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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 경제사, 영국] 영국의 산업혁명
    영국의 산업혁명: 개념과 혁명성을 중심으로일 반 대 학 원경 제 학 과200230173이 상 무Ⅰ. 서 론산업혁명(Industrial Revolution)은 경제사적으로 상당히 중요한 사건임에 틀림없다. 특히 산업혁명은 학문적 관심뿐만이 아니라 경제성장 이라든가 공업화라는 현실적 관심과도 관련되어 있다. 하지만 산업혁명이라는 용어 자체에서부터 출발하여 왜 1770-1830년의 기간 동안 영국에서의 사회변화를 두고 혁명이라는 용어가 적합할 정도로 많은 변화가 있었는지에 관한 많은 의문들이 제기되고 연구되었다. 특히 산업혁명이 연속성을 가지고 있는지 단절성을 가지고 있는지는 최근까지도 논쟁이 끊이지 않는 분야이기도 하다.따라서 이 글에서는 새로운 것을 밝히기 보다는 이제까지의 산업혁명에 관한 연구들이 대부분 포함되어 있는 Joel Mokyr의 “The British Industrial Revolution”과 김 영철의 “영국 산업혁명의 혁명성 : Crafts-Landes 논쟁을 중심으로”을 중심으로 글을 전개하고자 한다.Ⅱ. 산업혁명의 개념에 관한 논쟁1. 산업혁명이라는 용어의 기원산업혁명이라는 용어의 기원은 1830년 이전으로 추정되지만 그 용어가 대중화 된 것은 1884년 Arnold Toynbee의 『산업혁명에 대한 강의(Lectures on the Industrial Revolution of the 18th Century in England)』가 발행된 이후라고 추정되고 있다. 이 곳에서 Toynbee 는 “산업혁명을 1760∼1830년 사이에 영국의 경제, 사회를 급격하게 바꾸어 놓은 총체적인 변화”, 그리고 “이전에 부의 생산 및 분배를 지배하고 있던 중세적 규제에 대신해서 경쟁이 나타난 것”이라고 파악하고 그의 주요내용을 다음과 같이 나타내고 있다.첫째, 전체로서의 인구가 급속히 증가하는 속에서 농업인구는 상대적 및 절대적으로 감소하는 한편 도시인구가 크게 증가했다는 것이다. 둘째, 공동경지제의 감소, 공동지 및 유휴지의 대규모 인클로우저, 그리고 적 부의 양적 증대라고 하는 경제과정으로서만이 아니라 그와 함께 사회관계의 급격한 변화를 가져온 거대한 사회혁명(a great social revolution)으로 인식하였다. 하지만 토인비는 산업혁명이 경쟁을 통해 생산력의 증대를 초래하는 거대한 사건이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가내공업에서 공장제 공업으로 변환하면서 사회 분위기가 금전적 이익을 추구하고 배분적인 측면에서도 과거에 없었던 불평등이 초래되는 등 노동자의 경제적 지위를 하락하게끔 한 사건이라고 주장하면서 산업혁명에 대하여 비관적인 시각을 취하고 있었다.그 이후 산업혁명이라는 용어는 커닝엄(W. Cunningham), 애슐리(W. J. Ashley), 망뚜(Paul Mantoux), Sidney and Beatrice Webb, J.L and B. Hammond 에 의해서 사용되고 연구되었다. 이중 특히 망뚜는 토인비의 산업혁명에 대한 개념을 학문적으로 보다 구체화시키고 보다 자세한 내용을 포함시킴으로서 산업혁명이 근대 영국경제사의 기본적 개념으로 정립되고 보급되게 하는 역할을 하였다. 또한 토인비의 산업혁명에 대한 개념은 웹과 해먼드를 통해서 그 후의 산업혁명 해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2. 산업혁명의 개념에 대한 비판산업혁명이라는 용어 자체에 대하여 “너무 막연하다 또는 갑작스런 변화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이유로 이의 사용에 대하여 여러 가지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이렇게 된 계기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했던 것처럼 영국의 산업혁명이 초기단계에서 경제성장이 빠르지 않았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부터이다. 