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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 소월 육사 만해 비교
    【 김소월 · 이육사 · 한용운 비교 】1. 김소월의 「진달래꽃」과 아이러니진달래꽃나 보기가 역겨워가실 때에는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오리다영변(寧邊)에 약산(藥山)진달래꽃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가시는 걸음걸음놓인 그 꽃을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나 보기가 역겨워가실 때에는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이 작품의 화자는 사랑하는 임으로부터 버림을 당하기 직전의 여성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남자가 여자로부터 버림을 당할 수도 있지만 한국적인 전통으로 보아서 여인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여인으로부터 남자는 떠나려고 한다. 그래서 첫째 연에서처럼 만약에 떠난다면, 그것도 역겨울 정도로 싫어져 떠난다면 고이 보내드리겠다고 말하고 있다. 이 때 여인의 내심에는 떠나지 말라는 소망이 담겨 있다. 따라서 나를 버리고 가지 말아 달라는 뜻을 이렇게 바꾸어 표현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내심을 파악할 수 있는 시어가 역겨워 라는 부분이다. 지금까지 나를 사랑하였는데 내가 역겨울 정도가 되지 않는다면 가지 말라는 소망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첫째 연부터 화자가 표면적으로 얘기하는 내용과 내재된 뜻은 반대라고 볼 수 있다. 바로 이것이 아이러니의 구조인 것이다.둘째 연에서 그래도 떠난다면 한 걸음 더 나아가 영변에 약산 진달래 꽃 을 따다가 가는 임의 발 밑에다가 뿌리려고까지 한다. 이 경우 역시 가기를 기원하는 헌신 또는 축복이라 보기는 힘들다. 물론 참음과 체념이라고 볼 수 있겠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겉으로 나타나는 체념이지 내면에 흐르는 갈등은 아닌 것이다.셋째 연에서 이러한 갈등이 부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가시는 걸음으로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 라고 한다. 사뿐히는 소리가 나지 않도록 밟는 가볍고 조심스럽게라는 뜻이지만 즈려 밟고 의 ; 즈려 는 눌러, 지질러 의 뜻을 지닌 평안도 방언이라고 한다. 지질러 의 기본형은 지지르다 로 기운을 꺾어 누르다 , 무거운 물건을 내리 누르다 는 뜻이다. 따라서 사뿐히 와는 서로 모순되는 의미이다. 이 부분만 보면 역설적 표현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부드럽게 밟는다는 사뿐히 와 짓밟는다는 뜻으로 파악될 수 있는 즈려 밟고 사이의 모순은 화자의 갈등이 밖으로 표출된 부분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때의 꽃 을 버림받는 화자를 상징한다고 보면 버림을 받는 것보다 짓밟히기를 기대한다고 볼 수 도 있다.결국 마지막 넷째 연에서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린다 는 아이러니의 극단이 등장하고 있다. 눈물은 죽어도 아니 흘리겠다는 결의는 이를 다물고 참지만 속으로는 피눈물이 난다는 내포를 간직하고 있다.이상과 같이 처음부터 아이러니의 어조로 마지막 넷째 연을 향하여 치닫고 있는 시가 바로 이 시인 것이다. 이 시의 구조를 반어적으로 파악하여 외연과 내포가 대립한다고 볼 때, 이 속에 등장하는 여인상을 체념과 순종의 여인상이라기보다 끈질기게 사랑을 갈구하며 기다리는 여인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이별의 슬픔을 외연적으로 극복하였지만 내면적으로 항상 그리워하고 있는 여인상, 어쩌면 남편을 떠나 보내고 참고 기다리거나 고독을 간직하고도 수절하는 여인상 그것이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여인상이며 현실에 있어 온 여인들의 삶이기에 이 시는 더욱 반어적이라 볼 수 있다.2. 이육사의 「절정」절정매운 계절(季節)의 채찍에 갈겨마침내 북방(北方)으로 휩쓸려오다.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高原)서릿발 칼날진 그 위에 서다어데다 무릎을 꿇어야하나?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이러매 눈감아 생각해 볼밖에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육사가 우리 현대시사에서 가장 뚜렷하게 비극적인 삶을 살고 간 시인이라면, 그의 삶은 바로 「절정」에서 궁극적인 시적 표현을 얻었다고 볼 수 있다. 「절정」은 하나의 한계 상황을 상징하지만 거기서도 그는 한발자국의 후퇴나 양보가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매운 계절'인 겨울, 즉 그 상황 자체에서 황홀을 찾는 것이다. 그러나 그 황홀은 단순한 도취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강철과 같은 비정과 날카로운 경의를 내포한 황홀이다.이 작품은 기·승·전·결의 한시 4구체의 형식을 사용하고 있다. 일제 치하의 한민족의 극한 상황을 초극하려는 의지를 나타낸 것으로서, 당대의 식민지 현실에 강력히 대응하며 살아가려는 작가의 의지가 상징적 제재를 통해 형상화되었다. 제1연에서부터 3연에 이르면서 고통의 극한 상황을 점층적으로 보여 주다가, 4연에서는 시상의 논리적 전환이 일어나 극한 상황이 역설적으로 극복되고 있다.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라는 마지막 구절이 바로 그것이다. '강철'의 강인하고 어두운 이미지와 무지개의 현란하고 부드러운 이미지를 결합시켜 함축적 의미를 나타낸 역설적 표현으로 시인의 강인한 의지가 미적 승화를 거쳐 예술성을 획득하고 있다. 고통의 절정에 처해 있는 현실적 상황에서 '강철로 된 무지개'라는 정신적인 초월을 통해 현실 극복의 의지를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시적 화자는 비극적 현실 속에서 오히려 '무지개'와 같은 황홀감을 느끼는데, 그것은 막연한 도취가 아니라 강철과 같은 강인한 정신과 날카로운 결의로 비극적 현실을 온몸으로 감싸 안을 때 촉발될 수 있는 비장한 세계라고 할 수 있다. 투철한 현실 인식, 고발성, 현실에의 대결성 등의 작자의 저항 정신을 역설적 미학과 남성적 어조로써 장엄하게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또한 육사는 강렬하고 역동적인 시어를 거침없이 사용하고 있는데 어느 면에서 보면 지적인 절제가 아쉬운 듯 하지만 강렬한 이미지 구성으로 시적 긴장을 강화시키는 효과를 갖고 있다. 