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군사쿠데타제 1 절. 주도세력의 성격과 통치의식 성장과정군장교의 정치의식화에 대한 연구는 군사정권의 대두를 설명하는 데 있어 사회구조적 분석을 보완한다. 특히 한국의 경우 군의 정치화는 군부내 소규모 파벌조직의 통치의식 개발에서 비롯되었으므로 5?16과 12?12를 연구하는데 있어서는 군부 전체의 정치화가 아니라 쿠데타를 주도한 소수의 장교집단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그러면 군장교의 통치의식이란 무엇인가? 이는 군부가 국가통치 및 국가발전에 대한 의무와 능력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는 군장교 간의 믿음이며, 또한 국가 정치과정을 부패하고 무능한 민간인의 손에 맡겨 놓을 수 없다는 그들의 믿음이라 할 수 있다.)(1) 12?12 주도세력12?12 쿠데타를 주도한 전두환등 하나회 세력의 근원은 5?16 쿠데타에까지 닿아 있다. 5?16 쿠데타가 일어난 날 아침, 당시 서울대 문리대 ROTC 교관이던 전두환대위는 육본에 들어가 상황파악을 하는 등 초급장교시절부터 정치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그후 그는 5월 18일의 5?16 지지 육사생도 시가행진을 주도하고 최고회의 민원비서관, 그리고 중앙정보부 인사과장으로 발탁되면서 정치군인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4년제 육사를 처음으로 졸업한 11기생들은 ‘정규육사 1기’라는 자부심으로 가득차 있었다. 이들은 4년간의 학창생활을 통해 강한 동료의식을 형성했으며, 한국 유일의 서구식 대학교육을 받았다는 자부심과 육사가 육군의 사실상 최고교육기관이라는 점에서 강한 엘리트 의식을 갖고 있었다. 특히 이들의 재학 중 이승만대통령이 6차례나 육사를 방문하고 임관 후에는 사단장등으로부터 특별한 대우를 받아 처음부터 정치화될 소지가 많았다. 이들 중 영남출신 일부는 오성회(五星會))니, 칠성회(七星會))니 하는 사조직을 만들고 스스로를 용성(勇星?전두환), 관성(冠星?노태우) 등으로 부르기도 했다. 박정희는 육사생도들의 시가행진이 전두환등 정규육사출신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을 감안하고, 육사 8기생들을 견제할 영남인맥의 형성 필요성에서다. 이들은 또한 수경사?보안사 등 수도권 부대에 집중적으로 배치되어 있어서 정치상황의 변화에 민감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 12?12가 5?16과는 달리 하나회 단일세력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이후 5?17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신속히 통치권을 장악하는 데 유리하게 작용하게 된다.두번째 요인은 외적 안보와 함께 내적 안보를 중시하는 신직업주의적 성향이다.) “정규육사 1기”라는 엘리트의식과 함께 친위세력으로서 통치의식을 성장시켜온 하나회 세력은 정치적 상황으로부터 중립적인 국외자가 되겠다는 의식은 애초부터 갖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활성화 될 재야와 학생의 저항, 정치권의 변화 등을 정치인에게 맡길 의도가 없었다.이는 12?12가 우발적인 사건이 아니라 하나회 세력의 인사불만과 불안, 도당적 이익을 위해 사전에 치밀히 계획된 쿠데타라는 사실로부터 알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세번째 요인이다. 12월 9일 정승화(鄭昇和)육군참모총장이 노재현(盧載鉉)국방장관에게 전두환합수본부장의 교체를 건의하고,) 1980년 3월 실시 예정으로 하나회 장교들의 분산 및 처리 계획을 연구하도록 지시했다)는 정보를 입수한 하나회 세력이 도당적 이익을 위해 먼저 정승화총장등을 제압하고 군부의 헤게모니를 장악한 것이다.)당시 소문으로 나돌던 전두환 합수본부장의 동해안경비사령관으로의 전보계획으로 전두환을 비롯한 정규육사출신 장교들, 특히 하나회 세력들은 위기의식에 젖어 있었다. 12월 10일, 국방차관 김용휴로부터 이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입수한 전두환은 끈끈한 인간관계로 결속돼 있으면서 불안감을 느끼고 있던 하나회세력을 동원, 단시일 내에 12?12를 결행한 것이다. 말하자면 전두환의 경질인사정보는 12?12의 트리거(trigger)역할을 했다. 12월 12일은 장군진급 심사결과가 발표되는 날이라 군내 곳곳에서 승진 축하회식이 벌어질 것이고, 13일엔 새로 출범하는 최규하정부의 개각이 예정되어 있는 일정을 감안하여 12월 12일로 날짜를 잡은 것이다.) 13일로 예정되어 신헌법반대를 억누르기 위한 강압조치였던 대통령 긴급조치 9호가 4년 7개월만에 해제되었다. 10?26 이후 잠시 혼란에 빠졌던 사회분위기는 12월 초에 이르러 범죄 또한 현격히 줄어들고 있었다.) 비록 최규하대통령이 신군부로부터 통수권자로서의 자질을 의심받았고 정계와 언론으로부터 군부의 눈치를 본다는 평가를 받긴 했으나,) 그의 정부는 헌법개정 이후 물러날 한시적 과도정부에 불과했다.5?16 당시와 같은 좌우대립이나 정치적 갈등이 심각하지도 않았다. 사회적 혼란도 별로 없었다. 10?26으로 인한 절대권력의 진공상태가 너무도 갑자기 일어났기 때문에 재야도 학생도 일단 관망하는 태도를 보였다. 11월 24일의 YWCA 위장결혼식 사건도 재야의 “탐색전” 성격이 짙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신군부의 대응은 유신시절의 그것과 다름이 없었다.) 그들은 야심을 실행에 옮길 계기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쿠데타의 촉발요인만 있고 유인요인이 약하면 비록 쿠데타가 발생하더라도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유인요인이 별로 없는 12?12 쿠데타가 왜 성공할 수 있었는가?그것은 군부에 비해 사회세력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한국사회의 구조적 특성 때문이었다. 유신체제하에서 점차 세련되고 복합적인 안보이념으로 무장한 군부는 박정희 死後 권력의 공백기에서 다시 집권할 통치의식과 그것을 실현할 물리력?