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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중쟁쟁 평가A+최고예요
    철중쟁쟁 [鐵中錚錚]문정과 20003312이승희1. 음 훈 : 鐵 - 쇠 철 中 - 가운데 중 錚 - 쇳소리 쟁 錚 - 쇳소리 쟁2. 의 미 : 많은 쇠 가운데서 좋은 소리를 내는 것이란 뜻으로, 보통 사람 중에서 조금 뛰어난 사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3. 출 전 : 《후한서(後漢書)》 〈유분자전(劉盆子傳)〉에 나오는 이야기임.4. 시대배경왕망정권에 대한 반란은 그가 섭정하던 기원후 6년에 벌써 일어났고 그 이후 해를 거듭함에 따라 전국에 걸쳐 농민반란이 일어났다. 그중에서도 주력이 된 것은 기원후 17년 신시(新市)사람 왕광(王匡), 왕봉(王鳳)을 우두머리로 하여 녹림산(綠林山)에 근거를 둔 녹림군과, 이듬해인 18년 산동 낭야( )의 번숭(樊崇)을 우두머리로 하여 결집해 눈썹을 붉게 칠해 표시로 삼은 적미군이다. 모두 기아에 굶주린 가난한 농민이 중심으로 순식간에 수만명의 대군으로 늘어났다.이처럼 농민이 들고 일어나자 각지의 호족이나 지주들은 각기 자위를 위해 무장했는데 그 중에는 농민군과 협력하여 왕망정권을 타도하기 위해 일어난 것도 있었다. 특히 강력한 것은 남양(南陽,하남 호북)의 호족으로 한왕조와 혈연관계가 있는 유인(劉 )과 유수(劉秀)의 형제에게 모인 집단이었다.그들은 녹림군과 연합하여 10만여 명의 세력이 되자 농민으로부터 차츰 지도권을 빼앗아 23년에는 일족 중 유현(劉玄)을 임시 황제로 세우고 연호를 경시(更始)로 바꾸고 원(寃, 南陽市)에 본거지를 두었다. 왕망은 이에 42만에 달하는 대군을 파견했지만 곤양(昆陽)에서 대패를 당해 치명적인 타격을 받았다.경시제 유현은 곤양의 싸움 후 유능하고 실력이 있는 유인에게 지도권을 뺏길까 두려워하여 그를 죽이고 동생인 유수는 목숨은 살려 하북(河北)평정을 맡겼다. 그리고 서정군(西征軍)을 일으켜 장안을 공격했다. 이때 장안 성내의 시민도 봉기군에 호응해 들고 일어났다. 왕망은 불타는 궁전을 버리고 도망가다 결국 살해되었다. 때는 23년 10월로 신왕조는 왕망 일대로 겨우 15년만에 멸망해 버렸다.경시제는 수도를 장안으로 옭겼으나 그 생활은 매우 어지러워 정부란 이름뿐이고 질서도 없었다. 점차 인심을 잃어 왕망에 고통을 당했던 장안의 시민도 오히려 왕망시대를 그리워하기조차 했다고 한다. 이때 왕망정권을 타도하는 데 협력해 왔던 적미는 유분자(劉盆子)를 천자로 추대하고 관중으로 진격하여 25년에는 경시제를 죽이고 정권을 탈취했다. 그러나 20만이나 되는 농민군은 통제가 없고 약탈을 멋대로 하여 경시제와 마찬가지로 신망을 잃었다.그때 유수는 하묵일대를 진압해 독립한 강대한 세력을 구축하고 있었다. 25년 6월에는 장수들에 의해 추대받아 호( )에서 황제의 위에 올라 연호를 건무(建武)라 정하고 10월에는 낙양을 공격하여 그곳을 수도로 삼아 한제국을 재흥시켰다. 왕망에게 찬탈되기 이전의 한을 전한이라 하고 유수가 재흥한 한을 후한이라 하여 구별하는데 유수는 후한 초대 황제로 광무제(光武帝)라 불린다.광무제 유수는 낙양에 본거지를 정하자 적극적으로 천하평정에 나섰다. 먼저 식량이 모자라 동방으로 물러간 적미의 군대를 의양(宜陽)에서 기다려 항복시켰고(27년), 나아가 각지에 할거하고 있던 대소 세력을 하나씩 타도하고 최후까지 남았던 사천의 공손술(公孫述)정권을 36년에 평정하여 전국을 통일했다. 이리하여 녹림이나 적미등 광범한 농민봉기에 의해 개시된 반왕망의 싸움에서 승리한 것은 결국 호족지주인 유수로, 후한왕조는 통일왕조로서 계속 중국에 군림하게 되었던 것이다.5. 유 래광무제는 후한의 초대 황제로 이름은 유수(劉秀)이며, 전한(前漢) 고조(高祖) 유방(劉邦)의 9세손이다. 그는 황제위에 올랐으나 적미(赤眉)를 비롯하여 왕망 때부터의 유적(流賊)들이 날뛰고 있어서 옥좌에 편히 앉아 있을 틈이 없었다. 광무제는 먼저 적미를 토벌하기로 했다.적미는 유분자(劉盆子)를 황제로 추대하고 있었으며, 광무제는 등우(鄧禹)와 풍이(馮異)를 보내어 적미를 공격하였으나 전세가 불리해져 그가 몸소 출진하여 가까스로 항복을 받아냈다. 광무제는 항복한 적미의 잔병 10여 만이 뤄양(洛陽)으로 오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대장 번숭(樊崇)이 유분자와 함께 웃통을 벗어 스스로를 벌하는 모습으로 항복해왔다.
    인문/어학| 2001.12.06| 2페이지| 무료| 조회(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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