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 나타난 이항대립의 해체구조Ⅰ. 서론Ⅱ. 본론1. 열린구성2. 실험적 방법3. 중간계층의 의의4. 영수, 영호, 영희의 하모니Ⅲ. 결론《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 나타난 이항대립의 해체구조Ⅰ. 서론70년대의 급속한 자본주의적 근대화는 표면적인 화려함과는 달리 민중의 희생과 눈물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결과였다. 경제가 성장할수록 역기능이 심화되는, 아니 역기능 없이는 경제 성장 자체가 불가능한 70년대 분단 자본주의의 이율배반성은 필연적으로 광범위한 저항을 불러일으켰다.) 이런 저항의 중심에 서있는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하 난쏘공)은 70년대 고도 경제 성장 정책으로 심화된 사회적 불안과 혼란을 그리고 있다. 여기에는 여러 실험적 기법을 사용해 당대의 시대상을 형상화하는데 성공을 거두었다고 판명된다. 따라서 조세희의 《난쏘공》이 당대 현실을 그리는 데 있어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Ⅱ. 본론작가는 산업화가 가속화되는 시대 상황 속에서 발생되는 자본가와 노동자의 불협화음을 노동자의 저항과 자본가의 억압 구도라는 보편적 상황으로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사회 여러 계층의 시대인식을 통해 훨씬 생동감 있고 사실감 있게 재현해내고 있다. 따라서 조세희의 《난쏘공》은 단순히 가진 자/못 가진 자의 대립과 같은 이분법적 시각으로 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1. 열린 구성이 소설의 구성은 우선 연작 형식을 취하고 있다. 연작이란 서사의 처음과 끝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다시 말해 “독립성과 총체성을 동시에 지향하는 소설형식”)인 것이다. 이 소설은 난장이로 대표되는 1970년대 소외받는 노동자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노동자를 대표하는 인물, 자본가를 대변하는 인물 그리고 그들의 중간에 끼인 인물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통해 독자들에게 그 판단을 강요하지 않고 있다. 즉, 작가의 목소리는 최대한 배제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렇듯 여러 계층의 목소리가 잘 어우러져 12편의 단편들이 통일성을 잃지 않고 당대를 잘 재서 밀려난 소수자의 모습을 “외계인의 걸음걸이”라는 낯설고 소외된 모습으로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의식이나 그의 말은 이 세상에서 조화를 이룰 수 없는 것이다.이 소설이 연작의 형식을 통해 차이나는 반복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단순한 반복이 의미의 고정화를 낳고 독자들을 의식화 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로 하여금 판단하고 사고하도록 도와준다. 경애의 칼(칼날) → 영수의 칼(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로 의미의 연쇄가 진행된다. 칼이 소시민 가정에서 단순히 주방의 도구로 쓰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양심적인 노동자를 지키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이는 뒤에 경훈의 작은 아버지를 죽이는 도구로 그 의미가 연속적으로 나타난다. 이때 영수의 살인행위의 정당성 자체를 문제 삼기보다는 그 의미구조가 이렇게 연쇄적으로 드러나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바로 이 연작구성은 처음과 끝이라는 완결된 구조에서 탈피하여 갈등 내지 긴장의 해소라는 일반적 구조를 깨 버림으로써 작품 속에서 상징적으로 구현해낸 ‘클라인씨의 병’을 보여주고 있다. 와 의 논리가 단순히 난장이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현실세계 전체를 총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소설의 프롤로그로 와 결말로 치닫는 을 통해 필자가 논제로 제시한 이항대립의 대립구조가 해체됨을 알 수 있다. 이들 단편들에서 수학교사를 통해 드러나듯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이 보편적 현실이라 생각하고 기존 매커니즘에 따르는 당위성에 대한 반성을 불러일으킨다. 흑과 백, 내부와 외부의 구조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그런 구조들이 어떤 허위의식을 낳고, 사람들을 어떻게 소외시키는지 말해주고 있다. 이렇듯 수학교사나 ‘뫼비우스의 띠’, ‘크라인씨의 병’은 기존담론체계로 부터 탈출하려는 시도를 보여주고 있다.2. 실험적 방법이 소설의 서술자는 개별적 목소리를 최소화하여 독자들 스스로 가치 판단할 수 있는 수단으로 공문서나 설문조사, 가계부를 직접 인용하고 있다.낙 원 구주택: 444,1― 197×. 9. 10수신: 서울특도196x년 5월 8일용 도아파트 입주 신청용위 사실을 확인하여 주시기 바랍니다.197x년 10월 7일신청인 김 불 이위 사실을 확인함197x년 10월 7일낙원구 행복 제1동장③ , p. 105콩나물 50원왜간장 120원고등어 자반 150원통일 밀쌀 3,800원영희 티셔츠 900원앞집 아이 교통 사고 문병 230원새우젓 50원방세 15,000원영호 직장 동료 퇴집 송별회 500원길 잃은 할머니 140원방법비 50원정부미 1600원영수 용돈 450원두통약 100원 …④ p. 161.위 인용들은 70년대 사회 현실들을 아무런 소설적 미화장치 없이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객관적으로 인식하게 한다. 우선 인용문 ④에서는 70년대 노동자 계층을 대표하는 난장이 일가의 가계부를 직접 기술함으로써 모든 가족 구성원이 일해야만 경우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그들의 빠듯한 삶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특히 인용문 ②는 소외계층이라 할 수 있는 노동자 계층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드러내는 동시에 그들의 의식을 그려내고 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임금을 많이 주는 직장’ 보다 ‘인간적인 대우를 해주는 직장’이다. 따라서 그들은 단순히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은강에서 일을 하고 있는 것만은 아니란 사실을 알 수 있다. 