하지만 산업혁명이란 용어는 경제성장에 대한 관념을 수십 년이나 앞당기게 하였고 그 시대의 국가 소득을 보더라도 산업혁명이라는 개념을 포기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Jonathan Clark 과 같이 이를 부정하는 학자들은 “1832년 까지 영국은 산업혁명은 물론 혁명이라 불릴만한 것을 경험하지 못했으며 역사가들은 단지 그림자만 쫓아가고 있을 뿐이다”라고 하면서 산업혁명이라는 용되는 충분한 이유는 되지 못한다. 1760∼1830년은 70년 이라는 긴 기간이지만 이 기간에 발생한 변화를 그 이전의 동일 기간과 비교해 보면 변화가 상당히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중요한 것은 변화의 발생 그 자체가 아니라 변화율의 증가 이다. Jones는 이에 대하여 1750년 이전에는 고정기술, 빈약한 자본, 빈약한 노동 이동, 인구증가와 생활수준의 저하가 악순환 되었지만 그 이후의 기술 진보는 사회를 완전히 다른 경제궤도로 옮겨 놓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Paul Mantoux는 “산업혁명의 효과는 아주 거대하다. 따라서 그 어떤 정치적 혁명도 이와 같은 광범위한 효과를 내는 것은 불가능하다”라고 평가하였다.Ⅲ. 산업혁명의 급진성과 점진성에 관한 논쟁산업혁명을 언급하면서 가장 논쟁이 많은 부분중의 하나가 바로 산업혁명의 혁명성이다. 즉 산업혁명을 혁명이라고 언급할 정도로 사회적으로 큰 변화를 야기하였는지가 논쟁의 핵심이다. 일부에서는 정치적 혁명과 비교하여 어떤 큰 결과가 수반되지 않았기에 산업혁명의 혁명성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따라서 산업혁명의 혁명성은 꼭 집고 넘어가야 할 필요가 있다. 이에 대하여 계명대학교의 김영철 교수는 『영국 산업혁명의 혁명성』이라는 논문에서 “영국의 산업혁명이 혁명적이라고 불리어져도 합당할 역사적 구체성을 내포하고 있는 가라는 차원에 관한 것으로서 이는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났다고 하는 18세기 중엽에서 19세기 중엽의 기간에 역사적인 관점에서 단절(discontinuity)라고 할 만한 급격한 변화를 경험하였는가의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따라서 이 글에서는 산업혁명 기간 동안 영국의 경제성장이 혁명이라고 일컬어 질 만큼 단절이 있었는지 아니면 혁명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의 변화가 없었는지를 살펴보기 위하여 Crafts-Landes 논쟁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1. 산업혁명의 연속성과 단절성산업혁명은 경제적 측면에서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이런 변화를 Moky는 크게 사회 변화설(후 인류사에 있어 경제성장이 보편적인 경제현상이 되었다는 사실에서 영국 산업혁명의 단절성을 파악하고 있다. 이들의 주장은 단적으로 특허건수에 대한 정량적 분석을 근거로 하여 1750년대 후반에 급격한 상승이 이를 단적으로 나타내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산업혁명 기간을 두고 “혁신의 시대 (evolutionary epoch)”와 같은 용어를 사용하기도 한다.반면 혁명의 연속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주로 거시경제설을 주장하는 학자들이다. 즉 1830년 이전의 경제성장은 이전에 생각했던 것처럼 빠르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또한 19세기 중반에도 생활양식이나 산업구조 등 경제생활 전반에서 18세기 중반과 비교하여 크게 다를 게 없었다는 사실을 중심으로 하여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이들은 극단적으로 “산업혁명은 존재하지 않으며 ………….. 역사가들은 그림자를 쫓고 있다”라고 주장하면서 산업혁명의 단절성을 부정하고 있다.단절성산업혁명의 연속성을 주장하는 학자들이 대게 거시 경제설을 주장하는 학자들이었다면 단절성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기술 진보설을 주장하는 학자들이다. 대표적인 기술 진보설 학자 중 한 사람인 Landes는 산업혁명을 기계에 의한 인간의 기술과 힘의 대체, 화석 연료나 증기기관과 같은 비동물적 동력의 원천의 개발, 철과 같은 새로운 재료의 사용, 공장제로 불리는 새로운 생산양식의 도입과 전파”로 정의하고 있다. 즉 기술 진보설 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산업혁명을 기술혁신에 의해 추진된 생산기술의 급속한 변화와 그 결과 초래된 생산성 향상을 핵심적 요인으로 인식한다. 