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언론은 사회변동의 원인인가? 혹은, 사회의 변동을 단순히 반영하는 가? 이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논리적으로 전개하시오.☞ 언론이 제 4의 部라는 것은 이제 너무나 식상한 표현이 되어버렸다. 빅 3 중의 한 신문사 회장은 창간 기념회에서, 자신을 가리켜 밤의 대통령 이라 칭할만큼 견제기구도 없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하고 있는 언론. 사회가 더욱 분화되고 다양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언론의 역할과 기능은 거의 변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언론은 사회의 여러 제도와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음이 확인될 뿐 아니라, 한 사회가 모든 제도를 유지하고 보존하는 가장 막강한 사회제도로 기능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그렇다면 언론이 사회변동의 원인인지, 혹은 사회변동을 단순히 반영하며 보도할 뿐인지에 관한 물음에 대해 기본적으로 언론과 사회변동의 정의를 토대로 그 역할과 몫을 말하는 것이 이 질문에 답을 내리는 데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사회변동이란? 모든 사회에서 점진적으로 또는 극적으로 일어나는 변형이다. 그 과정은 진화적 또는 개혁적인 것이 될 수 있다. 그 변화는 한 사회의 조직 속에서, 그 구조 속에서, 또는 사회 내의 다른 집단과 단위에 의해 수행되는 기능 속에서 개변되는 것을 뜻한다. 사회 라 함은 국가, 지역, 마을, 또는 사회체제를 형성하는 모든 구성체를 의미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국가라는 개념이 가장 알맞겠다.또한, 무수히 많이듣고 익히 알고 있음직함에도, 언론이라는 것이 공기처럼 우리 주위를 항상 떠돌고 있지만 그 정의를 내리는 것은 쉽지 않다. 언론이란? 가장 간단하게 말한다면 어떤 사람이 다른 이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응답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은 다소간에 동등한 기반 위에서 발생한다. 그러나, 선제력과 역량이 오직 송신자의 역할에만 주어진다면 이때의 결과는 일방적인 메시지의 흐름이 된다. 이 대표적인 예가 대중매체이다. 대중매체는 그 속성상, 일방적이고 비인간적이며, 동시적이고, 공공적이라는 성격을 가진다. 50년대에는 이러한 일방적인 언론의 역할과 정치적어 있는 이데올로기를 유지, 강화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 이라는 것이 서구의 국가들에서 미디어가 수행하는 역할에 대한 명백한 관념이었다. 라스웰이 말하는 미디어의 기능을 보면 1 뉴스의 제공 2 감시 3 정보의 해설과 행동에 대한 규범의 제시 4 한 세대에서 다른 세대, 또는 사회의 한 부분에서 다른 부분에로 문화적 가치의 전달이 그것이다. 이렇게 언론은 현존하는 사회질서를 정당화하는 것이고, 인식을 궁극적으로 결정하는 사회적 인식(social consciousness) 을 만들어 내는 기구라는 것이다.이렇게 대중매체에서 송·수신자는 상호 평등한 소통관계가 아니므로, 어떻게 보면 하나의 권력체로 또는 권력의 매개체로 기능하는 사회변동 과정의 하나에, 필수적으로 언론에 그 필요성과 의의를 둔다. 왜냐면 변화·변동의 과정에 있어 명백히 중요시되는 사항은 메시지를 교환하는 커뮤니케이션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다른 요인이 더 중요하다고 논박할지도 모른다. 예를들어 생산 수단의 소유, 정치적 투쟁, 자본성장, 기술습득 등이다. 