즉 노동자 계층 일반이 가지고 있는 노동에 대한 인식을 보여준다.3. 중간 계층(사이 인물)의 의의난장이의 가족 외 꼽추, 앉은뱅이 등은 사회에서 소외된 노동자 계층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 반대쪽에는 경훈과 같이 자본가를 대표하는 인물도 있다. 이렇듯 노동자와 자본가의 의식이란 서로 만나지 않는 평행선과 같이 그들의 의식 또한 타협할 수 없는 의식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는 소시민 가정의 신애와 고학력의 노동운동가 지섭과 같은 인물을 등장시켜 자본가/노동자의 대립이라는 여타의 70년대 작품들이 보여주는 이항대립의 틀에서 벗어나고 있다.우선 작품 속에 나타난 신애의 모습을 살펴보자. 신애는 난쟁이의 삶과 같이 경제적인 결핍이 생존을 위협하는 조건에서는 벗어나. 우린 중요한 것만 골라 배반하는 쓰레기들 속에서 살고 있어.”)가정교사인 지섭이 말한 도도새 이야기는 윤호에게 자의식의 변화를 가져온다. 날개를 사용하지 않아 날 수 없어 멸종당한 도도새는 현실에 안주하며 개혁을 꿈꾸지 않는 지섭과 윤호를 포함한 중간 계층 전체를 지칭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본질적인 것을 외면한 채 현재의 편안함과 안락함만을 위해 살아가는 자신에 대한 반성인 것이다. 이로써 윤호의 방황과 갈등은 심화되어 부조리하고 타락한 세상을 떠나 지섭과 난장이가 꿈꾸던 달나라 행을 결심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중간계층에게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점은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이 인식하는 사회의 모습은 제시되어 있지만, 그 대응양상은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이 인식하는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부당함을 인식한다는 것은 이 작품이 가지는 폭을 말해준다. 자본주의 사회의 뿌리를 흔들 수 있는 즉 내파되는 힘을 보여준다. 궐기나 행동이 보여주는 것과는 또 다른 행동성은 바로 이러한 움직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 행동이란 자본가와 노동자들 각자가 주체적으로 회의하고 의심하는 행위들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4. 영수, 영호, 영희의 하모니(을 중심으로)은 세 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이 세 이야기 속의 서술자도 각각 다르게 등장한다. 이렇듯 노동자 계층의 인물들은 자신들이 처한 현실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현실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 이런 현실이 노동자 계층을 대표하는 난장이 일가, 특히 난장이의 자식들에게 어떻게 인식되고 있으며 가각의 인물이 현실에 어떻게 대처하는가를 그들의 의식과 자의식을 통해 살펴보기로 한다. 영수, 영호, 영희의 순서로 현실에 대한 인식과 대응방안을 나름대로 펼치며 서술자가 《난쏘공》의 화두로 제시했던 난장이의 의식을 드러내게 된다. 우선 작품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난장이의 큰아들 영수의 목소리다. 그의 의식과 현실 대응 양상은 작품 전체 맥락에서 보면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우리 다섯 식구는 지옥에 주지? 돈도 넣어 주지 못하고, 먹을 것도 넣어 줄 게 없어서 그렇지?”“아버지에 대해 말을 막 하면 너 매맞을 줄 알아라.”“아버지는 악당도 못 돼. 악당은 돈이나 많지.”“아버지는 좋은 분이다.”“알아.”)이런 영수의 인식은 은강시로 삶의 터전을 옮기면서 달라진다. 은강공업 단지에서 열심히 일함에도 불구하고 억압받고 착취당하기만 하는 노동자들을 보게 되고 현실의 부조리함을 깨닫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어머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노동운동을 시작하기에 이른다. 영수의 극단적인 선택은“아버지를 난장이라고 부르는 악당은 죽여 버려.”“그래. 죽여 버릴게.”“꼭 죽여.”“그래. 꼭.”“꼭.”)하고 말하는 영희와의 대화에서 이미 예감하고 있다. 그러나 결정적 이유가 제시되는 것은 노동운동의 한계를 인식하고, 과학자가 보여준 ‘클라인씨의 병’을 통해 안과 밖, 가해자와 피해자, 노동자 계층과 자본 계층을 구분하는 이분법이 의미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러면서 은강 그룹 회장을 살해하기로 결심한다. 이제 그의 극단적인 선택은 그가 걸었던 기대가 모두 무너져 더 이상 출구를 찾을 수 없는 현실에 기인한 것이다.그러나 의 두 번째 이야기의 서술자로 등장하는 난장이의 둘째 아들 영호의 현실 인식과 그 대응 양상은 영수와는 성격을 달리한다. 영수는 어머니의 걱정과 실업의 위험도 감수하고 수많은 노동자들의 의식 개혁과 열악한 노동 환경 개선을 위해 자신의 신념대로 노동 운동에 뛰어드나 영호는 그렇지 않다.우리는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일했다. 공장은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원하기만 했다. 탁한 공기와 소음 속에서 밤중까지 일을 했다. 물론 우리가 금방 죽어가는 상태는 아니었다. 그러나 작업 환경의 악조건과 흘린 땀에 못 미치는 보수가 우리의 신경을 팽팽하게 잡아당겼다. 그래서 자랄 나이에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 발육 부조 현상을 우리는 나타냈다. 회사 사람들과 우리의 이해는 늘 상반되었다.……적대 회사들과의 경쟁에서 지면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것은 우리 공원들이 제일.”)
