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서론‘김사량’이라는 이름은 낯설기만 하다. 그만큼 현재 김사량에 대한 남한 내부에서의 연구는 매우 저조한 상태이다. 그는 일제 치하에서 일본어로 작품을 써 일본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아쿠가다와상 후보에 오를 만큼 뛰어난 문학성을 자랑했지만 오히려 그러한 탓에 친일파의 오명을 뒤집어쓰고 의도적인 버림을 받아야 했으며,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던 조선의용군에 가담해 해방 후에는 북한에서 머물며 한국전쟁 당시 종군 작가로 활동하다 세상을 떠났다는 이유로 제대로 연구와 평가를 받지 못한 채 외면당해야 했던 이중의 아픔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아마도 북한문학에 대한 남한 정부의 자유로운 접촉을 거부해왔던 사회문화적인 분위기가 한 몫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이태준이나 한설야 등에 대해 이루어지고 있는 활발한 평가에도 불구하고 김사량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 활동은 매우 저조하다.그리하여 그의 문학적 특성을 살펴볼 필요성을 제기하며 ‘수용’과 ‘저항’의 양면성 속에 존재하는 그의 작품과 그에 대한 평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2.1. 김사량(金史良)의 생애)본명은 시창(時昌)으로 1914년에 평안남도 평양에서 태어났다. 평양고보 5학년 때 일본군 배속 장교 배척 운동에 참여하여 퇴학당한 뒤, 1931년에 일본에 건너가 사가고교를 거쳐, 도쿄 대학 독문과를 졸업했다.주물공장(鑄物工場)을 운영하는 보수적인 아버지와 가톨릭을 믿는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평양고등보통학교 재학시절 광주학생사건의 여파로 일어난 반일시위(反日示威)에 연루되어 쫓겼었고, 일본군 배속장교 배척운동을 벌이다가 1931년에 퇴학당했다. 일본으로 건너가 사가[佑賀] 고등학교를 거쳐 1936년 도쿄제국대학 독문학과에 입학, 학우들과 함께 문학동인지 〈제방 堤坊〉을 펴냈다. 이 잡지 제2호에 평양의 빈민지대를 배경으로 일제의 수탈을 그린 〈토성랑 土城廊〉을 일본어로 발표했다. 그러나 얼마 후 재일 조선인 연극단 조선예술좌에서 이 작품을 각색하여 무대에 올린 것이 문제가 되어 1936년 10월 2개월 구 일본에 사는 조선인들의 체념과 이에 굽히지 않는 민족의식을 보여준 〈빛 속으로 光の中に〉(문예수도, 1939. 10)를 발표해 일약 인기작가가 되었다. 이 작품으로 1940년 아쿠타가와상[芥川賞] 후보에 올랐다. 그 뒤 친일해서 남작 작위를 얻은 윤성효 일가를 중심으로 여러 인간상을 보여준 〈낙조〉(조광, 1940. 2~1941. 1)와 일제의 식민통치를 비판한 〈천마〉(문예춘추, 1940. 6)·〈풀이 깊다〉(문예, 1940. 7) 등을 일본어로 썼다. 〈태백산맥〉은 조선 말기 태백산맥으로 들어와 화전민이 된 사람들의 삶에 대한 의지와 사랑을 서사적으로 그린 대표작이다. 8·15해방 후 평양으로 돌아와 북한 권력의 '민주개혁'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며, 소설 〈마식령〉·〈차돌이의 기차〉·〈칠현금〉 등의 소설을 발표했다. 1946년에는 산속에서 생활하며 쓴 희곡 〈호접 蝴蝶〉이 단성사에서 극단 아리랑에 의해 공연되었고, 1946년 8월 28일 북조선노동당 창립대회에서 김일성을 그린 장막극 〈뇌성〉이 공연되었다. 1955년 북한과 1973년 일본에서 〈김사량 전집〉이 나왔고, 1989년 남한에서 작품집 〈노마만리 駑馬萬里〉를 펴냈다.김사량의 처녀작 은 평양 변두리의 저지대 빈민촌 이야기이다. 거지에 가까운 빈민들의 삶은 미래마저 어둡고 아득하다. 극도의 빈궁은 그들의 이웃에 대한 믿음이나 사랑 같은 것도 부질없는 것이 되게 하고 오직 기아와 질병 그리고 절망만이 그들을 기다린다. 그들을 농촌에서 내어 쫓고 그토록 파멸시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다까기 상회 기계 제작소’이고 동양척식회사이며, 공장의 우뚝 솟은 굴뚝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식민지 공업화의 그늘 아래서 결국은 병들고 굶고 죽어 간다는 것이 이 소설의 주된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에서 일제의 식민지 통치에 대한 직접적 비난도 울분도 표명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토성랑 사람들이 굶주리고 병들어 죽는 절망의 이유를 독자는 어렵지 않게 눈치 챌 수 있다. 