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Ⅰ. 서 론················································································· 1Ⅱ. 율곡 이이의 생애와 문학관······················································· 21. 율곡 이이의 생애······································································ 22. 율곡 이이의 문학관··································································· 3Ⅲ.「고산구곡가」의 분석····························································· 41. 「고산구곡가」의 형식······························································ 62. 「고산구곡가」의 내용······························································ 73. 「고산구곡가」의 미- '충담소산(?膽蕭散)'·····································10Ⅳ. 「고산구곡가」의 문학사적 의의·············································· 13Ⅴ. 결 론················································································ 13Ⅰ. 서론「고산구곡가」는 이이가 선조 10년 42세의 나이로 해주로 퇴거하여 선적봉과 진암산 두산 사이를 흐르는 구곡 유수의 제오곡인 고산 석담에 복거하고 그 다음해 여기에 은병정사를 세워 은거하면서 주희의 「무이도가」를 본떠서 지었다는 총 10수로 된 연시조이다.이 작품을 화제로 김수증과 정선이 '고산구곡도'를 그렸는데, 전자에는 우암 송시열의 한역시가 5언4구로 1곡에서 9곡1561년 부친상을 당하고, 1564년 7월 생원시에 장원한 후 아홉 번의 과거에 장원급제해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이라 불렸다. 1564 년 호조좌랑이 된 것을 시작으로 예조좌랑, 사간원정언, 이조좌랑을 거쳐 홍문관 직제학, 승정원 동부승지, 우부승지, 사간원 대사간, 황해도 관찰사, 사헌부 대사헌, 대제학, 호조, 병조, 형조, 이조판서 등 요직을 두루 역임했다. 율곡의 학문은 현실적인 문제 해결을 중시하는 실천적 학문으로 조선 유학계에 영남학파의 거두인 퇴계 이황과 쌍벽을 이루며 기호학파(畿湖學派)를 형성 주도하여 조선시대 성리학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율곡의 이런 학문 경향은 정치 경제 교육 국방 등에 걸쳐 구체적인 개선책을 제시하여 경세가로도 큰 업적을 남겼다. 사창(社倉) 설치, 대동법 실시, 십만양병설 주장 등 사회정책에 대한 획기적 선견은 조선 후기 실학자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선조 17년(1584년) 음력 1월 16일 48세의 나이로 별세하여 법원읍 자운산 기슭, 현재의 자운서원에 묻혔다.저서로는 학교모범, 성학집요, 격몽요결, 소학집주 등과 이를 집대성한 율곡전서가 있으며, 선조의 묘정에 배향되었으며, 해주 석담의 소현서원, 파주의 자운서원, 강릉의 송담서원 등 전국 20여개 서원에 제향 되었다. 인조 2년(1624년) 문성(文成)이란 시호가 내려졌고 숙종 7년(1681년) 문묘에 배향되었다.율곡 선생과 관련이 깊은 지역은 모두 세 곳이 있다. 그 중 첫째가 경기도 파주, 둘째는 강원도 강릉, 셋째는 황해도 해주의 석담이라는 곳이다. 경기도 파주는 대대로 율곡 선생의 집안이 자리를 잡아 살던 곳이다. 현재도 화석정, 자운서원 등 율곡 선생과 관련된 유적이 있다. 강원도 강릉은 선생의 외가가 있던 곳으로, 선생은 이곳에서 태어나 6세까지 이곳에서 자랐다. 현재도 오죽헌과 송담서원이 남아 있다. 해주의 석담은 율곡 선생의 셋째 부인의 고향이다. 율곡 선생은 아들을 얻지 못해 부인 셋을 두었는데, 셋째 부인이 첫 아들을 낳았고 이어 둘째 그것은 선하고, 참되면 아울러 실천적이고 사실적이어야 하며, 표현적인 면에서 본다면 다른 이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 글을 꾸미기만 하면 안 되므로 문식을 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글을 쓰는 것일 가장 이상적이다. 