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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음악미학] 환상교향곡분석
    감정이론은 바로크 음악의 대표적인 특징인데, 이는 다양한 감정들을 음악적으로 표출하는 것으로, 일정한 음형과 감정을 결합시켜 사용하는 것이다. 예컨대 장조, 협화음, 높은 음역, 빠른 템포는 기쁨을, 단조, 불협화음, 낮은 음역, 느린 템포는 슬픔을 의미하는 것으로 가사의 감정내용을 표현한 것을 말한다.바로크 시대에 이르러 감정을 음악에 표현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고, 이에 따라 은 음악이론 및 미학의 중심이 된다. 특히 데카르트는 6개의 기본 감정 (놀람. 사랑. 미움. 열망, 기쁨, 슬픔) 에서 연역적으로 다양한 감정을 이끌어내면서 감정의 독자적 의미를 인정하였는데, 이러한 이론적 기초가 바로크 시대 감정 이론의 토대를 이루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또한 감정이론에서 주목할 점은 의 개념이 현대적 의미의 과는 다르다는 점이다. 즉 그것은 작곡가 자신의 내면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감정이 아니라, 공동체적인 기반을 전제로 하여 유형화된 더 높은 단계의 감정이다. 즉, 사람들은 한 공동체 안에서 특정한 자극에 의해 공통적인 어떤 구체적 감정을 느낀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러한 전제하에 모든 이가 공통적인 어떤 구체적 감정을 느낀다고 보았다고 할 수 있다.제1악장: 꿈과 정열(Revieries Passions)(라르고-알레그로 아지타토에 아파시오나토 아사이 )감정이론의 측면에서 환상교향곡 1악장을 분석해본다. 감정이론에 의하면 템포도 특정한 감정을 표현하는데 사용된 것이다. 따라서 환상교향곡의 1악장 도입부의 라르고는 슬픔의 느낌을 가지고 있는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감정을 나타낸다 할 수 있겠다.라르고의 느린 도입부가 플롯과 클라리넷으로 시작되다가 단조의 정점의 부분에서 첼로가 어지럽게 연주되는 부분, 갑자기 바이올린이 빨라지고 호른 바순과 절정을 이룬다.감정이론에 의하면 라르고에서 알레그로로 속도가 변하는 것은 슬픈 감정에서 기쁨(긍정적인 감정)으로 변했다고 볼 수 있으나 단조를 사용한 점을 생각할 때 기쁨의 느낌보다는 무언가 복잡한 한 단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심정을 대변한다고 말하고 싶다.알레그로 아지타토 에 아파시오나토 아사이 부분에서는 빠른 템포와 정열적으로란 나타냄 말에서 알 수 있듯 전진하는 듯한 급한 마음이랄까...대담한 성질을 나타낸다고 생각한다.제2악장: 무도회(Un bal)(알레그로 논 트로포)제 2악장은 4대의 하프를 사용해 무도회의 떠들썩한 정경을 화려하게 나타내다가 왈츠가 시작된다. 바로크시대의 감정이론에서 춤곡은 그에 알맞은 정서를 포함하고 있다. 왈츠는 춤곡이므로 열기, 열망, 달콤함을 나타낸다고 생각한다. 왈츠가 열광적으로 진행되다가 들쭉날쭉한 선율로 끝나는데 이것은 예술가가 계속 연인에 대한 상념에 사로잡혀 춤이 끝나버리게 됨을, 다시 말해 열기나 열망 달콤함이 연인에 대한 상념으로 인해 복잡한 마음, 거친 마음을 나타낼 수밖에 없음을 보여 주는 것이라 생각한다.제 3악장 : 들판 풍경(Scenc aux champs)(아다지오)시골의 정경, 어느 여름날 저녁, 전원에서 예술가는 멀리서 두 목동이 서로를 부르는 알프스 호른의 멜로디를 듣는다. 잉글리시 호른과 오보에의 이중주는 아다지오로 감정이론에 따르면 슬픔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이중주로 흐르다가 다시 복잡한 선율이 흐르는데 이는 예술가의 연인에 대한 고민 상념을 다시 나타내는 듯하다.제 4악장 : 단두대에로의 행진(Marche au supplice)(알레그레토 논 트로포)도입부분은 단조의 선율이고 복잡한 화성 등을 사용한 악장이므로 무거운 절망 거친 치명적인 불안, 우울 등을 표현했다 할 수 있다. 그러다가 좀더 화려하고 긍정적인 느낌의 부분으로 발전하다가 다시 어두운 단조의 선율로 바뀌어 간다.제 5 악장: 라르게토-알레그로-알레그로 아시아악마의 축제날 밤의 꿈-마녀의 론도(Songe d'unnuit du Sabbat-Ronde du Sabbat)전체적으로 단조의 무거운 느낌이므로 불안, 절망, 우울함의 표현이라 생각된다. 중간의 목관악기의 경쾌한 느낌이 들려오나 이는 다시 복잡한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바뀐다.종소리가 들려오고 여전히 무거운 느낌의 선율이 이어진다.