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란?문화란 주어진 자연적. 사회적. 역사적 환경에 적응하면서 형성된 것이다. 그런 점에서 문화는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한다고 볼 수 있으며, 민족 문화 역시 이 범주에서 벗어날 수 없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는 말이 있듯이, 우리의 정서는 오랜 기간을 통해 민족 문화의 전통 속에서 형성되어 온 것이다. 문화의 동질화 현상이 강화되는 세계화 시대에 우리 민족 문화의 유산을 오늘에 되살려 민족 문화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필요하다@전통문화란?전통문화는 전통을 새롭게 발견하는 것의 총체적 행위를 지칭하는 개념이어야 한다. 전통은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의식적이거나 무의식적으로 민족적 정체성을 담보로 삼으면서 무엇이라 미처 이름짓지 못한 새로운 발견의 실체이다. 그것은 민족적인 기질인 동시에 서양문화나 외래문화를 우리 것으로 비틀어서 새롭게 만드는 창조적 원천이기도 하다. 전통을 새롭게 발견하는 행위는 우리의 현재적 삶을 윤택하게 하는 것이면서 세계 속에서 우리 민족의 질적 우수성과 독자성을 확보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그래서 전통문화의 독자성이 추구되면 될 수록 세계인 누구나 그 독자성에 공감하고 그 독자성을 본받고자 하는 감동의 실상이기도 하다. 전통문화는 창조적 행위이면서 세계인에게 정서적 긴장을 야기하는 구체적 원동력이 되기도한다.@우리 민족 문화의 기초우리의 민족 문화는 농경 문화, 특히 벼농사를 주로 하는 수도작 문화를 기초로 하여 이루어졌다. 우리 민족은 일찍부터 벼농사를 짓기에 적합한 곳에 촌락을 이루어 자연 환경 조건을 잘 이용하면서 협동 생활을 영위해 왔다. 즉, 보나 관개사업과 같은 공동체 단위의 협동적인 노력을 전개하였다.제한된 농토에서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부지런히 일하였고, 두레, 울력, 품앗이 등의 공동 노동으로 농경에 필요한 노동력 문제를 해결하였다. 우리 민족성에서 볼 수 있는 근면, 협동, 상부 상조의 전통은 농경 생활을 통해 형성되었다.한편, 농경 생활을 통하여 형성된 협동과 상부 상조의 정신은 생활 전반에 확산되어, 여러 가지 종류의 계와 향약 등 훌륭한 전통을 이룩하는 바탕이 되었다. 우리의 전통적인 토속 신앙도 자연의 영향을 많이 받는 농경 문화를 기초로 하고 있다. 집 안에 터주와 성주를 모시어 추수가 끝난 뒤 햇곡식으로 음식을 장만하여 고사를 지냈고, 마을에서는 동제 또는 산신제를 지냈으며, 서낭신에게 농사의 풍요를 기원하였다. 그 밖에 쥐불놀이, 농악, 지신밟기, 줄다리기와 같은 전통적인 민속 놀이를 하였는데, 이 놀이도 농경 문화를 기초로 한 우리 민족 문화의 요소들이다.@전통적 민족 문화의 성장과 발전우리 민족은 농경 문화에 바탕을 둔 고유의 민족 문화를 계승 · 발전시켜 오는 한편, 주변의 다른 민족들로부터 새로운 문화 요소를 받아들여 우리의 환경과 조건에 맞도록 변화시켜 왔다.부족 국가 시대에는 민주와 한반도를 무대로 하여 살아 오면서 하늘과 자연물을 숭배했으며, 삼국이 정립된 후에 불교를 토속 신앙과 풍습에 융합시켜 독톡한 민족 문화를 성장시켰다. 예를 들면, 신라의 화랑도는 가정과 나라를 위하고, 벗과 더불어 자연에서 심신을 단련하는 고유의 사상과 불교 사상을 융합시킨 것이다.신라가 삼국을 통일함에 따라, 우리 민족은 한반도를 중심으로 하여 통일된 민족으로서 찬란한 불교 문화를 이룩하였다. 당시의 불교 문화는 예술 분야, 특히 사찰의 건축과 불상의 조각에 크게 반영되었다. 처음에는 당나라의 영향을 받아 웅대한 것이 특징이었으나, 시대가 바뀜에 따라 우리 민족 문화의 고유한 특성을 살려 섬세하고 정교한 솜씨를 보였다.