그러한 강렬한 시어가 육사의 보다 저항적이고 대결적인 당당함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될 것이다. 일제 하에서 소월, 만해가 보여주던 여성주의적 저항과는 또 다른 각도에서 육사는 강렬한 대결의 자세로 남성적 저항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3. 한용운의 「님의 침묵」과 역설한국 현대시에서 역설의 구조를 빈번하게 사용하고 있는 시인은 한용운이다. 그의 작품 가운데 시집의 제목이기도 한 「님의 침묵」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님의 침묵(沈默)1)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2)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3)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微風)에 날아갔습니다.4)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指針)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5)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6)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7)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8)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9)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인문/어학| 2003.04.02| 4페이지| 1,000원| 조회(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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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 김유정의 작품세계- 희극적 미의식의 표출 평가A좋아요
    【 김유정의 작품세계 】- 희극적 미의식의 표출 -30년대 농촌의 피폐와 도시의 궁핍화를 식민지라는 사회적 구조의 모순으로 인식하고, 이러한 사회적 모순이 빚어낸 유랑민들과 도시 빈민들의 일탈 행위 등을 드러냄에 있어 유정이 선택한 창작 방법은 반어(irony)와 해학(humour)의 형식이다.1. 바보형 인물 의 창조반어는 본의와는 반대되는 말로써 표면적으로 대상을 찬양하며, 도리어 그 가치의 몰살을 목적으로 한다거나 반대로 부정적·소극적 언사에 의해 도리어 긍정적·적극적 의미를 갖게 하는 표현이다.{) 백기주, , 서울대학교 출판부, 1979.이는 한마디로 말하는 사람이 뜻한 숨겨진 의미가 겉으로 주장한 의미와 다르게 나타나는 진술이다. 김유정 역시 이러한 반어를 써서 서술의 대상에 대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희극적 묘사를 더욱 효과적으로 추구하기 위해서 바보형 인물을 창조하고 있다.바보 는 못나고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사전적인 개념으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맹목적인 충동과 불합리한 본능을 가진 위험하고 비정상적인 인물로 상징된다. 즉, 보통사람을 기준으로 하여 인식능력에 있어 뒤떨어지는 사람으로 정의될 수 있다.소설 속의 인물들은 그의 욕망을 실현하고자 하는데, 그 욕망이 끊임없이 방해를 받아 좌절되기가 일쑤이다. 그런데 그 욕망의 좌절이 자신의 욕망의 대상과 그 실현방법, 예상되는 결과들에 무지한 데에 원인이 있다면 이 인물은 바보로 규정될 수 있는 것이다.{) 김형민, , 홍익대학교 박사논문, 1992.김유정 소설에 있어 욕망의 대상은 주로 경제적 풍요의 면모로 나타난다. 이는 작가의 시대인식과 무관하지 않다.「안해」는 자신의 아내를 들병이로 내보내서 돈을 벌려고 하지만 뭉태와 놀아나는 아내를 보고는 그 계획을 철회한다. 그리고 곰곰이 궁리한 끝에 나온 욕구 실현의 방법이 고작 아이를 많이 낳는 것이다.「솟」에서 근식은 마을에 온 들병이에게 마음이 팔려 아내의 속곳, 맷돌짝을 가져다주고 들병이의 환심을 사려한다. 심지어 자기 집에 있는 솥마저 갖다주고 야밤에 그녀와 도망할 계획까지 세운다. 이처럼 집안의 물건을 아내 몰래 훔쳐다가 들병이에게 안기는 데에는 들병이의 기둥서방이 되어 들병이가 벌어들이는 재물로 호강을 해보고자 하는 욕구에서이다.하지만 들병이를 통하여 얻고자 하는 그의 호강은 게숙의 남편의 출현으로 무참히 깨지고 만다. 근식은 게숙이 자신의 굶주림을 모면하기 위해 들병이 노릇을 한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소낙비」의 춘호 부부는 진저리 나는 이 농촌을 탈출하여 서울로 가고자 한다. 하지만 이들의 서울행이 결코 이루어 질 수 없으리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서울을 가기 위한 방법에서 이미 확실한 보장이 없는 것이다. 노름판에서의 교묘한 손재간 이 있다고는 하나 이러한 손재간이 노름판을 휩쓴다는 보장이 있었다면 벌써 유랑생활에서 벗어났을 것이다. 또 노름밑천을 마련하기 위해 아내의 매춘을 부추기는 일과 서울에서의 성공이란 것도 기껏해야 아내를 안잠자기로 내보내는 것이라는 생각은 이미 정상인의 사고를 벗어난 인식인 것이다. 이처럼 춘호는 아내의 정조라는 것을 단지 생활의 방편을 위해 제공될 수도 있는 것이라는 식의 인식적 무지를 보이고 있는 점에서 정상인의 사고에 미치지 못하는 바보형 인물로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金따는 콩밧」에서의 영식 부부 역시 가난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욕구에서 콩밭매기를 그만두고 금을 캐자는 수재의 제안에 따르게 된다. 처음에 영식은 금점이란 칼물고 뜀뛰기다. 잘되면이어니와 못되면 신세만 조판다 는 사고로 극히 정상적이고 온건한 생각을 가진 인물이었으나 수재의 꾀임에 넘어가고 만다. 결국 금이 나오기는 틀렸음을 깨닫게 되었음에도 그는 계속해서 땅을 파헤치는 바보형 인물로 전락한다. 더욱이 마지막에 이르러 수재에게 속아넘어가는 장면에 이르러서는 완전한 바보형 인물로 고착화되고 마는 것을 볼 수 있다.이렇게 비정상적인 가치관, 전도된 윤리관에 바탕을 둔 욕구의 실현에서 실패하고 있는 바보형 인물 들은 바로 김유정이 살던 당시의 현실세계가 무언가 전도되고 근원적으로 잘못된 것이라는 점을 시사하는 반어적 표현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하지만 김유정이 그의 작품에서 묘사하고 있는 바보형 인물들의 창조는 결코 농민의 무지나 도시하층민의 악착스러움을 비웃고자 하는 의도에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그것은 그러한 상황의 배경이 되는 궁핍한 현실의 질곡이 어디로부터 연유하는가를 보여줌과 동시에 참혹한 현실과 절박한 상황들에서 오는 충격을 완화시키고 상황에 따르는 비애를 차단함으로써 보다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그 본질에 접근시키려는 명백한 문학적 노력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2. 