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s of people who need new organs die every year in the world. Some scientists have already invented new medical science for transplanting humans organ. But its demand is much more than its supply. Selling organs is banned in the most of the world. So many people who need a human organ buy it on the black market. Although many countries have illegalized, the market seldom decreases the buying and selling of organs. perhaps we should legalize selling organs. What problems can we expect? Selling organs might be a good way to save people’s lives, because everyone wants to make money as much as they are poor. On the newspaper and TV, We’ve seen a lot of people who need transplanting organs go to other country such as China to have transplant surgery by buying organs from poor people.
※공칭응력과 진응력의 정의와 차이진응력은 한순간에서의 하중을 그것을 작용하는 단면적으로 나눈 값인데 비하여 공칭응력은 그 하중을 초기의 단면적으로 나눈 값이다. 탄성거동을 생각할때는 그 구별이 필요없다. 그러나 소성변형을 다루는 경우에는, 특히 인장시험의 결과를 수학적으로 취급하는데 있어서는 그 구별이 중요하다. 진응력은 σ로 표기하고 공칭응력은 s로 표기하기도 한다.진응력 σ = 하중 / 단면적공칭응력 S = 하중 / 최초단면적진변형율의 예를 든다면 표점거리가 2in 재료를 인장하여 3in가 되도록한 다음 다시 더 인장하여 0.1in의 길이를 증가시켰다고 하자. 이렇게 두 번째로 늘어난 길이에 대한 공칭변형률 ΔL/L0 즉 0.1/2 이다 그러나 만일 변형이 진행되는 순간의 길이에 대한 다음 순간에 늘어난 길이를 비교하면 위에서 언급한 두 번째로 늘어난 길이에 대한 변형률은 0.1/3.05 가 될 것이다. 이 경우 3.05는 0.1in 가 늘어날때의 시편의 평균길이 (즉 (3+3.1)/2 = 3.05)라고 간주한다. 그러므로 진변형률의 계산은 어느 순간에 변화된길이를 그 변화되기 직전 순간의 시편 전체길이로 나눔으로써 계산할수 있으며 그 식은 다음과 같다.진 변형률 ξ = ln( L / L0 )공칭변형률 e = ( L / L0 ) -1※응력(stress): 단위면적당 인가되는 하중 즉 힘/단면적. σ = F/A (단위 : kgf/㎟ , N/㎟)즉 응력 σ는 시편에 가해지는 하중, F를 시험편의 단면적,A로 나눈 값으로 정한다.※압력(pressure):단위 면적당 받는 압력 힘, 즉 힘/단면적, 응력과 비슷하지만 응력은 방향성이 있지만, 압 력은 방향성이 없다. 어느 임의의 점에서 모든 방향으로 힘이 형성되지만, 응력은 단면적 의 수직방향 힘만 존재 한다.※강도(Stress): 강도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말하는 인장강도는 단위면적에 인가되는 힘에 의해서 파단될때의 힘, 즉 파단시 힘/단면적, 즉 파단될때의 응력 이다.※항복강도 (yield strength)인장시험에서 그 값부터 영구 변형이 발생하는 임계응력. 강도의 기준이 되는 값. 항복점이 명료한 재료에서 항복점의 하중을 말하며 항복점이 불명한 재료에서는 0.2%의 영구변형을 일으켰을때의 하중을 원단면적으로 나눈 값을 말한다.※인장강도 (ultimate tensile strength, σuts)인장시험에서 얻어지는 공칭응력의 최대값. 인장시험에서 재료가 파단하기 까지의 최대하중을 시험편의 평행부의 원래의 단면적으로 나눈 값. 