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사학위논문현대회화에서의 '여백'에 관한 연구-장자의 사상과 데리다의 해체론을 중심으로A Study on 'margin' in Modern Painting-Mainly relating to Chuangtzu's Thought and Derrida's Deconstruction청주대학교 대학원회화학과 한국화 전공권 오 상2001년 1월 5일석사학위논문현대회화에서의 '여백'에 관한 연구-장자의 사상과 데리다의 해체론을 중심으로A Study on 'margin' in Modern Painting-Mainly relating to Chuangtzu's Thought and Derrida's Deconstruction지도교수 김 상 철청주대학교 대학원회화학과 한국화 전공권 오 상2001년 1월 5일현대회화에서의 '여백'에 관한 연구-장자의 사상과 데리다의 해체론을 중심으로지도교수 김 상 철이 논문을 석사학위 논문으로 제출함2001년 1월 5일청 주 대 학 교 대 학 원회화학과 권 오 상권오상의 미술학 석사학위 논문을 인준함지도교수 김 상 철주심 인부심 인부심 인2001년 1월 5일청 주 대 학 교 대 학 원국문초록동양미술의 가장 현저한 특색중의 하나는 예술적 관념의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표현보다는 추상적인 표현경향이 많다는 점이다. 따라서 동양인들은 이상적 문제의 해결에 있어서 이성보다는 직관적 상상력에 더 의존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 같은 사유방식과 관련되는 장자(莊子)사상을 유가(儒家)적 인문주의와는 다른 자연주의라고 말하는데, 자연중심주의가 대단히 매력적이고 낭만적인 듯 하지만 그러나 그 말은 아무런 구체성을 지시하지는 않는다. 인간이 문화와 역사를 떠나 온전히 자연의 순수성으로 복귀하여 거기에 머문다는 것은 실재로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그러나 감각적인 이미지와 고속의 변신을 개인에게 요구하는 문화적 환경 속에서 살고 있는 이 시대에 이제 더 이상 장자사상을 반문화적이고 반지성주의로 볼 수만은 없다. 왜냐하면 장자사상에는 유가적 이성중심주의는 물론 과 슬픔과 즐거움은 다른 정황 다른 시간에 통시적으로 나타난다. 소쉬르는 공시성을 수직적 관계로, 통시성을 수평적 관계로 본다. 김경용, 앞의 책, pp.325∼326.이라고 하는 역사적 차원이 아닌 共時性synchronicity) 소쉬르의 용어로서 '통시성'이라는 말과 대립되는 말이다. 공시성은 어원학적으로 동시성same times을 뜻한다. 소쉬르는 공시성을 논리적 또는 심리적 관계들이 어떤 하나의 체계(예를 들면 연설을 하는 사람의 마음이나 텍스트 같은 것) 속에 공존하는 상태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한다. 가령 '양과 음', '양지와 음지', '좋은 날과 궂은 날' 같은 표현에서 서로 대립되는 개념들은 동시성을 띠고 공존하고 있다. 뜻을 넓히면 동시성은 무시간성timelessness이 된다. 양과 음은 밝은 것이 있으면 어둠이 반드시 있음을 뜻하는, 시간의 흐름에 관계없이 옳은 하나의 진리이다. 공시성에는 아이러니irony가 배태되어 있다. 위의 책, p.316.이라는 수직적 차원으로 바라보고 언어기호를 실체가 아닌 순수한 차이들로 이루어진 체계라고 말한 것은, 모든 형이상학이 얼마나 위선적인 자기도취였던가를 깨닫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 대신 구조라든가 기호, 해석 등과 같이 부유(浮游)하는 듯한 존재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실체는 오히려 허구이며, 자아, 절대정신과 같은 것들은 '형이상학적 문학'의 주제론일 뿐이라는 사유의 반란이 일어난 것이다.) 김원방, 잔혹극 속의 현대미술, 예경, 1998, p.141.데리다의 해체이론을 대할 때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이 텍스트이론) 김형효에 의하면 데리다의 철학을 체계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책le livre'과 '텍스트le texte'의 구분을 철저히 시도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먼저 책에 대해서 말하자면 1) 책은 저자가 생각하고, 말하고, 의미하고자 하는 의도와 책 속에 담긴 내용이 상호일치하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2) 책은 의미와 내용이 하나의 유. 즉 기표와 기의는 계속해서 새로운 조합을 형성하기 때문에 최종적인 기의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의미는 어떤 하나의 기호에 완전히 현존되는 것이 아니라 현존과 부재간에 끊임없이 교차한다는 것이다.해체 비평은 위와 같은 과정을 추적하는 것이고, 이러한 의미에서 해체 비평은 다양하고 끊임없는 해석들을 유발한다. 다시 말하면 해체론은 예술적 사유의 지평으로 숨어 들어가 새로운 문명의 가능성을 엿보고 있고 해체론이 지향하는 예술은 예전의 이론 속에 안주하는 예술, 이론에 의하여 순화, 규정, 보존, 지도, 조직화되는 예술이 아닌 이론화될 수 없거나 이론화되기 이전의 예술을 추구한다 할 수 있다. 따라서 예술에 대한 해체론의 개입은 예술에 대한 이론의 간섭을 물리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김상환, 예술가를 위한 형이상학, 민음사, 1999, pp.219∼220. 참조.