그러나 글이라는 것이 다른 이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는 일이므로, 율곡은 글을 꾸미는 것을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으며, 그 경우 우선 바탕을 갖출 것과 그 후 그 꾸밈이 정도에 맞도록 권하고 있다.2) 문(文)과 시(詩)시에 대한 율곡의 보편적이며 일반적인 생각은 문에 대한 시각과 거의 동일선상에 놓여 있다. 그럼에도 따로 시에 대하여 언급하는 것은 시가 문의 일종이기는 하나 이치(이성)를 위주로 하는 산문과 달리 감정(감성)을 위주로 하여 나름의 독특한 표현 방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율곡은 문 중에서도 시의 가치를 깊이 인식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시를 지을 때 문식을 빌어 다른 이의 눈을 즐겁게 하는 데 힘쓰지 말고 성정의 바름에 근본 하여 마음을 즐겁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율곡은 『시경』의 시세계를 “사람의 정을 다 드러내고 사물의 이치를 두루 통하되 유순하고 참된” 것으로 이해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시들을 최고로 여겼다. 또한『정언묘선』에는 다른 왕조보다도 당(唐)의 시가 압도적으로 많고, 당시 사상적으로나 시문에 있어서나 송(宋)의 영향을 많이 받던 시대였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선시집에 송시보다도 당시를 많이 포함시킨 것으로 보아, 철리(哲理)를 읊은 시보다도 인간의 성정(性情)을 읊은 시를 더 선호했음을 알 수 있다. 율곡은 시의 가치를 감동을 주는 데 두었다. 그런데 이 감동은 외물(外物)을 수창(酬唱)하는 데서 얻는 감동이 아니라 바른 성정을 읊는 데서 얻는 감동으로 귀히 여겼다. 또한 시를 통해 성정을 읊조림에 ‘청화(淸和)’)를 펼 것을 강조했다.)시는 비록 배우는 자가 잘해야 될 일은 아니지만 성정을 읊어 청화를 폄으로써 가슴 속의 더러움을 씻을 수 있는 즉 존양성찰(存養省察)에 일조가 된다.)Ⅲ.「.제2수에서 제5수, 제7수에서, 제10수에 이르기까지의 8수는 결국 제6수가 핵심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강학’과 ‘영월음풍’중 ‘영월음풍’을 확장하여 형상화하고 있는 셈이다. 「고산구곡가」에 있어서 제6수는 구조상 제1수를 제외한 나머지 9수의 중심에 자리한다. 그런데 제6수의 앞쪽 4수의 시간적 제재는 ‘하루, 한철, 한철, 하루’로 뒤쪽 4수의 시간적 제재는 ‘하루, 한철, 하루, 한철’로 설정되어 있다. 다소 변형이 가미된 평형적 대립구조를 구축한 셈이다. 그 결과 9수를 일괄하면 전체 구조는 제6수를 핵으로 양방향으로 확장되고 있다.즉 제1수는 고산구곡 전체를 총체적으로 제시하면서 작품의 첫머리에 놓임으로써 작품전체의 통솔적 지위를 확보하고 있으며 제6수는 제1수에서 총체적으로 제시된 구곡의 개별적 구체화인 9수의 중심에 자리함으로써 중심적 위상을 확보하는데 이 두 수는 결국 동일한 핵심의 반복적 교체상이 된다고 볼 수 있다.이러한 시간의 순환 구조 속에서 고산구곡담의 영원한 아름다움과 학주자에 대한 무한한 의지를 형상화 하고 있다. 또 이 작품은 전체 구조가 유기적으로 구축되어 있고, 시간적?공간적 질서 속에 완벽한 구조적 질서를 지니게 된다.2. 「고산구곡가」의 내용1) 제1수고산 구곡담의 아름다운 경치를 사람들이 모르고 있다가, 내가 풀을 베고 집을 지어 살게 되니 벗들이 찾아오는구나. 아아! 주자가 공부하던 무이산 구곡계를 생각하면서 그의 학문을 배우리라.「고산구곡가」의 서시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자연을 벗하며 주자학을 연찬(硏鑽)하겠다는 학구적 열의가 강하게 나타난 노래이다. 초장 고산구곡담을 사람들이 모른다는 말은 중의적 표현이기도 하다. 즉 학문의 길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고산구곡가에 나오는 지명들은 아름다운 경치나 혹은 학문의 길, 양쪽을 의미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고산(高山)에 있는 석담(石潭)의 승경을 노래하고자 한 고산구곡가는, 그 서시에서는 성리학의 대가로서의 학문 수양이 그 첫째의 의지임을 나타내 주고 있다. 따라서, 여기, 시심(詩心)에 겨워 시를 읊조리는 풍류의 멋도 함께 할 것이다.7) 제 7수여섯째 굽이는 낚시하기에 좋은 골짜기의 물의 넓은 경치로다. 나와 고기 중 어느 쪽이 더 즐거운가? 진종일 즐기다가 해가 저물거든 낚시대를 베고 달빛을 받으면서 집으로 돌아 가련다.