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엔탈리즘과 문명의 충돌§.목 차Ⅰ. 들어가는 말Ⅱ. 오리엔탈리즘의 의미1. 오리엔탈리즘의 개념2. 오리엔탈리즘의 형성과정3. 오리엔탈리즘을 (이해하기) 위한 한정조건Ⅲ. 미셀 푸코의 담론Ⅳ. 차별의 이분법 오리엔탈리즘Ⅴ. 오리엔탈리즘의 현재적 동향1. 대중의 이미지와 사회과학적인 여러 표상2. 문화관계정책3. 동양인 동양인 동양인Ⅵ. 세계화의 본질-불평등한 세계화Ⅶ. 문명충돌과 오리엔탈리즘의 갈등Ⅷ. 오리엔탈리즘의 극복1. 탈근대사상과 문화지배2. '지배적인 지식'의 해체3. '페테로토피아'와 정체성Ⅸ. 나오면서- 동양과 서양의 대화Ⅰ. 들어가는 말3-4살 된 아이들이 축구나 야구경기를 보면 경기의 규칙을 모르기 때문에 아무런 재미를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축구·야구 경기는 인간 정신의 문화적 산물이며, 그 문화적 산물에는 그것이 만들어지고 운영되는 문화적인 문법이 있기 마련이다. 축구나 야구 경기를 재미있게 보기 위해서는 그 문법을 알아야만 한다. 축구 경기를 야구의 문법을 가지고 바라보아도 도무지 알 수 없는 수수께끼일 것이다. 문화적 문법을 알지 못한다면 그 문화의 산물들은 이해 될 수가 없다.마찬가지로 서구 문화를 만들고 변형시켜온 서구의 문화적 문법으로 동양을 바라볼 때, 동양은 이해할 수 없는 수수께끼일 수밖에 없다. 서구인들이 그들의 사유체계와 시각으로 동양의 문화를 바라보면 해독되지도, 이해되지도 않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은 '비합리적', '비과학적', '신비적'이라는 수식어를 동양에 붙이는 것이다.그러나 우리들은, 우리의 시각으로 해석되지 않는 서구 문화의 산물들을, 우리도 모르는 새 '발전된 것', '진보된 것'으로 해석하는 것에 또한 길들여져 있다. 서구의 시각에서 동양을 바라보고 신비적·비과학적·비합리적이라고 비판하고 왜곡하는 시각이 에드워드 사이드가 말하는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이다. 곧, '서구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왜곡된 동양관'이라고 할 수 있다.Ⅱ. 오리엔탈리즘의 의미1. 오리엔탈리즘의 개념오리엔탈리즘이란 오리엔트 로머가 한 말을 본다.유럽인들은 주도 면밀한 이론을 좋아한다. 사실을 말하는 언어에는 한치의 애매함도 없다. 비록 논리학을 공부하지 않아도 유럽인은 타고난 논리학자이다. 유럽인은 타고난 회의론자이고 어떠한 가정도 증명을 거치지 않고서는 진리라고 인정하지 않는다. 이에 반하여 동양인의 정신은 동양의 길거리와 마찬가지로 현저히 균형을 결여하고 있다. 동양인의 추론이란 다분히 감상적인 경우가 많다. 물론, 고대 아랍인들이 고도의 논증술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나 후손들은 극심하게 그 논리적 능력이 결여된 상태이다.참으로 화가 나는 말이 아닐 수 없다. 과연 우리 동양인들이 이렇게 논리적이지 못한 것일까.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서양인들이 아직 잘 모르면서 말을 하고 있다고. 시대적 상황으로 볼 때, 지금처럼 동양이 서양에 널리 알려지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는 말이 있듯이 점차 이 시기의 독단과 독선이 아직까지도 서구 사회에 영향을 끼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 동양에게도 마찬가지로 영향을 끼치고 있어 보인다.근대적 오리엔탈리즘의 이론과 실천을 가장 중요한 국면에서 파악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동양에 관한 객관적 지식에 별안간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로부터 상속되어오고, 세속화되고, 재배치되고, 나아가 문헌학과 같은 학문분야에 의해 변형된 한 세트의 구조물로서 이해하는 것이다.엄격하게 이야기하면 오리엔탈리즘은 물리학, 인류학, 수학과 같이 학문연구의 한 분야이다. 오리엔탈리즘은 서구의 오래된 대학들에 아랍어, 히브리어, 시리아 어와 같은 동양 지역의 언어 강좌를 설치하는 것이 결정적 시점부터 존재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오리엔탈리즘은 서양의 기독교 세계 속에서 공식적으로 존재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서양에 기독교가 존재할 무렵, 지중해에 가장 근접해 있던 동양의 세력은 이슬람이었다. 그 당시의 이슬람의 문화는 유럽보다도 더욱 우수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 당연히 유럽 사람들은 이슬람이 공포와 황폐, 악마적인 치가 개입되는데, 광기는 바로 그 감금이 지닌 근원적인 비이성을 상징하게 되었다.이런 죄인으로서의 광인은 언제나 이성의 통제 능력이 미숙한 미성년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광인은 여전히 미성년으로 남아 있었으며, 오랫동안 이성은 광인에게는 아버지의 양상을 유지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위해서 ‘아버지인 이성’이 ‘영원한 미성년이자 범죄자’인 ‘광기 또는 광인이라는 아들’을 감금하고 보호하기 위해서 이성의 지배가 시작되는 근대에 감옥이 탄생하고, 성에 대한 억압이 시작되고, 정신병원이 만들어진 것이다.에드워드 사이드는 이러한 이성과 광기의 이분법을 서양(이성)과 동양(광기)의 이분법으로 재구성한다.Ⅳ. 차별의 이분법 오리엔탈리즘동양과 서양에 대한 일반적인 이미지들을 이야기할 때, 주로 서양은 합리적, 이성적, 과학적, 진보적, 논리적, 활동적이라고 말하여지고, 동양의 이미지들은 비합리적, 비이성적, 비과학적, 정체적, 신비적, 미신적, 고요한(?), 명상적(?) 등으로 말하여진다. 