감정미학적 측면에서 환상교향곡을 살펴보면 베를리오즈가 연인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환상교향곡을 작곡하였으므로 베를리오즈가 남긴 표제나 곡에 대한 부연설명이 감정미학적 측면의 올바른 분석이라 생각한다.환상교향곡은 구성이나 화성, 그리고 선율에도 과거의 곡들과는 다른 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베를리오즈의 대표작의 위치에 있으며 뿐만 아니라 리스트나 바그너에게 그의 영향을 주었다. 수법상 특히 주목되는 것은 고정 악상 또는 고정 관념을 사용한 점이다. 이것은 이 작품을 작곡한 동기가 되었던 작곡자가 열렬히 사랑했던 여성을 일정한 선율로 나타내고 각 악장마다 그 정경에 어울리게 끔 주로 리듬과 악기만을 변화시켜 사용하는 방법이다. 이것이 후일 바그너에게 라이트모티프를, 리스트를 거쳐 프랑크에게 순환 형식을 사용케 한 발단이 되었다.제1악장: 꿈과 정열(Revieries Passions)(라르고-알레그로 아지타토에 아파시오나토 아사이 )한 저명한 작가가, "정열의 파도"라는 마음의 병에 걸린 한 젊은 음악가가, 맘속에 그리는 이상적인 인간의 매력을 다 갖춘 여성을 처음 만나, 무서운 사랑에 빠진다고 작자는 상상한다. 왠지 사랑하는 여자의 이미지가 하나의 악상과 결합되어 그의 마음에 들어온다. 그는 그 악상의 정열적인, 그러나 기품이 있고 내성적인 성격이 그녀의 성격과 같다는 것을 감지한다. 이 선율과 그녀의 모습이 이중의 고정개념(악상)으로서 끊임없이 그를 따라다닌다. 이 교향곡의 각 악장에 , 첫 알레그로의 개시의 선율이 나타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우울한 몽상상태에서 , 착란한 정열에 이르기"까지의 경과가, 분노와 질투, 마음의 평안, 눈물, 종교적인 안위가 섞여 제 1악장의 소재가 되어 있다.제2악장: 무도회(Un bal)(알레그로 논 트로포)그 음악가는 자기가 인생의 가장 복잡한 환경 가운데 놓이게 되었음을 알게 된다. 축제의 소용돌이 속에 끼어 들기도 하고 자연미의 평안한 사념에 잠기기도 한다. 그러나 마을에서도 들에서도 어디를 가나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이 그의 앞에 나타나 그의 마음을 괴롭힌다.제 3악장 : 들판 풍경(Scenc aux champs)(아다지오)시골에서의 어느날 저녁, 멀리서 두 목동이 부는 목적 소리가 들린다. 이 목가적 이중주, 주위 환경 미풍으로 조용히 살랑이는 나무들의 속삭임, 그가 최근에 발견한 희망의 싹, 이러한 모든 것이 결부되어, 그의 마음을 이상하게 평온하게 하고, 그의 생각을 밝게 물들인다. 그는 스스로의 고독을 다시 생각한다. 그는 이젠 고독을 면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기대한다. - 그러나 만약 그녀가 모른다고 배신한다면 - 이 희망과 불안이 뒤섞인 기분, 어두운 예감으로 어지럽혀지는 이러한 행복의 사념이, 아다지오 악장의 주제가 되어있다. 마지막에 목동의 한 사람이 다시 목적을 부는데 상대는 여기에 대답하지 않는다....멀리서 천둥소 리....고독.....정적.....제 4악장 : 단두대에로의 행진(Marche au supplice)(알레그레토 논 트로포)그의 사랑이 거절되었음을 확실히 안 작곡가는 아편으로 음독자살을 기도한다. 그러나 치사량에 이르지 못하여, 그는 무서운 환상을 수반한 깊은 잠에 떨어진다. 그는 애인을 죽이고, 사형을 선고 받고, 단두대에 연행되어 자신의 처형을 보는 꿈을 꾼다. 행렬을 , 때로는 음울하고 거칠며, 때로는 당당하고 밝은 행진곡의 소리에 맞추어 행진하고, 무거운 발걸음이 굉장한 시끄러움을 타고 계속된다. 행진 끝에 고정악상을 나타내는 4개의 소절이 사랑의 마지막 추억처럼 다시 나타나는데 오케스트라의 결정적인 일격으로 지워져 버리고 만다.제 5 악장: 라르게토-알레그로-알레그로 아시아악마의 축제날 밤의 꿈-마녀의 론도(Songe d'unnuit du Sabbat-Ronde du Sabbat)그는 그를 매장하기 위해서 모인 무서운 유령, 마술사, 마녀, 그밖에 갖가지 요괴들의 일단이 한 가운데에 있는 그를 본다. 야릇한 소리, 신음, 오싹하는 웃음, 그리고 멀리서 들리는 고함소리에 다른 고함소리가 호응하는 듯하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선율이 다시 나타나는데 그것은 그 고귀하고 내성적인 성격을 잃어버리고 있다. 그것은 이제 야비한 선율에 불고하고, 보잘 것 없는 그로테스크한 것으로 변해 버렸다. 그녀가 이 밤의 향연에 찾아온다. 그녀가 도착하자 환희하는 요괴들의 떠들음....그녀는 악마적인 밤의 향연에 낀다. ... 장례의 종은 "분노의 눈"의 익살광대의 풍자다. 밤의 향연의 윤무. 윤무는 "분노의 눈"과 결합한다.