자연을 벗 삼아 경치 좋은 조협에서 물고기와 더불어 하루 종일 노는 즐거움을 노래하고 있다. 이 낚시질은 생활 수단으로서의 고기잡이가 아닌 청정한 사색을 낚는 낚시질이고 보면 그 경치가 더없이 아름다운 곳이어야 함은 말할 나위가 없다. 또한 내가 고기이고 고기가 나인 곧 서로 즐거움을 함께 나누는 동화된 자연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8) 제 8수일곱째 굽이는 단풍으로 덮인 바위가 있는 가을 경치다. 맑은 서리가 엷게 덮였으니 단풍에 덮인 바위가 수놓은 비단같이 아름답다. 차가운 바위에 혼자 앉아서 그 경치에 넋을 잃어 집에 돌아가는 것도 잊어버리고 있다.꽃보다 아름다운 풍암의 단풍을 보면서, 그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도 잊고 있는 정경을 묘사하고 있다. 자연 속에서 무아지경 바로 그것이다. 추운 날씨에 한암에 홀로 앉아서 인생과 도의 의미를 깨닫고자 하는 학자의 풍모가 나온다.9) 제9수여덟째 굽이는 거문고 타는 소리를 내며 흐르는 여울목에 달이 밝은 경치다. 좋은 거문고로 서너 곡조를 탔지만 운치 좋은 옛 가락을 알 사람이 없으니 혼자서 듣고 즐긴다.이 시조의 금탄은 작자가 그곳의 여울물 소리를 거문고 소리에 비겨 지은 이름이다. 물소리를 금탄으로 비유했다는 점에서 참으로 이이의 깊은 시성을 알 수가 있다. 또한 거문고라 함은 선비에게 있어서 풍류를 즐기는 참된 멋스러움이다. 음악을 즐기는 것은 고로 자신의 아름다운 마음을 키우는 데에 있어서 중요하다. 이 시조에서는 거문고를 홀로 즐기는 이이의 모습을 상상할 수가 있다. 종장에서 ‘고조를 알이 없으니’라는 말에서 옛 성현의 가르침을 따르지 아니하고 학문을 게을리 하는 학생과, 더 나아가 참된 의를 알고 그를 행하는 이가 없는 시대를 말이 밝다
제1장 중세국어중세국어는 10세기 초 고려왕조가 건립되던 때로부터 16세기 말 임진왜란이 시작되던 때가지의 국어를 일컫는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들의 가장 큰 관심을 끌어 왔던 것은 훈민정음이 창제된 직후 몇십 년의 국어였다. 그것은 이 시기의 국어가 그 온전한 모습이 문자로 기록된 최고(最古)의 국어이기 때문이다. 이 이전의 국어는 한자로 기록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표기 체계가 불완전하고 그나마 양도 많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그 단편적인 현상뿐이었던 것이다.여기서는 당시의 국어가 가지고 있던 특징을 알아보도록 하겠다. 중세국어는 우리가 그 온전한 모습을 볼 수 있는 최고의 국어라는 점 이외에 현대국어의 중요한 뼈대가 이 시기에 대부분 갖추어졌다는 점에서도 특별한 주목을 받아왔다.제2장 음운체계와 음운변화1. 음운체계(1) 중세 국어의 모음체계1중세 국어 모음체계 = 15세기 모음체계 = 중세 국어 후기의 모음체계 : 7개의 단모음으 로 이루어졌다(ㆍ ㅡ ㅣ ㅗ ㅏ ㅜ ㅓ)2모음추이 : 중세 국어 전기에서 후기의 모음체계로 변화하는 과정에 일어난 모음의 자 리 이동을 '모음추이'라 한다. 모음추이에는 '당기는 사슬'과 '미는 사슬' 두 종류가 있다. 중세 국어 전기의 모음체계에 적용되었던 모음추이는 '미는 사슬'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유는 'ㆍ'의 불안정성 때문이다.3중세 국어의 이중모음ⅰ) 상향이중모음 : ㅑ, ㅕ, ㅛ, ㅠ 이들은 'y'로 시작되는 것, ㅘ, ㅛ 등의 'ㅗ/ㅜ (w)'가 앞선 것, 'ㅞ'로 표기된 'wi'는 적절한 표기법이 없었다.ⅱ) 하향이중모음 : ㆍㅣ, ㅐ, ㅔ, ㅙ, ㅞ, ㅢ 이들은 'y'로 끝나는 것(2) 중세 국어의 자음체계1자음체계ⅰ) 평음(가, 가, 가, 가), 유기음(가, 가, 가, 가)의 양 계열이 존재.ⅱ) 유성마찰음(순경음 비읍(가)과 반치음(가), 가)이 있었다.ⅲ) 반치음(가) 및 가 은 훈민정음 17자 초성체계에 포함(순경음 비읍(가)은 제외)ⅳ) 반치음(가)은 중국 자모의 '日(일)'모에 해 있는 것(하늘, 가믈)2의존형태소 : 다른 형태소에 의존해야 뜻을 가지는 것('하남'의 속격조사 '가', '가마리 '의 주격조사 'ㅣ', 어간 '업-', 선어말어미 '-도-', 종결어미 '-다' 등)3어휘형태소 : '하늘, 가말, 업-'과 같이 독자성이 있는 단어의 어휘적인 의미를 나타 내는 형태소4문법형태소 : '-가', -이, -다'와 같이 독자성은 없으나 단어의 문법 기능을 나타내는 형태소5특이형태소 : 오직 한 형태소와 만 결합할 수 있는 것(현대국어 '징검다리'의 '징검 -', 중세국어 '아람답다'의 '아람-', '어금니'의 '어금-'(4) 형태소의 교체1이형태ⅰ) 음운론적으로 조건된 이형태(낫-/낫-, 곱-/곱-, -안/-은, 보아, 몬차이셔, 수머)ⅱ) 형태론적으로 조건된 이형태(-야, 하야)2교체의 종류 -자동적 교체(규칙적인 교체)ⅰ) 음운 조건에 의하여 한 형태소안에 두 개 이상의 이형태가 사로 교체하되 그것이 그 언어의 음운규칙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곶->곳, 갗->갓, 낯->낫, 밧가->밧, 낫-> 낫, 곱->곱, 짓->짓, 닷가->닷, 맛가->맛, 아모)ⅱ) 비자동적 교체(불규칙적인 교체) : 나모, 듣-, 구무, 녀느, 불무.