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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이터베이스] 데이터베이스
    1.구축하게 될 DB 시스템의 제목= 데이터베이스 마케팅과 CRM2.DB 주제 선전 배경1) 소비자니즈의 다양화와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로 집단이 아닌 개인으로서의 고객대응이 필요하다.@여성의 취업율이 증가하고, 맞벌이 부부 및 1인 세대가 많아짐에 따라 가처분소득이 증가하고 쇼핑할 시간은 매우 부족하고 있다. 또한 점점 바빠지는 현대인은 시간은 곧 돈을 의미하며 개인시간을 활용하려는 욕구가 증가하고 있다. 게다가 신용카드 보편화로 대금지불방식이 간편하게 되는 등 사회 전반적인 변화는 라이프스타일 및 구매 행동을 변화시키고 있으며, 기업으로 하여금 새로운 방식의 고객접근을 요구하고 있음.2) 공급과잉현상과 할인판매경쟁으로 개별브랜드의 상표충성도가 떨어지고 있다.@기업간의 기술수준의 평준화로 인해 제품간의 품질차이가 거의 없어지고 경쟁적으로 유사 신상품을 홍수처럼 출시함에 따라 소비자들은 너무 다양해진 제품선택의 폭으로 인해 더 혼란스러울 뿐 아니라 브랜드 전환의 가능성도 높아짐.3)매스광고의 효과가 상대적으로 떨어짐에 따라 보다 측정가능하고, 보다 고객의 반응을 직접적으로 유발할 수 있는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이 필요.@TV채널의 증가, 케이블TV,인터넷 등 미디어가 너무 많아지고 있으며, 리모콘의 영향으로 자주 채널을 바꿀 뿐만 아니라 비디오 등의 발달로 필요한 방송만 예약녹화해서 보기 때문에 상업광고의 주목율이 상당히 떨어지고 있으며, 시장율에 의한 그 효과의 측정이 점점 의미 없어지고 있다.4)시장의 성숙되고 경쟁이 치열해짐에 따라 신규고객의 창출보다 기존고객의 유지가 보다 중요하게 된다.@평균적인 회사의 비즈니스 중 65%는 만족을 얻은 현재의 고객을 통해 이루어지며,20%의 고객이 매출액의 80%를 차지함.(20:80법칙)@신규고객을 새로 개척하는 비용은 기존 고객을 유지하는 비용의 5배가 소요됨.3.구축하게 될 주제의 현 문제점1) 기존의 마케팅방식은 마케팅팀을 위한 마케팅부서만의 마케팅이다.2) 고객에 대한 니즈를 파악할 수 있는 시스템이 기존에는 존재하지 않았다.3) 지속적으로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할 방법이 없다.4) 전사적으로 고객 지향적이지 못하다.수 많은On-line또는 Off-line 기업들이 고객DB라는 명목으로 확보해 놓은 정보들 을 제대로 써먹지 못하고 있는것이 사실이다.그 이유로는 여러가지가 있겠으나 그중 두가지를 말해보자면 다음과 같다.첫번째,DB에 대한 이용을 할 줄 몰랐기 때문이다.Database는 모든 마케팅 활동의 기본이 되는 하나의 도구이자 마케팅 전략수립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 그 .com 기업 뿐만 아니라 많은 기업들이 DB를 Direct mail 이나 Telemarketing을 실시하기 위한 도구로 생각하고 있다.단지 일부 활동의 수단으로만 사용하 고 있기때문이다.두번째,효과적인 DB마케팅을 하기 위한 DB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김치냉장고를 팔기 위해서는 잠재 고객의 거주 지역, 수입, 직업 등이 기본 data가 되겠지만,이 것만으로는 효율적인 마케팅활동이 될 수 없다.A라는 회사가 자사의 로얄고객인 권대창씨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이벤트를 기획한다고 해 본다. 권대창씨의 유일한 취미는 골프이다. 골프관련 상품을 염가로 제공할까? 골프장 부킹 서비스를 제공할까? 유명 골프선수와 라운딩 기회를 제공할까? 취미항목 데이터만으로는 과연 어떤 이벤트가 권대창씨를 가장 크게 만족시킬 수 있을지 확실 하지 않다.