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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행문
    기행문을 쓰기위해 어디를 가야할까? 많이 고민했다. 먼 곳을 찾아가기 보단 가까운 곳에 있으면서 한번도 가보지 못했던 곳을 찾기로 했다. 그러다 내가 살고있는 시흥시에 소래 산 이라는 산을 등반하기로 결정했다. 사실 집과는 불과 버스로 몇 정거장 거리인데도 올라가 보지 못 했던 산이 세기다. 이 산에 마애불이라는 문화재가 있는데 아직 국보나 보물로 지정되지 못하였으나 현재 문화재 지정을 위해 시흥 시민 모두가 추진 중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동안 우리 시에 어떤 문화재가 있었는지 조차 몰랐던 내가 쑥스러웠지만 마애불의 모습을 상상하며 기대가 부풀어 졌다. 길을 오가며 산을 봐왔지만 막상 오르려니 소풍을 나온 기분이었다. 등산로는 모교인 중학교 뒤쪽으로 놓여져 있었다.주말이라 많은 사람들이 단체 야유회를 나오거나 약수 물을 길으러 나왔다. 나는 몇 일전 말다툼으로 눈도 마주치지 않던 동생과 엄마의 등떠밀음으로 동반하게 되었다. 아직 서로 서먹하게 산을 올랐다. 오르는 길에 방범초소에서는 산불조심 안내 방송이 끊이지 않고 흘러 오히려 소음을 일으킬 정도였다. 소래 산 마애 보살 입상은 소래 산 중턱에 위치해 있었다. 중턱까지 오르기 전 소암, 소화, 청용이라는 약수터 세 군데가 있었다. 모두 사람들의 줄이 길게 늘어져 있었는데 나는 그 중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청용 약수터의 물맛을 보았다. 역시 약수 물이라 그런지 차갑고 시원해서 갈증해소에 그만이었다. 청용 약수터에서 마애불까지는 몇 백 미터가 더 남았다. 그 길을 오르며 신기한 풀들이 많이 있었다. 금낭화라고 하는 방울꽃을 닮은 귀여운 꽃과 노루오줌이라는 특이한 이름의 난처럼 생긴 풀들이 산에 뿌리 담고 있었다. 동생과 나는 어느새 어릴 적 산딸기를 따던 얘기를 하면서 서먹함을 풀어갔고 서로 사진 찍어 주기에 바빴다. 등산로를 따라 계속 오르다 보니 마애불에 대한 현수막이 나왔다. 경- 소래 산 마애불 국가 문화재(보물) 지정 -축 이라는 글자가 세겨져 있었다. 그런데 산을 얼마 오르지 않아 나는 레포트를 해결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버티었지만 동생은 많이 지쳐 있었다. 배가 아팠던지 주저 않기까지 했다. 그러나 결국 마애불이 있는 곳까지 애써 올랐다. 마애 보살 입상은 소래 산 중턱에 있는 병풍바위 또는 장군바위라고 불리우는 암벽에 선각(線刻) 되어 있었다. (1990년 5월 4일 시흥시 향토유적 제14호로 지정되었다.) 가까이에서 보면 잘 알 수 없지만 멀리서 보면 한 눈에 모습을 알 수 있었다. 현재 문화재 지정을 추진 중이라 마애 보살 입상 주위에 어린 꽃들과 나무를 심는 등 단장이 한창 이었다. 마애 보살 입상의 모습은 머리에 연화(蓮花)문 이라는 화사한 보관(寶冠)을 쓰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특이했다. 이 보관은 위가 좁은 원통형이었고 높은 곳에 있어 잘 보이지 않았지만 보살상 단장 일을 하시던 아저씨 말씀에 의하면 그 안에는 당초문이라는 장식이 되어 있다고 하셨다. 또 양옆에는 사모의 각과 같은 것이 별 모양으로 뻗어 있는데 희미하게 남아 있어 눈을 크게 뜨고 봐야했다. 그 뿔의 형태는 서역(西域) 지방에서 흔히 보이는 것이라고 들었다. 그것으로 보아 제작 당시 서역과 교류가 있었음을 시사해 주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얼굴은 대체로 둥근 형상에 눈, 코, 입이 부리부리할 정도로 큼직하게 표현되어 시원시원해 보였다. 