그리고 김사량의 문학적 미래의 향방에 대해서도 이 작야기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작품은 한국인으로서 일본에서 산다는 의미는 어떤 것인가, 도대체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일본인에게 겪어야 하는 멸시와 수모의 뜻은 무엇인가. “이 땅에서 조선사람이라는 것을 의식할 때는 언제나 다른 사람을 경계하지 않으면 안되었다”)는 비참한 모멸감과 불안 심리의 정체는 무엇인가라는 재일 한국인 문학의 기본과제를 제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유의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김사량은 그런 점에서 재일 한국인 문학의 한 전범을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는 의 연장선상에서 ‘내선일체의 기만성’을 가장 철저하게 파헤친 작품으로 판단된다. 는 비굴한 조선인 소설가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조선어에 대한 혐오와 조선인이라는 자신의 운명적인 굴레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나 그것은 실현불가능한 일이다(“난 이제 조선어 창작에는 질렸습니다. 조선어 따위는 쓰레기죠. 그래요. 그건 멸망의 부적이니까요.”). 뒤에서 다시 논의가 되겠지만, 일제 식민지 지배하의 인물들은 피지배계층으로서 내지인에 대한 외경심과 동시에 그에 대한 적개심을 양면으로 가지고 있었다 할 수 있다. 여기서 내지인에 대한 외경심은 바로 친일로 분화되며, 그에 대한 적개심은 민족성(혹은 민족주의)으로 분류될 수 있다. 그렇다면 주인공 현룡은 어느 쪽으로 분류되는가?김사량은 현룡의 말과 행동을 통해 위선에 사로잡힌 한 인간의 삶과, 명예와 권력으로 문학적 입지를 확보하고자 하는, 즉 일본에 대한 외경심으로 일관된 조선문학에 대한 무시로서의 행위를 보여준다.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문맥은 평론가 이명식의 입을 통해 술집에서 벌어지는 토론의 내용이다. 이 내용으로 말미암아 김사량은 자신의 일본어 창작에 대해 변호하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는데, 마치 에 나타난 내용을 직설적으로 삽입해 놓은 듯한 생각도 든다.“물론 나는 내지어로 쓰는 걸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적어도 언어의 쇼비니스트는 아닙니다. 쓸 수 있는 사람은 우리의 생활이나 마음, 예술을 널리 럽고 수줍은 태도가 동시에 느껴졌다. 이것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김사량 자신이 쓴 글을 읽어볼 필요가 있다.저의 소설 광고 밑에는 사토 하루오(佐藤春夫)란는 작가의 비평문인 '사소설속에 민족의 비통한 운명을 풍부하게 짜넣은 작품'운운하는 글이 박스에 들어 있었습니다.'이래도 되는 것일까. 이래도 되는 것일까.'이렇게 저는 제 자신을 향해 물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정말 나는 사토 하루오 씨가 말한 바와 같은 것을 썼을까 하고. 어딘가 나 자신이 일개 소설가 아니라, 뭔가 커다랗고 거대한 것이 북적거리는 속에서 스프링처럼 튀어나와버린 듯한 고통을 느꼈습니다. 적어도 그 순간은 그러한 생각에 빠져 있었습니다. 물론 제 작품이긴 하지만 "u빛 속으로"v에는 아무래도 개운하지 않은 데가 있었습니다. 거짓말이다. 아직도 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작품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저는 제 자신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저는 기치의 격렬한 요동에 몸을 맡긴 채. 여러 가지 상념에 잠겼습니다. 