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예술과 외설'을 논하는가?예술로 판명 나든 외설로 판명이 나든 그게 영화든 문학이든 그 자체의 가치엔 큰 변화가 없어야 한다. 아니 예술은 예술로써, 외설은 외설로써 필요한 것이 아닐까?'보고 나서 눈물이 나면 예술, 군침이 흐르면 외설''보고 마음의 변화가 오면 예술, 몸에 변화가 오면 외설''처음부터 다시 보면 예술, 주요 부분만 보면 외설''감동이 상반신으로 오면 예술, 하반신으로 오면 외설'-(우스개로 하는 예술과 외설의 차이)-형법 제243조 (음화반포등)음란한 문서, 도화, 필름 기타물건을 반포, 또는 임대하거나 공연히 전시 또는 상영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전문개정 95.12.29]-형법 제244조 (음화제조등)제 243조의 행위에 공연할 목적으로 음란한 물건을 제조, 소지, 수입 또는 수출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개정 95.12.29]우리 법이 외설이라고 불리는 것에 대한 제재를 하기 위해 만들 법 조항.여기서 우리는 예술과 외설의 판단기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우선 예술과 외설의 시비에 관한 역사를 살펴보자. 세기의 필화사건으로 외설시비 목록의 맨 앞에 놓인 건 아무래도 D.H 로렌스의 『채털리 부인의 사랑』일 것이다. 이 작품은 수난을 받게되는데 D.H 로렌스가 1928년 이탈리아 피렌체의 한 출판사에서 『채털리 부인의 사랑』을 초판 100부를 자비로 출판한 이후 이 소설의 외설성은 삽시간에 유럽과 미국을 달구어 놓았다. 유럽뿐만 아니라 미국전역에 걸쳐 날개 달린 듯 팔려나갔고, 출판업자들이 줄줄이 구속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1920년 파리에서 정식 출판되었고, 작가의 사망이후인 1923년 부분 삭제란 꼬리가 붙어지만 영국에서도 정식 출판되었다. 물론 출판되자마자 금서가 되 버렸지만 말이다. 이 책은 무려 30년이란 오랜 시간동안 금서로 있었지만 『채털리 부인의 사랑』이 전쟁과 기계문명의 해독으로 메말라 가는 인간의 생명력 회복의 중요한 단서가 성에 있음을 탁월하게 묘파한 소설이란 평가로 결말났다. 물론 D.H 로렌스가 영문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거장이라는 사실을 이제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 현대 소설의 시조라고 불리는 제임스 조이스는 『젊은 예술가의 초상』등 작품을 발표할 당시 만 해도 아일랜드의 한 잡지는 '제 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 책을 아내나 자식들의 손이 미치는 곳에 놓아 둘 수 없을 것'이라고 맹렬히 비난했다. 또 다른 그의 작품 『율리시스』도 논쟁이 되었지만 '외설적인 것이란 당대의 사회도덕 기준에 비추어 그 전체적인 주제가 일반인들로 하여금 성적 충동을 불러일으키는 것' 이란 기준을 만들기도 했다. 물론 그의 작품들을 보며 외설이라고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외설과 관련해서 지금은 외설이 아니라 예술로 판명되고 있는 작품들을 보노라면 롯셀리니의 "무방비 도시"가 미국에서 개봉되었을 때 그 영화 속에서 어린이가 요강 위에 앉아 있는 장면이 외설이라고 주장한 검열관도 있었고 비토리오 데 시카의 "자전거 도둑"도 소년이 벽에다 오줌을 누는 장면이 외설적이라며 상영 금지 당할 뻔한 적도 있다. 여기서 시대를 따라 무엇을 외설이라 느끼는냐는 게 달라진다. 같은 시대에서도 무엇을 추하다 여기는 것은 사람에 따라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예술과 외설의 차이를 여러 국가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보자. 