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서론매스컴인으로써 머독이란 사람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듯 하다. 머독은 미국의 유명 스포츠 주간지인 가 선정한 스포츠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 가운데, 94, 95년에 이어 98년에도 1위를 차지했다. 다른 언론분야에서도 상위권에 랭크 되어있다. 이건 무엇을 말하는가? 그만큼 머독이란 인물의 영향력은 크다.지금으로부터 2년여 전 김대중 정부가 출범하기 직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세계적 미디어 복합기업 뉴스 코퍼레이션의 루퍼트 머독 회장이 서울에 와 당시 대통령 당선자를 만난 데 이어 데이콤과 위성방송 합작사업 계획을 전격 발표함으로써 국내 방송계에 큰 충격과 파문을 불러일으킨 사실을 우리는 기억한다.더욱이 국내 위성방송 사업의 근거가 될 통합방송법도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머독의 한국진출 발표는 갑작스레 초국적 자본의 위성방송 시장 진출을 둘러싼 뜨거운 논쟁으로 비화됐고 한동안 언론의 떠들썩한 보도와 급조된 세미나의 주요 이슈로 등장했다.아무튼 한바탕 소동을 치른 후 머독-데이콤의 위성방송 합작사업은 무산되는 것으로 알려졌고 그후 통합방송법의 제정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지체를 거듭하면서 우여곡절 끝에 졸속 입법화되고 말았다.그러나 이 땅의 방송법제가 바뀔 때마다 겪게 되는 그 기구한 파행의 반복은 또 다시 머독의 한국 진출 문제를 우리 방송계의 논쟁적 이슈로 만들고 있다.그 동안 공격적 사업추진 방식과 지나친 상업주의적 경영 행태로 자주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는 머독의 미디어관을 비판적 시각에서 분석해 보고자 한다.2. 본론1)한국에 소개된 머독미디어 거대기업의 글로벌 시장 지배력이 급격히 강화되면서 루퍼트 머독의 이름은 단순히 한 미디어 재벌 총수를 지칭하는 고유명사 이상의 함의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방송계와 학계 일부를 제외하곤 머독의 미디어관과 저널리즘 철학 그리고 그가 구축해 놓은 미디어 제국에 대한 실체적, 더 나아가 비판적 이해는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방송관련 직능단체와 시민 노동단체 대표들이 주축이 관한 다큐멘터리를 긴급 입수해 방영한 적이 있는데 비록 케이블TV 시청가구가 제한돼 있긴 하지만 일반 국민과 시청자를 대상으로 머독을 보는 비판적 안목을 처음으로 제시했다는 점에 각별한 의미가 있었다.이 프로그램은 Who's Afraid of Rupert Murdoch?'이라는 제목으로 미국의 공영방송 PBS가 지난 1995년 11월 권위있는 다큐멘터리 시리즈인 의 한 에피소드로 방영했던 것이다. 프로그램의 취재와 진행을 담당한 Ken Auletta는 92년부터 《New Yorker》지에서 미디어 비평을 맡아 왔던 칼럼니스트로 미디어 정치경제에 예리한 안목과 식견이 있는 저명한 프리랜서 저널리스트다.미국에서 방영될 때 고급 시청자층에 큰 방향을 불러일으킨 이 프로그램은 머독의 유년기와 대학시절에서부터 미디어 사업가로 전 세계를 누비던 1990년대 중반까지 그의 삶과 사고방식 그리고 비즈니스 스타일을 깊이있게 분석해내고 있다.특히 머독이 영국의《The Times》지를 인수한 후 신문사의 공무직 노조와 일대 격전을 벌인 이른바 Wapping' 사태의 전말이라든가 머독의 각종 미디어가 쏟아내는 선정주의, 권언유착 등의 사례를 매우 소구력 있는 영상언어로 표현한 것이 인상적이다.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프로그램의 나레이터인 Ken Auletta가 요청한 인터뷰를 거절하면서 머독은 공영방송 PBS를 불신하기 때문 이라고 밝혔다는 대목이다. 