그리고 영국만이 가진 독창성과 특수한 환경으로 인해 다른 나라가 그대로 모방할 수 있는 모델은 되지 못했지만 산업혁명의 성공적인 수행여부에 따라 지구상의 국가의 상대적 부와 권력을 크게 변화시켰다는 의미에서 기술학파들은 영국 산업혁명을 전세계적인 충격을 수반한 이류사의 중대한 단절로 이해한다.이들은 특허건수에 대한 정량적 분석이 1750년대 후반에 급격한 상승이 이를 단적으로 나타내고 있다고 주장던 1700-1760년 에는 국민소득 증가율이 연평균 0.44%였고 산업혁명 기간이었던 1760-1800년 0.52%, 1800-1830년 1.61%, 1830-1870년 1.98%를 보여주고 있다. Deane & Cole의 추계를 보완한 Crafts의 추계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확인 할 수 있다. 영국 산업혁명 중 일인당 국민소득과 산업생산 추이(단위 : %)국민소득 (per cap) 산 업 생 산 (Deane &Cole) (Crafts) (Deane &Cole) (Crafts) 1700-1760 0.44 0.3 0.74 0.62 1760-1800 0.52 0.17 1.24 1.96 1800-1830 1.61 0.52 4.4 3.0 1830-1870 1.98 1.98 2.9이 표에서 국민소득을 보면 Crafts의 수치는 산업혁명 기간에 낮다는 것을 알 수 있고 Deane & Cole의 결과는 1800년 이후 높아진 것을 알 수 있다.Crafts는 극단적인 연속적 입장에서 벗어나 산업혁명 기간 동안 영국은 어느 정도 빠르게 변했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단절성을 주장한 기술 진보설을 주장하는 학자들과 마찬가지로 기술의 변화와 이것이 실제 산업생산과 국민소득에 영향을 미치는 시기 사이에는 gap이 발생했기 때문이라고 하고 있다. 다시 말해 저성장에 대해 생산성 증가와 기술진보는 cotton, wool, iron 등과 같이 비교적 적은 영역에서만 작용하였고, 그 나머지 부분에는 별 영향을 미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Ⅳ. 산업혁명의 급진성과 점진성에 관한새로운 평가1. Joel Mokyr이와 같이 산업혁명의 급진성과 점진성에 대한 논의는 오랜 기간 동안 자주 논의되어 오고 있다. 이에 대해 Mokyr는 “The British Industrial Revolution”에서 산업혁명시기의 영국 경제를 두고 2개의 경제가 공존하고 있는 『2중 경제(dual economy)』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고 말하고 있다. 즉 한가지는 낮은 생산성과 자본-노동 비이다.
    경영/경제| 2003.07.10| 12페이지| 2,000원| 조회(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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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지원과 홍대용의 실학사상연구 평가A좋아요
    Ⅰ. 서 론박지원과 홍대용은18세기 사상적으로는 공리공론적인 성리학 일변도의 당시 사상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경제적으로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인하여 농민경제가 파탄된 조선조 사회를 구제하기 위하여 실사구시(實事求是)와 이용후생(利用厚生)의 실학을 강조하고 나온 학자들이었다.특히 이들은 당시 청조로부터 유입된 고증학과 서학의 영향을 받아 타락하고 뒤떨어진 당시 사회를 구제하고 시정하기 위하여 선진문물의 수입을 강조하였을 뿐만 아니라 외래문화의 도입에 있어서도 주체적인고 객관적이며 합리적인 입장에서 받아들일 것을 역설한 학자들이다.따라서 이 글에서는 당시의 실학사상을 개괄적으로나마 살펴본 후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살펴봄으로써 이들의 사상적 배경을 밝히고, 각각의 사상적 측면을 고찰해 봄으로써 이들의 사상이 오늘날 어떤 교훈을 주는지를 밝혀 보도록 하겠다.Ⅱ. 실 학(實 學)실학은 조선후기에 출현한 새로운 학문·사상의 한 경향을 지칭하는 개념이다. 조선사회는 개국 후 200여년이 경과하면서 전반기의 안정된 체제가 동요하기 시작하였고, 왜란과 호란으로 사회적 생산력의 저하와 사회질서의 혼란이 야기되었다. 이를 만회하고 나아가 사회성격의 질적 전환을 이루어가는 과정에 새로이 형성된 사상·학문이 실학이다. 