정지용 시의 풍경과 근대성Ⅰ. 서론1930년대 후반 문장파의 복고주의와 고전부흥론, 김동리의 순수문학론은 극단적인 근대의 논리를 부정하고 새로운 대안을 찾고자 했던 ‘반근대의 기획’으로 떠올랐다. 지가 내세운 ‘조선적인 것’ ‘동양적인 것’으로서의 심미적 가치는 황폐화된 식민지의 삶에서 고전적 삶이 함유하는 삶의 총체성을 통해 상실된 삶의 윤리를 이룩하고자 하는 상고주의에 대한 지향이 묻어있다. 여기서 ‘동양적인 것’이라고 명명되는 것은 조선조의 선비 문화와 연관되는 것으로 고전의 예스러움을 통해 문화적 총체성을 되찾고자 하였던 것이다.)정지용의 시집 은 지용 문학의 변모과정에서 동양 정신의 내면화로 특징지어지는 시기이며 문장파가 추구한 문학적 이상을 실현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지용은 ‘정신’을 ‘조선의 자연풍토’와 “조선인적 정서 감정과 최후로 언어문자”에서 찾고자 한다. ‘조선적인 것’ ‘조선의 자연풍토’에 대한 지향이 지용 시를 산수시로 몰아간 것은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한국에서 예로부터 중시해온 ‘풍수지리’나 ‘동양화’에서, 이념적 이상화로 재현되는 ‘산수화’의 풍경은 모두 ‘땅’과 ‘장소’와 관련된다. 정지용이 에서 보여주는 장소로서의 산, 계곡 등은 민족, 전통을 환유하는 물리적 실체이다. 지용은 조선의 자연 풍토 안에서 조선적 전통을 찾아내려 하였고 민족적 자각을 이끌어내려 하였던 것으로 보여진다. 정지용 시가 보여주는 한시의 계승적 측면, 산수시의 동양적 자연풍관은 이와 같은 국면에서 새롭게 해석된 근대이며 그런 과정에서 ‘발생된 전통’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전통과 근대의 변증법적 상호 작용이 이루어지는 장 자체가 실은 근대의 마당이다.그런 점에서 정지용의 시편을 단순히 동양적 전통으로의 회귀나 개인적 심미 취향으로 복귀라고 말할 수 없다. 또한 유기적 통합체로서 ‘전통’의 요소를 시에 드러내는 것은 단순히 민족주의의 뿌리와 연결되는 것이 아니다. 정지용 시는 미적 주체로서 정서의 감각화 등 현대적 미학성의 본질을 드러냄으로 새로운 전통의 의미를 규명할 수 있을 것이다.Ⅱ. 본론정지용 시에서 자연이라는 대상이 어떻게 시화되고 있는가를 살펴보기 전에 그의 시에서 형상화되고 있는 자연의 특성을 동양 중세의 산수화(시)에서 표현된 자연, 그리고 근대적 의미의 자연과 비교해보자. 동양의 산수화에서 자연, 곧 산수는 그 자체로서의 풍경이 아니라 도학 이념의 현현이자 하나의 규범으로서, 고금을 통해 변하지 않는 읽기의 대상으로서의 의미를 지녔다. 산수화에서 화가는 사물로서의 자연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선험적인 이념을 보고 있는 것이며, 따라서 자연은 이들에게 표상되기 이전, 실제화되기 이전에 이미 언어이고 이념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산수화는 개인이 대상과 이념적으로 하나인 상태를 전제로 한다.) 자연과 인간은 분리되지 않았고 이념과 자연이 분리되지 않은 체계였으므로 인간은 이념과 신앙 속 자연과 같이 다만 현시되는 자로서 파악될 뿐 스스로를 하나의 주체로 깨달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근대문학에서 자연은 개념으로서의 풍경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풍경이 실제적 대상으로서 발견되고 묘사되기에 이른다. 자연이라는 객과이 비로소 자아 속에 나타나기 시작하며 그 현상을 작품 속에 묘사하는 방법으로서 근대적 시점화 또는 원근법이라는 ‘시선’이 등장한다. 처음부터 거기 있었던 것처럼 보이는 있는 그대로의 풍경은 본래 외부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근대적 풍경에 의해 만들어진 인식틀의 구도 속에서 출현하는 것이다. 이렇듯 정지용의 시에서도 자연은 우선 개념의 현현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대상으로서 다가온다.난을 완상하는 것은 조선의 심미적 문화에 대한 심취를 이룩하는 일이기도 하다. 문장파 시인의 난 애호는 심미적 취향으로 역사적 사회학적 관심보다 개인적 내면의 평안을 구하려 하였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蘭草닢은차라리 水墨色蘭草닢에엷은 안개와 꿈이 오다.蘭草닢은별빛에 눈떴다 돌아 눕다.蘭草닢은드러난 팔구비를 어쩌지 못한다.蘭草닢에적은 바람이 오다.蘭草닢은칩다.전문그러나 정지용의 시 에서 ‘난’은 선비 자기 훈련의 방식을 드러낸다.정지용이 문양문화에 관심이 깊었기 때문에 동양화론이나 한시론으로 지용 시의 행방을 논하기도 하지만 지용 시를 좀 더 꼼꼼히 읽어보면 지용 시의 사물들은 즉물적 객관화나 극단적 묘사에 의한 합일의 사물성과는 좀 거리가 있어 보인다. 지용 시에서 자연은 정제된 규범을 변형시켜 주관적 감각화의 영역에 편입시킨 내면화된 자연이다. 내면적 자의식의 투영이다. 따라서 정지용은 ‘자연’을 새로운 시적 인식으로 드러내고 자연에 egoks 근대 미적 자의식을 드러내 보여주었다.老主人의 障壁에無時로 忍冬 삼긴물이 나린다.자작나무 덩그럭 불이도로 피여 붉고,구석에 그늘 지여무가 순돋아 파릇 하고,흙냄새 훈훈히 김도 사리다가바깥 風雪소리에 잠착 하다.山中 冊曆 없이三冬이 하이얗다.전문노인과 차는 동양적 전통 속에서 높은 정신적 경지를 상징한다. 한문문화권에서 노인의 이미지는 신선의 이미지를 지니고 있으며 모든 인생의 고락을 초탈하고 달관한 존재의 상징이다. 또한 차는 정신의 맑음과 신체 기 형통과 연관된 정신적 경지의 표지이다.정지용의 는 사물을 관조적으로 응시하는 한시와 구별된다. 시에서 하얀 눈이 초월적 탈속적 이미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에서 색다른 색채어와 내외공간의 변별적 분별이 시적 대상을 감각적으로 구사해 낸다. 이를테면 노주인이 있는 안의 공간이 ‘자작나무’ 붉은 꽃이 피고 무순이 파릇하게 돋아 있고 훈훈히 흙 김이 오르는 공간이라면 밖의 공간은 삼동이 하얀 고요의 공간이다. 흰색/붉고 푸른색, 죽음/생명, 고요/움직임이, 이항대립적 경계가 내/외의 공간의 변별 속에서 서로 역학적 운동성 속에서 존재의 강도 깊은 내밀함을 드러낸다. 또한 는 세속적 삶의 위기를 극복하고자 탈속적 삶을 지향해야만 했던 정지용의 내면의식을 잘 보여주고 있기도 한다.‘난’과 ‘차’는 유교적 기품이라는 정신의 투사대상을 넘어서 생명의 부단한 고투를 드러내는 세계에 대한 실존의 양식이다. 정지용 시에 나타난 자연은 동양화에서 그려지는 자연과 다른 방식의 자연이다.고한 것은 그 자체로 설명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연을 숭고한 대상으로 재현하는 일이 한계에 직면할 때 시인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대상에 대한 관념을 극한의 지점까지 밀고 가 추상의 극대치를 보여주거나 아니면 관념을 제거해 버리거나 하는 것이다. 지용은 추상이나 관념의 광택을 사물에서 철저하게 걷어내 버린다.와 에 나타난 감각적 사물화와 역학적 공간설정은 규범화된 선비 취향을 넘어서 새롭게 주관적으로 감각화한 동일성의 양식이다. 피폐한 근대의 삶에서 시인은 전통의 사물을 재구성해 냄으로써 새로운 양식의 미적 형상화를 이룩한다.돌에그늘이 차고,따로 몰리는소소리 바람.앞 섰거니 하야꼬리 치날리여 세우고,죵죵 다리 깟칠한山걸음거리.여울 지여수척한 흰 물살,갈갈히손가락 펴고멎은듯새삼 돋는 비ㅅ낯붉은 닢 닢소란히 밟고 간다. 전문정지용은 산 속에서 비 오는 한 장면을 ‘발견된 대상물’처럼 발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동양적 자연에 추상적 개념을 넘어서서 감각적이고 감성적인 지각이 개입한다. 비 오는 장면은 형이상학적 관점으로서가 아니라 경험적 혹은 현실 체험적 어느 부분과 이어진다. 