    예체능| 2003.05.18| 4페이지| 1,000원| 조회(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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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음악개론] 작곡발표회를 다녀와서
    음악과 생활`음악회에 간다'는 것, 그것도 `클래식 음악회에 간다'는 것은 어릴 적부터 값싸고 손쉽게 누릴 수 있는 대중문화에 빠져있는 우리 나라 요즘 아이들에겐 확실히 일상적인 일은 아니다. '클래식 음악회'라고 하면 왠지 비싸고, 어렵고, 엄숙한 분위기를 풍길 것 같은 느낌에 문화를 가볍게 `즐기는' 차원에서만 생각해 온 나 보통의 요즘 아이들은 아무래도 거리감을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전공을 바꾸어 음악을 다시 공부하기 전까지는 클래식 음악 자체는 꽤 즐겨 듣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정작 `음악회'는 그리 많이 와보지 못했다.(선생님! 저는 일반학과에서 편입한 학사 편입생입니다.)부모님이 성가대를 하시는 덕에 종종 독창회나 연주회 등의 티켓을 얻어와서 부모님을 따라서, 그야말로 '구경'간 적은 몇 번 있었지만, 내가 원하는 공연을, 내가 찾아서 가 본적은 한번도 없었다.물론, 지금은 다시 음악을 공부하게 되어서 여기저기 음악회를 많이 접하게 되었다.세상에 공개되지 않음 음악을 처음 듣는다라는 생각은 기대감을 가지고 연주를 듣게 해주었다. 아슬아슬하게 시간에 맞춰 들어가, 팜플렛을 받아 들고 쭉 훑어보고 있을 즈음 플루트 연주가 시작되었다. 플루트 연주는 우리가 늘 듣던 아름답고 예쁜 선율이 아니라 먼가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음악학과에 편입해서 공부하기 전까지는 클래식이라는 것은 들었을 때 아름다운 음악들만 생각했었을 뿐 현대음악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던 나였으나 요즈음 음악미학 시간에 현대음악에 대해서 공부하고 여러 현대 곡들을 감상해서 그런지 플루트 곡을 들었을 때 '아, 현대음악의 느낌이 이런 것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Psalm 96Psalm 9이 곡은 시편의 내용을 담은 성가 곡이었다. 이 곡의 느낌 또한 아리송하고 야릇한 무언가를 해결해야 할 듯한 느낌이었다. 항상 듣던 일반적인 성가 곡과는 느낌이 상당히 다른 아직 해결해야 할 것이 남아있는 듯한 느낌이랄까?연주회가 계속 진행 될 수록 연주에 대한 강한 인상은 점점 더하여갔다.Landescape for Piano피아노 전공인지라 팜플렛을 받아본 순간 기대가 많이 되었던 곡이었다. 이 곡은 마치 피아노를 건반악기로서 선율을 연주하기보다는 타악기로서의 피아노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했다. 피아노가 나타내는 선율을 중시하는 것이 아닌 건반을 때리면서 나타내는 독특한 느낌이 드는 곡이었다. 음색주의, 음향주의 음악의 느낌? 선생님께서 어떤 점을 표현하려고 하신 건지 의도는 확실히 알지 못하지만 곡에 대한 놀라움은 확실했다.Nori for Marimba & Timpani마림바와 팀파니의 연주를 듣는 것을 처음이었다. 마림바의 소리와 팀파니의 소리는 매우 대조적이었다. 마림바의 소리는 맑고 순수하고 잔잔한 듯한 소리인 반면 팀파니의 소리는 웅장하고 힘이 있는 소리였다. 팀파니는 음정이 있는 타악기로 팀파니를 연주할 때 주제인 듯한 선율이 들렸다. 동일한 주제로 마림바를 연주하는데 처음에는 잔잔하게 맑은소리 인 듯 하더니 나중에는 역시나 강한 터치의 타악기처럼 연주되었다. 그 주제가 여러 가지 형태로 변형되어 나타난 듯 하다. 흡사 퍼포먼스를 보는 듯한 혼신의 힘을 다하여 연주하는 연주자의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예체능| 2002.12.09| 2페이지| 1,000원| 조회(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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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아노세미나] 19세기 프랑스 피아노 음악
