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동기처음 제목을 들었을 때, 책의 내용이 굉장히 궁금했다. 어떤 작품을 미술이다, 아니다라고 왈가왈부하는 책이라니... 솔직히 나는 학창시절에 미술을 끔찍이 싫어했다. 손재주도 없었고 그렇다고 기발한 아이디어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온갖 정성을 들여 그림을 그리거나 작품(?)을 완성해도 항상 낮은 점수를 받았다. 이에 비해 나의 단짝 친구는 손으로 대충 끄적이기만 해도 선생님께 온갖 칭찬을 받아서 난 항상 그 친구를 부러워할 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미술시간도 싫었고 나의 그림을 이해해주지 않는 미술선생님도 덩달아 미웠다. 즉, 내 인생에서 미술은 아예 뒷전에 밀려나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고3이 되었을 때, 영어선생님께서 항상 공부에 시달리는 우리에게 가끔씩 휴식의 차원으로 유명한 그림들을 보여주시고 간단한 설명도 곁들여 주셨다. 그런 선생님이 얼마나 멋있어 보이던지.. 그래서 그때부터 나도 이젠 그림에 대한 교양을 쌓아야겠다고 느꼈다. 미술에 대한 두터운 벽이 조금 허물어졌다고나 할까?그리고 대학에 들어와서 작년 여름 유럽배낭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을 하면서 제일 많이 접한 것이 박물관의 미술작품들과 성당의 조각이나 스테인드글라스였다.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로마의 바티칸 미술관과 영국의 대영 박물관이었다. (루브루 박물관은 너무 기대를 하고 가서 그런지 아니면 너무 피곤한 상태에서 가서 그런지 큰 감동을 받지 못했다.) 특히, 내가 기독교인이어서 그런지 바티칸 미술관의 여러 작품들 중에서도 성서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 미켈란젤로의 벽화들이 제일 눈에 들어왔다. 금방이라도 그림 속에서 튀어나올 것 같은 그림 속 주인공들... 우리나라에서는 제대로 된 박물관을 한 번도 가 본적이 없지만 이 박물관들은 내가 상상한 것보다도 훨씬 규모가 컸고 수 만개의 작품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래서 끊임없이 감탄을 하며 박물관 안을 정신 없이 돌아다니다 길을 잃기도 하였다. 그러한 소중한 기억들을 이번에 레포트를 쓰면서 다시 한 번 꺼내 보았다.2. 미켈란 그러한 경우에 속한다.우리가 자신과 세계에 대해 아는 것은 모두 역사를 통해 형성되었다. 이러한 특정 시간과 장소를 벗어나 어떤 사물이 자연스럽게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가 무엇을 보고, 느끼고, 만지고, 생각하고, 기억하고, 창조하고, 발명하고, 꿈꾸던지간에 우리는 문화적 상징과 언어를 사용해야만 한다. 이 언어들 중에서 특히 눈에 잘 띄고 우월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바로 미술이다. 우리는 미술을 봄으로써, 재현의 의미와 권력을 획득하는 방법을 이해할 수 있다.미술이 무언가를 질문하면서, 그것이 구체적인 역사를 가졌으며 특정한 시대에 속하는 것으로 본다면 문화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미술은 근대 -지난 200년 간- 의 발명품이다. 근대 이전의 사람들이 생산한 뛰어난 건물들과 물품들은 우리의 문화에 의해 ‘차용’되어 미술로 변형된 것이다.우리가 아는 미술은 상대적으로 최근에 나타난 현상으로, 미술관에 전시되고, 박물관에 보존되며, 수집가들이 구매하고, 대중매체 내에서 복제되는 그 무엇이다. 미술가가 미술작품을 창조한다 하더라도 그 자체로서는 아무런 소용이나 가치가 없다. 그러나 이 미술작품들은 미술의 여러 제도들 (화랑이나 미술사, 미술 출판, 박물관 등등 ) 내로 순환하면서 비로소 현대세계의 다른 어느 것보다도 상대적으로 깊은 의미와 중요성을 획득하고 그 가치가 증폭된다.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결국 다양한 제도들에 의해 형성되고 정의된다. 제도는 사물들에게 그 경계와 관행을 설정해 준다. 이는 액자틀이 그 안에 있는 것을 회화로 보게 만들고, 좌대가 그 위애 있는 것을 조각으로 보게 만드는 것과 같다.