정된 정규관청인데, 국청은 비정규 임시기구이며 의금부보다 긴급하고 중죄인을 다스린 점이 달랐다. 그리고 때로는 일반범죄까지 처리하여 형조와 업무상 중복이 생기기도 하였다.(2) 의정부백관을 거느리고 서정을 총리하고 국가정책의 대강을 결정하고 정책의 최고권은 국왕과 재상의 합의원칙으로 하였다. 의정부에서는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의 정1품인 3의정(정승)과 4명의 고관(좌·우찬성, 좌·우참찬)들이 있어, 모두 정사를 통일적으로 관할하였다. 특히 정승은 예문관, 승문원, 춘추관, 관상감 등 중요관청의 최고 책임을 결임하고 국왕을 교육하는 경연과 세자를 교육하는 서연의 책임까지 맡아 그 권한이 매우 컸다.(3) 의정부사서제와 6조직계제조선초기에는 의정부와 6조 사이에 권한의 변동이 생김에 따라 의정부사서제에 또는 6조직계제가 반복되었다. 사대부의 의견이 의정부의 의결권을 통하여 반영되던 의정부사서제, 의정부를 소외시키고 6조가 모든 정무를 왕에 직접 고하고 왕명을 직접 집행하던 6조직계제가 그것이다. 태조 때는 의정부사서제의 대표적 시기였고, 태종·세조 때는 6조직계제의 대표적인 시기였다. 세종은 그 전반기에는 6조직계제, 후기에는 의정부사서제로 환원하였으나 인사·군사·형옥문제는 6조에서 직계 할 수 있어 의정부사서제와 6조직계제의 절충적인 체제가 되었으며, 의정부의 권한도 상당히 회복되었다. 세조는 즉위하면서 왕권강화를 위하여 다시 6조직계제를 강행하였으나 이 체제는 중종11년(1516년)에 가서 다시 의정부사서제로 돌아갔다.※ 의정부사서제·6조직계제는 왕권과 관련하여 정치적 위치에 변동이 있었다. 왕권과 신권의 상호관계를 보면, 태조·태종·세조 대는 왕권이 신권을 압도한 시기였고, 세종대는 왕권과 신권이 조화를 이룬 시대였으며, 성종 대는 왕권이 약간 강화되고 신권이 신장된 시기였다고 볼 수 있다.1 15세기국왕의 우위를 인정하는 가운데 국왕과 대신·공신을 중심으로 의정부사서제와 6조직계제를 기본틀로 하여 운영되었다. 이 시기는 행정체제를 일원화하고 관서·관직·관원을 통일적으로 편제하고 인사관리규정을 정비하여 관원을 합리적으로 관리·통제함으로써 정치운영에서 관료적 성격이 강화되었다.2 16세기 전반국왕과 대신·공신 중심의 정치운영은 국왕의 폭정 또는 대신·공신의 권귀화로 인해 파행을 가져오게 되는데 이는 사림세력이 16세기 후반에 정권을 잡음으로써 극복되어갔다.3 16세기 후반∼17세기 전반붕당의 공론에 입각한 붕당정치가 행해졌다. 복수붕당간의 공존 위에서 상호견제와 비판을 통해 운영되는 정치형태, 또는 붕당이 기본세력이 되어 정권의 장악을 목표로 하여 대결을 벌이는 정치형태4 17세기 후반환국기-하나의 붕당이 정국의 주도권을 독점하게 되고, 그러한 붕당이 급격하게 교체되는 환국이 계속 일어났다. 이는 사상적 차이에 의한 정치적 대립이 정점에 달했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동시에 그 사상이 사회의 변화 속에서 현실적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기 시작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5 18세기탕평기-왕권을 중심으로 권력의 집중과 정치세력의 균형을 꾀하면서 사회체제를 안정시키려는 정치운영방식으로 왕의 개인적인 역량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6 19세기세도기-18세기 국왕이 정국을 주도하는 탕평정치, 그 속에서 성장한 외척·벌열과 국왕과의 대립에서 국왕이 패함으로써 소수의 외척·벌열 가문에 의한 세도정치가 시작되었다.집권체제의 정비1. 태조(1) 재상주도의 도평의사사 중심체제정도전의 보필-재상이 도평의사사의 판사를 겸하여 국정을 주도하고 재정과 군사에 대해서도 총괄하였으며, 상서사의 판사를 겸하여 인사권을 장악하였다. 관서제도 도평의사사 아래에 6조와 여러 관서가 병렬적으로 딸려 있었으며, 이러한 체제에서 도평의사사의 2품 이상 관원이 6조와 주요 관서의 판사를 겸하였다.(2) 지방행정1 속현, 향, 소, 부곡을 폐지 주군에 병합2 관찰사 제도 부활, 중앙에서 지방관 파견(3) 군사제도 : 의흥삼군부를 설치하여 중추원의 무력화와 도평의사사의 군무기능 수행(4) 1차·2차 왕자의 난 : 표면적으로 왕위계승 분쟁이나 내면적으로 공신들간의 갈등1 1398년 무인정사-1차 왕자의 난 : 강씨 소생인 방석을 세자로 책봉하고 정도전 등으로 보필하게 하자, 이방원은 방석과 정도전을 제거하였다. 태조는 왕위를 정종에게 양위하였다.2 1400년-2차 왕자의 난 : 방간이 박포 등과 연합하여 방원을 제거하고자 도전하였으나 방원에게 패하여 축출되었다. 결과 정종으로부터 왕위를 물려받은 방원이 곧 3대 태종이다.2. 태종(1) 왕권강화 :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권세있는 신하는 공신이든 처남이든 가리지 않고 처단하였다.1 국왕중심 6조직계제의 관료제도를 정비도평의사사를 혁파하고, 의정부재상의 기능을 약화시킨 대신 6조를 정2품 아문으로 승격시켜 각 조에 속사를 두고 여러 관서를 속아문으로 배속하여 행정체계를 정비함으로써 의정부의 서무를 6조에 돌려 왕에게 바로 보고하도록 하여 왕이 주도하는 의정부 -6조-각사의 체제를 확립하였다. 그리고 언론기관인 사간원을 독립시켜 대신을 견제하게 하였다.2 국가재정과 국방을 강화사원의 토지를 몰수하여 전제개혁을 마무리짓고, 개인의 사병을 혁파하고, 노비도감이라는 임시관청을 통해 수십 만의 노비가 해방되고 사원에 소속된 약10만 명의 노비도 양인 혹은 공노비로 바뀌었다.(2) 호패법1 16세 이상의 모든 장남 : 신분에 따라 재료와 기재내용이 다름.ㄱ 2품 이상의 관리 : 관직과 성명을 기재ㄴ 노비 : 주인, 연령, 거주지, 얼굴빛, 신장, 수염의 유무까지도 기록하였다.2 3년마다 고쳐 작성 : 서울은 한성부, 지방은 관찰사가 관장3 목적ㄱ 근본 : 농민들의 토지 이탈을 방지하여 중앙집권의 강화를 위하여ㄴ 호구를 명백히 하여 장남의 수를 정확히 파악하고, 직업과 신분을 분명히 하여 유망 인이나 탈루자를 색출하여 군역과 요역의 수취기준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호패법 : 여말 공양왕 3년에 처음 실시된 후 조선시대에 들어와 태종 13년·세조5년·광해군 2년·인조 4년·숙종 원년 등 모두 5차에 걸쳐 정비되었고 제도상으로는 고종 때까지도 계속되었다. 이 제도는 실시과정에서 권세가·토호의 반발로 늘 충실치 못하였지만 조선시대의 일반 농민에 대한 통제에 있어서는 커다란 성과를 거두었다.3. 세종(모범적 유교정치의 구현 - 왕권과 신권의 조화): 청백리 정승으로 유관·맹사성·황희·허조 - 세종18년에 의정부사서제로 환원되었으나 인사·군사·형옥문제는 육조에서 직계할 수 있어 의정부사서제와 육조직계제의 절충적인 체제가 되었으며, 의정부의 권한도 상당히 회복되어 세종 후반에 의정부사서제 하에서 왕권과 신권이 조화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유교정치를 할 수 있는 기반이 확보되었고 왕권도 안정되었기 때문이었다.
