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기 전에 나는 이 책의 중심내용이 그저 제인 구달이란 유명한 여성의 아프리카침팬지 연구행적에 대한 기록일 것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의 주된 내용이 결코 단순히 침팬지들에 대한 연구과정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희망의 이유"에 대한 메시지였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제인 구달이라는 여성에게 깊이 매료되고 존경심을 느꼈으며 책의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그녀의 메시지를 이해하고 공감하게 되었다. 이 책을 왜 제인 구달 스스로 "영적(靈的)인 자서전"이라 불렀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바로 그 제인 구달의 65년에 걸친 긴 인생 여정을 담고 있다. 그녀는 이 책에서 40년 전 자신이 세상에 소개한 곰베의 야생 침팬지들에 대한 이야기와, 그녀의 꿈을 실현시킬 수 있게 힘을 준 소중한 어머니와 아들, 그리고 고인이 된 남편의 사랑과 도움, 친구들, 동물보호와 환경보호에 선구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한 편의 영화처럼 펼쳐진다. 또한 침팬지를 통해 터득한 자연과 생명의 진리 등이 감동적으로 전해진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환경파괴, 불평등, 물질주의, 대량학살, 전쟁 등과 같은 인간이 자행하는 온갖 위험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어떻게 미래에 대해 낙관적일 수 있는가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겉보기에는 저자의 평생에 걸친 침팬지 관찰과 연구를 기록하고 있는 것 같지만, 실상은 침팬지를 매개로 하여 인류와 세계의 미래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질문한다. "우리에게 희망은 있는가" 라고. 저자의 대답은, 책 제목에 암시되어 있듯이, "희망은 있다" 이다. 이 책에서 제인 구달은 인류와 세계의 미래에 희망은 있다고 믿는 바로 그 '희망의 이유'들을 조목조목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은 결코 침팬지에 대한 생물학적 보고서에 머물지 않는다. 침팬지 연구를 통해 제인 구달은 자신이 느껴던 기쁨과 경악의 교차, 절망과 희망의 반전을 '비과학적'으로 발언하고, 침팬지 연구를 통해 "무엇인가를 공유나누는 작업"에 도달한다.'과학'이라는 단어는 흔히 복잡한 수식이나 약 냄새가 가득한 실험실을 연상시키지만 세상에는 그런 것들과는 거의 관계가 없는 과학의 영역도 있다. 이러한 영역엔 노벨상도 주어지지 않고 어떤 과학자들로부터는 부드러운 과학(soft science)라고 홀대받기도 하지만 우리가 자연을, 그리고 그 속의 생물과 인간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빼놓을 수 없는 과학의 일부분이다. 상상력과 감수성, 그리고 생명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침팬지를 연구한 제인 구달은 그러한 영역에서 이루어진 과학의 일면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그녀는 과학을 하기 위해 침팬지를 연구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그들을 이해하고 싶었을 따름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를 읽으면서 잔잔한 감동을 느끼게 된 건지도 모른다. 그녀의 책은 침팬지를 포함한‘우주 만물과 사귀고 접하는’감동에 찬 사실들로 가득하다. 이를테면 1960년 그녀는 아프리카 곰베 공원에서 침팬지들의 공동체를 발견한다. 그 뒤 제인 구달은 캠프를 치고 관찰을 시작하는데, 서로가 무섭고 낯설어서 90m 거리 안으로 접근하는데, 무려 1년이 걸린다. 제인 구달은 그 뒤 침팬지 하나 하나의 얼굴을 익히며 이름을 붙여주고, 자신이 차린 밥상(바나나 급식소)에 침팬지들이 찾아오게 만드는 놀라운 이변, 즉 '사귐' 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한다.제인 구달의 진정한 업적은 그저 침팬지의 습성과 생리를 밝혀냈다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가 동물과는 다르다는 걸 증명하려는 오만한 인간들의 수많은 노력을 무산시켰다는데 있다. 