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홍글씨를 읽고어린 시절 세계명작 전집 속의 한 권이었던 이 책을 읽는데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린 시절에는 책의 초반부가 간통 죄를 저지른 여자의 얘기로 시작되어 좋지 못한 책이라고 생각해서 읽지 않았고, 그 이후에는 세계명작이라는 책들 자체와 너무나 거리가 멀게 살아왔다. 세월이 흘러 지금 다시 책을 들추어보니 어린 시절 한 번 읽어보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도 지금이라도 읽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17세기 중엽, 청교도의 식민지였던 미국의 뉴잉글랜드를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준엄한 청교도의 잣대 아래 평판과 명예를 중요시하던 당시의 시대적 모습을 느낄 수 있는 소설이다.주홍글씨를 가슴에 달고 평생을 살아가야하는 벌을 부여받은 여자 - 헤스터 프린. 늙은 의사와 결혼한 그녀는 남편보다 먼저 미국으로 건너와 살고 있었는데, 남편으로부터는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 그 사이 그녀는 펄이라는 사생아를 낳았고 간통 죄로 인해 죄없는 아이와 함께 감옥에 갇히고, 광장에서 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되는 수모를 겪고, 그러고도 간통을 의미하는 ‘adultery’의 ‘A’자를 평생 가슴에 새기고 살아가야하는 형벌을 부여받았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녀는 끝내 간통한 상대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온갖 수모를 꿋꿋이 혼자서 견뎌냈다.그러나 이 소설이 진짜 재미있는 까닭은 그녀가 지은 죄 때문이 아니다. 그녀는 자신이 지은 죄를 인정하고 그 댓가를 충분히 받았을 뿐 아니라 어떠한 변명도 하지 않고 그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그녀 자신의 영혼은 오히려 구제받았고 평안을 찾았으며 간통으로 생긴 그녀의 딸 펄은 그녀의 보살핌 속에 사랑스럽고 행복한 아이로 자라났다. 그리고 그녀를 향한 마을 사람들의 무시와 불친절과 무례함들도 그녀의 끝없는 베풂과 봉사와 자기희생 앞에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잊혀져 가고 희미해져갔다.반면 불륜을 저지른 상대방인 딤즈데일 목사는 겉으로는 전혀 죄인의 모습이 아니었다. 오히려 날로 더 그 명성을 높혀가는 훌륭한 목사인 까닭에 모두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그러나, 그 내면은 양심의 가책으로 인해 날로 피폐해지고 육신마저 무너지고 있었다.이 소설은 서로 마주하기 힘든 위치에 있는 이 두 사람 사이를 제 3의 인물인 로저 칠링워스가 등장하여 연결해주면서 자연스럽게 스토리를 전개해나간다. 사실 그는 헤스터 프린이 이 마을로 이사오기 전까지 함께 살았던 그녀의 전남편이었다. 젊고 예쁘고 활달한 그녀에 비해 지나치게 늙고 연구만 좋아하는, 그래서 젊은 부인인 그녀를 무심하게 내버려 두었던 그는, 그녀를 홀로 내버려둔 것에 대해 뒤늦은 후회를 한다. 그러나 이미 그녀는 그를 배신하고 간통으로 아이까지 낳은 상태였다. 그리하여 복수심에 불탄 그는 그녀가 광장에서 뜨거운 태양아래 서서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는 형벌을 받는 그 날, 그녀가 사는 마을에 나타난다. 그리고는 인디언들에게서 배운 약초 다루는 법 등을 내세워 의사 행세를 하게 되는데 마침 딤즈데일 목사의 건강이 나쁜 것을 이유로 목사집에서 기거하면서 그를 돌보는 일을 맡게 된다.처음에 딤즈데일 목사는 로저 칠링워스라는 이 기인한 노인에 대해 그저 의사이고 자신을 돌보아주는 친구라고 생각할 뿐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그러던 중 나날이 자신을 옥죄어 오는 죄의식과 괴로움이 심해지면서 순간순간 로저에 대해 좋지 않은 느낌을 받곤 했다.그러나 로저 칠링워스는 우연한 기회에 젊은 딤즈데일 목사가 불륜의 상대임을 눈치채고는 의도적으로 목사의 집에 기거하며 주치의 노릇을 하고, 불륜의 증거를 찾고자 혈안이 되어 끊임없이 목사 주변을 서성였다. 그것이 여의치 않자 목사의 죄의식을 부추기는 얘기로 스스로 털어놓겠끔 유도도 하여 보았으나 별다른 소득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결정적인 증거를 발견하게 되는데 그건 바로 채찍질 자국이었다. 