ⅲ) 조건교체 : 중세 국어에서 대격(목적격) 조사 '-알/을'과 '-랄/를'은 체언의 말음에 따라 교체되는 것.ⅳ) 자유교채 : '-랄' 혹은 '-를'이 '-가'만으로 교체되는 경우(獨夫受(독부수)가, 두가 질, 개야밀, 님금 位(위)가)(5) 단어1한 단어는 그 내부에 휴지를 둘 수 없고, 분리시킬 수도 없다.2즉 단어와 단어 사이에 휴지가 놓이고 다른 단어가 그 둘 사이에 놓일 수 있다는 말.3단어는 최소 자립 형식으로 한 단어 내부에서는 휴지나 다른 단어가 개입할 수 없는 문 법 단위이다.4단어는 형태소의 수효에 따라 단일형태어(손, 집, 말, 쇼, 다섯)와 복수형태어(마쇼, 두어, 먹다, 하다, 빌먹다)로 나눈다.5복수형태어가 보이는 다양한 구조에 따라 다음과 같이 분류되기도 한다.단어 - 단일어, 합접미사에 의한 파생동사(체언어기+零(영)접미사) : 명사어기 자체가 어떤 파생접미 사를 취하지 않고 그대로 동사어간이 된다는 점, 이를 零(영)접미사에 의한 파생 동사라 한다(뭇, 띄, 가말, 너출, 신(시노니), 긋(그어), 품(푸머), 감(갈바), 낚(낫갈), 비릇(비릇난))e) 접미사에 의한 파생동사(용언어기+접미사) 중 사동접미사(히, 기, 이, 오/우, 호/ 후, 고, 아)- 사동접미사 '-히-'는 어간말음이 '가, 가, 가'인 경우에 나타난다(구텨, 고펴, 구표, 글키고, 너피실쌔, 느치리잇가, 도틸씨오, 마치시니, 무티시고, 바티사바며, 안치시 고, 자펴)- 사동접미사 '-기-'는 어간말음이 '가, 가'일 경우에 나타난다(덞규마로, 밧기시면, 빗기면, 숨기시고, 싯기사바니, 옮겨).- 사동접미사 '-이-'는 어간말음이 '가, 순경음비읍(가), 반치음(가), 가'일 때 나타나 고, 말음이 모음이면 '-ㅣ-'로 나타난다(재더니, 믈리시니이다, 거스려, 그치샤, 불 이고, 살이시고, 더러비나다, 웅이리로다)- 사동접미사 '-오/우-'는 어간말음이 '가'인 경우에는 반드시 분철되고 어떤 조건으로 는 설명하기 어렵다(갓고샤, 나오시며, 길워, 달와, 오알와)- 사동접미사 '-호/후-'는 어간말음이 '가, 가'일 때 나타난다(나토샤, 마찰씨라, 가초 아, 고초삽도, 머추어시니)- 사동접미사 '-고-'는 말음 '가'뒤에만 결합되는 특이한 형태소(솟고나니라)- 사동접미사 '-아-'는 (사라나니, 도라고, 이르니)- 접미사에 의한 파생동사(용언어기+접미사) 중 피동접미사 '-이-'는 어간말음이 모음 이거나 '가, 가, 가, 가'이 아닌 자음일 경우에 나타나고, 어간말음이 '가'이면 '- 기-', '가, 가, 가, 가'이면 '-히-'가 결합된다(두피고, 발이니라, 걸이며, 들여, 븟이뇨, 이어이난, 씌여, 글여)- 피동접미사 '-히-'는 선행하는 자음과 결합되어 유기음화가 일어나 그대로 표기된다 (고쳇도다, 다티고, 마쿄, 머킬, 매얼쿄말, 자피여)- 피동접미사 ' 재귀대명사 '저'는 주격형은 저고조(상성)의 ':제', 속격형은 저조(평성)의 '제'이 었다.- 단음절로 된 인칭대명사의 구격형은 ('-가로':날로, 널로)로 실현되었으며, 대격조 사와 공동격 조사의 결합이 보통은 '-와랄'인 것에 반하여 인칭대명사의 그것은 ('-가와':날와, 눌와)로 나타난다.ⅱ) 의문대명사의 곡용 : 현대국어의 '무엇'에 해당하는 중세국어의 의문대명사의 단독 형 '므스, 므슥(何(하))'인데 이는 서로 교체된다. '므슴'도 가끔 나타난다.ⅲ) 중세국어에서 의문대명사 '어느'는 대명사, 관형사, 부사로도 사용되었음이 특이하 다. 아울러 '새'도 현대국어와는 달리 관형사, 부사, 명사로 사용되었음이 특이하 다.(2) 격과 조사1전통적으로 격이란 술어는 굴절에 의하여 실현될 때에만 쓰이는 것으로, 체언에 관게 하는 기본적인 문법범주이다. 체언류에 굴절접사, 곧 굴절어미가 연결되어 격을 구별 해 줄 때만 격이라 부르는 것이다. 