풍경은 감각적으로 직관으로 기운으로 느껴지는 분위기의 전체를 전달하는 데에 집중한다. 지용이 자각하고 생산해내는 마음과 인식의 체제, 풍경의 재발견이라 할 수 있다.지용이 드러내는 이 빗속의 풍경은 완결된 형태의 자연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구체성이 낱낱으로 다시 돌아와 보편적 이념과 사실적 구체의 교류 속에서 비로소 열리는 감각과 사고를 드러낸다. 보편적 주체의 구성이, 현실이 나의 구체적 내부 속에서 혼융되는 과정이라 할 때 정지용 시의 감각은 현대적 미학을 형성해 낸다. 즉 지용 시에서 돌에 그늘이 차고 여울이 생기고 흰 물살이 손가락처럼 펴지는 감각은 신체와 밀착된 세계의 현상을 드러낸다. 여기서 ‘그늘이 차다’에서의 시각, ‘소소리 바람’의 청각, ‘여울지는 흰물살’의 시각은 모든 현재적 현실에 밀착하면서도 그것의 너머에 있는 세계 속에 각인시킨 실존적 이미지다.정지용에게 자연은 동양적 관념의 추상이 아니라 “신체적 주체”)로서 기능한다. 그것은 세계와 사물을 지각하고 사유하는 순수한 의식적 주체로서 신체다. 시인은 의식과 대상, 마음과 풍경의 경계에 신체적 지각과 감각을 부여하여 세계 속으로 상호침투한다. 마음과 자연이 하나의 신체로 응집하는 ‘물질의 시간’을 보여준다. 풍경은 곧 자연이 풍경이면서 시인 신체와 연결된 세계인 것이다.1絶頂에 가까울수록 뻑국채 꽃키가 점점 消耗된다. 한마루 오르면 허리가 슬어지고 다기 한마루 위에서 모가지가 없고 나종에는 얼골만 갸옷 내다본다. 花紋처럼 版박힌다. 바람이 차기가 咸鏡道 끝과 맞서는 데서 뻑국채 키는 아조 없어지고도 八月 한철엔 흩어진 星辰처럼煖漫하다. 山 그림자 어둑어둑하면 그러지 않어도 뻑국채 꽃밭에서 별들이 켜든다. 제자리에서 별이 옮긴다.나는 여기서 기진했다.2嚴古蘭, 丸藥같이 어여쁜 열매로 목을 축이고살어 일어섰다.3白樺옆에서 白樺가 ??가 되기까지 산다. 내가 죽어 白樺처럼 휠 것이 숭없지 않다.4鬼神도 쓸쓸하여 살지 않는 한모롱이,도체비꽃이 낮에도혼자 무서워 파랗게 질린다.5바야흐로 海拔六千? 우에서 마소가 사람을 대수롭게 아니녀기고 산다. 말이 말끼리 소가 소끼리, 망아지가 어미소를 송아지가 어미말을 따르다가 이내 헤어진다.6첫새끼를 낳노라고 암소가 몹시 혼이 났다. 얼결에 山길 百里를 돌아 西歸浦로 달아났다. 물도 마르기 전에 어미를 여윈 송아지는 움매- 움매- 울었다. 말을 보고도 登山客을 보고도 마구 매어달렸다. 우리 새끼들도 毛色이 다른 어미한테 말ㅌ길 것을 나는 울었다.7風蘭이 풍기는 香氣, 꾀꼬리 서로 부르는 소리, 濟州 회파람새 회파람부는 소리, 돌에 물이 따로 구르는소리, 먼 데서 바다가 구길 때 솨-솨- 솔소리,물푸레동백 떡갈나무 속에서 나는 길을 잘못 들었다가 다시 측넌출 긔여간 흰돌바기 고부랑길로 나섰다. 문득 마주친 아롱점말이 避하지 않는다.8고비 고사리 더덕순 도라지꽃 취 삭갓나물 대풀 石茸 별과 같은는다.
패러디)1. 패러디의 정의패러디(parody)의 어원인 'paradia'는 "다른 것에 대한 반대의 입장에서 불려진 노래"라는 의미를 갖고 있으며, 이보다 더 오래된 낱말로 추정되는 'paradio'는 "모방하는 것, 모방하는 가수"의 의미를 지녔다. 따라서 이 두 상반된 어원적 의미로 보면 패러디란 '반대'와 '모방' 또는 '적대감'과 '친밀감'이라는 상호모순의 양면성을 띠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양면성이 원전(또는 과거)에 대한 패러디스트의 태도임은 말할 필요 없다. 모방과 변용이 패러디를 구성하는 기본개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2. 패러디의 개념패러디는 모방인용된 구절이 새로운 맥락에서 어떤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가의 문제를 보여준다. 이는 원텍스트에 대한 충실한 이해를 기본조건으로 강조한다. 즉, '빌려오기'를 전제로 하는 패러디에 문제가 되는 것은 패러디 텍스트가 원텍스트의 유명한 가치와 의미내용을 효과적으로 충족시키고 있느냐 하는데 있다. 패러디의 성공여부는 원텍스트보다 성공적인 혹은 더 나은 미적 가치를 획득하고 있느냐, 차용의 주목적이 어디에 있느냐 하는 데 달려있다. 선행의 기성품을 계승ㆍ비판ㆍ재조합하기 위해 재기호화하는 의도적 모방 인용이라는 패러디에 대한 포괄적인 정의가 요청된다.3. 패러디의 유형첫째, 원텍스트의 권위와 규범을 계승하는 모방적 패러디가 있다. 이는 모든 장치들을 활용하여 원텍스트를 예시하거나 노출시켜야 하고 이로써 합법성과 정당성은 물론 유희성까지 획득할 수 있다.둘째, 권위와 규범을 문제시하는 비판적 패러디가 있다. 여기서 문제시 한다는 것은 원텍스트의 근거를 인정하기는 하지만 그 의미를 완전히 새롭게 해석하거나 비판적으로 개작한다는 것을 말한다. 원텍스트에 대한 비판적 거리를 필수로 하기 때문에 비판적 패러디라 부를 수 있다. 따라서 이는 원텍스트에 대한 공격성과 풍자성이 강하다. 따라서 패러디스트의 독자적인 가치관과 세계관이 더욱 중요시 된다.셋째, 권위와 규범 자체가 불가능한 것으로 가정하는 혼성 모방적 패러디가 있다. 이는 작품이 지닌 창조성이나 원본성을 부정하기 때문에 원텍스트를 대량 복제하고 과감히 발췌ㆍ혼합함으로써 원텍스트가 가지고 있는 권위와 규범을 대중화시킨다. 원텍스트에 대한 공격성과 풍자성이 약하다는 점에서 제1유형과 유사하지만, 원텍스트와의 유사성이 보다 직접적이고 패러디의 목적이 전략성을 띠고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3-1. 모방적 패러디패러디스트가 원텍스트에 호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원텍스트에 대한 공격 성이나 희극성은 거세되어 있기 때문에 원텍스트에 대한 공격성이나 희극성은 거세되어 있다. 대부분이 원텍스트와의 이데올로기적 승인, 내적 발화의 친화를 토대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원텍스트의 계승 혹은 의미 확장에 주력한다.여기서는 고전문학과 현대문학간의 패러디적 양상을 통해 전통유산을 부활시키고 현대문학을 풍요롭게 할 뿐 아니라 문학 전반의 통시적 관계를 규명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는 민요와 설화를 차용하여 민요조 서정시의 세계를 가진 김소월을 통해 시의 소재적 차원에서 설화가 차용되는 양상 등을 살펴볼 것이다.산에는 꽃피네꽃이피네갈 봄 여름없이꽃이 피네산에산에피는꽃은저만치 혼자서 피어있네산에서 우는 적은새요꽃이좋아산에서사노라네산에는 꽃지네꽃이 지네갈 봄 여름없이꽃이 지네김소월, 전문1925년 『진달래꽃』에 발표한 시다. 제목의 '산유화'란 원래 노래의 곡조를 뜻하기도 하지만, 계모 밑에서 어렵게 자란 향랑이 시집을 가서도 못된 남편과 시집살이에 견디다 못해 '산유화가'를 부르며 연못에 빠져 죽었다는 설화를 근거로 대개 '여자가 빠져 죽는 것'을 가리키기도 한다. 특히 이조후기에 민요조 한시가 부상하면서 일련의 산유화는 많은 이들에 의해 재창되었다. 민요나 한시에 조예가 깊던 소월이 이런 산유화를 몰랐을리가 없다. 