    쿠프랭(Francois Couperin, 1668-1733)이나 라모(Jean-Philippe Rameau, 1683-1764) 이후 19세기의 중엽까지 프랑스에서는 이웃나라인 독일의 슈베르트(Franz Peter Schubert, 1797-1828)나 멘델스죤(Felix Mendelssohn Bartholdy, 1809-1847) 혹은 슈만(Robert Alexander Schumann, 1810-1856) 등과 같은 뛰어난 음악가가 배출되지 못하고 있었다. 따라서 당시의 프랑스의 음악은 거의 외국의 음악가들에 의해 지배받고 있는 실정이었다.1.초기 프랑스 피아노 음악▲요한 쇼베르트-쇼베르트의 작품가운데는 수많은 건반악기 음악이 있음.-Sonata in E-flat Major 중의 Allegro molto는 소나타 알레그로 형식의 요소를 보여주나 주제가 하나밖에 없음.▲요한 고트프리트 에카르트-프랑스에서 피아노 및 피아노 작곡을 위한 길을 닦은 최초의 작곡가가운데 속함.2.샤를르 카뮈 생상(Charles-Camille Saint-Saens, 1835-1921)▲생상의 생애샤를르 카뮈 생상은 1835년 프랑스의 파리에서 태어났으며 1921년에 아프리카를 여행하던 도중 12월 16일 알제리의 한 호텔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유해는 파리로 옮겨졌으며, 장례식은 국장으로 치뤄졌다.아버지를 일찍 여읜 생상은 음악가이었던 그의 큰고모에게서 첫 음악교육을 받았으며, 어릴 때부터 이미 천재적인 면을 나타내기 시작하였다. 그의 나이 11세 때인 1846년에 생상은 첫 번째 공개연주회에서 모짜르트의 피아노 협주곡과 베토벤의 협주곡을 협연하였으며, 1848년에 파리 음악원을 찾게 되었으며 처음에는 청강생으로 그리고 나중에 오르간 전공으로 정식입학을 하였다. 부분적으로 독학을 하기도 하였지만 어릴 때부터의 그의 지칠 줄 모르던 학구열로 인하여 생상은 모든 나라와 모든 시대의 음악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게 되었다. 거기에다 그가 전공한 피아노와 오르간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생상은Liszt, 1811-1886)) 그리고 바그너(Richard Wagner, 1813-1883) 등은 그의 음악에 경탄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1871년에 생상은 프랑스의 음악계에 '국민음악회'(Societe Nationale de Musique)를 창립하였는데, 이것은 프랑스의 새로운 음악 진흥에 노력하였으며, 젊은 작곡가들을 육성시켰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당시까지 음악에서 주종을 이루고 있던 이탈리아 오페라를 대신하려는 교향악 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생상 자신도 이 시기부터 20여 년 동안 리스트의 영향을 받은 교향시 "옹팔르의 물레"(Le Rouet d'Omphale, 1872), "파에통"(Phaeton, op. 39, 1873) "죽음에 무도"(Dance macabre, op. 40, 1875), "헤르쿨레스의 청년시대"(La Jeunesse d'Hercule, 1877) 등을 비롯한 여러 작품을 작곡하였으며, 교향곡 다단조(op. 78, 1886)를 작곡하였다. 제3번 교향곡으로 알려진 이 다단조 교향곡은 생상의 작품 가운데 최대의 관현악곡으로서 피아노와 오르간을 넣은 화려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리스트에게 헌정된 이 교향곡은 그의 제4번 피아노 협주곡이나 바이올린 소나타처럼 두 개의 악장으로 되어 있지만 각 악장을 다시 두 개의 부분으로 나누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일반적인 교향곡의 형식처럼 네 개의 악장을 가진 곡으로 볼 수 있다.그리고 생상은 피아노 협주곡으로는 사단조(op. 22, 1868), 내림마장조(op. 29, 1869), 다단조(op. 44, 1875)와 바장조(op. 103, 1896) 등의 작품과 두 대의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동물의 사육제"(Le Carnaval des animaux, 1886) 그리고 환상곡 아프리카 (Africa, op. 89, 1891)를 남기고 있다. 이밖에도 바이올린 협주곡 제3번(1880), 첼로 협주곡 제1번(1873), 피아노 삼중주곡 그리고 피아노 사중주곡 등 많은 작품을 작곡하였으며 있었지만 음악적 내용에 있어서는 다분히 낭만적이었다. 이러한 면을 통하여 그의 음악은 프랑스의 인상주의 음악에도 영향을 주었다. 생상은 낭만주의 음악가들 가운데 특히 프란쯔 리스트의 음악을 매우 좋아하였다고 한다. 리스트의 음악 가운데 특히 교향시에 대하여서 생상은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러한 생상의 음악은 기본적으로 고전주의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예술적 사고를 드라마틱하게 처리하는 낭만주의적인 경향을 많이 절충하고 있다. 이렇듯 생상은 모든 기법이나 양식적인 면을 떠나서 순수하게 예술을 위한 예술의 작곡가이었다.3.에마뉘엘 샤브리에(Emanuel Chabrier, 1841-1894)에마뉘엘 샤브리에는 피아노 음악을 조금밖에 쓰지 않았으나 그의 음악이 인상주의의 씨앗을 품고 있기 때문에 중요하다. 샤브리에의 피아노 작품은 그러한 그의 재능을 보여주고 있다. 은 인상주의의 씨앗을 품고 있었던 점에서 가치가 있다.는 진정한 부레 리듬은 아니지만 정통 부레의 2박자 형식을 보유하고 있다. 이 곡은 샤브리에가 이전에 쓴 몇몇 피아노작품과 비슷한 스타일로 되어있다. 