그렇다 손 치더라도 누구나 정보의 유통이 없이는 변화자체가 발생할 수 없다는 사실에는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커뮤니케이션은 변화과정에 매우 많은 관련을 갖고 있으며, 커뮤니케이션 시설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들은 변화가 수행되는 방향으로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위치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와같은 관점에서보면 어떤 식으로든 발전이 긴요한 국가들에서 언론은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수가 있다.60년대의 유네스코에서 조사한 매스미디어와 사회발전과의 상관관계에 관련한 지표를 보면 미디어와 경제 성장과의 관계에서만 봐도 각국에서 0.8 이상의 높은 인과관계성을 보이는 것을 알수 있다.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세계화와 정보화의 담론에서처럼 언론의 역할은 경제 성장이나 정부의 어떠한 목적을 달성케 하기위해 종전의 것에 새로운 규범, 태도, 행위를 보충함으로써 노동력을 동원하고 생각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데 대한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empathy)라고 한다. 언론에 의해 새로운 체제가 사회변동이라는 명목으로(아니 발전, 개발, 성장이라는 논리로) 새로운 체제에 호의적 태도와 역할을 확대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감정이입 의 상태를 국가나 언론에서는 변화하는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하는 진취적인 인간, 미래지향적인 인간형으로 환영하고 이를 현대사회를 지배하는 인간형으로 확정시킨다.경제적 뿐만이 아니라 정치적 목적에 의해 언론이 이용된 예는 우리나라에서만 해도 비일비재하다. 15C 이후에 후기 르네상스의 권위주의적 풍토에서 나온 가장 오래된 권위주의 이론이 한국의 예에서는 근대적인 언론이 태동한 이래로 독점되고, 때론 침묵하며 그 세력을 공고히 하고 있다. 또한, 그리하여 공고히 된 국가체제는 이제 소수의 엘리트가 주도하는, 언론은 이들의 자유와 권력만을 사회전반에 걸쳐 강화하는 쪽으로 편중되고 있다. 한국사회를 다시 대입해 보자. 인터넷을 통해 요즘 우리는 그간 쉬쉬해오던 대기업 서비스 센터에서 한 소비자가 우롱당하며 폭력까지 당하는 동영상이 공개되어 기업 불매운동을 벌이는 예를, 일본에 한 항공사에서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서비스에서 차별받는 사실들을, 서울의 한 여자 중학교에서 일진들에 의해 폭행당한 여학생 어머니의 호소를(진위 여부에 대해 아직도 논란거리가 많지만) 알 수 있다.그간의 언론체제 즉 상부하달 식의 매커니즘 속에서의 언론에서는 아마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그간의 언론이 그날그날 정한 중요한 주제를 설정해 주면,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그 암시하는 바를 어떻게 해석해야 한다고 모범정답처럼 알도록 강요하는 것을 이른바 agenda-setting이라고 한다. 우리들은 신문 1면기사를 보고 그 날의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하며 그것을 당연시하므로 이와 같은 언론의 의제 설정방식은 대인관계를 통해서 더욱더 확산될 뿐이다.사회여론이 폭발적이었던 과거의 혁명에 가까운 사건들에 있어서는 그 여론이 위로 분출되어(4`19라든가, 6월 항쟁 당시)변화가 일어나던 예도 분명 존공고히, 교묘히 진행되고 있고 또한 대안매체(뉴 미디어 중에서 탄생한다)라 할 수 있는 인터넷이나 사회단체의 힘도 강해져 그 과도기의 상태가 현재 한국에서의 언론이 가진 위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김영삼의 고대 강연 사건 이 있던 그 날 한 네티즌이 올린 유머를 인용하자면{내일(사건 다음날) 아침 각 신문의 헤드라인을 예언한(?) 