그러나 국어에서 격조사는 굴절어미로 다루기보다 는 단어에 가깝다는 사실을 지적하여 두고자 한다.2전통적으로 격의 기능은 어떤 격이 굴절어미에 의하여 나타날 때 그 격은 문법적 기능 (추상적 기능)을 강하게 나타내고, 전치사나 후치사에 의해 격이 실현될 때 구체적으 로 장소(처소), 시간의 의미를 나타내므로 처소적 기능(구체적 기능)이라 부른다.3문법적 기능(추상적 기능)을 가진 격들 : 주격, 대격(목적격), 속격(관형격), 구격(조 격), 공동격4처소적 기능(구체적 기능)을 가진 격들 : 처격(처소격), 방위격(향격)5문법적 기능이나 처소적 기능 이외에 부름의 대상이 되는 체언과 결합하는 호격조사가 있다.i) 주격조사 : 중세국어의 주격조사는 그 기저형이 '-이'이었다.- 주격조사 '-이'는 체언어간의 말음이 자음일 때는 '-이'로 실현된다.(새미 기픈 므 른, 나랏 말싸미 중국에 달아, 제 비취요미 귀하고)- 모음일 때는 '-ㅣ'(y)로 실현되어 그 모음과 결합하여 하향이중모음을 형성한다.(부 톄 니러 나랄 너비, 프는 그 것을 명시적으로 나타내주는 성분이다. 이때 속격조사 '애/의'와 '가'에 선행하는 체언은 후행하는 체언을 수식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런 기능 때문에 속격조사를 관 형격조사라 부르기도 한다.- 중세국어에서의 속격조사는 기능면에서 두 가지 점에 유의해야 한다(속격조사는 결 합하는 선행체언의 의미특성에 따라 '-애/의'와 '-가'이 각각 다르게 쓰인다는 것 이다. 즉 선행체언이 유정물 지칭의 평칭이라는 의미특성을 갖게 되면 속격조사 '- 애/의'가 결합하고, 무정물지칭이나 유정물 지칭의 존칭 체언이면 속격조사 '-가' 이 실현된다는 것이다. 속격조사는 체언 사이의 관계를 나타내는 기능을 가졌지만 이 기능을 포함하여 또 다른 통사적 기능(문법적 기능)을 가진 것으로 연관 해석할 수 있다. 그것이 주어적속격과 목적어적 속격이다)ⅳ) 처격조사(처소격조사) : 중세국어에서 처격을 나타내는 격조사는 '-애/에, -예, - 애/의'가 있다.- 처격조사들은 서로 상보적 분포를 이루고 있어 선행체언의 모음에 따라 양성이면 '- 애', 음성이면 '-에'가 실현되었다.- '-예'는 선행체언의 말음절 모음이 '이(i)' 혹은 'ㅣ(y)'인 경우에 실현된 형태이다.- '-애/의'는 속격조사와 같은 형태이나 처격을 나타내는 특수한 처격조사이다.- 그렇다면 처격조사 '-에/의'는 속격조사와 어떻게 다른가? : 실제로 체언이 후속하 면 속격, 용언이 후속하면 처격조사로 식별이 어느 정도 가능하지만 선행체언의 의 미에 다라 결정한다. 즉 체언이 사람이나 동물과 같은 유정물 체언이면 속격이며, 무정체언이면 처격조사인 것이다.- 처격조사의 기능이 어던 공간적(시간적) 범위를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에 처격조사가 생략되면 그 문장이나 말은 적격성을 잃게 된다. 즉 처격조사의 생략은 불가능하다.ⅴ) 구격조사(조격조사) : 도구나 수단을 표시하는 격을 구격이라 한다.- 구격을 나타내는 격조사는 중세국어에서 '-아/으'로 나타난다.- 체언의 말음이 '가'이나 모음이면 '-로'가, 자음이면 매개모음 '난다.
※ 의병운동1. 항일 의병운동의 시작을미의병 : 을미사변과 단발령의 계기로 일어남. 위정척사 사상을 가진 유생들이 주도. 일반 농민 동학농민군 참여. 아관파천을 계기로 친일 정권이 무너지면서단발령이 철회되고, 국왕의 해산 권고 조칙이 내려짐으로 대부분 종식최초의 의병 : 1895년(유인석, 이소응, 허위)* 유인석 - 개항 반대 상소를 올리고, 을미사변 후에 의병대장으로 활동1910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성명회'조직* 이소응 - 황후 시해 후 춘천에서 의병으로 봉기.남한강, 서울, 광주에서 관군과 치열한 전투.* 허위 - 을미사변이후 활동. 금산, 성주 등지에서 항전.1907년 이인영과 의병부대조직- 전국의병 규합 ⇒ 서울진공작전2. 을사조약의 체결과 항일운동- 러·일 전쟁을 계기로 을사조약 체결(1905) → 조약 폐기 주장하는 운동전개1 조약파기상소 : 조병세, 이상설, 안병찬2 자결순국 : 민영환, 조병세3 5적 암살단조직 : 나철, 오기호 - 일진회습격4 언론항쟁 : 장지연(시일야 방성대곡 - 황성신문)5 외교활동을 통한 항일운동 : 헐버트 미국파견, 헤이그 특사파견3. 을사조약 이후의 민족운동 - 애국계몽 운동, 구국항전4. 의병항전의 재연 - 을사·병오의병(1905- 1906)1 을사·병오의병의 발단 : 무장항전(친일내각 타도)2 을사·병오의명의 전개 : 민종식, 최익현, 신돌석* 민종식 - 전직관리로 을사조약 체결 후 관직을 버리고, 의병을 일으켜 홍주성을 점령. 일본국과 항전* 최익현 - 태인에서 거병. 순창에 입성. 동족간의 싸움포기* 신돌석 - 평민 출신. 영해에 입성하여 관군무기 탈출, 평해, 울진 방면에서 항전.5. 의병항전의 격화(정미의병,1907)1 발단 : 고종 황제 강제 퇴위, 군대해산을 계기로 의병전쟁2 해산군대의 의병합류 : 시위대 대장 박승환 자결을 시발점으로 의병에 가담3 의병의 전력 향상과 지역확대 : 각 계층 포함. 