실학의 시대는 중세로부터 근대로의 전환기로서, 스스로의 전통을 확립하고 전수하는 과정에 많은 곡절을 겪었던 시대이다. 이러한 시대성격을 반영한 실학 또한 복잡하고 불분명한 양상을 띨 수 밖에 없었고, 따라서 연구가 시작된지 60여년이 지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그 정체성이 충분히 해명되지 않고 있는 상태이다.실학에 대한 연구는 식민지시대 일부 지식인들에 의해 이른바 ‘조선학운동(朝鮮學運動)’의 일환으로 시작되었다. 정약용·이익·홍대용·박지원 등, 경세에 뜻을 두고 실질을 추구한 조선후기 학자들의 저서·사상 등이 속속 소개되면서, 1934·5년경에는 이들의 학문·사상을 우리는 ‘實學’이라는 개념이 확립되었다. 해방과 분단 이후 실학연구는 남·북한 학계 모두에서 각의 일반적인 경향과 마찬가지로 주자에 대한 존중이 대단하였다.박지원이 열하의 대학관에 묵고 있을 대, 중국의 학자 와 주자학을 논하는 자리에서 중국의 학자가 중국인이 문약(文弱)한 것은 주자의 책임이라고 말하니까, 그는 “朱子는 千古의 義理를 지키는 主人인데 義理가 이기는 곳에는 天下에서 더 强할 수 없겠거늘, 文弱한 것을 무얼 걱정합니까?”하고 말하였다. 그러니 그는 文弱의 원인은 주자학의 탓으로만 돌리지 않았음을 볼 수 있다.그러나, 그는 우리가 국조 이래로 오로지 유교만을 숭상하고, 타학을 이단시하여 배척하였던 것을 파탄의 근원으로 보았다. 즉 사대부들이 이단을 사문란적(斯文亂賊)이라 하여 엄하게 배척하므로, 창의적인 학자가 나올 수 없어 이단지학(異端之學)을 볼 수 없다고 개탄하였다.근래의 학자들이 근세조선의 주자학을 마치 공리공론의 무용지물로 몰아치우고 당재의 발생요인 내지는 조선후기 사회의 정체요인을 전적으로 주자학에 돌리고 있지만 위에서 기술한 바와 같이 박지원은 주자학만을 숭상한 우리나라 유학자들의 편협한 학문적 태도를 비판했을 뿐이다.2. 과학주의 사상(科學主義 思想)한편 서양문물과 서양사상의 전래는 지금가지 성리학적 학풍에만 치중하던 당시 조선조 학자들의 새로운 관심을 불러 일으키었으며, 실사구시(實事求是)의 학풍을 일게 하였던 것이다.이러한 서구의 문물과 사상은 해마다 중국 연경에 파견되는 사신들에 의하여 조선에 간접적으로 유입되게 되었다.일찍이 인조9년 정두원은 명으로부터 서양식 화기, 천리경, 자명종등과 Matteo Ricci의 천주서, 서양풍물기, 천문도, 만국전도 등을 가지고 귀국하였으며, 그후에도 연경으로부터 시헌역법 등에 관한 서적을 수입하였고, 병자호란으로 연경에 인질로 갔던 인조의 장남 조현세자는 신부 아담샬(Adam Shall)과 교류하여 과학서적과 천주교서등을 가지고 귀국했던 것이다.이러한 서양문물과 서양의 사상은 실학자들에게 보다 경험적이고 실증적 인식의 변화를 가져오게 하였다.박지원은 서양의 자연과학인 천문학·지리학에 湛軒 洪大容)1. 홍대용담헌 홍대용(1731-1783)은 대표적인 조선후기 실학자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지금의 충남 천안시 수신면 장산리에서 나주부사를 지낸 홍력(洪礫)의 아들로 태어나, 바야흐로 도시적 환경이 싹트던 서울과 고향을 오가며 생활하였다. 그는 노론 계열의 가문에 속했고, 12세부터 당시 락학(洛學)의 종장(宗長)이자 자신의 당고모부인 김원행(1702-1772)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그는 35세에 삼촌인 홍억(洪檍)을 따라 북경을 여행하였고, 44세부터 음보(陰補)로 익위사시직(翊衛司侍直)·태인현감(泰仁縣監)·영천군수(榮川郡守) 등의 관직을 지냈다. 그는 이러한 가계(家系)와 학맥(學脈)·경험(經驗)을 바탕으로, 북학파의 실학사상을 특히 철학이론적 측면에서 대변하는 인물이 되었다.2. 홍대용의 실학사상1. 실학론(實學論)에서 고학의 실제 의미가 어떤 것인지를 짐작케 하는 언급으로는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나는 십수 세부터 고학에 뜻을 두어 장구(章句)를 일삼는 우활한 유자(儒者)가 되지 않기를 맹세하고, 아울러 군국경제지업(軍國經濟之業)을 흠모하였다.”고 한 구절이다. 여기에서 고학은 장구지학(章句之學), 즉 경전을 축자적으로 이해하고 암송하는 방식에 직접 대비되고 군국경제의 일 즉 국가의 경영 및 백성의 구제와 연관되는 것을 의미하였다.다른 하나는 홍대용의 친구인 이송(李淞: ?-?)이 홍대용의 묘표(墓表)에서 “유독 예 육예의 학문에 뜻을 두었다”고 말한 구절이다. 