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目次 -1. 說文解字1) 偏旁編字法2) 六書法에 의한 分析3) 說文解字의 集大成4) 說文解字의 限界2. 淸代의 學文 潮流3. 段玉裁의 說文解字注 硏究1) 說文解字注의 編纂過程2) 說文解字注의 內容3) 段注의 뛰어난 점4)《說文解字注》 校訂本5) 《說文解字義證》과 《說文解字注》4. 說文解字注의 文字學上의 價値5. 結論1.설문해자(說文解字)설문은 본문 14권(卷)과 서(序), 표목(標目), 후서(後序) 그리고 허신의 아들 허충(許沖)이 지은 진서표(進書表)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에 포함되어 있는 설문해자진본(說文解字眞本)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먼저, 중각설문해자서(重刻說文解字 )가 있으며, 그 뒤에 설문해자표목(說文解字標目)이 있다. 이 표목(標目)에는 설문 14권에서 다루고 있는 540부수가 나뉘어져 각 권별로 수록되어 있는데 문자배열 순서는 권1의 일(一)자로부터 권14권의 해(亥)자까지이다. 각 부수의 자체는 전자체(篆字體)이며 글자 바로 밑에 그 부수가 다시 해서(楷書)로 쓰여 있고 반절(半切)로 음이 표시되어 있다. 이어 14권이로 나뉘어 문자를 해설하였는데 모두 9,353개의 문자와 1,163개의 중문(重文), 도합 10,516 글자가 해설되어 있다. 그리고 권 15상에 허신이 지은 서문이 있고 9,353자의 자형구조 및 의미를 나타내는 편방(偏旁)에 의해 540개의 부수를 순서대로 다시 적어 놓았다. 그리고 권 15하에는 허신(許愼)이 후서(後 )와 서현(徐鉉)이 지은 후서가 덧붙여져 잇다. 각 부수(部首)별 문자해설 순서는 먼저 해당 부수를 설명하고, 그 부수에 속하는 글자들을 나열하면서 해설한 뒤 맨 뒤에 해설한 문자의 숫자를 문(文)과 중(重)으로 나누어 기록해 놓았다. 예를 들면 일자(一字) 부수의 경우, 부수자 밑에 오직 처음에 크게 시작하는 것이다. 도는 일(一에)서 세워지며, 나뉘어 천지(天地)를 조성하고 변화하여 만물을 이룬다. 무릇 일에 속하는 것은 모두 일(一을) 따른다. 라고 설명되어 있으며, 어수절(於愁切)이라는 반절(半切)표)들의 연구성과를 검토하고 편성한 것으로 일종의 총결적(總結的) 의미를 갖는 저작이다. 이 저작에는 대부분의 선진시대(先秦時代)의 자체(字體)와 한대(漢代) 이전의 적지 않은 문자에 대한 훈고가 보존되어 있으며, 상고시대(上古時代) 한어(漢語)의 면모가 반영되어 있고, 문자의 계통을 비교하여 문자를 분석하였다. 이러한 가치로 인해 설문(說文)은 현재에 이르기까지 고문학자(古文學者)와 고한어(古漢語)를 연구하는데 필수적인 자료로 사용되고 있다. 만약 설문(說文)이 없었다면 지금 진한대(秦漢代)의 전서(篆書)를 알아 볼 수 없었을 것이며, 동시에 상대(商代)의 갑골문자(甲骨文字)와 상주(商周)의 종현문(鍾현文), 전국시대(戰國時代)의 고문(古文)을 구별하고 인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4)설문(說文)의 한계(限界)설문(說文)의 한계 중에는 허신(許愼)이 안고 있던 오류로 지적되는 첫 번째 문제는 지나치게 봉건주의적 사고 방식에 층실 하였다는 점이다. 허신은 문자(文字)라는 것이 경서(經書)의 근본이며 왕정(王政)의 기초라고 생각하였다. 이것은 설문의 저술목적이 당시 봉건시대 지배계층에 대한 정치적 봉사에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며, 이 저술의 완성 후 병중에 있던 허신이 그의 아들을 시켜 군주(君主)에게 진상(進上)토록 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이러한 자세는 문자해설 상에서도 억측을 유래시켜 오류를 가져왔다. 