아이러니의 구조와 양상작중의 바보형 인물이 가지는 아이러니적 특성은 서술적 견지에서 작가의 중요한 창작의도 내지는 하나의 기교로서 작용한다. 김유정 소설에서 바보형 인물의 욕망의 달성은 이미 실패로 끝나는 것이기 때문에 결과가 문제시되기보다는 그 욕망이 형성되는 조건 내지는 배경에 해당되는 욕망의 발생원인이 바로 바보형 인물의 욕망이 생성되는 조건에 대한 규명이라 할 수 있겠다.1) 농촌 삶의 궁핍상「안해」「소낙비」「만무방」 등과 같은 작품은 농촌적 삶의 궁핍상을 드러내는 대표작 작품이다.「안해」에서 찾을 수 잇는 아이러니는 자기 아내에게서 일천오백 원을 바라는 화자의 어리석음이다. 그러나 이러한 아이러니의 배후에는 고달픈 그의 삶의 모습이 자리하고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결국 그가 아내를 들병이로 내보낼 게획을 세우게 된 동기는 그의 정조관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라 농사는 지어도 남는 것이 없고 빚에는 몰리고 있는 경제적 환경과 쌍지개질을 해야만 겨우 목구녕을 추길 수 있는 농촌 삶의 궁핍에서 기인하는 것이다.이처럼 김유정 작품 전반에서 보여지는 삶은 일제 치하의 농촌 수탈과 농민의 궁핍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이지만 실제로 그 원인 규명이나 삶의 전망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고 단지 현실을 살아가는 한 농민의 삶을 제시하고 있을 따름이다. 이는 독자로 하여금 더 한층 인물이 처하고 있는 삶의 한계에 주목하게 하고 연민을 느끼게 한다.「소낙비」는 서울로 가기위해 노름이라는 잘못된 방식으로 그것을 이루려는 춘호의 잘못된 욕망에서 아이러니를 빗어낸다. 그러나 이러한 욕망의 배경에는 역시 농촌의 궁핍함이 깔려있음을 쉽게 찾을 수 있다.「만무방」은 응오가 자신의 욕망을 달성하는 방식에 있어 정상을 벗어나 심하게 훼손되어 있다는 점에서 아이러니를 찾을 수 잇다. 응오에게 있어 농민으로서의 삶의 조건은 노동과 토지의 소외라고 하는 농촌이 현실이다 이 현실은 일제의 가혹한 농민 수탈과 그에 기생하는 악덕 지주들의 횡포에서 비롯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러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하여 응오가 선택한 방식은 자기의 벼를 자기가 훔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이러니가 발생하는 것이다. 한편 농촌의 피폐함에서 오는 아이러니는 응칠에게서 보다 더 극명하게 나타나는데 응칠이 지금 만무방적인 삶을 살게 된 이유 역시 더 이상의 삶을 지속할 수 없을 만큼 절박한 농촌 피폐에 근본적인 원인을 두고 있다.2) 도시적 삶의 궁핍상「땡볕」은 병든 아내를 실험대상으로 병원에 맡겨서 병도 고치고 월급도 타먹겟다는 덕순의 무지한 욕망의 좌절에서부터 아이러니가 발생한다.오히려 해학이라고 할 수 잇는 덕순의 무지함에도 그 욕구의 발생원인이 잇겠지만 사실상 그 배경에 놓여있는 도시의 궁핍한 삶에서 찾아진다. 서울을 장대왔지만 벌이도 제대로 안도고 오히려 더 열악한 생활로 빠져든 것이다. 이러한 덕순의 삶은 자작농에서 소작농으로, 소작농에서 도시로의 이주, 도시의 생활 중에서도 이제는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막바지에 이른 피폐한 삶의 단면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3. 골계미의 양상풍자와 해학은 골계의 하위개념으로서 모두 개인이나 사회의 결점과 모순의 상태를 그 대상으로 하고 있다. 사회의 모순 구조에 대하여 표면적이든 이면적이든 공격하고 개선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는 것이 풍자와 해학의 공통된 기반이다.
    인문/어학| 2003.04.02| 4페이지| 1,000원| 조회(7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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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문학] 헤밍웨이-킬리만자로의 눈 평가A+최고예요
    The Snows of the Kilimanjaro헤밍웨이는 개인이 자신의 내부에 깃든 갈등의 존재를 파헤치며 스스로 승리의 의지를 불태우는 모습을 이 작품을 통하여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이 소설에서는 죽음이라는 공포가 항상 주인공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으며 성취욕구를 방해하는 요소가 되나 주인공은 오히려 이를 자신의 내적인 갈등을 통하여 기꺼이 감수한다. 드디어 그의 죽음은 갈등으로부터 해방되어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그리하여 거대한 킬리만자로산의 눈으로 나타나게 된다.이 소설을 플롯을 살펴보면 주인공 헤리는 사냥을 좋아하고 아프리카의 자연이 그리워 킬리만자로 산으로 돌아온다. 아프리카는 그의 생애에 있어서 가장 행복한 곳 중의 하나이다. 비록 화려하거나 사치롭게 생활을 하기에는 어려운 곳이기는 하지만 그는 자신의 묵은 때를 씻고 산과 더불어 강한 의지를 되살릴 수 있기 때문에 좋아하게 된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는 사냥도중에 다리의 상처를 입는다. 그것은 순전히 그의 실수로 일어난다. 상처를 입게 되는 과정을 보면 그는 사냥도중에 들판에서 노는 영양의 떼를 발견하고 이 모습을 사진에 찍으려 이동하다가 우연히 그의 무릎 부분이 가시에 찔리게 된다. 그는 약을 바르지 못한 채 2주일을 보낸다. 그후 그의 다리는 자신도 모르게 점점 썩어 들어가게 된다. 주인공 헤리는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나 상처가 심하여 썩어 들어감에 따라 마음에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그는 점점 마음에 내적인 갈등을 갖는다. 그는 그의 강한 의지를 잃지 않기 위하여 과거의 처참했던 광경을 자주 회상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자신의 의지를 되살리려고 한다.그는 아내 헬렌을 생각하면 할수록 그의 고뇌는 더욱 커지며 전전긍긍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의 아내는 너무나 헌신적이며 그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죽음은 아내에게 큰 절망을 안겨 줄 까봐 갈등에 빠진다. 이와 더불어 그는 작가로서의 작품을 쓸 수 없게 된다는 불안도 함께 느낀다. 죽음이 임박하자 그는 긴 꿈을 꾼다. 