그런데 여기에서 보면 동양의 이미지는 서양의 이미지에 비非자를 붙여서 형성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동양적이라는 것과 서양적이라는 개념은 서로 '반대말'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곧 동양과 서양이라는 것이 '구별적 이분법'으로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경우 가치의 우열이 개입된 '차별의 이분법'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사이드가 지적하는 오리엔탈리즘은 '우월한 서양'과 '열등한 동양'에 대한 차별적인 이분법에 입각한 서양중심주의이다. 오리엔탈리즘은 식민과 정복의 오랜 역사를 통해 형성된 동양에 대한 서양의 오만과 편견, 그리고 그러한 서구인의 의식 속에 투사된 동양의 모습을 의미한다. 서양을 주체로, 동양을 타자로 인식하는 것은 서양의 편견이며, 동양을 지배하고 재구성하려는 서양의 우월감에 근거한다고 그는 말한다. 그 동안 동양은 동양이라는 하나의 실체로서 존재하지 못하고, 유력한 잡지는 단 한권도 발행되고 있지 않으며, 아랍세계에 관한 연구는 물론이고 비동양지역에 관한 문제에 관해서도 옥스퍼드나 하버드, UCLA에 필적할 수 있는 아랍의 교육제도는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동양인 학생들은 지금 미국의 오리엔탈리리스트에게 와서 그 무릎 아래에서 배우기를 희망하며, 그 뒤에는 내가 오리엔탈리즘의 도그마라고 특징지워온 상투문자를 자국의 청중을 향하여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재생산 시스템에 의해 동양인 학자는 오리엔탈리즘의 체계를 '조작'할 수 있게 되므로, 그들 스스로 미국에서 받은 훈련성과를 이용하여 자기국민에 대한 우월감을 갖게 되는 것은 불가피한 것이라고도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유럽인 또는 미국의 오리엔탈리스트라고 하는, 자기보다 상위에 있는 인간과의 관계로부터 말하자면, 그들은 단순히 '원주민 정보원 native informant' 에 불과하다.생각해야할 또 하나는,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해답이 옥시덴탈리즘 곧 서양주의가 아니라는 점이다. 과거의 '동양인'은 자신이 이전에 동양인이었기 때문에 쉽게 - 너무나도 쉽게 - 자신이 만들어낸 새로운 '동양인' - 곧 '서양인' -을 연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도, 아무런 거리낌도 없을 것이리라. 만일 오리엔탈리즘을 아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지식이 유혹에 의해 타락한 모습을 생각하게 하는 점이다. 설령 그것이 어떤 지식이든지 간에 또는 어떤 곳, 어느 때라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필경 과거 이상으로 지금이 그것을 생각하기에 적합할 것이다.Ⅵ. 세계화의 본질-불평등한 세계화"세계화(Globalization)"란 과학기술의 발전과 시장기능의 확대에 의한 지구 차원의 상호의존성이 심화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교통, 통신기술의 발달로 인해 세계는 더 이상 하나의 국가 자체로서 존재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웃과 물물교환으로 시작된 우리의 삶을 위한 거래는 이제 세계전체를 거래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인 정의를 넘어선 세계화에 대한TV와 같은 대규모 매체 전략을 통해 사람들을 미국에 대한 동경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또한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던, 원하지 않던 간에 그들이 제공하는 화면을 보면서, 스스로 동화되어 가고 있다.예를 들어 독일 시청자들은 분데스리가 축구경기 결승전을 보면서 광고의 절반 이상을 미국 상투어들을 듣게 되고, 독일 브레멘산 벡스 맥주의 광고에 미국에 미국의 로스엔젤레스 금문교 뒤편 바다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지구촌이 점점 좁아지고 여러 문화 사이의 동화작용이 촉진될수록 이러한 경향은 더욱 강화된다. 그 결과 문화계에서는 필연적으로 범지구화된 단조로운 미국식 문화가 일률적으로 전세계문화를 휩쓸게 된다. 뉴욕의 비디오 예술가인 쿠르트 로이스톤이 이미 이런 경향을 '스크리치'라고 예언한 바 있다.유럽의 대표적 문화인 스포츠조차 점점 미국과 같이 틀에 박힌 오락으로 변질되고 있다. 미국의 상업주의적 이미지는 사람들이 자기 고유의 문화적 소속감을 갖지 못하게 되었고, 상품의 세계화는 각 나라의 고유의 문화적 생산물을 파괴시켜 나가고 있다.또한, 세계 곳곳을 다녀도 각 나라에 중심하고 있는 대도시는 자신의 특색을 가지고 있는 것보다, 오히려 모든 것이 비슷비슷하여 도시만을 돌아다닌다면 이제는 더 이상 새로운 것을 보기가 힘들어졌다.태국의 방콕은 미국의 디트로이트, 타이완의 타이베이는 미국의 실리콘 벨리를 닮아 있고, 새로운 거대 도시들의 중심부로 성장하는 곳은 중국의 상하이이다. 이곳은 도쿄나 뉴욕을 모델로 하여 건설되고 있다. 규모면에서는 도쿄나 뉴욕을 능가할 것이다.이러한 도시화의 뒷면에는 1백개의 다국적 기업중 40개 기업을 위해서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을 위해서 이곳에 거주하던 25만가구의 주민이 대책없이 그곳을 이주해야만 했다.세계의 주요도시들이 도시화, 공업화되는 가운데 일어나는 사태가 농산물의 부족이다. 주요 농산물 생산국의 감소는 미국을 식량분야에서도 세계권력을 장악할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 현재 매년 2억톤의 곡물이 나오고 있는데, 여기의 절반을 미국이 생산하이다.
