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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톨스토이의 "크로이처 소나타"
    톨스토이의 크로이처 소나타문학 속에서 음악은 종종 완전히 대립적인 두 가지 성향을 띄고 나타난다. 그 하나는 인간을 인간의 이성세계로부터 해방시켜 인간의 가장 깊은 내면의 세계, 신과의 합일을 가능케 하는 신비주의적 세계로 이끄는 음악의 천상적인 아름다움의 위력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음악은 인간을 도취상태로 이끌어 현실을 외면하고 현실세계로부터 도피케 하여, 결국은 현존재로서의 실존근거를 상실하게 하는 아주 위험스러운, 악마적인 위력도 가지고 있다. 많은 작가들이 자신의 문학작품을 통해 음악의 이 두 가지 성향에 똑같이 관심을 쏟아왔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주인공의 개인적인 운명과 그의 내적 체험을 통해 음악이 인간과 인간세계에 얼마나 깊고 무한한 본질적 존재 영역을 열어주고 있는지, 또한 음악의 지나친 감각적 탐닉이라던가 삶 자체와의 연관성을 거부한 음악의 추구란 결국 주인공 자신의 파멸을 가져오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음악이 그들 작가 자신에게 있어서 - 그러므로 그들의 주인공에게 있어서도 - 정신적으로나 생활적으로나 얼마나 크나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지 잘 알 수 있다.그래서 톨스토이가 그의 예술이란 무엇인가 (1897)에서 음악, 회화, 문학 전반에 걸친 서구 예술의 최고의 작품들을 폭넓게 비판하면서, 특히 현대의 모든 실내악과 오페라음악, 특히 베토벤으로부터 시작하여 슈만, 베를리오즈, 리스트, 바그너 등 에 이르는 낭만파 음악을 참된 예술작품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을 볼 때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톨스토이는 위의 음악들이 배타적이며 기교적인 음악 으로서 사람들에게 병적인 신경을 흥분시키고 있으며, 그것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에게만 이해될 수 있는 감정의 표현을 목표로 하고 있는 음악 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왜냐 하면 그에게 있어서 좋은 예술작품의 지표가 되는 것은 모든 사람들을 하나의 공통적인 감정으로 결합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톨스토이는 좋은 예술작품이란 예술의 지성 을 기반으로 하고 있고, 감염의 실패란 바로 이러한 기반, 즉 창작자의 불투명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 세가지 조건들 중 어느 것이라도 누락된 작품이라면, 그것은 예술의 위조작품으로 간주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톨스토이의 관점이다. 예를 들어, 베토벤의 교향곡 제 9번 합창 은 인간의 사랑과 기쁨의 감정을 환기시키고자 실러의 시 환희에 부쳐An die Freude 까지 동원시키고 있지만, 베토벤의 음악과 그 시의 사상은 서로 일치하지도 않고, 또한 베토벤의 음악이 그러한 감정을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전달시키고 있지도 못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 음악은 다만 소수의 사람들만을 결합시킴으로써 그들을 다른 사람들로부터 분리시키고 있다. 그러므로 표현하고자 하는 감정의 실패와 전달의 실패로 인해 이미 이 작품은 좋은 예술 에 속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러므로 그는 걸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는 세계의 모든 예술작품들의 재평가를 요구한다. 