이데올로기는 ‘현실에 대한 우리의 살아있는 관계’라고 묘사된 바 있다. 이데올로기들은 자연스럽거나 그럴 법한 상태들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이데올로기는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항상 유동적이며, 특정한 역사적 순간에 의해 형성된다. 효과적인 이데올로기는 쉽게 받아들여지고, 도전받지 않는다.와 맺는 중재된 관계는 아마도 미술을 살펴 보면 가장 잘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18c 전까지만 해도 시각문화를 다루는 제도들은 오늘날과 매우 달랐으며, 많은 경우 전혀 존재하지도 않았으며 우리가 지금 미술이라 부르는 것들은 모두 일상생활의 맥락 속에서 자리잡고 있었다. 제도들이 갖는 역사적 한계는 우리들 대부분이 르네상스 문화를 위대한 걸작들과 미술작품들이라는 차원에서 이해한다는 사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미켈란젤로의 를 살펴본다면 는 미술이 아니었다. 그럼 여기서 미켈란젤로와 의 그림에 대해 설명을 하고 넘어가도록 하자.시스틴 성당 천장화는 모두 구약성서 창세기에 나오는 주제들로 그려진 미켈란젤로의 작품들이다. 자연의 실제 세계가 아닌, 미켈란젤로가 만들어낸 이상적인 세계가 재현된 벽화들 중에서 는 가장 뛰어난 상상력이 발휘되어졌다.제 6일째 하늘로부터 강렬하게 돌진하는 하나님은 아기 천사들에 둘러싸인 이브를 옆에 끼고, 아담을 향해 검지손가락을 뻗고 있다. 지금이라도 서로 맞닿을 것 같은 손가락과 손가락, 오른쪽의 손가락은 생명력에 넘치는 힘찬 손가락이고, 왼쪽의 손가락은 힘없이 쳐져 있다. 각각의 손가락에서 팔과 어깨를 더듬어 올라가면 신의 위엄있는 얼굴과 지금 막 깨어난 듯한 청년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 대지에 밀착된 아담은 하나님을 향해 몸을 내밀고 있지만, 아직 태어나지 않아 신의 보호를 받고 있는 이브를 보며 묘한 슬픈 표정을 짓는다.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 설정은 아담의 표정과 육체와 영혼을 부여하는 신의 강렬한 눈빛으로 가늠할 수 있게 된다. 최초의 인간 아담은 누워있으며 반대편에서는 큰 폭의 구름과 천사들에 떠받들려 하늘에 부상하는 하나님이 손을 뻗혀 생기를 불어넣어 주자 아담의 손가락에 채 닿기도 전에 이 최초의 사람은 깊은 잠에서 막 깨어난 듯 그의 창조주인 하나님의 자애로운 얼굴을 쳐다보고 있다. 정적 속의 근엄한 긴장감을 가득 담고 있는 작품이다. 신이 최초의 인간 아담을 창조하고 그의 육체 속에 영혼을 불어 넣으려는에 기초한 9개의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는 천지창조의 4번째에 위치하는 아담의 창조, 보는 이의 시선을 중앙의 손가락 끝에 모으는 대담한 구성, 신과 아담 그리고 천사들의 뛰어난 육체 표현, 회화에 나타난 가장 숭고하고 아름다운 그리스도교 세계관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높은 곳에 마련된 작업대 위의 작업으로 목과 눈에 이상이 생기기도 했는데, 이에 굴하지 않고 열심히 그려 "아담의 창조"를 포함한 천지창조를 혼자서 겨우 4년 만에 완성해 내었다.는 성당 입구에서 출발하여 구약 이야기가 전개되는 중간 지점에 그려져 있다. 이는 인간과 신이 함께 표현되는 양식을 과감하게 창조적으로 표현하면서, 자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만든 하나님의 창조적 힘과 인간이 만들어지는 감동적인 순간을 뛰어나게 형상화시킨 작품이다.미켈란젤로가 바티칸 궁 시스티 나 예배당의 벽화를 의뢰 받았을 때(1508) 성당 옆벽에 이미 15세 기 화가에 의해서 모세전과 그리 스도전의 주요 장면이 그려져 있었다. 거기에 그는 구약성서 속의 장면 들로써 이를 완결지어야 하는 과제가 주어졌다. 그것은 천지창조에서 시작하여 노아의 이야기에 이르는 장면, 그리스도의 탄생과 재림을 예언 하는 사람들, 즉 선지자들과 여자 예언자격인 무녀들, 그리고 그리스도의 선조들의 모습이 이에 해당된다. 그때 율리우스 2세 묘당을 위해 제작을 추진 중에 있었다. 그것이 중단되는 것을 알면서도 그는 이 천정화를 위해 회화의 세계에 들어간 것이다. 그는 천정화를 입구에서 제단쪽 으로 진행하였고 표현형식도 4단 계-천지창조연작, 예언자와 무당 및 구약성서: 그리스도의 조상- 로 나누어 발전시켰다.