이제부터 도쿄에서 뭔가 써낼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니, 두려운 마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어머님께 드리는 편지」)김사량은'민족의 비통한 운명을 풍부하게 짜넣은 작품'이라는 사토 하루오의 평을 접하자, 오히려 한국의 작가로서 민족의 비통한 운명을 과연 충분히 짜넣을 수 있었는가 하는 생각에 사로잡혔던 것이다. 때문에 찾아온 행운을 눈앞에 두고 있으면서도, 순진한 기쁨에 잠겨 있을 수는 없었다. 그것은 그의 민족적 양심을 다시금 채찍질해대는 생각 때문이었다. 본격적인 작가 활동을 위한 비상의 시기를 앞두고, 민족적 책임에 대한 긴장감 때문에 쩔쩔매지 않을 수 없는 심리가 투영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그럼 이렇게까지 민족적 입장을 고집하는 김사량이, 어째서 일본어로 작품을 쓰려고 하는가 하는 의문을 새삼스럽게 품지 않을 수 없다.진리는 어디까지나 진리여야 한다. 그러나 나는 여러 가지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내지어로 쓰고 있는 이들이나, 또 장차 내지어로 쓰려고 하는 이들의 주하고, 조선문학을 일본의 지방문학으로 보려고 하는 것에 대해 대단히 비판적인 것이다. 조선문학을 영국 문학 내에서의 스코틀랜드 문학 정도로 보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당시 친일 협력의 문학인들이 조선문학을 일본문학의 한 부분으로 여기면서 마치 영국문학 내에서의 스코틀랜드 문학에 비유하곤 하였다. 이런 것에 대해 김사량은 강하게 비판하였던 것이다. 심지어 조선의 문학을 스코틀랜드가 아닌 아일랜드의 문학과 동렬의 것으로 보는 것에 대해서까지 이명식은 비판적이다. 아일랜드의 예술가들이 단순히 언어의 예술성 때문에 켈트어를 주장하는 것과 조선의 문학가들이 조선어를 고수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명식은 분명 일본어로 글을 쓰는 것 자체에 대해 비판적이다. 이러한 입장은 또한 김사량의 입장이기도 한 것이다.하지만 일본어를 사용하여 창작하는 것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는다. 일본어로서 글을 써야 하는 정황이 생길 경우에는 그렇게 하는 것이 조선어로 글을 써야 하는 정황이 생길 경우에는 그렇게 하는 것이 조선어로 창작하느 것만큼이나 의미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일본 독자를 비롯하여 세상의 사람들에게 조선의 사정을 알려야 할 필요가 생길 때 일본어로 창작할 수 있는 사람이 그렇게 하는 것은 오히려 의미가 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그가 를 일본어로 썼던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다시 김사량의 작품에 관하여 일본의 작가들, 특히 문단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졌는가 하는 것을 살펴보려고 한다.대단한 작품도 아닌 것들을 여기에서 특히 언급한 것은 현재의 조선 문학이 어떠한가를 암시하고 싶기 때문이다. 즉 이상의 3인(김사량, 유진오, 이효석)도 문학의 관점이나 형시, 태도가 대체로 장혁주와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삽화 등을 써서 사생적으로 조선인의 일단을 보여주는 종류의 작품이다. 어떤 깊은, 혹은 새로운 관점, 극히 개성적인 것을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면에서 김사량만 혼자 특별하다. 그에게는 단순한 사생 이상의 것이 속에 있다. 있다.