여성목회초대 한국교회 여성들-전도부인을 중심으로-들어가는 말19세기 말 남성위주의 전제 봉건주의 사회분위기가 유세를 떨치던 시기, 우리나라의 여성들은 철저한 가부장적 사회 속에서 오직 남성에 대한 맹목적인 복종과 인내만을 강요받으며 가난과 질병, 무지와 고통으로 일관된 삶을 살아야했다. 여성들의 비인간적인 지위는 선교사들의 보고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들은 한결같이 여성들의 지위를 "노예 같은 삶"이라고 말했다. 그들의 보고에는 한국 여성들은 "일만 하는 고된 생활을 하고 있어 나이가 30세밖에 안되었는데 50세로 보인다"라고 쓰기도 하며, "한국에는 4계층이 있는데 모두 외출도 할 수 없는 노예상태"라고 말하기도 한다) 양미강, 〈초기전도부인의 신앙과 활동〉p93..자신의 주체적 자아조차 자각하지 못하고 사회와 가정에서 노동력과 남아출산의 의무만을 강요받으며 살아가던 여성들에게 낯선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인 여성들은 가족과 이웃으로부터 온갖 조롱과 수모를 받고 심지어는 문중에서 내몰리면서도, 수많은 여성들은 교회로 몰려들었다.) 장현주, 여성 세례와 여성 해방, 122전통 사회 속의 한국 여성들은 성(姓)만 있고 이름은 없었다. 부계사회 속에 여성들은 부친의 성을 따 이씨, 김씨, 박씨 등으로 불렸고 간혹 이름이 붙여질 경우에는 작명(作名)의 정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천하고 상스런 이름들이 붙여졌다. 부뜰이, 섭섭이, 개똥이, 막순이, 딸그만이 등이 전통사회 여성들에게 붙여졌던 이름들이었다. 사실 전통사회 속에서는 여성에게 이름의 기능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어려서는 누구집 딸로, 결혼 후에는 누구 댁으로, 자식을 나은 후에는 누구 어멈 혹은 할멈으로 불렸다. 철저히 남성 중심의 칭호였다. 이름 없음은 곧 '존재 없음'의 의미이기도 했다.이처럼 이름 없는 한국 여성들에게 이름 찾아주기 운동을 편 것이 기독교였다. 기독교는 이름 없는 한국 여성들에게 이름을 붙여 주었고 그와 함께 여성으로서의 존재 의미를 확인시켜 주었다.이렇게 이름을 가지게 된 여성들은 노블 부인이 평양에서 연 성서연구반(Bible Institute)이다. 이후 매년 봄과 가을 정기적으로 성경연구반이 개설되었으며 짧게는 2주에서 길게는 3달간 교육하였으며 대체로 5∼6년 과정으로 운영되었다.교과목은 성경 기초이론 및 교리와 교양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전체적으로 보면 성경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를 중심으로 하며, 실제 전도부인으로 현장에서 필요한 교양과목이 중심이 되어 있다.[표1] 여성 성서 연구반 교과목교과목내 용성경구약, 예수의 생애, 누가복음, 야고보서, 사도행전, 출애굽기, 마태복음, 다니엘서, 고리도전서 등이론 및 교리성서지리, 교회사, 감리교교리문답기타위생, 음악, 자녀교육, 산수, 병간호법, 사무보는 법그렇다면 당시 전도부인과 유사한 역할을 당당했던 남자들은 어떤 교육을 받았는가? 남성들과 어떤 차이가 있는 가를 알아보기 위해 여성보다 약5년 정도 앞서 시행된 본전도사(Local Preacher)) 초기 감리교 목회자들은 목회형태에 따라 순행전도사(목사)와 본처전도사로 나뉘어지는데. 순행전도사(목사)는 연회의 파송을 받아 교회를 순회하며 목회하며, 본처전도사는 지역교회의 추천을 박고 교회를 순회하며 목회하며, 본처전도사는 지역교회의 추천을 받고 연회가 허락하여 한 곳에 머물러 목회하는 사람을 지칭한다. 대부분 본처전도사는 안수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구역을 담임한 순행전도사(목사)의 지휘를 받았다.《감리교회 대강령과 규칙》, 1910, pp 163~166; 양미강, 《참여와 배제의 관점에서 본 전도부인에 관한 연구》한국기독교와 역사, 1997, p 149에서 재인용.과정을 살펴보자.[표 2] 남성 성서연구반 교과목교과목내 용성경사복음합셔, 구약공부, 성경통독조직 및 교리훈잎진언, 진도입문문답, 장원량우상론, 묘축문답, 로마교문답, 예수천주양교변론, 신론, 기독교증험론, 틴들전기, 미이미교회문답, 교리와 장정, 종교강령실천신학설교학, 전도인일과, 인가귀도기타사민필지, 만국통감, 천문학, 체육남녀의 교과목을 분석해보면, 전도부인들에게는 요하고 또한 중등교육을 받은 여성 가운데 신학에 뜻이 있는 사람들의 요구에 부응할 필요가 있었다. 당시 고등학교를 졸업한 여성 중에서 신학교가 없기 때문에 해외로 유학을 가는 형편이었다.이 학교는 20세에 해당하는 여성들을 대상으로 두 개의 과정을 운영하는데, 고등학교나 보통학교 이상의 학력을 요구하는 과정과 보통학교 졸업하고 이에 준하는 학력 인정을 받은 사람을 위한 과정이다.교과목은 신구약에 관한 주석적 연구, 종교심리, 교육학, 역사, 주일학교 교수법, 기독교사회학의 원리와 실천, 교회사와 선교, 비교종교학 등으로 폭넓은 분야를 다루고 있다. 학생 모두에게 음악(노래)은 필수이며 오르간 연주법은 선택과목이엇다.본격적인 신학 전문교육은 협성여자신학교에서 이루어졌으며, 이후 1929년 협성신학교와 연합하여 남녀공학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교육연한도 3년 과정에서 4년 과정으로 늘어났다.남녀공학으로 바뀌면서 여학생에 대한 우려가 많았다. 우선 20세에 해당하는 연령층은 결혼적령기였기 때문에 학업을 지속할 수 있는가에 대한 우려였다. 그러나 남학생은 입학생 15명 가운데 8명이 탈락한 데 반해, 여학생은 2명이 편입하여 4년 간의 과정을 마치고 1933a년 7명의 여성이 졸업하였다.(이게 우리학교예요^^)5) 역할전도부인들은 한국인 독자적인 교회조직이 형성되기 이전, 대부분 선교부에 소속되어 여성교사들의 지휘 아래 일을 하였다. 그 활동영역에 따라 도시전도부인(City Bible Woman), 학교전도부인(School Bible Woman), 병원전도부인(Hospital Bible Woman)으로 구분되었다. 도시전도부인은 구역을 맡아 순회하거나 교회를 전담해온 전도부인을 말하며, 학교전도부인은 선교사들이 세운 학교에서 근무하면서 전도부인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사람들이다. 병원전도부인은 선교부가 세운 의료기관에서 전도부인의 역할을 수행하는, 현재의 원목에 해당하는 역할을 담당했다.전도부인이 수행해 왔던 역할을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사경회나 성경반 지도아래 이루어졌는데 , 여전도연합회가 주로 파송단체가 되었다. 감리교도 해외선교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았다..3 교회설립과 교회부흥많은 교회들이 전도부인들의 노력으로 부흥하였다. 