미켈란젤로는 율리우스 2세로부터 요구되어진 천장벽화의 주문을 거역하고 논쟁을 벌였다. 미켈란젤로는 장식 계획의 확장을 원했고 결국 자신의 뜻을 관철시켰다. "당신이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리시오"라는 말로 율리우스 2세는 갈등을 끝냈다고 한다.540평방미터 넓이의 천장 프레스코화를 완성하는 것은 거의 4년이라는 시간이 걸릴 만큼 방대한 작업이었다.미켈란젤로는 그의 몸에 심각한 무리가 왔다. 갑상선종이 점점 더 커지고 목덜미와 가슴에 통증이 악화되었으며, 신장과 골반이 뒤틀리는 몸의 불균형이 나타났다.에는 결코 미켈란젤로가 혼자 생각해 낸 것으로는 볼 수 없는, 매우 지능적으로 고안된 신학적인 내용들이 담겨있다. 그 아홉 개의 주요 장면들은 구약성서의 「창세기」편에 나오는 천지창조 이야기에서부터 노아의 만취까지를 담고 있다. 양쪽에는 구약에 나오는 일곱 명의 과, 그리스도의 탄생을 예언했던 다섯 명의 이 서로 마주하고 있다. 천장의 반달형 공간에는, 신약의 시작인 「마태복음」에서 열거된 '그리스도의 선조'들이 그려져 있다. 중앙 화면의 구석에 있는 삼각형의 벽면 네 곳에는 신약의 사건과 예형학적으로 관련된 구약성서의 네 장면이 각각 그려져 있다.미켈란젤로는 수많은 주변 인물들이 살고 있는 하나의 건축학적인 체계 속에 주요 그림들과 인물들을 고정시켰다. 그는 예언자들과 고대의 무녀 사이에 부조 형태의 푸토(벌거벗은 동자상)들이 떠받치고 있는 낮은 주춧대를 설치했다. 그로부터 천장의 구획을 나누어 그림의 경계를 만드는 가름대가 형성된다. 주춧대 위에는 나체의 청년상인 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아홉 개의 주요 장면들 중, 비교적 작게 그려진 다섯 개의 그림들을 네 명의 이뉴디가 둘러싸고 있다. 그들에 대한 해석은, 주춧대를 떠받치고 있는 이나 원형의 에 대한 해석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논란이 되고 있다. 바사리는 이뉴디를 황금 시대의 전령으로 보았다. 이와 관련해 푸토들과 이뉴디들은 당시의 시대상을 알레고리화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창조'와 '예언자들과 고대의 무녀', '그리스도의 선조들'과 연결될 수 있다.는 카톨릭미사를 신비롭게 하기 위한 무대배경 역할로 만들어진 프레스코 벽화의 일부이다. 이 이미지는 16c 로마 교황의 권위와 권력의 중심이었던 교황청 예배당 내에 있는 벽 장식의 복합적 구조 중 일부이다. 이 그림에 나타난 놀랄만한 사실적 묘사는 미사 도중의 성체 성사라는 성스러운 예배의식다.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 열기에 편승해 인터넷이 모든 것을 변화시키고 경영에 관련된 기존의 모든 법칙을 무용지물화 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이러한 반응이 자연스러운 것일지 모르나 이는 소속 산업의 매력도를 떨어뜨리고 자신의 고유한 경쟁우위를 쇠퇴시키는 의사결정으로 유도하는 매우 위험한 사고방식이다. 최근까지도 인터넷 기술을 이용한 경쟁기반 전환으로 인한 전략적 조치의 부정적 효과는 시장의 왜곡된 신호에 가려져 있었다. 그러나 지금 그 결과는 점차 명백해지고 있다.거의 모든 산업에서 거의 모든 전략의 일부로서 지혜롭게 또는 어리석게도 사용될 수 있는 강력한 도구 집합체인 인터넷이 무엇인지 그 본질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인터넷은 결코 필연적인 축복이 아니다. 인터넷은 산업의 전반적인 수익성을 떨어뜨리는 방향으로 산업구조를 변경시키고 있으며, 지속 가능한 운영상의 경쟁우위를 구축할 수 있는 기업의 능력을 쇠퇴시킴으로써 사업운영방식을 하향 평준화하는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인터넷 기술의 채택 여부가 아니라 기업경쟁력 유지를 위하여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있다.인터넷 활용에 대해 낙관적 견해를 갖는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인터넷 기술은 이전 세대의 정보기술에 비해 기업이 독특한 전략적 포지셔닝을 구축할 수 있는 기회를 보다 많이 제공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터넷은 그 자체로 경쟁우위가 되는 것은 아니다. 