기안의 가죽의자 위에 실린다. 드디어 비행기는 뜨기 시작하고 컴톤은 헬렌과 소년들에게 손을 흔든다. 그들은 고도를 높여 동쪽이라고 생각되는 방향으로 날기 시작한다. 이제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하여 그들은 폭우 속으로 들어간다. 비가 너무 심하게 내려서 그들은 마치 폭포 속으로 날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컴톤은 고개를 들고 웃으면서 가리킨다. 그에게는 이 모든 광경이 대견하게 보이고 그가 큰일을 하고 있다고 자부하는 표정인 것 같다. 이제 그들 앞에 광활하게 펼쳐진 광경은 참으로 큼직하고 높고 넓게 자리잡힌 채 찬란한 햇빛 속에서 희게 빛나는 킬리만자로의 웅장한 모습이다. 헤리의 긴 꿈은 여기서 끝난다. 그는 드디어 숨을 거두고 헬렌은 밤에 하이에나의 울부짖는 소리에 잠을 깬다. 그녀는 회중전등을 찾아 헤리가 누운 침대를 비쳐본다. 모기장 아래 놓인 헤리의 모습을 보고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란다. 다리의 붕대가 풀어헤쳐진 모습을 그녀는 보면서 "헤리"하고 여러 번 계속하여 불러본다. 그러나 대답이 없다.이 소설을 통하여 우리는 헤밍웨이가 다루고 있는 인간의 내면적인 갈등을 잘 알 수 있다. 즉 주인공 헤리를 통하여 그의 내적 존재와 외적존재간의 모순과 갈등을 잘 볼 수가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양면성은 한 인간과 그 인간간의 내부적인 투쟁에서 나타나는 것이므로 순전히 자신의 갈등에서 빚어지는 것이다. 만일 주인공 자신이 죽음을 맞이하여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을 포기해 버리고 편안히 숨을 거둘 것을 원한다면 그의 내적 존재와 외적 존재간의 갈등은 하등의 의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특별하다. 그의 죽음은 특별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주인공의 마음속에 갈등을 야기시킨다. 그에게 있어서의 죽음은 그 자신의 단순한 종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하여 의지가 다시 살아나는 그러한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의 의지를 통하여 큰 승리를 쟁취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이 나타내는 의지는 이미 살펴본 대로 자신의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개 고민이다. 이 둘은 주인공의 뇌리에서 맴돌면서 끝없이 그를 방황하게 한다. 이와 같이 헤밍웨이의 갈등은 인간의 마음속에서 움터 심리적인 방황으로 계속적으로 이동하게 한다. 이러한 심적 방황은 뚜렷한 목표가 없이 부동하는 방황이 아니라 인간의 진실과 성실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결단을 내리기 위한 방황을 말한다. 그는 아프리카의 거대한 산 킬리만자로에서 혼자 마음속으로 방황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심적인 방황에서 벗어나서 이기기 위하여 자연과 가까이하고 거기서부터 극복의 의지를 배운다. 헤밍웨이는 킬리만자로 뿐만 아니라 전쟁터를 사랑했고 투우를 좋아했고 또 거대한 산이나 바다를 그리워했다. 그러나 이러한 자연들은 그에게 무한한 고통과 번뇌를 주었고 망설임을 갖게 했던 것이다. 그는 이러한 자연의 사랑과 더불어 헤리로 하여금 죽음을 예상케 하면서 그로 하여금 내적인 갈등을 일으키게 한다. 헤밍웨이가 죽음을 가장 강하게 그리고 가장 기교적으로 다룬 단편이 바로 이 작품이다.이 단편은 헤밍웨이가 죽음이란 주제를 구성면에서나 또는 분위기면에서 얼마나 훌륭하게 그리고 상징적으로 처리했는가를 감동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의 내용은 이미 플롯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주인공 헤리가 아프리카의 거대한 킬리만자로 산에서 아내 헬렌과 함께 사냥을 하다가 발에 입은 상처가 덧나 죽어가던 중 한 비행기에 구출되어 도회지로 후송되면서 킬리만자로 산을 항하여 날아간다는 망상에 사로잡히는 이야기이다. 소설의 처음부터 끝까지 죽음에 시달림을 받는 주인공 헤리는 지난 반생의 몇몇 시절을 회상한다.죽음은 이 단편 전체를 시종 지배하는 주제이기도 하지만 주인공의 회상에 나오는 과거의 몇가지 삽화 하나하나를 지배하는 것도 역시 죽음이다. 그의 회상에 나오는 삽화에 있어서 처음에는 죽음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고 먼 곳에 있는 배경처럼 등장하지만 회상이 진행됨에 따라 차츰 가까이 다가와서 드디어는 이 작가의 신변 근처로 옮아온다. 헤밍웨이가 목격한 죽음은 언제나 비명의 죽음이며 잔인한 죽음이부터 시작하여 의례히 다가오는 죽음의 이야기로 끝난다. 지금 헤리의 아내 헬렌은 그의 육체적인 생명을 구하려고 필사적인 간호를 하고 있지만 따지고 보면 부호의 딸인 그녀의 재산이 이미 그를 나태와 방종의 생활로 이끌었기 때문에 그를 문학적으로 죽였던 것이다.그의 주변이나 회상 속에 나오는 상징물들도 모두 죽음과 연관되어 있다. 살이 썩는 냄새를 맡고 차츰차츰 가까이로 다가오는 말똥가리나 하이에나는 물론이고 킬리만자로 산의 정상에 있다는 동사한 표범의 뼈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자주 등장하는 겨울과 눈은 물론 자연계의 죽은 계정인 동정을 상징하고 있다. 이와 같이 이 단편은 죽음 의 상징으로 충만해 있다. 그러나 실제는 이 죽음의 무의미를 나타내지 않고 신비스러운 위대성이나 약동하는 생명력을 나타내는 배경과 늘 대비하여 제시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죽음은 생명과 교차하는 아름다운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죽음의 이미지는 아프리카 대륙이나 주인공의 회상 속에 나오는 사물을 지배하지만 그 위대성이나 생명력은 주인공의 폭넓고 화려한 경험으로 점철된 생애의 전개 속에 제시되어 있다. 그는 온 세계를 여행하였고 각종 스포츠를 즐겼으며 전쟁에도 참가하였다. 그는 많은 여인을 사랑하였고 또 창조하려는 예술적인 욕구에 충만되어 있다. 사실 그가 회상하는 내용은 모두 그가 소설로 쓰고 싶으면서도 아직 쓰지 못했던 진실이었기 때문에 지금 죽음을 앞에 놓고 그는 평생을 통하여 가장 왕성한 창작 의욕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모두 주인공의 생명에의 의지와 활력을 암시하는 것으로 마지막으로는 킬리만자로의 정상을 향하여 비행하는 환상으로 그 절정에 다다른다.주인공의 의지는 죽음과 동거하며 창조를 향한 충동이 파멸감과 병치되어 신비스러운 생과 사의 이중형태를 구성한다. 이 소설의 진정한 주제는 이런 양면성에 있고 결국은 승리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의 의지를 암시하는 것이다.