따라서 시 제목 자체를 '산유화'라고 명명한 것은 원텍스트의 규범과 권위를 모방인용하려는 모방적 패러디의 의도와 맞닿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소월이 이 시를 창작했던 당시에 산유화류가 널리 퍼져 있었던 것을 감안한다면 패러디로서의 정황은 더욱 분명해진다.원텍스트의 '산유화가' 중 소월의 시와 가장 흡사한 민요와 민요조 한시 한 작품씩만 소개한다.산유화야 산유화야저 꽃 피어 농사일 시작하여저 꽃지더락 畢役하세(후렴) 얼럴럴 상사뒤어여뒤여 상사뒤 부분산유화 산엔 꽃이 피었으나무아가 나는 홀로 집이 없다네무아가 그래 집없는 이몸불여화 꽃보다 못하다오이안중, 위와 같이 원텍스트들과 비교해 볼 때, 소월 시의 '꽃이피네'와 '꽃이지네'는 첫번째의 '저 꽃 피어 농사일 시작하여/저 꽃지더락 필역하세'를 변용한 것으로 보인다. 다른 점이라면, 원텍스트에서는 꽃이 피고지는 자연의 질서가 씨를 뿌리고 열매를 거두는 노동이라는 인간의 질서와 일치되고 있는데 반해, 패러디 텍스트에서는 '갈 봄 여름없'이 피고지는 자연의 질서가 인간의 질서로부터 일정 거리를 유지한 체 '저만치' 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두번째는 향랑이 물에 빠져 죽기 전에 불렀던 노래를 시화하고 있는데 이 시에서 보이는 있음과 없음의 구조 또한 '피고 지는' 꽃의 질서와 동궤를 이룬다.민요가 소월 시의 기본 동력이었음은 에도 드러나고 있는데, 이 시는 잡가류 민요에 대한 패러디다. 필역(상략) 이 팔벼개노래調는 채란이가 부르던 노래니 내가 寧邊을 떠날 臨時하여 빌어 그의 親手로써 記錄하여 가지고 돌아왔음이라.(하략)집뒷山 솔밭에버섯 따던 동무야어느 뉘집 家門에시집 가서 사느냐.嶺南의 晋州는자라난 내故鄕父母없는故鄕이라우.오늘은 하루밤단잠의 팔베개來日은 相思의거문고벼개라.첫닭아 꼬꾸요목놓지 말아라품속에 있던님길차비 차릴라.두루두루 살펴도金剛 斷髮領고개길도 없는몸나는 어찌 하라우.嶺南의 晋州는자라난 내故鄕돌아갈 故鄕은우리님의 팔베개.김소월, 부분이 노래는 1926년 『가면(假面)』에 발표했던 시다. 는 이 산문형식의 서문 형식을 통해 원텍스트를 전경화하고 있다. 그 단적인 언급은 ‘이 팔벼개노래조는 채란이가 부르던 노래니 내가 영변을 떠날 임시하여 빌어 그의 親手로써 기록하여 가지고 돌아왔음이라’라는 구절에서 찾을 수 있다. 이 부침글에 따르면 인용시의 원텍스트는 20년대 기생이나 기타 전문적인 놀이꾼에 의해 창작되고 불리워졌던 잡가의 일종으로 보이나, 확실한 출전은 확인할 수 없다. 결국 이 시가 원텍스트와 어떤 동질성과 차이성이 있는지는 분명치 않으나, 시인이 붙인 제목과 부침글, 그리고 행과 연의 배열, 시어의 선택 등은 소월의 창조적 상상력이 가미된 것임이 분명하다. 세간을 떠돌던 노랫가락을 채록하여 그것을 시인의 언어로 새롭게 현대화시켰다는 점에서 원텍스트를 재기능화하고 있다.회화와 시는 모두 이미지에 의해 구성되며 이미지를 통해 표현된다. 그러나 시가 대상화되지 않는 비실재적 장르인 반면, 회화는 여러 가지 물질적 재료로 대상화되는 실재적 장르이다. 또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회화가 공간적 제한에 의해 제재 선택을 한정받는 한편, 시는 제재 선택에서는 자유롭지만 언어의 재현적 한계라는 점에서 제약을 받는다. 매체적 속성이 다른 장르간의 역동적 교류라는 관점에서 시가 회화를 패러디한다는 것은, 구체적인 회화 작품을 원텍스트로 하면서 화가가 공간 속에 표현해놓은 선과 색채를 시간성을 의존하는 시의 언어로 재창조해내는 행위를 일컫는다. 그러므로 ‘회화에 대한 패러디 시 연구’는 ‘시에 나타난 회화성 연구’와는 변별된다. 회화성 연구란 이미지를 핵심으로 하는 시적 특징에 관한 연구인 바, 일례로 이미지스트라 불리우는 현대 시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일련의 회화성이나 이미지 연구가 이에 해당한다. 그러나 회화에 대한 패러디 연구는 기존의 회화 작품을 의식적으로 전경화시킴으로써 두 텍스트간의 대화성을 환기시키는 텍스트에 한정한다. 이럴 경우 원텍스트의 어떤 회화적 특성이 어떤 동기와 어떤 언어로 차용되고 있는가에 대한 고찰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시인이 회화 속에 들어가 원텍스트의 의미를 주관화시켜 재해석하고 있는 경우를
현진건 - 「고향」해설서론1. 작가의 생애현진건(玄鎭健)은 구한말 통신원 전보국장을 역임한 연주(延州) 현(玄)씨 현경운(擎運)과 이정효(貞孝) 사이에서 4남으로 1900년 음력 8월 9일에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조선조 대대로 역관을 세습해 왔고, 구한말 사회변동기에는 정치 문화 엘리트를 많이 배출했다.11세에 생모를 여의고, 16세에 대구 부호인 경주 이씨 집안 진사 딸과 결혼하고 고향에서 한문을 공부하던 그는 일본으로 건너가서 외국어학교에서 공부했다. 귀국한 후에는 이상화, 이상백, 백기만 등과 함께 동인지 『거화』(炬火)를 간행했고, 그 후에 다시 상해로 건너가 수학했다. 중국에서 귀국한 그는 당숙 보운(普運)에게 양자로 들어갔으며, 그 즈음에 조선웅변회를 조직하여 활동했고 외국소설을 번역하여 잡지에 발표했다. 1920년 11월 『개벽』에 「희생화」(犧牲花)를 발표하면서 창작활동을 시작했고, 백조 동인으로 참여하는 등 한국 현대문학사에 중요한 업적을 남겼다. 또한 그는 1921년에 조선일보에 입사하고, 이어 몇몇 신문사와 잡지사를 거쳐 동아일보로 자리를 옮겨 1937년까지 기자생활을 계속했다).2.. 작품 세계와 경향현진건(玄鎭健, 1900~1943)은 우리 현대소설사에서 단편소설의 개척자로서 뚜렷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작가이며, 현실의 시공위상을 투시하는 탁월한 능력을 지닌 리얼리스트다. 리얼리스트로서 그는 자아(개인)와 사회의 상호 연계성뿐 아니라 암울하고 황폐한 시대적 상황까지 투시하고 있다. 이런 그의 현실 투시는 바로 반어적 정관(靜觀)이라는 구조와 미학으로 이루어져 있다. 현진건은 아이러니의 수사학에 매우 능한 작가이다. 그만큼 그는 인간과 현실을 서사적 방어의 창을 통해서 제시한다. 이것은 사회나 세계의 미에 대한 그의 진지한 탐색의 결과로 얻어진 것이다.)그의 문학활동은 대체로 3기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빈처」, 「술 권하는 사회」, 「타락자」 등 일련의 자전적 양식의 소설을 발표했던 초기이다. 이때 작품에는, 근대사회로 진입하는기준 등은 별 효력이 없는 것임을 인정치 않을 수 없게 된다.)「조선의 얼굴」의 기저에 흐르고 있는 정신을 가장 잘 대변하고 있는 「그의 얼굴」 즉 「고향」을 보면 현진건이 물질적인 면에서의 궁핍상과 정신적인 면에서의 박탈감을 1920년대 한국인의 집단의식 혹은 세계관으로 환산하려 했음이 분명해진다.)(2) 두 개의 이야기「고향」은 1926년에 출간된 단편집 『조선의 얼굴』에 실린 대표 작품으로, 식민지 치하의 근원적인 실향상태 및 뿌리 뽑힌 삶의 실상을 다룬 것이다. 이 작품은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기찻간 속에서 만난 초라하고 기묘한 차림의 한 막벌이(일본어 중국어 한국어를 혼성하는) 노동자인 주인공에 대한 호기심에 이끌리는 서술자 ?