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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교의 여성관 평가B괜찮아요
    불교의 여성관Ⅰ.들어가며...여러 시대에 걸쳐 그리고 지금도 여성은 차별을 받아 온 것이 사실이다. 남아 선호사상 등 태어나면서 여성은 차별을 받아왔다. 모든 사람들이 남녀차별은 없어지고 모두 평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남성들은 자신들은 차별 받지 않으므로 남녀평등을 실현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므로 남녀평등을 위해 모두 힘써야 하겠지만 특히 여성의 역할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종교나 여러 단체에서 여성들이 차별을 받아온 이유를 밝히고 해결방안을 찾는데 도움을 주어야 하는데 따라서 종교 중의 하나인 불교도 여성들이 안고 있는 문제를 불교적 시각에서 조명하여 방향을 제시해 주어야 할 것이다.불교의 기본은 평등사상이다. 평등이 기본사상이 된 것은 아마 불교가 나타날 때 당시 인도가 고질적인 사성계급의 차별 계급을 있어서 일 것이다. 부처님은 사성계급을 철폐하고 평등 교단을 이루셨다. 인도에는 당시 카스트제도란 것이 있었는데 이 카스트제도는 계급을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 등의 사성계급으로 나누었다. 브라만들은 입에서 태어나고 다음계급인 크샤트리아는 배꼽에서 태어나며 평민 계급인 바이샤는 무릎에서 태어났으며 노예 수드라 계급은 발바닥에서 태어난다고 하여 브라만 계급에게 다른 계급들이 봉사하여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부처님께서는 그 사성제도를 비판하고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주장하시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귀하고 천한 종성이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귀천은 그가 어떠한 행위를 하는냐 하는 업에 달려 있다고 말씀하셨다.이 당시에는 사성제도 못지 않게 남녀차별 또한 극심한 때였는데 일부다처제만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여자들에게도 사성의 구별이 있었으나, 여자는 남자에게 부속되어 독립이 허가되지 않았으며 여자가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남자아이의 생산이었다. 어려서는 아버지에게 보호되고 젊어서는 남편에게, 늙어서는 아들에게 보호되어야 했는데 이러한 때에 부처님은 만인의 정신 최대의 불교종단인 조계종만 하더라도 비구니가 승단 내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다. 재가신자 가운데 3/5 내지 3/4 이 여성불자이다. 그래서 '치마불교' 라는 속칭이 한국불교를 가리키는 대명사로 일컬어져 왔다. 말하자면 우선 수적으로 한국불교의 근간은 여성들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1800년대 말에 여성불자들도 근대적인 자각을 하게 된다. 조선부인회 개최(1920), 불교여자청년회 발족(1921)등을 비롯하여 여성불자들의 조직과 그에 따른 활동이 일어났다. 그러다 6.25동란을 겪고 침체된 불교는 조계사를 비롯한 전국 사찰에서 여성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봉사로 활기를 띠게 되었다. 사찰마다 여성신도들의 수가 대다수였다.법당을 찾아 기도, 예배, 공양 올리는 대부분의 불자는 여성이다. 어머니, 할머니들이 가족의 대리신앙자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사홍서원) 4가지 큰 소원 (중생무변서원도, 번뇌무진서원단, 법문무량서원학, 불도무상서원성)하는 법회에 참석하는 대부분의 불자도 여성불자이다. 각처에서 열리는 불교 교양대학, 불교 기초교리강좌 등에서 열심히 불법을 배우고 가르치는 불자들 역시 여성이 대다수이며 불교대학과 대학원에도 여성들이 적지 않다.불교를 믿는 어머니들은 항상 가족의 평안을 기원하며 법당을 찾아 누가 시키지 않아도 우리를 대신해 기원 드리는데 여성관과는 관련 없지만 어머니는 여자보다 강하다는 말을 여기서 하고싶다^^.그리고 여성들은 불교문화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 여성들이 불교문학, 불교미술, 불교음악, 불교사상의 고양에 힘쓰며 불교방송, 불교신문, 불교잡지 등을 통하여 불교의 대중화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고, 각종 불교모임의 손발 노릇을 하며, 여성신문, 여성법사회 등을 통하여 포교에 노력하고 있다.또 비구니 스님들의 수행과 포교로 한국불교의 새바람이 일고 있다. 비구니들도 비구들과 동등하게 성직자의 자격으로 의식을 집전해왔다. 제방선원과 여법한 수행도량에서 수행에 힘쓰며, 대학으로 승격된 전통강원과 중앙승가대학, 동국대학교 그리고 외국 등지에서 교학 연더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아이들도 남녀가 똑같이 중요한 존재로 교육시켜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되지 못하는 이유가 더 큰 외부의 사회관습이나 국가제도에 있다면 과감히 시정하는 데 앞장서야 할 것이다.또 다른 하나의 방편으로서 모성애를 확산시켜 자비관음의 화신이 되자는 것이다. 모성애가 성의 굴레가 되지 않도록 관음의 화신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행복은 물론이요, 여성들의 무대를 확장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다. 여성이 인간으로서 마땅히 누릴 권리가 있는 사회 참여의 기회를 늘리는 일이기도 하다. 고아원, 보육원, 양로원 등을 비롯한 사회복지봉사는 이미 해오던 일이기도 하지만, 갓난아기를 돌보는 영아탁아소의 시설과 참여는 여성들이 자기 일을 갖는데 필수 불가결한 전제조건이 된다. 