아픈 목사를 돌보면서 발견하게 된 채찍질 자국! 그것은 목사가 죄의식을 달래는 방법으로 선택한 자기 학대의 방법이었다. 목사의 몸에는 스스로 내리친 끔찍한 채찍으로 인해 온 몸이 성한 곳이 없었다.한편, 마을과는 동떨어진 외딴 오두막에 살면서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어려운 사람들에게 베풀면서 살던 헤스터는 로저가 딤즈데일 목사를 해치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자신과 로저에 관한 모든 사실을 딤즈데일에게 털어놓는다. 그리고 둘은 함께 마을을 떠나 한 가족으로서 새로운 삶을 살아갈 계획을 세운다.이 때부터 목사는 활기를 되찾게 되고 삶의 희망을 느끼게 되어 되살아난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로저 칠링워스는 자신의 계획이 잘못 되어가는 것을 깨닫고 둘의 마지막 탈출을 막기 위해 헤스터가 구해 놓은 배에 자신도 동승할 자리를 마련해 둔다. 그들의 행복을 위한 마지막 탈출 계획을 로저가 눈치채고 방해하려 하는 것을 알고는 글을 읽는 내내 들키지나 않을까 내 마음이 좌불안석이었다. 조금 우스운 얘기지만 사태를 모르고 있는 주인공들보다 더 불안하고 조마조마 하였다.목사는 함께 떠나자고 하였지만 이미 기력이 너무 쇠하여 마을을 벗어나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허약해진 상태였다. 그리하여 삶에 대해 초연해진 그는 로저 칠링워스가 끝까지 쫓아가 괴롭혀 줄 심산으로 그들이 구한 배까지 매수하여 두었건만, 허망하게도 그 배에 오르지도 못하고 죽음을 맞이하고 만다.그러나 목사는 이제 더 이상 죄의식에 시달리지도, 고통스러워하지도 않게 되었다. 왜냐하면 목사는 그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인 새로 부임한 지사의 취임식날, 마지막 설교와 함께 자신의 죄를 시인하고 만인 앞에 드러내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연설을 한 목사는 스스로 처형대에 올랐다. 그 곳은 7년전 헤스터와 아이가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었던 바로 그 단상이었다. 그곳에서 헤스터와 펄을 가까이 부른 목사는 자신의 가슴을 헤쳐보이는데, 그의 가슴에는 'A'자가 있었다. 그것은 7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헤스터가 가슴에 달고 살면서 사람들의 야유와 비웃음을 샀던 바로 그 'A'자와 같은 것이었다.사람들은 비록 목사가 죄를 짓기는 하였지만 죄의식에 시달리면서 살았고, 영혼을 일깨우는 설교를 하면서 죄를 뉘우치고 임종을 맞이하였기 때문에 아무도 목사를 비난하거나 비웃지 않고 오히려 그 마지막 연설에 감동하였다. 또한 그 이후로는 아무도 헤스터나 그의 딸 펄을 놀리거나 비웃지 않게 되었다.
황사현상에 대하여목 차1) 황사 현상이란2) 발생조건3) 배출량과 구성성분4) 10년간 국내 발생 현황5) 한-중-일 협력강화6) 피해 및 대책들어가면서겨울 내 움츠리고 있다가 따뜻하고 화창한 봄날에 포근한 햇살과 봄바람을 맞이하고 싶은 마음 간절한데, 어김없이 봄철에 황사현상으로 나들이뿐 만 아니라 일상생활에도 많은 나쁜 영향을 주는 황사.황사현상이란 무엇이며, 발생원인과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알아보고, 황사발생에 대한 대책, 특히 우리나라, 일본, 중국 삼국의 협력방안에 대하여 생각해보고, 아울러 황사피해 대책법에 대해서도 알아 보도록 하자.해마다 3~5월이면 한반도에 날아오는 황사는 중국의 경우 기원전 1150년에 '우토우호(雨土于毫)’라는 먼지현상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3000년 전에도 황사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우리나라에서도 삼국시대인 서기 174년 신라 아달라왕 때 와 ?서기 379년 백제 근구수왕때 ‘우토(雨土)’라는 기록이 삼국사기에 나온다(우토:흙이 비처럼 떨어진다는 뜻). 그리고, 서기 644년 고구려에서 10월에 붉은 눈이 내렸다고 한다.고려 명종16년(1186년)에 "눈비가 속리산에 내려 녹아서 물이 되었는데 그 색이 핏빛과 같았다."고 했는데 황사황토물 때문에 붉게 보인 것이다.조선 명종 5년 3월(1550년)에 "한양에 흙이 비처럼 내렸다. 전라도 전주와 남원에는 비가 내린 뒤에 연기 같은 안개가 사방에 꽉 끼었으며, 쓸면 먼지가 되고 흔들면 날아 흩어졌다. 25일까지 쾌청하지 못하였다."는 기록이 있다.