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지도자 연구]사회주의 경제의 짜르 주룽지1.인물탐구에 앞서..(인물선정 동기와 들어가는말)얼마전 4세대의 국가주석으로 후진타오가 선출되고 여러 인재들이 그를 따라 교채되고 선출되었다. 앞으로 후진타오와 새로운 4세대의 지도자들이 이끌어 나가는 중국은 어떻게 펼쳐질까가 매우 중요한 궁금증으로 대두되고 있다. 새로이 변화할 중국을 알기위해 미래를 예측하는것도 매우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과거를 다시한번 돌이켜보는 것이 아닐까 싶다. 특히나 90년대부터 사회주의 체제에서 자본주의 체제로의 변화를 선언한 중국의 점진적 또는 급진적이었던 경제부문을 다시한번 재조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체제의 변환으로 인하여 많은 부분들이 변화를 겪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변화를 겪고 가장 큰 관심을 받았던 부분은 아무래도 경제부분일 것이기 때문이다. 체제의 변화의 성공과 실패는 중국의 경제가 성장하느냐 혹은 추락하느냐로 좌우할수 있기 때문이다.나 역시 이번 학기부터 중국경제에 관한 수업을 들으면서 체제 변화 이후 중국의 경제 전략들을 조금씩 알게될 수 있었고 그 부분에 많은 흥미가 생겼다. 이번 과제를 하면서 연구 대상을 "주룽지 전 중국총리"로 결정한 것은 그를 알아봄으로써 지난 기간동안의 중국경제의 변화와 개혁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보고 싶어서였다. "주룽지 전 총리"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된다면 어떻게 그가 그런 개혁들을 이끌어 내었는지, 어떠한 상황에서 왜 그런 결론을 내리고 행동을 했는지에 대해 더 빠른 이해가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현재 많은 사람들은 새로이 당선된 "원자바오 총리"가 "주룽지"의 노선과 행보를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따라서 "주룽지 전 총리"를 아는 것은 즉 중국 경제의 앞날을 아는 것과 같다고 판단하였다. 그렇다면, 주룽지와 그의 행보를 아는 것은 중국의 당분간의 경제 행보를 아는 것 과 같을 것이다.그럼 이제부터 사회주의 경제의 황제라고 불리우는 "주룽지 전 중국 총리"에 대동남아 금융위기로 인한 위안화의 평가절하 가능성 등 경제문제 가 최대의 이슈가 돼 있기 때문이다.홍콩의 한 언론은 「비상기에는 비상한 인재를 필요로 한다」는 말로 주룽지 총리의 등장을 함축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홍콩의 한 언론은 「비상기에는 비상한 인재를 필요로 한다」는 말로 주룽지총리의 등장을 함축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주룽지는 강점과 약점이 뚜렷한 정치가 이다. 그의 장점은 해박한 경제이론과 함께 과단성있는 실천능력을 겸비했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철면무사(鐵面無私), 즉 인정에 구애 받지 않고 공평무사하게 일을 처리하는 원칙주의라는 게 주변사람들의 평이다. 그는 뎡사오핑이 설계한 개혁. 개방정책을 경제적인 면에서 성공적으로 연착륙시켰다. 그는 스탈린식 계획경제에 밝은 천원, 야오이린 등 구시대 경제전문가와는 달리, 시장경제방식을 과감하게 도입해 상하이 건설에 큰 성과를 올렸다.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덩샤오핑에 의해 경제전반을 담당하는 부총리에 발탁된 뒤에는 경기과열을 억제하고 고성장을 유지하며 국제수지 흑자를 달성하는 수완을 발휘했다. 