나?가 그로부터 고통스러웠던 삶의 내력담 내지 체험담을 듣는 것으로 짜여있다. 체험담을 이루는 내부 이야기에는 두 개의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다.)첫 번째는 이상한 차림의 주인공 ?그?가 고향인 평화로웠던 K군 H마을이 일제에 의해 식민지가 되고 토지를 모두 동양척식회사에 빼앗기는 바람에, 궁민(窮民)이 되어 살 길을 찾아 유랑하는 이야기다. 마을은 쇠진해 버리고 마을 사람들은 유민이 되어 살 길과 먹이를 찾아 사방으로 흩어져 유리하게 된다. ?그?도 역시 살 길을 찾아서 대단위적인 이민의 땅 서간도는 물론 신의주, 안동현, 그리고 구주 탄광, 오사카 철공장 등의 품팔이 노동자로서 유리전전한다. 그 사이 굶주림에 의해서 영양실조로 어머니가 죽게 되고 그 역시 탕아나 파멸된 인간으로 전락한 나머지 고향에 회귀해 보았으나, 옛날의 고향은 이미 ?무덤을 파서 해골을 헐어 젖혀 놓은 것? 같은 죽음의 상태로 불모화되고 황폐화되어 다시 일거리를 찾아 나선 것이라고 고백한다. 고향을 잃어버린 이 실향민이 파멸적인 삶, 그것에 대해서 서술자인 작가는 ?음산하고 비참한 조선의 얼굴?이라고 지적한다. 바로 이 구절이 그의 단편집의 이름을 『조선의 얼굴』이라고 명명하는 근거가 되기도 하지만, 이 때문에 이 단편집은 1940년 7월 총독부에 의해품의 결말은 다음과 같은 민요의 인용으로 끝나고 있다.볏섬이나 나는 전토는 / 신작로가 되고요……말마디나 하는 친구는 / 감옥소로 가고요……담뱃대나 떠는 노인은 / 공동묘지 가고요……인물이나 좋은 계집은 / 유곽으로 가고요……식민지 정책 아래서의 삶의 실상과 고통을 이보다 더 명료하게 설명할 수가 있을까. ?신작로?, ?감옥소?, ?공동묘지?, ?유곽?과 같은 특정한 장소는 단순한 장소의 이미지가 아니다. 식민지 정책의 지배와 통제가 확산되고 있는 상황을 표징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가난에 의한 여성의 상품화 현상의 식민지적 징후를 표징한다. 요컨대 「고향」은 식민지 시대의 상황 아래 있는 조선 사람의 황막한 삶을 축약하고 있는 셈이다.)2. 작품 인식 방향(1) 황폐한 시대의 인식식민지시대는?황폐한 시대?라고 규정할 수 있다. 그것은 정치적으로 식민지시대이고, 경제적으로 궁핍한 시대이고, 정신적으로 가치 혼란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 황폐한 상황은 날이 갈수록 더해지면서 식민지 체계 속에 고착되는데, 일상적 삶은 그러한 상황에 압제되어 무기력과 안일과 타협 속에 침몰해 갔다. 초기에 있었던 정치 현실에 대한 비판이나 저항의 양상은 내적 분화를 일으키면서 타협의 노선으로 나가 상황 논리에 모든 것이 수렴되어 버렸다. 이러한 현실에서 작가는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사회의 모순을 통찰하고 형상화시킴으로 식민지시대의 극복을 도모하였다.1) 계층의 兩極化 현상식민지 현실의 두드러진 특징 중에 하나는 계층이 兩極化 된 현상이었다. 그것은 일반 민중의 고통을 외면하는 지식인들의 반지정적 삶과 새로 부상한 상층계층의 반도덕적 삶이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계층은 상존하는 것이지만 이 시대는 그 양극화 현상이 심하였다. 지식인들은 민중들의 궁핍한 삶을 외면하였고, 새로 부상한 계층들도 자신의 안일에만 관심을 가졌다.)「고향」은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차간에서 만난, 고향을 떠나 東洋三國을 방황하다가 돌아온 젊은이의 이야기인데, 목격자로서의 동으로 생계를 꾸려갈 목적으로 막연하게 서울로 올라가는 처지이다. 비루한 옷차림과 요술쟁이가 구경꾼들에게 박수를 요청하는 듯한 어쭙잖은 의 모습 때문에 는 쌀쌀하게 대한다. 가 동족이라는 점이 오히려 부끄럽고(일본 중국 사람이 동석하였기 때문에), 그래서 밉살스럽기까지 하였다(1). 동행임을 알고는 가 반갑다고 하자, 는 그 반가움에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모른다(2). (3)에서, 더구나 가 노동숙박소에 대한 사정을 물었을 때 나는 대답할 말이 없었다. 그러는 가운데 의 태도는 달라진다. 처음과는 달리 그에게 너무나 관심이 없었던 일이며, 노동숙박소의 사정을 전혀 모르고 있는 자신이 죄송스러울 정도로 의 태도는 변하였다. 이렇게 두 사람 사이에는 격심한 계층적 차이가 있다. 가 사회의 밑바닥에서 살아가는 뿌리없는 사람임에 비하여, 의 처지는 그렇지 않다. 는 동양삼국을 방황하다가 고향에 돌아와서도 안주처가 없는 처지이지만, 는 노동숙박소에 대하여 아는 바 없을 만큼 밑바닥 계층들의 삶에 무관심해왔다. 여기에 계층간의 양극화 현상의 극심함이 드러나고 있다.)2) 하층계층의 궁핍상작가는 사회 계층의 양극화라는 구조적 병리 현상과 더불어 그러한 사회 현상의 뒤에 도사려 있는 근원적인 문제에 대하여 관심을 가졌다. 그것은 下降的 플롯과 고향 상실의 모티브를 통해 구체화된다.)「고향」에서, 의 삶의 파탄을 가져왔던 원인과 살아왔던 과정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① 고향을 떠나 서간도로 이사를 간다. (고향을 잃어버림)② 부모가 병과 가난으로 죽는다. (부모의 죽음)③ 부모를 빼앗아간 땅이 싫어서 방황을 시작한다. (방황)고향을 잃고(잃은 게 아니라 빼앗긴 것임) 부모까지 잃어야 하였던 경황은 바로 현실적인 고향과 원초적인 모태의 고향까지 상실함을 의미한다. 그는 그 잃어버린 고향을 찾으려 옛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찾아온 고향은 떠날 때 고향보다 더 황폐되어 있었다. 아는 사람은 없고 무너진 울담만이 즐비하니 살던 집조차도 찾을 수 없었다. 불과 십년 만에 고 되는 의 인식의 확대 과정이, 와 의 심리의 단축을 통하여 나타난다. 열차 안에서 우연히 동행하게 된 에 대하여 의 관심과 그 반응은, 그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차차 변모하여 간다. 그 과정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1) 주적대는 꼴이 어쭙고 밉살스러워 는 쌀쌀하게 굴었다.(2) 무어라 대답할 수도 없고 대답하기도 싫어서 덤덤히 입을 다물어 버렸다.(3) 는 그 문제에 대하여 아는 바 없었다. 불친절한 것이 죄송스러웠다.(4) 는 무어라 위로할 말을 몰랐다. 친구들이 사준 술을 같이 마셨다.(5) 는 눈물 가운데 음산하고 비참한 조선의 얼골을 똑똑이 본 듯하였다.(6) 우리는 주거니 받거니 한 되 병을 다 말리고 말았다.처음 를 만났을 때 느꼈던 혐오감은, 더불어 이야기를 듣는 가운데 모두 사라지고 마음이 서로 교통하게 된다. 와 는 로 바꾸어지고, 음산하고 비참한 개인의 과거가 아니라 바로 ?조선의 얼골? 즉 자신의 얼골로 인식하게 되면서, 현실을 외면하고 상황론에 자기를 합리화시키면서 살아가던 에 대한 성찰에 이르게 된다. 