    사회과학| 2006.10.18| 5페이지| 3,000원| 조회(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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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정개혁에 관하여
    Ⅰ. 서론발전 도상국의 경우나 행정이 사회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사회를 이끌어 나가야만 하는 발전행정의 상황에서는 행정의 변동대응능력뿐만 아니라 변동유발능력이 요구된다. 이문제는 변동의 관리개념과 관계가 있으며 하나는 변동의 소극적 관리이고, 다른 하나는 변동의 적극적 관리이다. 변동의 관리개념은 이미 발생했거나 앞으로 일어나리라 예기되는 변동에 대한 단순한 반작용을 의미한다. 반면에 변동의 적극적 관리는 변동을 발전적인 목표로 이용하고자 하는 행동양식이다. 현대사회에서 발생하는 변동의 특성과 관련하여 후자는 특히 중요하다고 할 것이다.대의 변동은 그 발생에 있어서 자생적인 것과 계획된 것과의 이중적인 근거를 지니고 있다. 현대사회에서는 계획이나 의식적인 쇄신 또는 발전사업에 의해 일어나는 변동의 비중이 증대되고 있다. 이러한 계획적인 변동은 하나의 정책형태를 취함에 따라 그 효과의 범위가 광범위하며 누적적으로 되어진다.지난 20여년 동안 고도성장과 발전행정의 자세를 견지해온 우리 나라는 이제 새로운 환경의 변화를 맞아 또다른 변동관리능력이 요구되었다. 그러나 아직 행정가들의 노력이 눈에 띄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변화하는 사회현상과 가치관을 인지하지 못하고, 식민지적 유산 및 근대화 과정에서의 고도경제성장을 통해 선진국을 따라 잡으려는 성장 지향적인 편협한 발전전략으로 인해 사회내 제 분야에서 심각한 문제점을 노정하고 있는 실정이다.30여년 만에 문민정부가 출범함에 따라 과거의 왜곡된 행정제도와 조직 그리고 행정관행과 행태에 대한 대대적인 개편을 추진하였다. 신정부의 행정개혁은 단순한 제도정비의 차원이 아니라 과거 개발 경제하에서 구조화된 사회의 각종 역기능과 부조리에 대한 개혁이란 점에서 매우 광범위하고 근본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그러므로, 앞으로 한국이 처할 사회적 환경 및 행정환경의 변화에 대해서 서술함과 동시에 이러한 변화를 불특정 대다수인 일반국민들을 위한 방향으로 이끌 행정의 자기혁신, 즉 행정개혁에 대해서 살펴 봐야할 필요가 있다.Ⅱ. 행정개혁의 전 기능수행이 가능하도록 조치하는 것이다.중앙과 지방의 기능배분 기준은 좀더 구체적으로 제시하였다. 기획 예산처(당시 기획예산위원회)는 다음의 기준에 해당하는 것은 모두 지방으로 이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았다.● 업무의 성격상 주민참여 및 신속한 대응이 요구되는 기능● 업무의 상당부분이 이미 지자체를 통하여 수행되고 있는 기능● 기능의 일부분을 이양하고, 나머지를 중앙정부가 수행하고 있는 기능 이양 잔여 업무● 지자체의 자치권과 자율성(재정, 인사, 조직 등)을 크게 제약하고 있는 기능● 지자체가 이양을 적극 요구하고 있는 기능● 업무의 성격상 현지성과 종합성이 요구되는 기능● 단순집행적 성격의 사무로서 지방자치단체가 수행하는 것이 지역주민들에게 더욱 편리한 기능● 다수의 자치단체가 이양을 희망하는 기능부처별 기능이양 사항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 진단팀은 ‘기능이양의 원칙과 기준’에 따라서 진단과정에서 다수의 기능이양 대상을 검토했다. 지방이양대상 기능선정과 관련해서는 관계부처 등과 수 차례의 협의과정을 거쳤는데, 최종적으로는 아래의 표와 같이 7개 부처 23개 기능을 이양대상으로 확정하였다. 한편 7개 부처 23개 기능 외에도 5개 부처 9개 기능에 대해서도 지방으로 이양이 가능하다고 보고, 이에 대해서는 추가적으로 검토하고자 하였다. 이 추가적 검토대상 기능은 다음과 같다.1 행정자치부의 지방고시 관리기능2 교육부의 교과용 도서 저작권에 대한 보상금 산정 및 지급기능3 산림청의 사유림 협업 경영사업4 산림청의 산촌 종합개발사업5 산업자원부의 수출자유지역관리소기능6 산업자원부의 국가산업단지 관리기능7 산업자원부의 폐광지역 개발지원기능8 정보통신부의 정보통신 공사업자 및 별정통신사업자 관리기능9 정보통신부의 지역정보화사업 지원기능(4) 향후 추진계획중앙기능의 지방이양은 현재 대통령소속으로 설치되어 있는 지방이양추진위원회를 통해 본격적으로 추진될 것이다. 이 위원회는 대통령소속의 심의·의결기구로서 그 실질적·상징적 의미가 크다. 현재 지방이양추진위원회는 99년 전략적 제휴를 성사하였다. 또한 한국중공업의 자회사인 세안기술, 한국전력공사의 자회사인 세일에이직, 한국가스공사의 자회사인 청열 역시 민간에 경쟁입찰방식으로 매각이 완료되었다. 대한송유관의 자회사인 한국송유관공사는 본사에 통합되었으며, 지앤지텔레콤은 540억원에 경쟁입찰방식으로 매각되었다.대규모 공기업의 민영화 및 지분 매각은 차질없이 진행중이며 한국중공업, 포항제철, 담배인삼공사 등 민영화 대상 공기업의 향후 민영화 추진 일정은 다음과 같다.[향후공기업 민영화 추진일정]대 상 / 추 진 일 정한 국 통 신2000 : 정부지분 33.4%를 제외한 나머지 지분 (12∼13%) 매각담배인삼공사2000 : 동일인 소유한도(7%) 및 제조독점 폐지, 정부 및 은행소유 지분 매각 추진포 항 제 철2000 : 산은잔여지분 (12.84%) 매각 완료한 국 전 력2000 : 안양·부천 열병합발전소 매각 및 발전 자회사 1개 매각 추진한국중공업2000 : 한전·산은의 보유지분 매각가 스 공 사2000 : 1,300억원 규모의 증자 추진2002 하반기 : 민영화 완료종 합 화 학2000 : 종합화학법 폐지 및 처리지역난방공사2000 : 안양·부천지사 매각2001 : 정부 및 한전지분 매각대한송유관공사2000.6 : 민영화 완료(5) 공기업 민영화의 향후 계획과 전망이번 공기업 민영화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과거보다 실효성 있게 추진되고 있다. 