조직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었다. 이에 반해 학생, 지식인, 노동자 들은 조직화되지 못한 시위와 산발적인 파업 이외에, 권력을 쟁취하거나 유신의 근본구조를 파괴하고 민주화를 이룩할 이념적?조직적?물리적 수단을 결여하고 있었다. 여기에 야당세력의 분열과 중간계급의 냉담함이 반유신세력의 정치적 힘을 더욱 약화시켰다.) 민간부문이 20년 전의 5?16 당시보다는 사회경제적으로 비약적인 성장을 했으나, 군부와의 힘의 격차는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제 2 절 정권장악과정12?12 이후12?12 쿠데타 이후, 소장층의 강경한 신직업주의자들은 노장층의 온전한 구직업주의자들을 제압하고 군을 장악했으며, 하나회 이미 신군부의 통제하에 있었다.5?17 조치를 통해 김종필, 김영삼, 김대중 등 3김세력을 정치와 절연시키고 5?18 광주민중항쟁을 무력으로 진압한 신군부는 5월 21일 새내각을 구성하고 5월 31일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발족시켰다. 비상계엄하에서 행정부와 계엄당국간의 협조체제를 긴밀히 한다는 명목으로 설치된 국보위의 의장은 대통령이 맡았으나 실권은 상임위원회 위원장인 전두환에게 있었다. 5공화국 권력엘리트들의 요람이었던 상임위원회는 업무에 따라 13개의 분과위원회를 두고 운영되었는데 대부분의 분과위원장은 하나회 또는 친하나회 군인이 맡았다. 또 국보위의 임명직 위원 10명 중 9명, 상임위원회의 임명직위원 17명 중 13명이 군인이었다.) 국보위는 5?16 이후 국가재건최고회의에 비교될 수 있는 준군정기관이었다. 그러나 비록 힘은 없었지만 합법적인 민간 정부가 존재하였고, 군은 그 배후에서 정부를 움직이고 정국을 주도했다는 점에서 지배유형은 전적인 간접지배라고 할 수 있다.신군부는 국보위를 설치하여 유신체제하의 공무원을 숙청하고 국보위에서 활용한 기술관료와 제휴하여 신군부중심의 지배연합을 구성했다. 또한 그들은 구정치인의 정치활동을 규제한 가운데 여당인 민정당을 사전조직했는데, 이는 5?16이후 중앙정보부가 공화당을 사전조직한 것과 흡사하다.) 그리고 신군부는 중앙정보부의 궁정동 안가와 보안사령부내에 밀실을 마련하고 국보위 법사위원들을 동원하여 5공화국 헌법을 작성케 했다.)이처럼 전두환의 최고권력자로의 부상과 국보위의 활동으로 인해 국정의 주도권을 상실한 최규하는 1980년 8월 16일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고 8월 22일 전역한 전두환이 9월 1일 대통령에 취임하였다.신군부는 정치사회에 대한 효율적인 장악을 위해 여당인 민정당 뿐 아니라 야당인 민한당과 국민당도 자신들의 뜻대로 구성하였다. 이로써 야당이 정부에 대해 비판과 반대를 행할 가능성은 애초에 없었다. 민정당 또한 3공의 공화당에 비하면 정치적 영향력이 훨씬 작았다. 노태우등 대부분의 쿠데타 주도세시 군은 공식지휘계통과 정보통제계통 등으로 이원화되어 있었으나, 박정희의 친위세력으로서 온갖 특혜를 누려온 하나회 세력이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특히 그들은 진급과 보직에 있어서 특혜를 받았다. 따라서 5?16의 정군파가 군부내 주변인물, 불만세력으로 구성되었다면, 12?12의 하나회는 군부내 핵심세력이었다고 할 수 있다.)② 이와 관련하여 쿠데타의 원인도 5?16은 군내 불만?부정이 중요한 요인이었는데 반해, 12?12는 하나회 세력의 통치의식?집권의지가 더 큰 작용을 했다. 장면정부의 10만 감군계획이 알려지자 인사적체에 불만이던 군부는 신분불안마저 느껴야 했으며, 군의 부정부패 추방과 개혁을 부르짖던 정군파들에 대해 군지도부가 이른바 ‘말썽장교’ 예편계획)을 통해 군에서 추방하려 하자 정군파들은 개혁주의에서 개입주의로 전환하였다. 그러나 하나회는 박정권 全기간을 통하여 특권을 누려 온 군부로서, 기득권을 지키고 유신체제를 수호하기 위해 처음부터 집권 그 자체를 목표로 하였다.③ 5?16의 경우 육사 8기생을 중심으로 한 정군파 외에 경비사 5기, 박정희의 개인적 인맥 등 성격이 다른 여러 집단들이 주도세력을 이루고 있지만, 12?12는 하나회가 유일한 쿠데타 주도세력이었다. 따라서 5?16은 2년 6개월간의 군정기간 동안 반혁명사건등을 통해 주도세력내 숙청을 거쳐야 했고 민정이양의 시기와 참여여부를 둘러싸고 심각한 갈등과 혼선을 빚었다. 군정기간 중 공표된 반혁명사건만 해도 이종태(李鍾泰)대령의 거사 누설사건, 30사단 반혁명사건, 장도영파 반혁명사건, 김동복대령등 예비역 기갑장교 반혁명사건, 김웅수(金雄洙)소장등 제 6군단 반혁명사건, 민족청년단 반혁명사건 , 민주당계 반혁명사건, 二主黨 반혁명사건, 육사 11기 친위쿠데타 음모사건, 박임항(朴林恒)?김동하 등의 쿠데타 음모사건 등 10건이나 되었다.) 이에 비해 하나회 단일세력으로 쿠데타에 성공한 12?12 주도세력들은 집권이라는 뚜렷한 목표의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비교적 단시일 내에 .
1. 5.16군사쿠데타의 발생배경1) 군부내적인 요인한국전쟁 이후 쿠데타 당시까지 진행되었던 군부의 양적 팽창과 질적 향상은 군부의 민간 정치 개입의 구조적 요인을 제공하였다.① 군부는 한국전쟁을 계기로 급속한 양적 팽창을 보였다. 예컨대, 1950년 10만의 병력이 1956년에는 70만으로 증가하여, 불과 6년 내에 무려 7배에 달하는 양적 성장을 기록하였다. 비록 1958년 10만이 감축되어 이후 60만 병력을 유지하였으나, 이는 당시 한국사회의 어느 단일집단보다도 큰 규모의 조직체였다.② 군부의 성장은 양적 팽창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질적 성장을 동반한 것이었다. 미국의 막대한 군사원조 및 교육은 군부의 전술 전략 운용수준뿐만 아니라 조직적 운영능력, 경제 및 정치적 지식, 장기 전략의 기획능력 등을 습득케 하였다.이 같은 군부의 양적 ? 질적 성장은 한국사회 내에서의 군부의 지위와 역할을 자연스럽게 향상시켜, 군의 정치적 진출의 잠재력을 제공하였다. 특히, 남북의 군사적 대결 상황 및 민간사회의 미성숙은 군부의 정치적 잠재력을 더욱 상승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하였다. 왜냐하면, 미성숙한 민간사회에 비해 군부의 급속한 근대화는 군 장교들에게 민간 엘리트에 대한 불신감을 조장하고 군의 통치의식을 부추기기 쉽기 때문이다.