즉 기쁨과 슬픔 등의 감정, 개인의 독특한 개성, 행복과 고통, 지적능력 등이 인간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침팬지와 하나가 되는 그녀 나름의 과학 덕분에 우리는‘인간이 품성을 지닌 유일한 동물이 아니라는 것, 합리적 사고와 문제를 해결할 줄 아는 유일한 동물이 아니라는 것, 기쁨과 슬픔과 절망을 경험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육체적으로 뿐만라 심리적으로도 고통을 아는 유일한 동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어느 종교의 가르침이 이보다 더 우리를 겸허하게 만들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분명 인간은 자연계에서 유일하게 언어를 가진 동물이다. 따라서 우리는‘나는 과연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 태어났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줄 아는 유일한 동물이다. 제인 구달은 이렇게 고도로 발달된 지성을 가지게 된 인간의 특권에는 우리의 생각 없는 행동에 의해 존속의 위협을 받고 있는 다른 모든 생명체들에 대한 책임이 뒤따른다고 주장한다.제인 구달은 40 여년 간의 침팬지 연구와 보호활동을 통해 인간을 보다 풍부하게 알게 됐고 인간에 대한 희망을 발견하게 됐다. 한 예로, 네덜란드의 한 동물원에 살고 있는 암컷 침팬지는 두 마리의 수컷 침팬지가 싸운 뒤 등을 돌리고 앉아 있을 때마다, 둘 사이에 끼어들어 '털고르기' 라는 놀라운 솜씨로 화해를 주선한다. 그녀는 침팬지가 자신들의 공격적인 성향을 조절할 수 있다면, 인간도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또 어른 수컷 침팬지가 물에 빠진 동료의 새끼를 구하려다 익사했다는 사례를 밝힌다. 인간이 침팬지보다 못 할까. 침팬지는 동료 침팬지를 구하기 위해 죽을 수는 있을지언정, 친구를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버릴 것을 의식적으로 결정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인간이 자신의 목숨을 버려 정의를 지키고, 이웃을 구한 사례는 수없이 많다.제인 구달은 인류의 환경파괴와 전쟁, 이기와 탐욕을 우려한다. 그러나 이러한 잘못을 극복해낼 힘 또한 인간에게 있음을 확신한다.“나는 우리 인간들이 충분한 시간이 지나면 도덕적인 사회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과 같은 속도로 환경을 파괴한다면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것이다”.제인 여사는 '이제 곤경에 처해있는 침팬지들을 위해, 다른 동물들을 위해, 그리고 환경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할 때' 라고 강조한다. 책에는 위기를 극복하려면 한 사람 한 사람이 조금씩이라도 성인(聖人)다워지도록 노력하는밖에 없으며, 인간은 분명히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가득하다.다윈의 진화론에 대한 신봉과는 별도로 영성(靈性)에 대한 성찰 등 종교적 울림이 느껴지는 믿음을 담은 책이 이것이다. 나는 삶의 무게를 담은 자서전의 강한 흡인력을 이 책에서 느낄 수가 있었다. 그것도 논리를 생명으로 아는 서구 자연과학자 한 사람이 생명과 영성에 관한 진지한 통찰을 통해 우리 시대의 화두를 던진다는 것은 이 글을 근대과학의 어떤 변화의 징후로까지 읽히게 한다. 제인 구달의 회고는 이런 자연과학적 탐구와 정신적 방황 끝에 이뤄지는 것이라서 더욱 값진 듯 하다. 환경운동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방식 또한 감동적이다. 침팬지 데이비드와 처음 교감한 순간의 묘사라든가 세계 각국을 돌며 만난 악몽을 극복하고 '성인(聖人)에 가깝게 진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동물과 인간과 자연에 대한 사랑, 그리고 그것을 실천으로 옮기려는 마음을 자연스럽게 이끌어내고 있다. 이러한 구달의 포용력은 어쩌면 여성, 특히 어머니였기에 더욱 가능했을 것이라는 느낌도 책 곳곳에서 묻어 나온다.구달의 연구는 사람이 세상 다른 동물들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존재라는 믿음을 많이 희석시켰다.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사랑과 미움, 갈등과 협동, 더 나아가 학습과 같은 행동들이 침팬지에서도 관찰할 수 있는 것이라면 자연은 인간의 것이 아니라 인간과 동물들이 함께 살아가야할 터전이다. 그래서 요즘 구달은 실험실로, 애완용으로, 또 동물원으로 팔려간 침팬지의 복지를 향상시키고, 파괴되어가는 침팬지의 서식처 밀림을 보존하기 위해 구달 연구소를 세워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계몽운동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구달은 어린이들에게 자연과 생물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환경을 보존하는 활동, '뿌리와 가지(Roots and Shoots)' 운동에 정열을 쏟고 있다. 그녀는 실험을 하지 않는다. 