세번째,텔레마케팅의 경우 소비자에게 무작위로 전화를 건다. 지금은 초기이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잘 받아 주지만 텔레마케팅 업체들이 늘어나면 하루 종일 전화를 받아야 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전화를 한 업체의 제품을 절대 사지 않는 극단적인 부작용까지 일어난다.네번째,새로운 고객에게 DM을 발송하기 위해 외부기관에 고객 데이터를 의뢰하면 기존에는 막연한 고객정보만이 확보되어 응답률이 1.7%에 그쳤다4.개선사항( 문제점에 대한 해결방안 제시 )@CRM을 통한 문제점 해결1) 고객을 중심에 놓고 사고하는 경영철학에서 출발한다. 즉, 고객이 기업경영의 중요한 자산으로 인식되는 환경에서 고객 중심적 경영 철학의 정립에서부터 출발해서 조직구성원의 고객 중시 마인드 전환, 고객관계 관리 최적의 프로세스 실행, 정보기술 인프라 구축 등 기업 전반에 걸쳐 혁신한다.2) 전략적 고객관리를 한다. 고객데이터의 세분화를 실시하여 신규고객획득, 기존 우수고객 유지, 평생가치 증진, 잠재고객 활성화 등을 통해 고객을 적극적으로 관리하고 유도하며 고객의 가치를 극대화 시킬 수 있는 전략적 접근을 한다.3) 고객정보 확보의 적극성과 광범위성을 이용한다. 데이터베이스 마케팅에 비해 CRM은 전사적으로 추진하고 적극적이고, 다양한 방식으로 고객의 정보를 확보하고자 한다.(인터넷 활용하는 등 정보화의 경로가 확대된다.)4) 프로세스의 변화를 추구한다. 고객수익성을 우선시하여 콜센터, 캠페인 관리 도구와의 결합을 통해 고객정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즉 자료를 활용하는 것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고 고객중심적 사고의 정착과 함께 프로세스의 변화를 병행한다는 차이가 있다.첫번째의 해결방안은 효과적인 DB마케팅을하기 위해서는 DB를 바탕으로 광고, PR, 이벤트, DM, Cyber marketing 등 모든 전략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둘번째의 해결방안은 냉장고 고객의 경우 그 잠재 고객들이 어떤 급의 냉장고를 가지고 있는지, 몇 대의 냉장고를 가지고 잇는지, 언제쯤 신규 냉장고를 구입할 예정인지, 또 더 나아가서 김치 소비량이 얼마나 되는지를 안다면 더욱 성공율이 높아지는 마케팅을 할 수가 있다.앞의 골프를 좋아하는 권대창씽의 경우는 권대창씨가 골프장 회원권을 가지고 있는지, 있다면 어떤 골프장 회원권을 가지고 있는지, 한 달에 몇 번이나 라운딩을 하는지, 평균타수는 어느 정도 되는지, 주로 어떤 사람들과 함께 라운딩을 하는지, 좋아하는 선수는 누구인지..등의 데이터를 알아야 권대창씨를 정말로 만족시키는 이벤트를 할 수 있게 된다.세번째의 해결방안은 원하는 고객의 명단과 그 각 고객의 특성을 파악하고 있어야 적절한 시간에 전화할 수 있다.네번째의 해결방안은 원하는 내용을 지정하여 고객데이터를 의뢰하면, 비용은 늘어나겠지만, 필요한 고객의 정확한 데이터를 이용하게 되므로 응답률은 10%대로 늘어난다.5. DB의 구축 목표CRM을 쉽게 말하면 고객관계 유지 라고 할 수 있다.여기서 우리가 쉽게 오류를 발생할 수 있는데 그건 'CRM은 기업에서만 필요하다.' 라는 것이다.CRM은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이다.CRM이란 도구를 누가 잘 사용했느냐에 따라 공무원은 나라, 사업가는 기업, 선생님은 학생, 장사꾼은 가게, 난 우리집, 나의 후배는 여자친구와의 사랑이라는 미래의 성패가 결정되는 것이다.CRM은 공무원, 사업가, 장사꾼등 모든 사람에게 필요하다. 그래서 복잡하고 어려울 것 같지만 고객 대상은 틀려도 공통원칙이 있다. 그건 고객에 대한 많은 정보를 얻어 고민(분석)하고 목표(미래의 비젼)를 결정하고 계획(전략)을 세워 행동에 옮기는 거다.공통점을 다시 말하자면 분석-미래-전략-행동이다. 누가 앞의 4가지 항목을 잘 하느냐에 따라 CRM, 더 나아가서 미래의 성패가 결정되는 것이다.