우선 공기업 민영화시 공정성과 객관성이 확보될 수 있도록 원칙적으로 공개적인 방식으로 내외국인에게 동등한 참여 기회를 보장하고 있다. 또한 공기업의 매각시기 및 물량을 적절히 조절하고 매각대금을 극대화하여 국내증시에의 영향을 최소화하도록 조치하고 있다. 게다가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외자유치도 적극 추진하여 외화확보와 함께 선진경영기법도 유입될 수 있도록 하였다.정부는 공기업 민영화가 성공적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기획예산처 장관을 위원장으로 하고 공기업 주무부처 차관,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 산업은행 부총재 및 민간위원 2인을 위원으로 하는행하기 위해 정책자문가인 Morley Winograd를 채용했으며 명칭도 NPRG(National Partnership for Reinventing Government)로 변경하여 운영하고 있다. 제도적 정비도 뒤따라 1993년의 정부성과와 결과에 관한 법 부터 1996년의 공무원제일괄개혁법 까지 제정하여 성과관리체계에 맞게 인적관리를 가능하도록 제도적 정비를 시도하였다.(2) 구성요소널리 알려져 있는 대로 고어(Gore)는 기업가적 정부를 다음 네 가지 원리를 추구하는 정부로 정의하고 있다. 즉, 고객을 최상위에 두고, 레드테이프(red tape)를 제거하며, 결과를 달성하기 위해서 공무원에게 권한을 부여하고, 적은 돈으로 보다 많은 것을 생산하도록 불필요한 것을 감축하는 것이다. 고객만족은 기존의 투입물에 대한 통제에서 벗어나 달성하고자 하는 결과 중심으로 전략을 바꾸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는 그 동안 공급자 편의위주의 행정을 시정한다는 의미가 있으며, 레드테이프의 제거는 불필요하게 공무원과 시민을 속박하는 각종 규정과 제도를 정비하는 의미가 있다. 또 자율성의 부여는 통제위주의 조직관리에서 공무원의 능력을 제고하는 근로생활의 질을 향상시켜 수월성이 있는 행정을 의미하며 능률성 제고를 위한 부처 통폐합과 수익사업을 추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또 다른 시각에서 기업가적 정부의 개념을 두 가지 측면으로 볼 수 있는데, 첫째는 효과성 및 효율성 제고이다. 현재의 경직적, 다단계적 정부가 비효율적이라면, 기업가적 정부는 고객이 보다 만족하는 공공서비스를 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생산함으로써 납세자의 지출 단위당 효과를 향상시키는 것이다. 둘째는 자발성과 지속성이다. 기업가적 정부에서 경영혁신은 외부적 압력이 없이도 자발적으로 생기는 것이며, 일과성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다. 기업가적 정부로 전환한다는 것은 외부의 압력이 없이도 지속적으로 개혁하고 끊임없이 품질을 향상시키는 자기혁신체제, 즉 체제 내적인 향상성을 갖는 정부를 창조하는 것을 의미한축하고자 하는 것이다.예컨대, 거리청소사업의 경우에 투입중심의 예산제도하에서는 청소부 인건비, 청소차량 구입비 및 유지비가 예산대로 집행되었는가에 관심을 가지나, 성과주의예산제도하에서는 거리청소사업의 성과목표인 "거리환경이 얼마나 깨끗해졌는가"를 평가(거리의 청결도, 주민들의 만족도 등)하여 다음년도 재원배분에 반영한다.▶ 기대효과기획예산처가 도입을 추진중인 성과주의예산제도는 미국의 정부성과관리법(GPRA)을 많이 참조하고 있다. 정부기관은 예산요구시 성과계획서를, 회계연도 결산시점에 성과보고서를 작성하여야 한다. 성과계획서와 성과보고서는 일반국민에 공개되며, 성과결과는 예산편성의 분석지표로 활용되어 다음 회계연도 예산에 반영된다.이러한 성과주의예산제도의 도입으로 정부지출의 효율성 제고 및 공무원들의 일하는 행태 및 의식의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공무원들이 목표의식을 명확히 가지게 되고, 성과계획서·성과보고서의 공개로 국민들의 행정 신뢰도가 제고될 것이며, 기존에 설정된 법령과 규칙에 대한 순응을 중시하는 소극적 행정에서 성과에 대한 책임을 중시하는 적극적 행정으로 변화하게 될 것이다.또한, 예산수립 및 사후평가과정에서도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정부기관은 성과를 고려하여 예산을 합리적으로 요구하고, 책임감을 가지고 예산을 집행하며, 예산낭비를 줄이는 노력을 경주할 것이다. 한편, 예산당국은 각 기관의 성과목표 및 객관적 평가체계를 고려하여 예산을 편성·심의하고, 성과결과를 다음년도 예산편성과 연계시킬 것이다.▶ 향후 계획기획예산처는 시범사업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으로부터 개선안을 도출하고, 성과보고서 체계 및 성과결과의 객관적 평가체계를 확립하며, 감사·회계제도 등 관련제도의 개선을 적극 추진하여 성과주의예산 제도를 빠른 시일내에 정착시켜 나갈 예정이다.4) 환류적 측면 : 심사분석기능의 강화와 효과성감사 강화·심사분석기능의 강화 : 각 부처사업계획에 대한 성과 Monitoring 즉, 심사분석기능의 내 실화·정책감사나 효과성 감사의 .