황사현상을 일으키는 먼지인 황토는 신생대 제4기인 180만년 전에 생겨났다고 하고, 지금 한반도에서 많은 곳에서 발견되는 황토는 수십만년간 황사가 쌓여서 형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참조: 현대에는 대기오염으로 인해서 황사가 중금속과 발암물질을 동반하지만, 옛날에 날아와 땅에 뭍여 있는 황토는 깨끗하다.]건축 공사장에서는 쌓아둔 모래가 흩어지지 않도록 물을 뿌리거나 그물망으로 덮어놓기도 한다. 바싹 마른 모래나 흙이 있는 곳에 강풍이 불게 되면 모래 먼지가 바람에 날리면서 흙바람이 일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봄철에는 겨울 내내 얼어있던 건조한 토양이 녹으면서 잘 부서져 부유하기 쉬운 20㎛ 이하 크기의 모래 먼지가 많이 생긴다. 여름에는 강수도 있고 가을까지도 땅에 식물이 뿌리를 내리고 있어 모래 먼지가 묶여 있지만, 겨울을 지나면서부터는 모래 먼지가 땅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또한 황사의 고향인 유라시아대륙의 중심부는 바다와 멀리 떨어져 있어 건조하며, 강수량이 적고 증발이 잘 되는 지역이다. 이 지역에 1년 동안 내리는 강수량은 보통 4백㎜ 이하이며, 강수량의 변화도 심한 편이다(우리 나라의 연 강수량은 약 1천1백-1천7백㎜). 말하자면 원래부터 이 지역은 물과 식물이 부족해 항상 바람에 혼이 나고 있으며, 극단적인 더위와 추위로 고문당하는 메마른 지역이다. 이런 지역에서 모래바람은 늘 일어나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멀리 떨어진 우리 나라에 영향을 줄 정도의 대규모 황사가 발생하는 시기는 주로 봄이라고 할 수 있다.우리 나라에서는 황사 현상이라고 기록되는 날수는 일년에 약 3-6일로 4월에 주로 관측되고 있다. 중국의 사료에도 황사 현상은 봄에 많이 발생했으며, 1년 중 약 25%의 황사가 4월에 발생했다. 일본의 경우는 1년에 평균 5일 관측되며, 주로 일본의 서쪽 규슈지방에서 자주 관측된다.1) 황사 현상이란황사현상은 사막지대나 황토지대에 저기압이 통과할 때 한랭전선 후면에서 부는 강한 바람이나 지형에 의해 만들어진 난류에 의해 다량의 먼지가 상층으로 올라가 공중에 부유하거나 장거리 수송도중 지표에 서서히 낙하하는 현상을 말한다. 중국과 몽고의 사막지대인 타클라마칸, 바다인자단, 텐겔, 오르도스, 고비지역, 만주 등과 황하중류의 황토지대인 황토고원이 발원지이다. 이 가운데 타클라마칸 사막은 한반도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5천 ㎞이상) 영향이 적은 편이다. 반면 만주에서 발원하는 경우는 매우 드문 편이지만 한반도에 가장 근접해 있어 황사 발원시 가장 큰 영향을 줄 수 있다.2) 발생조건발원지의 동쪽에 위치한 우리 나라 고도의 편서풍 기류가 우리 나라 지표면에 낙하하기 좋은 기압배치는 고기압이 위치하여 하강 기류가 발생할 때이다.3) 배출량과 구성성분발원지에서 배출되는 황사량을 100 %라 할 때 보통 30%는 발원지에서 재침적 되고 20 %는 주변 지역으로 수송된다. 나머지 50 %가 장거리를 날아 한국 일본 태평양 등에 오게 된다. 한반도와 일본에서 관측된 황사의 크기는 1~10 ㎛ 정도로 1 ㎛ 입자의 경우 수년 동안, 10 ㎛ 입자는 수 시간~수일 동안 공중에 부유할 수 있다. 주성분은 석영(규소)과 장석(알루미늄)이며 철과 알루미늄 구리 카드뮴 납 등도 다량 함유돼 있으며, 지난해 한국해양연구소 홍기훈 박사 팀은 플라토늄 등 다량의 방사능도 검출됐음을 확인했다.4) 10년간 국내 발생 현황지난 90~99년 10년간 우리 나라에서 관측된 황사 발생횟수를 분석해 보면 광주가 26회 (58일)로 가장 많았으며 부산이 20회(42일)로 가장 적었다. 총 발생일수는 서울이 70일로 가장 길었으며 강릉이 37일로 가장 짧은 것으로 조사돼 서울ㆍ경기지역과 서해안 지역이 긴 것으로 나타났다. 황사는 주로 3월 초순부터 5월 중순사이에 관측되었으나 서울에서는 지난 91년 11월30일~12월3일에 발생하기도 했으며 지난해에는 이례적으로 전국에 걸쳐 1월25일 조기 발생하기도 했다. 가장 자주 발생한 해는 93년으로 24회에 걸쳐 91일간 나타났으며, 94년에는 5회에 걸쳐 7일간으로 가장 짧았다. 부산의 경우 92년을 제외하고는 주로 3~5월께 1~4차례씩 관측됐으며, 지난 93년이 5차례(10일)로 가장 많이 발생했다.5) 한-중-일 협력강화최근 중국의 급속한 산업화와 더불어 황사로 인한 대기오염이 심화됨에 따라 한국과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3국은 환경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해 1월 한국의 제의로 서울에서 개최된 제 1차 3국 환경장관회의 이후 3국은 ‘환경 공동체의식’을 갖고 동북아지역의 실질적이고 지속 가능한 개발을 촉진하기 위한 공동협력 프로그램 추진에 합의한 상태이다. 3국이 공동 추진키로 한 9개 사업은 △ 황사 및 산성비 등 장거리이동 대기오염에 대한 공동조사ㆍ연구를 비롯해 △ 동북아 환경센터 발족 △ 중국 서부지역 생태환경 복원사업 공동참여 △ 황해연안 오염저감사업 공동 추진 등이다. 