죽음은 헤밍웨이에 있어서 일면 두렵고 불쾌한 것인 반면에 또 한편으로는 이상한 매력을 지닌 새로운 생명력과 이하기 전에 자기의 예술적인 재능을 마음껏 발휘해보지 못했다는 뉘우침에 있다. 이러한 뉘우침을 주인공 헤리에게 절실하게 깨닫게 해준 원동력이 바로 그의 죽음이다. 그는 죽음과 대결하여 진실의 순간에 의식함으로써 자유인이 되고자 한다. 이와 동시에 주인공 헤리는 과거의 자기자신을 응시하며 재생으로 통하는 돌파구를 찾는다. 따라서 그의 죽음은 새로운 의미를 제시해 주고 있으며 과거의 기존적인 것에서의 결별을 의미하고 있다. 이 결별은 곧 전통이나 사회나 신으로부터 단절된 상태로 존재하는 것이며 고립무원의 자세로부터 새로운 윤리를 찾으려 하는 데에 있는 것이다.주인공 헤리가 맞이하는 죽음에서 그의 끈질긴 의지와 집념을 발견할 수 있다. 그가 맞이한 상황은 너무나 어려운 역경이다. 죽음이 거의 코앞에 다가오고 있으며 사랑하는 아내마저 놓고 떠나가지 않으면 안되며 쓰고 싶은 소설도 더 이상 쓰기 어려운 지경에 도달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강한 의지를 되살리면서 과거의 처절한 참상을 회상하고 독백함으로써 자신의 비극적인 입장을 오히려 자유롭고 진지하게 이끌어 간다. 그는 비록 육체적인 죽음을 맞이하지만 그의 정신은 다시 살아나서 큰 승리를 얻고 재생한다고 한다.헤밍웨이의 투쟁의지는 너무나 숭고하고 위대하기 때문에 종국에 가서는 주인공에게 대의를 달성케 하고 행복한 마음을 가지게 한다. 대의는 곧 주인공으로 하여금 한 큰 승리를 갖게 한다. 그리고 죽음은 한 큰 승리에 크게 기여하는 것이라고 헤밍웨이는 이 소설을 통하여 암시하고 있다. 헤밍웨이의 이와 같은 죽음은 모든 소설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특징이다. 죽음을 예상함으로써 주인공은 항상 불안정한 심적 갈등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 헤리의 죽음은 주인공에게 참기 어려운 갈등을 주지만 주인공은 그것을 강한 의지로 극복한다. 그는 육체적인 병으로 종내 죽게 되지만 그의 혼은 다시 살아한다. 헤리는 생물학적인 패배자는 될지언정 성스러운 행위를 함으로써 그의 정신적 존재는 살아남는 것
    인문/어학| 2003.04.02| 7페이지| 1,000원| 조회(2,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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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문학] 드라이저의 <씨스터 캐리>와 <한 미국인의 비극>
    ◈ 데어도어 드라이저 (Theodore Dreiser 1871-1945) 의 생애 ◈드라이저는 1871년 8월 인디아나주에서 독일계 이민인 죤 드라이저(John Paul Dreiser)의 12남매 중 11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드라이저의 아버지는 본래 직물공이었는데 한때 모직 공장의 감독에까지 올랐고 나중에는 공장을 직접 운영하게 되었으나 2년 후 화재로 공장이 모두 불타 버려 파산을 맞는다. 어머니마저 남아 있던 재산을 사기당하여 집안은 완전히 몰락해 버린다. 이러한 불운으로 초라한 노동자로 전락했음에도 드라이저의 아버지는 광신적인 카톨릭 신자여서 자식들에 대한 종교교육은 가혹하리 만큼 엄격했고 오직 神(신)의 은총만을 믿으며 성경과 교회의 교리를 빈틈없이 실행하도록 강요했다. 따라서 드라이저가 기성 종교에 대해 반발심을 갖게 된 것도 오로지 아버지의 광신적인 태도 때문이었다.이처럼 드라이저의 어린 시절은 처절한 가난의 역경이었으며 겨울이면 난로에 땔 석탄을 훔쳐와야 할 지경이었다. 그와 많은 형제 자매들도, 유행가 작곡가가 된 형 Paul 을 제외 하곤, 모두가 비극적인 삶을 살아야 했다. 드라이저의 자연주의 작품은 독서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고통스런 삶을 통한 경험의 소산이었다. 그가 첫 소설인 『시스터 캐리』 (Sister Carrie 1900)를 썼을 때 그는 자연주의 문학의 대표적 작가인 졸라의 작품을 읽지 않았지만 이 작품은 미국 자연주의 문학을 이끈 최고의 작품 중 하나가 된다.드라이저의 어머니는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온 이민의 딸이었는데 남편과는 성격이 반대로 인내심이 강하고 친절했으며 모성애가 강했다. 비참한 생활 속에서도 낙관적이며 어떠한 곤경에 처해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드라이저는 성장한 후에도 어머니에 대해서는 깊은 사랑과 존경의 마음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도 생존이라는 거센 물결에 휩쓸려 나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드라이저가 여섯 살 때 드라이저와 두 아이를 데리고 남편과 별거하여 설리반으로 옮겨 하숙업으로 을 살아가려 한다. 드라이저는 이 작품에서도 인생에서 커다란 유혹인 돈과 섹스의 포로가 되어 자본주의 사회를 비극적으로 살아가는 불가피한 운명의 희생자들을 묘사하고 있다.이후에 등장한 『금융업자』(The Financier, 1912), 『거인』( The Titan, 1914), 『천재』 ( The Genius ,1915), 그리고 유고작인 『극기주의자』( The Stoic, 1914)의 네 작품은 모두 선천적으로 강력한 초인적 인물들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들에 나타난 드라이저의 인생관은 초기의 작품들과 동일한 것이며, 이 소설들의 주인공 역시 운명에 희롱된 인간들로 한결같이 냉혹함과 부도덕에 의해 권력을 차지하지만 결국은 파멸하고 만다.드라이저는 『금융업자』에서 “우리는 우리들의 의사나 행동과는 관계가 없는 약점이나 결점 때문에 고생한다 그리고 인간은 모두 애정과 권력을 갈망하지만, 인간이란 어쩔 수 없이 인생의 함정에 빠지고 만다” 고 주장한다. 이 네 소설의 주인공들은 모두 강력한 힘을 가진 현대의 영웅들이고 승리를 쟁취한다는 점에서 초기 작품의 주인공들과는 구별되지만, 자신들이 피할 수 없는 외부적 압력에 의해 마침내는 자신의 운명들이 결정된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나타내고 있다.『한 미국인의 비극』(An American Tragedy,1925)은 드라이저의 전성기에 쓰여진 대표작으로 미국 자연주의 문학의 거봉이라 할 수 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그리피스(Clyde Griffiths)는 가난한 집안 출신으로 부유한 상류사회로 진출하기를 희망하는 나머지 자기가 임신시킨 공장의 여직공인 애인이 자신에게 결혼을 요구하자 자신의 출세에 방해가 된다고 여겨 애인을 죽이려 한다. 부호의 딸과 결혼할 가능성이 보이자 그리피스는 결혼을 약속했던 여직공 로버타(Robeta)를 호수로 유인하여 익사시키게 한다. 살인죄로 체포되어 기소된 그리피스는 유죄판결을 받고 마침내 사형언도를 받아 22살의 젊은 나이에 비극적인 삶을 마치게 된다.1927년 러시아 혁명 10주년있었으며, 부모의 광신적인 종교적 환상과는 거리가 먼 세속적인 유행과 환락의 세계에 감수성이 예민했던 것이다. 