    사회과학| 2006.10.18| 36페이지| 7,000원| 조회(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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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방행정]지방재정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Ⅰ 서론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특징짓는 가장 중요한 현상중의 하나가 바로 세계화 일 것이다. 교통의 발달과 급속한 정보화 그리고 자본이동에 대한 각종 제약의 철폐에 따라 경제의 세계화가 촉진되고 있으며, 국가간 급속한 자본이동과 다국적 기업을 중심으로 한 생산의 국제화가 경제의 세계화를 규정짓는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이러한 국가간 경제의 통합은 세계가 정치적으로는 여전히 국민국가 단위로 조직화 되어 있지만,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국가경계의 의미가 점점 약화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국민국가의 정치적 경계와 경제적 경계가 더 이상 일치 하지 않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그런데 세계화에 따라 국민국가의 정치적 경계와 경제적 경계가 일치하지 않을 뿐 아니라 모든 수준의 정부에서 그 경계를 정의하고 유지하기 어려운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자본의 이동성 증가로 특징 지울 수 있는 세계화 시대에는 중앙정부의 매개자적 역할이 축소될 가능성 또한 존재한다. 즉, 정부­기업관계에 있어서도 지방정부와 기업간의 관계가 더욱 중요해질 수 있으며, 한 국가의 지방정부와 다른 국가의 지방정부가 각기 중앙정부의 매개자적 역할 없이 상호교류와 경쟁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또한 동일 국가 내 지방정부 상호간에도 자본유치 등을 둘러싼 경쟁이 첨예하게될 가능성은 대단히 높다. 다시 말해서, 세계화가 진전되면 될수록 국민국가의 정치적 경계 내에 존재한다는 이유로 유지되어 왔던 지방정부간 동질성의 의미는 퇴색되는 반면, 국제적으로 그리고 동시에 국내적으로 지방정부가 단위가 되어 경쟁이 심화될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세계화가 지방화로 연결될 수 있는 이유일 것이다.이에 따라 이 글에서는 지방재정의 개념과 세계화와 관련하여 검토한 후, 세계화에 대한 재정적인 측면에서의 향상, 중앙과 지방간 재정관계, 그리고 지방정부 재무행정의 현황을 중심으로 구체적인 개혁 방향을 중심으로 구체적인 개혁방향을 논의하고자 한다.Ⅱ 본론1. 지방재정의 개념지방재정은 새삼 강조할 필요조차 없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 지방재정구조는 자치라는 새 술을 담글 만한 그릇이 되지 못한다. 지난 30여 년동안 중앙집권체제하에서 중앙정부에 의한 지방재정 통제가 철저히 하였기 때문에 그 구조를 해체한 것은 지방자치제를 실시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과제라고 할 수 있다.경제개발 을 시작한 지난 1961년부터 자본축적을 효율적으로 실시하는 국가조직기구로서 중앙집권식 운영기제가 유지되었고, 1972년 유신체제라는 신중앙집권체제를 구축한 이후에는 중앙에 의한 하향적 구조가 사회전반에 걸쳐 강고한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이러한 구조는 지방재정제도에도 관철되어 경제개발이 계획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한 1960년대 초부터 중앙정부가 기관위임 등의 행정제도와 국고보조금이나 지방교부세와 같은 재정제도, 그리고 인사관리 등의 수단을 통하여 집권적인 중앙과 지방의 관계를 형성하였다.이와 같은 중앙에 의한 지방재정의 통제로 한국의 지방재정은 현대재정의 특징을 부분적으로 닮아가면서도 그 본질상 매우 다른 의미를 갖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 해결의 방법도 교과서에서 이야기하는 해결방식보다는 정치적·현실적 맥락에서 찾지 않을 수 없다.1)우리나라 지방재정의 특징그러면 현재 선진자본주의의 지방재정 특징이 한국의 지방재정에서는 어떻게 나타나는가? 우리나라는 초기부터 중앙집중형 재정구조를 갖추었으며, 지방재정의 확대개편은 최근에 이우러지고 있다. 현대지방재정의 특징 중앙집중형 재정구조는 일찍부터 정착되었고 재정조세제도도 초기부터 시행되었으며, 최근 중앙정부의 재정부담이 증가하면서 중앙의 지방지원이 감소하고 있다. 반면 지방재정 운용방식의 변화는 미미한 편이며, 지방세의 확대개편은 80년대 중반이후 이루어지면서 90년대 초반까지 크게 증가하였다가 최근 정체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2)중앙집중형 재정구조의 조기 정착지방재정 팽창의 측면만을 본다면 우리나라 지방재정 규모도 1950년대 이후 선진국의 지방재정 확대현상과 유사한 추세를 보이고 있다. 그런데 선진국의 이와 같은 공공재만 아니라 사회 복지적 성격의 지방공공재 공급을 확대하는 추세임을 보여 주며 이는 지방정부의 재정 기능이 사회복지 기능 내지는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한 지역단위 소득재분배 기능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의미한다.4)지방세의 강화전체적으로 보면 지방세가 강화되는 추세인데 이러한 점은 국세의 강화 지방세 후퇴라는 선진국의 경험과 비교할 때 조금 다른 양상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초기부터 국세 중심의 조세체계를 구축하였고 최근 지방자치제 실시와 소득재분배 차원에서 지방재산세를 강화하면서 지방세 수입이 증가한 것으로 지방세 성격 자체가 선진국의 경우와 다르다고 한다.현재 지방세의 대표적인 세목인 재산세, 자동차세, 담배소비세, 등이 최근 부동산 경기의 안정, 담배소비억제 등으로 인하여 수입이 감소추세로 돌아설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법인세, 소득세, 부가가치세, 등 중요한 세목들이 전부 중앙의 수입으로 되기 때문에 사실상 지방차원에서 세수확보나 산업정책의 선택폭도 없다는 점도 문제라 할 것이다. 