대표적인 예(例)로 왕자(王字)에 대한 해석을 들 수 있다. 왕은 원래 갑골문에서 , 종정문에서 으로 쓰여 있는 글자로 도끼를 상형한 문자이며 피지배자들을 도끼로 다스리는 강력한 권한을 가진 지배자를 의미하는 문자였다. 그러나 허신은 천(天) 지(地) 인(人)을 통달한 자가 왕이라고하여 당시의 군주들에게 아첨(阿諂)한 사실을 드러내고 있다.둘째, 과학적 사고 방식의 결여를 들 수 있다. 허신(許愼)이 참고한 자체(字體)들은 주(周)의 말기(末期)에서 진대(秦代) 이래 한대(漢代)에 이르는 시대의 것이어서 갑골문(胛骨文)은 아직 출토되기 전이며 금문(注)를 쓰기 위한 준비 작업의 역할을 충분히 하였을 만큼 저자의 설문에 대한 의견이 모두 담겨 있기 때문에 설문(說文)에 대한 저자의 학문 세계를 알아보는 데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이 책은 현재 북경도서관에 불완전하기는 하지만 필사본 형대로 소장되어 있다.저자가 설문해자독(說文解字讀)을 바탕으로 설문해자주(說文解字注)를 본격적으로 집필하기 시작한 것은 건륭(乾隆) 59년(1794)인데, 그 과정에서 1797년에 완성한 파고각설문정(派古閣說文訂) 역시 그 준비 작업의 일환이었다. 이렇게 철저한 준비 작업을 거치고 30년이 넘는 시간을 투자하여 완성된 설문해자주는 그 노력의 결과대로 설문연구서 가운데 가장 뛰어난 책으로 평가받고 있다. 저자와 동문수학한 친구이자 학문적 동료인 왕념손(王念孫)이 《설문해자주(說文解字注) 서(序)》에서 허신(許愼)의 설문해자(說文解字) 이래 1,700년 동안 이만한 저작은 없었다 라고 하여 그 업적을 칭송하였다.2) 설문해자주(說文解字注)의 내용단옥재(段玉裁)는 설문해자주(說文解字注)의 편찬을 위해 이아음의(爾雅音義), 옥편(玉篇), 운회(韻會), 태평어람(太平御覽) 등 수많은 책을 참조하여 대서본(大徐本) 설문해자(說文解字)를 교감 증보하여 설문(說文)의 조례와 해설에 대해 알기 쉽도록 설명하였으며, 소학에 관한 여러 학술을 주장하였다.1《설문》의 교감과 보완《설문해자주(說文解字注)》에서는 《설문(說文)》원본의 자형(字形)이나 해설의 오류를 바로 잡았다. 먼저 자형의 오류를 바로 잡은 예를 들어보면, 단옥재는 감(龕)자의 주(注)에서 지금 각 판본에서는 감(龕)으로 쓰여있는데, 《구경자양(九經字樣)》을 보면 용(龍)은 의미부분이고, 금(今)은 발음부분이다. 라고 하였으니 감(龕)이라 쓴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근래 어떤 책에서는 함(含)이 발음 부분이라고 하였는데이는 더욱 잘못된 것이다.「今各本作龕,考《九經字樣》曰: '從龍, 今聲', 作龕僞,近刻本或作含聲, 尤誤」라고 하여 이를 감(龕)으로 수정하였다.해설의 오류를 바로 잡은 예로는이다. 전통을 중시하고 전현(前賢)을존숭(尊崇)하는 중국 사람들은 될 수 있는 대로 전(前) 시대의 인물이나 업적에 대해 비판을 삼가는 경향이 많다. 만약 그 대상이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아 온 인물이나 저작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하물며 중국 언어학의 주종(主宗)이라고 할 수 있는 허신과 《설문해자》인 경우라면 그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내비치는 것은 매우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단옥재는 과감히 허신의 주장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도 하였고 비판을 하기도 하였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설문·곡(哭)부》: 곡(哭)은 슬픈 소리이다. 