단위 면적당의 최대인장응력※항복점 현상 (yield point phenomenon)시험도중 하중을 증가시킴에 따라 변형률도 증가하다가 어느 순간 하중이 순간적으로 떨어져 대략 일정한 응력에서도 어느 정도 변형이 진행되다가 다시 하중이 증가하는 현상.※연신율 (percentage elongation)인장시험에 있어서 시험편에 어떤 인장하중을 가하였을 때 그 하중을 가한 상태에서의 표점간길이 L 과 원래의 표점거리 L0 와의 차로서, 탄성연신율과 영구연신율의 합으로 하며 KS에서는 이차를 표점거리에 대한 백분율로 나타낸다.연신율 ξ = { L-L} over {L } TIMES 100(%)※단면 수축률(reduction of area)시험편이 파괴되기 직전에 있어서의 최소 단면적 A(㎟)와 시험 전 시험편의 원단면적 Ao(㎟)과의 차를 원단면적으로 나눈 값을 %로 표시한 것을 단면 수축률이라 한다단면 수축률φ = { A - A} over {A } TIMES 100 (%)※소성(plsticity) : 탄성변형구역을 지나면 응력을 제거해도 완전하게 회복되지 않고 변형이 남아 있는 것※탄성(elasticity) : 시험초기에 가해진 응력을 제거하면 완전히 원상태로 회복되는 것※탄성한계(elastic limit) : 재료가 힘을 받을 때 소성변형 없이 최대한 지탱할 수 있는 응력※강성과 강도의 차이1. 강성 또는 강성도(stiffness) 의 정의- 구조물( 또는 재료)에 하중이 가해졌을 때, 변형에 저항하는 정도. ( 쉽게 변형하지 않는 정도)즉, 강성 또는 강성도가 크면, 하중이 가해졌을 때에 변형에 저항하는 정도 가 크기 때문에 변형이 작게 일어납니다.스프링에서 F= K*L 에서 강성도 K 가 크면 변형량 L 이 작다는 것을 수식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2. 강도 ( strength)의 정의- 강도는 구조물 또는 재료가 파괴에 저항하는 정도. 따라서 강도가 크면 큰 하중을 파괴 또는 파손이 일어나지 않고 구조물 이 견딜 수 있습니다.※연성재료(ductile material) : 파단이 일어나기까지 큰 변형율에 견디며 연신율과 단면수축율이 큰 재료
이승만정권과 4.19혁명역사는 왜 배워야 하나? 내가 이 강의를 듣기전 이 질문에 대해 명확하게 답을 못했었다. 이 복잡하고 혼란스런 현실도 제대로 알기 힘든데 흘러간 과거역사 까지 관심을 가지고 배울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가져보았다. 그러나 이 강의를 한 학기동안 듣고 나름대로 책을 읽고 생각을 하면서 과거와 현제 그리고 미래가 떨어진 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깨달았다. 시간이 흐르면 현제도 과거가 되고 미래도 현제가 된다. 현제는 과거의 연장에 있는 과거의 결과이며 미래의 역사이다. 미래 또한 현제의 연장선상위에 있는 현제의 결과이다. 따라서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까닭은 과거 자체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과거 역사를 통하여 현실의 모순과 과제를 올바로 인식하고 모순과 과제를 해결함으로써 바람직한 미래를 건설하기 위함이다.해방이후 6.25동란으로 이어지는 정치적 격변의 과정에서 우리는 역사의 주체적 창조자가 아니라 역사의 진행으로부터 철저히 소외된 객체에 불과했다. 내가 이 글의 주제를 이승만 정권으로 택한이유는 비록 독재정권이라는 시각도 있지만 이승만정부는 자유민주국가를 표방한 첫 정부였으며, 선거라는 주권행사를 통해 1공화국을 탄생시켰다. 이것은 해방이후 우리 스스로가 역사의 주체적 창조자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코 순탄치만은 않았던 정부수립시기에서부터 이승만정권의 몰락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통해 주체적 창조자로서 현제의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할수 있는지 알아보고자 한다.이승만이 대통령이 되기까지1948년 남북한 두 분단국가의 수립은 모든 한국인들의 의사를 반영한 것은 아니었다. 1945년 미.