1. 심즈 소개심즈는 '인생을 게임화한다'라는 독특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2천만장이 넘는 판매고를 기록함으로써 기네스북에 오름과 동시에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PC게임'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처음 출시 당시 그래픽과 사운드는 별 볼일 없다는 평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실적을 올릴 수 있었던 것은 게이머의 예상을 뒤엎는 독특한 아이디어와 확실히 차별화 되는 요소들을 갖췄기에 가능한 일이다.(1) 심즈 시리즈 소개더 심즈 - 실감나는 현실이 반영된 인생설계게임. 2D그래픽.별난 세상 - 에일리언 납치, 램프요정, 사랑의 묘약, 프랑켄슈타인 등 환상성 도입신나는 파티 - 관계에 중점을 둠. 파티와 이웃 초대 가능.두근두근 데이트 - 이성과의 관계 중시. 데이트게임.지금은 휴가중 - 해수욕, 캠핑, 스키등의 휴가개념 도입.멍멍이와 야옹이 - 애완동물 입양과 농작물 가꾸기. 5가지 직업 추가.슈퍼스타 - 직업개념 확대. 스타만들기라는 미션형식.수리수리 마수리 - 결투, 퀘스트, 레시피 도입. 환상성이 극대화된 아이템.심즈2 오리지널 - 3D그래픽, 나이, 유전자, 야망 개념 도입못말리는 캠퍼스 - 청소년기를 확장하여 대학교 개념 도입.화려한 외출 - 자동차, 나이트클럽, 노래방, 뱀파이어 등장. 데이트게임.(2) 게임시작: 플레이 장소 선택 - 마을 선택과 집짓기-기쁨동산(고트벨라가 실종된 도시), 엽기동산(외계인출몰지역), 베로나빌(로미오와 줄리엣 전설의 마을), 사용자가 만드는 마을의 네 가지 마을 중 하나를 선택하고 다운타운(유흥지)과 대학교를 설립한다.-기존의 집을 선택할 수도 있지만 건축툴을 이용하여 개성있는 집을 만들 수도 있다.(3) 캐릭터 설정 - 가족 만들기-기존 조합을 통해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 낼 수 있을 뿐 아니라 ‘바디샵’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새로운 조합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캐릭터를 만드는 경우 6단계로 구성되며(세부적으로는 약 20단계) 외양 결정 후 캐릭터의 성격, 야망, 취향 등을 선택하고 각 캐릭터의 관계를 설정하게 으로 최대의 과제.4) 야망 달성과 그에 대한 보상 - 야망에 따른 바램들이 미션형식으로 주어지며 이를 달성하여 보상물 구입(돈나무, 행복헬멧, 부활노미트론, 불로장수약등)2. 심즈2의 특징(1) 생활 시뮬레이션이라는 독특한 장르로서 현실 속 사람들의 삶과 매우 닮아있다.-파괴와 죽음이 판을 치는 요즘 게임들 가운데 보기 드문 '인간적인 게임'이란 평-심즈는 간단한 심리와 행동이 가미된 인형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2) 사람들의 욕망을 반영한다.-현실 세계에서는 불가능한 일(똑똑이 우유, 불로장생약 등)이 가능하다.-게임이 주는 즐거움은 다양하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모든 게임은 우리에게 완벽한 가상 혹은 사실을 기반으로 한 가상공간에서, 우리가 현실에서는 금지되거나 능력부족으로 할 수 없거나 하기 힘든 체험, 경험을 할 수 있게 한다. 이는 다양한 형태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소재와 주제, 표현방식을 사용해 사람들의 욕구들을 해소할 수 있다.(3) 게이머의 창조성이 중요한 요소이다.-게이머 스스로 자신이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가상 환경을 창조해나갈 수 있다.-심은 죽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을 하나씩 제거(?)하는 엽기 플레이도 가능하다.-게임의 스토리가 정해져있지 않아 자유도가 높다.예)플레이할 때 배경음악을 자유롭게 선택 가능다른 매체에 등장하는 캐릭터의 모습을 차용하거나 새롭게 창조하는 것이 가능하다.(4) 하이퍼텍스트 문학의 비선형성/링크구조를 보인다.-심즈는 하이퍼텍스트와 마찬가지로 일정한 시작점도 없고 읽는 순서도 정해져 있지 않다. 보통의 RPG라면 ‘누구를 만나 미션을 듣고 어떤 아이템을 구입을 해서 어디로 가서 무슨 일을 하라’라는 순서에 따라 진행이 되지만 심즈는 순서에 상관없이 아무 것이나 선택하여 시작점으로 삼을 수 있는 비선형성을 지닌다.-심즈의 공간에서는 보이는 모든 것이 링크의 대상이다. 전화기, 쇼파, 텔레비전, 냉장고등의 가구, 심지어 바닥에 난 풀 한 포기까지도 클릭을 통해 게임에 이어진다. 게임의 모든 부분 현실에서도 실제로 인터넷을 통한 사람들의 만남은 증가하고 있고, 채팅이나 각종 동호회를 통해 인연이 되는 사람들의 예가 많다. 이를 바탕으로 심즈2를 소재로 영화를 만든다고 생각했을 때의 시나리오를 생각해보았다.예시1. '후아유'나 '접속'처럼 심즈2에 빠진 두 남녀는 게임 안에서는 서로 친하고 실제로는 앙숙과 같은 사이, 또는 모르는 사이다. 