성공하는 기업은 전통적인 마케팅 방식의 보완물로서 인터넷을 이용하는 기업이지, 기존의 기업활동과 별개로 인터넷 주도권을 구축하는 기업들이 아니다. 따라서 닷컴기업이 승자가 되기 위해서는 인터넷과 전통적인 마케팅 방식간의 상충관계를 이해하고 경쟁자와는 다른 고유전략을 구축하여야 한다. 인터넷은 경영전략의 중요성을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핵심으로 만들고 있다.< 왜곡된 시장신호 >인터넷 기술을 전략으로 활용하고 있는 기업들은 왜곡된 시장신호로 인해 혼란을 겪고 있다. 어떤 중요한 신기술이 첫선을 보이는 초기단계에서 나타나는 시장신호는 믿을만한 하게 사용되고 있는 산업의 수익방정식에서 수입측면을 생각해 보면 매출현황은 세 가지 이유에서 믿을만한 것이 못된다. 첫째, 많은 기업이 인터넷상에서 자신의 지위와 고객기반을 확고히 하고자 자사 제품과 서비스 구매에 대해 보조를 계속해 오고 있다. 가격이 인위적으로 낮아짐에 따라 수요도 인위적으로 높아지게 된다.둘째, 많은 구매자들이 호기심 이외의 목적으로 인터넷을 방문하고 있다. 그러나 고객에 대한 보조가 없어지고 유리한 듯 하나 지금도 여전히 미심쩍어 보이는 거래조건들에 의해 구축된 고객충성도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지고 나면, 조만간 일부 고객은 전통적인 방식의 거래로 회귀하는 현상이 나타날 것이다.셋째, 온라인 거래로부터 얻는 수입 중 어떤 것은 현금이 아니라 주식의 형태로 받게 되어 있다. 이러한 형태의 수입이 지속 가능한 것인지는 의문시 되며, 수입의 진정한 가치 또한 주가 변동에 따라 결정되기 마련이다.인터넷에서의 수입이 종잡을 수 없는 개념이라면, 비용 또한 똑같이 모호한 개념이다. 많은 공급업자들이 실제비용을 감추며 인터넷 관련기업이나 벤쳐기업으로부터 자신의 서비스와 제품에 대한 대가로 지분이나 보증, 스톡옵션을 받기로 합의하고 있다. 지분으로 대가를 받는 것은 손익계산서 상에 나타나지 않지만 주주에게는 실질적인 비용인 셈이다. 이러한 공급업자의 관행은 실제보다 매력적인 것으로 만듦으로써 인터넷 사업비용을 인위적으로 악화시키고 있다. 마지막으로, 자본에 대한 필요성을 실제 이하로 낮추어 표현하는 방식에 의해 비용은 체계적으로 왜곡되고 있다.주식시장으로부터 나오는 신호는 더더욱 신뢰할 수 없다. 주식평가는 사업의 근본성격과는 별개로 인터넷의 폭발적인 성장에 대한 투자자들의 열광에 반응해 이루어질 뿐이어서, 더 이상 실질적인 경제적 가치가 창출될 것인가에 대한 정확한 지침이 되지 못한다.닷컴기업은 생존능력을 보여줄 필요 없이 자금을 조달할 수 있기에 증가하고 있다. 즉, 닷컴기업에 대한 단순한 수치는 진입장벽이 낮다는 위험한 징표이외에 아무것도 알려주는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시장의 힘이 작용하게 됨에 따라, 예전의 밥칙이 다시 그 성가를 발휘하게 된다. 또 다시 진정한 경제적 가치의 창출이야말로 사업에서의 성공을 결정하는 심판관이 되고 있는 것이다.기업에 있어 경제적 가치는 단지 가격과 비용간의 차이일 뿐이며, 이는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수익성으로 평가될 때, 비로소 신뢰할 만한 것이 되며, 장기적으로는 주주의 가치야말로 경제적 가치에 대한 신뢰할 만한 척도가 된다.그렇다면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데 인터넷은 어떻게 사용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수익성을 결정하는 두 가지 근본적 요인에 대해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산업구조는 평균적인 경쟁자의 수익성을 결정한다. 지속가능한 경쟁우위는 평균적인 경쟁자보다 높은 성과를 얻게 한다. 수익성을 결정하는 이 두 가지 동인은 기술이나 사업의 종류에 관계없이 어디서나 적용됨과 동시에 산업과 기업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인다.< 인터넷과 산업구조 >인터넷은 신종산업을 창출하고 있다. 