소의 합의에 의한 38선 획정과 뒤이은 양국의 분할점령, 그리고 그 뒤 3년 간의 국외적 갈등과 쟁투의 결과였다. 이승만 정권의 기반은 극우.반공이념으로 무장한 친일세력이었다. 초기에는 이승만 정권과 한민당세력간의 정치적 연합으로 출발했다. 해방 후 수많은 정치지도자와 정치세력들이 등장하였으며 상호 이해관계와 노선을 둘러싸고 대립 경쟁의 과정에서 전자는 후자의 조직과 자금이 필요했고 후자는 전자의 명망과 정치적 지도력이 필요했다. 그러나 정부형태면에서는 서로의 입장이 달랐다. 한민당은 내각제를 통해 자신들이 정권을 장악하겠다는 생각이었고, 이승만은 절대권력을 가진 대통령이 되기를 원했다. 결국 대통령제가 받아들여졌다.해방직후 그는 해방이 가져다준 초기 혁명시기의 주도권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는 박헌영, 여운형과 혁명적 민족주의자들을 미군의 힘을 빌려 제압했고, 그 이후 김구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반공 을 고리로 함께 가다가 갈라세웠고 또한 권력 일보 직전에서는 마지막까지 자신의 최대 동맹세력이었던 한민당을 내각임명에서 완전배제함으로써 권력을 확고히 했다.밖으로는 미국의 경제,군사적 지원과 안으로는 친일세력의 지지를 바탕으로 오직 반공을 내세우며 이승만 정권은 탄생된 것이다. 이승만 정권이 내세웠던 이데올로기는 반공주의,반일주의 였다. 그러나 이승만의 반일은 구호에 불과했다. 1949년1월8일 반민족행위 특별조사위원회 즉 반민특위가 구성되지만 이승만의 견제, 국회남로당 프락치사건, 반민특위 습격사건같은 친일세력들의 끈질긴 방해로 강제해산 당했다. 그러므로 친일세력을 바탕으로 권력을 잡은 이승만의 반일주의는 정권의 정당성유지를 위해 정치전략적으로 내세웠다고 볼 수있다. 또한 경제적으로 미국의 원조는 이승만 정권유지에 크나큰 기여를 했으며 그러나 원조물자에대한 가격경제력에 뒤진 우리의 경제는 자립경제로의 발전하지 못하고 관권경제, 대외의존적경제로 만들었다. 이렇게 만든 미국의 의도는 무엇일까? 친미,방공정권을 유지하는 자금원이자 한국을 미국의 잉여농산물 처리장으로 미국내 군수산업의 무기시장으로 만드는 것일 것이다. 미군정때의 귀속재산과 같은 특혜불하로 생겨난 독점자본은 이시기에 이승만정권과 유착을 통하여 각종 특혜를 얻어내 초기독점재벌로 성장했다. 이런방식으로 성장한 재벌들은 현제까지도 존재하고 국가 경제에 크나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이유에서인지 정격유착과 부정부패는 지금까지도 우리사회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지금까지의 일반적인 이승만정권에 대한 평가는 독재정권 , 불안정한 정권 , 미국에 종속적인 정권 으로 부정적이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4 3 제주민중항쟁, 여순사건 등은 이승만정권이 극단적반공체체가 성립되는하는 계기가 되었고, 1949년의 유격투쟁, 주한미군의 철수, 38선 분쟁 등은 이승만정권이 상당히 불안정한 상태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원인이 되었다는 것이 부정적인 평가의 주요한 근거이다.만약, 이승만이 정권을 잡지 못하고 김구,조봉암 같은 인물이 정권을 잡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그들은 평화적 통일론을 제시한 사람들이었고, 정치적 기반은 민중이었다. 그리고 토지문제, 일제잔재청산문제등에서는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왔겠으나 이들이 과연 정권을 잡았다면 지금의 한국의 자본주의가 존재해있을지 의문이 생긴다 .이 시기의 공산주의전파 전략은 주로 폭력적이며 민중에 대한 선전선동, 사회혼란등 이었다. 그들의 평화적 통일협의 요구에 북한은 겉으로는 여기에 순응 했을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남한 내의 좌익세력과 연계하여 사회혼란, 민중에 대한 선전선동, 요인암살등을 야기할 가능성을 배제할수 없다. 