    공학/기술| 2002.11.01| 4페이지| 1,000원| 조회(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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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리학] 나의 성격분석 평가B괜찮아요
    내가 생각하는 나의 이미지는 원만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서, 상대방이 푸근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너무 이런 성격이다 보니 남들이 조금 친해진다 싶으면 나에게 생각 없이 말을 건낼때가 많습니다. 친구들일 경우는 그냥 웃으면서 넘어나는 편이나 후배나 내가 별로 안 친한 사람이 나에게 그렇게 대하는 경우는 따끔하게 충고를 하는 편입니다. 나는 고집이 있기는 하지만, 고집에 얽매여서 아집으로 발전되는 경우가 드물고 남에게 쉽게 져 주는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것도 사람마다 틀리지만 동기들일 경우나 내 친구들일 경우는 내가 이기는 것보다 차라리 친구가 이기는 것이 낮다는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습니다. 친구들과 동기들에게 맞추는 것이 뒷말이 나오질 않고 일을 쉽게 처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공부를 하거나 일을 하거나 싫증을 잘 느끼고 집중하지 못하며 권태가 빨리 오는 편입니다. 그래서 한가지 일을 끈기 있게 꾸준히 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시험 공부를 하러 도서관에 들어가서 공부를 할 때도 남들이 하는 행동 하나 하나에 귀가 쏠려서 공부에 집중을 하지 못하는 편입니다. 나의 의사를 충분히 밝히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 하기 싫은 일인데도 말은 못하고 억지로 일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과"에서 1년 넘게 일을 한 적이 있는데 하기 싫은 일도 남들이 하라고 부추기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해왔습니다. 지금은 하지 않지만 1학년때 임원을 했다는 것 때문에 2학년 1학기 때 정말 하기 싫은 일도 억지로 맡아 해왔습니다. 나는 주변 사람들의 말 한마디에 우왕좌왕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무리 단단한 결심을 한 연후라도 남들이 쉽게 하는 말 한마디에 의해 나의 굳건한 주관이나 결심이 흔들리는 경우가 비교적 많은 편입니다. 나는 너무 생각이 많아서 행동이 빨리 따라주지 못하고, 또한 쉽게 결단을 내리지 못해서 우물쭈물 시간을 소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일을 하게된다면 그 뒤에 따르는 일은??" 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고 있기 때문에 어느 것 하나 빠른 시일 내에 행하기가 힘듭니다. 그 뒤에 따르는 일이 항상 나쁜 쪽에만 쏠리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귀찮은 것을 싫어하고 게으른 면이 있어서, 내가 해야 하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계속 미루다가 뒷감당이 벅찬 경우가 많습니다. 