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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의 여류 사인 - 이청조의 사세계 평가A좋아요
    Ⅰ. 머리말중국 문학에서 시는 항상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해왔다. 중국 문학이 선사적(先史的)인 구전가요와 신사적(信史的)인 4언시 시경으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절제적이고 투명정일한 시의 세계, 절도있는 예지의 세계에 만족할 수 없었던 사람들 사이에서 다른 돌파구를 모색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그리고 이러한 움직임은 도시와 시민계층의 발달로 인한 민간문학의 본격화와 맞물리면서 사 라는 장르를 탄생시켰다.사 는 음악과 완전히 분리된 뒤에 노래의 가사로써 새로 생겨난 것으로, 시와 음악이 결합된 음악 문예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따지고 보면 사 라는 것도 시에서 파생된 운문이라는 점에서, 시와 아주 동떨어진 것만은 아님을 알 수 있다.송나라 시대의 특징이었던 사 는 유영, 주방언 등 뛰어난 남자 사인들이 나타나 유행의 신국면이 열렸다고 할 수 있으나, 여성의 창작이 일반화되지 않았던 그 시대에 사 의 성숙에 기여한 여성 작가가 있으니 바로 이청조이다.이청조는 사 라고 하는 지극히 한정된 문학의 세계라 할 망정, 압도수미(남자를 압도함) 라고 후세의 평자를 탄식케 한 여성이었다. 그러나 당시의 문학 창작이 남성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사회 일반의 통념은, 이청조의 사 창작을 결코 호의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岸邊成雄, (역)천이두, 「중국 여성의 성과 예술」 (일월서각 : 1985), p.239 ∼ 249남존여비 사상에 비추어 보았을 때 여성의 창작은 예교를 무시하는 월궤행위(越軌行爲)로 비쳤던 것이다. 가령 왕작(王灼)이 그녀의 시문은 시정(市井)의 난잡한 말을 사용하여 제멋대로 써갈긴 것이다. 상류층의 시나 문장을 쓰는 여인들 중에 그녀처럼 얘기가 되지 않는 글을 쓰는 경우는 이제까지 본 적이 없다. 라면서 정면에서 그녀를 규탄하는 것은 그 한 예이다.이에 본고에서는 이청조의 사 를 올바르게 재평가하고, 그녀의 사 가 가진 문학사적 의의와 아울러 후대에 끼친 영향을 조명하고자 한다. 단 중국시사(中國詩史)가 대체로 정치의 변혁과 그 흥망성저히 당해낼 수 없어 화의를 맺었으나, 그 막대한 비용 때문에 국가 재정은 궁핍하였고, 사람들은 무거운 세금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려 한 것이 왕안석의 신법이었으나, 지주나 호족이 이에 반대하여, 구법당을 만들어 대립을 되풀이하였다. 이 신법당, 구법당이 관료를 양분하여 각각 인맥에 따라서 그 어느 편으로든지 가담하지 않으면 안될 상황을 빚어내기에 이른다. 이리하여 신법의 정신은 뒷전이 되고, 단순한 파벌싸움으로 화해버린 것이 이 시기의 형편이라 할 것이다.이런 시대상에서 그녀는 경학(經學)에 조예가 깊었던 부친과 문학적 소양이 깊었던 모친 사이에서 유년시절부터 유교적인 의식을 바탕으로 한 문학적 성향을 기를 수 있었다. 그리고 부친의 강직한 성품, 애국심, 문학에 대한 진지하고 탁월한 견해, 물질적인 검소함, 그리고 부친이 교류했던 소문 사학사(蘇門 四學士)의 날카로운 현실인식과 애국적 기개 및 학문적 의욕은 성장기의 이청조에게 문학적 관심과 비판적 안목을 기르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 그리고 이청조는 어려서부터 시(詩)에도 아주 능했다고 한다.이청조는 18세 되던 북송 제 7대 철종 황제의 원부(元符) 2년(서기 1099년)에 당시 태학(太學)의 제생(諸生)이었던 조명성과 결혼했는데, 남편과 함께 『금석록』을 편찬하면서 보다 예리한 분석력과 종합적인 정리 능력을 배양하게 된다. 더구나 이청조의 취향은 문학과 금석서화에 조예가 깊었던 조명성과 잘 어울리는 것이어서, 이청조의 여성으로서의 낭만성을 극대화시키는 요인이 되기도 하였다.신혼의 이러한 감미롭고 행복한 생활은 당시의 작품에 잘 반영되어 있는데, 따라서 이 시기의 작품은 즐겁고 유쾌하기만 할 뿐이다. 혹 그렇지 않더라도, 단지 관직과 학문적 이유로 자주 집을 떠나 있던 남편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한 것들이었다. 