하지만, 이러한 구조적 요인의 존재가 항상 군의 민간 정치 개입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군 지휘관들의 구체적 행동동기의 부여가 있는 경우, 이는 구조적 요인과 결합하여 정치개입으로 나타나기 쉽다. 5.16 쿠데타의 주체들은 군 내부적 불만이 그들의 행동동기가 되었다. 이는 이승만과 군 장성들 사이의 후원-피후원 관계를 바탕으로 하는 극심한 부정부패에 대한 불만이었다. 이러한 불만들은 기본적으로 군부 내의 파벌과 연결되어 있었고, 이는 소장 장교들을 중심으로 한 군정화운동이라는 형태로 표출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군 내부의 갈등이 5.16쿠데타 발생의 한 요인으로 작용하였다.2) 군부외적인 요인거시적이며 장기적 측면에서 볼 때, 건국 이후 정치?경제적 파행이 군부 쿠데타의 발생을 유인하는 배경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승만 정권의 부패와 군의 정치적 이용은 일부 소장 장교들의 불만을 야기했고, 이는 박정희를 중심으로 한 일단의 소장 장교들의 쿠데타계획의 모의라는 형태로 발전하고 있었다. 그러나 1960년 5월 8일로 예정되었던 쿠데타 계획은 4.19의 발발로 연기되었다. 그들은 장면정부가 군의 정화와 정치적 안정을 달성해 줄 것을 기대하였으나, 장면 정부의 내부적 분열 및 정책실행 능력의 결여로 사회 정치적 불안은 증폭되었고 침체된 경제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이러한 군부외적상황은 쿠데타 세력에게 군부 정치개입의 명분을 제공하였다. 다시 말하면, ?수입 민주주의의 위기?와 ?원조경제의 모순?이 쿠데타 주체들의 이른바 궁국적 ‘소명의식’을 부추기는 배경으로 작동하였다.미시적이며 단기적 측면에서 볼 때, 장면 정부의 무능력이 군의 정치개입을 용이하게 하였다. 먼저, 장면 정부는 정치적으로 집권세력이 분열?대립에 직면하였고, 사회적으로 좌익적 혁신세력과 우익적 보수 세력간의 갈등 심화로 사회적 불안을 경험하고 있었다. 더욱이 군의 쿠데타를 감지?분쇄하는 능력은 고사하고, 군에 대한 정부의 통제능력이 결여된 상태에서 장면 정부의 10만 감군계획은 군부의 불만을 사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다시 말하며, 장면 정부는 정치?사회?경제적 불안을 해소할 수 있는 능력을 결여하고 있었으며, 이러한 총체적 불안정 상태를 이용한 군의 정치개입을 분쇄할 수 있는 능력조차 지니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2. 5.16군사쿠데타의 전개과정61년 5월 16일 새벽, 2군 부사령관 박정희 소장이 주도한 장교 250여명과 사병3,500여명은 한강을 건너 서울의 주요 기관들을 점령, 국가권력을 장악해 나갔다. 이 주체세력들은 곧바로 「군사혁명위원회」를 조직, 이 위원회가 입법권?사법권?행정권의 3권을 통합?장악한다고 선언하고, 이날 새벽 군사혁명이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군사혁명 위원회는 혁명에 필요한 조치로서 금융동결, 항구와 공항의 폐쇄, 정권의 인수, 의회의 해산, 일체의 정치활동 금지 등을 선포하고, 6개항의 「혁명공약」을 내걸었다.군사혁명 과정에서 이들은 미8군 사령관 C.B.매그루더, 야전군사령관 이한림 등의 반대로 잠시 난관에 부딪히기도 했으나, 미국정부의 신속한 지지표명, 장면내각의 총사퇴, 그리고 윤보선 대통령 의 군사혁명 인정 등에 힘입어 혁명의 합법성을 주장하게 됐다. 이들은 이어 군사혁명위원회를 「국가재건최고회의」로 개칭하고 3년간의 군정통치에 착수했다. 이들은 핵심적인 권력기관으로서 「중앙정보부」를 설치, 이를 통해 관료조직을 장악해 나갔다. 그리고 권력을 제도화하기 위해 중앙정보부를 근간으로 관료, 지식인, 구 민간정치인 등을 흡수, 「민주공화당」을 민정이양 이전에 조직했다. 이와 함께 이들은 새로이 구성될 민간정부를 장악하기 위해 대통령제 복귀와 기본권 제한, 국회에 대한 견제를 골자로 하는 헌법을 개정했다. 결국 5.16 쿠데타는 63년 10?11월 양대선거의 승리를 통해 정당화됐고 제3공화국을 출범시켰다.
내가 찾은 영화 속 명장면은 바로 ‘빠삐용’의 계보를 잇는 명작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아카데미 상 7개 부문의 후보에 오른 감동적인 휴먼드라마인 “The Shawshank Redemption"(쇼생크 탈출) 에 있다. 이 영화에 나오는 모든 장면들이 나에게는 명장면이라고 하면 명장면이라 할 수 있을 만큼 처음부터 끝까지 나에게는 최고의 장면들이고, 머릿속에서 잊혀지지 않는 것들이다. 감독은 Frank Darabont이고, Andy 역에 Tim Robbins, Red 역에 Morgan Freeman 그리고 Norton 역에 Bob Gunton이 연기해주고 있다. 우선 이 영화의 줄거리를 짧게 설명해 보겠다.- 줄 거 리 -젊고 유능한 은행 간부 앤디 듀프레인은 아내와 아내의 정부를 살해한 죄목으로 종신형을 언도받고 쇼생크 교도소에 수감된다. 한편 레드는 교도소 내에 물건들을 밀반입해 주며 이익을 챙기는 종신형 복역수로서 앤디가 그에게 돌을 조각하는 망치와 리타 헤이워드의 포스터를 구해줄 것을 부탁하면서 가까운 사이가 된다. 인간성을 마멸시키고 자유 의지를 없애는 감옥 생활의 야만성에 직면한 앤디는 나름의 방법으로 생존의 길을 모색하는데, 자신의 전공을 살려 악질 간수장 해들리의 세금 문제를 해결해 주는 등 재정자문을 해주는 방법이 그것이었다. 이후 앤디는 교도소장 노튼의 특별 배려로 편한 자리에 배치되며 전문적으로 간수들의 재정 자문을 해주고 뇌물 등 교도소장의 검은 돈을 세탁해주면서 그 대가로 교도소 내의 도서관을 확충하고 죄수들 교육을 실시하는 등 감옥 내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노력한다. 19년이 지난 어느 날 앤디는 좀도둑 토미를 통해 아내와 아내의 정부 살해범이 다른 교도소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교도소장에게 이 사실을 알리며 다시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조처해 주기를 요구한다. 그러나 앤디가 계속 자신의 돈세탁을 해주기를 바라는 비열한 노튼은 증인인 토미를 교모하게 살해하며 앤디를 독방에 감금한다. 