이야기였는데,한겨레·대한매일: 김영삼씨 망발 자중해야...고대 입구에서 학생들에 의해 진입거부!동아·중앙: 김영삼씨 행보 학생들 규탄, 그러나 준비소홀로 이러한 사태 가져 온 고대 측도 문제가 있다.조선일보: 정권에 의한 음모다. 전 대통령에게 이런 예우가 어디있나!! 고대생들 뒤에는김정일` 김대중 커넥션이 분명코 존재한다.이런 식이었다. 그러나 놀라운 점은 사실 그 비슷한 논조로 각 신문사 기사가 다음날 난 터라 허탈한 적이 있었다. 이른바 이 중 3개 신문사는 빅 3라 불리며 신문시장의 80%를 독점하고 있다. 커뮤니케이션이 사회변동에 있어서 주된 원동력은 아니라는 비판에 대해 수긍하지만,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세력 중의 하나를 조정하는 것만은 분명한 또한 그것에 있어 아주 강력한 도구라는 데는 인정해야 할 것이다. 즉, 그것은 사람들이 생활을 함에 있어 그들의 견해를 형성하는 정신적인 개념이다.(그 의도를 숨긴 채 말이다) 언론이 사람들을 사회변동의 방향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어려운 예견이 결코 아닌 것이다.【참고 문헌】▷인터넷 우리모두 (안티 조선일보 사이트) 게시판 인용▷「언론의 4이론」 프레드 시버트 外2명 著, 강대인 譯, 나남▷「커뮤니케이션과 사회변동」 고란 헤데브로 著, 안광식 譯, 이화여대 출판부Ⅱ.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의 발명이 사회에 미친 영향에 대하여 논하시 오.☞ 책이라는 존재가 하나의 매체로 자리잡기까지는 얼마나 오랜 세월이 걸렸을까? 오늘날과 같은 우선,형태면에서 종이책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후한시대에 채윤이 종이를 발명하면서 부터지만, 그 당시에는 지배계층의 전유물로써 일반사람들에겐 구책이 한권쯤 꽂히기 시작한 것은 15C 중엽에 보급된 쿠텐베르크의 활판 인쇄술 덕분이었다. 얼마전 한 신문에서는 밀레니엄을 맞아 지난 천년을 지배한 것이 인쇄`출판물이었다고 평하고, 이제 이러한 종이책은 전자책의 탄생으로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이 전자책 프로젝트 명이 이른바 구텐베르크 프로젝트 였다. 여기에는 온갖 책이나 이미지등을 카피레프트의 개념으로 누구나 공유할 수 있게 하겠다는 소개가 실려있었다. 한 세기를 대결짓는 이른바 구텐베르크 프로젝트 라니.. 여기서 나는 몇 백년 전쯤 최소한 이만큼의 파장은 가져왔을 구텐베르크의 활판인쇄에 대해 얘기하고자 한다.1450년대에 독일 마인쯔 시에서 구텐베르크가 라틴어 성서의 활판인쇄에 성공하여 이를 구텐베르크 성서라고도 하는데, 그는 서구에서 포도즙 짜는 데 쓰이던 압축기를 본떠서 인쇄기를 발명했다. 그는 이전까지의 표의문자가 아닌 음절 활자본을 만들어 이동할 수도 있는 활자본을 만든 것이다. 필요할 때마다 미리 주물로 떠놓은 낱개의 활자들을 판 위에 조합하기만 하면 되는...그것은 숙련된 필기사가 필사하여 1년에 2권 정도의 책을 만드는 데 비해 하루에 한권의 책이 만들어 지는, 시간적 한계를 여실히 파괴해 버린 놀라운 변화였다.낮은 비용으로 문서 여러벌을 인쇄해내는 이러한 효율적인 기계의 등장은 단순한 기술적인 진보만이 아니었다. 이는 기술적인 진보만으로 불리기엔 그전과 너무나 판이하고 폭발적인 힘을 몰고왔다. 인쇄술의 발명은 그 당시로서는(아니 당시에는 이런 파장을 몰랐겠지만 지금에와서는) 혁명적인 하나의 사건으로 간주된다.문자 그 자체는 기원전 4000년 전쯤 수메리아 인들에 의해 비롯된 것이라 추정되고, 활판인쇄 전에도 성경이나 철학서등은 글씨를 잘쓰는 사람들에 의해, 필사실을 갖추고 있던 카톨릭 수도원에서 주로 행해졌다. 그러나 일반인들의 접근은 엄격히 제한되었다. 중세의 도서관의 책들은 책상에 쇠줄로 고정된 채 읽혀야만 했다. 인쇄술의 발명은 책들을 쇠줄로부터 해방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