그럼 여기서 남편을 그리며 쓴 이청조의 초기작 일전매(一剪梅) 를 살펴보도록 하자.紅藕香殘玉 秋, 經解羅裳, 獨上蘭丹.雲中誰寄錦書來? 雁字回時, 月滿西樓.花自飄零水自流, 一種相思, 떠가는 구름을 빌려 남편에 대한 소식의 궁금함을 기탁하는 동시에 수심에 잠겨 공허하게 흘려보낸 시간이 서루에 달이 차게 되기까지임을 표현하였다. 또한 그녀가 거처한 곳의 비, 안개, 구름 등 천기를 소재로 이용하여 이별의 수심을 묘사하는 부수적인 배경으로 삼아 서글픈 분위기를 은은히 자아내고 있다. 이처럼 이청조는남편과 함께 자연을 구가(謳歌)한 작품들은 꽃이나 눈과 같은 일상 생활 속에서의 평범한 자연사물조차 놓치지 않고 섬세하게 예찬하는 예민함을 보여준다.하편의 첫행에서는 꽃잎이 떨어지고 물이 흐르는 것으로 청춘의 덧없음과 세월이 가는 것을 막을 수 없음을 비유하는 동시에 남편과 몸은 떨어져 있으나 그리워하는 마음은 하나임을 함축하였다. 마지막 행은 이 사의 주제구로 이청조가 이별의 수심으로 초췌해져가는 것을 표현한 구절이다. 이처럼 이 사는 이의 정감을 계절이나 자연물에 기탁함으로써, 섬세하고 함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또한 種相思, 兩處閑愁. 는 통속적이면서도 알기 쉬운 표현을 쓰면서도 대비를 통하여 이별의 슬픔에 대한 선명한 인상을 남기고 있다. 또한 주제면에 있어서도 전대의 이별상사를 주제로 다루었던 사는 주로 기녀와의 사랑이나 밀회 후의 별정을 묘사하고 있는데 반해, 이청조는 남편과의 이별을 심도있게 그려냄으로써 이들 부부의 돈독한 정을 엿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진솔하면서도 함축적으로 별정을 담아낸다는 자신만의 특성을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정감은 모두 이청조 자신의 현실 생활을 토대로 쓰여진 것으로 묘사에 꾸밈이 없어 읽는 이의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특히 사랑하는 남편과의 이별로 느끼는 고독감과 그리움을 완곡하게 묘사하고 있어 그 정조가 몹시 처연하다.이청조의 작품에는 또한 자연을 대상으로 하여 산수화를 그려내는 듯한 작품이 많은데, 이는 이청조의 성장 환경에서 그 이유를 찾아 볼 수 있다. 이청조는 제남 태생으로 그곳에서 소녀시기를 보냈으며, 이 시기에 부친을 따라 변경( 京), 낙양(洛陽)에 거처한 적이 있으며, 결혼한 이후에는 청주(靑말할 수 없는 것무한히 좋아라.연밥 이미 익어 연잎 떨어지는데,맑은 이슬 흩뿌려지니,부평초꽃 물풀들 촉촉하네.바닷가 모래 위 갈매기 백로 돌아보지 않으니.한스러운 듯한 일,사람들 일찍 돌아감일세.{ 박은경의 앞 글, P.48본 사는 가을의 경치를 제재로 삼고 있다. 전편은 호수의 풍경을 보고 느끼는 惜秋의 정감을 표현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호수 위에는 푸른 물결이 흔들리고, 부평초 꽃과 물풀들은 이슬을 맞아 촉촉하고 맑다는 묘사를 통해 자연을 사랑하는 이청조의 정감이 섬세하고도 정교하게 우의(寓意)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湖, 水, 淸露 등의 단어를 사용하여 수채화를 보는 듯 색채감을 느끼게 하였다. 봄날의 울긋불긋 피어나는 찬란함과는 다른 정적인 색채감을 통해 이청조의 고요하고 그윽한 생활정취를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호수위의 정경 묘사에서 꽃의 묘사로 옮겨지는 축소 지향적인 묘사를 보이고 있는데, 이는 자연경물의 묘사 끝에 자신의 은밀한 내면세계를 드러내는 데 일조할 수 있는 방식이라 생각된다. 또한 자연을 구가한 작품을 통해 이청조는 자신이 접하는 자연경물에 색감을 조화롭게 담아 시각적 특징을 나타냄으로써 자신의 은밀한 내면세계를 비쳐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2후기(後期)의 사(詞)송이 남송한 이후 전쟁으로 인하여 국가적으로는 위신이 실추되고 기강이 흐트러졌으며, 이청조 개인적으로는 남편과 사별하게 되었다. 나라가 동강나고 적에 짓밟혀서 발을 붙이고 살 집도 없는 세샹에서 여자 혼자 몸으로 살아가기란 참으로 쉬운 일은 아니었으리라. 그리하여 이와 같은 갑작스런 변화는 이청조의 정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고, 그 변화로 말미암아 시국과 관련된 고향에 대한 그리움, 타향살이의 고독함, 애국적 비분 등을 주제로 한 작품들이 나오게 되었다. 