더욱이 향후 지방에 대한 중앙재정 부담의 이전이 본격화된다고 보면 국세, 지방세의 중장기적 구조변경이 불가피하다고 할 수 있다.5)선진국 지방재정과 다른 이유우리나라에서는 현대지방재정의 특징이 나타나고 있지만 그 의미는 서구와는 상당히 다르다.첫째 요인은 무엇보다도 정치적으로 한국의 지방 정부가 중앙정부로부터 실질적인 자율권을 획득하지 못하고 하부행정기관으로 운영되어 왔기 때문이다.둘째로 중앙정부가 소득재분배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뿐 아니라 지방정부도 필요한 생활환경의 재생산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셋째로 지방재정의 원칙과 그 방향성을 규제하는 것이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중앙의 정치관계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따라서 우리나라에서 지방자치제의 실시와 지방정부 위상의 제고는 겉으로는 선지자본주의 신보수주의적 재정정책과 유사한 점이 많지만 그보다 훨씬 심각한 지반경제의 중앙의존과 지역주민의 재생산 위기를 초래할 가능성을 안고 있다. 중앙정부의행서는 사회간접자본의 건설 등 유리한 투자환경을 조상할 필요가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지방정부가 일정한 재정력을 갖출 것이 요구된다. 물론 조세부담의 하향 균등화를 야기하는 세계화라는 환경속에서 재정력의 확충은 한계에 봉착할 수 밖에 없다. 그렇지만 독자적 재정력을 갖추지 못한 지방정부는 중앙정부의 지출대항자 역할에 머물 수밖에 없으며, 이는 지방정부의 재정적 자율성, 재정적 책임성 및 경쟁력을 심각하게 훼손하게 된다. 따라서 조세부담의 균등화라는 제약요건하에서의 재정력을 확충을 위한 방안의 탐색은 대단히 중요한 과제로서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그러나 지방정부 자율성의 확대와 지방정부의 독자적 재정력 확충은 세계화가 결과하는 지방정부간 수평적 불균형을 더욱 심화시키게 될 것이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 방법은 다름이 아니라 지방정부로 하여금 일정한 재정 자율성을 향유할 수 있게 하는 동시에 지역간 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게 하는 동시에 지역간 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는 중앙정부의 역할을 증대시키는 데서 찾아야 할 것이다. 즉, 중앙과 지방간의 재정적 관계의 재구조화야말로 세계화에 대응하는 지방재정의 개혁에 있어 핵심적인 과제로 떠오를 것이다. 그렇다면 중앙과 지방간 재정관계를 재구조화·제도화할 경우의 기본적인 원칙은 무엇인가? 이는 지방지방자치단체간 기능의 배분을 우선적으로 설정한 후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재원의 배분형태를 논의하는 것이다.왜냐하면 원칙적으로 재원의 배분은 기능의 배분을 기초로 한 상태에서만 논의될 수 있는 성질이기 때문이다.끝으로 조세부담의 하향 균등화를 야기하는 세계화라는 환경속에서 재정력의 확충은 한계에 봉착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재정력 확충에 대한 엄연한 제약이 존재하는 상태에서 지방정부의 서비스를 확충시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 방법은 바로 지방정부 재정운용의 효율화에서 찾을 수 밖에 없다. 우리나라에서 기존의 지방재정에 관한 논의는 대부분 지방세, 지방재정조세제도 등 지방정부의 수입을 증가시키는 방안에 집중좀더 성숙한다면 턴력세율의 적용, 법정 이외의 새로운 세목의 신설 등 지방정부의 과세권을 인정해 줄 필요가 있다.세외수입의 경우는 지방세에 비해 재원의 탄력서이 상당히 크다. 세외수입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지방공공서비스의 요율체계를 합리화하고 최근 감소하고 있는 재산매각 수입이 급격하게 감소하지 않도록 유혹, 은닉, 사장된 지방자치단체 재산을 찾아내어 재산수입원으로 확충해야한다. 지방공기업의 활성화도 재정수입의 측면만이 아니라 지방서비스의 충실화라는 측면에서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또한 자체재원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으로 지방재정의 운영의 효율성을 기하고 낭비 지출을 최대한 억제하여 재정지출 측면에서 재원을 확보하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국가재원의 경우는 지방정부 자체가 노력하는 데는 한계가 있으며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국가와 지방간의 역할분담 논의 과정에서 제도적 개선책을 도출하여야 한다. 국가재원의 지방이양의 원칙은 중앙에 의해 지방재정이 과도하게 통제되는 것을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전체 의존금 중에서 상대적으로 자율성이 큰 교부세의 비중을 확대해야 한다. 지방양여금의 경우는 해당 세목을 확대하고 투자대사을 넓혀야 한다. 그리고 환경투자 등 지방정부가 부담하기 어려운 대규모 사업에는 국가보조금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또한 지방채 발행 등에 대한 중앙정부의 제약도 가능한 한 최소로 줄어야 할 것이다.민자유치는 재정관계법을 개정하여 적극적으로 유치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나 신중한 정책결정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지방재정을 시장경제와 기업에 맡기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민자유치는 사업대상을 선정하는 것도 어려울 뿐 아니라 공동출자시 공익성의 문제가 두드러질 것이다. 지방정부가 공익성을 외면하고 수익사업에만 집중한다는 비판을 받을 소지가 있는 것이다.(3) 자율적 지방재정 운영의 확립그런데 재원의 확보가 빈약한 지방재정이 초미의 관심사로 대두되고 있지만 단순히 지방재원을 확대하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지방재정의 운영이 중앙재정다.