공영방송에 대한 머독의 혐오는 대처 정권과 BBC가 일련의 정치적 갈등을 겪고 있을 때 《The Times》와 《The Sun》지를 동원하여 BBC 죽이기 에 나선 사례에서 단적으로 드러난 바 있다. 1985년 1월 14일부터 3일간 연속 게재된 《The Times》지의 3부작 사설은 BBC는 어디로 가는가? (Whither the BBC?) 라는 제목으로 당시 수신료 인상 논쟁과정에서 영국 우파진영의 이데올로기를 대변했다.2) 머독의 미디어관지난 해 말을 기준으로 뉴스 코퍼레이션의 자산 총액은 미화 392억2천만 달러로 평가되고 있다를 가족 소유로 인수하여 경영에 나섰다. 이것이 오늘의 세계적 미디어 기업 뉴스 코퍼레이션의 모태가 된 것이다.당시 뉴스 리미티드의 유일한 자산은 《The News》라는 호주 남부의 조그만 석간신문 하나 뿐이었다. 여기서 뻗어 나온 뉴스 코퍼레이션은 오늘날 전세계를 대상으로 △영화 및 TV프로그램 등 영상물의 제작과 배급, △지상파 TV, 위성, 케이블 등의 방송, △신문, 잡지, 도서 등 인쇄 매체 출판 발행, △디지털 방송기술 개발, △유료가입제 관리운영 시스템 개발, △정보기술 및 전자상거래 서비스 등 디지털 멀티미디어 융합시대에 부응하는 다양한 미디어 영상사업을 전개하고 있다.그러나 천부적인 사업가 머독에게도 결정적인 파산의 위기가 닥쳐온 때가 있었다. 1990년 말부터 1년 남짓 머독의 뉴스 코퍼레이션은 천문학적 빚더미에 신음하며 붕괴 직전까지 내몰렸다. 가까스로 시티은행의 구제금융으로 채무상환이 조금씩 연기되고 내부적인 구조조정과 영화 쪽의 흥행 성공으로 (예컨대 등) 경영위기를 넘겼지만 당시 금융가와 미디어 업계에선 모두 머독 제국의 소멸을 예상했었다. 머독 연구자들은 이 때의 파산 위기가 바로 머독의 도박사적 성향 때문이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승부사 기질은 목적 달성을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몰염치한 탐욕과 표리일체를 이루면서 머독의 천박한 도구적 언론관을 배타시킨 주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흔히 머독의 경영 스타일 가운데 두드러진 특징으로 승부사적 대담성과 함께 기회를 포착하면 절대 놓치지 않는 민첩성, 기업 인수합병의 공격성 그리고 가차없이 냉혹한 용병술 등을 거론하고 있다. 또한 왕회장 으로서 최일선 지휘를 선호하는 야전 사령관 기질도 빼 놓을 수 없는 특징으로 운위되고 있다. 비즈니스를 전쟁으로 간주하고 전쟁에서는 반드시 승리해야 된다는 머독의 집념이 미디어 제국 건설과정에서 그대로 표출되고 있는 경영행태인 것이다.주지하다시피 현대사회의 정치과정에서 미디어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될 수 있는 핵심적 역할을 맡고 있다. 만연과 공공영역의 축소, 다원성과 다양성의 퇴조, 저널리즘의 질 저하를 주요 특징으로 하면서 무한경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글로벌 미디어 체제하에서 집중화된 소수의 미디어 기업은 번성하고 민주주의는 빈곤을 면치 못하는 공공영역의 역사적 위기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더욱이 미디어 권력의 집중화가 전개되는 양상은 수평적 차원에서 뿐만이 아니라 수직적 차원에서 가속화되고 있기 때문에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배급망을 갖춘 집중화된 미디어 권력은 게이트키퍼 의 기능까지 담당하기 때문이다.우리가 머독의 미디어관을 따져 보는 이유로 바로 여기에 있다. 