우선 미국의 예를 보면, 1967년 존슨 대통령 시절 외설물에 대한 위원회가 구성됐다. 3년간 2천만 달러 이상의 연구비를 들인 이 위원회가 내린 결론은 파격적이었다. 외설물은 기본적으로 해가 없으므로 미국연방과 각 중에 있는 외설물에 대한 규제법안 114개 조항을 전부 폐지하라는 것이었다. 단지 청소년에게 외설물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고 광범위하게 성교육을 시키라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물론 닉슨 대통령과 상원에서 거부됐지만 1973년 미국 대법원은 새로운 기준을 마련했다. 현재까지 적용되는 이 기준은 *보통사람이 보기에 전체적으로 외설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가? *문학적 예술적 과학적인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가 *표현양식이 특히 불쾌한가 등 세 가지다. 영국도 비슷한 시기에 「윌리엄 위원회」라는 것이 구성됐지만 외설물이 성범죄를 유발하는 지에 관해 어떤 결론도 내지 못했다고 한다. 또 "외설과 영화검열에 관한 위원회"가 내린 외설이란 "널리 일반에게 인정되고 있는 품위와 인간성에 대한 시대적 기준을 짓밟는 것"이라고 애매한 정의를 내렸었다. 법률에서도 "인간을 타락시키고 부패시키는 것"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일본의 외설의 기본 원칙은 1951년의 최고재판의 판결에 입각하고 있다. 여기서는 첫째 의도적으로 성욕을 자극한다. 둘째 보통사람의 성적수치심을 해친다. 셋째 사회의 일반적인 도의 관념에 위배된다는 세 가지 요소가 담겨져 있었다. 그 후 69년의 최고재판소의 판결에서는 예술작품이라도 외설일 수 있다는 의견이 강조되었다. 그러나 외설 여부를 당국의 일방적인 판단에 맡길 수 있는가 하는 비판을 잠재우기는 어려웠다.여기서 잠깐 예술과 외설의 시비에 대한 역사적 사실과 외국에서의 예술과 외설의 차이에 대한 견해와 논점을 정리해 보자.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와 같은 작품이 당대에는 외설물 취급을 받았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시대에 따라 무엇을 외설이라 느끼는가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예술과 외설의 차이를 생각하고 또 다른 이들의 견해를 보다보니 이런 의구심이 생기게 됐다. 왜 사람들은 예술과 외설을 구분할까? 도대체 외설의 어떤 점이 문제가 돼서 예술과 외설을 구분 짓고 또 외설을 금기시 하는 것일까?외설이 문제를 일으킨다는 예로 드는 것 중에 하나는 청소년의 모방심리일 것이다. 97년 7월, 우리 사회에 적잖은 충격을 준 사건이 있었다. 일본 만화에서 이름을 따온 폭력서클 '일진회' 사건, 중고생들이 직접 출연해 만든 음란비디오 '빨간마후라' 사건이 그것이다. 이 같은 청소년들의 비행이 일본 만화에서 비롯됐다는 판단으로 검찰은 일본 음란 폭력만화의 불법복제 단속에 들어갔었다. 이 것은 무엇을 말하는 가? 외설인 음란비디오를 본 청소년이 모방심리에 빠질까하는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모든 청소년이 음란 비디오를 본 다고 해서 모두가 모방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빨간마후라나 일진회와 같은 소위 불량청소년들을 양산해내는 것은 외설적인 문화보다는 불량한 사회구조 때문이 아닐까?이제 실제로 외설시비에 휩싸여서 법정논쟁까지 갔던 이현세 작가의 『천국의 신화』를 예로 예술과 외설의 차이를 살펴보자. 『천국의 신화』는 2001년까지 100권 분량으로 출판 예정이었던 작품으로, 동북아시아 고대 신화를 바탕으로 창세기부터 환웅시대를 거쳐 발해 멸망까지의 역사를 그린 이현세 작가의 야심작이다. 또한 천국의 신화는 천편일률적인 위인전이 아니라 살아있는 인물들의 형상화 작업이었다고 한다. 