이 시기 이후에 지어진 사들은 현실생활을 매우 함축적이며 곡절하게 반영하여, 이청조 개인의 애가(哀歌)라기 보다는 시대적인 애가(哀歌)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여기서는 타향살이를 하며 사 만발한 꽃들이 광풍의 습격을 받음을 슬퍼하며 자신이 속세에 맡겨져 겪어야 했던 고통을 함축하였다. 특히 物是人非事事休 는 자신의 깊은 비애와 고통을 잘 표현해낸 구이다.하편은 聞說 , 也擬 , 只恐 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작자가 느끼는 걱정스러운 처지를 표현하였다. 특히 載不動許多愁 의 표현은 추상적인 수심을 일상적인 구어로 구체화시킴으로써 자신의 고통을 잘 드러낸 구이다. 아울러 그녀의 사에 많이 쓰이는 又 , 是 , 也 자와 같은 구어적인 표현은 그녀 사에 유창성과 생동감을 더해 주고 있다. 이러한 구어의 사용은 자칫 완약해지고 격률화되기 쉬운 사에 소탈한 느낌을 불어 넣음으로써 말하는 듯 쉬운 사, 혹은 인상이 강한 사를 만들어 내는 데 일조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처럼 현실생활에서 얻은 깊은 정감을 가식없이 진솔하게 표현한 이러한 창작 태도는 완약사인 이청조의 호방한 일면을 부각시켜 주는 점이라고도 할 수 있다.이청조의 사를 전기와 후기로 나누어 살펴 본 결과, 우리는 이청조의 사세계가 시대상과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상 3편의 사를 통해 알아본 대로 전기의 사는 화려함을 추구하고, 완약한 정조가 주를 이루었다. 그리고 그 내용도 신혼의 달콤함이나 임지에 있는 남편을 그리워하는 것이 많았다. 그러나 후기로 올수록 화려함보다는 소박함을 추구하게 되고, 쓰디쓴 애수와 비탄에 찬 작품이 많아졌다. 그리고 현실적이고 직설적, 강개적인 어조와 함께 호방한 경향으로 흐르게 되었다는 점에서, 이청조의 사의 발전과 성숙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ⅱ) 이청조 사의 우수성과 의의앞에서 시의 감상과 분석을 통해 이청조 사의 특징을 언급했지만, 여기서는 어느 한 편에 속하지 않는 전반적인 특징들을 살펴봄으로써 이청조 사의 우수성을 논하고자 한다.우선 평이한 언어와 구어체를 사용을 들 수 있다. 알기 쉬운 말로, 때로는 일상어를 대담하게 사용한 그녀의 사는, 그런 점 때문에 송대의 문인들에게는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지만, 후세에 이르러는 높이 평가받게 되었것이다.
    인문/어학| 2001.05.13| 9페이지| 1,500원| 조회(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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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지용 김광균의 언어에 대한 자각과 감각적 이미지 평가B괜찮아요
    정지용 김광균의 언어에 대한 자각과 감각적 이미지I. 서론1930년대의 한국문학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주목할만한 변화를 보여 준다. 문인들의 숫자와 작품의 양이 대단히 풍부해졌고, 이전의 프로문학이 보여 주었던 지나치게 계급적이고 이데올로기 우위의 한계에 대한 반발과 일제의 강압에 의해 순수화 경향을 띄었다. 또한 서양 문학과의 교섭이 좀 더 직접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어 작품 창작과 문학이론이 더욱 세련되고 전문화되었다. 이와 같은 1930년대 문학의 전반적 특징은 시문학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1920년대까지의 감상적이고 낭만적인 정서의 남용을 절제하고, 자연발생적인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시작(詩作)이 매우 자각적인 의식으로 바뀌게 된다. 그것은 언어예술로서의 시에 대한 자각과 새로운 시적 감수성, 혹은 방법의 개발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1920년대 후반부터 활동하기 시작한 정지용, 김광균 역시 1930년대 시인의 한 사람이면서 1930년대의 특징을 가장 첨예하게 보여 준 시인으로서, 그 시기를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각광받으면서 주도해나간 기수였다.II. 