이에 분노와 절망에 빠진 앤디는 19년 전부터 준비해끼게 해준다. walk leisurely....내가 뽑은 두 번째 명장면은, 앤디가 간수장 해들리의 세금 문제를 해결해주게 되는데, 그에 대한 보답으로 동료들과 함께 옥상에서 맥주를 마시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이때 맥주를 마시는 동료들을 그저 편안한 미소와 함께 앉아서 바라만 보는 앤디의 모습과, 그리고 레드의 독백장면이다.RED (V.O.)And that's how it came to pass, that on the second-to-last day of the job, the convict crew that tarred the plate factory roof in the spring of '49, wound up sitting in a row at ten o'clock in the morning, drinking icy cold Black Label beer courtesy of the hardest screw that ever walked a turn at Shawshank State Prison.HADLEYDrink up, boys. While it's cold.RED (V.O.)The colossal prick even managed to sound magnanimous. We sat and drank with the sun on our shoulders, and felt like free men. We could have been tarring the roof of one of our own houses. We were the Lords of all Creation. He glances over to Andy squatting apart from the others. As for Andy, he spent that break hunkered in the shade, a strange little smile on his face, watching us drink his beer.HEYWOODHere's a cold one, AndyANDYNo tha 있겠다. 우리에게는 맥주 한 병 마시는 것이 큰일이 아닐지 모르지만, 그들에게 있어서의 맥주 한 병을 마신 것이 그 얼마나 값진 것인지를 느끼게끔 해주는 최고의 문장인 듯 싶다. 맥주 한 병을 걸치는 것이 인간이 된 것 같다고 느끼는 Red의 독백은 가슴을 찡하게 해준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그늘에 앉아서 바라보는 Andy의 모습은 짧은 시간에 최고의 자유를 만끽하는 사람으로 보인다. normal 이라는 단순하고, 평범하게만 생각했던 단어가 최고의 단어가 될 수 있음을 확고히 느끼게 해주었다.세 번째 명장면은, 감옥소에서 50년 동안 보낸 Brooks가 출감한 후 세상에 나와 살면서 겪는 장면과 결국 자살한 그의 소식을 들은 Red의 대사는 찐한 감동과 함께 큰 교훈하나를 던져준다.ANDYI just don't understand what happened in there, that's all.HEYWOODOld man's crazy as a rat in a tin shithouse, is what.REDOh, Heywood. That's enough out of you.ZIGHeard he had you shitting in your pants.HEYWOODFuck you!REDWould you knock it off? Brooks ain't no bug. He's just... just institutionalized.HEYWOODInstitutionalized, my ass.REDMan's been here fifty years. This place is all he knows. In here, he's an important man, an educated man. A librarian. Out there, he's nothing but a used-up old conwith arthritis in both hands. Couldn't even get a library card if he applied. You seewhat I'm saying?FLOYDchair. It wobbles queasily. Now facingthe beam, he carves a message into the wood: "Brooks Hatlenwas here." He smiles with a sort of inner peace.BROOKS (V.O.)I doubt they'll kick up any fuss. Not for an old crook like me.ANDYP.S. Tell Heywood I'm sorry I put a knife to his throat. No hard feelings.REDHe should'a died in here, goddamn it.Andy : 나는 도대체 왜 그런 일이 생겼는지를 이해할 수가 없군요.Heywood : 노친네가 양철집에 갇힌 쥐새끼처럼 발광을 한 거지 뭐. 그 뿐이라고.Red : 이봐, Heywood. 이제 그만 하게나.Zig : 영감 때문에 무서워서 바지에 똥쐈다던데.Heywood : 닥쳐!Red : 그만 좀 하게. Brooks는 미치광이가 아니야. 그는 다만... 다만 이곳에 길들여졌을 뿐이야.Heywood : 길들여졌다구? 헛소리.Red : Brooks는 이곳에서 50년 동안 살았다네, Heywood. 50년 동안. 그가 아는 것이라곤 이곳 밖에 없어. 이곳에서 그는 중요한 사람이고 교육받은 사람이지. 그러나 바깥 세상에서는 무가치한 존재야. 양손에 관절염이나 지닌 늙은 전과자일 뿐이라고. 아마 바깥 세상에서는 그가 얻고 시어도 도서관 카드 하나 얻지 못할걸. 무슨 말인지 알겠나?Floyd : Red, 난 자네가 말도 안되는 소리를 내키는 대로 지껄이고 있다고 생각하네.Red : 생각이야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하지만 내가 말하려는 것은 이 담벽이 아주 이상하다는 거야. 처음에 우리는 이 담벽을 증오하지만 다음에는 익숙해져 버리지. 세월이 많이 흐르면 우리는 이것들에 의존하게 되고 그것이 바로 길들여지는 거라네.Zig : 제길. 난 절대로 그렇게 되지 않을 거야.Floydh, you get so you depend on 'em.”라고 설명해준다. 이단어가 갖고 있는 의미는, 그이상 그이하도 아닌 정말 Red가 설명한 그대로의 뜻이라 생각된다. used-up은 exhausted of usefulness 즉, 쓸모없어진...을 의미한다.