뱀에서 상상의 용을 만든 용의 자손(한족)과 까마귀에서 봉황을 만든 천족(조선족)의 사이에서 벌어지는 대륙패권 시나리오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기소된 지 3년 뒤인 7월 18일 1심 법원으로부터 부모의 입장에서 자녀들에게 보여줄 수 없는 음란물로 유죄판결이 내려졌다. 여기서 문제시 돼는 장면을 살펴보면, 첫째 소변을 보다가 커다란 얼룩무늬의 구렁이를 만난 여자가 이 구렁이로 교미하는 그림이다. 그 다음에 구렁이와 교미하는 여자가 절정에 이르러 흥분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림이다. 구렁이에게 또 몸을 감긴 채 신음하며 교성을 지르는 여자의 그림도 또한 문제가 됐다. 그 다음에 포악하고 잔인한 장면이 문제가 됐다. 포악한 장면으로 사람의 목과 가슴, 겨드랑이를 큰 창 두 개가 한꺼번에 찔러 관통하는 그림, 그리고 도끼로 사람의 머리를 쳐서 피가 날리는 그림, 그 다음에 칼날에 목이 잘려 날아가는 그림, 또 목이 잘려 잘린 목뼈가 보이고 몸에 수없이 많은 창날을 꽂은 시체들이 널부려져 있는 그림이 있는 것이 청소년의 보호란 측면에서 문제시됐던 장면들이다.
보 고 서과 목 명: 한국사회의 이해학 과: 화학과학 번: 96804002이 름: 권용준제 출 일: 2000년 7월 7일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스'를 보고헐렁한 바지의 터질듯한 윗도리 작은 중절모에 크고 낡을대로 낡은 구두,일본순사를 연상시키는 짧은 콧수염에 마당발걸음 그리고 전혀 어울리지 않는 지팡이를 지닌 신사모양의 찰리 채플린 그의 시대를 거슬러 가는 이 방랑자 모습의 분장.그리고 산업사회를 치닫고 있는 미국사회의 물질주의적 가치관에 대항하듯 찍은 그의 마지막 무성영화 는 포드주의 결정체라고 할수 있는 미국사회를 비판한 영화이다.에서 채플린이 나타내고자 하는 현대사회는 냉혹하다.노동자들이 마치 도살장으로 들어가는 가축처럼 공장으로 몰려들어가고 자본가는 커다란 화면을 통해 노동자들을 감시한다.자본주의 최대 목표라고 할수 있는 최소의 투자(최소의 시간)에 최대의 생산을 위해서 노동자들을 희생되어 간다. 그러다 보니 채플린은 컨베이어 밸트를 따라 흘려가는 기계에 너트을 조이기 위해 벌이 눈앞에서 윙윙거리며 위협해도 쫑을수도 피하지도 못하고 일을 한다.그것은 동료와의 다툼에서도 기계에 매여 다투지도 못하는 지경이다.화장실에서 담배라고 피울성 싶으면 한쪽 벽면에 있는 대형 스크린을 통해 자본가의 서슬퍼런 모습이 나타나고 점심시간 까지 아까워서 작업중에도 급식을 할수 있는 기계를 고안해내기 까지 하는 현대사회의 모습은 채플린이 기계장치속으로 먹혀 들어가는 모습이 이 영화의 피크라 할수 있을것이다.이건 현대산업속의 전체적인 노동자들의 모습을 강하게 대변하는게 아닐까 싶다.채플린이 자동 급식기계장치 실험대상이 됫던 부분은 자동 급식기계가 고장이나 광폭해져 채플린에게 음식물을 집어던지고 그를 폭행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인간에 의해서 만들어진 기계에 속박당하는 모습을 단적으로 나타낸 것이다.또한 당시 사회에 만들어진 대부분의 물건이 불량상태라는 것을 나타내기도 한다.채플린이 감옥에서 갖혀 식사시간에 마약을 먹는 장면은 무엇을 나타낸것일까?이것 역시 자동화에 따라 실업자가된 노동자의 방황과 그들사이에 마약문제가 심각했다는 것을 나타낸다.고아 소녀와 함께 백화점에 보낸 밤에서 롤러 스케이트를 타는 장면은 난간이 없음에도 모르고 눈을 감고 타는 채플린을 통해 빠르게 발전만 할뿐 안전하지도 않고 불안한 경제를 아슬한 롤러 스케이팅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마찬가지로 수영복을 입고 물속으로 뛰어들지만 수심이 발목깊이 밖에 안되는 것은 허울만 좋은 경제적 상황의 표현이다.이와 함께 식당에서 춤추는 인파로 인해 채플린이 오리고기를 제대로 나르지 못하는 장면을 통해 무절제한 자본가 계급과 우습기 까지한 채플린의 모습이 기계처럼 되어버린 노동자들을 나타내고 있고 그들의 자본가들에게 항거하는 모습을 채플린의 노래하는 모습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미국은 21세기에도 세계화를 주도할 것인가?