이밖에 △ 3국 공동 인터넷 홈페이지 작성 및 환경정보 공유프로그램 개발 △ 3국 공동의 환경교육ㆍ훈련 프로그램 실시 △ 기후변화, 생물다양성 등 지구환경문제에 공동 대처키로 했다. 3국 환경장관회의의 가장 큰 소득은 무엇보다도 그 동안 황사문제 등에 대해 관심을 회피하고 있던 중국 측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 낸 점이다. 한ㆍ중ㆍ일 3국은 이제 이들 9개 사업의 세부적인 실천계획 마련을 위해 올 6월 이전에 제 1차 3국 환경부 실무자급 회의, 내년 초 일본에서 제 3차 3국 환경장관회의를 갖기로 했다.
『땅콩박사』를 읽고한동안 책을 읽지 않던 나에게 친구가 좋은 책이 있다고 소개하여 우연찮게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은 '땅콩박사'라 불리우는 조지 워싱턴 카버의 생애를 다룬 전기문이다. 그러나 타 전기문과는 달리 딱딱하고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고 마치 소설을 읽는 것처럼 흥미진진하고 깊은 감명을 주었다. 그것은 마치 여러 가지 난관을 헤치고 마침내 성공하게 된다는 고도로 계산된 영화 시나리오처럼 카버 박사의 삶이 다양한 경험과 고난들의 연속이었고 그 하나하나를 이겨나가는 눈물겨운 노력들이 오늘을 살아가는 나에게 깊은 반성의 시간을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미국의 남북전쟁 후 피폐하고 혼란스러운 시기에 흑인노예로 태어난 조지 워싱턴 카버는 자신의 부모가 누구인지, 심지어 자신이 어느 해에 태어났는지조차 정확히 알지 못했다. 청년 시절에는 길바닥이 집이었으며, 추위와 배고픔을 벗 삼아 지낼 수밖에 없었다. 수많은 인종차별의 벽에 부딪히기도 했다. 그러나 조지 워싱턴 카버는 결코 배움에 대한 열정과 삶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살아 숨 쉬는 매 순간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풍요롭게, 더 건전하게, 더 멋지게 만들고자 하였고, 이를 위해 부단히 애를 썼다. 결국 그는 가장 비천하게 태어났지만 가장 존경받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카버 박사가 ‘땅콩박사’로 불리는 것은 사람들이 별로 대단치 않게 여기던 땅콩을 연구하여 엄청난 성과를 이루어냈기 때문이다. 그는 목화 재배만을 고집해 황폐해질대로 황폐해진 남부의 땅에 콩을 심어 땅의 기운을 회복시켰다. 또한 이 때에 생산된 땅콩을 활용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연구한 끝에 105가지나 되는 아주 맛좋은 음식물과 200가지가 넘는 완전히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내었다. 이로 인해 그는 가난에 허덕이는 미국 남부 지역 농부들을 구해낼 수 있었다. 그가 세상을 뜰 무렵에는 땅콩으로 만들 수 있는 제품이 300가지가 넘었으며, 땅콩을 원료로 제품을 가공하는 공장이 수십 개나 세워졌다.그러나 그 혜택은 그의 흑인 동족들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토록 그를 천대하고 멸시하며 괴롭히던 백인들에게까지 각종 지식을 나누어 주고 생활이 향상되도록 도와주었다. 그가 미국의 국채를 구입하기도 하였는데, 그것은 그가 부를 쌓기 위해서가 아니라, 흑인 노예가 아닌 조국을 사랑하는 하나의 시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오히려 월급인상을 수 차례 거절하고 가난한 학생들에게 언제라도 그의 월급을 나누어 주며 수많은 발명품에 대해서도 이익을 취하지 않고 모두가 그 혜택을 누리도록 하는 그런 인품의 사람이었다.총칼을 들고 싸우거나 사람들 앞에 나서서 흑인의 인권을 직접 얘기하지는 않았지만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고, 그 결과를 모든이들이 평등하게 고루 누리도록 함으로써 행동으로 실천하는 흑인 인권 운동을 실천한 셈이었다.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연구에만 매진한 카버 박사는 돈이나 명예를 얻을 기회도 많았으나 자신이 발명한 기술을 필요한 사람들에게 무상으로 나눠주는 것을 기쁨으로 생각했다. 