즉 처음의 목격자로서의 가 작중 현실에 가담함으로써, 타인의 목격자 로 출발하였으나 결국에 는 소설 작중인물로서 몫을 크게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額字小說이라기 보다는 의 의식의 변모를 나타나기 위한 장치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는 소설의 주인공은 아니지만, 의 인식의 변모가 바로 소설의 요체를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즉 는 가 제공해 주는 정보에 의하여 세계인식의 계기를 얻기 때문에, 작중인물로서 자기 몫을 다하면서 자기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자기인식의 변모를 직접 자기 입을 통하여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작품의 의미에 시점이 크게 기여하고 있다. 「고향」은 단순히 식민지 농촌의 황폐한 궁핍상을 드러내기 위해 실향민의 생활을 묘사한 작품 정도로 이해하는 데서 그쳐서는 안되고, 그러한 현실을 비로소 의 현실로 인식하는 의 정신적인 정황까지를 포함하여 이해할 때 작품의 총체적 의미가 분명해진다. 이러한 소설구조를 통하여
서론횡보 염상섭은 1921년 「표본실의 청개구리」를 발표하면서 작가 생활을 시작했다. 그가 1963년 작고하기까지 근40여년의 작가 생활이 남긴 작품량도 기록적이지만 그에 대한 문학사적 평가는 춘원, 동인, 빙허, 원탄, 도향 등과 함께 근대 문학의 큰 자리를 차지한다. 그 가운데서도 식민지 현실의 묘사가 치밀하다고 하는 「만세전」에 전반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문학사적 의미를 살펴보고 각각의 주인공들이 가지는 의미를 따져보자.본론1. 염상섭의 생애1897년 3월 20일 서울 종로구 필운동에서 부친 염규환과 모친 경주 김씨의 8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본명은 상섭(尙燮), 필명은 상섭(想涉)이며 호는 횡보(橫步)이다. 1918년 교토부립제 2중학교를 졸업하고 게이오 대학 문과에 입학(사학과) 다. 1919년 3월 19일 오사카의 데노우지 공원에서 조선노동자대회를 열어 만세 운동을 벌이려 시도했으나 검거되었다. 1922년 단편 , , 평론 등을 《개벽》에 각각 발표하고 을 《신생활》에 연재하였다. 이 를 에 재연재한다. 이렇게 작품활동을 하면서 1963년 3월 14일 별세하게 된다.)2. 「만세전」의 구도만세전을 이끌어 가는 장치로는 여로구도와 자기규정의 구도가 설정되어 있다.먼저 여로 구도를 선택한 이유는 ‘아직 추상적 상태의 계몽적 관념에 머무르고 있는 이인화로 하여금 구체적인 현실과 접촉하게 함으로써 자아의 각성에 이르도록 하는 계기가 되’)게 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여로 구도에서 드러나는 두가지 특징을 살펴보면,첫째, 식민지 현실에 대해 인식하게 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둘째, 위와 같이 인식된 현실 속에서 스스로의 개성을 찾아가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다음으로 자기규정의 구도는 이인화가 출발점인 동경에서 자신에 대해 내리는 규정이다. 동경이라는 공간은 민족문제로 고민한 적이 없는 자유의 공간이다. 그런 이인화에게 여행은 일차적으로 ‘자신이 전혀 근대적이지 못한 식민지 조선인과 한 민족’)이란 충격을 선사한다. 또 하나, 근대인으로 어떤 대우를 받는 것이 아 일본인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가방수색을 당하는 데서 자신은 근대인이라는 사실을 전혀 인정받지 못하고 오직 조선인으로 취급받는 것에서 오는 자존심의 손상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이런 하관에서의 경험은 식민지 조선의 현실에 관심을 주게 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인화가 근대인으로서 자기 규정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자기 규정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식민지 조선의 모든 현실을 판단할 수 있게 되었다.그리고 마지막으로 ‘원점회귀' 구도를 보인다. 겉으로 보기에는 동경서 서울까지에 이르는 여로(길)형이지만 그 내면 구조는 동경에서 서울, 서울에서 다시 동경으로 되돌아가는 회귀형으로 되어있다. 서울(조선)을 라고 외치며 도망치는 주인공의 의식은 동경을 와는 정반대인 것, 이를테면 과 같은 것으로 인식함을 가리킨다.)3. 당대 조선의 현실은 어떻게 분석되고 해석되는가?조선의 현실이 음산하고 비참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 이유는 일본의 조선 침탈과 같은 외적인 요인과 그 보다는 더욱 강조되는 것으로 봉건적 사고 방식 안에서 자아의 각성은 꿈조차 꾸지 않는 조선인들의 사고 방식 때문이라고 한다.여기에서 이인화가 일제와 다른점이 있다면 그도 조선인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기에 못난 동족에 대해 안타까움과 분노를 느낀다는 것이다.4. 등장 인물들의 성격염상섭을 평론해 놓은 여느 평론집에서 그런 말을 본적이 있다. 그의 소설에는 언제나 그저 그런 평범한 인물들이 주인공이라는 것이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그 당시 유학생들 중에 한사람으로 이인화를 설정했고, 그는 특별하게 의식있는 행동하고 실천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여기에서는 어떤 인물도 특이한, 특별한 신분이나 성격적 특성을 갖지는 않는다. 몇몇 평론집을 읽다가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이 드는 글이 있었다.「만세전」이 보이는 분열상은, 식민지라는 외적 현실보다는 1920년대 소설계의 지형도라는 문학계의 관성이 보다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추상적 근대성에의 강렬한 지향에 의해을 폭로, 형상화하는 식으로 바뀌는, 소설계의 지형 변화의 한 양상이 「만세전」의 분열상으로 드러난 것이다.)이것은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이인화가 현실을 외면하고 부정하는 양상이 이 시대 문학의 흐름을 탄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보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하나의 예로 염상섭이 1952년 발표한 「취우」와 같은 작품에서 보여준 철저한 중립자적 태도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생긴다. 그는 「취우」에서 6?25전쟁중인 서울에서 당시 시민의 놀랍도록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가 결코 역사의식의 결핍으로 그러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것은 염상섭의 작가적 관점이라고 생각한다. 