이송은 계속하여 ‘옛 육아의 학문(古六藝之學’을 상수(象數)와 명물(名物), 음악(音樂)의 정변(正變), 천문(天文)의 전차(纏次), 일월(日月)의 왕래(往來), 상형제기(象形制器), 점시측후(占時測侯) 등에 관한 학문으로 부연하였다. 이것들은 주로 자연 과학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실제로 예(禮), 악(樂), 사(射), 어(御), 서(書), 수(數)의 옛 육예를 모두 포괄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한편으로 육예가 일상 생활에 유용한 기예 혹은 기에 관한 학문을 대학은 이단으로 분류되는 육구연의 학문이 인간 내면의 수양에 치중하여 성과를 얻는 것만 못하다고 말하였다. 여기에는 내면의 수양이 비록 학문의 전부라고 할 수는 없더라도, 반드시 필요하고 중요하다는 인식이 바탕에 깔려 있다.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실심이 실학의 근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다음으로 실사(實事)는 어떠한 것인가? 이것은 위의 분류대로 읍양(揖讓)·승강(昇降) 등 윤리의 영역과 율력(律曆)·산수(算數) 등 물사의 영역으로 나누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홍대용은 모든 유학자가 그렇듯이 윤리를 중시하였다. 그는 속인들은 물론이고 이른바 학자들도 윤리를 다하지 못하고 있다고 개탄해 마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연행중 중국인과 학문에 관해 논하면서 학문을 의리지학(義理之學)·경제지학(經濟之學)·사장지학(詞章之學)으로 나누고 이 세 가지가 모두 필수적이지만 그 가운데서도 의리지학이 근본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이때의 의리지학이란 일반 이론의 학문 즉 철학으로 폭넓게 해석할 수도 있지만, 당시의 일반적인 용례를 따를 때 철학적 도덕학 정도로 풀이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그런데 홍대용은 윤리 문제와 관련하여 매우 주목할 만한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읍양·승강·변두와 같은 윤리 도덕 규범은 시속을 따르면 그만일 뿐, 굳이 옛날의 궤적에 연연해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맹자도 시속과 편리에 따라 예를 행했고, 주공의 제도나 주희의 예도 자기 시대의 풍속에 따른 것이라고 말하였다. 심지어는 당시까지도 붕당 사이에 예민한 문제로 남아 있던 기해예송(己亥禮訟)과 관련해서, 어느 복제를 따르냐의 문제는 국가의 흥망이나 현(賢)·사(邪)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라고 단언하였다. 이러한 말 속에는 윤리 도덕 규범의 시대적 상대성이라는 관념이 깊이 각인되어 있다. 그런데 당시의 예학은 고례에 천착한 것이어서, 실제로는 낡은 도덕 규범의 복구를 목표로 하는 것에 불과할 뿐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예 실천의 절박성에도 불구하고, 예학은 홍대용의 실학 구 자연관의 특징은 오히려 그러한 상수학의 틀을 벗어나는 데서 찾아져야 한다. 어떤 면에서는, 그가 정성적 사고방식으로부터 정량적 사고방식으로 변화해가고, 재이론으로부터 벗어나 자연의 객관적 이치를 탐구하는 데 주력하였던 점도 전통적 자연관을 표징하는 상수학을 탈피함으로써 가능했던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3. 인간관(人間觀)1) 인물성심상동론(人物性心相同論)홍대용은 ‘心은 영험한 것’이라는 규정을 절대화하였다. 이 규정은 心이 특별히 순수한 기로 구성된 신령한 것이라는 생각과 연관되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心에 대한 긍정적 시각은 心을 본래적으로 선한 것 이라고 보는 心本善의 주장에서 두드러진다. 理本善의 부정을 통해서 性善을 부정한 그임을 감안하자면, 心本善은 특별히 주목할 만한 명제이다. 이 명제는 그가 윤리적 실천의 심성론적 근거를 性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라 心에서 구한다는 의미를 갖는 것이다. 그런 만큼 그의 심성론은 性論보다 心論의 비중이 강화될 수 밖에 없었다. 