또한 교회가 설립되는 사례도 많았다.6) 전도부인제도의 확립전도부인에 관한 법규가 제도적으로 만들어지는 시대는 1930년대이다(감리교). 그 이전까지 전도부인은 실체만 있었지, 법규상 존재하는 직책은 아니었다. 이미 1920년대에 전도부인에 관한 규례를 만들려는 시도가 몇 차례 있었지만 실효를 거두지 못하다가 1931년 여목사제도가 통과되면서 가속화되기 시작한다) 1931년 6월 14일 한국감리교뿐 아니라 기독교 역사상 최초로 여성들이 목사 안수를 받았다. 그날 초대 총리사 양주삼의 집례로 목사 안수를 받은 이들은 한국에 와서 10~30년씩 수고한 여선교사 14명이였다. 한국인으로서는 유일하게 여선교회 회장 홍에스더가 1933년 중부연회에서 준회원에 허입된 이후 1934년 준회원 3년급까지 진급했다가 1935년 연회에서 '준회원으로 계속하지 못하고 퇴회(退會)'한 것이 기록에 남아 있다. 그가 목사 안수를 받기 직전에 진급을 중단했던 이유는 알 수 없다. 목사직에 대한 무거운 중압감 그를 주저하게 했거나 아니면 아직은 한국인 여성에게 목사 안수를 허용할 만큼 교회 내적인 분위기가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결국 한국인 여성 목사 배출은 해방 후로 미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덕주, 『한국 감리교 여성교회 역사』, p354~357.. 1933년 3월 여선교사들은 전도부인제도가 없으니 그 관리와 지위, 직무에 대해 임시라도 적당한 제도를 세워주도록 건의를 했다) "현금(現金) 조선교회는 우리가 전도부인이라고 칭하는 신실하고 용감한 지도자들의 개척한 힘을 입음이 다대(多大)하다. 그들은 과거에 특별이한 처지를 가졌었고 현재에도 교회의 계획 실용상 없지못할 사람들이다. 그러나 장래에 잇서서는 그들의 지위, 자격, 사업이 과거에 그것들과 상이(相異)하겟음으로 새로운 설명를 중심으로 이어져 왔으며, 이는 성서무오설과 축자영감설을 바탕으로 여타의 성서비평학을 거부하였다. 여성들의 안수운동은 정통보수신앙의 희생물이 되었으며 여성들의 제도적 참여의 길을 철저히 막았다. 그러나 이에 저항하는 여성집단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교호의 성차별 구조의 맨 밑바닥을 점하고 있는 여전도사 집단과, 의식있는 여선교사 집단, 그리고 교회여성 평신도 집단이다. 그리고 진보적 사고를 하고 있던 남성목사들도 동조세력으로 함께 했다.1 여성들의 문제인식가. 여전도사들의 인식여전도사들이 바라보는 한국교회의 문제점은 세 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는데, 첫째, 교회의 차별적 대우이다. 임금차별이 보편적인 현상이었고, 또 교역자들에게 주는 사택도 남자교역자만이 그 혜택을 누리고 있음을 지적한다.둘째, 남성중심적인 교회제도에 대한 비판이다. 남성들에게만 열린 목사 안수제도, 전원 나성총대로만 이루어진 총회나 연회는 여전도사들이 보기에는 그야말로 남성들의 천국이었던 것이다. 기독교가 말하는 자유와 평등은 여전도사들에게는 빛 좋은 개살구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셋째, 열악한 사회적 인식이다. 사회적으로 여전도사의 위치는 그야말로 땅바닥이었다. 여전도사의 별명은 '걸레'로 불리우기도 하는데, 그 이유는 교회일은 집안일과 같아서 안 하면 금방 표시가 나고 해도 끝이없는 걸레와 같은 일이라는 것이다 '여전도인'하면 의지할 곳 없는 독신여자로 책주머니를 들고 이집저집 다니면서 서너마디 군소리나 하고 월급이나 받아서 호구지책을 삼는 사람으로 대우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전도부인에 대한 낮은 사회적 인지도는 초기 전도부인들의 사회경제적 조건과 연속선상에 있다. 대부분 언문 정도 습득한 지식수준과 과부계층이었음을 볼 때 낮은 임금수준 속에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의 역할을 동시에 담당했던 사실로 인식해야 한다.나. 여선교사들의 '여성신학적 성서 읽기'남ㆍ북 감리교가 합동하여 기독교조선감리회가 형성된 첫 번째 의의는 '자치교회' 수립에 있었다. 이와함께 중요한 변화가 있었.
『살아있는 신의 탄생』을 읽고어릴 때, 그러니까 한 초등학교 1학년 때쯤으로 기억되는데, 등굣길에 배가 아팠는데 길가에서 하나님께 배 아프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한 일이 생각난다. '그때는 참으로 믿음이 순수했어'라고 생각을 많이 했다.그런데 나는 어떤 형태로 하나님을 인식하고 이해하면서 그런 기도를 했었을까. 나는 하나님을 만나본 적도 없고 논리적으로 하나님에 대해서 설명할 수도 없었다. 모든 것이 목사님이신 아버님과 어머니로부터 전적으로 교육받고 그 당시 내가 세상에서 힘이 제일 센 줄 알았던 아버지보다도 힘이 훨씬 더 세고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는 하나님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이 책은 종교에 관한 내용보다는 대상관계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하나의 특정한 대상관계, 즉 신이라고 불리는 특별한 대상과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심리학적으로 말하면, 신은 환상적 중간대상이다. 그리고 모든 중간대상이 그렇듯이, 신은 "밖에, 안에, 그리고 안팎의 경계선에" 동시에 위치한다.전 생애를 통해 신은 중간대상으로 남아 있으면서 자기 자신, 다른 사람들 그리고 삶 자체와의 관계에서 유용한 수단으로 사용된다. 이것은 그 신이 신이기 때문이 아니라, 마치 곰인형처럼 아이가 인생에서 발견한 일차 대상으로부터 신적 요소의 절반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신적 속성의 나머지 절반은 자신의 필요에 따라 신을 창조한 아이의 능력으로부터 온 것이다. 그것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전 생애 동안 계속되는 발달과정이다.연구는 종교에 대한 연구라기보다는 종교경험의 중심적 측면에 대한 연구로서, 인간이 살아가는 동안에 발생하는 신 표상의 후기 발생적 및 발달적 과정 그리고 그것의 사용방식에 관한 연구이다.