세계경제는 1993년 구 소련의 몰락 이후 미국의 패권주의로 점철되고 있다. 미국이 21세기에도 세계화를 주도하냐를 논의하기 전에 미국이 어떻게 해서 유럽을 능가하였는가를 살펴봐야 할 것이다. 미국은 20세기 전반 최대의 공산품 생산국이었다. 유럽의 국가들이나 일본이 원료와 연료, 농산물을 수입하고 이를 가공, 세계의 여러 지역에 수출하여 산업을 발전시킨 것과 달리 미국은 자국의 자원을 이용하여 자신의 시장에 판매하면서 산업을 발전시켰다. 이러한 미국의 산업은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유럽의 선진 공업국이 퇴보할 때 더욱 확대되고 다양화되었다. 1607년 영국이 오늘날의 버지니아주 제임스타운에 최초의 식민지를 건설한 이후 미국의 북동부는 18세기 산업혁명이 낳은 근대 산업의 기술과 조직이 성공적으로 이식된 최초의 해외 식민지의 하나였지만, 1776년 영국과의 독립전쟁에서 승리하면서 미국은 발전의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한다. 그 뒤 1861-65년의 남북전쟁은 노예해방을 통한 북측의 승리로 끝나면서 일찍 공업중심의 사회로 재편되게된다. 유럽, 러시아, 일본과는 달리 미국은 캐나다와 함께 이민에 의한 인구 성장을 가져온다. 이러한 인구증가는 70세 이상의 노인 인구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높은 출산력으로 말미암아 사각형의 인구 피라미드를 유지하게 하여 항상 젊고 노동생산성이 높은 산업 인력을 공급, 산업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지난 200년간 세계의 주요 산업국가로써 세계화를 주도한 미국은 오늘날 전세계 산업 생산의 1/5을 차지하지만 이제 자국내의 수많은 자원이 고갈되어 점차 자원을 해외에서 수입해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 미국은 북아메리카 자유무역지대(NAFTA)를 결성하여 캐나다와 멕시코와 연대 강화에 힘쓰고 있어 미국의 영향력은 다음세기에도 지속될 전망이다. 그 예로 미국은 농업에서도 전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실례로 전체면적의 20%에 해당하는 190만㎢ 가 경작 면적으로 미국의 농업생산력은 거대하여고전을 면하지 못하고 있지만 우주, 항공, 컴퓨터 산업 등은 전 세계시장을 석권하고 있다.그럼 지금까지 미국이 세계경제를 이끌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이었을까? 그 힘중 하나인 이민의 영향을 살펴보자. 최근 미국은 자국으로의 이민을 제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왜냐하면 '초기에는 이민자들이 오늘의 미국을 이룩하는데 기여했지만 현재는 사회적 비용을 부담시키고 과밀화를 초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그러한가? 그렇지 않다. 일반적으로 이민자들은 그들이 내는 세금보다도 더 많은 공공 서비스를 사용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들이 경제규모를 확대시켜서 그들이 잠식하는 것 이상의 일자리를 창출하며 인구나 세금을 유지시켜 미국이 쇠퇴를 막아주고 있는 것이다. 또한 2040년까지 인구통계학적인 추이를 볼 때 이민을 늘리는 것이 미국에게는 무척 중요하다. 왜냐하면 베이비붐 세대가 노화되면 노동력은 줄어들게 되고 그에 따라 이들을 부양해야 할 사회보장제도의 마련을 위한 세금확보가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다.옛 소련이 무너진 이후 미국은 오늘날 초강대국이 되었다. 즉, 미국은 국제적 분업, 금융, 세계적 상품시장, 통신 첨단기술의 중심에 서서 그네들의 정치와 문화, 그리고 경제체제를 전세계로 퍼뜨리고 있다. 