그의 性論이 心論에 비해 논의의 분량이 적다는 점이나, 그나마도 실질적으로는 자연계의 생명원리의 보편성을 주장하는 데 한정되었던 점 들은 性論의 약화와 心論의 강화를 반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2) 인물무분론(人物無分論)人物無分論은 人物性心相同論을 계승한 것이되, 논의의 전개방식이나 논지의 측면에서 일정한 차이가 있는 것이었다. 이 차이는 그의 사상형성의 추이를 감안할 때 실학사상 이전과 이후를 가름하는 차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론 혹은 사상의 논리적 연관을 중심으로 말하자면, 그는 人物性心相同論으로부터 人物無分論으로 옮겨감으로써 동일한 사고방식의 華夷無分論에 다다르고, 華夷無分論을 통하여 華夷論的 세계관을 부정할 수 있게 됨으로써 北學思想을 위시한 실학사상을 형성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논리적 연관이 그렇다는 것일 뿐, 실제로는 이미 실학사상을 형성한 그가 人物性心相同論에서 자신의 사상을 정당화할 근거를 발견했다는 추론이 더 설득력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24
    사회과학| 2001.05.24| 24페이지| 2,000원| 조회(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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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자상거래의 비즈니스모델 평가A좋아요
    Ⅰ. 서 론 (전자상거래와 인터넷 비즈니스모델)전자상거래와 인터넷 비즈니스는 엄밀하게 따지면 다른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인터넷 비즈니스는 제품을 기획하고 개발, 제조, 생산 유통하는 것뿐만 아니라 소비자에게 이어지는 가치사슬의 모든 과정이 인터넷과 접목하는 것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반면에 전자상거래는 제품이나 정보 혹은 서비스를 양자 간 전용회선이나 인터넷을 통해 판매하고 구입하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기업간 전자상거래를 비롯한 모든 거래가 인터넷을 통하여 이루어질 전망이기 때문에 전자상거래와 인터넷 비즈니스는 동일한 개념으로 나아가고 있다.그렇지만 전자상거래가 기본적으로 인터넷을 바탕으로 하는 한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이 두 가지를 서로 다른 개념으로만 파악할 수는 없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인터넷 비즈니스와 전자상거래를 연결하는 개념으로서 전자상거래 비즈니스 모델을 파악하도록 하겠다.또한 전자상거래는 기본적으로 이윤추구가 근본 목적이고, 또한 인터넷 비즈니스는 이를 실현키 위한 한 벙법이다. 따라서 사례를 통하여 인터넷 비즈니스의 적용부분을 살펴보도록 하겠다.Ⅱ. 전자상거래 사업모델의 의의1. 전자상거래 사업모델의 정의비즈니스모델이란 어떤 상품과 서비스를 누구에게 어떻게 판매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전자상거래 비즈니스모델이란 인터넷, EDI, EFT 등의 각종 정보기술을 활용하여 어떻게 수익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모형이라고 할 수 있다.이러한 전자상거래 사업모델에는① 제품, 서비스, 정보의 흐름과 함께 다양한 사업주체 및 이들의 역할에 대한 구조② 기업이 고객가치를 창조하여 고객에게 기업이윤을 만들어내는 절차에 대한 설명③ 다양한 사업주체들의 잠재적 효익에 대한 설명④ 수익원천에 대한 설명이 반영되어야 한다.일반적으로 전자상거래와 인터넷 사업은 B to C거래에서의 사이버 쇼핑몰처럼 서로 겹치는 부분도 많다. 그러나 B to B 전자상거래의 경우 인터넷을 이용하지 않고 EDI, CALS등의 다른 정보기술이 활용되고 있다는 점 소비자와 기업 사이의 거래인터넷 쇼핑몰기업 대 정 부정부조직에서 전자매체를 통해 기업에서 물품을 조달하거나 법인세, 부가세 등을 징수하는 것조달 EDI정부 대 소비자정부와 소비자 사이의 거래로, 행정 전산망은 이런 거래를 전자적으로 처리하기 위한 것임그러나 일반적인 경제주체인 기업과 소비자 사이의 거래만으로 국한시켜서 살펴보면 거래되는 상품의 유형에 따라 모두 여덟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여기서는 판매대상으로만 도식화시켜 네 가지로 나눈다.