본론(1) 정지용의 시세계'시는 언어로 만들어진다.' 누가 봐도 자명한 사실이지만, 이 명제를 제대로 인식하고 시를 쓴 시인은 정지용 이전에는 없었던 것 같다. 30년대, 모더니즘 혹은 이미지즘의 기초적 이론을 세운 김기림은 정지용을 두고 '언어에 대해 주의한 최초의 시인'이라고 했다. 다시 말해, 시의 언어가 가지는 의미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고, 그 인식을 실천에 옮긴 최초의 시인이 바로 정지용이었다고 할 수 있다. 흔히 한국 현대시사에서 본격적인 비유의 시작은 정지용부터라고 한다. 정지용의 시에서는, 이미지나 비유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바로 인식 그 자체이고 핵심이어서, 그 속의 언어를 통해 대상의 진실 발견과 인식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특히, 정지용은 은유에 강한 시인이다. 우리는 지용의 작품 속에서 그런 은유의 언어들을 분석하고 그 상징을 이해함으로써 직감을 통해 대상의 본질과 직면할호랑이로--하고 있을까요.당신은 이러한 을 데불고힌 연기 같은바다멀리멀리 航海(항해)합쇼.-〈바다 1〉-해협의 역동적이고 수직적인 이미지같이 생동하는 회화적 심상들은 그의 뛰어난 특징들이다. 1연에서 고래가 횡단한 뒤의 요동치는 해협은 천막으로 묘사되는데, 그것은 퍼덕이는 천막이다. 천막은 작은 바람만으로도 그 천의 끝가지 파동이 확산된다. 여기서 우리는 천막이 퍼덕일 때의 그 소리와 모습을 통해 파도치는 소리와 그로 인해 물결이 이는 광경을 상상할 수 있다. 즉, 1연에서의 고래를 매개로 하여 시, 청각적인 이미지를 통해 끝없는 바다의 확산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2연의 흰 물결 피어오르는 바다는 시각적인 느낌을 주는데, 이것이 마지막 연에 가서는 멀리 항해할 수 있는 흰 연기 같은 바다가 된다. 천막처럼 수평적으로 퍼져 나가던 바다는 파도 거품을 내리며 수직적으로 피어오르고, 바다 종달새는 가볍게 떠올라 결국 바다는 흰 연기처럼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것이다,. 바독돌이나 종달새는 가볍게 떠올라 결국 바다는 흰 연기처럼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것이다. 바독돌이나 종달새처럼 가벼운 소재는 이 확산을 촉진시키는데, 특히 '바독돌 자꼬자꼬'에서 모음 'ㅗ'가 반복되는 것은 'ㅜ'보다 더 가벼운 느낌을 줄 수 있기 대문일 것이다. 이러한 바다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시인의 의식이 공간의 수평적, 수직적 확산을 통해 갇힘에서 해방되어 자유로운 상상을 향유하고 있음을 유추해 볼 수 있다. 결국 천막처럼 퍼덕이고 연기같이 퍼진다는 비유가 그 확산적 이미지를 통해, 열린 세계를 향한 존재의 자유로운 발현이라는 의미를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바다는 뿔뿔이달어 날랴고 했다.푸른 도마뱀떼 같이재재발렀다.꼬리가 이루잡히지 않었다.힌 발톱에 찢긴珊瑚보다 붉고 슬픈 생채기!가까스루 몰아다 부치고변죽을 둘러 손질하여 물기를 시쳤다.이 앨쓴 海圖에손을 싯고 떼었다.찰찰 넘치도록돌돌 구르도록희동그란히 바쳐 들었다!地球는 蓮닢인양 옴으라들고... ...펴고... ...-〈바다 2〉이 시는 2행 의 한 방법이라 할 것이다.2)정서의 절제된 결합그는 그 이전의 시에서 남용되어 왔던 정서를 효과적으로 절제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이 문제도 시의 언어와 형식의 문제와 관계된다. 정서의 과잉을 피하기 위해서 주관적인 감정의 언어가 아니라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이미지를 사용하며, 대립적이거나 이질적인 정서를 비범하게 결합시키기도 하고, 시적 의미와 정서의 과장된 편향성을 극복하기 위해서 대립된 정서와 의미를 교차시키는 구조를 보여 주기도 한다. 감정에 적절한 절제를 가하는 방법들인 것이다.「悲劇」의 힌얼골을 뵈인적이 있느냐?그 손님의 얼굴은 실로 美하니라.검은 옷에 가리워 오는 이 高貴한 尋訪에 사람들은 부질없이 唐慌한다.