무엇보다 카버 박사는 남녀노소에 상관없이, 빈부나 직업에 상관없이, 인종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자신을 적대시하는 사람을 포함하여-늘 겸손과 정직, 그리고 사랑의 마음으로 대함으로써 흑인들은 물론이고 백인들로부터도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그는 마하트마 간디, 토마스 에디슨, 헨리 포드 등과 같은 세계적인 지도자들의 친구였을 뿐만 아니라 가난과 기아에 허덕이는 농부들의 친구였고, 차별과 억압에 시달리는 흑인 동족들의 친구였다. 미국의 제32대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카버 박사를 미국의 가장 위대한 사람 중 하나라고 선언한 바 있다.카버 박사를 둘러싼 환경은 언제나 열악했지만, 그는 그것 때문에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서 언제나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이었다.온갖 역경을 극복하고 인류를 위해 봉사의 삶을 살다간 조지 워싱턴 카버는 1923년 과학계에 공헌한 공로로 스프링간 훈장을 받았으며 1942년에는 남부의 농업경제에 기여한 공로로 루스벨트 메달을 받았다. 또한 1947년에는 그가 태어난 다이아몬드 그로브의 모세 카버 농장에 기념관이 세워졌고, 1951년에는 미국의 50센트 주화에 그의 모습이 새겨졌으며, 1977년 ‘위대한 미국인’ 명예의 전당에, 1990년에는 ‘위대한 발명가’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는 영예를 얻었다.
「어린왕자」를 읽고어린이를 위한 책이면서도 동시에 어른들에게 더 큰 감동과 깨달음을 주는 동화, ‘어린 왕자’. 이 책을 수 차례 읽었지만 읽을때마다 새로운 감동을 느끼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현실과 타협하고 점점 세상에 순응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는 현대인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는 항상 어린시절의 순수했던 영혼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하고 있는 그들에게 순수함에 대한 향수를 일깨워주기 때문이 아닐까?줄거리는 대략 이러하다.비행기를 조종하며 전세계 여러 곳을 누비고 다니던 비행사인 ‘나’는 원래 순진무구하고, 어린아이처럼 마음을 열고 보아야 볼 수 있는 그림을 그리는 꼬마 화가였다. 그러나 아무도 나의 그림세계를 이해해주지 못했기 때문에 점점 어른들의 사회에 적응하면서 여전히 동심의 세계를 그리워하는 어른으로 자라났다.그러던 어느 날 비행기가 갑작스럽게 고장이 나 사하라 사막에 불시착 해버렸다. 사막 한 가운데에서 비행기를 고치고 있던 나는 어디선가 홀연히 나타난 어린왕자를 만나게 된다. 사막에 홀로 고립되어 생사의 기로에 선 ‘나’에게 어린왕자는 양을 그려달라고 하고 엉뚱한 이야기들을 펼쳐 놓는다. 처음에는 이 엉뚱한 소년을 조금은 귀찮게도 생각하고 떨어져가는 식량을 걱정하며 비행기를 고쳐 원래를 삶으로 복귀하는 것만을 초조하게 바라던 나는 점점 어린왕자의 이야기에 빠져들게 된다. 그리고 어린왕자를 통해 그 동안 어른들의 사회에서 인정도, 이해도 받지 못했던 그리운 동심의 세계를 다시 만나게 된다.어린왕자는 비행사에게 자신이 살던 별과 자신이 다녔던 여행에 관해 이야기를 해주었다.어린왕자의 별에는 장미 하나가 있었는데, 그 장미는 자존심이 아주 세고 사소한 일로 불평하며 어린왕자를 괴롭혔다. 그래서 어린왕자는 장미의 오만함을 고쳐주려고 자신의 별을 떠나 여행을 다니게 되었다. 여러 별을 다니며 여러 가지 다양한 인간상을 만나게 되었다.첫번째 별에서는 권위적이고 높임받길 원하는 왕을, 두번째 별에서는 자기를 칭찬하는 말 이외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 허영쟁이를, 세번째 별에는 술을 마신다는 것이 부끄러워 그걸 잊기 위해 술을 마신다는 술꾼을, 네번째 별에서는 우주의 5억 개의 별이 모두 자기 것이라고 되풀이하여 세고 있는 상인을, 다섯번째 별에는 1분마다 한 번씩 불을 켜고 끄는 점등을, 여섯 번째 별에는 자기 별도 여태껏 탐사해보지 못한 지리학자를 만났다.이들은 모두 남에게 군림하려고만 하는 어른, 위선 속에 사는 어른, 허무 주의에 빠진 어른, 물질 만능의 표본 같은 어른, 분업화 된 기계 문명 속에서 자기 일에 아무런 가치와 의미를 찾지 못하는 어른, 이론 속에서만 사는 행동이 결여된 어른들을 나타낸다.그러다가 어린왕자가 도착한 일곱번째 별은 지구였다. 