이 작품은 며 명기적이며 화려한 음향경험을 위한 시도를 효과적으로 성취하고 있다.4.세자르 프랑크(Cesar Franck)(1822.12.10. ∼1890.11.8. )▲세자르 프랑크의 생애 및 작품벨기에 태생의 프랑스의 작곡가이며 탁월한 오르간 연주자이기도 한 프랑크는, 벨기에 리에쥐에서 태어나 그곳 음악원을 마친 뒤 파리에 옮겨 가서 다시 파리 음악원에 입학(1835년)하였으며, 이후 프랑스 음악계에서 활약하였다.파리 음악원에서는 피아노를 찐메르만에게서, 대위법을 르볼스에게서, 오르간을 브노와에게서 각각 배우고, 1838년에는 16세의 나이로 피아노 대상을, 1840년에는 푸가로 1등상을, 다음 1841년에는 오르간 부문에서 2등상을 타고 다시 작곡을 위한 로마 대상을 얻기 위한 수험준비를 시작하였다. 화려한 연주회의 피아니스트가 되라는 부친의 의견 때문에 그것을 실현할 수가 없872년에는 또 파리 음악원의 오르간과의 교수로 임명되었는데, 이 때 벌써 그는 50세였다.프랑크가 음악사 위에 이름을 남기게 된 명작, 이를테면 라단조의 교향곡 (1866년-88년), 가장조의 바이올린·소나타(1886), 교향적 변주곡(1885) 등의 잘 알려지고 있는 작품이나 실내악곡 등이 이 만년의 시기에 만들어지고 있다.68년이라는 생애에 있어서 50대에 이르러서 비로소 명작을 만들기 시작하였다는 것, 바꾸어 말하면 그 시기에 그의 창작력이 집결되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도 그의 인품을 잘 말해 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그는 어디까지나 시대의 풍조에 좌우되지 않고 속된 세상과 떨어져서 오로지 자기의 예술성을 탐구하고 인간적인 감동의 깊이를 그 작품 속에 표현하여 간 작곡가였다.프랑크의 음악에는 그러한 창작 태도나 인간성이 당연한 결과로서 반영되어 있다.단순한 당시 사람들의 기호에 맞추어 간다고하는 안이한 자세는 없고 어디까지나 순수하게 음 그 자체의 세계를 만들어 갔다. 귀에만 상쾌하게 들리는 가락, 전통적인 음악에 보여지는 형식적인 프레이즈감, 정해진 화성 진행이나 조바꿈 등이라는 것에 대한, 말하자면 그의 순환 형식과 결부되어 간 것일 것이다. 그러한 점이 당시 사람들의 귀에 익지 않았기 때문에, 처음에는 내용적으로는 어떻든 외면적으로는 아주 이해되지 못하였다.1890년에 초연된 현악4중주곡에 대하여서는 박수 갈채로 그의 작품을 맞아 들일만큼 완전한 이해와 공감을 보였다. 4년 뒤에 드뷔시의 이 초연되었는데, 그는 또 댕디, 뒤파르크, 피에르네, 로팔쯔, 쇼송, 루크 등의 훌륭한 작곡가를 길렀다는 점에서도 프랑스 음악계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프랑크의 피아노 작품프랑크의 독주용 피아노 작품은 그 수가 적으며 말하자면 인기가 높은 작품은 거의 없다고 하여도 좋을 것이다.그의 피아노곡을 작곡연대로 보아 가면 알 수 있는데, 어느 것이나 그의 대표적인 걸작이지만 와 은 음악적인 해석뿐 아니라 기교적으로도 상당히 고도이며, 어느 정도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제1주제는 반음계적이며 당김음을 포함하고 있는 경건한 코랄, 제2주제는 전주곡의 주제를 연장한 것으로 연속된 온음음계 화성이 아르페지오로 장대하게 합창풍으로 노래한다. 이 2개의 대조적인 주제가 3회 반복된 뒤 간주곡이 된다.이 주제는 다음 푸가의 주제를 제시하고 있다. 곡의 끝은 끊어지지 않고 그대로 푸가로 들어 간다. 푸가는 먼저의 간주곡의 주제와 같은 모양이지만 조성을 바꾸고 있다. 많은 푸가는 빠른 템포의 것이지만 이 곡은 템포가 느린 푸가이다. 주제의 제시 뒤 4성이 차례로 더하여지고 전개가 행하여짐과 함께 고민은 쌓여지고 점차로 크레센도하여 불안을 높힌다.그것이 고투와 애원의 정점에 도달하면 일전하여 전주곡의 끝부분이 나타나고 점차로 디미누엔도 되어 그 위에 코랄의 제2주제가 나타난다.하아프와 같이 여린음의 아르페지오는 주제를 편안하게 싸고 있다.점차로 활기를 가진 주제가 전주곡의 주제, 코랄의 주제와 겹쳐서 개선과 같은 환희로 높여져서 발랄하게 곡을 맺는다.여기에는 프랑크가 자주 말한 "어둠 속에 빛을 낳게 하는 고투"가 참으로 잘 나타나 있다. 어느 뜻에서는 이것은 정신적 표제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5.뱅상댕디프랑크의 제자 중에서 가장 유명하고 재주 있던 뱅상 댕디는 당시 가장 존경받던 교수이자 음악학자의 한사람이었다. 댕디는 1896년 보르드, 알렉상드르 기유망과 더불어 스콜라 칸토룸 을 설립했다.댕디는 피아노곡을 아주 많이 썼는데 < 여행의 화집 op.33> 등이 있다.댕디는 를 피아노를 위한 교향시라고 불렀고 약간의 표제음악적인 인상을 주는 모음곡이다. 크게 3부분으로 나눌수 있는데 이를 다시 세분화하여 작품전체는 10개의 곡에 달한다. 이 작품은 프랑크적 원리에 의해 구성되었으며 는 쓸쓸한 자연속의 고요함을 상기시키며 는 베버의 와 연과되어 있고 은 회고의 정을 서정적으로 표출한 것이다.6.데오다 드 세베락세베락은 댕디의 제자로 그의 작품 중 많은 부분은 자신의 자연스러운 천성은 물론이고 남부 프랑스에 위치한 랑게독 지방의 .