네 번째 명장면은, Andy가 전축판을 하나 발견하고, 간수를 화장실에 가두고 감옥 마당으로 그 전축판 음악을 방송하는 장면이다. 이때 Red의 독백이다.RED (V.O)I have no idea to this day what those two Italian ladies were singing about. Truth is, I don't wanna know. Somethings are best left unsaid. I like to think they were singing about something so beautiful, it can't be expressed in words, and it makes your heart ache because of it. I tell you those voices soared higher and farther than anybody in a Great Place dares to dream. It was like some beautiful bird flapped into our drab little cage and made those walls dissolve away. And for the briefest of moments, every last man at Shawshank felt free. It pissed the warden off something awful.Red : (독백) 그 두 명의 이태리 여성들이 무엇을 노래하고 있었는지를 나는 아직까지도 모른다. 사실을 말하자면 알고 싶지도 않다. 어떤 것은 말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 가장 좋은 법이다. 아마도 그들은 어떤 아름다운 것을, 말로는 표현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어떤 것을 노래 부르y.
우리나라 기업경영의 특징과 문제점Ⅰ. 서론불과 몇 년 전에 대기업 및 기업들의 부도는 환율급등과 주가폭락을 초래하였고, 이로 인한 금융시장의 불안정과 경제위기는 결국 우리나라가 IMF(International Monetary Fond)의 구조 자금까지 손을 벌리도록 만들고 말았다. IMF는 그 지원 조건 중 하나로 우리나라 기업체제의 많은 변화를 요구하였었다. 이는 우리나라 경제 전체에 위기를 맞이한 때였다. 전문가들은 경제위기를 대체적으로 우리나라 기업의 비효율성에서 찾고 있고, 따라서 우리 경제의 회생을 위해선 기업체제는 변화되어야만 한다고 주장되어온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나라 기업경영의 특징이란 무엇인지를 현대 우리나라 기업의 절대 주류라 할 수 있는 대기업을 중심으로 알아보려한다.우리나라 기업경영의 특징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다. 우선 첫째, 거의 대부분의 기업들이 전문경영체제가 아닌 소유(owner)경영체제라는 것이다. 둘째, 기업경영인과 정치인이 결탁하는 이른바 정경유착을 비롯한 부정부패를 들 수 있겠고, 셋째, 대기업들이 무분별한 다각화를 꿈꾸고 있다는 것을 들 수 있겠다. 넷째, 과다한 차입경영으로 어려움을 맞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처럼 재벌체제, 정경유착, 특혜, 부동산투기, 폐쇄적이며 집단적 소유, 문어발식 확장 등 우리 경제발전과 관련하여 부수된 문제들이 모두 관련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현대 우리나라 기업의 성장과정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더불어, 다른 한편으로는 수출증진, 산업구조의 고도화, 첨단산업의 발전 등 기여한 공로를 높이 평가하는 긍정적인 인식도 있다. 이와같이 우리나라의 기업의 문제를 한 단면으로만 바라보는 것은 옳지 않다 할 것이다.Ⅱ. 본론1. 기업의 특징기업이란 무엇일까? 기업은 다른 사람의 소비를 위하여 재화 및 용역을 생산, 공급하는, 즉 영리 목적을 실현하기 위하여 경영활동을 계속 하는 실체로서의 생산경제단위체인 것이다. 이와 같이 기업은 소요 자본을 투입하여 생산 활동을 전개함으로써 이윤을 실현하려뿐만 아니라 건설업, 도ㆍ소매업, 숙박업, 운송ㆍ창고업, 부동산업, 무역업, 금융업, 보험업, 레저산업 및 최근에는 유통업까지 경제활동의 전분야에 걸쳐 폭 넓게 참여하고 있다.다섯째, 한국에는 금융대기업이 발달하지 못했다. 즉, 외국에서는 금융업을 중심으로 기업집단이 형성되어 왔으나 한국에 있어서 기업은 지방은행이나 제2금융권에 진출해 왔으나 일반 시중은행을 지배하는 금융대기업은 형성하지 못하였다. 그것은 아마도 금융의 국가소유가 강했던 국가정책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IMF이후로 대기업의 은행소유가 허용됨에 따라 금융소유가 가능해지고 있으며, 거대 은행이 계속 형성될 것으로 보인다.여섯째, 한국에서는 지주회사가 없고 일본과 같이 가산개념이 강하지 않으며, 기업이 상속에 의해 분해ㆍ축소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까지 기업들의 상속과정에서 장남우위의 전통적 관습이 이어와 일반적으로 크게 분해되거나 축소되지 않았으나 한국의 상속법과 사회적인 인식이 최근 급속하게 변화되어 앞으로는 분할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에서 기업들의 소유집중이 매우 강한 이유중의 하나는 바로 급속한 경제성장에 의해 대기업이 분할될 기회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재벌 1세의 은퇴와 2세 경영체제의 도입은 기업들의 분할을 가속화 할 가능성이 크다.2. 우리나라 기업경영의 특징(1) 소유집중소유의 집중은 기업 활동에서 목표설정과 성과배분을 왜곡하는 요인이 된다. 우선 기업은 그 소유가 소유주 개인이나 가족에게 집중되어 있어서 기업 활동의 목표를 설정하는 데에도 기업자체의 유지, 발전을 위한 것보다는 소유주 개인이나 그 가족의 재산증식을 중시하는 경향을 나타내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기업들은 기술발전이나 원가절감을 통해 국제경쟁력을 향상시키고 소비자의 복지를 증진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으면서 부동산 투기나 재테크 등을 통해 단기적인 수익을 얻으려고 노력하는 경향이 있다. 