특히 1949년 미군철수 후 북한은 남한의 사회혼란 야기를 위해 38도선의 빈번한 무력충돌, 남파간첩등을 보더라도 미군철수 시기와 맞추어 위의 사건들이 터졌다면 남한의 공산주의화는 시간문제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시기적으로 볼 때 이승만정권의 극단적 반공주의가 오히려 지금의 한국의 민주주의를 있게 한 것일지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여순반란사건제주 4.3사건 진압을 위해 출동명령을 받은 여수주둔 제14연대는 이를 어기면서 반란군으로 변하여 여수와 순천을 장악하고 3개부대로 재편성하여 학구,구례,남원 방면과 광양방면으로 다른 한부대는 벌교,보성방면으로 진출하여 점령지역을 확대해 나갔다. 이에 정부가 미군사고문단장의 협력을 받아 토벌군을 파견하면서 여수 순천을 각각 회복했지만 반란군,집압군 모두 많은 사상자를 냈으며 특히 죄없는 양민학살 이루어졌다.이 사건의 주동세력은 소수의 남로당세력과 좌익 성향을 띤 군인 이었지만 이것은 민중의 동의가 없었다면 그리 크게 확대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민중들은 왜 이들 세력에 동조했을까? 그것은 이승만 정권에 대한 불만이었다. 민중들은 해방부 미군정,이승만 정권까지 기대했던 친일세력 청산과 토지의 분배문제등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 이에 반해 남로당, 좌익세력들은 철저한 친일파 청산과 독립국가 건설, 토지무상분배등을 주장하여 민중의 호응을 얻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위협을 느낀 이승만 정권을 국가보안법을 제정하기 이른다.조봉암사건56년 대통령선거에서 갑자기 별세한 신익희 대신 사실상의 야권단일후로 출마해 30%의 득표율의 얻어 이승만에 위기를 느끼게 했던 조봉암이 58년 1월 간첩사건에 연류돼 59년 7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사건이다. 그렇다면 그가 정말 공산주의 간첩이었을까? 먼저 그의 생애를 사상적변화에 따라 3기로 나뉜다.제1기는 일제하 공산주의 독립운동단계 (1919~1945)제2기는 이데올로기적 전환기. 이때 그는 공산주의에서 사회민주주의자로 변신한다.(1945~1948)제3기는 정당정치로 뛰어든 50년대로 나뉜다.그는 민족주의자이며 사회주의자였다. 이는 공산주의와 구분되는 개념이다 조봉암이 일제하에서 공산주의 활동을 한 것은 사실이나 이는 민족의 독립이라는 바탕위에서 이뤄진것이기에 철저한 공산주의자이자 친소주이자인 박헌영과 다르다. 이러한 그의 민족주의는 결국 해방직후 민족이익에 반하는 공산주의와 결별을 불가피하게 했다는 것이다. 그럼 사회민주주의란 무엇일까? 마르크스레닌주의적 사회주의의 폭력적,계급독재를 지양하는 서구적 복지국가 개념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는 공산주의 노선에 반대하는 평화주의이며 이승만의 북진통일에 반대하는 평화통일을 주장한다. 그러므로 조봉암의 사회민주주의는 일찍이 자본주의사회의 복지국가로의 궤도수정과 공산주의사회의 변혁을 예견한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즉 조봉암의 평화통일론등은 진보적 사회민주주의의 노선으로 시대를 앞서간 정치인이었다.이런 조봉암의 사회민주주의를 현제의 영국노동당 당수 토니블레어총리의 제3의 길에서 찾을 수 있었다. 제3의 길이란 중도 의 뜻과 같다. 흑과백, 보수와혁신, 좌와우, 우와열, 가진자와 못가진자 등의 구분이 존재하는이상 참된의미의 평화란 성립되기 어렵다는 점을 그는 인식했다. 이 두극단을 소멸하고 한걸음 나아가 이 양국을 하나로 또 하나속에 융합되도록해야 국가전체에 거대한 힘이 분출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같은 융합적이고 각양각색의 모두를 포용하는 이념이 대중의 지지를 받는 이유일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토니블레어 총리의 생각은 조봉암의 사회민주주의와 유사점을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