그러나 인터넷이 미친 가장 큰 영향은 의사소통과 정보수집, 거래성사 등에 높은 비용이 따르는 기존의 산업을 재편할 수 있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산업의 구조적 매력도는 경쟁의 근간을 이루는 다섯 가지 요인― 기존 경쟁자간의 경쟁강도, 신참자에 대한 진입장벽, 대체재나 서비스에 의한 위협, 공급자의 협상력, 구매자의 협상력 ― 에 의해 결정된다.이러한 요인들은 결합되어 작용함으로써 제품이나 서비스, 기술 또는 경쟁방식 등에 의해 창출된 경제적 가치가 한편으로는 산업내 기업들에게, 다른 한편으로는 고객과 공급업자, 유통업자, 대체재, 잠재적 진입자에게 어떻게 나누어지는가를 결정한다. 따라서 이러한 요인들을 분석함으로써 산업의 근본적인 매력도를 조명할 수 있으며, 산업의 평균수익성을 결정하는 요인이 드러나고, 또한 장래의 수익성이 어떻게 변할 것인가에 대한 영감을 얻을 수 있다.이와 관련해 인터넷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산업에서 인터넷이 산업구조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 수는 것을 오히려 더욱 어렵게 만든다.< 선점자에 대한 신화 >수익성에 관련해 인터넷이 주는 부정적인 시사점이 나타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인터넷을 둘러싸고 낙관적인 반응이 나타나고 있을까? 낙관주의의 근원은 산업수익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요인들이 인터넷을 통해 아무런 제약 없이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인터넷을 전략적으로 채택해 활용하는 것은 전환비용을 증가시키고 강력한 네트워크 효과를 창출할 것이라는 일반적인 가정이다.네트워크 효과는 선점자에게 경쟁우위와 견실한 수익기반을 제공하게 되는데, 선점자는 강력한 인터넷 브랜드를 재빨리 구축함으로써 이러한 경쟁우위를 강화하게 된다.다음으로 전환비용에 대해 살펴보면 전환비용에는 고객이 새로운 공급자로 거래선을 변경함으로써 야기되는 모든 비용이 포함되며 전환비용이 증가함에 따라 고객의 협상력은 떨어지고 진입장벽은 높아지게 된다. 그러나 실제로 인터넷 상에서의 전환비용은 새로운 웹 기술로 인해 훨씬 더 체계적으로 낮아지는 경향이 있다.네트워크 효과는 특정 네트워크를 수많은 고객들이 사용함에 따라 네트워크를 통해 제공되는 제품이나 서비스의 가치가 커지는 것을 말하는데 네트워크 효과가 매우 크게 나타날 때, 네트워크는 수요측면에서 규모의 경제를 창출해 진입장벽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네트워크 효과가 진입장벽으로 작용하기 위해서는 그 효과가 특정 기업에만 독점적으로 나타나야 하는데 공동표준과 프로토콜, 탐색의 용이성과 더불어 인터넷의 개방성은 어는 특정 기업이 네트워크 효과에 따른 이득을 독점적으로 누리도록 놔두지 않는다. 또한, 네트워크 효과를 창출한다는 것은 미래의 수익을 상쇄시키게 될지도 모르는 막대한 투자를 필요로 한다.인터넷 브랜드 역시 구축이 매우 어려운 것으로 증명되고 있다. 가상공간에서의 사업은 전통적인 사업에 비해 고객에게는 실체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닷컴 브랜드는 막대한 투자에도 불구하고 고객충성도와 진입장벽이라는 측면에서 약간의 효과만을 얻고활용되는 제품을 의미한다. 보완재는 종종 산업의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산업의 수익성과 직접적인 관련성을 갖는 것은 아니다.인터넷과 더불어 보완재 제조업체와의 광범위한 제휴는 산업의 구조적인 문제를 완화시키기도 하지만 반면에 악화시킬 가능성도 있다. 제휴가 널리 활용됨에 따라 기업들은 점차 유사해지게 되고, 이는 곧 경쟁을 가열시키게 된다.제휴의 또 다른 형태는 외주다. 광범위한 아웃소싱은 단기 비용을 낮추고 유연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반면 산업구조라는 측면에서 보면 부정적인 측면도 가지고 있다.여러 경쟁자들이 동일 공급업체에 의존하게 됨에 따라 기업들이 구매하는 투입물은 점차 동질화되고, 기업의 고유한 특성은 서서히 부식될 것이며, 가격경쟁은 심화될 것이다. 아웃소싱은 진입장벽을 점진적으로 낮추는 결과를 가져오는데, 이는 새로운 진입자는 자신의 고유한 능력을 구축하기보다는 외부로부터 구매조달되는 투입물을 조립할 수만 있으면 되기 때문이다.