미국의 바탕이 되는 문화, 신자유주의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신장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왔고 사회주의보다는 사회 변화의 역동성을 가져오는데 큰 힘이 되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 중심의 자본이 이윤추구를 자연스럽게 할 수 있도록 하는 먹이사냥의 규칙을 마련해 주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왜 미국은 자유 시장경제를 전세계에 퍼뜨리며 이를 따르도록 하고 있는가? 그것은 이윤추구이다. 미국내에서 형성된 자본이 고 이윤을 찾아 국경을 넘어서게 마련인데 이러한 이동을 도와주기위해서 금융거래의 자유화 고삐를 쥐고 있는 것이다. 금융거래의 자유화에 따라 미국으로 자본이 집중하면 공황에 빠질 위험이 있지만 미국은 전세계 정보 통신망을 장악하고 있는 것을 과시하며 문제가국도 무너질 것이다. 물론 대비책으로 미국은 안정적 자원확보를 위해 여러 국가와 유대를 맺고 있다. 이런 사실들을 종합해 볼 때 미국의 세계화주도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중국은 세계화의 중심무대에 어떻게 복귀할 것인가?중국 경제는 지난 10여년간 눈부신 경제적 성과를 올렸다. 94년까지 연평균 9%라는 고도의 경제 성장률을 보였고 특히 92년부터는 두자리 숫자의 성장을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GNP는 78년 1,900억 달러이었던 것이 94년에는 5,100억 달러에 달해 2.7배 증가하였고 , 실질 구매력을 나타내는 1인당 GNP도 78년 220달러에서 94년 410달러로 증가했다. 이러한 중국의 성장세는 계속되어 2010년 중국의 GNP는 5조 5천억 달러 그리고 수입 규모는 5,5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측되고 있을 뿐 아니라 향후 20∼30년 간 중국 경제는 8%대의 경제 성장을 지속해 미국 일본에 버금가는 시장 규모를 달성하며 세계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91년 세계은행 발표)이렇듯 중국경제가 성장할수 있었던 주요인이 무엇인지를 살펴서, 중국이 세계화의 중심무대에 복귀할 수있는지를 살펴보자.중국 경제 성장의 주요인은 무엇보다 대외 무역 및 외국인 직접투자 확대에서 찾을 수 있다. 중국의 대외 무역은 78년 206억 달러에서 94년 2,367억 달러로 확대되었는데, 이중 수출은 78년 이후 연평균17%씩 증가하여 94년 1,210억 달러에 도달하면서 93년에는 세계11대 수출국가로 성장하였다. 한편 대 중국 외국인 직접투자를 보면,79년부터 94년까지 통 221,728건에 3,033억 달러를 기록했고 이중 92년 이후가 75%를 차지하며 세계 2위 아시아 최대의 외국인 투자 유치국으로 부상했다. 중국의 대외 개방은 주로 연해 지역을 중심으로 한 경제 특구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는데 중국은 심천 주해 산두 하문과 해남등 5개 경제 특구를 설치하고 대련 천진 상해 광주등 14개 연해 도시를 개방했으며 13개 경제기술 개발구와 양자강 삼각분 이용하여 자본과 세계화 시대의 상술을 익힌 것을 바탕으로 정보 통신 시대에 걸맞게 전세계의 무역 정보를 잘 파악하고 있으며 중계자로서의 민첩한 행동과 신의를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어쩜은 이 화교일찌도 모른다.1842년 아편전쟁이 끝난 이후 영국의 식민지로서 중계무역항으로 발전시킨 홍콩은 1977년 7월 1일 중국에 반환되었다. 이렇게 반환된 홍콩과 중국의 경제권에 속하는 마카오, 대만을 생각해서 중국의 경제권을 구상했던 홍콩의 학자 황권연 선생이 쓴 미래학 저서를 보자. 그의 구상은 중국 경제권은 중국대륙, 대만, 홍콩, 마카오 등으로 구성된 국가 형 경제권으로서 특수한 역사적 상황하에서 분열되어 아직 통일 되지 못한 동일국가, 동일 민족 내부의 경제 조직으로서 국가와 국가간의 견제 합작 조직이 아닌 두가지 상이한 사회제도의 대륙과 대만, 홍콩, 마카오간의 합작이다. 