현(ㅁㅁ)은 의미부분이고, 옥(獄)의 생략형으로 발음부분을 삼았다.「哭, 哀聲也. 從ㅁㅁ, 從獄省聲.」단주(段注) : 필자의 견해로는, 허신의 책(즉 《설문해자》에서 말하는 생성(省聲) 은 의문점이많다. (생성이란) 글자의 전체를 인용하지 않고 한 부분만을 취하여 어떤 글자의생략형이라고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가(家) 자의 시(豕) 부분이 가( ) 자의 생략형이라든가, 곡(哭) 자의 견(犬) 을 의미부분으로 한 글자가 아니다. 그러면 곡(哭)자형을 취하지 않았단 말인가? 또 생각건대 견(犬) 을 의미부분으로 삼는 글자들, 예를 들어 狡(교활할 교) · 獪(교활할 회) ·狂(미칠 광) · 默(묵묵할 묵) ·猝(갑자기 졸) ·猥(함부로 외) · (사나운개 산) · (개 싸우는 소리 한, 사나울 한) · (사나울광) · 狀(형상 상)· (으르렁거릴 누) · 狎(익숙할 압) · (탐낼 뉴) · 犯(범할 범) · 猜(의심할 시) ·猛(사나울 맹) · (건장한 개 강) · 怯(무서워할 겁) · (개다닐환) ·戾(어그러질 려) ·獨(홀로 독) · 狩(사냥 수) · 臭(냄새 취) · (넘어질 폐) ·獻(바칠 헌) · 類(무리 류) · 猶(오히려 유) 등 30자는 모두 견(犬) 을 의미부분으로 삼고 있지만 (그 뜻은) 옮겨져서 사람에 관한 것으로 쓰인다. 그러니 곡(哭) 자 역시본래 개가 짖는다 는 뜻에서 사람이 운다 는 뜻으몇 가지만살펴보면 다음과 같다.첫째, 자형(字形)을 잘못 설명한 것이 있다. 예를 들어, 덕(德)자는 발음부분이 덕( )인데 단옥재는 덕( )으로 바꾸었다.둘째, 정문(正文)을 잘못 설명하고 있다. 예를 들어, 용(茸)자는 발음부분이 총(聰)의 생략형으로서 용(茸)과 총(聰)은 첩운(疊韻) 관계이나, 단옥재는 용(茸)의 발음부분은 이(耳)라고 설명하였다.셋째, 다른 문헌(文獻)을 근거로 하여 원문을 고쳤다.예를 들어, 단옥재는《설문·아(牙)부》의 아(牙)는 어금니이다.(「牙, 牡齒也」) 를 《석각구경자양(石刻九經字樣》에 근거하여 모치(牡齒) 를 장치(壯齒) 로 바꾸었으나, 서개(徐 )의 《설문계전(說文繫傳)》이나 다른 문헌에는 모두《설문》을 근거로 하여 모(牡)자로 쓰고 있으므로 단옥재의 설명은 잘못된 것이다.넷째, 다른 문헌을 근거로 본서(본서)를 어지럽히고 있다. 예를 들어, 단옥재는 《설문·옥(玉)부》의전( ) 자를 《운회(韻會)》에 인용된 서개본(徐 本)에 의거하여 옥(玉)은 의미부분이고, 단(彖)은 발음부분이다.(「從玉, 彖聲」) 라고 바꾸면서, 지금 전해지는 서개본(서개본)에는 전(篆)의 생략형〔篆省聲〕 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는 천인(淺人)들이 고친 것이라 말했다. 그러나 전(篆)의 생략형〔篆省聲〕 이라고 말한 사람은 서개(徐 ) 자신이며, 천인(淺人)이 고쳤다는 것은 단옥재가 잘못 말하고 있는것이다.다섯째, 믿지 않아야 할 것을 믿었다. 예를 들어, 단옥재는《설문·초(艸)부》 호( ) 자 주(注)에서 발(拔)을 피(披)로 바꾸어 쓰면서, 제초(除草)의 의미로 쓰는 경우에 《경전석문(經典釋文)》이나 《옥편(玉篇)》, 《오경문자(五經文字)》등에는 발(拔)이라 되어 있으나 오직 《설문계전(說文繫傳)》의 구본(舊本)에는 피(披)로 쓰여 있으니, 이것이 올바른 것 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서승경은 본래 다른 책들이모두 발(拔)로 쓴 것이 옳은 것이며, 《설문계전》구본(舊本)에 피(披)로 쓰여진 것은 옮겨 쓰는 과정에서 잘못된 것이므로 단옥재의 주장은 틀린 것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