예전 "과" 일을 했을 때 자보 쓰는 일이 있었는데 "내일 하지뭐 "라는 생각으로 자보 적는 것을 미루다가 결국에는 끝에 다다라서 허겁지겁 일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특히 시험기간에 이러한 행동을 자주 겪게 되는데 시험공부를 미루다 미루다가 결국에는 당일치기로 공부해서 시험을 치고 후회를 하게됩니다. 그때 "다음시험은 잘 쳐야지"라고 생각하게 되더라도 다음 시험칠 기간에는 또 다시 당일치기 공부를 하게됩니다. 그리고 나는 주기적으로 의욕상실증을 겪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나의 일을 끝내기 전에 항상 겪는 일이지만 처음에는 열심히 하다가 나중에 슬럼프를 극복하지 못하고 주저앉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도 억지로라도 끝내는 경우에는 일을 마쳤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집니다.그러나 남이 생각하는 나의 성격은 개방적이며 낙천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맏이라는 성격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위를 휘어잡으며 소란스럽게 놀면서도 주위 사람들에 대한 배려를 잊지 않고, 맏이답게 처신을 잘하는가하면 어딘가 덜렁이 같기도 하고, 그러한 절묘한 밸런스가 친밀감을 주어 누구나 좋아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며 어릴 때부터 동생들을 돌보는 것에 익숙해져 있어 기본적으로 남을 보살펴 주는 것을 좋아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요즘에도 중, 고등학교 친구들과 대학동기들이 자신의 고민 털어놓기 위해 전화를 합니다. 항상 남에게 맞춰주는 성격을 가지고 있어 편하다고들 합니다. 다른 사람 같은 경우는 밥 먹으러 갈 때도 우리 오늘 이거 먹자! 라고 말을 꺼내는 반면 우리 오늘 머 먹을까? 라고 물어보는 등 자신에게 먼저 초점을 맞춰주는 것이 좋다고들 합니다. 항상 친구들과의 다툼에서 먼저 지는 성격이라고들 합니다. 친구가 잘못했을 경우도 내가 먼저 미안 이러면서 웃으며 끝내기 때문에 뒷 감정이 상하지 않는다고들 하죠. 그렇게 일이 끝나게되면 뒤에 자신이 생각해서 잘못했다고 느끼면 그 때는 내가 미안했다. 라고 이야기하기가 훨씬 수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자신이 힘든 일을 항상 같이 해줄 수 있는 성격이라고들 합니다. 단독적으로 일을 해나가기 보다는 항상 뭘 할래? 뭐 하고싶니? 그거 같이 할까? 라고 물어보기 때문에 이거 같이 해줄래? 라고 미안해하며 자신이 직접 이야기 할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정말 화가나 있을 때는 물,불 안 가리는 성격이라고들 합니다. 눈이 돌아간다고들 하죠. 정말 그럴 상태까지 가면 옆에 친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못 말릴 단계까지 가기 때문에 정말 뒷일 수습하기가 힘들다고들 합니다. 그리고 항상 남들을 대할 때 직설적으로 이야기하고 좋고 싫음이 분명하며 그것을 속일 수 없게 하는 것이 얼굴표정으로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라고들 합니다. 그것이 좋을 때도 있지만 너무나도 명확하게 좋고 싫음을 나타내 부담스러울 때도 있다고들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어떠한 면에서는 너무나도 진지한 모습을 보여 옆 사람들로 하여금 경직된 공간을 만들기도 한다고 합니다. 또 논쟁과 토론하기를 좋아하며 자신의 모험담과 업적을 열거할 기회를 결코 놓치지 않으며 말이나 글로써 자신을 표현하는데 능숙하다고 이야기합니다. 