더욱이 기업은 자신의 사업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는 중요한 요소들에 대한 통제를 점차 상실하게 되며 부품·조립·서비스에 대한 소중한 경험은 공급업체로 넘어가게 되어 장가적으로는 공급업체의 영향력을 증대시키는 결과를 야기한다.< 인터넷 경쟁의 미래 >산업은 각기 독특한 방식으로 진화하지만 산업구조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을 면밀히 검토해 보면, 인터넷 기술의 보급으로 많은 산업에서 수익성이 지속적으로 압박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반면에 고객서비스 지원부서나 다른 부서의 요원들은 자신의 컴퓨터를 통해 보다 용이하게 고객들과 직접적인 의사전달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인터넷 판매업자는 자신을 보다 잘 차별화할 수 있게 되어 구매자의 관심을 가격에서 다른 요인으로 돌릴 수 있게 되었다.이외에도 산업구조를 결정짓는 요인들로는 대체재에 의한 위험과 진입장벽의 구축을 들 수 있다.< 인터넷과 경쟁우위 >산업의 평균수익률이 인터넷에 의해 압박을 받게 된다면 개별 기업의 입장에서는 이들 평균 수준의 기업군으로부터 자신을 분리시키는
우리의 식생활 역사를 멀리 거슬러 올라가면 한반도에 우리 민족이 정착하게 된 구석기 시대로까지 소급될 수 있다. 농업이 경제의 근간으로 자리잡음에 따라 식생활문화의 전통은 농경문화의 발달과 궤를 같이 하면서 뿌리를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그 후 시대의 변천에 따라 식품의 획득방식과 분배방식이 변화하게 되었으며, 기술의 발달에 따라 식품의 생산, 유통, 조리, 가공 기술이 발전하는 한편, 각 시대를 지배한 종교와 사상에 따라 식생활에 상징적, 규범적, 의식적 요소가 첨가되기도 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세계적으로 볼 때 근대 외식산업의 중요한 전환기는 17세기 말경으로 최초의 커피 하우스가 프랑스에 등장하여 전 유럽으로 확산되어, 오늘날의 레스토랑의 선두주자 역할을 하게 되었다. 커피하우스가 원기 회복제를 파는 'Restornte'라고 불리우게 되면서, 'Restaurant'의 어원이 되었고, 이 영향으로 커피하우스를 식당으로 전환하면서 전성기를 맞았다. 미국은 1827년 Delmonico사가 메뉴를 품목별로 식단표를 만들고 각종 피로연이나 파티등을 운영하던 것을 오늘날의 레스토랑의 원조라고 볼 수 있다. 1950년대는 미국 외식산업의 일대 전환기로 세계최대의 외식기업인 맥도날드와 레이크락도 이때 출현하였다.우리나라는 1945년 해방이후 외식업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으나, 경제적 여건으로 단순한 식사개념으로 여겼고 1960년대 들어 요식업의 싹이 트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외식의 개념이 등장한 것은 1970년대 후반 이후로 볼 수 있다. 60년대만 해도 식당에서 파는 상품은 음식이었다. 음식 말고는 팔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으며 고객 또한 음식말고는 살만한 것이 없었다. 이 시절이야말로 배로 먹던 시대이다. 밀가루 음식에 의존하고 보리 고개를 넘나들며 궁핍한 식생활을 누려야만 했던 식습관 속에서는 서비스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다. 따라서 양 중심의 음식문화와 곱빼기 문화가 모든 것을 우선하던 시대였다.그러나 70년대 초 ' 녹색혁명 '이라 불리는 통일벼 대량할 수 있게 되었으며, ' 보릿고개 '라는 말은 사전의 뒷편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그 후 국민들이 어느 정도 굶주림을 면하게 되자 ' 맛이 없다 '는 이유로 84년에 이르러 통일벼 재배시대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 87, 88년 연속 대풍이 들면서부터 맛도 좋은 일반미로 풍족하게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그 후 쌀이 남아돌면서 쌀 막걸리, 쌀 과자 제조가 장려되기도 했다. 71, 72년에 오뚜기에서 서양식 기본 소스인 케첩과 마요네즈가 잇따라 출시되면서 간장, 된장, 고추장, 젓갈 등 전통 조미료로 맛을 내는 한식 중심의 식생활에 서양음식이 적극적으로 수용되는 단초가 되었다.70년대 경제개발과 생활수준의 향상으로 드디어 1979년 해외브랜드로는 처음으로 롯데리아 햄버거가 국내에 들어오고 8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두 자릿수 경제성장률을 거쳐 입맛이 점차 배에서 입으로 옮겨지기 시작했다. 