그러다 어떤 계기로 인해 둘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사랑에 빠진다.예시2. 심즈 안에는 서로 사랑하는 두 캐릭터가 있다. 누가 만들어주기 전부터 이들은 서로의 만남을 간절히 원한다. 그러다 실제 인간들이 게임에 참여하면서 이들을 조종하게 되지만, 둘은 사이가 좋지 않아 계속 어긋나기만 한다. 캐릭터들은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게임 속에 스스로 변수를 만들어내고 자신들의 사랑을 이루는 것은 물론, 플레이어들의 사랑까지 이어준다. (판타지적인 내용)예시3. 게임 중독자인 주인공은 심즈를 하면서 점점 더 게임에 열광한다. 평소 그는 아바타를 못살게 구는 것을 좋아하는 인물이다. 밤낮없이 게임을 즐기던 그는 어느 날 게임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게임의 아바타가 되어 원하지도 않게 사람들에게 조종당하고 괴로워하며 평소 자신이 얼마나 악한 인물인가를 깨닫는다.(2) 테마파크로의 발전 가능성1) 첨단 컴퓨터 영상시스템을 활용해서, 게임캐릭터들의 실감나는 모습을 담은 ‘체감 영상관'을 만든다.2)?자신들의?사진을 심즈의 캐릭터의 바탕얼굴에 삽입하고, 머리카락과 얼굴, 의상 등을 바꿔볼 수 있도록 한다. 또한 게임 속 아이 만들기 프로그램처럼 두 사람의 얼굴을 합성해서 아이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컴퓨터 시스템을 이용해본다.+합성한 얼굴을 사진으로 프린트해주거나 사진파일로 전송해주는 방식도 생각해본다.3) 심즈내의 재미있는 기계들을 실제로 만든다.거짓말 탐지기, 쇼콜라 초콜릿 제조기, 사랑의 욕조(연인이나 친구를 위한 족욕기) 등.4) 가상의 게임 아이템을 귀여운 소품으로 제작하여 전시, 판매한다.5) 심즈의 집을 실제로 제작해 사람실로 보내는 등 직접 조종할 수 있게 한다. 이는 게임을 즐기는 재미를 일반시청자들에게도 부여한다는 전략이다.2) 게임쇼로 제작케이블 게임쇼 채널 ‘퀴니’는 현재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이나 SF어드벤쳐 게임을 방영중이다. 이는 온라인 시뮬레이션을 현실에서 즐길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게임에 친숙한 세대들을 노린 심즈의 게임쇼 방영은 기대해볼 만하다.4. 콘텐츠의 확대 재생산? 올해 일본에서 최고의 히트작 전차남(電車男)을 분석하며Sims2 최대의 특징으로 참여자가 캐릭터를 만들어 자유자재로 조작하는 것인데, 그걸 현실속에 잘 이용해 창출한 책이 올해 일본에서 엄청난 히트를 쳤다. 그것이 바로 전차남(電車男)인데, 책 뿐만이 아니라, 드라마와 영화, 그리고 연극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두의 매체에 큰 영향을 끼쳐 그들 다 성공을 얻었다. 도대체 그렇게까지 히트를 친 요인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게임과 다른 매체를 어떻게 융합하면 좋을지 전차남을 통해서 말하고자 한다.0. 작품소개2004년 봄, 일본의 한 청년이 전철안에서 술 취한 중년남자가 여성들을 희롱하는 것을 보고 용기를 내 도와준다. 그 덕분에 봉변을 면한 여성이 청년에게 에르메스 찻잔을 선물한다. 연애 경험이 전무한 스물두 살 청년을 어찌할 바를 몰라 고민하다가 ‘2채널’이란 인터넷 게시판에 도움을 요청한다.‘이런 땐 어떻게 하나요?’ ‘식사는 어디서 하면 좋을까요?’‘어떤 옷을 입고 나가야 하나요?’그의 상담글이 올라올 때마다 게시판을 뜨겁게 달아오른다. 그의 고민에 공감한 네티즌글은 그를 ‘전차남’으로 그녀를 ‘에르메스’로 부르며 아낌없는 지원을 해준다. 때론 연애 지침을, 때론 호통과 핀잔을 주며 그의 연애 사업에 동참한다. 전폭적인 지지와 성원에 힘입어 전차남은 마침내 사랑의 결실을 맺는다.동영상 사이트(영화 광고) http://www.nifty.com/denshaotoko/html/trailer.htm2.각 매체의 분석매체방송,개봉,발행시기시창률,관객수,부수드라마1)2005년7월7일~9월22일25tv.co.jp/index.html3) http://www.densha?otoko.jp/4) http://cafe.daum.net/dudtkdansghkdlfhs5) http://www.shinchosha.co.jp/wadainohon/471501?8/3.