    사회과학| 2006.10.18| 7페이지| 7,000원| 조회(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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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학]생명의 기원
    생명의 기원자연 발생설고대에는 생물이 최초에 흙이나 먼지, 또는 공기 중의 물질로부터 저절로 생겨났다고 보는 자연 발생설이 지배적이다. 그 당시는 `신이 생물을 만들어 냈다`는 종교적인 생각이 널리 퍼져 있었고 생명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으며 과학이라고 할 만한 학문이 없었으므로 그것이 무리는 아니었다.(아리스토텔레스)그는 대기 중에 활력이라는 것이 있어서 이것이 어떤 물체에 불으면 생물이 생겨난다고 보았다. 그래서 물새가 있어야 할 개천가에 신이 그 주변의 물체에 활력을 불어넣으면 물새가 생기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또, 진흙이 있는 곳에 신이 활력을 불어넣으면 생쥐가 생겨난다고 생각하였다. 그 당시의 이러한 생각들은 몇 백년 이상 계속 지시되어 있다.(헬몬트)헬몬트는 자기가 입다가 벗어 놓은 더러운 셔츠에 밀알을 함께 놓아두었더니 얼마 후에 생쥐가 생긴 것을 우연히 발견하였다. 그는 다시 실험을 하고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더러운 셔츠에 밀을 함께 넣고 21일이 되니까 생쥐가 생기더라.`이것은 셔츠 속의 어떤 활력이 밀알을 쥐로 변화시키는 데 그 시간이 21일 걸린다고 생각하였다. 물론 오늘날의 생각으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니담)레디라는 사람이 주장한 생물 속생설을 반박한 사람이다.그는 닭고기를 끓인 국물, 채소를 끓인 국물을 시험관에 넣어서 마개를 막아 놓았는데,3~4일 후 곰팡이 등의 미생물이 생긴 것을 보았다. 그것을 보고 대기 중의 활력이 생명체를 불어넣어 생긴 것이라고 생각했다.생물 속생설이 생물 속생설은 생물은 생물로부터 생긴다고 보는 학설이다. 생물이 공기 중이나 먼지속에서 갑자기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생명체가 있어서 그것으로부터 생겨난다고 보는 생각이다.(레디)이탈리아 사람으로 고기덩어리를 비커에 넣고 한쪽에는 철망을 덮고 다른 한쪽에는 아무것도 덮지 않은 채 놓아두었더니 덮지 않은 쪽은 비커 속에 구더기가 생겼고 덮은 쪽은 구더기가 비커 위의 철망에 생긴 것을 보았다.그는 양쪽 모두 공기가 통하는 데도 한쪽은 철망 위에 구더기가 생기고 다른 한쪽은 비커 속에 구더기가 생긴 것은 파리가 자유로이 통과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하였다.만약 자연 발생설이 옳다면 양쪽 비커 속에 모두 구더기가 생겨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생명은 자연 상태에서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어미가 있어야 태어날 수 있다고 하는 생물 속생설이 자연 발생설에 반기를 들기 시작했다.사실 그 당시로는 신이 생명체를 만들었다고 하는 종교적인 측면에서의 주장에 대한 반기를 든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중세에는 과학도 종교속에서 싹이 트고 종교속에서만 연구가 가능하였기 때문이다.(스팔란차니)역사적으로 보면 레디가 자연 발생설을 부정했을 때 레벤후크가 현미경으로 빗방울을 관찰하다가 그 속에 작은 생물이 있는 것을 보고 다시 레디의 학설은 반박하였다.왜냐하면 빗물은 하늘에서 떨어진 깨끗한 물인데도 불구하고 그 속에 어떤 생물이 산다는 것은 틀림없이 활력을 불어넣음으로써 저절로 생긴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그리하여 레디가 입장이 난처해 있는데 다시 영국의 니담이 실험으로 자연 발생설을 주장하니까 레디는 입장이 더 한층 난처하게 되었다.레디는 모처럼 생물 속생설을 듣고 나왔으나 사방에서 공격이 뒤따랐다.이때 같은 이탈리아 사람인 스팔란차니는 레디의 설을 뒷받침하는 실험을 하고 다시 자연 발생설을 부정하게 되었다.스팔란차니는 니담이 실시했던 것과 똑같이 끓인 닭고기 국물과 채소 국물을 19개의 실험관에 넣고 열을 가한 다음 마개를 막아 두었으나 며칠이 지나도 미생물이 생기지 않았다.스팔란차니는 니담의 실험에서 시험관에 있는 국물을 덜 끓였기 때문에 미생물이 생긴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한 결점을 없애기 위하여 스팔란차니는 시험관을 푹 삶았다.그러나 니담은 스플란차니가 지나치게 삶았기 때문에 활력이 파괴되었을 것이라고 하였다.(파스퇴르)활력이 파괴되면 생물이 생길 수 없다고 한 니담의 설에 대해 반박실험을 하기 위하여 파스퇴르는 목이 가늘고 긴 플라스크를 만들었다.우선 니담이 했던 것과 가튼 영양액을 플라스크에 넣고 플라스크의 목을 S자형으로 구부린 다음 충분히 끓였다. 이 용액을 서서히 식혀서 놓아두면 몇 달이 지나도 부패하지 않고 그대로 있게 된다. 이것은 대기 중에 활력이 있다고 주장한 나담의 생각을 완전히 부정하였다. 즉 끓이다가 식히면 대기 중의 공기 일부가 생물과 함께 들어오지만 끓는 액체 때문에 그 생물은 모두 죽어 버리게 된다.그러므로 공기의 출입이 정지되었을 때는 플라스크의 구부러진 곳까지 생물이 존재하게 되지만 플라스크 내부에는 생물이 전혀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플라스크의 구부러진 목을 깨뜨렸을 때에는 플라스크의 내부에도 다시 생물이 번식한다.이것은 대기 중에 보이지는 않지만 많은 생물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것이 좋은 환경을 만나면 살아가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였다. 그리하여 당시 공기중에 활력이 존재한다고 하던 설이 완전히 부정되었다.이와같이 사실로 미루어 보아 모든 생명은 조상으로부터 오는 것이지 저절로 생겨나는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 즉 생물은 생물이 있어야만 번식할 수 있다고 보는 `생명은 생명으로부터`라는 설이 대두되게 되었다.그러면 최초의 생명체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이러한 의문을 풀기 위하여 많은 논란이 있었다.오늘날의 생명의 기원론생명의 기원이 과학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에 들어와서 부터이다 .현재 과학은 지구가 생겨나서 진화하는 동안에 무생물에서 생명이 생겨난 것임에 틀림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지금부터 약 45억년 전쯤 생겨난 지 얼마 안 되는 원시 지구의 표면에는 겨우 단단한 지각이 생기고 넓은 바다가 퍼져 있었다.지구는 그 당시 지금보다 바다가 더 널리 퍼져 있었다.그리고 이 원시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대기는 메탄·암모니아·수소·수증기 등이 주였으며 이 이산화탄소는 섞여 있었지만 산소는 거의 없었다.이 대기에 태양에서 쏟아지는 강한 자외선, 번개, 화산 폭발, 열 등이 가해져서 활발해진 대기의 분자는 서로 화학반응을 일으켜서 결합되었다.그 결과 생명이 탄생하는 데 필요한 여러 가지 유기물이 마련된 것이라고 본다.대기 중에서 생긴 유기물은 빗물과 함께 지표면으로 내려와 바다로 흘러 들어가 차차 쌓이게 되었다. 그리하여 아미노산과 같이 간단한 것으로부터 복잡한 유기물로 점차 변해 갔다.단백질·핵질·다당류·ATP등 생명에 없어서는 안 될 복잡한 유기물이 얕은 바다 속의 찰흙의 광물이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사실은 영국의 버널이 실시한 실험에서 확실해졌다. 그 무렵에는 아직 생물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었다. 산소도 거의 없었으므로 바다에 쌓인 복잡한 유기물은 썩거나 산화되는 일이 거의 없었을 것이다.이처럼 많이 녹아 든 원시의 바다를 수프의 바다라고 하는데 거기에서 생명이 생겨난 것이다. 이것이 지금으로부터 약 20억년전의 일이라 생각된다.(코아세르베이트의 진화)생명의 기원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소련의 오파린이다.그는 1936년에 이라는 책을 써서 유명해졌다. 오파린은 그 책 속에서 처음으로 생명의 기원에 대하여 학문적으로 연구했고 또 과학적인 생각을 가졌다.오파린은 처음에 유기물이 생길 때는 암모니아·포름알데히드·청산 등의 물질이 현재의 생명에는 해로운 것이지만 화학적으로 활발한 물질이기 때문에 생명의 재료가 되는 복잡한 유기물을 만드는 근원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하였다.오파린은 이들 유기물이 가득히 녹은 수프의 바다에 기름 방울과 같은 코아세르베이트가 수없이 생겨 이것이 차차 진화하여 생명이 탄생했다고 생각하였다.그는 코아세르베이트가 모이고 분열하고 바닷물속의 유기물을 삼키고 뱉고 하는 사이에 원시적인 생명이라 할 수 있는 원시 세포가 생겼다고 설명하였다.