소유 집중은 또 기업의 경영에서 얻은 성과의 배분을 왜곡해서 빈부의 격차를 더욱 심화시킨다. 기업은 경영성과를 배분하는데도 연구개발을고 있으므로 국가에 봉사하고 있는 것이며, 많은 사람에게 일자리를 제공하였으니 사회에 큰 기여를 한 것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이에 반해 국민 일반의 인식은 기업이 국가와 사회가 전체적인 경제발전 구도 속에서 자본집중의 필요가 있어 만들어 낸 하나의 공동조직체로 인식하고 있다. 따라서 기업운용은 기업주 자의에 의해서 운영되어서는 안 되며, 사회성, 공공성 등을 기준으로 운영되어야 하고 기업종사자의 의사가 충분히 반영되어야 한다고 인식하였다. 이러한 엄청난 기업관의 차이로 인하여 갈등을 심화시켜 노사분쟁을 통해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3) 정경유착우리나라 기업과 관련하여 가장 많이 거론되는 부정적 평가는 이른바 정경유착 문제이다. 정경유착이란 문자 그대로 서로 떨어져 있어야 할 정치권력과 기업이 부도덕한 방법으로 밀착되어 있는 것을 의미한다. 즉, 기업은 법이 허용하는 공정한 경쟁규칙에 따라 자유시장 속에서 이윤추구를 해야 하며 정치권력의 비호와 특혜와 같은 공정성을 저해하는 변칙으로 사업을 해서는 안 되는데에도 불구하고 정치권력과 결탁하여 정치자금과 특혜를 거래하는 현상을 말한다.정경유착의 문제가 사회적으로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5.16 군사반란 이후부터라고 할 수 있다. 당시 군사정부는 자신들의 비호 속에 새로운 기업의 생성,성장,지배가 이루어지도록 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1980년대 들어 심화되어 전혀 존재하지도 않았던 기업이 정치권력의 비호로 하루아침에 대기업 혹은 재벌로 부각된 예가 많아지면서 정치문제로 발전되었다. 이러한 정경유착은 다음과 같은 측면에서 문제를 심화시켰다.첫째, 정치권력에 의한 경제질서의 파괴이다. 정치권력의 간섭으로 경제내의 공정질서가 무너지고 선의의 경쟁체제가 깨어져서 특혜받은 소수기업 이외의 기업인의 의욕을 감퇴시키는 질서교란 문제가 심각한 정경유착의 효과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불공정 특혜는 기업의 윤리성 파괴, 법질서에 대한 공신력 저하 및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저하 등을 수반하게 된다.둘째, 정치권력 부패의 원인이 된 현상은 기업에 대한 사회적 윤리의식을 약화시킬 뿐만 아니라 재벌자체를 사조직화한 집단으로 범죄시, 거부시하는 현상을 야기시키고 있다.(5) 1인지배대기업은 총수가 소유를 기초로하여 총괄적으로 관리,운영하기 때문에 그 조직은 관료화되고 경영방식은 비합리적인 경향을 나타내게 된다. 기업의 경영조직은 소유주 개인이나 그 가족을 정점으로 하는 피라미드형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모든 정치,경제적인 정보가 피라미드의 정점으로 모인다. 따라서 의사결정이 관계자들의 합의에 따라 민주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소유주 개인의 권위주의적이고 자의적인 판단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총수라고 하는 한 개인을 정점으로 그 가족이 수많은 기업들에 대해 소유권을 장악한 후 이를 발판으로 이들에 대해 경영권까지 행사하면서 이 기업들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게 되는 배타적 기업군이다총수 1인에 의한 비합리적인 경영은 부동산 투기, 과소비, 환경오염 및 소비자 피해 등과 같은 사회문제를 야기시켜서 기업의 사회적인 이미지를 손상시키는 주요 요인이 되고 있다. 한국기업은 대부분 1인지배하에 있다. 따라서 기업은 1인의 왕국이며, 그 왕국은 권위주의적 지배 내지 절대 주권의 지배와 같이 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따라서 기업의 조직 및 인사관리 방식은 후진 절대주의적 지배관행이 일반화되었다. 따라서 이러한 기업에서 1인지배 현상은 다른 나라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형태의 기업경영 방식으로 결정적인 의사결정시 주주들의 의사결정 이전에 정책결정의 방향을 미리 제시해 줌으로써 업무처리의 신속성을 주기도 하지만 독선적 기업경영으로 인하여 기업의 주주들의 의사에 반하는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빈번하게 된다.3. 우리나라 기업의 문제점기업의 빠른 성장은 한국 산업화와 경제발전의 주된 부분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급격한 확장은 또한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와 잠재적인 문제점들을 유발시켰다. 예를 들어서 기업집단의 형태는 기업내부에서 비효율성, 기업외부에서 각 부문간의 왜곡, 전반적인 경제발전 형태에 대한 정치경제은 부채가 상당히 많다. 제조업 평균 자기자본대비 부채비율은 대략 4배이다. 기업의 규모가 클수록 외부금융의 확대로 인해 이 비율은 더욱 높아진다. 높은 부채비율은 금융위험을 증가시키고 경기변동의 충격을 확대한다. 그들의 취약한 재무구조와 함께 기업의 지나친 규모의 확대는 한국 경제에 전반적인 위험을 증가시키고 금융재원의 배분적 효율성을 감소시킨다.만약 한국에서 어느 기업이 난관에 처한다면 그 기업의 규모가 너무 크다면 도산할 경우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면 도산시킬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정부는 대기업을 암묵적이거나 명시적으로 그들의 신용을 보장한다. 많은 경우에 정부는 난관에 처한 기업에게 특혜대출이나 조세감면을 제공해서 구제했다. 이것은 보다 생산적인 다른 기업에 사용할 수 있는 금융자원을 감소시키고 자원배분의 전반적 효율성을 저하시키게 된다.한국에서의 기업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는 일반적으로 소유권의 집중과 지나친 성장이라는 일반의식뿐만 아니라 기업 간 경제적 기회의 불평등에서도 기인한다. 