뉴스코퍼레이션만큼 전지구적 차원에서 수직적으로 통합된 미디어 복합기업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뉴스 코퍼레이션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자신들의 회사야말로 전지구적 수준으로 수직적으로 통합된 유일한 미디어 기업 이라고 자랑스레 내세우고 있다. 또한 뉴스 코퍼레이션의 서비스는 전세계 70여 개국으로 5억 여명의 사람들이 하루 24시간 어느 때고 접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머독은 1999년도 뉴스 코퍼레이션의 연차보고서 서문에서 올해의 슬로건 을 세계 어느 곳에서나, 하루 어느 시점에서나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문구로 선정했다고 밝히고 있다. 배급망과 콘텐츠 그리고 브랜드가 결합된 미디어 권력 집중화의 상징인 것이다.우리는 앞에서 머독의 미디어에 대한 태도를 가차없는 도구적 미디어관으로 규정하면서 그 이면에는 타고난 기질과 성격이 자라잡고 있다고 지적했다.미디어를 이용하고 미디어를 대하는 머독의 태도와 입장은 이미 국내에서도 이곳 저곳의 머독 관련 논문과 글에 상세하게 소개된 바 있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몇가지 유형별로 그 대표적 사례만을 열거해 보는 수준에 머무르고자 한다.첫째, 머독은 미디어와 언론을 상업주의와 선정주의의 제물로 삼았다는 점이다. 이러한 평가는 미국이나 호주에서보다는 영국에서 더욱 혹독한데 그 이유는 머독이 《The Sun》지를 필두로 이른바 황색 타블로이드 저널리즘 을 유포시켰와 시민단체로부터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둘째, 머독은 언론의 소유와 편집을 분리시키지 않고 그가 직접 편집권을 자의적으로 행사함으로써 편집진으로부터 반발을 샀고 결국 이들을 해고시킨 사례가 많다. 《The Times》의 편집국장이던 해리 에반스가 머독이 신문을 인수한 지 채 1년 만에 편집권 독립과 직결된 문제로 사퇴를 강요당한 것은 그 대표적 사례다. 《The Sunday Times》의 앤드루 닐이 1994년 해고된 것도 같은 경우에 속한다. 중국 권력층의 비위를 맞추고자 Star TV에서 BBC뉴스를 빼버렸던 사실이라던가(1994) 홍콩 총독을 지낸 크리스 패튼의 회고록을 출판하려다가 취소시킨 사례도 여기에 속한다(1998년)셋째, 머독은 언론의 영향력을 이용하여 당대의 정치권력과 유착관계를 형성했다. 이러한 사례는 머독이 신문사업을 처음 시작한 호주에서부터 나타났다. 1972년과 1975년 총선에서 어느 한쪽의 수상 후보자를 노골적으로 지원하는 논조를 펴 당선을 도운 것이다. 신보수주의가 풍미하던 1980년 영국에서 머독은 자신이 소유한 신문들을 동원하여 대처 수상이 이끄는 보수당 정부의 집권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그 대가로 자신의 미디어 사업 팽창전략에 결정적인 도움을 받았다. BSkyB의 출범과 성공을 위한 발판은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머독 저널리즘의 정치적 편향은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좌우 양쪽을 유감없이 넘나들며 카멜레온적 권언유착의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앞서 인용한 바 있는 《Newsweek》의 머독 특집기사로 다시 돌아가보면 머독이 꿈꾸는 것이 디지털 전자시대의 새로운 로마제국 건설이라는 대목이 나온다. 그러나 머독이 부단히 건설 하고자 하는 제국 이 과연 다원적이고 민주적인 미디어 문화를 지향하고 있는가라는 물음에 단연코 동의할 수 없는 사정은 바로 머독 저널리즘의 한계라 하겠다.CNN의 테드터너가 머독을 히틀러 와 같다고 지칭한 것은 머독이 꿈꾸는 로마제국 의 성격을 단적으로 드러내 주는 일화라 하겠다. 터너와 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