실상 그가 남기고 간 자최가 얼마나 香그럽기에오랜 後日에야 平和와 슬픔과 사랑의 선물을 두고 간줄을 알었다.그의 발옴김이 또한 표범의 뒤를 따르듯 조심스럽기에가리어 듣는 귀가 오직 그의 노크를 안다.黑이 말러 時가 써지지 아니하는 이 밤에도나는 맞이할 예비가 있다.일즉이 나의 딸하나와 아들하나를 드린일이 있기에혹은 이밤에 그가 禮儀를 가추지 않고 오량이면문밖에서 가벼히 사양하겠다!-이 시는 부정과 긍정과 다시 부정의 구조로 되어 있다. 이 시의 제목은 '비극'이라는 부정적인 의미를 가진다. 그리고 자아는 1행에서 그 비극을 '힌얼골'이라는 死神의 이미지로 표현해 성격을 선명히 한다. 그러나 곧 정지용의 절제의 정신은 비극을 부정적인 것으로만 계속 가져가지 않는다. 1920년대의 낭만적 정서가 대부분 비극적 인식의 시화와 확대에 모든 노력으로 확실히 표현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 시에서의 화자는 비극에 다달아 그것을 뒤집어 오히려 '美하니라'하고 말한다. 2행에서 10행까지의 의미는 비극의 긍정성과 수용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그 긍정성과 수용으로의 의미 전개도 계속해서 그런 의미로 나아가지는 않는다. 화자는 '검은 옷에 가리워 오는 이 高貴한 尋訪 ' 이라는 긍정적 이미지를 부정적인 '검은 옷'과 함께 부각시킨다. 비극이 주고 간 선물포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질적 감정의 비상한 결합을 보여 주기도 하며, 구어체의 사용, 표준어의 왜곡, 사투리, 고유어, 고어 등을 통해 효과적 표현되기도 한다.산봉오리-저쪽으로 돌린 푸로우피일-페랑이꽃 빛으로 볼그레 하다,씩 씩 뽑아 올라간, 밋밋 하게깍어 세운 대리석 기둥 인 듯,간ㅅ뎅이 같은 해가 익을거리는아침 하늘을 일심으로 떠바치고 섰다.봄ㅅ바람이 허리띄처럼 휘이 감돌아서서사알랑 사알랑 날러 오노니,새새끼도포르르 포르르 불려 왔구나.-의 일부옷 입술에 그 뻣나무 열매가 다 나섰니?그래 그 뻣나무 열매가 지운듯 스러졌니?그끄제 밤에 늬가 참버리처럼 닝닝거리고 간뒤로-불빛은 송화ㅅ가루 삐운듯 무리를 둘러 쓰고문풍지에 아름푸시 어름 풀린 먼 여울이 떠는구나.-〈뻣나무열매〉의 일부-'불려 왔구나', '다 나섰니', '스러졌니', '떠는구나' 등의 일상적 구어체의 종결어미는 '∼이로소이다', '∼오리다', '∼이여' 등 흔히 낭만시에서 써 오던 종결어법의 관습을 벗어나서 독자들의 현실적 리듬의식과 변화된 감정에 부합되는 언어와 리듬을 살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씩 씩 뽑아 올라간', '밋밋하게', '사알랑 사알랑', '포르르 포르르' 등의 의성어와 의태어의 표현과 비속적 표현 등도 일상의 구어체를 최대로 이용하여 그 언어의 가능성의 폭을 넓히고 시인의 세계인식과 감정의 영역까지도 확대시키고 있는 것이다. 표준어의 왜곡과 사투리나 고유어의 사용 등도 지용의 시에서 매우 폭넓게 활용되며, 정확한 언어의 효과를 위해 매우 중요하다. 고어와 고유어의 이러한 역할도 그의 시에 얼마든지 많으며, 거의 모든 시에 나타난다. 정지용의 표준어의 왜곡은 이전보다 훨씬 부드럽고, 생각과 정서를 더 정확하게 전달하며 효과적이다. 그리고 시의 문맥에 어울리는 어감과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표준어를 왜곡시키는 경우에도, 정지용은 표준어의 원형을 완전히 파괴시키지는 않고 적절히 보존하고 있다. 이러한 언어 감각은 정지용의 시 창조 특유의 능력으로 보이며, 이는 우리말이 가지고 있는체적인 언어를 사용하였다. 결과적으로는 애매성과 감상성을 배제하기 위해서 회화성이 중시되었다. 이 시 또한 그러한 계열과 크게 다르지 않다.우선 시가 한 편의 그림처럼 머릿속에 그려진다. 즉 시각화되고 고체화된 심상이 작품의 주조를 이룸으로써 작품 전체가 서술이 아닌 묘사와 감각화된 이미지로 짜여져 있다.이 시의 공간적 배경은 남쪽의 어느 한적한 시골마을, 시간적 배경은 저녁바람이 소슬하게 부는 어느 저녁, 한 소년(혹은 장성한 남자)이 지붕 위의 박꽃을 보면서 죽은 누이를 회상하고 있다. 아마도 누이가 죽은 날도 고요한 바람이 불고, 박꽃이 폈던 계절이었나 보다. 화자는 하얀 박꽃을 보고 얼굴이 하얗던, 죽은 누이를 연상하고 있는 것이다.여기서 박꽃은 객관적인 상관물로서 화자에게 누이에 대한 그리움의 감정을 구체적으로 대변하는 동시에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그러므로 결국 화자가 지금 보고 있는 박꽃은 현재적인 사물이고, 그 박꽃을 보고 떠오른 누이의 하얀 얼굴, 삼베를 입고 누워 있는 나, 처마 끝에 내어진 램프 등은 과거에 대한 회상의 이미지이다. 