하루동안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을 다음카페라든지 메일을 주고받는 친구에게 너무나도 상세히 적기 때문에 그 글을 보는 동안은 자신이 직접 그 자리에 있었던 것과 같은 느낌을 종종 받을 때가 있다고들 합니다. 그리고 주위 친구들의 취향, 버릇, 태도등 사소한 일들을 기억해내며 가끔 장난으로 흉내내주면 좋아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특히 조그만 실수를 하면 그것을 놓치지 않고 우스겟소리를 꼭 한마디씩 한다고들 하죠. 그럴 때는 친구들이 속상할 때보다는 재미로 그러는 것임을 알고 다들 웃고 넘어간다고들 합니다. 또한 친구들과 잘 어울려 다니려 한다고 합니다. 혼자 있으면 다소 불안해 보인다고들 하지요. 내 생각과는 다르게 사람들은 미지의 일에 대해서도 스스럼없이 즉각 실행에 옮기지만 그만큼 경계심이 없고 용감해 보인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즉 간이 크다고들 이야기하지요. 무슨 일에든 흥미를 갖기 때문에 화제도 풍부하다고들 이야기합니다. 솔직히 제가 말은 많은 편이기 때문에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는 하루가 다 넘어가도 모자라다 는 식으로 이야기를 합니다. 친구들과 전화통화를 하는 경우는 기본이 한시간으로 통화를 하죠. 성격은 쾌활한데 의외로 비뚤어지기도 하고 질투심도 강하다고들 합니다. 자신과 친한 친구가 사이가 안 좋은 친구들과 같이 있는 경우는 노골적으로 싫다 라는 표현을 내기보다는 은근히 비꼬아서 저 애는 이런, 저런 경우로 나와 맞지 않아 맘에 안 들어 라고 이야기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중간에 끼인 친구는 오도가도 못하고 난감해 진다고들 합니다. 그리고 좋아하는 것에는 무척 정열적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학과 일을 같이하던 동기들은 처음 제가 너무나도 열심히 일에 빠져서 하는 것을 보고 대단하다고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면 더 열심히 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죠. 붙임성이 좋은데 사람을 금방 믿는 버릇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뒤에 배신을 당하는 일이 생기면 항상 후회하곤 한다고 이야기들 합니다. 자신이 상대를 속박하는 일은 있어도 자신이 속박 당하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 라고 말합니다. 친구들은 나에게 한번쯤은 다 당해 봤을 것이라고 지금은 웃으며 이야기합니다. 제가 글을 쓰게 되면서 친구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 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내 성격은 의사를 충분히 밝히지 못하는 성격이라 생각했지만 주위 사람들은 논쟁과 토론을 좋아한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왜 그런지 글을 쓰면서 생각을 해보니 윗사람이 시키는 일이 있거나 싫어하는 일은 시키면 하기 싫은 일이라도 말못하고 하는 편이지만 친구들이 싫어하는 일이나 나와는 다른 의견을 내는 경우가 있다면 왜 나와는 맞지 않는가 라는 점을 이야기하고 내 생각은 이러니까 그 일이 싫다 라는 이야기를 하는 듯 합니다. 어차피 이기지 못할 사람이면 그냥 시키는 대로 일을 해버리고 그 사람을 안보는 경우가 낫다고 생각을 한 것이 은연중 들어 난 것 같습니다. 제 이런 문제점을 좀더 친구들의 생각에 맞추고 친구들이 왜 그렇게 이야기를 했는가 다시 한번 내 생각을 말하기 전에 생각해 볼 것이고 말을 귀담아 들어주므로 해서 고쳐볼 것입니다. 