어린왕자는 지구에서 지혜로운 여우 한마리를 만나 친구가 되는 법과 길들인 다는 것 등 위의 여러 별에서는 배울 수 없었던, 즉 이미 동심을 잃어버린 어른들에게서는 찾을 수 없었던 소중한 것을 배우게 된다. 그러면서 자신의 별에 있는 장미에 대해 생각해보고 자신이 길들였던 장미의 소중함에 대해 깨닫게 된다.여우가 어린왕자에게 들려준 이야기의 일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나는 네가 필요하지 않고, 너도 내가 필요하지 않아. 너에게 나는 다른 여우들과 똑같으니까. 하지만 네가 나를 길들이면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 할 거야.”“네가 친구를 갖고 싶다면, 나를 길들여봐! ”“참을성이 있어야 해.”“우선 내게서 조금 떨어져서 저기 풀밭에 앉아. 그리고 매일 조금씩 가까이 와서 앉는 거야. 나는 너를 바라볼 거야. 하지만 너는 잠자코 있어야 해. 말은 오해를 만들어내니까.”“네가 똑같은 시간에 왔다면 더 좋았을 걸.”“만약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나는 세 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더 행복해지겠지. 내 마음이 너를 만날 준비를 할 거라고! 네시가 되면 나는 흥분할 거고 또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겠지. 그러면서 행복의 대가를 알게 될 거야. 하지만 네가 아무 때나 온다면 나는 마음의 준비를 언제해야 할지 모르겠지.” ......길들인 것에 대하여 소중함을 깨닫게 된 어린왕자는 정원에 핀 그 수많은 꽃들이 자기의 장미와는 조금도 닮지 않았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그리고 길들이지 않은 그 장미들은 자기에게는 아무런 가치도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또한 여우는 어린왕자와 작별 인사를 할 때, 여우는 선물로 비밀을 하나 가르쳐 준다."아주 간단한 거야. 잘 보려면 마음으로 보아야 해.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는 보이지 않거든.""네 장미가 네게 그렇게 소중한 것은 그 장미를 위하여 잃어버린 시간 때문이야.""사람들은 이런 진리를 잊고 있어. 그러나 너는 그것을 잊어서는 안 돼. 언제나 네가 길들인 것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해. 넌 네 장미에 대해 책임이 있는 거야."
인간역사와 환경오염목 차1. 서 론2. 녹색세계사가. 인간의 증가나. 화석연료의 증가와 공업화3. 결 론1. 서 론인간 역사의 기본은 생태계의 법칙에 좌우된다. 인간을 비롯한 지상의 모든 생명체는 광합성체에서 시작하여 초식동물을 거쳐 꼭대기의 육식 동물에 이르는 먹이사슬을 구성하는, 서로 다른 동식물이 서로 의존하는 복잡한 거미줄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 먹이사슬의 에너지 효율이 점점 낮아지기 때문에 각 단계의 생물체의 수는 점점 작아진다.이러한 먹이사슬아래서 활동하던 고대의 인간들은 약육강식의 법칙에 따라, 다시말해서 자연의 법칙에 따라 생활을 영위하였었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 먹이사슬의 최고의 위치를 점유하고 있는 인간의 미증유의 증가수치가 그 안정을 위태롭게 하고 있다. 수많은 학자들에 의해 자연예찬론과 같은, 자연법칙의 순응하는 측면을 강조됐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자연을 이용하는 단계를 넘어서 파괴하는 수준에 이르렀음을 부인할 수 없다.이 책에서는 이러한 측면을 생각하여 인류역사 중 자연변천사를 중점적으로 다루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자연변천사는 인간사회가 생태학적인 속박에서 탈출하는 데 중요한 역할한 인간의 증가이다. 또한, 화석 연료의 이용과 공업화이다. 이 두 가지 주요 안건은 여러 가지 부산물을 탄생시켜 녹색세계사에 있어 중요한 변화를 가져왔다. 본 글에서는 이 두 가지 측면을 중점적으로 요약, 정리함으로써 자연변천사에서 인간의 행위를 비판하고자 한다.2. 녹색세계사가. 인간의 증가인간 역사에서 가장 큰 변화는 전례 없는 인구의 급속한 증가였다.) 이러한 인구의 증가에 대한 원인으로는 전쟁의 역사와 그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인간의 면역성은 유전을 통해 급속히 강해지기 때문에 여기에서 원인을 찾을 수도 있으나 무엇보다도 중요요인은 의학기술의 발달이라고 볼 수 있다. 의학기술의 발달은 곧 전쟁의 역사와 연결된다. 