특징우선 남녀 주인공의 특징부터 말하자면 남주인공인 다카시는 아키하바라(일본 최대의 전자상거리 한국에서 용산에 해당되는 동네)에 잘 가는 전형적인 오타쿠이고, 여주인공인 사오리는 에르메스(일본인이 좋아하는 브랜드) 라는 이름부터 알 수 있듯이 재색을 겸비한 여자이다. 이 둘 사이는 어떻게 봐도 균형이 맞지 않은데 이러이러하다가 마지막에 해피엔드로 끝난다. 이것이 순수한 연애이야기이고, 작품 속에는 작년부터 계속 이어지는 한류 열풍의 중요한 키 워드인 순애(純愛)가 그려져 있다. 전차남은 어떻게 보면 한류붐을 모방해 일본식으로 다시 창출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그리고 인터넷 사회를 리얼하게 묘사한 것도 많은 사람에 지지를 얻었던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또한 문학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전차남(電車男)은 통신 문학의 특징을 “작가⇔작품⇔독자” 충분히 가지고 있고, 디지털 스토리텔링의 전반적인 특징인 우연성(미디어의 유연성을 이용하여 비선형적 글쓰기를 할 수 있고, 다양한 인물들의 역할을 독자가 맡아 표현할 수 있다.), 보편성(기술의 발달로 저렴한 가격으로 작품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프로듀서 ? 디렉터가 될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상호작용성(영화나 드라마, 라디오와 달리 디지털 스토리는 웹상에 있어서 창작자와 청중 사이에 경계가 무너지고 모든 사람이 참여자가 될 수 있다.))도 지니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4.마무리일본에 있어서 전차남같은 디지털 문화가 이렇게 성공을 올린 것이 처음이었고, 앞으로 이 분야에서의 발전에 박차를 가하는 것이 말할 것도 없다. 수업 중에도 교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일본은 다른 나라의 문화를 자기것으로 새롭게 만들어내는 창의력이 상당히 뛰어나다. 이 작품도 그러한 요소
1.한대의 유학 사상을 선택하게 된 동기아직은 동양 사상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서 주제를 선택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선뜻 선택하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었는데 이 주제가 눈에 띄었다.고교 시절 한나라 하면 훈고학 하며 공식처럼 외웠던 것이 떠올라 주제가 왠지 모르게 친근하게 다가왔다. 그래서 한대의 유학사상을 선택하게 되었다. 의외로 단순한 동기였다.2.한대의 유학 사상(1).한초(漢椒)의 사상계1군현제(郡縣制)의 성립과 민간으로부터의 관리 등용일본류(日本流)로 말하면 메이지 정부가 시행한 폐번치현(廢蕃置縣)을 말한다.군현제란, 실질적으로는 다름 아닌 관리에 의한 정치제도이다.이 시황제의 군현제는 그 후 2천 년에 걸쳐서 유지되었던 것이나, 진은 겨우 15년 만에 망하였으므로, 이것을 정비하여 확고한 제도로 완성시킨 것은 진(秦)의 뒤를 이은 한(漢) 왕조이다.한은 무제때에 민간으로부터 관리를 등용하는 제도, 이른바 선거제도(選擧制度)를 제정하였다. 이것은 지방관의 천거를 주체로 한 것으로, 각 군의 장관에게 그 지방의 주민 중에서 유학(儒學)을 닦고 덕행이 빼어난 자를 고르게 하여, 그 사람에게 이라는 칭호를 주어 조정에 추천케 하였다. 조정은 이 지방관이 추천한 효렴을 관리에 임명하는 것이다.효렴의 추천에는, 유학과 덕행 이외에는 문벌이나 재산의 유무 등은 일체 그 조건이 되지 않았으므로, 원칙적으로는 서민에게 개방되어 있었던 것이다. 사실 한대(漢代)의 재상(宰相)중에는 가난한 농민 출신으로 벼락 출세한 사람도 있었다. 그에 관한 한 대단히 민주적이며 근대적인 제도였다고 할 수 있다.2「인텔리=관리」의 공식(公式)이 성립이 군현제도의 확립은 2천년의 중국 문화사 및 사상사에 결정적인 성격을 부여하게 되었다. 그것은 첫째로는 문화 내지 사상이 강한 정치색을 띠게 된 것, 둘째로는 유학(儒學獨尊)의 원칙이 고정되었기 때문에 사상의 세계는 물론 모든 학문·종교·문학·예술 분야가 유교의 지배하에 놓여지게 된 것이다.중국의 관리는 아주 대단한 매력을 지닌 직업이다. 