남들이 항상 남들을 대할 때 직설적으로 이야기하고 좋고 싫음이 분명하며 그것을 속일 수 없게 하는 것이 얼굴표정으로 그대로 들어 나는 것이 종종 부담스러울 때 가있다고 이야기하는데 그것을 단 한번에 무표정 속에 감출 수는 없지만 조금은 감정을 자제해서 얼굴표정에 티를 내는 것을 자제해야겠습니다. 그리고 남들을 구속하는 것을 한번만에 고치는 것을 할 순 없겠지만 이 글을 쓰는 계기로 해서 고쳐볼 것이며 친구들 흉내를 낼 때는 그 행동으로 인해 남이 상처를 받지 않을까 다시 한번 생각해볼 것이며 그리고 눈이 돌아간다는 표현을 했는데 솔직히 지금까지 그때 친구들이 뒷처리를 할 때가 힘겹다는 말을 한번도 한 적이 없었는데 이번을 계기로 해서 그러한 나의 성격을 고칠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인문/어학| 2002.11.01| 3페이지| 1,000원| 조회(2,7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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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도문화] 인도의 주요사항 연대표와 소숭배사상
    주요 사항 연대기표B.C 3000 - 2800인더스 문명 시작B.C 1700 - 1500인더스 문명 멸망B.C 1500아리아족의 침입B.C 1500 - 1000리그 베다 시대B.C 1000 - 600후기 베다 시대B.C 566 - 486석가모니의 불교 창시B.C 540 - 468마하비라의 자이나교 창시B.C 326 - 325알렉산더의 인도 침입B.C 320 경찬드라굽타의 마우리아 왕조 창건B.C 269 - 233아소카 왕의 통치B.C 185마우리아 왕조의 멸망A.D 40 경까스피세스 1세의 쿠샨 왕조 창건1C - 3 C 경간다라 미술 발달78(120) - 144카니슈카 왕의 통치3C 중엽쿠샨 왕조의 멸망 상태, 사싼족 등 이민족 침입이 빈번320찬드라 굽타 1세의 굽타 왕조 창건375 - 413찬드라 굽타 2세 - 굽타 왕조의 전성기405 나란다 대학 건립6C 중엽굽타제국의 쇠퇴788 - 820샹카라가 힌두교의 확장에 활약1192 - 1193꾸뜨브 웃 딘 아이박의 델리 장악. 인도의 무슬림 지배 시작.1398티무르의 델리 침공1440 - 1518까비르의 박띠 운동1469 - 1538구루 나나크의 시크교 창시1526바부르의 무갈 왕조 창건1556 - 1605아끄바르 대제의 통치1582아끄바르 대제의 경신교 선포1600영국 동인도 회사 설립1602네덜란드의 동인도 회사 설립1664프랑스 동인도 회사의 활동 시작1668프랑스의 상관이 수라트에 설치봄베이를 영국의 동인도 회사에 할양1744 - 1748제 1차 영불 전쟁1749 - 1754 제 2차 영불 전쟁1757 - 1761 제 3차 영불 전쟁1757플라시 전투1761프랑스 퐁디체리 함락 당함, 빠니파트 전쟁에서 마라타 패배1765 - 1767로버트 클라이브의 두번째 지사 임명동인도 회사 벵갈의 조세 징수권 획득1769 - 1770대기근1773인도 통치 규제법 통과1774 - 1785초대 인도 총독으로 워렌 헤이스팅스 부임1784피트 법 통과, 런던에 인도 문제를 통제하는 감독국 신설1786 - 1793콘월리스 총, 인도 문관 선발에 공개 경쟁 시험 제도 실시1857 -1858세포이 반란1858동인도 회사의 지배 종식, 영국 정부의 직접 통치 시작1861인도참사회법에 의해 입법참사회 구성1877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인도의 통치자 됨1879면직물 수입 관세 철폐1883 일버트 법안 통과1885인도 국민 회의 창설1905벵갈 분할령1906무슬림 연맹 창설1909몰리 민토 개혁1919몬터구 첼름스포드 개혁, 라울라트 법 통과1920 - 1922킬라파트 운동, 마하뜨마 간디의 비협력 운동 전개1930 - 1931간디의 소금행진, 제 1차 시민 불복종 운동 전개1931어윈 간디 협정, 간디 제 2차 원탁회의에 참석1935인도 통치법 통과, 연방제 실시1937버마 인도에서 분리1940진나의 무슬림 연맹 파키스탄의 분립결의1942간디의 "인도철퇴" 요구 운동 전개1944간디의 진나의 회담1946임시정부 수립, 자와할랄 네루의 수상 취임, 제헌 의회 소집1947인도의 독립, 인도 파키스탄의 분리인더스 강에서 시작한 문명역사적으로 ‘인도’는 오늘날의 인도공화국과 2차대전 이후 분리 독립한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공화국을 아우르는 인도반도 전역을 포함한 지역을 말한다.