소유권의 집중이 모든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사실로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이것이 한국에서 비판적인 문제로 떠올랐던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아직까지 일반대중의 눈에 그들의 자본축적과정 자체가 완전히 정당화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일반대중들은 기업들이 국내외 대출, 정부의 비호를 통해 소비자와 다른 중소업체들의 희생을 대가로 독점이윤을 축적했다고 믿고 있다. 그리고 기업이 그들의 이윤을 부동산과 같은 비생산적인 부문에 투자하고 사적 이익을 증진시키기 위해 정부의 정책에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4. 현대 우리나라의 기업문제의 해결방안(1) 경쟁촉진종종 기업 비판의 대상인 기업활동의 다각화는 최소한 부분적으로 이윤추구와 위험분산 동기의 자연스런 표출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므로 기업에 대한 정부의 정책은 비효율적이거나 비경쟁적인 다각화를 억제하는 것과 선의의 기업가 정신을 인정하는 것 사이에서 잘 조정되어야 한.
개요혼례는 혼인 당사자는 물론 주변 사람들에게도 큰 의미를 갖는다. 혼례를 치름으로서 새로운 가족이 형성되고 가족은 또 하나의 새로운 생활 공동체를 만드는 단위가 된다. 따라서 혼례는 당사자 개인의 낭만적인 행사가 아니고 사회구조를 계승하고 문화를 전승하는 현상이며 경제활동의 기본단위를 이루는 절차이다.Ⅰ. 결혼의 의미1) 경제적 의미가족(가구)은 경제적 복리의 최소 단위이다. 즉 남편 혹은 부인 개개인의 개인적 수입으로서 물질적 풍요의 정도가 개인적으로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가족 구성원 모두가 함께 벌어 온 돈을 함께 쓰면서 물질적 생활을 유지한다. A씨가 잘사는 것이 아니라 A씨의 가족이 잘사는 것이며, A가 잘살면 당연히 A씨의 부인은 잘사는 것으로 되고 그 자녀들도 잘사는 것으로 된다. 여성이 경제력 있는 남편을 잘 만나야 한다는 말은 여기에 연유한다.그러나 과거 남성 가장이 단독으로 벌어 가족을 부양한다는 가치관이 깨어지고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가 활발해지면서 (현재 30-40대 주부의 거의 50%가 경제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남녀 공히 가족의 경제활동을 책임지는 맞벌이 부부의 가치관이 등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남편이 경제력이 있다고 하여 여자가 팔자를 고치는 것이 아니라, 여자도 자신의 경제적 활동 능력을 갖추는 것이 바람직하며 남편은 돈을 잘 버는데 부인은 돈을 벌어 오지 못하면 여성이 남성과 동일한 의미에서 마음 편하게 잘 살 수 없으며, 결혼이란 여성의 '평생 직장'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이 지배적으로 되어 가고 있다.2) 교육 및 사회화 기능가족은 다음 세대로서 자녀를 낳고 부양하고 이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가리키고 사람이 되도록 사회화시키는 기능을 한다. 학교의 역할이 커지면서 가족의 사회화 기능은 약화되고 있으나, 여전히 가정 교육의 중요성은 적지 않다. 가족에서 문제가 발생할 경우 학교 교육을 아무리 잘 받아도 건전한 사회인으로 성장하는 것은 어려우며, 거꾸로 많은 사회문제가 궁극적으로 가족 문제로부터 연유한다. 즉 가정이 잘 되면 사. 이러한 남편과 부인 사이에 정서적 만족에 대한 불일치가 계속 누적될 경우 결국 '황혼 이혼'에까지도 도달할 수 있다.즉 가족이라고 하여 부부간의 관계의 질이 동일한 것은 아니며, 단지 실용적인 편의 때문에 함께 살고 있을 뿐 정서적으로는 깊이 있는 관계를 맺지 못하고 있는 경우도 많다. 가족 연구가들은 이러한 문제를 예방하기 위하여 부부간의 원활한 의사 소통을 유지함으로서 상호간 인식의 격차를 좁히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한편 여성 주의자들은 전통적인 부부상인 '가장과 이에 종속된 부인'의 관계에서는 이러한 원활한 의사 소통과 인식의 합일이 이루어지기 힘들다고 주장한다. 부부간에 상호 역할의 존중과 권위의 균등한 배분이 유지되는 '동반자 관계'를 통해서만 정서적으로 친밀하며 깊이 있는 관계가 성립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동반자 관계' 가 유지되기 위하여서는 가사에 대한 분담 및 경제활동에 대한 분담과 같이 부부간에 실제적으로 동반 자적 활동이 이루어져야 가능하다고 한다. 부인이 경제적으로 완전히 남편에게 종속되어 있고 남편은 집에 들어와 조금도 가사에 참여하지 않는 전통적인 가부장 제도의 틀에서는 정서적으로 '동반자 관계'가 유지되기 힘들며, 어느 정도의 부부간 정서적 괴리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5) 계층적 지위의 계승마지막으로 가족의 중요한 기능 중의 하나는 부모 세대의 계층적 지위를 자식에게 물려주는 기능이다. 재산으로 물려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교육 기회 및 직업 기회와 문화적 환경에서 가족을 통하여 세대간에 계층적 지위를 대물림하는 것이다. 현대 산업 사회로 들어오면서 가족의 재산의 역할은 상대적으로 줄어들었지만 교육이나 직업 기회의 차등이나 문화적 환경에서의 차등으로 인한 계층 지위의 세습 현상은 여전히 존재한다. 극단적인 경우로 빈곤의 세습화는 여전히 두드러진 현상이다. 여성이 좋은 가문의 남편 감을 구하는 가장 큰 이유도 바로 이러한 가족의 계층적 지위 계승 기능 때문이다. 좋은 가문의 좋은 교4.0320.1306.6이혼건수/천건45.753.568.3118.0120.0135.0145.3-2002년 총 혼인건수는 306600건(쌍)으로 2001년 320100건 보다 13500건 (4.2%)감소한 것으로 나타남 총 이혼건수는 145,300건(쌍)으로 2001년 135,000건에 비하여 10,300건 (7.6%)증가하였음1일 평균 840쌍인 혼인하고 398쌍이 이혼한다. 최근 이혼율이 증가하는 이유로 자기중심적인 삶의 지향등 가치관의 변화와 부부간의 성격차이, 가족간의 불화등에 의한 것으로 풀이된다.