지난 30년 간 우리나라의 경제는 괄목할만한 성장을 거듭해 왔으며 이러한 경제 성장에 힘입어 눈에 띄게 발전해 온 분야가 바로 외식 산업이다. 지난 1976년 4315억 원에 불과했던 우리나라의 외식시장은 1986년을 전후하여 4조 6000억 원 수준으로 확대되었으며, 1992년 말 12조 원에 이른 것으로 집계되었다. 이시기의 외식산업을 시기별로 나누면 1980넌 부터 본격적으로 외식업의 성장을 가져오기 직전인 1985년까지를 '태동기'로, 86년 아시안게임과 88 서울 올림픽으로 이어지는 굴지의 세계적인 대행사가 개최된 1986년부터 오는 2001년까지를 '성장기'로 볼 수 있다. 월드컵이 열리는 2002년 이후에는 우리의 외식업도 '성숙기'에 들어서 좀더 원숙된 모습으로 자리 매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식생활에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면서 양 중심에서 질 중심으로 바뀌고 자기중심의 입맛을 찾아 외식하는 시대를 맞이하게 되면서, 개인중심의 입맛 즉 개식화(個食化)현상, 입맛의 개성화 현상이 뚜렷해지고 업소 측에서는 고객만족을 위한 서비스 전략에 몰두하게 되었다. 입맛이 점차 고비스 차별화 전략을 전개시켜 나가는 것이 외식경영의 핵심적인 과제로 대두되었다.80년대는 햄버거, 피자, 아이스크림, 커피, 치킨 등 패스트푸드 중심의 외국계열 음식점들이 다투어 국내에 들어오면서 식생활 패턴에 큰 변화를 주었고, 이때부터 청소년 중심으로 식생활 패턴이 점차 서구화되고 패스트푸드화 되어 갔으며 성별, 연령별, 직업별로 입맛의 색깔이 뚜렷한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어서 80년대 후반부터는 코코스, 데니스, 토니로마스, TGI Friday 등 미국, 일본, 이태리 중심의 패밀리레스토랑이 본격적으로 국내에 진출하기 시작하면서 고객의 입맛은 단지 배나 입으로 먹는 단계에서 눈으로 먹는 시대에 접어들게 되었다. 이 시기부터 본격적인 인테리어 서비스가 도입되기 시작했으며 식당공간이 특정계층의 소비자 계층에 맞게 무대화 되어가기 시작했다. 인테리어 색상에서부터 디자인, 구성, Lay-out등 모든 면에 혁명적인 변화가 일기 시작했으며 한국의 전통 음식점 경영에 변화의 계기가 되었다. 특히 식욕을 돋구고 입맛을 자극하는 핑크색 계열의 색상이 레스토랑의 색상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면서 자극적이고 현란한 색상이 외식업계에 도입되기 시작했으며 푸드데코레이션 개념의 식탁서비스도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연구대상이 되기 시작하였다. 눈으로 먹는 시대의 고객만족을 위한 다양한 스타일, 색상 등이 서비스 전략으로 대두되기 시작하면서 국내 외식업계의 서비스개념에도 큰 변화를 안겨준 전기가 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눈으로 먹는 시대가 아니라 오감으로 먹는 시대로 바뀌고 있으며 오감을 충족시키는 감성 마케팅이 무기로 등장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레스토랑 전문 음악만을 선곡해 파는 전집이 등장하였으며 외국계열을 중심으로 향기 마케팅이 레스토랑의 또 다른 서비스 전략으로 중요해지기 시작했다. 이처럼 고객의 입맛 변화, 외식 형태의 변화, 소비구조의 변화, 감성적 소비개념이 등장하면서 외식업계의 서비스 개념의 큰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1998년 우리 나라는 IMF체제에 돌입하였고 GDP달러이던 GNP는1년만에 6천8백23달러로 곤두박질치는 결과를 낳아 7년 전인 91년 수준으로 전락했다. 이 같은 경기 침체는 외식업계에도 곧바로 영향을 미쳤으며, 외식시장은 극심한 불황속에 떨어지게 되었다. 상공회의소가 발표한 IMF 이후 가장 절감하는 소비 내역 1위로 '외식'이 뽑히는가 하면, 통계청이 조사한 "도시근로자 가계지수" 에서도 전년도 월 평균 가구 당 외식소비액이 14만 9천원 에서 11만 3천원으로 줄어들었음을 보여주었다. 