아이는 진공상태에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가정을 구성한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다.어머니는 자신에 대한 긍정적 신화를 만들어 내는데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실패로 인해 그녀는 부모와의 경험을 통하여 신과 적대적 관계를 만드는 비극적 상태에 처하게 되었다. 그녀는 신이 자신을 전혀 사랑하지 않으며 자신을 미워한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아이는 누구나 이러한 꿈과 소망이 담긴 신화적인 맥락 안에서 태어난다.사람은 그가 칭찬 받을 만하고, 감탄할 만하다고 보는 어머니의 눈빛을 기대한다. 대상과의 자기애적 관계를 경험하는 처음 단계에서 아이가 필요로 하는 것은 대상이 그를 칭찬 받을 만하고, 훌륭하고 힘있는 아이로 보아주는 것이며, 이는 보통 어머니의 눈빛을 통해서 반영된다.어머니의 눈과 전체얼굴은 아이의 첫 번째 거울이다. 후에, 그 경험은 첫 번째 신의 표상 형성에 직접적으로 사용된다.아이는 어머니의 반영을 통해서 자신이 어머니에게 있어서 놀라운 창조물이라는 확신을 갖게 된다. 그러나 만약 이 반영 경험이 충분히 좋지 않으면, 그 개인의 발달은 부분적으로 정지되고 그는 심리적 반영에 대한 자기애적 욕구뿐 아니라 실제 거울에 고착될 수 있다.요약하면, 눈맞춤으로 시작하는 반영해주는 어머니의 중요성은 생후 첫 달 동안에 계속 확대되어 어머니의 얼굴, 전반적인 아이의 몸 다루기, 어머니의 환상과 소원들, 아이의 정체성에 대한 어머니의 신화적 정교화, 어머니의 드러난 또는 숨은 소망들, 자신의 소망을 아이가 반영해 주기를 바라는 어머니의 욕구 등을 포함하게 된다. 이 모든 것은 부모와 조부모, 다른 자녀들, 가족의 종교적 및 정치적인 배경 사이에서 일어나는 가족의 로망스와 신화라는 보다 넓은 맥락 안에서 발생한다.반영을 필요로 하는 시기에 생기는 또 다른 실패는 어머니가 아이를 지나치게 과대평가 함으로써 실제 아이를 반영하지 못하고 아이에 대한 어머니의 환상을 반영하는 것이다.불행한 환경이 그들로부터 놀이 공간과 환상과 현실에서 중간대상을 창조할 수 있는 공간을 빼앗아 갔다. 그들은 그들에게 열려진 유일하고 좁은 길목에서 그들의 일차 대상들에게 사로잡혀 있는 병리적인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괴물, 악마, 영웅, 초인적 영웅은 환상의 다른 양태들이다. 그들은 때때로 "현존감"을 갖기도 하고 또 다른 때에는 허구적 인물로만 사용되기도 한다.나게라(1969)와 골딩(1970) 그리고 베텔하임(1976)이 제안했듯이, 나는 상상의 친구와 괴물은 아이가 나쁨, 충동적인 격노, 좌절, 속임수를 견딜 수 있도록 돕는다고 제안한다.가장 중요한 것은 신이 세상을 책임지고 있는, 실제로 존재하는 강력한 존재로서 언급된다는 사실이다. "신이 우리나라를 축복하시기를"이라고 말하는 술 취한 거지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이 신을 언급한다.어른들의 몸짓과 암시를 통해서, 비록 보이지는 않지만, 신은 아이들의 환상속에 살고 있는 다른 모든 피조물과는 달리 실제로 존재하게 된다. 모든 아이들은 신이 힘세고, 존경할 만하고, 모든 것을 다스리며, 모든 곳에 존재한다고 느낀다. 그는 그 순간에 이용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부모의 표상을 이용하여 자신의 신 표상을 만들 수밖에 없다.프로이드는 性적 소망이 비성적인 것으로 승화되고 그것이 다시금 부모상에 거세하지 않는 신적 보호자로 고양시키는 일이 발생한다고 제안했다. 이 발달 시기에 신 표상은 이미 긴 역사를 갖게 된다. 신은 특별히 오이디푸스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서 지금 창조된 존재가 아니다. 실제에 있어서, 아이는 오이디푸스 위기를 해결하면서 자신이 현실적으로 작은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가 아버지나 어머니처럼 되고, 어머니나 아버지 같은 사람과 결혼하려면 몇 년을 더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는 자신은 당분간 부부가 될 수 없다는 것과 자기 표상을 바꿀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우선 골딩의 말처럼 남녀 모두에게 존재하는 강력한 남근적 영웅 또는 여장부 그리고 좀 더 후에 나타나는 초인적 영웅은 자기애적 좌절과 대상 상실 그리고 패배 뒤에 나타나는 대상과 관련된 가학증과 과시주의를 치유하는데 필요한 매개역할을 한다.여섯 살 된 아이는 그의 신개념을 세상과 그 안에 있는 동물과 모든 아름다운 것들을 만드신 창조주로 이해한다. 여섯 살 된 아이는 이러한 커다란 개념들을 받아들인다. 그는 신과 감정을 나누는 관계를 형성하는 중이다. 기도는 그에게 중요한 것이 된다. 그는 그의 기도에 응답이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다.악마는 아버지 표상으로부터 생긴다고 믿는 견해는 프로이트의 생각과 근본적으로 일치한다. 그러나 신은 부모 중 어느 쪽이든 아이가 오이디푸스 위기 해소 후, 자신의 심리적 안정을 위해 보다 중요한 존재로 받아들인 부모로부터 생겨날 수 있다.중심적인 요지는, 서구 세계의 모든 아이들은 일반적으로 신 표상을 신앙 발달에 사용하든 사용하지 않든, 오이디푸스 시기가 끝날 때쯤이면 적어도 초기 형태의 신 표상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신 표상은 이후의 발달 과정에서, 즉 개인이 삶을 살아가는 전 생애 동안 부모 표상과 자기표상을 계속해서 개작해 나가는 과정에서 전혀 건드려지지 않은 채 남아있을 수 있다. 만약 신 표상이 자기 표상의 변화에 보조를 맞추어 개작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곧 시대에 맞지 않는 것이 되고 조롱거리가 되거나 하찮은 것이 되든지, 아니면 정반대로 위협적이거나 위험한 것으로 경험될 것이다.