저 유명한 단테의 신곡 도, 타소의 서사시 예루살렘의 해방 도, 쉐익스피어와 괴테의 대부분의 작품들도, 라파엘의 승천 도 모두가 이러한 기준에 의해서 비판되어져야 한다는 것이다.이러한 관점은 톨스토이가 예술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철저하고 지나치게 종교적 도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는 데서 비롯된다. 톨스토이는 소설가로서 19 세기 소설의 대표적인 걸작품들인 전쟁과 평화 (1864/69)와 안나 카레니나 (1873/77)를 발표한 후, 커다란 정신적인 위기를 겪게 된다. 그는 인간으로서, 지식인으로서, 또한 작가로서 살아온 자신의 삶에 대한 철저한 비판과 더불어 예술과 사회에 대한 새로운 평가와 인식을 경험하게 된다. 그는 자신의 참회록 (1884)에 이러한 그의 전체적인 삶에 대한 적나나한 자성과 비판, 그 당시 러시아 상류사회로부터 농부들의 생활에 이르기까지 만연되고 있던 비도덕적이고 반자연적인 사회상에 대한 논박, 예술가와 사회의 관계에 대한 반성과 성찰, 인간의 삶의 가장 진실한 근거가 될 수 있는 종교적 신앙에 그는 모파상에 관한 글에서 진정한 예술작품의 생산을 위해서는 주제에 대한 작가의 진실되고 도덕적인 태도, 분명한 표현, 즉 형식미 그리고 작가의 진지성 이 필수불가결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예술가는 이제 미적인 은둔 생활을 위해 사회적 의무를 포기하는 낭만주의적 예술관으로부터 벗어나 사회 속에서 사회의 전체적인 복지에 기여하는 사회내 존재로서의 의무를 뚜렷하게 의식해야만 한다. 그는 이제 예술가로서의 신성한 사명과 특수한 재능을 지닌, 일반인과 결합될 수 없는 대립적 존재도 아니며, 사회로부터 배척받거나 불필요한 존재로 소외당하는 특수한 존재도 아니다. 예술가는 각자가 사회에 대한 책임을 받아드리고, 늘 사회 속에서 민중과 더불어 존재하며 사회에 위협이 되는 예술이 아닌, 사회에 혜택을 주는 좋은 예술 을 창조하는 책임을 다해야 한다. 그러므로 톨스토이의 예술관에 의하면, 예술이 생산해내는 형이상학적이고 신비적 인 아름다움이나 미적 쾌감은 예술이 지니는 사회적인 기능 속에서 합법화되어야 한다.예술의 진정한 기능은 인간간의 소통, 예술에 의해 창조되어지는 정서, 감정의 소통, 바로 감염 이다. 이때 예술이 전달하게 되는 감정이 인간에게 좋은 감정인지 해로운 감정인지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은 궁극적으로 종교적 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톨스토이의 견해이다. 톨스토이는 모든 시대와 모든 인간사회 내에는 전체사회에 공통적인 선악에 대한 하나의 종교적 감각이 존재하며, 예술에 의해 전달되는 감정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도 바로 이 종교적 관념 이라고 보았다. 톨스토이가 자신의 전생애를 통해 지향하던 최고의 종교감은 바로 전인류의 형제애적 결합이며, 그는 예술을 통해 이러한 종교적 통찰이나 윤리적 지각을 촉진시키고 고취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톨스토이는, 예술이란 사람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고 가장 좋은 감정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목적을 지닌 하나의 인간행위 라고 예술에 대한 궁극적인 정의를 내리고 있다. 좋은 예술이란 완전을 향한 인류 운동 의 한 수단이생을 연주하고, 인간의 운명과 갈등과 고통을 노래하며, 그로써 인간의 상처받은 내면의 세계를 치유하여, 깊은 침잠의 세계로, 드높은 환희와 순결의 세계로, 신적인 세계로 이끌어가는 음악만의 고유한 소통의 통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음악은 음악을 위한 특수한 예술 공간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우리가 여기서 다루려고 하는 크로이처 소나타 (1889)는 톨스토이의 만년 작품의 역작들 중의 하나로 그의 자서전적인 체험과 당대에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에 고무되어 탄생한 작품이다. 