이 보살 입상은 고려 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고려 때에는 불상의 얼굴이 대체로 표현 주의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경향이 강하였다고 한다. 양쪽 귀는 유난히 길게 늘어진 것이 역시 부처의 귀 다웠고 목에는 삼도(三道)가 둘러져 있어 자못 근엄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또 보살 입상이 입은 옷은 양쪽 어깨에 걸쳐져 있는데 사람들은 천의(天衣) 라 하였다. 이 천의는 동체(胴體)를 휘감아서 가슴 밑쪽에는 결대가 있었으며 또 그 밑으로는 큼직한 활과 같이 굽은 형상을 그리면서 발목까지 유려히 흘러 내리었다. 또한 수인(手印)은 오른손을 가슴에 올리고 내장을 하고 있으며 왼손을 팔꿈치 부근에서 상장하고 있었다. 발은 연화대좌 위에 양쪽으로 뿌린듯한 자세를 취하였다. 아마 사람이 실제 그러고 있기는 어려울 것이다. 유려한 음각선을 사용하여 거대하고 부리부리한 보살의 모습을 잘 표현해 보였다. 이 보살 입상처럼 선각으로 거대한 상을 조각한 것은 고려시대의 유행이라고 한다. 나는 고민에 빠졌다. 고려시대에 새겨진 벽화가 아직까지 선명이 남아 있다는 것이 신기했기 때문이다. 특히 그 큰 모습을 기계장치도 없이 어떻게 그려 낼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에 선조들의 예능 솜씨는 무엇이라 말할 수 없다고 결론 지었다. 이 마애불 입상의 규모는 높이 14m, 보관 높이가 1m 80cm, 발 길이는 1m 24cm, 발톱길이 1cm, 귀걸이 1m 27cm, 눈 크기 50cm, 머리 높이만 3m 50cm 그리고 어깨 너비 3m 75cm의 거불로써 우리 나라의 석불 조각에 있어서 최대에 속한다고 한다. 이런 문화재가 우리 고장에 있다니 신기하기도 하고 자랑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나는 기념할 사진을 찍기위해 돌을 쌓아 제단을 만들어 놓은 곳에 마치 보살 좌상 같이 앉아 사진을 찍었다. 그때 그 곳을 지나가시는 몇몇 사람들이 마애불을 보고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올렸다. 그 모습이 정성스러워서 무턱대고 사진을 찍던 내 자신이 민망해졌다. 얼른 제단에서 내려와 동생과 정상까지 오르기로 했다. 마애불에서 정상까지는 580m로 그 곳부터 등산로가 좁아지고 바위가 많아 험한 산의 느낌을 주었다. 또 업친격으로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조금 남은 정상까지의 거리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정상이 보이기 전에 주위 전망을 보았다. 산이 있는 주변 일대가 훤히 보였다. 탁 뜨인 모습이 가슴까지 쫘악 펴주었다. 바위들이 진흙으로 뒤덮여 미끄러웠지만 끝내 정상에 올랐다. 나는 기뻐서 크게 야호 소리를 외치려 하자 동생이 입을 막았다. 야호 소라와 같은 소음으로 나무가 죽는다고 절대 외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메아리 소리를 들을 수는 없었지만 마음으로 크게 야호 라고 울려댔다. 오르는 길보다 내려오는 길이 훨씬 더 빨랐다. 얼른 내려가려는 성급한 마음에 미끄러 넘어져 돌에 엉덩이를 찍히고 옷도 흙으로 얼룩졌지만 그래도 마냥 즐거웠다. 4월이 한창 기지개를 펼지라 나무들도 푸른 모습이 참 기분을 좋게 해주었다.
    생활/환경| 2001.09.02| 3페이지| 1,000원| 조회(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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