그리스인들이 지칭하던 ‘인도’(india)라는 말은 페르시아에서 ‘힌두’, 인도인들 자신이 ‘신두’라고 부르던 인더스 강을 가리킨다. 인더스 강 유역에서는 기원전 3000∼4000년경, 세계 4대 문명의 하나인 인더스 문명이 일어났다. 인더스 강을 따라 오늘날 파키스탄에 속하는 하라파와 모헨조다로 지역에는 벽돌을 구워 건축에 이용하고 상·하수도와 대형 목욕시설을 갖추는 등 상당한 수준의 도시문화가 발달한 흔적을 찾을 수 있다.약 1000년 동안 번영을 누린 것으로 추정되는 인더스 문명은 인도-유럽어족의 일부인 아리아인들이 북쪽에서 남하할 무렵인 기원전 1600∼1500년경 몰락하고, 이후부터는 아리아인들이 인도의 중심세력으로 자리잡는다. 아리아인들은 드라비다인을 비롯한 인도의 여러 원주민들을 강력한 철기문명으로 정복하여 숭배하였다. 사제들은 그들의 신화를 찬송가를 통해 구전하였는데, 이후에는 이것이 베다(Veda)라고 하는 문헌에 남겨진다. 베다 가운데 가장 중시된 는 신들에 대한 찬송가를 모은 것이다. 지배체제의 강화 수단으로 아리아인들은 자신들의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흰 유럽계 민족인 자신들과 검은 피부의 원주민들을 구분하는 ‘바르나’(色) 체계, 즉 카스트제도로 알려진 계급 질서를 확립한다. 브라만(사제)-크샤트리아(무사)-바이샤(상인)-수드라(노예)의 구분은 기원전 4세기경 기록된 마누법전을 통해 법률적으로 확고해지고, 개인의 업(카르마)에 따라 타고 나는 숙명이라는 사상이 유포되어 오늘날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힌두 왕국과 불교, 이슬람 왕국소규모 부족 중심이던 아리아인들은 기원전 1000∼600년까지 인도에 본격적으로 정착하면서 국가 형태를 이루기 시작했다. 세력다툼을 위한 전쟁이 거듭되는 과정에서 많은 왕국들이 명멸한 후, 기원전 7세기경 인도 북부에는 코살라, 중부에는 마가다, 남부에는 비데하가 유력한 왕국을 형성했다. 이 시기는 강력한 왕권으로 법과 국가질서가 정비되었고, 농업을 중시한 까닭에 소를 신성시하여 쇠고기를 먹지 않는 풍습이 발생했으며 산스크리트어가 형성되어 사제계급을 중심으로 교육이 이루어졌다.제사를 맡은 브라만들은 업과 윤회, 해탈 같은 내용을 포함한 우파니샤드 철학을 발전시키는 한편, 복잡한 제사의식을 통해 자신들의 입지를 굳혀나갔다. 가정에서부터 국가에 이르기까지 브라만들이 참여하지 않고서는 제사의식이 이루어질 수 없었으며, 왕들도 자신들의 정통성 강화를 위해 브라만들의 제사를 지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브라만의 권력이 강해질수록 타락의 정도도 심화되어 왕들과 일반 백성들은 브라만교에 반발하기 시작했다.이 무렵 등장한 것이 불교와 자이나교다. 기원전 6세기경, 오늘날 네팔에 속하는 조그만 왕국의 왕자로 태어난 고타마 싯다르타(기원전 563∼483)는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어 붓다(부처 : ‘깨달은 사람’)로 추앙받았다. 불교는 우파니 역시 왕자였다가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은 현자 마하비라(기원전 540∼468)가 창시한 것으로 극도의 고행을 통한 깨달음을 촉구했다.이 두 신흥종교는 인도 사회에 포교하면서 어느 정도의 세력을 얻었으나 수세기가 지나서는 교단 자체가 일종의 카스트로 여겨지면서 인도 사회에 재편성된다. 