데리다의 텍스트이론과 회화작품과의 관계를 살펴보면, 좁 베닝턴Geoff Benington에 의하면 "회화는 그려진 언어로 볼 수 있으며, 그 언어는 말하는 언어가 아니지만 의사를 전달하고 표현을 가능하게 하는 수단으로 볼 수 있다는 것") Geoff Benningron, 〈Deconstruction is not what you think〉, ed. Andreas C Papadakis, The New Modernism : Deconstructionist Tendencien in Art, Art & Design, vol.4 3/4, Great Britain E G Bond Press, 1988. p.7이다. 이러한 언어는 데리다의 차연에 의해 흔적화 될 수 있다. 그러나 언어와 동일한 것은 아니지만 회화를 언어로 보는데는 무리가 없다고 보고 있다. 그래서 그는 회화도 하나의 텍스트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이러한 논의는 회화가 하나의 텍스트로서 해체의 대상에 속해 있을 수 있으며, 그것은 데리다가 주장하는 해체의 대상에 들어 있음을 말하는 것으로서, 읽는 독법은 다르더라도 인문성이고 밖은 외면성이라고 구분지어서는 안된다. 바깥은 안의 모자람을 대신해 주고, 따라서 '안의 바깥'과 같은 그 모자람은 이미 '바깥의 안'에 의하여 보충된다는 교역성과 같다는 것이다.2.3. 초과적 사유로서의 소요유(逍遙遊)의 해석먼저 데리다와 장자의 과장법과 은유의 강조를 살펴 본다면, 장자의 은유는 우화, 풍유 등의 형식으로 나타난다. 은유적 사유의 특징은 하나의 은유는 곧바로 다른 은유로 대리된다는 특징을 지닌다는 것이다. 데리다는 그의 저작 「백색신화white mythology」에서 은유의 어원인 희랍어 'metapherein'에 대한 하이데거의 분석을 소개하고 있다. 'metapherein'은 '옮겨 놓기'를 뜻한다.) Jaques Derrida, Margins of Philosophy, p.226. 참조.옮겨 놓기는 옮겨 놓을 다른 곳을 필요로 한다. 바꿔 말하면 '자리 이동'이라고도 할 수 있다. 자리 이동은 어떤 정해진 자리가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자리에 의해 끊임없이 보충대리 된다. 즉 은유는 다른 것을 빌려서 말하는 비유법이다.) 데리다의 은유법에 대해서는 김상환, 데리다의 은유, 「은유와 환유」, 문학과 지성사, 1999, p.40∼62. 참조.장자와 데리다가 사용하는 수사학적 문체 가운데 또 하나의 특징은 언어유희이다. 데리다가 사용하는 거의 대부분의 말은 야누스의 얼굴처럼 두 가지 얼굴을 하고 있다. 차연, 보충대리, 파르마콘 등은 다의적이고 동음이의의 익살 부리기의 성격을 지닌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데리다가 언어의 모호함과 모순을 조장한다는 비판을 감수하고 차연, 보충대리, 파르마콘 등 하나의 개념과 의미로 수렴되지 않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어떤 개념화도 거부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장자의 예술론 중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자유해방인데 이것을 장자는 遊) 孔子는 『論語』 述而章에서 "道에 뜻을 두며, 德을 굳게 지키며, 仁에 의지하며, 藝에 노닐어야 한다."( 子曰, 志於道, 據於德 ,依於仁, 遊於藝.) 여기서 藝에 無法은 단순한 無(부정)로서 의미를 지니는 것이 아니라, 긍정과 부정, 有와 無라는 분별적 인식을 초월한 본재(本才)로서의 無인 것이다. 즉 석도화론의 핵심은 바로 無法을 통하여 有法과 無法을 통합the synthesis of nothingness and somethingness through non-differentiation하는데 있는 것이다. 이는 노자가 말한 '有無相生'과 같은 의미로 파악 될 수 있다. 김용옥, 석도화론, 통나무, 1996, pp.37∼38.라는 '일획론(一 論)'을 제출하였다. 석도의 '一 論'은 노장의 道論思想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그런데 사변적(思辨的) 형이상학의 '道' 개념을 고대 산수화를 통해 耳目的 가치로 현현해 낼 수 있다는 믿음이야말로 산수가 물질이면서 동시에 영(靈)의 상태를 지향한다는 논리를 갖게 하는 근거이다. 육조(六朝)이후 산수화가 무한경의 정신적 자유를 확보해 주는 도체(道體)로서의 성격을 갖게 됨으로써 도가의 형이상적·사변적 道개념을 형이하적·구체적 현상으로 제시하였다는 점에 큰 의의가 있는 것이다. 고대 산수화가 비현실적이고 관념적일 수밖에 없는 소이가 여기에 있다. 道를 현현하는 도체로서의 천지는 물의 총체이면서 동시에 속악(俗惡)한 현실성으로부터 멀리 있어야 하는 것이다.이런 장자사상은 중국의 산수화 속에 많이 포함되어 있다. 동양화 속에는 동양의 전통적인 사상 속에서 생성하는 동양인의 사상이 내재되어 있다. 화가란 그림을 그리는 기교보다는 정신적인 면이 앞서야 한다는 것이 동양화 속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이다. 그것은 쉽게 말해서 장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높은 단계에 다다를수록 정신적인 허탈감을 느끼게 되어 자기와 유관한 학문을 찾게 되는데 이것은 작가로서의 자기의 작품을 영구히 발전시켜 나가자는 데 목적이 있을 것이다. 장자의 사상 역시 노자와 서로 상합되는데, 장자의 우주관은 생명체의 우주관이라 할 수 있다. 우주만물을 생명체가 있는 가운데에 상호 연관하면서 다소가 다를 뿐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