매출의 급속한 하락세는 곧바로 외식업체의 휴·폐업을 조장하였고, 직원감원과 원가절감, 가격 파괴 등의 자구책 또한 보여졌다. 그러나 경제 침체 속에서도 반짝이는 아이디어와 IMF체제의 장점- 직원 구인의 용이함, 원 재료비의 하력-을 십분 이용하여 번성한 업체들도 있었다. 이 새로운 외식물결은 주로 강남의 압구정동과 청담동을 중심으로 시작되었으며, 업종은 fusion food restaurant, Italian restaurant, european cafe 등이다. IMF직후인 지난 97년 12월과 98년 1, 2월에는 전년대비 매출액이 40-50% 정도 하략 업체별로 사업성을 재검토하는 등 비상국면에 놓였었다. 그러나 99년 3월부터 서서히 회복세를 보이며 꾸준히 성장 곡선을 그려 동일 점포만을 비교했을 경우 연말에는 거의 전년대비 70-80%까지 목표치를 달성했다. 특히 여름 성수기부터 매출이 급상승하기 시작해 하반기에는 거의 예년수준의 경기를 회복했다.시내 중심가는 물론이고 아파트, 주택가 근처 및 대학가 주변에 산뜻한 분위기를 풍기는 패스트푸드店 에서 햄버거나 치킨, 피자를 즐기는 풍경은 이제 지극히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다. 교통난 등으로 아침 식사조차 집에서 하지 못하는 직장인들이 외식 신세를 지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 돼버렸다.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고 가족 형태도 핵가족이 보편화됨에 따라 가족 단위로 외식을 할 기회가 증가하여 하루 두끼 이상을 밖에서 해결하는 사람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은 생활화됐고 동창회 계모임 등으로 모처럼 친구들을 만나 정담을 나누는 주부들에게도 외식은 생소하지 않다. 특히 이전에는 끼니를 '때우던'것이, 점차 소득이 높아지면서 이제는 음식을 '즐기는'것으로 변해 가고 있으며, 이에 따라 관련 직업 종사자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의 국민소득의 증가와 함께 먹는 것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가정 내에서만 즐기는 것으로 인식돼왔던 食文化가 밖에서 즐기는 외식문화의 형태로 자리잡아 가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현재 외식 산업의 시장 규모의 7,8조 원에 이르고, 그 분야도 각종 전문 음식점, 고급 레스토랑, 패스트푸드점, 호텔 뷔페 등 무척 다양하다. 또한 집안의 행사나 각종 파티에도 출장요리사가 있어 가정에서도 특별한 음식을 맛볼 수 있다. 외식문화가 이처럼 빠르게 자리잡고 있는 것은 우리 생활형태가 그만큼 급격하고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오늘날 외식산업은 사회의 변화와 함께 생활 수준도 변하면서 유망 분야로 각광받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외식 산업의 발전이란 까다로워진 현대인의 입맛을 맞출 수 있어야 하므로 끊임없이 개발이 필요하다. 따라서, 외식산업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보다 간편하게, 값싸게, 충실한 영양을 섭취할 수 있도록 하여 단골고객을 끌어들이는 방법을 강구하여야 한다.외국의 경우에는 외식 분야 관련 직업이 미래 유망 직업 목록 중 상위권에 속한다고 한다. 이는 경제 성장과 더불어 앞으로 외식 산업이 얼마나 발전할는지를 충분히 짐작하게 해주는 것이다. 특히 요즘에는 외식 관련 종사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많이 바뀌어 가고 있으므로, 서비스 분야 전문직으로서 사회적 대우와 아울러 수입 또한 지속적으로 늘 전망이다.앞으로 예상되는 우리나라의 외식사업의 방향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1. 독창적 아이디어로 차별화 된 외식문화 조성- 앞으로의 우리나라 외식산업은 새로운 감각의 업태 출현과 기존 업소의 근대화가 함께 이루어지며, 외식산업 전반에 걸친 독창적 아이디어가 가미된 차별화 브랜드가 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