작가 자신이 밝히고 있듯이 여기서 톨스토이는 그 당시 사회적으로 유행하던 부부관계 와 관능적 사랑 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당시 60세의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자신의 지나간 삶을 돌이켜 보며 예술가로서의 부부문제와 성모랄에 관한 문제를 강도있게 다루면서 도덕적인 설교자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톨스토이는 또한 이 작품에서 의식적으로 여태까지와는 다른 입으로 전해내려오는 민중문학과 가까워지려고 노력하여 새로운 문체의 시도를 보이고 있다. 그는 틀소설의 형태를 빌어 등장한 주인공으로 하여금 자신의 이야기를 하게 하므로써, 마치 옆에서 독자에게 직접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처럼, 수사적인 꾸밈이 없는 구어체 문장으로 막힘없이 서술해나가고 있다. 톨스토이는 나는 그 작품에서 다만 무서운 진실이 더욱 분명하게 나타나질 수 있을 만큼의 공간만을 예술적인 것에 할애했다 고 밝힐 정도로 그는 이 작품이 나타내고자하는 진실의 적나나한 묘사를 무엇보다도 중시했다.이른 봄철, 어느 기나긴 기차여행에서 몇 명의 승객들이 같은 기차칸에 오르게 된다. 어느 귀부인과 그녀의 지기인 변호사의 대화를 통해 곧바로 이 작품의 주테마인 결혼생활과 사랑 그리고 남녀동등권에 대한 문제가 등장하게 된다. 그들은 당시의 새로운 결혼관과 여성해방에 대한 자유분방한 의견을 표명하고 있다. 그들은 사랑에 의해 정화된 결혼만이 참된 결혼이고, 사랑이 없는 결혼이란 무의미하며, 결혼이란 그 자체로서는 도덕적인 구속력을 가질 수 없으화는 격렬해진다. 어딘지 모르게 아주 불안해하는 기색을 보이며, 유난히 번쩍이는 눈을 가지고 있는 그 남자는 사랑으로 맺어진 이상적인 결혼을 주장하고 있는 그들에게 그들이 말하는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묻는다. 그는 자신은 학사학위를 가진 지주로서 한때는 지방 귀족회의의 회장을 지낸 적이 있는 사람이지만, 지금에 와서 자신이 과거에 가지고 있던 여성관이나 결혼, 부부에 관한 생각을 돌이켜 본다면, 이상의 일치나 정신적 결합을 기반으로 하는 사랑이나 결혼이란 불가능하다는 부정적인 의견을 강력하게 내세운다. 그리고 자신의 불행한 결혼생활은 결국 아내를 살해함으로써 끝났다는 것을 밝힌다. 귀부인과 변호사는 몹시 놀라서 다른 칸으로 가버리고, 이 사나이는 일인칭 화자인 나 에게 자신의 인생 고백을 하게 된다.일인칭 화자인 나 는 뽀즈드니세프 라는 이름의 이 사나이의 대화 상대자로서 그의 이야기를 유도하는 질문자이며 해석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 뽀즈드이세프는 일시적인 사랑으로 이루어진 자신의 의미없는 결혼생활에 대해 이야기 한다. 서로에 대한 존경이나 이해 없이 계속되어졌던 그의 결혼생활은 다섯 명의 자녀로 더욱 복잡해지고 점점 실망스러워지고 무관심해져서, 결국에는 격분과 비참, 증오와 미움으로 가득찬 부부가 되고 만다. 그들은 끊임없이 싸우고, 또다시 관능적인 사랑을 통해 화해하지만, 그들의 결혼생활은 숨막히는 불행한 생활이었다. 그러던 중 아내는 건강이 좋지 못하다는 이유로 의사의 명령에 따라 출산으로부터 해방된다. 그녀는 차츰 옛날의 아름다움을 되찾고, 아이들과 집안 일로부터 더욱 벗어나고 싶어하며, 피아노를 다시 치기 시작한다. 그때 뽀즈드니세프가 예전에 알고 지냈던 한 몰락한 지주의 아들인 뚜르하체프스키가 파리의 음악학교에서 공부하고 바이올리니스트가 되어 돌아왔다. 그는 아내와 뚜르하체프스키의 협주를 권장하고 손님들을 초대하여 그들의 협주를 들려주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부부간의 갈등은 첨예화되고, 뽀즈드니세프의 병적인 질투심과 광적인 영혼의 파괴로 비극적인 전환한다.
    인문/어학| 2002.07.18| 4페이지| 1,000원| 조회(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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