즉 이 시에는 박꽃을 매개로 한 현재와 과거의 이중구조의 이미지가 보여지는 것이다. 특히 2행의 '박꽃속엔'의 처소격 조사는 장소한정, 즉 공간형식을 통해서 사물을 인식하고 사물을 이미지로 조형하는데 일조하고 있다.그리고 이 시에서는 박꽃, 누나의 하얀 얼굴, 램프(하얀 불빛), 삼베옷 등 흰색이 주된 색채를 이루고 있다. 흰색은 김광균의 시에서 자주 등장하는 색채어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흰색은 순수, 순결, 평화 등 긍정적인 의미로 생각되나, 다른 한편 불길, 비애, 무상, 고독, 허무, 죽음 등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김광균의 시에서의 흰색은 후자에 더 가깝다. 즉 삶의 상승적 열기가 없는 하강, 후퇴, 죽음의 감정과 관념을 상징하는 이미지인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이런 흰색의 이미지가 1930년대라는 암울한 시기의 반영인지는 성급히 판단할 수 없는, 조금은 더 생각해봐야 할 일일 것이다.뎃상1.향료를 뿌.
    인문/어학| 2001.05.13| 11페이지| 1,500원| 조회(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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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오신화는 전등신화의 아류작인가? 평가B괜찮아요
    들어가며『금오신화』는 한국 소설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의의를 지니는 작품이다. 이 작품집이 소설의 효시이냐 아니냐를 떠나, 기존의 문학적 토양과 외래의 영향 아래서 나온 한국 소설의 산맥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동안은 『금오신화』에 대한 미시적인 관점으로 '최초의 소설이다 아니다', 혹은 '『전등신화』의 모방작이다 아니다' 등 논란이 많았다. 이에 본고에서는 우선 작가의 생애와 『금오신화』의 창작의 연원 및 배경을 규명하고 개별적인 작품들을 분석한 연후에, 보다 거시적인 관점과 다각적인 고찰을 통해 『금오신화』가 최초의 소설로 꼽힐만한 문학성은 무엇인지, 『전등신화』와의 관계는 어떠한 것인지를 밝혀 『금오신화』의 이해를 위한 단초를 마련하고자 한다.들어가서1. 작가 김시습의 생애김시습은 생육신의 한사람으로서 조선 세종· 성종 연간의 문인 학자이며 자는 열경(悅卿), 호는 매월당(梅月堂)·동봉(東峰)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시문과 학문에 밝아 5세에 이미 신동으로 소문이 나서 천재로 이름났으나 과거에는 응시하지 않았다. 매월당은 척불숭유의 사상적 격류 속에서 뛰어난 문학자로서 고려시대에 이미 패관문학에서 꿈틀거리고 있던 소설적 창작 활동을 발전시켜 본격적인 우리 고대소설을 개척한 점에서 그의 문학적 의의는 높이 살만 하다.김시습은 1481년 47세 때에 환속했다. 그는 끝까지 절개를 지켰으며 유· 불· 선의 정신을 이를 포섭한 사상과 탁월한 문장으로 일세를 풍미하다, 충청도 형산 무량사에서 59세의 생애를 끝마쳤다. 1455년 수양대군의 왕위찬탈 소식을 듣고는 중이 되어 방랑하면서 평생을 방외인으로 살다갔다. 현실계와 초현실계의 자유로운 넘나듦 속에서 인간성을 긍정하고 유·불·도의 사상을 자유로이 섭취하여 다양한 내용을 결구한 것이 바로 『금오신화』이다.2. 『금오신화』의 창작의 연원 및 배경『금오신화』의 창작에는 한국 문학사의 특성과 더불어, 중국과의 교섭 양상, 그리고 작가가 겪어야 했던 불우한 사회에 대한 모습까지 다양한 것들이 영향을 주었다. 이것을』, 성현의 『용재총화』등이 모두 이 시기의 소산이다. 