    예체능| 2002.10.27| 9페이지| 1,000원| 조회(7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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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술의 이해] 조선시대 풍속화연구 평가C아쉬워요
    풍속화우선 조선 후기 풍속화에 살펴 보기 전에 풍속화라는 것에 대한 정의와 유래에 대해 살펴 보고, 조선 후기의 시대상과 왜 풍속화가 조선후기에 절정을 이루었는가에 대해 살펴본다음 대표적인 인물과 풍속화에 대해 알아 보도록 하겠다.풍속화라는 것은 주로 일반 백성들의 일상적이고 평범한 생활의 정경을 소재로 그린 그림이다.이것의 시초는 인물화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상당히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고구려 고분 벽화에서부터 시작이 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주로 4-6세기 경에 만들어진 고분의 벽에 그려진 행렬도, 수렵도, 무용도와 같은 각종 행사를 그린 그림과 부엌, 방앗간 , 푸줏간 마굿간등 당시 생활과 직결된 내용들이 묘사되었는 벽화를 풍속화의 시초로 보고 있다.그 뒤 고려불화등에서도 단편적으로 나타나기는 하지만 시대상과 맞물려서 조선 후기에 그 절정을 이루게 된다.이렇세 조선 후기에 절정을 이루는 이유는 당시의 시대상과 맞물려 돌아갔기 때문이라 할 수있다.조선 후기 즉 영·정조시기라고 할 수 있는데 당시는 대체로 태평하였으며 나라 살림도 넉넉하고 아무런 병란이 없었던 평화스런 시기였고 서양사상의 영향으로 인한 전근대적 사상을 탈피하여 근대적 이념으로의 변화를 꾀하는 실학사상의 대두되었다.근대적이념이라 함은 서양의 합리주의과 국민주의로의 발전을 뜻한다. 이러한 이념을 바탕으로 실학은 사농공상의 국민의 개념과 이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국민국가관등의 이념으로 태어났던 것이다.미술계에 있어서도 이런 평화스러움과 국민에 대한 관심으로 인해 국민, 즉 당시의 백성들에 대해 관심을 아니 가질 수 없었고 초기에는 몇몇 사대부화가들의 관심에서부터 출발하여 나중에는 전문적인 직업 화가라 할 수있는 화원의 등장으로 인해서 조선 후기 풍속화는 절정을 이루게 된 것이다.비단 풍속화에서 뿐만 아니라 기타 회화 등에서도 조선후기는 비슷한 이유에서 크게 발달하였고, 조선 문화의 르네상스로 불리고 있다.인간을 주제로한 풍속화는 이전의 이상주의적 그림과는 달리 인본주의적 관점이라 할 수있다. 서양의 르네상스가 모든 예술은 인간과 떼어 놓고 생각 할 수 없는 것이고 인간의 삶이 그 모태라고 생각하고 고대 그리스 로마의 그것으로 돌아가자는 것이 르네상스 운동이라고 보고 또한 그러한 것을 추구 하였을 때 예술이 크게 발전한 점을 미루어 볼 때 같은 인본주의적 관점이나 예술의 발달성을 보건대 조선후기를 조선문화의 르네상스로 불리기에는 손색이 없으리라 본다.그러나 이런 풍속화는 처음에는 양반들의 감상화에 비해 저속한 계층의 삶을 담은 그림 이라는 의미로 '속화'라고 비하되어 불리기도 하였다.그러나 위에도 밝혔듯 몇몇 뜻있는 진보적인 사대부화가들에 의해 새로운 풍속화와 같은 새로운 개척은 그들만이 할 수 있고, 해야만 한다는 사명감에서부터 출발이 되었고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상황이 좋아지고 결국에는 한 시대를 풍미하는 주류로 불리게 되는 것이다.이러한 풍속화의 대표적 인물에는 김홍도와 신윤복이 있다.물론 이전에도 사대부화가인 윤두서나 조영서등이 있는데 이들보다는 전문적으로 그림을 그린 김홍도나 신윤복이 더 대표적인 인물이라 할 수있다..아무래도 풍속화를 그리는 것 자체만으로 어느정도 위험부담을 안아야 했던 초창기의 사대부 화가들에 비한다면 전문적인 화원들은 그들의 업적을 발전시키고 세련화 시키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으며 화원의 신분이기에 표현의 제약이 적어지고 백성의 정서적 색채를 짙게 표현 할 수 있는 것이 장점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또한 사대부화가들에 비해 시대적 상황이 오랫동안 봉건적인 체제에 억눌려 왔던 감정과 색정등의 본능을 좀 더 잘 표현할 수 있었고 이것의 이유는 위에서 설명 한 바 있다.또한 사대부에 이어 화원들이 대를 이어 풍속화를 그림으로써 주제면에 있어서도 많은 변화가 일어 났는데 단순한 놀이와 유흥문화를 넘어서 노동,음주문제, 지방관리의 타락성, 기생놀음, 양반과 상민의 차별, 처첩갈등 등 당시 사회의 깊숙한 곳까지 제대로 다루어질 수있었던 것이다.또한 김홍도나 신윤복등의 실력은 매우 뛰어난 것이여서 이런 것들을 더욱 잘 표현해 낼 수 있었던 것이다.풍속화를 대표하는 두 인물의 화풍은 어느정도 다르다고 할 수 있다.우선 김홍도의 작품은 소재면에서 주로 서민들의 생활상을 파헤치는데 주력을 하였다.또한 당시 사회문제들을 과장 없이 은유와 풍자로 엮어내는데 뛰어난 역량을 발휘 하였는데 현실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기 보다는 해학속에서 간접적으로 내비치고 있었고 당시의 서민들의 생활상에서 취해지고 묘사된 생생한 생명력은 그때에나 지금에나 강한 호소력을 가지고 있다 말 할 수있겠다.또한 그의 풍속화는 전형적으로 원형구도나 사선구도 등을 이용한 짜임새 있는 구도, 기를 불어 넣어 살린 인물묘사, 강하고 생명력 있는 필선의 구사등을 특색으로 하고 있다.이러한 김홍도의 풍속화는 김득신을 비롯한 당시의 여러 화가와 민화가들에게 큰영향을 미쳤다.