지금도 묵묵히 동물들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지켜보면서, 밀림 속에서 보고 듣는 것을 기록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연구를 통해 습득한 것은 단편적인 지식이 아니라 은근하고 깊은 지혜이다. 인구폭발, 환경오염, 삼림의 황폐화 등 인류에 대한 많은 위협들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두뇌, 젊은이들의 에너지, 그리고 인간의 고귀한 영혼이 인류를 구원할 것이라고 구달은 믿고 있다.어떤 정열이 그의 인생을 그 길로 몰고 갔을까? 자서전 격인 이 책에서 자연과 인간,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하고도 깊은 영적인 정신을 확인할 수 있다. 구달은 "우리의 공격성이 침팬지와 비슷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더욱 악질적이란 사실"에서 침팬지 연구를 통해 인간이 왜 그런 식으로 행동하는가를 이해하고자 했다. 달리 말하면, 그녀의 연구는 인간이해의 또 다른 길이었으며 인간의 폭을 넘어서는 곳에서 이루어내는 성찰이었다. 그곳에서 상처를 치유하는 자연의 놀라운 힘을 발견했던 것이다. 이것이 그녀가 말하는 '희망의 이유'다. 그녀는 침팬지를 연구하며 항상 인간에 대해 생각했다고 한다. 침팬지들의 싸움을 보면서 인간만이 의도적으로 다른 생물에게 고통을 주는 종이라고 낙담하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다른 어떤 생물보다 본능을 조절할 능력이 있는 게 인간이라며 희망을 찾기도 했다. 그녀는 희망을 잃지만 않는다면 무엇이든 해결할 수 있다고 이 책 안에서 거듭 강조하고 있다.연구 10년이 지난 즈음 발견된 침팬지들의 4년 전쟁, 공격성과 잔인함에 대한 그녀의 보고는 학계뿐 아니라 그녀 자신에게도 분명 큰 혼란이었다. 왜 인간이란 종은 이다지도 파괴적인가? 왜 그렇게 이기적이고, 탐욕스럽고, 때로는 진정으로 사악한가? 인간이 가지는 즉, 민족적 배경이나 사회 경제적 지위, 정치적 확신, 종교적 믿음, 이런 것들로 패를 나누고 상대를 공격하는 행동은 인류의 도덕적, 영적 성장을 방해해 왔고 세계평화의 장벽이었다고 말한다. 인간의 이기심과 잔인성이 유전자 때문이라면 남을 생각할 줄 아는 이타적인 측면 역시 영장류가 가진 유산이고, 인간은 폭력과 사랑을 조절하여 앞으로 나가려고 하는 방향을 선택할 능력이 있다고 제인 구달은 확신하고
왜 이렇게 한번뿐인 인생살이가 만만치가 않은 걸까? 이 소설을 읽고 난 침통한 비애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대학시절 꿈 많고 똑똑하고 야심찼던 세 명의 주인공 '혜완, 영선, 경혜'는 철저히 가부장적이고 남아 선호 사상의 전통이 이어져온 우리 사회에서 우리 여성들의 가슴에 담고 살아온 쓰라린 상처와 아픔을 꼬집고 있다.옛부터 전형적인 한국 여인상은 유별나지 않고 다소곳하며, 남편을 하늘같이 섬기고, 맹자 어머니처럼 자식을 위해 이사도 마다하지 않을 만큼 정성껏 기르며, 시부모님께 지극 정성을 다하는 를 강요해왔다. 지금도 많은 여성이 스스로 현모양처가 되기를 희망하고 있으나, 옛날과 지금의 현모양처는 그 말은 같을지라도 내포하는 의미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산업화가 되기 전에는 우리의 어머니들은 육아와 아무리 열심히 해도 티도 나지 않는 집안 일을 혼자 도맡아 해오셨다. 자신의 몸치장을 위한 시간도 내기 힘들었을 뿐 아니라, 자신의 존재와 삶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나' 라는 인격체를 아예 잊은 듯 바쁘게 살아오셨고, 남편과 시부모 그리고 자식을 위해 온 정성을 쏟아 부어오셨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의 집안 일은 예전보다는 많이 편리해졌고, 가사일에 소요되던 많은 시간이 단축되어진 것 또한 사실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육아와 가사일은 여성의 몫이다. 직업여성에게도 이러한 역할은 전통적으로 당연히 여성이 해야할 일로서 예외 없이 적용된다.바쁜 현대 생활 속에서 꼭 여자만이 가족을 위해 희생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부부가 서로를 위해 또는 그 자신을 위해 그 누구도 가사일을 할 수 있고, 시간이 남는 사람이 할 수도 있는 일일 것이다.현대 여성들은 예전의 우리들의 어머니처럼 살기를 거부한다. 그들은 진정 자아를 찾고자 갈망한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수없이 많은 여성들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게 되면서 어쩔 수 없이 우리 어머니들처럼 살게 되기도 한다. 소설 속의 주인공들 또한 똑똑한 그녀들이지만 결혼을 하고, 그 나름의 이유에서 우리의 어머니처럼 살게 된다. 그러한 삶 속에서 그들은 한번도 그들에게 일어나리라곤 생각지 않았던 일들을 겪게되며, 벼랑의 끝에 내몰리게 된다.