길거리를 지나가는 행인들을 상대로 찬송가를 부르며 거리설교를 하고 있는 자기 가족들을 바라보는 일반 행인들의 경멸적이고 동정적인 시선에 어린 마음에도 창피함과 아울러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는 클라이드는 자신을 구속하는 종교적 환경에서 벗어나 사치와 부의 세계에서 살아 보고 싶은 욕망이 느껴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라 하겠다. 그러나 그의 부모들은 현실을 도피한 광신자들이었기 때문에 자녀들의 교육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오직 하느님의 교리만을 믿고 따르도록 강요할 뿐이었다.지나가는 행인들이 던져 주는 푼돈에 의존하는 클라이드의 부모는 너무나 가난했고, 찬송 전도 이외의 세속적인 실제생활에는 무능할 뿐이었다. 그들은 부모로서 자신의 자식들을 육체적·정신적으로 잘 인도해야하는 부모의 의무와 도리는 망각하고 낯선 행인들을 구원하고자 했다. 따라서 자신의 자녀들에게는 일반적인 학교 교육과 사회 적응 능력을 제대로 교육시키지 못하여 험난한 삶에의 적응력을 길러주지 못했고 항상 가난에 짓눌렸으며 방황과 좌절의 삶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했던 것이다.어린 클라이드가 세속적 욕망과 불만의 현실 사이에서 갈등을 느끼고 있을 때 그의 누이 에스타(Esta)가 가출을 하게 된다. 부모들의 무관심과 더불어 길거리의 복음 전도에 불만을 느낀 에스타는 보잘 것 없는 떠돌이 배우인 카우츠(Coutts)를 따라 단순한 육체적 쾌락만을 즐기는 달콤한 유혹의 속삭임에 속아 사랑의 도피행각을 벌인다. 누이의 가출로 인해 클라이드는 자신의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고 일자리를 찾아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어 그는 약국의 점원으로서 사회에 첫발을 내딛게 된다.약국에서 일하던 클라이드는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는데 그것은 시내 호텔의 급사로 취직을 하게 되는 것이다. 호텔은 미국인의 부를 나타내 주는 전형적인 장소였으며 그곳의 생활은 모든 사람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사치와 향락의 표본이 되는 없는 현실을 느끼게된다. 이러한 현실에 대한 그의 인식은 그를 더욱 어려운 처지로 빠지게 한다.클라이드 자신은 그리피스 집안의 일원이 되었다는 자부심엔 어느 정도 위안이 되었지만 富(부)와 너무나 거리가 먼 자신의 현실은 그를 심리적으로 혼돈스럽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결국 분수에 넘치는 헛된 욕망을 갖게 함으로써 비극을 초래하게 된다. 클라이드는 초대되어 간 백부의 집에서 그가 동경하는 부의 세계를 상징하는 손드라(Sondra Finchley)를 만나게 된다. 그는 그녀를 본 순간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전기적 충격을 느낀다.자신은 감히 다가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바라볼 자격도 없는 것처럼 생각된 그녀를 본 순간부터 그는 그녀에게 완전히 압도당하고 만다. 자기의 처지와 능력으로는 그녀를 감당할 수 없음을 순간적으로 느낀 것은 사실이지만 한편으로 손드라는 그가 바라던 조건을 모두 갖춘 여자이기 때문에 클라이드는 그녀와 사귀고 싶은 충동을 갖게 된다. 하지만 그에게 주어진 환경은 그녀와 결혼하여 부와 성공의 세계에서 살고 싶은 생각조차도 허용하지 않는다.백부의 집에 다녀온 얼마 후 그는 백부의 배려로 여공들을 관리하는 감독책임을 맡게 되어 공장에서 좀더 좋은 대우를 받게 된다. 그러나 손드라에 대한 자신의 욕망을 달성하는 데는 아직 어림도 없는 수준이었기에 클라이드는 심각한 좌절감을 느끼게 된다. 여러 가지 그를 구속하는 신분상의 제약으로 인해 답답하고 외로운 생활을 하던 이 시기에 그는 우연히 여공인 로버타(Roberta Alden)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 이런 일은 그리피스 자신의 직책상 문제도 되고 가문에 커다란 수치심을 안겨줄 수도 있는 일이지만 자신의 순간적인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는 클라이드에게 그녀는 외로움과 좌절감을 없애주는 위안의 역할을 해주게 된다.로버타도 클라이드처럼 가난한 집안의 여자였다. 그녀는 클라이드처럼 자기의 어려운 가정 형편을 극복하고 부자가 되고 싶은 욕망이 있었기 때문에 사장의 조카인 클라이드가 관심을 보였을 때, 클라이드가 손 타고 호수를 지나면서 로버타를 살해할 계획을 세우기는 했지만 실제로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이고 있는 동안 로버타는 클라이드의 이상한 모습에 놀라 클라이드에게 가까이 가려다 몸의 균형을 잃고 기울어진 배에서 물에 빠지고 만다. 물에 빠진 로버타를 붙잡아 올리기 위해 클라이드가 손을 내민 것이 오히려 배를 전복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이때 로버타는 전복되는 배의 왼쪽 모서리에 머리가 부딪쳐 거의 실신상태가 되어 구조를 요청하나 클라이드의 방관으로 익사하고 만다. 결국 클라이드가 선택한 길은 로버타의 살해였다. 클라이드는 결코 출세의 상징인 손드라를 포기할 수 없었고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와 다른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환경의 유혹이 너무나 강렬했던 것이다.더욱이 그의 신분이 조금씩 상승되고 활동의 범위가 넓어짐에 따라 그의 욕망도 비례해 커짐으로써 자신의 처지를 외면하고 망각한 채 임신한 로버타를 살해하는 비극적 인간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살인을 저지른 후 범죄의 현장을 급히 벗어나 유유히 손드라와 그녀의 친구들과의 여행에 동참하는 여유를 갖지만 심약한 클라이드는 객관적으로 치밀한 계획 없이 감행된 살인이었기에 결국은 체포되고 만다. 그는 살인을 계획했으면서도 그가 체포되기까지 많은 증거를 남겼기 때문이다.제 3부는 클라이드의 체포와 재판 그리고 사형으로 구성된다. 살인혐의로 기소된 클라이드를 위해 숙부는 가문의 명예를 위해 변호사를 선임해 준다. 그러나 재판 과정에서 변호사와 검사가 조성하는 정치적 공방의 영향 때문에 그는 예상치 못한 어려운 상황에 빠지게 된다. 자신이 의도적으로 로버타를 살해한 것인지 아니면 우연한 사고였는지 그는 분명히 자신을 옹호하지 못한다. 처음 변호사에게 고백할 때는 고의가 아닌 우연이었다고 말했으나 맥밀란(McMillan) 목사에게는 살인할 의도가 있었으며, 이 모든 것이 손드라로 인해 발생했으니 이것이 유죄에 해당하는가에 대해 물어보는 태도의 애매함을 보여준다.이러한 클라이드의 태도에 대한 작가의 의도는 클라이드의 살인은 의도적이 아.