그에게는 하나의 ‘무기’라고 생각될 만큼 그를 버티게 한 힘이란 생각이 든다. 어쩌면 그것은 철저히 중산층계층 출신이라는 그의 출신이 가지게 한 그의 문체적 무기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1) 김천형님소학교 훈도이면서 이치에 밝은 김천형님은 1919년의 조선에서 어느정도 개화된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의 가치관은 아직도 봉건적인 상태다. 결론적으로 김천형님은 이기적이고 위선적인 인물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지식과 재산을 오로지 자신과 집안을 위해서만 쓰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기적이지 않은 모습으로 둘러대는 장면에서 위선적인 성격을 엿볼 수 있다. 이것은 19세의 둘째 형수를 자신의 욕망 때문에 들여 놓고도 그녀의 친정을 구해준다는 명목을 내세우며 이를 이인화에게 설명하는 장면에서 잘 드러난다.2) 갓장수갓장수는 그의 외모, 즉 상투머리 차림에서 드러나듯이 김천형님보다 더 봉건적 가치관의 소유자이다. 그는 일제에 굴복하는 힘없고 나약한 민중을 대표하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천대를 받아도 맞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데서 이러한 굴복은 당장의 억압과 고초를 피하기 위해 굴복한다는 면에서 ‘이기심의 역설적인 표현’)으로 생각할 수 있다.3)혼혈 조선인 여급부산에서 만났던 혼혈 조선인 여급이 일본인 아버지를 찾아가겠다는 것을 보고, 이인화는 정에 이끌각이 든다.4) 이인화이인화 또한 앞의 인물들과 같이 이기심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것은 동경에서의 출발 상태에서부터 알아볼 수가 있다. 그러나 다른 인물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 이기심을 극복될 대상으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그 이기심을 극복하게 되지는 못한다. 어쩌면 주인공마저도 현실 극복을 위한 적극적이고 실천적인 면모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독자들은 다소간의 실망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시대에 대한 작가 나름의 풍자가 들어있다고 봐야할 것 같다. 그 시대에는 살기 위하여 어쩌면 교육받은 사람은 교육의 대가로 더욱 실천적일 수 없었던 그런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을 말하고 싶었을 수 있었을 것이다.5) 병든 아내실제로 소설에서 병든 아내는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그녀는 이인화에게 미세하게나마 어떤 의미있는 변화를 일으키는 존재로 나타나고 있다. 이 변화는 위독한 아내에게 미음을 떠넣어 주었을 때 나타난다. 이 때 그는 작품어디에서도 느끼지 못한 유쾌하고 보람된 기분을 느낀다. 이는 왜 일까? 여행 내내 목격자 또는 방관자의 입장에 있다가 그 위치를 벗어나 소극적으로나마 참여자 또는 실천자의 입장에 섰다는 것이 그러한 감정을 불러 일으켰으리라 생각된다. 결과적으로 아내는 ‘전 생명을 내걸면서 이인화에게 목격이 아니라 실천을 요구하는 인물로 나타나는 것이다.’)5. 무덤‘무덤이다! 구더기가 끓는 무덤이다!’(중략) 나는 한번 휘 돌려다보며,'공동 묘지다! 공동묘지 속에 살면서 죽어서 공동 묘지에 갈까봐 애가 말라하는 갸륵한 백성들이다. 하고 혼자 코웃음을 쳤다. (중략) 너두 구더기, 나두 구더기다. 그 속에서도 진화론적 모든 조건은 한 초 동안도 거르지 않고 진행되겠지! 생존 경쟁이 있고, 자연 도태가 있고, 네가 잘났느니 내가 잘났느니 하고 으르렁댈 것이다. (중략) 에잇! 뒈져라! 움도 싹도 될 수 없이 스러져 버려라! 망할 대로 망해 버려라! 사태가 나든지 망해 버리든지 양단간에 끝장이 아 각성의 가능성을 전혀 찾을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한 이인화의 절망이 ‘무덤’으로 압축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인화가 여행중에 목격한 것은 민족 전체가 생존 경쟁에 뒤쳐져 자연 도태되고 있는 암담한 현실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당대 현실에 대한 객관적인 반영으로 볼 수 없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작가의 절망이고, 이인화 개인의 분노일 수는 있지만 실제 조선의 현실이 ‘무덤’이었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식민지 민중들이 자체적으로 일어난 ‘3?1 운동’은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6. 이인화가 정자에게 보낸 편지이인화는, 현실에 대해 시종일관 방관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인물이 행하는 사유와 관찰이 「만세전」의 실질적인 구성 원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작품을 종결짓는 것이 하나의 문제였는데 여기에 「만세전」이 선택한 방식은 바로 ‘편지’이다. 이렇게 설정된 ‘편지’는, 1920년대 초기 소설들이 자주 사용한 방식으로 예를 들면 꿈, 환상, 일기 등의 중계자를 통한 것으로 작가-서술자의 의견을 토로하는 기능을 가능하게 하는 역할을 수행했다.「만세전」의 결말 부분에 있는 주인공의 정자에의 편지 내용이야말로 이 작품의 진짜 주제가 담겨 있는 곳일지도 모른다. 이 ‘편지’가 중요한 까닭은 단순히 형식적인 이유에서만 아니라, 내용상으로도 작품을 완결시키도록 의도되었다는 사실에 있다. 거기에 이란 단어가 두 번 사용되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의미를 되새겨 본다면 하나는 일본여급 정자의 이며 다른 하나는 주인공 자신을 포함한 전인류의 이 될 것이다. 정자라는 여인의 처녀의 몸으로 집에서 나와 레스토랑의 여급 노릇을 한 일, 그것은 결국 증기기관과 같은 근대의 산물일 것이다. 봉건적 잔재에 스스로가 놓였음을 깨닫는 일이 어떻게 가능했을까를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그것은 합리주의 사고에서 왔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의 합리주의란 잘못된 봉건적 인습을 견딜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종결 장치로서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