전국각지, 간도, 연해주6. 헤이그 특사 파견- 특사들은 한국에 외교권이 없다는 이유로 일본이 방해. 각국대표, 신문사의 기자에게 호소. 이준(분사), 이위종(만국기자 협회에서 호소), 이상설(소련땅에서 이동휘와 함께대한광복군정부'를 세워 독립운동 전개)7. 의병항전의 확대1 서울진공작전 전개(1908) : 이인영, 허위 - 경기도 양주2 외교 활동의 병행3 국외 의병의 항전 : 홍범도, 이범윤(국내 진공작전), 안중근(만주- 이토오히로부미)4 의병항전의 전환8. 항일 의병 전쟁의 의의1 의병전쟁의 한계 : 양반유생들 결속 미완성2 의병전쟁의 의의 : 항일 무장독립 투쟁의 기반마련※ 개화기 시대의 의병가사1. 작품 소개 및 설명의병가사로서는 첫 작품은 「회심가」로 1895년 10월 강릉에서 기병한 민용호의 작품이 다.저 왜놈 거동 보소 前日 수치 이졌는가개화라 稱託하고 姦臣을 체결하여仁川 元山 大都會을 져의 開卷 만근 後잎人心物情 窺則하고 電奇線이 왜언일고變服도 不足하여 國母를 害할쏘냐「회심가」에서전기선을 電奇線이라 표현할 정도로 외국문물의 도입자체를 부정하면서 이렇게 사회기강 이 무너진 것은 왜적 때문이므로 왜적을 쳐부셔야한다고 주장하였다. 한문투가 심하여 일 반 서민들이 읽어서 소화하기엔 어려움이 있었다.이석용의 에도 가사가 한 편 보인다. 의병이 되어 고향을 떠나면서 「격중가」라고 일컬은 노래를 지어 불렀다.아마도 의병을 이러 낵켜왜놈을 쏘차내고 奸臣을 打殺하여우리 今上 奉安gkh 우리 百姓 保全하여삼각산이 숫돌되고 한강수가 힝 되도록질기고 노라보새 우리 대한 만만세「격중가」에서한양 성중을 바라보니 원수놈이 왜놈이고, 원수놈이 간신이라는 데서는 암담한 상황임을 말했지만, 의병을 일으켜 정세를 뒤집어놓자고 한 그 앞뒤의 말은 희망에 차있다. 노래를 부르면서 용기를 북돋을 수 있게 간절하면서도 힘찬 말로 의병의 임무를 다짐하고, 조국 의 앞날을 그렸다.경북 문경 출신의 의병장 신태식이 쓴 「신의관 창의가」는 의병투쟁이 끝난 다음에 그 경과를 정리한 가사로 모두 636구의 장편이며, 기병·전투·투옥·출옥의 전 과정을 생생 하게 다루고 있다. 또 작자는 밝혀지지 않고, 안동 학가산 부근에서 발견된 「기좌차의군 행소 창의가」도 있는데 두 작품의 다음과 같은 구절에서 매국적 개화파에 대한 규탄은 잘 나타나 있다.대한 광무 갑오년에 왜적이 침범하야옛 법을 모다 고쳐 개화하기 시작했네관제도 모다 고쳐 의복도 모다 고쳐이래저래 몇 년 만에 인심은 산란하고「기좌창의군행소 창의가」사흉은 누가 되며 오적은 누가 될고금능의 박영호와 이조참판 김옥균이재조의 서강범이 참위에 서재필이내무대신 이재용이 군부대신 박재순이농상대신 송병준이 의부대신 이완용이이정대신 한규설이 칠간은 누가 되며팔적은 뉘가 될가「신의관 창의가」갑신정변, 갑오경장을 을사조약과 같은 것으로 규정한다. 갑신정변의 주역이었던 박영효, 김옥균 등을 을사조약의 주역이었던 송병준, 이완용과 같은 매국노로 규정하고 갑오경장 을 왜적이 침범하여 이룬 개화라고 하였다 개화는 적의 농간이라고 선언하는 것이다.
목 차Ⅰ. 서론- 서정주의 생애 및 경향Ⅱ. 본론1. 각 연의 분석2. 텍스트의 2차적 의미분석3. 현대 한국시사에서「화사」사 지니는 의미Ⅲ.결론Ⅳ. 참고문헌Ⅰ. 서론미당은 1915년 5월 18일(음력) 전북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 질마재 마을에서 태어났다. 고향에서 서당과 초등학교를 마친 뒤 서울 중앙고보에 들어갔으나 광주학생운동 소식을 듣고 시위를 주도하다 퇴학당했다. 이후 빈민촌에 들어가 넝마주이 노릇을 하는 등 떠돌다가 1931년 고승 박한영 대종사 문하에 입산, 그 뒤 중앙불교전문학교에서 수업했다. 불교적 세계관에 바탕한 윤회설에의 경도, 절대 영원에로의 회귀 욕망 등으로 말해지는 미당 시의 전반적인 기조는 바로 여기서 싹을 틔우게 된다.1935년 『시건설』에 「자화상」을 발표함으로써 시인으로서의 첫발을 내디뎠다. 그러나 시적 여정의 본격적인 시작은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벽」이 당선되면서부터이다. 같은 해에 김광균, 김달진, 김동리, 오장환 등과 함께 동인지 『시인 부락』을 펴내면서 본격적인 시작 활동을 시작했고, 1938년 『화사집』을 발간, 악마적이며 원색적인 시풍으로 문단의 비상한 관심을 끌어 '한국의 보들레르'로 일컬어지기도 했다. 해방 후 두 번째 시집 『귀촉도』를 발간, 이시기부터 그의 경향은 초기의 악마주의적인 생리에서 벗어나 동양적인 사상으로 접근하여 심화된 정서와 세련된 시풍으로 민족적 정조와 그 선율을 읊었다. 『신라초』이후부터는 불교 사상을 기조로 본격적인 진리의 세계인 영원주의의 이념과 선적인 정서를 부활시켰으며, 유치환과 더불어 '생명파' 시인으로 불리어졌다. 그의 사상적 기조는 영원주의, 영생주의이다. 