① B to B (Business to business)인터넷이 활성화 되기 이전에도 기업 간 전용회선을 통한 상거래는 상당히 보편화되어 있었다. 인터넷 비즈니스의 발전화 함께 인터넷을 이용한 기업 간 거래는 더욱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 지고 있는데, 단일한 상품 종류에 많은 양의 거래가 이루어진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기업간 전자상거래는 판매자, 구매자, 중계자 등 시장주도자에 따라 세가지로 나누어진다.② B to C (Business to Consumer)인터넷에 사이버 상점을 만들고 여기에 인터넷 이용자들이 고객으로 들어와 물건을 사가는 형태이다. 비싼 임대료와 직원급여, 유지비 등의 고정비용을 소비자에게 보상해 줄 수 있기 때문에 일반상점에 비해 가격경쟁력이 높은 편이다. 특히 공동구매를 할 경우에는 구매자의 숫자에 따라 더욱 싼 가격으로 살 수 있다.가격경쟁력이 높다고 하지만 고객의 입장에서는 제품을 직접 비교할 수 있는 방법이 애매하며, 가격과 품질을 비교하여 분석할 수 있는 데이터도 부족한 편이다. 따라서 고가품의 구매나 대량구매보다는 아주 다양한 품종의 상품이 소량으로 판매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③ C to B (Customer to Business)인터넷을 통해 새롭게 만들어진 형태로 능동적인 소비자가 기업을 대상으로 자신이 제시한 가격과 서비스를 조건으로 구매하는 거래형태이다. 소비자가 직접 상품의 가격과 조건을 정할 수 있는데, 이런 거래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판매자와 구매자가 다양한 채널을 통해 의 기술발달로 양방향이 가능해지고 갈수록 분명하고 다양해지는 소비자의 이해를 해결하려는 사업전략이 결합되어 만들어진 비즈니스 모델이다.판매자는 많은 수량의 물건을 일시에 판매할 수 있는 박리다매의 효과를 얻을 수 있고, 구매자는 판매자에 대한 교섭력을 가지면서 적극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실현할 수 있다.③ 모델설정시 고려사항소비자의 욕구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하며, 고객 요구사항의 미세한 부분까지 충족시킬 수 있는 우수한 검색엔진을 제공하여 고객이 사이트를 이용하는 데 불편이 없도록 해야 한다.4) C to C (Customer to Customer)개인 소비자와 개인 소비자가 서로 판매와 구매 상대가 되어 자신의 물건을 상품으로 내놓고 거래하는 벼룩시장의 형태이다. 각각의 고객들이 효과적으로 상대방에게 상품을 홍보하도록 배려해야 하며, 판매자와 구매자 간의 신뢰구축과 상호교류를 촉진해야 되는데, 사이버 커뮤니티 형성도 효과적인 방법이다.① 거래형태소비자와 소비자가 인터넷을 통하여 자신에게 효용가치가 떨어지는 물품을 제공하고 구매하는 형태이다. 일종의 벼룩시장으로 모든 중고물품이 거래의 대상이 된다.② 모델특성개별 판매자와 구매자가 상호작용을 통해 운영되는 공간이다. 이 공간을 이용하는 이용자는 효용의 측면과, 서로의 것을 나루고 교환하면서 정서를 공유하기 위한 두 가지의 측면이 존재한다.③ 모델설정이 고려사항단순한 물물거래의 공간만으로 위상을 설정하면 일정 단계 이후부터는 정체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여기에 모여드는 이용자들의 공동의 관심사와 지향점을 이끌어 내야 한다.2. 서비스를 판매하는 경우1) B to B(Business to business)사업자와 사업자가 디지털 형태의 상품을 판매하고 구매하는 비즈니스 모델로, 주로 기업 간 정보거래와 조사, 통계거래가 주를 이룬다. 기업과 기업과의 거래는 사전에 해당 기업에 대한 충분한 인지도와 신뢰가 전제되었을 때만이 가능하다. 인터넷 비즈니스가 활발해지면서 더욱 수요와 공급이 더욱 늘어나고 있는 분야로 중소기업 상을 형성할 시장에 대한 사전조사를 해야 하며, 이를 바탕으로 판단 근거를 삼아야 한다. 우리 나라에서 인터넷이 보급되기 시작한 1995년만 해도 인터넷 쇼핑몰은 그 말만으로도 새롭고 신선했다. 그러나 초기 쇼핑몰은 많은 매출을 올릴 수 없었다. 우선 인터넷 이용자 수가 적었는데, 이는 고객으로 확보할 대상이 그만큼 작았다는 의미이다. 주요 고객은 20-30대의 인터넷 이용자층으로, 한정된 고객층을 대상으로 하면 판매상품도 달라진다. 판매대상과 판매상품을 결정할 시장에 대한 사전조사는 광범위할수록 정확도가 높다.