    인문/어학| 2003.01.19| 10페이지| 1,000원| 조회(6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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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문학] 세일즈맨의 죽음 평가A좋아요
    아더 밀러(Arthur Miller)의'세일즈 맨의 죽음(Death of a Salesman)'Ⅰ. 작가에 대해아더 밀러(Arthur Miller)는 1940년대 말 테네시 윌리엄즈와 비슷한 시기에 등장하여 그와 함께 유진 오닐 이후 미국 연극계의 양대 산맥으로 미국 연극의 전통을 계승했다. 현대 문명의 도래로 위기를 맞이하는 남부 지방의 전통 사회를 그린 윌리엄즈와는 달리 뉴욕 출신의 밀러는 현대 산업 사회와 개인간의 관계와 정치적인 이슈를 중점적으로 다루었다.1915년 10월 17일 뉴욕에서 유태인의 가정에서 출생한 그는 14년동안 할렘에서 살았다. 그 당시의 할렘은 여러 인종이 모여 사는 꽤 부유한 중산층 거리였다. 그의 아버지는 성공적인 비지니스 맨이었는데 1929년 경제 공황은 그의 가정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그로 인해 밀러는 트럭 운전사, 하역부, 창고 직원, 웨이터 등의 일을 해야만 했다. 이때의 경험은 하층민들의 삶에 대한 이해에 도움을 주었으며 그의 작품에도 반영된다. 학업 면에서는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던 그는 가까스로 미시건 대학에 입학해서 다니면서 극작의 경험을 쌓게 된다.그가 엄밀한 의미에서의 마르크스주의자는 아니었지만 사회와 개인에 대한 그의 관심은 그를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문제에 몰입하도록 만들었다. '다리에서의 조망(A View from the Bridge)'의 서문에서 그는 "진지한 극작가는 사회극을 써야 한다."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가 말하는 사회극이란 단순한 사회악의 고발이 아니라 개인의 존재가 자신이나 가족에게만 속한 것이 아니라 사회에도 속한 것임을 보여주는 극이다. 이러한 사회에 대한 개인의 책임을 주제로 다룬 '모두 나의 아들(All My Son)' 은 입센의 영향을 받은 사회 문제극이다. 불량 부품을 군에 납품한 것을 알고 아버지를 저버린 어느 소녀의 이야기를 친척으로부터 전해 듣고 극화한 이 작품은 1947년에 공연되어 여러 상을 수상하면서 밀러를 본격적으로 미국 극단에 소개하는 작품이 되었다. 1949년의 '세일즈 기대하였다. 그러나 두 아들은 그의 기대를 저버리고 타락해 버렸고 그 자신도 오랜 세월 근무한 회사에서 몰인정하게 해고당한다.궁지에 몰린 그는 장남에게 보험금을 남겨 줌으로써 자신의 위대함을 보여 주려고 매일 다투어 온 비프와 화해하던 날 밤에 자동차를 과속으로 달려 자살한다. 그의 장례식 날 아내 린다는 집의 할부금 불입도 끝나고 모든 것이 해결된 지금, 이 집에는 아무도 살 사람이 없다고 그의 무덤을 향해 울부짖으며 이야기하는 것으로 연극은 끝난다. 현대 미국사회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엿볼 수 있으며, 주인공의 죽음을 건 최후의 자기 주장은 감동적이다. 늙고, 피로에 지친 그의 뇌리에 쉴새없이 떠오르는 과거의 장면을 현실과 교착시켜 무대에 표현하는 극작술은 독창적이다. 1969년 오화섭의 번역으로 정음사(正音社)에서 간행되었다.1. 첫 번째 - 작품 분석(1) 등장인물의 성격과 의미이 극의 주인공인 윌리 로먼은 그의 이름이 시사하듯이 소시민으로서 현대를 살아가는 많은 서민층의 일원을 대표하는 유형적 인물(type character)이다. 윌리는 자동차가 상징하는 기계문명시대인 현대를 살면서 미국의 개척시대적 자연 속의 삶을 동경하는 모순적인 인간이다. 현실에 대한 불만족은 그를 언제나 과거의 자연적 삶을 그리워하게 하고, 이로 인해서 그를 더욱 사회적 부적응자로 만든다. 그의 행동 동기는 그 자신 스스로의 힘에 의해 창조되는 것이 아니라, 타인 혹은 조직에 의해 부여되는 사회에 살기 때문에, 그에게 있어서 성공이나 소속 집단에서의 승진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달려 있다. 다시 말하면, 직장 상사나 동료, 고객의 마음에 들어야 한다. 그가 다른 직업들 중에서 세일즈맨을 택한 것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개성과 존경심을 얻는 것이었는데, 이 생각은 윌리에게 많은 어려움과 고통을 후에 갖다주게 된다. 윌리의 비극은 서로 다른 가치관으로 형성된 시대착오적인 헛된 꿈과 공상에 집착하여 자신을 올바로 보지 못하고, 과대평가 하는 데에서 시작된다. 그는 자신이 생각하는 이을 현실에서 실현시키고자 하지만 사회의 냉대에 의해 달성하지 못한다. 그가 성공하지 못한 이유는 여러 가지를 들 수 있겠지만 우선 벤의 환상적인 부의 획득은 윌리에게 비현실적인 꿈을 심어준다. 이것이 결국 아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되고, 또한 84세의 늙은 세일즈맨의 전설적이고 비현실적인 인물의 존재이다. 그 때문에 윌리는 세일즈맨이 되고자 했지만 극히 허황된 것에 불과했다. 더 근본적인 원인을 살펴보면, 윌리 자신이 처음부터 물질적 성공으로 행복을 꿈꾸었다는 것, 그 꿈을 시대 착오적인 방법으로 추구했다는 점이다.윌리는 사회가 주는 환상, 즉 물질적 성공의 꿈을 위해 일생동안 노력하지만, 잘못된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꿈이 좌절되고 만다. 윌리의 파멸은 미국 자본주의 기업 윤리를 대표하는 하워드에 의해 가속화되는데, 더이상 회사에서 일할 필요가 없다는 말에 윌리는 그의 선친 와그너사장과의 친분, 그에게 이름을 지어 주었던 옛일, 34년간 회사를 위해 일한 것들을 이유로 내세워 근무를 하게 해달라고 간청하지만, 하워드에게 중요한 것은 이러한 인간관계가 아니다. 