이는 대륙과 기타지역 경제의 장점과 특수성으로 인한 상호 보완성을 이용하는 것을 주된 내용으로 하고 있다. 말하자면 대륙의 풍부한 노동력, 자연, 자원, 과학기술과 시장이 대만이 자본, 기술 경영방법과 홍콩 마카오의 자본, 시장체제와 통신 무역, 서비스 등과 유기적 연관을 지어 일정한 형태의 경제합작조직으로 교류와 합작을 강화하고 정책과 법률적으로 협력함으로써 각자의 번영과 발전을 가져올 수 있으며, 또한 막강하고 온전한 실력체를 구성함으로써 아시아 태평양 지역 경제 합작을 추진하고 더 나아가 미래의 국제 경제 판도에서 우세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중국이 세계화의 중심무대에 복귀하는데 문제가 되는 것을 생각해보자. 첫째, 중국이 아직 사회주의 국가라는 사실이다. 평등의식에서 출발하는 노동자들의 실적을 무시한 인건비 요구가 그 처음이다.둘째, 경제 건설과 개방의 시작이 눠은데다가 20년의 공백까지 겹쳐 선진국과 상당한 차이가나는 것과 인구가 많고 자원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며 지역적으로 발전이 불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셋째, 경제 효율성이 낮고 적자운영 상태가 지속하는가에 따라 그 미래의 명암이 갈릴수 있다. 즉 사회주의 노선은 경제 문제에 한해서 효율적인 조직 운영을 통한 정책 수행이 필요하다. 두 번째는 사회간접자본의 확충을 통해 극복하면서, 세 번째와 네 번째 문제는 중화경제권의 형성을 통해 상호보완성을 이뤄간다면 중국이 세계속의 중심으로 복귀 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한다.전세계는 자유시장경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자유시장 경제의 세계화시대에 대한 문화변동이란 세 가지 측면에서 진행된다.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것과 전통적인 규범과 지역적인 문화를 고수하려는 태도 즉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입장과 두 가지를 적절하게 혼용하면서 때로는 세계적인 규범을 편리하게 적용해나가는 글로컬한 태도가 있을 것이다.그렇다면 전세계는 자유시장경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자유시장 경제가 전세계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를 알아보는 것이 이 질문에 대한 첫 번째로 할 일 일 것이다. 그 첫째로 자유 시장경제는 유럽문화지역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왔는지 알아보자. 1990년대초 자본주의의 적대세력이던 구소련의 몰락과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의 출현으로 지구는 국경없는 하나의 자유로운 시장이 되어 미국에 의한 자유시장경제의 세계화가 진행되고 있다. 모든 규제를 없애고 세계 경제를 통합함으로 미국경제 기준과 그네들의 관행을 따르라는 것이다 이런 강요에 대해 전 세계는 그들 나름대로의 생존전략을 수립하게 된다. 효율적으로 정부 정책을 수립하면서도 자신의 고유한 문화를 잘 유지하여야 한다는 것이 공통된 인식이다. 미국 중심의 자유시장 경제에 대해 서부유럽은 유럽연합(EU)으로 대항하게 되었다. 그 목적은 단일 경제권의 확립이다. 이건 또한 유로화로 결론지어지는데 미국 달러에 대항하며 정착이 된다면 미국의 독주를 견제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인구, 재화 , 자본 등의 장벽이 제거된 가운데 유러화에 의한 경제 발전과 국가간의 격차가 과제로 남게 되었지만 말이다. 동부 유럽은 서부 유럽과 반대로 적극적으로 자유시장경제를.