사회적 조건이나 역사적 사정이 그렇게 시켰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3황노 사상(黃老思想)- 한초(漢初)의 도가사상(道家思想)의 유행한의 고조가 처음으로 천하를 통일하였을 때, 진(秦)이 멸망한 것이 시황제의 탄압 정책이 민중의 강한 반발을 산 결과였음을 거울삼아, 힘써 자유 방임의 정책을 펴도록 주의하였다. 처음으로 관중(關中) 땅으로 들어갔을 때에 유명한 약법 삼장(約法三章)을 세상에 공포한 것도 그 하나의 발로였다. 약법 삼장이란, 「사람을 죽인 자는 죽임, 남을 상해(傷害)하거나 도둑질한 자는 벌함, 진의 법은 모두 폐함」이라는 것으로, 이 이외의 법률은 제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노자(老子)의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작은 생선을 굽는 것과 같다」고 하는, 주물럭거리지 않는 편이 좋다는 생각에 따른 것이다.4황노 사상(黃老思想)의 내용「황노」-황제(黃帝)와 노자(老子)를 말한다. 황제는 전설상의 옛 제왕의 이름인데, 고대를 존중하는 생각이 강한 중국에서는 그 학설이나 그 기술에 권위를 세우기 위하여 그 기원을 가능한 한 오랜 시대의 위인과 결부시키는 경향이 있다. 유교에서도 그 기원을 주공(周公)이나 공자(孔子)보다도 더 거슬러 올라가서 요(堯)와 순(舜)등의 옛 제왕과 결부시키는데, 도가(道家)에서도 이에 대항하기 위해 노자보다도 더 오랜 황제를 떠받든 것이다. 한대 이전에는 황노라는 용어는 눈에 띄지 않으므로, 아마도 한대에 접어들고부터의 조어(造語)라고 생각된다.한나라 초기 황로의 학설은 다년간의 전쟁을 겪어 생산이 파괴된 그때의 구체적 역사 조건에 적응되며, 그 시기 봉건통치자들이 통치를 공고히 하는 수요를 최대로 만족시킬 수 있었다. 그러므로 혜제 이후 문제·경제 및 두태후(竇太后)는 모두 황제·노자의 사상을 존중하고 숭배했다. 게다가 두태후는 황노 사상의 강력한 지지대가 되었다.이 한의 초기 80년 사이에 도가(道家思想)이 더없이 전성한 것은 그 당시에 성립된 유교의 경전이 노장사상(老莊思想)을 도입하고 있는 사실에도 나타나 있다. 전공(戰功)을 뽐내다가는 싸움질이 시작되고, 검을 빼어 기둥을 내려치는 등의 난동을 부렸다.이 때의 유자들 중에 숙손통(叔孫通)이라는 처세술 뛰어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유자 동료들로부터 「너는 곡학아세(曲學阿世)-학문을 굽히고 세상에 아부하는 놈이다」라고 매도당했을 정도였다. 숙손통은 고조가 두 손을 들고 있는 것을 보고는, 그가 유자를 싫어함을 빤히 들여다보고, 그것을 역이용하여 고조를 설득하였다. 이에 고조의 마음도 움직여서 백관(百官)에게 명하여 숙손통과 그 제자들이 하는 조현(朝見)의식을 견학시킨 뒤에 몇 번이고 연습을 되풀이시켰다. 드디어 장락궁에서 진짜로 백관의 조현 의식이 행해졌을 때, 그 장엄함에 가장 감격한 것은 다름 아닌 고조 자신이었으며, 나는 오늘에야 비로소 황제됨의 존귀함을 알았노라. 고 탄성을 발하는 형편이었다. 숙손통은 즉각 문부대신격인 태상(太常)에 임명되어 조정의 의식 일반을 맡게 되었다.이로 인해 유교는 고조에게 이용 가치를 인정받아, 비로소 국가 권력의 한 귀퉁이로 침투할 실마리를 잡았다. 그러나 고조의 대(代)에서는 유교는 그 예(禮)라는 형식적인 일면이 채택됨에 그치고, 그 사상의 가치가 인정된 것은 아니었다. 사상계에서는 여전히 도가사상이 압도적인 우세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2유교 독존(儒敎獨存)의 확립과 지식인에로의 침투강력한 통제의 원리라고 하면, 한비자류(韓非子流)의 법가 사상보다 나은 것은 없다. 그러나 법가의 형벌주의를 노골적으로 내세우는 것이 불리하다는 것은 이미 진(秦)의 멸망이 이를 명확하게 증명하였다. 그래서 근본적으로는 법가의 입장을 취하면서, 그러고도 표면을 부드럽게 할 수가 있다면, 가장 현명한 방법임이 분명하다. 거기에는 도덕에 의한 정치를 주장하는 유교를 표면으로 내세우는 것이 상책이다. 알맹이의 대부분은 법가정치이지만, 그것을 유가 사상으로 겉치장한 것이다.그러나 유교가 국교(國敎)의 지위에 놓인 것은 이와 같은 편의적이며 소극적인 이유에서만은 아니다. 유교 그 자체의 내용에도 천자의 독영구 불변한 것」이라는 의미가 생긴다. 따라서 경서란 「영구 불변의 진리를 실은 책」이라는 해석이 성립한다. 또 날실은 경(經)이란 길(道)이니라, 법(法)이니라,이(理)니라」와 같은 훈(訓)이 생긴다. 또 이것을 동사적으로 하면 「사물에 조리를 세운다. 다스린다. 정돈한다.」라는 의미가 된다. 