    예체능| 2001.11.30| 3페이지| 1,000원| 조회(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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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음악의 이해] 베토벤의 생애 평가B괜찮아요
    1.베토벤에 대하여본 출생. 할아버지 루트비히와 아버지 요한도 음악가였으며 악재(樂才)를 인정한 아버지는 아들의 천재적 소질을 과시하려고 4세 때부터 과중한 연습을 시켰으며, 7세 때에는 피아노 연주회까지 열었다. 베토벤은 몇몇 선생의 지도를 받았는데 1779년에 그를 가르친 크리스찬 고트로프 네페로부터는 음악뿐만 아니라 정신적 ·정서적인 영향까지 받았다. 1782년 궁정예배당 오르간 연주자로 출발, 2년만에 정식 멤버로 임명되고 1787년에는 빈에 가서 흠모하던 모차르트를 만났으나, 어머니의 위독으로 곧 본으로 돌아와 이 해에 끝내 홀아비가 된 아버지를 대신하여 집안을 떠맡았다. 그러다가 1792년 바르트슈타인백작을 비롯한 친구들의 원조로 빈에 유학, 결국 그 곳이 그의 영주의 땅이 되었다. 빈에 자리 잡은 베토벤은 귀족들의 보호를 받았으며, 셴크 ·알브레히트베르거 ·하이든 ·살리에리 등에게 사사하여 음악가로서의 지식과 능력을 키워 나갔다.1795년 피아노 연주자로서 데뷔하고 이 시기에 최고 작품으로 꼽히는 《피아노 3중주곡》을 발표하여 착실한 첫발을 내디뎠다. 1796년 프라하 ·드레스덴 ·베를린을 여행하고, 1800년에는 《제1교향곡》과 6곡의 현악4중주곡을 발표했다.그러나 이 무렵부터 귓병이 나서 점차 악화하였다. 절망한 그는 1802년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를 쓰고 연주자로서의 활동을 포기, 작곡에만 전념했으며 두문불출로 외부와의 접촉을 피했다. 그런 생활 속에서 《제2교향곡》(1802), 오라토리오 《감람산상(橄欖山上)의 그리스도》(1803), 그리고 1804년에는 《제3교향곡(영웅교향곡)》을 작곡하여 하이든이나 모차르트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난 개성적인 스타일을 확립하였다.1805년 오페라 《피델리오》의 초연에 실패하고, 이듬해 이를 손질하여 재연하였지만 역시 성공하지 못하였다. 이 작품이 최종적인 형태로 무대에서 인정을 받은 것은 1814년의 일이다. 베토벤의 작품은 빈을 비롯하여 유럽 각지의 출판사가 앞을 다투어 간행하였다. 출판에서의 보수와베토벤의 작품은 동적인 다이내믹한 힘을 특징으로 하는데 형식적으로는 강고한 형식감(形式感)으로 일관되어, 곡마다 독자적인 스타일로 하나의 세계를 이루고 있다.후기의 창작활동은 중기에 비하여 다이내믹한 힘은 부족하지만, 보다 깊은 마음의 세계가 표현되어 신비스러울 정도의 감동적인 스타일을 보이고 있다. 이 시기는 낭만파의 초기의 대표자들인 베버나 슈베르트의 활동과도 겹치고 있는 것이 주목된다.베토벤의 작품들은 그후 19세기와 20세기에 걸쳐 후대 사람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으며, 지금도 그 생명력을 발휘하고 있다. 또한 음악가이면서도 청각을 잃었지만, 이를 극복한 정신력은, 인간의 집념과 생활태도의 귀감으로서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고 있다.2.베토벤의 업적베토벤의 가장 큰 업적은 그 때까지는 성악에 비해 열등하다고 간주되었던 기악을 최고의 경지까지 끌어 올렸다는 것이다. 18세기 동안, 음악은 비 묘사적인 예술이었기 때문에 문학이나 미술에 비해 등급이 낮게 매겨졌다. 칸타타, 오페라, 그리고 오라토리오 등에서와 같이 문장의 도움을 받았을 때에만 그 최상의 위치가 획득된다고 여겨졌고, 소나타와 모음곡은 보다 낮은 수준으로 격하되었다. 수많은 요소들이 한 데 모여 점차 양상이 변해갔다. 교향곡의 발달을 가능하게 한 만하임(Mannheim) 오케스트라의 훌륭한 기악적 역량, 그리고 문필가들 쪽에서 순수한 이성주의에 반발하여 "느낌"을 선호하게 되는 반동적 움직임, 그리고 하이든과 모짜르트의 작품들 등이 양상의 변화를 가져온 요인들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월터 페이터(Walter Pater)가 이야기한 "모든 예술은 음악의 상태를 동경한다"라는 후기 낭만파의 경구는 베토벤의 예를 통해 가능하였다.베토벤 이후에는 더 이상 음악을 단지 "즐거운 소리들의 예술"이라고 말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게 되었다. 그의 기악 작품들은 강력한 감정의 밀도를 그 때까지 전례없는 구성의 완벽함과 결합시켰다. 그는 그가 물려받은 모든 음악적 유산들을 (오페라와 가곡은 예외로 하고) 그의 선배들. 제시부는 길고 여러 개의 주제를 사용하였으며, 전개부는 상대적으로 짧다. 느린 악장들은 길고 풍부한 장식을 가한 서정성을 보여준다. 3악장은, 비록 때때로 스케르쪼(Scherzo)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그 미뉴엣의 기원에 충실하나, 표면적으로는 미뉴엣답지 않은 강약으로 인해 종종 어지럽혀진다. 마지막 악장들은 생기 넘치는 기품의 전형적인 보기이다.그러나, 두가지의 특징으로 베토벤은 동시대의 다른 작곡가들로부터 강하게 부각된다. 그 하나는 대비되는 강약들을 독창적으로 사용하는 것인데, 특히 갑작스런 피아노로 이어지는 크레센도의 수법(이는 만하임 악파의 특징이기도 하다 : 역주)에서 두드러진다. 다른 하나의 특징은 피아노 소나타들에게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이다. 