이 과정에서 그가 보인 시장경제에 대한 지식과 강력한 지도력,청렴성은 내외에서도 상당한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그가 경제 개혁을 추진하면서 얻은 카리스마의 이면에는 많은 그림자도 있다. 그가 추진한 개혁과정에서 양산된 당과 정부의 희생자들이 잠재적인 적을 형성하는 있는 등 정치적 기반이 취약하다는 약점을 갖고 있다. 이슈로 떠올랐던 국무원 기구개혁조치를 주룽지가 주도했던 것이 그 좋은 예다. 폐지대상 부처의 반발이 대단해 한때 감축규모가 줄어들 것이라는 소문이 유력하게 나돌았으나 주룽지는 결국 최초의 원안대로 11개 부처를 통폐합시키는 개혁방안을 3 월6일 전국인민대표대회에 보고했다. 주룽지 총리내정자는 각부처의 반발을 무마하느라 식사도 걸러가면서 관련간부들을 설득에 나선 것으로 전해진다. 이번 조치로 잘리게 될 공무원들로부터 커다란 원망을 듣게 될 것이 분명하지만 그가 물러설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또 그가 국정을 총괄하에는 중국의 금융계로 옮긴 듯하다. 부인은 최근 들어서야 국가적인 행사에 주룽지와 함께 외국 방문을 하거나 외국 수뇌가 중국을 방문했을 때 접견 장소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였을 뿐, 국내에서는 언제나 공개 석상에 나오지 안아서 남의 눈에 그다 지 띄지 않는 존재이다. 그러나 주룽지가 가끔 스스럼없이 부인에게 목소리를 낮춰서 말을 걸고 부인이 가볍게 머리를 끄덕이는 모습을 텔레비젼에서 보면, 밖에서 항상 엄격한 얼굴 표정을 하는 주룽지도 집안에서는 편안한 휴식이 개혁 개방 시대의 격렬한 싸움에서 항상 지쳐 있는 그가 다시 힘을 낼 수 있도록 하는 마음의 안식처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주룽지는 가정의 안락함에 푹 빠져 있을 여유가 없다. 그는 1997년 다음과 같은 진지하게 이야기한 적이 있다.“베이징에 다시 돌아오면서 머리가 빠지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몇 년간 부총리를 지내오면서 머리색은 하얗게 되었다. 나는 설령 머리털이 전부 빠져 버리더라도 중국 경제 발전에 내 인생을 건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그는 정말 이런 생각으로 1998년 3월 신임 총리의 자리에 앉았다고 생각된다.※출처: [주룽지]/ 주젠룽/ 신동기 옮김아시아 금융위기의 극복 등 위기관리의 열쇠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역시 참신한 인물이라는 결론을 얻게 된다. 그 대표적 모형이 신중국의 주룽지(朱鎔基)총리가 아닐까. 등소평의 실용주의적 발상전환에는 그의 젊은 시절, 7년간의 프랑스 빠리 유학이 보수적 중공당 노간부와 다른 신중국만들기의 응전방식을 내놓게 했다는 설도 있다. 등소평의 뒷받침으로 중국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총수가 된 주룽지 총리가 외국 귀빈과의 회담에서 능란한 영어 구사력을 과시하는데 한번 주목해 볼만하다. 주총리는 미국 유학생도 아니고 중국 공산당세상에서 교육받고 공업분야의 간부가 된 학·경력 그 어디에서 그의 영어실력이 나왔을까.그는 우연스러운 영어조기교육을 받은 행운아였다. "2대유복자"로 고아같이 자랐으나 그는 미션계 소학교(崇德小學敎)에서 조기영어교육의 기초를 탄탄 총리다. 칭화대학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했으며 1988년 장쩌민 밑에서 상하이당 부서기와 시장을 지냈다. 1989년 江이 최고 지도자가 되면서 상하이당서기직을 이어 받았고 1991년 부총리로 임명돼 베이징에 입성했다. 이듬해 거의 혼자 힘으로 20%를 웃돌던 소비자물가상승률을 잠재운 것은 그의 최대 공적으로 꼽힌다. 1998년 3월엔 리펑(李鵬)의 뒤를 이어 총리로 취임해 제2인자가 됐다. 