    인문/어학| 2006.10.18| 4페이지| 3,000원| 조회(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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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정학]미국행정학의 발달
    R E P O R T제목 : 미국행정학의 발달과 목 명 : 교양행정학학 부 : 법정학부학 번 : 99023156이 름 : 이 재 원제 출 일 자 : 99.06.18교 수 명 : 이현수 교수님1. 미국행정학의 성립배경1) 사상적 배경 : 미국의 행정학은 연방정부의 초대 재무장관이었던 해밀턴의 행정철학과 제3대 대통령 제퍼슨 및 제7대 대통령 잭슨의 민주행정 사상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Richard J. Stillman Ⅱ는 미국행정학의 사상적 원형을 해밀턴(Alexander Hamilton)적 능률주의와 제퍼슨(Thomas Jefferson)적 최소행정론, 잭슨(Andrew Jackson)적 행정민주주의론(공직의 경질제: rotation in office), 매디슨(James Madison)의 다원적 견해와 균형의 원리 등으로 요약하고 있다. 미국의 행정학은 잭슨적 엽관주의(spoils system)의 폐해가 극도에 달한 상태에서 사상적으로는 해밀턴식의 행정능률주의를 지향하면서 출현하였다.2) 정부기능의 확대·강화 : 19세기 후반에 미국의 산업혁명이 급격히 진행되면서 여기에 대응하여 정부행정도 크게 확대·강화되었다. 이에 비대해지고 복잡해진 행정의 효과적 운영을 위한 학문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3) 행정개혁운동 : 미국의 공무원 제도였던 엽관주의의 부패와 비능률이 극심해지자 19세기 후반에는 공무원제도 개혁운동(Civil Service Reform Movement)이 일어나 1883년에는 실적주의(merit system)공무원 제도의 도입을 내용으로 하는 Pendleton법이 제정되기에 이른다. 한편 뉴욕 시정조사연구소를 필두로 많은 수의 연구소들이 설립되었다. 당시 미국 행정에서는 엽관제 공무원과 실적제 공무원이 공존하던 상황에서 실적제 공무원들을 중심으로 공무원노동조합 결성 움직임이 활발하게 나타났다. 공무원단체들은 노조운동을 통해 자신들의 불이익을 시정해 보려는 노력들이 좌절하게 되자, 엽관제의 한직주의적 무능성과 부패, 비능률을 공격하는 방법으로 시정주의는 경이적인 발전을 거듭하여 독점자본주의를 성립시켰으며, 이와 함께 여러 가지 부작용을 초래하였다. 이러한 부작용으로 행정기능의 확대·강화 현상이 불가피하게 나타났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행정국가로 전환되었다. 행정기능의 확대화 경향은 필연적으로 행정에 대한 실천적 및 이론적 관심을 높였으며 행정학의 탄생과 발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2 과학적 관리론의 영향 : 1880년대 테일러에 의하여 추진되어 사기업에서 큰 성과를 거두었던 과학적 관리론은 행정학의 성립에 큰 영향을 주었다. 과학적 관리론은 행정을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비권력적 현상으로 이해하고 행정관리의 궁극적인 가치는 능률에 있다고 파악하는 능률주의적·기술적 행정학을 발전시키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행정능률의 영향을 촉진시키기 위한 행정개혁운동과 행정조사운동을 자극하였다.3 정부개혁운동과 행정조사운동의 전개 : 19세기 후반 미국은 엽관주의의 폐해로 인하여 격심한 부패와 비능률에 시달렸다. 정부행정의 민주화를 강조한던 잭슨식 민주주의인 엽관주의가 도리어 민주주의적 정부의 존속을 위태롭게 한 것이다. 이러한 사태를 개선하기 위하여 뜻있는 시민들 사이에 정부개혁운동이 일어났으며, 이 운동은 행정학의 성립과 발전을 촉진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정부개혁운동은 1870년대부터 1890년대에 걸쳐 진행되었으며, 공무원제도개혁운동(Civil Service Reform Movement), 시정개혁(Municipal Reform) 및 선거제도개혁(Ballot Reform)을 주요내용으로 하였다. 공무원제도 개혁운동은 엽관주의를 극복하고 1883년 팬들튼 법(Pendleton Act)에 의해 실적주의 공무원제도를 확립시켰다. 시정개혁은 1870년대부터 1900년 사이에 진행되었으며, 1894년에 전국시도연맹(National Municipal League)을 결성하였다. 선거제도개혁은 타락선거를 지양하고 현대적 민주선거를 실시하도록 하였다.한편 행정개혁운동과 과학적 관리운동의 결합이라고 할 수 있는 행정조에 관심을 둔다. 최초의 헌법제정자들은 사람을 본성적으로 타락하기 쉽다고 인식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견제와 균형이 헌법제정자의 주관심영역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두 번째 가정은 권력의 성격에 관심을 둔다. 상호 분화된 정부구조(연방주의뿐만이 아니라 견제와 균형)를 통해 권력을 가짐으로써 그 설계는 전제주의를 제한하려는 것이다.세 번째 가정은 공공기관을 둘러싼 개인과 집단의 참여와 갈 등을 예견했다. 미국대통령이었던 메디슨은 당파는 필요악이지만 그들을 통제 할 필요가 있다는 신념을 가졌다. 메디슨은 통제를 통해 당파간의 균형을 달성 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당파지배모델은 공권력의 토대로써 선거에 초점을 둔다.세 번째 유산은 19세기 개혁가에 의해 형성되었다. 