이러한 현상은 당시 민간의 언어와 사유, 민속적 관념과 신앙이 지배층의 언어, 지배층의 문화와 활발하게 교섭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금오신화』는 '열녀설화'와 관련하는데 가령 나 의 여주인공은 정절을 지킨 여인으로써 당시 민간에 떠돌던 '열녀담'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모델로 삼아 소설적 변형을 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의 기씨녀 역시 죽음으로 절개를 지키고자 한 점에서 열녀적 인간상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또한 『금오신화』의 창작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전 시대 한문학의 전통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즉 『금오신화』에 실린 다섯 편의 작품은 그 제재나 성격에 따라서 선택적으로 한문학의 시문을 수용하고 활용하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 그리하여 심회의 표출이 필요하거나 낭만적 정조나 분위기의 조성이 필요한 작품에서는 시사(時詞)가 활용되고 있으며, 간절한 기구(祈求)나 애도(哀棹)가 필요할 경우에는 축문이나 제문이, 노래하고 춤추는 궁중 연회의 분위기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사(詞)나 가행체(歌行體) 한시가 구사되며, 따지고 논변하는 등 설리적(設理的)인 의논이 요구될 경우에는 논(論)이나 문대(問對)가 활용되고 있다.『금오신화』 창작에 있어서의 외재적 요인으로는 명 구우의 『전등신화』와의 교섭 양상을 지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이것은 어느 정도의 영향을 분명히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논의는 아주 방대하기 때문에 여기서는 따로 떼어내어 살펴볼 것이다. 따라서 이 문제는 뒤에서 다시 논하겠다.『금오신화』가 단순히 문학적인 면만을 지닌 것은 아니다. 이것은 김시습 개인의 삶과도 관련되는 중요한 양태의 하나이며, 당시 사회의 특성과도 맞물리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즉, 『금오신화』는 매월당 김시습이 중년에 경주의 금오산에서 은거할 때 지어진 것으로, 세계의 횡포와 갈등하는 자아의 양상이 분명히 드러나 있다. 여기서 구체적으로 『금오신화』성립의 정신사적 배경이 되고 있는 것은 한마간행된 것을 《계명》19호에 실음으로써 학계에 처음 알려졌다. 책의 말미에 '갑권(甲卷)'이라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이상의 작품들이 있었을 가능성도 있으나, 현재 밝혀진 것은 없다.현전하는 작품과 작품에 대한 소략적인 정보는 다음과 같다. : 사랑을 희구하던 전라도 남원의 노총각 양생이 부처님과의 저포 놀이를 통해 여귀(女鬼)를 만나 그 죽은 미녀의 혼령과 짧은 사랑을 나눈 후, 그 여인을 잊지 못하여 장가도 들지 않고 지리산에 들어가 약초를 캐면서 평생을 마친다는 내용으로서, 양생의 사람이 허무하게 끝난다는 불교의 무상관을 볼 수 있다. : 송도에 사는 소년 선비인 이생이 최랑과 부부가 되어 행복하게 살다가 홍건적의 난리로 부인이 죽자 다시 돌아온 부인의 혼령과 해후하고 결국은 헤어진다는 내용으로서,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넘어선 간절한 소망과 사랑을 그린 작품이다. : 평양에 장사차 왔던 홍생이 평양의 부벽정에 올랐다가 기씨녀를 만나 기씨의 가계와 내력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서는 사라졌다가, 결국 여인에 대한 연모로 병이 들어 죽은 후 신선이 되었다는 이야기로 도교적인 사상과 은유적인 정권 비판의 의식을 담은 작품이다. : 고려 때 한생(韓生)이 꿈속에서 용왕의 환대를 받고 돌아온 다음 명산으로 돌아가 명리를 버렸다는 내용으로서, 화려한 용궁 체험과 삶의 무상감을 대조시켜 보여준다. : 꿈에 저승에 간 박생이 염왕과 만나 토론하다가 염왕을 탄복시켜 염왕의 나라로 돌아갔다는 내용으로, 조국에 대한 애정과 향수를 그린 작품이다.4. 『금오신화』의 작품들의 성격과 개별 작품론속에 남겨진 5편의 소설을 가지고 김시습(金時習)의 사상을 살피면서 그 작품들이 지닌 문학사적인 의의를 밝혀보고자 한다.5편중 ⓐ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와 ⓑ이생규장전(李生窺墻傳)은 같은 유형에 속하는 작품이라고 하겠다.(1) 우선 ⓐ와ⓑ의 여주인공은 꼭 같이 명문거족(名門巨族)의 규수이며 남주인공인 ⓐ의 양생(梁生) ⓑ의 이생(李生)은 꼭 같이 한미(寒微)한 서생(書生)이라는 남녀數)의 종언(終焉)운명에는 순종할 수밖에 없다는 작가의 인생관을 엿볼 수 있다고 하겠다.취유부벽정기(醉遊浮碧亭記)에서는 앞에서 본 두 작품과는 달리 사건이 매우 단조롭다. 