따라서 「경서(經書)」의 뜻을 종합하면 「불변의 도리를 전하고, 세상을 다스리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책」이라는 것이 될 것이다.그런데 한(漢)의 무제(武帝)는 오경박사(五經博士)의 관직을 두었는데, 여기서 오경의 내용이 확정되었다. 실은 5경이니 6경이니 하는 명칭은 전국(戰國)시대 말기쯤부터 있었던 것이나, 그 내용은 반드시 일정해 있지 않았다. 그러면 한 이후의 5경은 시(時)·서(書)·예(禮)·역(易)·춘추(春秋)이다.이것을 시경이니 서경이니 역경이니 하고 경자를 붙여서 부른 것은 송학(宋學)으로 되고부터의 일이다.4경학(經學)의 성립경서의 권위가 확립됨과 동시에 이 경서를 연구하고 해석하는 「경학(經學)」이 발생하였다. 이것은 그리스도교의 성서학 내지 신학에 해당하는 것으로 한대이후의 유학은 경학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를테면 송(宋)의 주자학(朱子學)이나 명(明)의 양명학(陽明學)등은 노장(老莊)이나 불교의 영향을 짙게 받은 유학이지만 최후의 기반은 역시 경서(經書)이며, 다만 그 해석이 종래와 다르다는 데에 그친다. 따라서 주자학이나 양명학은 경학(經學)내부에 발행한 시대적인 변천이며, 경학의 범위를 벗어난 것은 아니라고 하겠다.그런데 한대의 경학의 특색으로는 금문학(今文學)과 고문학(古文學)의 대립이 있었다는 것과 경서 외에 참위서(讖緯書)가 나타나 이것이 경학에 결부된 사실을 들 수 있다. 모두가 경학사(經學史)에 있어서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 사실이지만, 사상사(思想史)에 있어서는 별다른 의미를 갖는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 참(讖)은 예언을 말하며 특히 왕조 교대, 혁명에 관한 것이 많다. 진(秦)의 시황제 때 「진을 멸하는 것은은 아니다.우선 첫째로 이다. 이것은 한 사람의 저서가 아니라 한왕실의 일족인 희남왕 유안이 그 문하에 기르고 있던 학자들의 논문을 편집한 것이다. 따라서 진의 시황제의 재상이었던 여불위가 편집한 와 아주 흡사한 성격의 책이다. 많은 학자의 논문을 모은 것이므로 그 내용도 유가·법가·도가 등의 사상이 뒤섞여 있으며, 이른바 잡가(雜家)의 책으로 되어있다는 점에서는 와 같다.그러나 이 속에서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은 도가사상이며 그 분량도 압도적으로 많다. 한초의 도가가 황노라 불린 것처럼, 노자(老子)의 정치 사상이 중심이었음에 반하여, 에서는 장자(壯者)사상의 색채가 짙어져 있었다. 그런만큼 철학적이며 종교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2사기(史記)의 백이전(伯夷傳)-도덕과 행복의 모순 문제와 더불어 전한시대(前漢時代)의 사상사(思想史)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사마천(司馬遷)의 이다. 는 물론 역사책이므로 사학(史學) 사상(思想)의 각도에서 논해져야 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유교(儒敎)의 인생관이 지닌 결함을 분명히 밝히고 중대한 문제를 제기하였다는 의미에서 그 사상사적인 역할이 크다.원래 유교의 본질은 「이 인생을 어떻게 올바로 살 것인가?」라는 도덕론에 있었던 것이며, 「이 인생을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는가?」하는 행복론에 대하여는 냉담하였다. 이 때문에 유교의 행복론은 매우 허술하며, 커다란 결함이 있다. 사마천과 같이 그 정의감에서 흉노(匈奴)의 포로가 된 이능장군의 변호에 나섰다가 그 때문에 무제의 격노를 사서 사인(士人)으로서는 가장 수치스러운 궁형(宮刑)에 처해졌다는 비운을 만난 사람에게 있어서는, 그 행복론에 대한 요구가 아주 강렬하였음은 당연할 것이다. 유교의 행복론은, 이와 같은 맹렬한 요구 앞에는 아주 무력함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3왕충(王充)의 「논형(論衡)」-인생은 운명에 의하여 결정된다.한대(漢代)에 나타난 매우 이색적인 사상가로서 후한(後漢)의 왕충(약 27∼약 100)을 들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저서 은 후한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