기술 혁명이 가속화 됨으로써 급속한 도시화와 산업화에 따라 개혁가들은 일반적으로 미국사회, 특히 미국정부가 근본적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개혁가들의 신념은 미국 행정학 발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고 현재 미국사회의 문화적 신념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또한 과학은 진보적 개혁사상의 초석을 이루었다. 개혁가들은 과학이 현재의 공공문제를 해결하고 도덕을 깨우치는 것임을 확신했다. 나아가 전문가에게 권한을 부여 할 수 있는 정부조직을 만드는 것이 개혁가들의 또 다른 신념이었다. 일반적으로 대학교육을 통하여 적절한 과학적 지식 및 전문지식을 습득할 수 있다.과학의 개념은 보다 정확한 의미로 이야기하면 기술 을 의미한다. 이러한 신념은 계몽주의철학으로 나타났다. 과학적 합리성은 바람직 할 뿐만 아니라 가용성 측면에서 현대 도시 중심적 기술시대에는 매우 의미 있는 것이었다. 대표자에 의해 공무원을 임명 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됨으로써 관리자는 모든 행정력을 수행 할 수 있고, 이 임명기관은 그들의 전문가적 조언자가 될 것이다. 이러한 규정은 헌법이 제정된 이래 미국의 정치, 행정체제에서 유일한 새로운 조직으로서의 위원회­관리자형 을 만들었다.많은 개혁가들은 정치와 행정이 분리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었으며을 극복 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논문은 과학에 토대를 둔 비정치적 미국행정학의 논조를 전개했다. 그는 당시의 행정이나 행정힉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보다는 이후 행정학이론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2) 1890년대 : 계속되는 서막1890년대는 행정학의 학문적 발전이 미약할 뿐만 아니라, 미국내의 사상과 문화의 발전에 비관적으로 평가되어진다. 국가행정조직은 항상 공공서비스의 성격과 기능에 의하여 설계되진 않았다. 또한 이때부터 공공행정학 분야에 있어서 비교행정에 관한 관심이 고조되기 시작하였다.3) 1900년대 : 실제적 변화1900-1910년 사이에는 행정학에 있어서 가시적인 움직임이 있었다. 이 당시에는 이론적 논쟁보다는 공공관리의 실제적 문제에 관심을 보였다. 모든 정책문제가 주에서 임명된 7명의 위원들에 의해서 결정되는 위원회-관리자모형 이 당시의 주관심분야였다. 정부의 모든 결정권한이 소규모 입법기구가 보유하게 되는 위원회-관리자모형은 지방수준에서 권력분산을 의미한다. 이 모형에 관한 연구는 Wilson의 논문보다 훨씬 강력하게 정치, 행정 이원론에 대한 확신을 가져다 주었다.4) 1910년대 : 지속적이고 강력한 개혁의 시기이 기간은 정치 행정개혁이 가속화된 시기이다. 도시관리자들은 1913년 국제도시관리협회, 1917년 국가도시연합과 같은 전문적 협회를 창설하였다. 1911년 Taylor의 과학적 관리 가 발표되면서 공공부문에 있어서 기술에 의한 관리가 강조되었다. 그리고 1911년 도시연구기구와 도시연구저널 이 발간되어 공공부문의 교육과 훈련에 지대한 관심이 집중되었다.5) 1920년대 : 공익모델의 성숙의 시기행정쇠신은 공익모델에 의해 정당화되었다. 그리고 지방개혁 운동의 결과로 행정전문인을 교육하기 위해 대학프로그램이 등장하게 되었으며 이는 개혁동기여부를 통한 관리자의 실제적 교육에 기여했다. 몇며 대학은 나중에 공공서비스 기관으로 불리는 기관과 같은 조직을 구성하게 되었다.4. 행정학의 성장기1) 1930년대 : 행정국가의 생성가속화됨에 따라 증가 되고 있다. 예를 들어, Barnard는 공공행정과 관리의 일반적 접근 사이에 교류의 행정역할에 대해 논문을 제시했다.2) 1940년대 : 행정국가의 숙고비록 과학적 관리와 정치행정이분법에 의한 행정학의 비판은 1930년대 말에 일반적인 현상이었지만, 1940년대는 숙고와 관심의 시기였다. 이 시기의 일반적인 방향은 1공공목적을 위해 행정전문가에서 계산기관까지의 변화2집행부의 장과 통제기관에서 각부나 관료제수준의 활동으로의 변화3일반적이고 추상적인 원칙에서 다양한 상화의 프로그램의 강화4효율성과 경제성의 감소 및 민주적 가치와 연결에 관한 관심에 두고 있다.(Appleby, Dimock, Waldo 등)5. 행정학의 도약기1) 1950년대 ; 자기인식의 출발점정치적 가치와 행정적 과정간의 상호독립에 관한 인식의 시기였다. 대학에서 행정과 정책에 관한 연구로 인하여 영역은 확대 되었다. 행정학은 범문학적이고 개방적인 정체성을 가지고 다원주의와 행태주의에 관심을 두었다. Lasswell은 행정과 정치를 넘어선 정책의 개념을 강조하면서 현대 행정학은 공익과 관련된 개인과 조직의 기능에 관한 모든 분야에 관심을 두었다. 그리고 Lindblom에 의해 점증주의 의사결정부문이 강조되었던 이 시기는 한마디로 행정학의 정체성의 위기와 새로운 자기인식의 시기이다.2) 1960년대 ; 정치학을 넘어서행정학의 폭발적인 성장과 발전의 시기였다. 행정학은 현실문제에 직면하여PPBS예산제도와 같은 체제분석과 정책분석 및 정책연구에 관심을 두었다. 또한 Riggs, Heady 등의 저명한 학자들로 구성된 비교행정연구회(CAG)를 중심으로 비교행정, 발전행정분야가 집중적으로 연구되었다. 이러한 노력으로 정치학과 행정학의 독립된 학문분야로 분리되면서 행정학이 독립학문으로서의 위치를 공고히 하게 되었다.6. 새로운 방향의 모색기1) 1970년대 ; 정체성의 확립과 새로운 커리큘럼이 시기는 베트남 전쟁의 패배, 워터게이트사건, 에너지 위기 등의 복잡다양한 사회문제에 행정이하였다.
    사회과학| 2006.10.18| 7페이지| 5,000원| 조회(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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