인도 고유의 성격이 강했던 자이나교는 오늘날까지 힌두교의 한 분파로 여겨져 인도 안에서 세력을 형성하고 있으나, 불교는 일부 왕조의 후원을 받은 이후 인도에서 세력을 잃고 주변의 다른 나라들에 전파되어 나갔다.정치적으로 기원전 6세기에 마가다는 코살라를 물리치고 인도의 최강국으로 부상하였다. 이 때, 페르시아 제국의 다리우스 대왕이 인도의 서북쪽 일부까지 세력을 뻗쳤다. 4세기, 그리스의 알렉산더 대왕이 역사 속에 등장하면서 인도는 그의 최종 원정 목표가 되었다.마가다 같은 일부 강국이 비록 끝까지 저항했으나 여러 소국가로 분열되어 있던 인도로서는 그리스군을 막아내기에 역부족이었다. 그러나 그리스군의 항명과 알렉산더의 요절로 인도는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인더스 강 상류까지 진출했다가 퇴각한 알렉산더의 군대로 인해, 인도는 간다라 지방에 그리스 문화와 인도 문화가 섞인 간다라 예술 양식이 유행하고 헬레니즘 세계의 문물이 전해진 것 외에도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영향이라면 외부의 침입으로 자각하게 된 민족의식이었다. 이로 인해 인도에서는 통일 왕조가 등장하게 되었다.알렉산더 사망 무렵, 마가다의 난다 왕조를 무너뜨린 찬드라굽타는 인도 최초의 통일 왕조인 마우리아 왕조를 열었다. 그는 펀자브에 침입한 셀레우커스를 몰아내고 인도반도의 거의 전역에 세력을 미치는 제국을 건설했다. 마우리아 왕조는 3대 왕인 아소카왕 때 전성기를 맞이한다. 아소카왕은 영토 확장과 내치에 힘썼을 뿐 아니라 독실한 불교도로서 불교의 보호와 전파에도 큰 힘을 기울였다.아소카 왕이 죽자 마우리아 왕조는 분열과 쇠퇴를 거듭한다. 북서부로는 다시 그리스인, 페르시아인, 스키타이인들이 침입해도 전체에 세력을 미쳤다. 굽타 왕조 때는 힌두교 사상 체계가 확립되어 각지에 힌두 신전이 활발히 건립되었으며 문화·예술 면에서 황금기를 맞이하였다. 사가(史家)들은 굽타 왕조 시대를 인도 문화의 중흥기라고 부른다. 불교는 이때부터 인도에서 차츰 세력을 잃어갔다.5∼6세기에 굽타 왕조가 쇠퇴하면서 인도는 다시 군소 왕국으로 나뉘었다. 즉, 데칸 고원 이남의 남인도는 굽타 왕조 당시부터 독립되어 아리아인 침입 전부터 인도에 거주하던 드라비다인들의 여러 왕국이 독자적인 역사를 이어가고, 북인도는 굽타 왕조 멸망 후 아리아인들의 크고 작은 왕국으로 나뉘어 힌두 문화를 계승, 발전시켰다. 이런 구도는 이슬람 세력이 인도에 진출한 이후로는 이슬람세력의 북인도와 힌두세력의 남인도로 이어져 무굴 제국이 16세기에 인도를 통일할 때까지 계속된다.인도에 세워지는 이슬람 왕조7세기에 이슬람교가 창시된 후, 이슬람 세력은 711년 신드 지방을 시작으로 이후 천 년에 걸쳐 인도에 파고들었다. 이슬람세력은 예전에 인도에 침입한 세력들과는 달리 인도 문화 속에 융해되지 않고 ‘이슬람교’라는 이질적인 종교와 문화를 바탕으로 힌두세력과 맞섰다.튀르크계의 노예 출신이 아프가니스탄에 세운 가즈니 왕조는 11세기 초부터 ‘지하드’(성전-聖戰)를 표방하여 펀자브 지방을 침략해왔고, 12세기 말에 가즈니 왕조를 멸망시킨 구르 왕조도 벵골 일대를 포함한 북인도를 정복했다. 1206년, 구르 왕조의 부장 아이바크에 의해 델리를 중심으로 인도 최초의 이슬람 왕조가 세워진다. 아이바크가 튀르크계의 노예출신으로 황제가 되었으므로 역사에서는 이 왕조를 ‘노예 왕조’라고 일컫는다. 노예 왕조에 이어 할지 왕조가 1290년경 등장하여 북인도를 지배했으며 이후 투글루크 왕조, 사이드 왕조 등이 그 뒤를 이어 델리에 도읍했다.1398년, 몽고족 출신인 티무르가 침입하면서 델리를 파괴하고 회군한 이후 델리를 중심으로 한 북인도의 왕조는 세력이 약화되었고, 남인도에서는 비자야나가라, 바흐마니 등 힌두 왕조들이 여전히 합된다.
    인문/어학| 2002.10.25| 7페이지| 1,000원| 조회(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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