주룽지가 베이징에서 처음 경제실권을 잡았을 때 한 일은 인민은행 총재를 갈아치우고 여신 상태를 매일 직접 챙기는 일이었다. 이때 인민은행 총재로 전격 임명된 인물이 천위안(陳元)이다. 그는 중국 공산당 원로 천윈(陳雲)의 아들이다. 칭화대학 자동제어공학과를 졸업한 뒤 사회과학원 대학원에서 현실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베이징시당 상무위원을 거쳐 인민은행 부행장으로 임명된 뒤 본격적인 경제통의 길을 걸었다.1990년 경제문제에 관한 고위회의를 주재하던 장쩌민이 회의가 시작되자마자 리펑(李朋) 총리 등 많은 당정 요인을 제켜둔 채 “천위엔 동지가 먼저 발언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각별한 신임을 받았다. 그의 경제관은 한 마디로 ‘긴축금융 우선론’으로 요약된다. 또 중앙정부의 직접적인 계획에 간접적으로 시장활동을 덧붙이자는 정부 역할 우선론자다. 이 점에서 그는 계획경제론자라고 볼 수 있다. 현재 중국 개발은행장으로 있으며 중국 정부가 심혈을 기울여 추진하고 있는 서부지역 대개발 사업의 주요추진자다.다음으로 주룽지의 심복으로 불리는 사람은 러우지웨이(樓繼偉) 재정부 부(副)부장. 국가경제체제개혁위원회의 거시조정국장을 거쳤다. 80년대 자오쯔양을 도와 개혁을 조율하던 전문가의 한 사람이었지만 주룽지의 눈에 들어 범상하이파 일원이 된 뒤 朱의 금융정책을 최일선에서 실천하는 오른팔과 같은 인물이다.다음으로는 주룽지가 맡고 있던 국가경제무역위원회 주임을 역임한 셩화런(盛華仁). 현장경험이 풍부한 석유화학업계 전문가로 朱가 주도하고 있는 국유기업 개혁에 에 총력을 기울이는 리룽룽(李榮融) 국가경제무역위원회 주임도 주총리가 이끄는 경제 실무내각의 야전군 사단장이다.주총리는 측근을 두지 않기로 소문나 있다. 이 때문에 국무원 안팎에서 그의 측근으로 불리는 인물은 극소수다. 그중에서도 인민은행 부행장을 역임한 후 현재 증권감독관리위원회 주석으로 있는 저우샤오촨(周小川), 국가 원로 야오이린(姚依林)의 사위로 광둥성 부성장을 지낸 후 현재 국무원 경제체제개혁판공실 주임으로 자리를 옮긴 왕치산(王岐山), 저명 경제학자 우징롄(吳敬璉)의 애제자로 경제체제개혁판공실 부주임으로 있는 리젠거(李劍閣), 원로 천윈(陳雲)의 아들로 국가개발은행장을 맡고 있는 천위안(陳元) 등이 주총리의 신임을 받는 측근으로 알려져 있다※참고: 이종환 < 동아일보 베이징 특파원 > "중국경제를 움직이는 핵심 60명"4. "주룽지"의 업적주룽지를 포함한 장쩌민 세대에게는 '21세기 중국'의 도약을 위해 추진해야 하는 3대 개혁이 과제로 다가왔다. 행정개혁, 국유기업개혁, 금융개혁이 바로 그것이다.주룽지(朱鎔基) 총리는 당·정 최고지도자들을 포함한 정식대표 2,869 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9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가 개막된 첫날 회의에서 행한 99년 정부공작(업무) 보고에서 점진적이고 단계적으로 지방공무원 수를 절반으로 줄이는 한편 내수 확대와 적자예산, 사회간접자본 투자 등을 통해 7%의 성장 을 이룩하겠다고 밝혔다. 주룽지 총리는 “성정부 관할하의 기관들은 원칙상 관리들을 점진적이고 단계적으로 50%까지 줄여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국유기업 개혁도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강조했었다. 중국이 아시아 금융위기로 인해 예상보다 큰 타격을 입었다고 밝힌 주 총리는 올해도 “적지 않은 어려움과 문제들에 직면할 것”이라면 서 적절한 통화정책을 통해 위안화 환율 안정을 유지하겠다고 말했다.※참고: http://home.donga.ac.kr/%7Edcll/binghua/bing8.htm그는 89년 천안문 사태로 고립된 중국을 특유의 뚝심과 신뢰감으로 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