전쟁은 근본적인 인간의 욕망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나, 외부적인 것은 확장에 대한 욕망이다. 이러한 욕망은 전쟁기술과 무기의데는 겨우 15년이 걸렸으며, 1980년대 후반에 5억 명으로 늘어나는 데는 12년이 걸렸다.이러한 증가는 지중해 지역보다는 영국과 베네룩스 국가들과 독일 등지에서 두드러졌다. 그러다가 1900년 이후 증가 속도가 줄어들었다. 대체로 유럽등지에서의 인구 증가는 제3세계라 불리우는 제국주의시대의 속국들과 관련되어 생각할 수 있다.) 1500년 이후 400년 동안 유럽이 후진 지역에서 벗어나 세계를 주도함으로써 자연 생태계뿐만 아니라 각 지역간의 관계에도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그들은 팽창되어가는 힘을 이용해, 그리고 인구 증가로 인한 식량문제와 자원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른 열세국가를 침공하는, 소위 제국주의 시대를 열었다.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의 인구성장은 출발은 유럽과 같았지만 결과는 매우 달랐다. 18세기 말에서 19세기까지 인구가 많이 증가했으며, 유럽과 달리 20세기에도 높은 성장률이 계속되었다. 이러한 증가의 유일한 예외는 일본이다.위와같은 인구의 증가는 폭발적인 식량량을 요구하였다. 이에 대한 요구로 1860년대에서 1920년 사이 전 세계적으로 4억 헥타르의 새로운 토지가 농지화했다. 그런데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다. 급속하게 늘어가는 농지와 다르게 세계인구의 50%이상이 가난과 기아에 허덕이는 것이다. 주로 제3세계에서 농작물이 생산되는 데도 말이다. 제국주의 하의 속국들은 자신들의 늘어나는 인구에 대한 식량문제만으로도 심한 곤란을 겪었으나, 그들의 생산량이 본국으로 다량 이송되었기 때문에 그 문제가 더욱 심각했던 것이다. 이는 제3세계 국가의 토지환경을 무너뜨리는 결과를 가져왔다.제국주의의 본국들은 자신들의 필요한 작물을 제3세계에서 조달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노예제와 강제노동을 시켰으며, 대량의 인구를 노동을 위해 이동시켰다. 대규모 플랜테이션을 운영하는 서구 열강의 회사들은 제3세계국가들의 많은 토지에 여러 농작물을 재배함으로해서 과거에 자연친화적인 농업생산은 인위적이고 강제적인 생산으로 많은 환경적인 문제를 야기시켰다. 또한 강제 노동을 수 있는 것이다.이를 가능하게 했던 또 다른 요인은 과학의 발달이다. 운송 수단의 발달과 냉각 기술의 발달은 모든 생산물을 본국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다. 1850년 이후 두 가지 중요한 혁신, 농업의 기계화와 집약화의 도입이, 또한 이를 도와주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진짜 혁명적인 기계화는 내연 엔진과 트랙터의 발명이다. 과거의 말이나 노예에 의해 이루어지던 낮은 생산성의 작업이 기계를 통해 이루어지므로 수확물은 대거 늘어나게 되었다. 이를 더해 토양의 비옥도를 유지하려는 혼합 비료의 발견은 큰 몫을 차지하였다. 이러한 가혹한 토지의 이용으로 토지환경은 심각하게 오염되었다. 질소 비료등으로 인한 토지의 황폐화와 휴년을 가지지 못해 토지의 자생적인 부분을 말살시키는 이러한 행위는 앞으로의 지구역사를 종식시켜가는 원인이 된다.식량의 요구는 식품 가공 산업과 대규모 식량 도매업자들을 탄생시켰다. 그러나 이러한 인공 식품은 많은 환경적인 오염을 가져온다. 자연의 불변의 법칙인 재생산의 원리가 가공식품은 먹히지 않는 것이다. 많은 식품에 대량의 설탕이나 소금, 인공 색소, 감미료, 보존료, 유화제 들이 들어가 있어서 유독성 부작용이 생기는 것이다.또한 효율적인 분배가 되지 않아 부익부 빈익빈현상이 전 세계적인 나타나는 것이다. 제3세계중 가장 피해가 큰 지역은 아프리카로 전 대륙에서 1인당 식량 공급량이 1960년대부터 감소되기 시작했다. 1980년대 후반에는 아프리카 전체에서 수출하는 식량보다 수입하는 식량이 많아졌다. 선진국으로 수출할 상품 작물이 지역 주민이 먹을 식량을 재배해야 할 땅과 비료를 차지해 버림으로써 사정은 더욱 악화되었다. 케냐에서는 영세 농민들을 위한 작품 재배에는 전체 비료의 3%만이 쓰였을 뿐이며, 브라질과 에콰도르에서는 전체 비료의 3분의 2가 상품 작물 재배에 쓰였다.식량의 요구를 충족시키기위한 농지확장의 결과로 세계 모든 곳에서 현대의 농경은 삼림의 개간과 초지의 경작, 경사지에서의 농경 등으로 심한 토양 부식을 일으켰다. 또한 들어가는 강으로부터 물을 돌려 쓰자 호수 물의 10%가 줄어들었다. 20세기를 지나기 전에 사라질 것으로 보고 있다.