자본주의의 관점에서 볼 때 그는 더이상 투자가치가 있는 사람이 아닌 것이다. 현대 산업사회의 현실은 회사의 고용주인 하워드와 종업원인 윌리사이의 대화에서 잘 알 수 있는데, 하워드가 자랑하며 보여주는 Tape Recorder는 기계문명에 의해 지배받는 현대사회를 풍자하고 있다. 이 극에서 밀러는 노동력을 착취당한 뒤 이용가치가 없을 때, 퇴직 후의 적당한 보상도 없이 팽개쳐 버리듯 하는 자본주들의 잔인성을 고발하고 있다. 결국 주인공의 자살로 끝이 나는 이 작품은 그 당시 "미국인의 성공의 꿈"(Amercian Success Dream)에 사로잡힌 사회와 그 성공의 꿈을 맹목적으로 신봉하는 일반 소시민의 생활태도를 반영하고 있는데, 특히 어떠한 사회공학으로도 경감시킬 수 없는 고독을 야기 시킨 소외의 문제에 그 촛점을 두고 있다. 윌리를 통해 드러나는 소외 양상은 다양한데, 처음으로 드러나는 을 직시하기보다는 적당히 얼버무리고 거짓말로 덮어버리려는 그의 태도는 결국 그의 인생관에도 영향을 미친다. 어릴 때 신화적인 세일즈맨 데이비드 싱글맨의 죽음을 보고 세일즈맨의 길을 걷기로 한 그는 과연 그 삶이 자신의 적성이나 성품에 맞는지 자성해 보지 않는다. 현관을 고치거나 지붕을 올리고 마당에 채소를 기르는 등 목가적이고 자연과 가까운 삶에 자신의 길이 있음을 알면서도 그는 끝까지 월급도 없는 세일즈맨의 길에 매달린다. 그의 비극은 잘못된 꿈을 추구하고 자신의 진정한 실체를 직면하기를 거부한데서 기인한다. 그는 이상과 현실을 혼동하며 세일즈맨의 사업 윤리를 현실에 그대로 적용하여 자기 아들에게 거짓말과 도둑질이 정당화 될 수 있는 것처럼 가르친다. 그는 한편으로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호감을 사라고 가르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도록 가르치는 등 이율 배반적인 생각을 심어준다. 그는 끝까지 환상에 매달린 채 비프의 울음을 자기 철학에 대한 인정으로 받아들이고 꿈을 버리기보다는 자신의 생명을 버린다. 그는 밀러의 주장처럼 개인적인 존엄성을 위해서가 아니라 비프에게 돌아올 2만 달러를 위해서 생명을 버리는 것이다. 환상에 집착한 채 필연적이지도 않은 죽음을 자초하는 윌리에게서 비극적인 존엄성이나 승화를 찾아보기는 힘들 것이다. 조셉 하인즈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윌리 로만에게서 '승리'는 자신에 대한 비프의 사랑에 대한 깨달음 뿐만 아니라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한 깨달음이었어야 한다.For Willy Loman, "victory" would have been realization not only of Biff's love for him, but of "who he was."비프는 아버지를 파괴시킨 꿈을 거부함으로써 자신의 구원을 모색한다. 그는 "나는 이제 내가 누구인지 알아요"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정체를 직면한다.이러한 결점에도 불구하고 이 극이 미국인들에게 공감을 주는 것은 윌리라는 평범한 인물이 (그의 이름인 Loman(lo명의 힘이 아니라 그가 살고 있는 사회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의 주인공이 지니는 '비극적 결함'을 성격적인 약점으로 보았지만, 밀러는 이를 자신의 존엄성을 위협하는 사회구조에 대항하여 정당한 삶을 살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하는 주인공의 의지로 해석한다. 자신을 정당하게 평가하기 위해 사회의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와지려는 인간의 노력이 밀러 비극론이 핵심이 되는 것이다.밀러는 자신의 작품모음집에 붙인 서문에서 외판원이라는 소시민적인 직업을 지닌 지극히 평범한 인물 윌리를 비극의 주인공으로 옹호한다. 이 글에서 밀러는 윌리가 사회에서 겪는 갈등의 문제를 외판원으로 성공하기를 원하면서도 현대사회가 요구하는 '성공의 법칙'을 파악하지 못해 사회로부터 소외되는 것으로 설명한다. 인품과 남의 호감을 살 수 있는 외모를 지니면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 윌리의 주관적 성공윤리는 개인의 실용적, 경제적인 효용가치를 성공의 척도로 보는 자본주의 사회의 성공법칙에 어긋난다. 윌리의 자극의 원인은 사회에서 실패한 사람은 생존권을 상실하게 된다는 이러한 공인된 법칙을 어긴 탓으로 이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데 있다.밀러는 이러한 비인간적인 사회제도의 압력에 맞서서 존경심과 동료애를 강조하는 윌리의 가치관을 '사랑의 체계'로 본다. 비프의 성공에 대한 갈망은 윌리의 사랑의 체계를 형성하는 기본토대가 된다. 아버지에게 꿈이 실현되지 못한 현실의 초라함을 직시하기를 요구하던 비프가 눈물을 흘리며 매달릴 때 이를 아버지에 대한 아들의 사랑으로 생각한 윌리는 보험금으로 아들을 성공시키기 위해 자동차 사고를 가장하여 자살한다. 윌리에게 죽음은 사회의 억압적인 가치관을 벗어나 사랑의 체계를 완성하는 방법이 된 것이다. 그러나 윌리의 가족이 그의 이러한 죽음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함으로써 그의 성공에 대한 꿈은 영원히 사라져버리고 만다. 타인이 수용할 수 없는 그의 사랑의 체계는 삶에서만이 아니라 죽음에서조차도 무익한 것이 되어버린 것이다.윌리가 부당한 현실에 맞서서 자신을 정당하게 평가하기보다는었다.
    인문/어학| 2003.01.19| 18페이지| 1,500원| 조회(2,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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