중국은 세계화의 중심무대에 어떻게 복귀할 것인가?중국 경제는 지난 10여년간 눈부신 경제적 성과를 올렸다. 94년까지 연평균 9%라는 고도의 경제 성장률을 보였고 특히 92년부터는 두자리 숫자의 성장을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GNP는 78년 1,900억 달러이었던 것이 94년에는 5,100억 달러에 달해 2.7배 증가하였고 , 실질 구매력을 나타내는 1인당 GNP도 78년 220달러에서 94년 410달러로 증가했다. 이러한 중국의 성장세는 계속되어 2010년 중국의 GNP는 5조 5천억 달러 그리고 수입 규모는 5,5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측되고 있을 뿐 아니라 향후 20∼30년 간 중국 경제는 8%대의 경제 성장을 지속해 미국 일본에 버금가는 시장 규모를 달성하며 세계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91년 세계은행 발표)이렇듯 중국경제가 성장할수 있었던 주요인이 무엇인지를 살펴서, 중국이 세계화의 중심무대에 복귀할 수있는지를 살펴보자.중국 경제 성장의 주요인은 무엇보다 대외 무역 및 외국인 직접투자 확대에서 찾을 수 있다. 중국의 대외 무역은 78년 206억 달러에서 94년 2,367억 달러로 확대되었는데, 이중 수출은 78년 이후 연평균17%씩 증가하여 94년 1,210억 달러에 도달하면서 93년에는 세계11대 수출국가로 성장하였다. 한편 대 중국 외국인 직접투자를 보면,79년부터 94년까지 통 221,728건에 3,033억 달러를 기록했고 이중 92년 이후가 75%를 차지하며 세계 2위 아시아 최대의 외국인 투자 유치국으로 부상했다. 중국의 대외 개방은 주로 연해 지역을 중심으로 한 경제 특구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는데 중국은 심천 주해 산두 하문과 해남등 5개 경제 특구를 설치하고 대련 천진 상해 광주등 14개 연해 도시를 개방했으며 13개 경제기술 개발구와 양자강 삼각주 자강 삼각주 복건성 남부 삼각지대와 산동반도 요동반도 경제개방구를 개척하였다.중국을 움직이고 있는 것은 실제로 화교 자본이라고 하는 말이 있다. 실제로 화교들은 동남아시아에 거점을 두고 동남아시아의 무역 중계지를 십분 이용하여 자본과 세계화 시대의 상술을 익힌 것을 바탕으로 정보 통신 시대에 걸맞게 전세계의 무역 정보를 잘 파악하고 있으며 중계자로서의 민첩한 행동과 신의를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어쩜은 이 화교일찌도 모른다.1842년 아편전쟁이 끝난 이후 영국의 식민지로서 중계무역항으로 발전시킨 홍콩은 1977년 7월 1일 중국에 반환되었다. 이렇게 반환된 홍콩과 중국의 경제권에 속하는 마카오, 대만을 생각해서 중국의 경제권을 구상했던 홍콩의 학자 황권연 선생이 쓴 미래학 저서를 보자. 그의 구상은 중국 경제권은 중국대륙, 대만, 홍콩, 마카오 등으로 구성된 국가 형 경제권으로서 특수한 역사적 상황하에서 분열되어 아직 통일 되지 못한 동일국가, 동일 민족 내부의 경제 조직으로서 국가와 국가간의 견제 합작 조직이 아닌 두가지 상이한 사회제도의 대륙과 대만, 홍콩, 마카오간의 합작이다. 이는 대륙과 기타지역 경제의 장점과 특수성으로 인한 상호 보완성을 이용하는 것을 주된 내용으로 하고 있다. 말하자면 대륙의 풍부한 노동력, 자연, 자원, 과학기술과 시장이 대만이 자본, 기술 경영방법과 홍콩 마카오의 자본, 시장체제와 통신 무역, 서비스 등과 유기적 연관을 지어 일정한 형태의 경제합작조직으로 교류와 합작을 강화하고 정책과 법률적으로 협력함으로써 각자의 번영과 발전을 가져올 수 있으며, 또한 막강하고 온전한 실력체를 구성함으로써 아시아 태평양 지역 경제 합작을 추진하고 더 나아가 미래의 국제 경제 판도에서 우세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세계는 자유시장경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자유시장 경제의 세계화시대에 대한 문화변동이란 세 가지 측면에서 진행된다.