다만 송도(松都)의 부실(副室) 홍생(洪生)이라는 이가 평양(平壤)에 가서 부벽루(浮碧樓) 아래에서 기씨(箕氏)의 딸을 만나 하룻밤 시부(時賦)로 수작(酬酌)하였다는 줄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전(前) 2편(二編)에서 보는 바와 같이 육신의 교접(交接)은 전혀 없고 다만 시부(時賦)로써 창화(唱和)하였을 뿐이다. 그런데도 홍씨는 기씨녀(基氏女)와 헤어진 후 그녀를 너무도 그리워한 끝에 죽지만 기씨녀의 천거로 견우성(牽牛星)의 종사로 승천했다는 것이다. 이는 곧 전2편(全二編)의 성애(性愛)에서 발전된 성애(聖愛) 즉 연애감정의 궁극(窮極)의 경지를 추구한 것이라 하겠다. 이러한 사상은 플라톤의 연애론이나 단테의 베아트리체를 연상하면 혹시 이해가 빠를지도 모르겠다.남염부주지(南炎浮洲志)는 전2편(全二編)과는 아주 계열을 달리하는 작품이다. 즉 앞의 세 작품이 남녀의 애정문제를 다룬 작품인데 반하여 이 남염부주지(南炎浮洲志)는 일종의 관념소설(觀念小說)이라 할 것이다. 전 3편(全三編)과는 달리 이 작품의 공간적인 배경을 지옥에 잡은 것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 하면 이 작품에서 논의된 문제들, 즉 화제는 통치자(統治者)·종교(宗敎)·민풍(民風)등 당시의 시사문제로는 가장 절실한 화제들이었고 또한 새로운 은상경향으로서의 성리설(性理설(設))에 관한 문제들이 거론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절실한 시사문제를 논의하는 무대를 지옥으로 꾸몄다는 것은 곧 그가 생활하고 있는 현실세계가 지옥과 같다는 상징성을 띠고 있다는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지옥같은 현실세계를 보다 나은 세계로 개선하기 위한 작중화자의 논설은 곧 작가 자신의 웅변이요, 그러기 때문에 독자들에게 주는 감명도 그만큼 인상깊게 받아들여지게 마련이라 하겠다.용궁부연록(龍宮赴宴錄)에서는 앞의 남염부주(南閻浮州)라는 지의 근본은 흡사하나 그 전개과정에 있어 가 훨씬 극적 요소가 가미되어 를 능가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또한 배경 역시 양자가 흡사한 설정이나 중국과 한국이라는 차이가 있고 가 사건이 다채로우리만큼 그 배경의 폭도 넓고 사상성 또한 넓고 깊다.2) 과 : 애초에 비교의 대상 자체가 문제가 있었으나 인물은 중국인과 한국인이라는 차이밖에 그 설정과 성격에 이르기까지 겨우 흡사한 틀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성격은 여주인공의 경우 그 전개과정에서 정반대의 양상을 띠나 그 기본은 같다. 그리고 사건의 경우 그 구성과 전개에 있어 양자는 현격한 차이를 가지며 이 보다 극적이며 우수한 구성이다. 배경의 경우는 역시 중국과 한국의 차이밖에 양자가 다 별 의의를 지니지 못한다.3) 와 : 인물은 역시 중국인과 한국인이라는 차이밖에 그 설정에는 별 차가 없다. 그러나 성격에 있어서는 의 근엄한 전형적 틀에 박힌 인적 여건에 비해 는 퍽이나 세속적이다. 사건을 보면 그 구성의 기본은 같다. 그러나 그 전개과정에 있어 가 더 우수한 구성이다. 배경 또한 중국과 한국의 차이밖에 거의 유사하다.4) 와 : 인물은 역시 중국인과 한국인의 차이밖에는 같은 설정이요 성격이다. 사건 또한 구성의 기본은 흡사하나 여기서는 그 전개과정에 있어 이 를 오히려 능가하고 있다. 그 반면 배경의 경우 같은 설정이되 는 그 철학적 이론의 전개 등 사상성이 훨씬 뛰어난다.5) 과 : 인물은 역시 중국인과 한국인이라는 차이밖에는 같은 설정이요 같은 성격이다. 사건을 보면 그 구성의 기본은 같으나 의 경우 그 전개과정이 규모가 더 크고 극적 구성과 전개가 이루어지고 있다. 배경 또한 한국과 중국의 차이밖에 그 설정의 의의는 같으나 이 사건이 다채로움에 따라 배경 또한 다채롭다.이처럼 양자는 작중 인물의 설정과 성격에 있어 거의 흡사하며 사건의 구성도 그 기본은 같은 틀을 이루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사건의 구성이 전개되는 과정이 대체적으로 『금오신화』가 극적 전개 등 훨씬 우수하여 『전등신.
    인문/어학| 2001.05.13| 7페이지| 1,500원| 조회(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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