【종교다원주의와 선교】기말레포트동도동기론적 선교신학 모색지도교수 : 이 정 배 님제 출 자 : 신대원 2/4 권 성 은제 출 일 : 1999년 12월 23일 木들어가는 말한국이라는 이방적인 토양 속에 들어온 기독교는 반드시 한국화 되고 토착화되어야 한다. 그래서 한국인의 의식 표층에 있는 서구적 교양의 심층에 깔려있는 한국적인 종교성에 호소하고 각성시켜야 한다. 변선환아키브편집,『한국적 신학의 모색』(서울:한국신학연구소, 1997) 122.“…아담, 아브라함, 모세 이야기는 청산유수 격으로 줄줄 내리 외지만, 한국 역사는 한 페이지도 제대로 읽지 못한 크리스찬이 얼마나 많이 있겠는가를 생각해 본다면 이러한 정황 속에서 그리스도 교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겠는지 의심스럽기 짝이 없다. 내 이름이 무엇인지 모르는 인간이 어떻게 배급을 타 먹을 수 있으며,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받을 수 있겠는가?…그리스도교의 본질적 내용이 한국문화의 순수형식과 어떻게 조화되는가가 중요한 열쇠이다. 이러기 위해서는 한국 문화의 본질적 내용과 형식을 올바로 찾아 놓아야만 한다. 다시 말해, 복음의 내용이 한국 문화의 순수형식과 결부되어야만 된다는 것이다. 좋은 씨가 좋은 밭에 뿌려져야 좋은 열매가 맺힌다.” 편집위원회編,『한국종교문화와 한국적 기독교』(서울: 도서출판 감신, 1998) 248.피셔박사는 한국교회를 중심으로 하고 문제를 철저히 규명해 보려고 노력하였다.선교교육의 한국 토착문화에 대한 관계에 대해서 선교교육의 새로운 방침을 말하였다.첫 번째, 선교사들이 선교지역 특히 한국을 가리켜 ‘이방’이라고 부르고 한국의 재래의 모든 것을 총괄해서 이방적이라고 부르는 습관을 버려야 한다. 불교적, 유교적, 자국적, 토착적, 민족적, 한국적 둥의 말을 사용하고, 이방적 신전, 이방예배 등의 말을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두 번째로, 선교계 학교가 무엇보다 먼저 한국형편과 처지에 맞는 계획을 구상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 실정에 맞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환경에서 공부한 학생세, 의로 선교사인 알렌도 27세였으며, 스크랜톤은 29세였다. 따라서 이들은 소명감에는 불탔을 지는 몰라도 충분한 신학적 훈련이 부족한 상태에서, 그리고 신학적인 지식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거나 전개해볼 시간적인 여유를 가져보지도 못한 상태에서 낯선 이방 땅으로 들어와 선교를 했던 것이다. 송길섭,『한국신학사상사』(서울: 대한기독교출판사, 1987) 35.이러한 특징들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이었기에 초기 선교사들은 대체로 복음과 전통문화의 조화라든지 복음의 토착화 혹은 한국적 기독교 형식을 주형 하는 작업에는 별로 관심을 갖고 있지 않았다. 물론 이들은 미신에 빠진 무지한 민중들을 계몽하는데 공헌을 했다. 그러나 동시에 전통 문화와 미풍양속들 중의 많은 부분을 미신이나 우상 숭배 정도로 격하하여 타파하는데 주로 역점을 두었다. 전통문화와 재래종교의 자리에 기독교문화와 사상이 들어가기 위해서 이들을 몰아내야 했던 것이다. 이것은 한국 문화적 측면에서 해석해 본다면 초기 선교사들의 선교정책은 한민족 고유의 전통문화를 사실상 말살하는 문화말살정책이었고, 미신타파와 한국 사회의 개화라는 명목 하에, 즉 “기독교화=근대화”라는 달콤한 이념으로 서구화, 다시 말하면 서구사상에로의 정신적 식민지화를 획책하려는 정책이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말하면 “기독교화=근대화”란 등식은 곧 “근대화=서양화” 그리고 “서양화=탈한국화”로 이어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한숭홍, “초기 선교사들의 신학과 사상”『한국 기독교와 역사』,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編著 (서울:기독교문사, 1991) 56~57.선교사들의 이러한 활동이 있던 구한말 개화기에 기독교인이 된 사람들은 전통 종교에 대해 세 가지의 다른 유형으로 반응하였다. 그 첫 번째 것은 동도(東道)를 철저하게 부정하고 서기(西器)와 서법(西法)만을 수용하려던 변법적 개화파의 수용형과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지 못했던 교조주의적인 거부 반응형(위정척사-동학), 그리고 동도서기(東道西器)를 주장하였던 개량적 개화파(토착형)였다. 변선환아키말한다. 그에 의하면 성(誠)이란 글자 그대로 ‘말씀이 이루어짐’, 즉 성육신의 로고스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의도하는 한국적 신학이란 “啓示라는 낯선 槪念 대신에 誠이라는 친근한 개념을 대치하여 神學的 諸問題를 해석해 나가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윤성범이 말하는 “한국적”이라는 것은 다분히 한국적 용어로써 서구신학을 설명한다는 것을 뜻하게 되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보아 그의 신학의 윤곽은 칼 바르트의 신학이다. 결국 그의 한국적 신학의 윤곽은 바르트의 신학을 유교적인 개념을 써서 새로이 번역한 것이 된다. 유동식,『韓國神學의 鑛脈』(서울:전망사, 1982) 270.그러므로 우리는 윤성범 역시 아직 서구 신학의 바벨론 포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유동식은 새로 들어온 종교들은 일정 기간 동안 문화 창조의 생명력을 발휘하며 번창하지만 사회체제로부터 인정받고 지배층에 속한 특권을 누리게 되면서 종교로서의 창조적 생명력을 잃고 타락하게 된다고 보면서, 철학적인 불교와 윤리적인 유교는 이미 창조적 생명력을 잃고 있다고 보았다. 유동식은 기독교만이 이러한 종교상황을 쇄신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즉 유동식이 과거의 종교 전통들에 대해서 보다 더 수용적인 태도를 보여주고 있지만 이 땅의 모든 문화와 종교 전통은 복음에 의해 완성되고 구원받아야 할 대상으로 보고 있다. 