이후 작품 50여편을 모아 시집 『동천』을 발간, 신라와 불교의 세계를 한층 더 심화시켰다. 그를 종합적으로 대표하는 작품 「국화옆에서」는 한국 시사를 장식하는 걸작으로 평가된다.평생 1천여 편의 시를 남긴 미당의 시세계를 한마디로 설명하기에는 미당이 보여준 상상세계는 크고도 넓다. 미당의 시는 억눌린 정신의 아픔을 노래하는 관능적인 초기 시에서부터 신화 정신과 불교적 달관에 이르는 후기 시까지 다양한 편력을 보여준다. 신라와 불교의 윤회전생, 그리고 민가에 떠도는 온갖 민화와 설화들을 아우르는 그의 시적 방황, 혹은 정신사적 편력은 한국인의 정서에 떠올라 있는 생사관, 이승과 저승을 한데 어우른다. 미당은 흔히 ‘시의 정부’로 불린다. 시에 관한 한 거의 모든 시인이 미당의 영향권에 들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시적 성취에도 불구하고 미당에게도 늘 따라 다니는 ‘덫’이 있다. 일제말 친일잡지인 『국민문학』 편집일을 보면서 친일시나 종군기를 썼던 일은 설사 당시로서는 대세였다 할지라도 씻을 수 없는 흠집을 남겼다. 80년대 군부정권에 대한 찬양 발언 등도 그를 아끼는 사람들을 실망시켰다.서정주의 초기 대표작인 「화사」는 1936년 12월 동인지 『시인 부락』 2집에 발표되었으며, 다시 1938년과 1941년의 첫 시집 『화사집』에 수록되어 당대의 커다란 반응과 충격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화사」는 서정주 개인의 시가에 있어서나 한국 현대시사에 있어 간과할 수 없는 중요성을 지닌다. 서정주 시사에 있어서는 동물적 상상력과 대지적 세계관을 보여주는 시적 출발점에 놓여져 있으며, 현대시사에 있어서는 모더니즘의 홍수시대인 30년대 시단에 육성의 절규와 생명의 몸부림을 불어넣음으로써 시사적 탄력성의 내질을 형성·심화해 주었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화사」에 나타난 동물적 이미지와 대지적 상상력의 모습을 분석함으로써 서정주 초기시의 특징적 양상을 살펴보고자 한다.Ⅱ. 본론1. 각 연의 분석먼저 이 시의 핵심적 이미지가 되는 '화사'는 꽃뱀을 뜻한다. 흔히 뱀은 그 징그럽고 꿈틀거리는 생김새로 인해 '악(惡)'을 상징하는 존재로 생각하게 된다. 그렇지만 이 시에서는 여기에 '꽃'이 결합된 꽃뱀이므로 뱀의 일반적 의미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해, '화사'는 표면적으로는 꽃처럼 아름다운 빛깔과 무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내면적으로는 징그럽고 꿈틀거리는 모습을 지니고 있는 양면성의 존재, 모순의 존재인 것이다.이 작품은 얼핏 보아서는 구약 성서 창세기에 등장하는 '유혹의 뱀'에 대한 증오와 적개심을 그리고 있는 것 같지만, 여기서는 뱀을 원시적 생명의 대상 소재로 하여 인간이 타락하기 전의 원초적 생명에 대한 외경(畏敬)을 추구하고 있으며, 때묻지 않은 생명의 신비를 탐구하고 있다. 총 7연으로 구성되어있으며 반복법, 점층법을 사용하는 표현상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1연은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에서 보듯이 '배암'은 인간의 증오의 대상으로 태어난 슬픔 때문에 징그러운 몸뚱아리를 갖고 있다는 뱀의 운명을 말하고 있다. 사향 냄새가 나는 향기로운 풀섶길에서 발견한 '아름다운 배암'을 '징그러운 몸뚱아리'로 인식하는 데서 '화사'의 이중성이 나타난다.2연은 징그러우면서도 매혹적인 이율배반의 '배암'의 모습을 '꽃대님'으로 제시하고 있다. '대님'은 한복 바지를 입은 뒤, 바짓가랑이 끝을 접어서 졸라매는 끈을 뜻한다. 뱀의 길이와 비슷할 뿐 아니라, 우리와 친숙한 소재이므로 화사를 '꽃대님 같다'로 표현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다.이러한 아름다움은 3연에서 '달변의 혓바닥이 / 소리 잃은 채 날름거리는 붉은 아가리'로 변화한다. '이브를 꼬여 내던 달변의 혓바닥'은 소리를 잃어버리고, 남은 것은 다만 '날름거리는 아가리'뿐이다. 옛날의 달변과 지금의 실어(失語)로 대비되는 '배암'의 슬픈 운명을 보며 화자는 '푸른 하늘이다 …… 물어뜯어라, 원통히 물어뜯어'라며 뱀을 부추긴다. 그러므로 이 구절에는 존재의 원죄적 모순성에 대한 화자의 강한 저주와 증오가 담겨져 있음을 알 수 있다.4연은 '달아나거라, 저놈의 대가리!'