인구 증가로 인한 현대농업은 여러 업적과 더불어 많은 문제와 환경 파괴를 일으켰다. 전보다 많은 사람을 먹여 살릴 수 있게 되었지만 분배가 더 불공평해졌다. 선진국 대부분의 주민들은 부유하고 잘 먹고 있지만 훨씬 인구가 많은 제3세계 대부분의 국민들은 영양이 부족한 상태다. 세계 곡물 생산량 중 상당량을 선진국의 동물이 먹어치운다.식량 증산을 위한 농지를 늘리기 위해서 취약한 생태계를 파손하거나 생태계에 전보다 더 많은 부담을 주고 있다. 삼림 벌채, 토양 부식, 사막화와 염분화도 이미 상당히 진전되었다. 이러한 문제는 토지의 불균등한 분배로 대다수 사람이 척박한 땅조각에서 목숨을 부지하고 있거나, 아예 땅 없는 노동자의 신세로 전락해 버렸다.인류 역사를 통해 모든 농경 사회가 공통으로 떠안은 과제, 즉 모두에게 충분한 식량을 공급한다는 과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다. 이와 관련하여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농경이란 자연 생태계를 파괴하는 것이었으나 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그것 자체가 파괴적인 요소가 되어 점점 환경을 파괴하면서 그러지 않아도 취약한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다.(117-118p)나. 화석연료의 증가와 공업화인간 사회가 구할 수 있는 에너지원은 사회 활동의 활력과 방향성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200년 전까지만 해도 에너지원은 한정되어 있었고 산출되는 에너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농경과 정착 사회의 등장에 비견할 만하게 중요한 인류 역사의 두 번째 큰 변화는 지구의 막대한 화석 연료의 사용이다.기본적인 인간의 에너지 요구는 두 가지 범주로 나뉜다, 첫 번째는 조명과 열 공급원이고 두 번째는 농사, 건축, 산업이나 이동 등의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기 위한 동력원이다. 지난 2000년 이전까지 인간과 동물은 기계를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동력원이었다. 이를 더해 발달한 것이 수력과 풍력이다.19세기까지 전 세계는 장작을 주연료를 사용하는 데 따르는 기술적인 문제들이 해결된 뒤에도 매우 서서히 개발되었다. 19세기 들어서 석탄 생산량은 급증하였고 세계는 에너지 소비량의 95%를 이에 의존하였다.19세기의 에너지 개발에서 가장 중요한 발전은 연료에서 매우 편리한 2차 에너지인 전기를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수력발전으로 조달하던 전기는 이제 화석 연료를 태우는 화력 발전으로 만들어졌다. 처음에는 석탄, 다음에는 석유 그리고 천연가스를 이용했다.수세기 동안 석유는 지표면에 새어 나온 것을 거두어 선체의 누수를 막는 충전재나 약품으로 사용되었다. 상업적으로 석유를 채취하려 한 시도는 19세기 중반이 되어서야 시작되었다. 초기의 값싼 석유의 공급은 20세기의 지속적인 경제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하였으며, 1970년대에 에너지 소비의 50%를 능가하였다. 또한 세계적인 유전 개발에 따른 가장 중요한 부수적인 현상은 선진국에서 에너지 자원으로서 천연가스의 중요성이 커진 것이다. 그러므로 19세기와 20세기 에너지 역사의 특징은 석탄, 석유, 천연가스 등 재생 불가능한 화석 연료 소비의 급증이다. 새로운 대안은 수력 발전과 원자력 두 가지뿐이다.그러나 이러한 에너지 또한, 제국주의 열강들의 착취와 편재된 관계로 심한 불균형을 자아냈다. 이를 더해 에너지가 유한한 관계로 문제의 양상은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지난 1만년 동안 인간의 에너지 소비 양상은 수렵채취인들의 최소한의 필요로부터 현대 미국의 수준에 이르기까지 엄청나게 변화했다. 에너지를 얻기 위한 방법도 장작을 줍고 인력과 축력을 사용하는 것에서 수력이나 풍력으로 움직이는 단순한 기계가 발명되고, 석탄 광산, 유전 개발, 전기 발전, 원자력 발전에 이르기까지 점점 복잡해져 왔다. 하지만 이 기간 동안 소비에 대한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근시안적인 사고방식으로 에너지가 무한히 있는 것처럼 소비만을 강조해 온 것이다.화력자원의 개발과 공업화를 야기시킨 중요한 원인을 찾는다면 도시의 형성을 들 수 있다.고대의 소수를 이루던 도시인구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