황종열, 『한국 토착화 신학의 구조』(서울:국태원, 1996) 76.이러한 서구 신학 중심적인 인식에 대해 토착화신학은 어느 정도 시각의 교정을 가져다 주었다. 그러나 토착화 신학이 해석학적 탈 서구화를 지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기독교 중심의 토착화론이 진행되었다. 즉 70-80년대까지만 해도 토착화 신학은 서구의 신학적인 틀에 우리의 문화를 끼워 맞추는, 우리의 전통의 밑둥은 여전히 잘려진 채 가지만 접붙이는 것들이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어떤 해석학적 성찰에 입각한 자름과 접붙임이 시도되어도, 접목 자체가 어느 하나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면 이것은 상대에게 하여 비과학적, 비합리적, 비논리적이라는 낙인을 찍어 온 것이 에드워드 사이드가 말하는 ‘오리엔탈리즘’이라면, 동양의 텍스트를 동양의 시각에서 해독하는 것을 이 글에서는 동도동기론 이라 부르는데 곧, 동양정신의 사유체계 곧 ‘동도’의 시각에서 동양의 문화 텍스트를 곧 동기를 해독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도동기론, 서도서기론은 한문화에 대한 정당한 문화읽기이고 현대의 해석 철학자 가다머가 이야기하는 정당한 선입견, 인식틀이라고 할 수 있다.2) 정당한 문화 읽기한국의 문화적 산물들을 형성하는 가장 기초 토대가 되는 세계관의 구성요소는 ① 북방 샤머니즘과 연결되는 삼재론, ② 남방 농경문화의 산물인 역사상(나중에 음양론과 쉽게 습합됨), ③ 산동반도와 요동반도를 잇는 발해만 인근에서 새롭게 발생한 비주문화, 변방해안 문화의 산물인 음양오행론이 그것이다. 이에 이러한 정당한 인식틀을 통해서 전통음악과 한글, 속담, 시조 등을 해독해본다.ⅰ) 한국의 전통음악한국 전통음악은 그 근본이 오음과 십이율인데, 오음은 오행에 배합되고 심이율은 1년 12달 곧 12지지에 배속되어 있다. 이것은 자연에서 받은 것이지 인간의 사사로운 지혜의 산물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연의 조화성을 원리나 논리로 드러내는 것이 다름 아닌 동양 철학이며, 소리를 통해서 자연의 조화성을 드러내는 것이 동양의 음악이다. 또한 악기의 제조법이나 장단 등 모든 음악 영역은 이러한 세계관과 철학과 연결되어 있다.예를 들어 풍물에서 사용되는 각종 깃발이나 복색의 의미구조는 음양론 삼재론, 오행론을 전재하지 않으면 어느 하나도 해독되지 않는 것들이다. 이러한 것이 한국 전통문화를 읽는 정당한 인식틀을 이루는 세계관의 구성요소들이며, 이러한 사상은 중국, 일본, 한국의 음악이 공통으로 지니고 있는 것이다.ⅱ) 훈민정음의 제자원리자음은 철저하게 오양오행론의 토대에서 만들어졌고, 모음은 삼재론에 바탕을 둔 천지인을 상징하는 3개의 모음을 하도의 원리에 따라 창제하였으며, 하나의 낱 글자를 이루는 초성, 중성, 종성이 가다머의 시간적 차이가 가지는 한계를 지적하면서 언급했던 공간적 차이를 문제 삼은 것으로서 파니카가 형태학적 해석학, 통시적 해석학으로 부른 것과 비교 할 때 그 특성이 분명히 드러나게 된다. 먼저 형태학적 해석학이란 고대근동지방과 같은 동일한 문화 역사적 정황 속에서 상호 이해가 이루어지는 것을 뜻한다. 다시 말해 이것은 동일한 문화권 안에서 서로 비교할 수 있는 공동 근거 곧 규범의 빛에서 진위를 가리는 변증법적 대화의 형식을 지닌다. 그러나 과거로부터 혹은 현재 우리가 처해 있는 삶의 자리와 매우 떨어진 곳으로부터 어떤 정보를 얻고자 할 때 그것에 대한 설명과 이해는 다른 양상을 띠게 된다. 여기서는 더 이상 진리와 의미의 공통된 표준에 호소할 수 없고, 삶의 지평에 대한 경계를 설정하는 담화가 요구되는데 파니카는 이를 통시적 해석학이라 부른다.오늘의 상황은 근본적으로 다른 의미체계를 지닌 삶의 지평이 서로 마주하고 있으며 세계관적으로 전혀 다른 타문화가 공존하는 현실이기에 전혀 다른 문화공간 속에서 실재에 접근하는 방식이 자신의 그것과는 근본적으로 차이날 것이라는 자각 없이 자신의 문화영역을 뛰어 넘으려고 하는 한, 그것은 종교적으로 죄를 짓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파니카는 말한다.통장소적 해석학은 타 문화권에 내재하는 종교적 가치와 의미들을 긍정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종교에 대한 내적 확신과 경험을 소유하는 것을 요청하는, 문자 그대로 대화적 대화를 기본으로 하는 것이다.이런 맥락에서 파니카의 통장소적 해석학으로서의 선교를 이야기함은 위의 동도동기론적 해석학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 할 수 있겠지만, 보다 ‘의미 깊음’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가능성이 여러 곳에서 눈에 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인식론적 전회라 할 수 있는 ‘우주신인론적 실재 인식’과 ‘종교내 대화’, 그리고 ‘대화적 대화’라는 방법론을 통해서 이다.(1) 선교의 새 패러다임을 위한 인식론적 전환 -「‘우주신인론적 실재’ 인식」1) 영성(Spritualitat)과 선교(Mission)를 위한 이다.
『과목 : 사회복지와 선교』{사회복지 선교의 성서적 근거 : 구약성서많은 사람들이 사회복지의 기원을 플라톤의 국가론 이나 로마의 호민관 제도 에서 찾으려 하지만 통전적 의미에서 사회사업은 그러한 고대사회의 국소활동을 통해 이룩된 것이 아니라, 복지의 근원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하였음이 분명하다.하나님은 그의 창조사역부터 복지의도를 갖고 역사하셨으며 출애굽을 중심으로 보다 분명하게 나타난다.◇출애굽사건과 계약법의 확립이스라엘백성이 애굽에서 처절히 억눌린 자, 방랑자로, 노예의 생활을 경험했고, 따라서 하나님은 그 후 그들이 그러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혹독하게 대하지 못하도록 하셨다. 한 예로 구약성서에서는 특별히 고아와 과부에 대하여 깊은 배려를 하고 있는데, 하나님은 이들의 방패와 보호막이 되실 것을 약속하셨다.결국 하나님이 의도하셨던 출애굽 사건은 계약법으로 제도화되었고, 계약법은 하나님과 히브리 민족의 관계를 법률화한 것이었다. 