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것과 전통적인 규범과 지역적인 문화를 고수하려는 태도 즉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입장과 두 가지를 적절하게 혼용하면서 때로는 세계적인 규범을 편리하게 적용해나가는 글로컬한 태도가 있을 것이다.그렇다면 전세계는 자유시장경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자유시장 경제가 전세계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를 알아보는 것이 이 질문에 대한 첫 번째로 할 일 일 것이다. 그 첫째로 자유 시장경제는 유럽문화지역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왔는지 알아보자. 1990년대초 자본주의의 적대세력이던 구소련의 몰락과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의 출현으로 지구는 국경없는 하나의 자유로운 시장이 되어 미국에 의한 자유시장경제의 세계화가 진행되고 있다. 모든 규제를 없애고 세계 경제를 통합함으로 미국경제 기준과 그네들의 관행을 따르라는 것이다 이런 강요에 대해 전 세계는 그들 나름대로의 생존전략을 수립하게 된다. 효율적으로 정부 정책을 수립하면서도 자신의 고유한 문화를 잘 유지하여야 한다는 것이 공통된 인식이다. 미국 중심의 자유시장 경제에 대해 서부유럽은 유럽연합(EU)으로 대항하게 되었다. 그 목적은 단일 경제권의 확립이다. 이건 또한 유로화로 결론지어지는데 미국 달러에 대항하며 정착이 된다면 미국의 독주를 견제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인구, 재화 , 자본 등의 장벽이 제거된 가운데 유러화에 의한 경제 발전과 국가간의 격차가 과제로 남게 되었지만 말이다. 동부 유럽은 서부 유럽과 반대로 적극적으로 자유시장경제를 받아들이고 있다. 공산주의 몰락과 함께 이들 국가는 자유시장경제체제로 변화를 꾀하고 있다. 물론 공산주의의 유산인 국영기업의 이윤추구 때문에 발생한 노동자가 더 이상 일하지 않고 소외감을 느끼는 문제가 없어진건 아니다.자유 시장경제는 비 유럽 문화지역, 즉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지 살펴보자. 서남아시아와 북부아프리카는 인구 증가, 석유 수출양의 감소, 경작 면적의 축소에도 불구하고, 대도시에서의 산업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어 종교적 문제가 야기되는 분쟁만 없다면 풍부한 자원이 갖는 이점을 보게되어 독자적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이슬람문화의 엄격한 교리가 자유주의와 개인주의를 받아들이기도 힘들 것이다. 남부아시아의 인도는 내부의 이질적인 문화를 유지하면서 이들을 통합시키려는 노력이 성공을 보고 있다. 종교적 갈등보다는 도리어 현생보다 사후의 세계를 집착하는 힌두교의 전통으로 말미암아 시장경제를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일본을 비롯한 한국, 대만, 홍콩과 함께 유교문화의 입장에서 이해하지 않으면 안되는 동북아시아는 높은 교육열, 이에 의한 기술과 지식의 습득, 충효정신에 의한 사회통합, 혈연, 지연, 학연 등의 인간관계에 의한 정보교환과 신뢰, 근검, 절약등에 기여한 유교 문화는 서부 유럽의 자본주의 발전의 기초가 된 기독교 문화와 버금가는 역할을 수행하였지만 그 역기능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중국은 시장사회주의, 즉 중국적인 시장식 사회주의를 표방하면서 시민의 평등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개인과 지역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시장 경제적인 요소를 도입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아직 외견상으로는 성공을 거두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