비즈니스모델을 설정하기 전에 판매하거나 취급할 상품의 형태를 우선 결정해야 한다. 즉 물리적인 형태의 제품으로 판매하는 것이 유리한지 디지털 형태가 유리한지를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물리적 형태의 상품을 판매할 경우에는 창고를 가지고 직접 상품을 판매, 배달까지 할 것인지, 아니면 주문만을 책임지고 일정 금액을 취할 것인지 들의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데, 여기서 다양한 거래형식이 생긴다. 상품의 형태가 정해지면 이에 따라 판매대상을 분류하고 세분화하는 구체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설정하고 판매전략을 세운다.잘못된 모델을 설정했을 경우 이에 맞추려고 하기보다는 비즈니스 모델을 검토하고 수정하여 올바르게 잡는 것이 필요하다. 비즈니스 모델이 모든 사업전략을 맞추려고 하다 보면 현실 운용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럴 경우에는 현재 설정한 비즈니스 모델이 어떤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지 파악하여 부분적이거나 전면적으로 수정하는 것이 더욱 현명할 수 있다. 낡은 틀에 맞추려다 보면 변화하는 구매자의 미래에 대한 욕구를 담지 못하기 때문이다.비즈니스 모델은 변화하는 비즈니스 환경에 따라 새롭게 변화하고 생성되거나 소멸한다. 인터넷 비즈니스 환경은 변화주기가 엄청나게 빠르다.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 연구개발은 자칫하면 주도권을 경쟁업체에 빼앗기기 십상이다. 장지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전망을 가진 모델을 설정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자본력이 약한 벤처기업에게는 현재에 적 국내 판매를 하고 있다.•와우북은 책 내용 중 4∼8페이지 분량을 스캠데이터로 작업해 인터넷에서 책을 직접 들춰보는 효과와 느낌을 갖도록 했다. 또 독자가 도서 상세정보 하단에 독후감을 적고 5단계 평가항목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도록 하는 등 독자 참여공간을 많이 확보했다. 하루 평균 방문객 수가 2000여명에 이르고 매출액도 3000만원에 이를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LG홈쇼핑인터넷쇼핑몰(http://www.lghs,co.kr)•지난해 4월 오픈한 이후 불과 8개월만에 9억원 이상의 괄목할만한 매출실적을 올렸다. 이번 평가에서 LG홈쇼핑은 입점한 사이버몰 정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는 데서 큰 점수를 얻었다. 사이버몰 업체의 전화번호 및 주소를 명시해 신뢰할 수 있는 쇼핑정보 제공에 노력했다. 공개게시판을 운영함으로써 방문 고객들이 스스로 사이버커뮤니티를 형성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으며 소비자 의견을 폭 넓게 들을 수 있다.•대고객 상시지원체제를 위해 콜센터 운영•휴게실이나 정보광장 등의 부가서비스도 타 쇼핑몰과 차별화된 장점. 특히 월별로 상시 기획되는 이벤트는 물론 혼수, 졸업, 입학 등 시즌별 행사와 기획상품 코너는 고개들로부터 관심을 끌고 있다. 이와 함께 제조업체에 상관없이 AS 접수 및 관리서비스를 지원하는 점도 두드러진 특징.•케이블TV의 「홈쇼핑45」를 운영하면서 쌓은 노하우는 인터넷 쇼핑몰 분양에서도 단기간에 두각을 나타내게 된 비결. 홈쇼핑 분야의 경험이나 노하우뿐만 아니라 사업영역에서 실질적인 연계가 가능한 것은 물론이다.•인터넷 접속과 동시에 상품정보의 획득이 가능하며 케이블TV의 동영상 정보를 인터넷 멀티미디어 서비스에 적용할 수 있다. 이를 통해 LG홈쇼핑은 장기적으로 인터넷TV를 통합 운영 할 계획도 있다.삼성인터넷쇼핑몰(http://www.sism.co,kr)•삼성의 야심찬 미래 비전으로써 본격 운영에 들어간 지 불과 6개월만에 9억원이라는 괄목할 만한 실적을 거둠.•삼성몰은 여러 가지 차별화된 서비스로 종합쇼핑몰 시장을 공0
    경영/경제| 2001.05.17| 13페이지| 1,000원| 조회(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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