이 계약법은 가난한 자, 약한 자, 소외된 자 즉 하비루 를 보호하고 그들의 권리를 옹하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이 외에도 노비의 보호권(출21:1-4), 여종의 보호령(출21:7-11), 심지어 도피 제도를 통하여 불의의 사고로 살인한 자에게까지 관심을 기울임으로 그의 백성에 대한 사랑을 구체적으로 표현하셨다.출애굽기에 이어 레위기에도 하나님의 복지 의도는 지속적으로 표현되고 특히, 레위기 19장에서 하나님은 성도들의 거룩한 삶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거룩이란 추수 때에 가난한 사람에게 자애로움을 나타내는 것, 일꾼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 재판 과정에서의 공정성, 다른 사람에 대한 사려 깊은 행동, 이주자에 대한 평동, 정직한 상행위와 모든 사회적 사건 등에 대한 철저한 실천적 행위를 내포하고 있다.◇신명기 - 복지 제도의 토대하나님의 구원사역을 망각치 말아야 할 일에 대해서는 신명기 법전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희년에서 보다 구체화되고 있다. 하나님은 희년을 통해 자신의 백성들이 결코 그 때의 억압과 설움을 기억하여 억눌린 자들에 대한 보호를 잊지 않기를 바라셨던 것이다. 희년은 하나님의 구체적인 복지의지였다.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한 것이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할 때 이웃과의 관계형성도 이루어질 수 있다는 하나님의 의지가 이 말씀들 속에 포함되어 있다.신명기는 하나님의 복지의식의 총체라고 표현할 정도로 전반에서 복지의 관심이 표명되어 있다. 1)십일조(신14:1-29) 2)축복의 비결(신15장) 3)절기를 통한 나눔(신16장) 4)지도자에 대한 배려(신18장) 5)실수에 대한 배려(신19장) 6)세밀한 배려(신20-21장) 7)형제의 물질적 손실에 대한 관심(신22장) 8)타인의 입장에 대한 배려(신23장) 9)약자편에서의 보호(신24장) 10)자존심에 대한 배려(신25장) 11)진정한 축복, 하나님의 명령(신26장) 12)약자의 보호(신27장) 13)후히 주시는 복(신28장) 14)화(신28:46-48) 15)부유할 때의 주의(신30장)이같이 신명기 전체에서 약자에 대한 깊은 배려와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의 구현이라는 하나님의 복지 의도를 살펴 볼 수 있다. 이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모두 공평한 삶을 추구하시려는 하나님의 의도에서 출발한 것이다.◇제도와 절기 - 약자의 보호사회의 약자를 위한 하나님의 관심은 신명기뿐 아니라 구약성경 전체에서 보다 분명하게 묘사되고 있다. 약자보호를 위한 제도적인 장치는 다음과 같다.1)빈자를 위한 십일조 - 십일조의 일반적인 용도(신14:29) 외에도 십일조를 통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그리고 십일조가 가난한 자들의 것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러나 십일조의 이상은 왕정시대에 변화를 맞게 된다.2)절기를 통한 교훈 - 하나님은 특히 초막절 사건을 통하여 애굽을 상황을 그대로 재연하심으로 그들이 종 되었던 사실을 명확히하고 형제들을 억압하지 말 것을 권고하셨다.3)이삭나누기 - 이삭 나누기는 하나님의 구체적인 복지형태, 즉 하나님 복지제도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이다. 이 이삭나누기 하나만으로도 사회의 약자들은 그들의 기본적인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 속에 가난한 이가 없게 하려는 하나님의 복지 의도를 충분히 반영하였다고 볼 수 있다.4)땅의 휴경제 - 하나님이 제정하신 독특한 형태의 복지 장치 중 하나가 땅의 휴경제이다. 땅의 휴경제는 7년째에 농사하던 일을 멈추고 땅을 쉬게 하는 것으로, 원래적 목적은 땅을 쉬게 함으로서 더 많은 소출을 거두려는 것이 아니라, 7년째 땅에서 나는 자연적인 모든 산물을 바로 사회의 약자에게 돌리는데 있었다.5)안식일 - 가장 일반적인 형태의 복지 모형으로 안식일을 제정하셨다. 이는 단순히 하나님께서 예배하는 날로서의 의미가 아니라 모든 이스라엘을 포함하여 이방인과 노예까지 휴식을 취할 수 있게 함으로써 진정한 복지의 개념을 실현하였다.6)희년 - 신명기 법전의 꽃은 역시 희년에 있다. 희년은 가난을 제도적으로 제거하여 경제적 균등을 유지하기 위한 하나님의 법칙이며 단순한 구제를 넘어서 철저히 정의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 희년에는 하나님과의 화해뿐만 아니라 나눔을 통한 인간과의 화해가 시도되었다.◇통일 왕국시대의 타락하나님의 계약법전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성실하게 지켜졌고, 그들의 삶은 다른 민족보다 월등하게 안정되었고 풍족하였다. 그러나 왕정의 수립은 부의 축적을 가능하게 하였다. 바로 왕국의 건설은 이전의 애굽의 노예생활과 다름없는 상황을 초래하게 된다.결국 솔로몬 시대의 풍요와 번영에도 불구하고 민주적으로 분배되지 않은 것에 대해 열왕기상4장은 고발하고 있다. 당시 경제정책을 지속하기 위해 땅 없는 백성들마저도 중과세에 시달려야 했으며 강제노동에 징용당하기도 하였다.솔로몬 시대의 문제는 땅을 갖지 못한 자요, 정치적으로 억압당하고 경제적으로 착취당하며, 종교적으로 어용 제사장들의 잘못된 인도에 끌려서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던 히브리인들이었다. 결국 이러한 문제들로 통일왕국이 종말을 고하게 되었고 분열왕국시대를 맞게 된다.◇선지자들의 회복노력분열왕국시대에 들어와 예언자들의 메시지를 통하여 하나님의 공의와 사회의 정의를 중시하게 되었다. 특히 이 시대에 가장 처음 예언한 아모스는 현저하게 사회정의를 강조하였으며 학정과 악습을 통렬하게 비판하였다(아모스5:7, 이사야3:14, 미가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