첫째 인물인 혜완은 대학 시절 남편을 만나 결혼해 다섯 살 난 아들을 둔 엄마로 살아가고 있다. 그녀는 제법 글 솜씨가 있었고 능력을 발휘하고 싶었으나 남편의 요구대로 집안에서만 조용히 살아왔다. 여자의 할 일은 집에서 살림 잘하고, 애만 잘 키우면 되는 것이라고 혜완의 남편은 주장해 왔다. 그러나 어엿이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직하기가 힘들고, 여자라는 이유로 나이에 제한을 받고, 성별의 차별을 받으며, 능력까지 의심받는 이 사회에서 아이를 다 키운 후에 직장에 다니라는 남편의 생각은 너무나 이기적인 것이다. 그녀는 아이를 낳고 반대하는 남편을 설득시켜 작지만 늘 생각해왔던 일을 하게 된다. 그러나 남편은 전통적인 남녀의 역할을 깨지 못하였고 직장을 가지고서도 아이를 키우는 것은 혜완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이중을 일을 하는 것은 여자인데도 남편은 그것조차 용납하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뿐인 아들이 눈앞에서 자동차 사고로 죽게 된다. 직장에 출근하기 위해 아이의 손을 놓는 순간, 아이가 사고를 당한 것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사고였다. 그러나 혜완은 그 모든 잘못이 자기에게 있는 듯 너무나 애처롭게 자신을 비난하고 힐난한다. 그것은 여성으로서의 당연한 모성애였을 것이다. 그러나 혜완이 고통을 이기려고 노력했을 때 남편은 혜완에게 "자식을 죽이고도 웃을 수 있는 여자" 라고까지 경멸하며 그녀를 구타한다. 이는 얼마나 혜완이 슬퍼하고 있는지 서로 대화가 없었던 탓일까? 아니면 직장 때문에 자식을 죽인 철없는 어머니에 대한 당연한 구타였을까! 둘은 결국 이혼하게 되고, '자식을 죽인 여자'라는 죄책감을 가지고 살던 혜완에게 대학시절 알고 지냈던 선우가 접근한다. 그러나 이혼녀가 총각과 가깝게 지내는 일은 주위의 따가운 시선을 받기에 충분하다. 여기서 혜완은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자 하였으나 결국 사회의 통념에 굴복하고 만다."어머니들은 딸들에게 자신과 다른 삶을 살라고 가르쳤고, 아들들에게는 아버지와 같은 삶을 살라고 가르쳤다."라는 말처럼 남성들은 어머니의 세대와는 다른 자신의 부인들이 여성의 역할에 충실하지 못하고, 사회적인 능력을 인정받고 싶어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혼돈된 세대의 혼란이 요즘과 같은 이혼, 가정 파탄의 문제들을 가져오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두번째 인물 경혜는 처녀시절 아나운서를 하던 커리어 우먼이었다. 돈과 명예에 집착하던 그녀는 선을 봐서 만난 의사와 사랑 없는 결혼을 하고 남편의 요구에 따라 아나운서 일을 그만둔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의 외도를 알게 되지만 임산부인 그녀는 감당할 수 없는 충격으로 고민하지만 이혼 후의 자신의 모습이 자신이 없어 선뜻 용기가 나지 않기 때문에 이혼을 생각하지는 않는다. 남편이 바람 피운다고 이혼한다면 세상에 이혼할 여자가 어디 한둘이겠냐고 반문하고 자위하면서 말이다.세번째 인물인 영선은 대학 졸업 무렵 학교 선배인 남편과 열렬한 연애를 하고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한다. 영화를 공부하러 남편과 함께 프랑스로 유학을 가나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둘 중 한 사람은 포기해야만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시나리오작가 공부를 하던 영선은 많은 고민 끝에 자신의 공부를 잠시 미루기로 결심하고 그때부터 열심히 돈을 벌어 남편 뒷바라지를 한다. 그녀는 미뤄둔 자신의 공부를 결국 다시 시작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행복하다고 믿고 살아가게 된다. 공부를 마친 후 남편은 한국으로 돌아와 꽤 알아주는 영화 감독이 되고 영선은 알뜰히 살림을 꾸려가며 어렵게 집을 장만한다. 그녀의 남편은 다른 여자와 어울리고 살림만 하는 영선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그제야 그녀는 자신의 존재를 완전히 잊은 채, 오직 남편만을 위해 그리고 아이들만을 위해 살아온 자신을 혐오하게 된다. 겉보기에는 평화로운 가정이지만 그 울타리 속에서 그녀는 철저히 혼자임을 느끼고 점차 신경 쇠약 증세까지 보이게 되고 만다. 남편은 그녀를 정신병자 취급하며 그녀의 고민을 들어주려 하지 않고, 그녀의 아픔은 자신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생각한다. 영선은 더욱 헤어날 수 없게 되고, 여러 번의 자살기도 끝에 결국 자신의 손으로 목숨을 끊게된다. 소설 속에서 그들은 그렇게 홀로 서기를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