즉흥 연주 기법에서 도출된 기교들을 점진적으로 적용하는데, 예기치 못한 액센트들, 청중으로하여금 계속 추측하도록 고안된 리듬적 모호함, 그리고 특히 명백히 평범하고 거의 의미없는 재료를 사용하여 그로부터 유력한 음악적 논증을 만들어내는 점 등이 그것이다.중기는 두 곡의 "환상곡 같은(quasi una fantasia)" 피아노 소나타들, 즉 1801년에 작곡된 작품 27의 소나타들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으나, 교향곡과 협주곡의 분야에서는 "영웅(Eroica)" 교향곡(1804)과 4번 피아노 협주곡(1806) 이전에는 그 특성이 완전히 드러나지는 않는다. 여기서는 즉흥적 소재 및 기법들의 사용이 더욱 더 두드러진다. 그러나, 초기의 베토벤은 그것이 전통적인 18세기의 틀에 얼마나 자연스럽게 어울리는가를 보여주는 데 더욱 치중한 반면에, 이 시기에는 모든 표준으로부터의 일탈에 대해 그것이 논리적으로 시사하는 바를 보다 더 깊이 파고든다. 그가 사용하는 화음은 여전히 단순하며, 예를 들자면 모짜르트보다도 훨씬 더 단순하다. 새로운 것은 그것이 기본적인 흐름과 연관되어 사용되는 방식이다. 이로부터 베토벤은 그의 주요 주제들 안에서 무한히 다양한 긴장과 강세를 창조해내며, 여기서 각 악장의 형태가 조형악적 장치에 포함된 모든 것들, 푸가, 변주곡, 무곡, 소나타 악장, 행진곡, 심지어는 선법적인 멜로디나 오음음계적인 멜로디까지 모든 것이 동원되었다.베토벤은 말하자면 음계의 건축적인 사용에 대한 최고의 대표자로 아직 남아있다. 그의 가장 위대한 소나타 악장들을 들어보면, 이를테면 "영웅" 교향곡의 1악장 에서, 가장 먼 조성이 연주될 때에도 청중의 무의식적인 정신은 여전히 내림 마 장조로 향해 있어서, 재현부가 시작되기 훨씬 전에 딸림음(내림 나음)이 울릴 때에도, 이 음은 즉각 딸림음인 것으로 인식가능한 것이다. 그가 교향곡과 사중주에서 이룩한 개혁가운데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미뉴엣을 보다 역동적인 스케르쪼로 대체한 것이다. 그는 음향과 구성의 다양성에 새로운 영역을 부여함으로써 오케스트라와 사중주단 둘 다를 풍요롭게 하였다.협주곡에 대해서도 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엄격히 말해서 그는 협주곡에 대해서는 어떤 형식적인 개혁도 가하지 않았다. 피아노 협주곡 4번과 5번에서 오케스트라의 리토르넬로(오케스트라 파트)가 나오기 전에 독주 악기가 나오는 것은 이미 모짜르트에 의해 선례가 남겨졌다. 비록 그가 합창 교향곡과 장엄 미사에서 자신이 합창의 효과들에 대한 대가라는 것을 보여 주었지만, 성악 독창은 그에게 끝까지 어려움을 안겨 주었다. 그의 많은 노래들은 아마도 그의 모든 창작물 가운데서 가장 중요도가 낮은 분야일 것이다. 그의 유일한 오페라인 피델리오는 그 탁월함이 오페라적인 표현법에 대한 어떤 진정한 이해보다는 오히려 그 음악의 뛰어남에 기인한다. 그러나, 심지어 이런 성악적 감각의 부재조차도 결실을 낳는 데 기여했는데, 이는 그 점으로 인해 그의 정신이 다른 방향들로 자유롭게 뻗어 나가게 되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멜로디에 대한 개념이 노래로 불리워질 수 있는 어떤 것에 그 뿌리를 내린 채로 끝까지 남은 모짜르트 - 또는 심지어 하이든조차도 - 같은 작곡가는 "영웅" 교향곡의 도입부와 비슷한 어떤 것도 쓸 수 없었는데, 여기서는 서로에게 길을 다시 만나게 된다. 작곡가들 가운데서 이 원칙을 확대 적용한 사람은 누구보다도 리스트였는데, 그의 두 개의 피아노 협주곡뿐 아니라 그의 교향시들도 이 방식을 기초로 작곡하였다.후대의 작곡가들에게 의심할 나위 없이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두개의 베에토벤의 작품을 들라면 5번 교향곡과 9번 교향곡이며, 폭풍과 긴장으로부터 승리로 나아가는 그 모습을 통해서 깊은 인상과 감동을 줌으로써 많은 작곡가들이 그러한 정신을 표현하려고 시도하였다. 브람스의 1번 교향곡, 차이코프스키의 5번 교향곡, 세자르 프랑크(Cesar Franck)의 교향곡, 그리고 말러의 부활 교향곡 등은 모두 베에토벤의 정신적 후손들이다. 하지만 이 작품들을 두고서 이들이 모델로 삼았던 작품들보다 뛰어나다고 하는 것은 고사하고, 동등하다고 인정하는 사람들도 거의 찾기 힘들다.3.베토벤 음악적 연대기1770年 12월 16일, Johann van Beethoven(the Elector of Saxony 와 Magdalena Kewerich 의 테너이자 바이올린연주자)의 아들로 태어남.1778年 3월 26일 처음 독주회를 가짐.1780年 본 궁정(the Court of Bonn)의 오르가니스트이자 국립 극장의 지휘자인 Christian Gottlob Neefe의 문하생이됨.1783年 궁정에서 Neefe의 뒤를 이음, at the Court; publishes a sonata, 2 pieces from the Bossless anthology, a fugue and a rondo1784年 론도와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함.1785年 3개의 사중주곡을 작곡함.1787年 빈(Vienna)을 여행하며, 모짜르트를 만남, 어머니의 건강악화롤 본(Bonn)으로 돌아 옴, 7월 17일 어머니 사망.1789年 베를린 대학에 입학, 아버지가 궁정 가수직에서 해고되자 가문의 가장이 됨, 궁정 극장 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린리스트가 됨.1790年 황제의 죽음을 위해 2개의 칸타타를 작곡하고, 발레를 위한 음악을 씀.1791年 바이올
    예체능| 2001.11.27| 10페이지| 1,000원| 조회(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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