불교 문화는 고려에 그대로 이어져 거란족, 여진족, 몽고족의 침입에 대한 호국 불교의 성격을 띠며, 8만 대장경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불교와 풍수 지리설은, 천신을 비롯하여 산천과 조상에 제사를 지내는 고유의 신앙과 함께, 일반 민중의 생활 원리로서 기능을 하였다. 그리고 이런 생활 원리들은 서로 배척하지 않고 융합된 상태를 유지하였는데, 많은 사찰에 세워진 산신각과 칠성각에서 그 예를 찾아볼 수 있다.조선 왕조는 처음부터 유교를 국가의 지도 이념으로 삼아 상류 계층에서는 유교의 예의 범절을 행동 규범으로 삼았다. 그러나 일반 민중 사이에서는 유교의 생활 원리뿐만 아니라, 불교와 무속도 여전히 성행하였다.이와 같이 성장 · 발전해 온 우리의 민족 문화는, 숱한 외적의 침입과 일제의 민족 문화 말살 정책을 극복하면서 끈기 있게 계승 · 발전되어 왔다. 이러한 현상은 광복 후에도 계속되어, 우리 민족은 서구 문화를 선택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주체성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민족예술의 발전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신앙과 사상은 예술의 전통에도 반영되었다. 고대와 중세 및 근대의 지배적인 신앙과 사상이 각각 다름에 따라 그 시대 예술의 상징적 의미가 다른 것은 당연하다.예컨대, 불교 사상이 지배하던 삼국 시대와 고려 시대에는 미술과 음악을 비롯한 예술 전반에 불교의 요소가 두드러지게 나타났지만, 유교 사상이 지배하던 조선 시대에는 문학 · 음악 · 회화에서부터 가옥 구조 · 일상 생활에 사용되는 도구와 용기에 이르기까지 유교적인 색채가 짙었다.특히, 일반 민중의 민속 예술은 고대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무속의 상징적인 의미를 많이 지녀 왔다. 예를 들어, 선사 시대와 고대에 만들어진 각종 의례 도구와 용기의 형태나 문양에서 우리는 무속적인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 또, 여러 종류의 굿을 통하여 우리는 무가에 나타난 음악, 신화와 설화 문학, 복식, 무용, 연극 등을 포함하는 종합 예술의 전통을 찾아볼 수 있다.그 밖에 농사, 민속 놀이 등을 할 때에 연주하는 농악, 민요, 판소리, 잡가, 산조 등의 민속 음악도 무악에서 갈라진 전통 음악이다. 특히, 건국 신화는 민족적인 긍지를 상징하며 민족 정신의 지표를 설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문화 유산으로 꼽을 수 있다. 또, 우리 조상은 수많은 민담을 통하여 해학과 웃음을 즐기고, 선한 사람을 찬양하고 악한 사람을 징계하며, 효자, 열녀를 칭송하는 등 민족적인 생활 감정을 표현해 왔다. 탈춤과 탈놀이를 포함한 가면극도 서민 생활 속에서 계승 · 발전되어 옴으로써 우리 민속의 중요한 부분을 이루고 있다. 마을 굿에서와 같이 농사가 잘 되도록 비는 의례적인 목적의 가면극이 있는가 하면, 양반들의 신분적인 특권이나 남성의 횡포에 대하여 저항을 표현하는 사회 비판적이고도 풍자적인 연극, 그리고 해학적인 성격을 곁들인 것도 많다.@민족문화계승의 유의점과 방안21세기 국제 사회에서 요구되는 세계화는 서구의 사고를 가지고 행동하는 사람을 키우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전통 문화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다른 나라의 문화에 대해 존중하고 공감하며, 지구촌에서 공존하는 자세를 갖추자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세계화의 기초는 우리 민족 문화를 계승하고 창조적으로 발전시키는 데 있다. 이를 위해 유의할 점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