라는 하나의 시행으로, '물어뜯어'라며 부추기던 시행과 관련되어 더욱 심한 저주와 증오를 드러내고 있다.5연은 원죄적 숙명을 극복하려는 운명과의 대결 자세를 보여 주고 있다. '돌팔매를 쏘면서, 쏘면서'라는 표현은 화자의 공격적 행위를 의미하지만, 화자는 곧바로 뱀과의 대립에서 오는 긴장을 풀며, 뱀에게로 향했던 시선을 자신의 내부로 옮기는 반성적 성찰의 계기를 마련하고 있다. 돌을 던지며 뱀을 뒤쫓는 화자의 행위는 뱀에 의해서 우리가 원죄를 얻게 된 데 대한 복수심 때문이 아니라, '석유 먹은 듯' 불타는 '가쁜 숨결'로 인한 것임을 밝히며 그간의 저주와 증오를 완화하는 태도를 갖게 된다. '가쁜 숨결'이란 뱀을 뒤쫓는 데서 오는 숨가쁨이 아니라, 관능적인 숨가쁨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화자에게서 우리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원죄 의식을 부정하면서 인간의 원초적인 관능의 세계를 추구하는 시인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 또한 '석유 먹은 듯'의 반복과 생략 부호의 반복은 바로 '가쁜 숨결'의 이미지를 강화시키는 표현이다. 4연의 '대가리'는 남성의 성기를 충동적으로 느낀 뱀의 원형적 심상으로, 5연의 '석유 - 가쁜 숨결'로 이어져 8연의 '순네'와 연결되고 '스물 난 색시'의 관능으로 확대된다.6연은 '꽃대님보다도 아름다운 빛'으로 나타난 뱀을 몸에 두르고 싶다는 소유욕을 말하고 있다. 크레오파트라의 피 먹은 양 붉게 타오르는 고운 입술을 하고 있는 배암이여, 스며 들어라. 이 '스며라'와 5연의 '가쁜 숨결'은 7연으로 연결된다.7연에서는 '피 먹은 양 붉게 타오르는' 클레오파트라의 고운 입술로 나타난 뱀의 입술이 화자에게 스며들기를 바라는 관능적 욕망을 보여 주고 있고, 관능과 생명력이 고조된 연으로 스무 살 '순네'의 고운 입술을 뱀의 입술로 인식하는 화자는 마침내 '순네'가 뱀이 되어 자신의 몸 속으로 스며들기를 바라고 있다.결국 이 시는 인간의 원시적 생명력과 욕망에서 오는 악마적 전율과 예찬을 통해 서구적 발상과 토속적 사고의 융합을 교묘하게 실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2. 텍스트의 2차적 의미분석「화사」는 역사적인 관점에서 보면 식민지 시대에 젊음을 보냈던 서정주가 암흑 속에서 신음하는 민족의 슬픔과 괴로움에 대한 상징적인 표현으로 읽을 수도 있다. 그러나 동시에 존재론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 시는 육체를 가진 자의 유형 당한 슬픔과 괴로움의 호흡이라 할 수 있다. 즉, 그는 감각세계의 '뒤안길'로 '사향박하(麝香薄荷)'처럼 화사하게, 그리고 '배암'처럼 스며드는 전율로서 아득히 먼 '푸른 하늘'로 향하고 있음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는 '원통히 물어뜯는' 살의 아픔 속에 푸른 하늘이 상징하는 영원의 빛이 와 있음을 느낀다. 그러나 이와 같은 표면적인 운동은 시편 「화사」 내부에 이중구조가 있음을 시사해 주고 있다. 즉, 속세적 인간의 육신을 상징하는 '화사'는 그것이 지닌 음향 속에 양면세계를 연결시켜주는 향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은 또 '꽃'과 '뱀'이라는 두 가지 구성요소의 결합체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서정주는 그의 시 가운데서 '화사'를 보고 한번은 징그럽다고 말하고 그 다음에 와서는 '꽃대님'같이 아름다웁다고 말한다. 우리가 '꽃'을 영원의 빛, 광원(光源)의 피사물이라고 하면, 그의 '화사'는 이러한 영원의 빛이 서리어 있는 인간의 육체를 상징하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 그가 '돌 팔매를 쏘면서, 쏘면서 사향(麝香) 방초(芳草)ㅅ길/ 저놈의 뒤를 따르는' 것은 '석유 먹은 듯 석유 먹은 듯 가쁜 숨결'속에서, '피 먹은 양 붉게 타오르는 고흔 설' 배암처럼 스미는 전율 속에서 볼 수 있는 '꽃대님보다도 아름다운 빛'을 포착하기 위함이라 하겠다.이 시가 갖는 궁극적인 경지는 '순네'에 대한 작자의 감정이다. 말하자면 애욕인 것이다. 이 애욕이 꽃뱀을 통해 발화되고, 더욱 부채질 당한다. 징그러우면서도 아름다운 뱀의 이미지가 순네에게 스며 들어, 윤리와 도덕을 배반하는 애욕이 탐닉케하고, 따라서 이와 같은 애욕이 풀향기 코를 찌르는 오솔길 풀섶에서 이루어지기를 갈망하는 숨가쁨. 여기서 우리가 유의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석유 먹은 듯…… 석유 먹은 듯……가쁜 숨결이야'하는 표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