(그림-1)(평균 초혼 연령)(표-4) 남녀 초혼연령(단위: 세)19901992199519*************2남 자27.828.128.429.129.329.629.8여 자24.825.025.426.326.526.827.0여자의 20대에서는 혼인이 감소하고 30대의 혼인이 증가하며 평균적으로 남자29.0세, 여자 27.0세로 10년전(92)에 비해 남자1.7세, 여자2.0세 늘어났다.나. 초혼부부 연령차초혼부부의 연령차를 보면 남자연상이 74.1%로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나 감소 추세이고,동갑(14.3%)과 여자연상(11.6%) 비율은 92년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임(표-5) 초혼부부의 연령차19901992199519*************2계*100.0100.0100.0100.0100.0100.0100.0남자연상82.282.481.077.676.575.074.1동 갑9.19.110.312.412.813.714.3여자연상8.88.68.710.110.711.311.6다. 종류별 혼인초혼은 줄고 재혼은 느는 추세2002년 전체 혼인 중 재혼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속적으로 높아져 여자의 경우 10년전(92년)에 비해 2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남(표-6)시대별 초혼율과 재혼율19901992199519*************2계*100.0100.0100.0100.0100.0100.0100.0남자초혼91.691.489.386.986.785.084.3재혼8화하고있는데 연애결혼이 증가함에 따라 배우자 선택의 기준들도 개인의 취향과 의사가 잘 반영되고 있으며 또 경제적인 관점으로 살펴보면 시대가 변화함에 따라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늘어나게 되었으며, 결혼 부부들의 자녀수가 점점 감소하고 있다. 남녀의 혼인 연령이 높아지는데 따른 여성의 출산력 약화, 자녀출산과 양육에 드는 경제적 심리적, 신체적 부담 대한 두려움과 자녀보다 자신의 인생에 대해 높은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배우자선택에 있어 직업의 유무가 많은 영향이 따른다3. 달라진 결혼관에 관한 사례사례1 (재혼)-[속보, 사설/칼럼] 2003년 03월 23일 (일) 22:48여성의 결혼 중 재혼이 차지하는 비율은 남성보다 높지만, 재혼을 할 때 전 혼자녀를 데리고 결혼하는 비율은 여전히 남성보다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에 따르면, 총 혼인에 대한 재혼의 비율이 남성의 경우 1990년 8.4%에서2001년 14.7%로 늘어난데 반해, 여성의 재혼율은 1990년 7.1%에서 2001년 16.4%로2배 이상 증가했다.한편, 상명대 정현숙 교수(가족복지학)가 지난해 8월부터10월말까지 한국가정법률상담소를 찾은 재혼 남녀 179명을 설문조사한 결과,여성이 전혼자녀와 함께 사는 경우는 43.5%인데 반해, 그렇지 않는 경우는55.8%였다. 반면, 남성은 전혼자녀와 함께 사는 경우가 61%인데 반해 그렇지 않는경우는 39%였다. 이에 대해 정 교수는 재혼 때 남성의 전혼자녀는 재혼가정의가족 구성원으로 비교적 쉽게 인정받는 반면, 여성의 전혼자녀는 그렇지 못함을드러내는 결과 라고 지적했다.-[COVER STORY]이혼도 당당, 재혼도 당당사회적 터부 희석되면서 재혼율 급증... 여전히 자녀 문제가 걸림돌결혼의 법칙이 깨지고 있다. 조기이혼이나 황혼이혼이 크게 늘면서 ' 일생에 한 번'이라는 결혼의 법칙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 것이 다. 더구나 그동안 재혼을 금기시하고 재혼 남녀를 색안경을 끼고 바 라보던 사회 풍토가 어느 정도 사라지면서 이제 재혼은 초혼만큼 당 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10명 중 6명이 "자녀가 있는 재혼 여성은 피하고 싶다 "고 밝혔다. 특히 상속과 호적이 문제가 되는 아들이 있는 경우 '기 피 대상 1호'가 되어 우리 사회의 남성 중심적 사고의 또 다른 단면을 나타내주고 있다.재혼에 대한 자녀의 반응도 문제다. 듀오의 조사에 따르면 어머니의 재혼에 대해 아들은 40.8%가 찬성, 49.3%가 반대를 표명한 반면 딸 의 경우는 60.6%가 찬성 입장을 보여 아들과는 대조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아들이 어머니의 재혼을 반대하는 이유로는 "가족간 불화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을 1위로 꼽았고 "주변의 부정적 시선이 부담스럽다"를 두 번째 이유로 들었다.사례2-이혼혼인율 70년이후 사상최저이혼율이 크게 늘고 이혼연령도 높아지고 있다. 혼인율은 지난 70년 이후 사상최저수준을 보이고 있으며 재혼은 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통계청이 21일 내놓은 `2001년 혼인.이혼 통계결과'에 따르면 작년 연간 이혼건수는 13만5천건으로 2000년에 비해 1만5천건이 늘었으며 하루 평균 370쌍이 이혼한 것으로 나타났다.인구 1천명당 이혼건수를 보여주는 조이혼율은 95년 1.5건에서 98년 2.5건으로 대폭 상승한 뒤 2000년까지 같은 수준을 유지하다 지난해 2.8건으로 크게 늘었다. 반면, 혼인건수는 32만건으로 전년보다 1만4천건이 감소하며 하루 평균 877쌍이 결혼한 것으로 집계됐다. 인구 1천명당 결혼건수인 조혼인율은 6.7건으로 지난 70년 이후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평균 초혼연령은 남자 29.6세, 여자 26.8세로 90년에 비해 남자는 1.8세, 여자는 2.0세가 늘었다. 평균 재혼연령은 남자 42.1세, 여자 37.6세였다. 평균 이혼연령은 남자 40.2세, 여자 36.7세로 90년에 비해 남자는 3.4세, 여자는 4.0세 늘었다. 이혼연령 증가는 15년이상 장기동거부부의 이혼이 늘고 혼인연령이 높아진 탓으로 분석됐다. 전체 혼인중 재혼비중은 여자의 경우 90년 7.1%에서 작년 16.4%로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