이는 나아가 가난한 자들을 위한 사회문제 해결의 일환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좁게는 여성들을 위하고 넓게는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불사를 많이 벌여 나가야 할 것이다.이렇듯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 평등에 입각한 자비정신으로 회양하여 불국토를 이루고자 하는 큰 원력으로 살아간다면 명실상부한 보살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될 때 여성불자들은 진정한 불자로서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고 이 땅의 우리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이다.Ⅲ. 여성출가여성이 출가하여 비구니 교단이 성립된 것은 불교교단이 인도에서 그 기반을 다진 후의 일이다. 비구니 교단의 성립은 마하파시파제 구담미 (Mahaprajapagi-gautami) 와 석가 족 여인들 500인의 출가에 의해서이다. 먼저 최초로 비구니가 된 구담미와 오백석종녀 (五百釋種女) 의 출가에 얽힌 사연에 대해 알아보면...'부처님께서 가비라 성 니그로다 동산에 계셨을 때 (성도 후 제 15년째 안거하심) 싯다르타 태자의 이모이자 양모이신 마하파시파제가 500여인과 함께 부처님을 찾아가 예배하고 불법 내에 출가하여 도를 닦도록 허락해 주시기를 간청하였다. 세 번이나 청하였으나 거절당한 구담미는 하는 수 없이 물러 갔다. 그에 새로운 비구니 대중이 생기게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팔경법(八敬法)은 비구 승단의 보호와 감시를 전제한 행동규범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마하파사파제의 출가 이후 부처님의 아내였던 야쇼다라를 비롯하여 샤카 족의 많은 여성들이 출가를 하고 나중에 그외의 여성 출가자들이 합류하여 비구니 교단이 발족되었다. 비구니 중에는 남성 출가자를 능가하는 자질을 갖추고 폭넓은 활동을 하는 자도 나타난다.난 여기서 처음에는 불교의 평등사상으로 여성들이 당연히 출가하고 싶으면 출가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 내용을 알고나니 여성의 출가가 아주 어려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고 또 석가모니 님이 바로 여성의 출가를 왜 허락하지 않으셨지 의문이 들고 석가모니 님도 남녀를 어느 정도 차별하신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었는데 아래 내용을 읽고 나서 '역시 부처님께서는 이유가 있었구나!' 하고 생각했다부처님께서 여성 출가를 처음에 반대하신 것은 지금처럼 정착 생활이 아닌 유행 생활을 하는 상황에서 여성 출가자들은 남자 출가자의 보호와 간섭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었을 것이다. 또 여성의 출가 생활은 많은 제약과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에 부처님은 여성들을 승단 내로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여성의 출가에 대한 부처님의 신중한 태도와 우려는 승단 내의 종교 생활과 당시의 인도사회의 생활양식과 맞물려 있다. 남성 출가자는 출가 생활의 원칙으로 네 가지 규범(行四依法)을 지키게 되어 있다. 첫째는 걸식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둘째는 아주 남루한 옷 한벌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것이다. 셋째는 나무 아래 정좌하는 선정생활을 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넷째는 비상약 이외에는 어떤 물건도 소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인도의 자연환경에서 연약한 체력을 가진 여성이 이러한 수행생활을 견디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인도의 기후는 고온다습하여 3개월간 비가 내내 오는 우기가 있어 출가자의 유행 생활을 어렵게 했다.특히 숲속에서 홀로 좌선하며 살아가는 수행 생활은 맹수와 도적 앞에서 못하였음을 시사하고 있다.Ⅳ. 여성 성불여성 성불에 대해서는 예로부터 적지 않은 논란이 되어 왔다. 즉 여성의 성불관은 계속 변화하였다. 부파불교시대 말 원시대승시대의 여인오장설(女人五障設)에 속한 여인불성불설(女人不成佛說)을 거쳐 변성남자성불설(變成男子成佛設)이 나타나고 드디어 즉신성불설(卽身成佛設)이 보편화된다.불교계의 여성성불은 부파불교와 초기 대승불교 시대에 반여성적 인식으로 바뀌게 된다. 여성이 성불할 수 없다는 여성불성불론의 사상이 교단을 지배하게 된 것이다. 이 여성불성불론은 주로 여인오장설(女人五障說)과 여래32상호설(如來32相好說)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먼저 여인오장설이란 여성에게는 다섯 가지 장애가 있어 제석천·범천·마천·전륜성왕·부처님과 같은 존재는 될 수 없다는 사상이다. 실로 여성의 종교생활 전체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사상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불설초일명삼매경, 법화경, 대지도론" 같은 경론에 언급되어 있다.그러나 초기경전인 "불설옥야경" 등에는 삼종설(三從說)은 있는데 오장설은 없는 것으로 보아 대체로 기원전 1세기경에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경론에 보이는 그 내용을 보면 아래와 같다.『여인의 몸에는 다섯 가지 장애가 있으니, 첫째 범천왕이 될 수 없고, 둘째 제석, 셋째 마왕, 넷째 전륜성왕, 다섯째 부처님이 될 수 없으니 어찌 여인으로 성불을 빨리 이룰 수 있으리오.』이와 같이 기원 전후의 불교 교단은 여성을 불완전한 인격체로 인식하여 부처님이 말한 평등사상과 위배되는 입장을 취하였다. 당시의 불교교단은 교단의 분열과 대승불교의 출현 등 내외적인 사상의 변화가 아주 심한 과도기 상태였고 불교계를 주도하던 이들 대부분이 남성 출가자들이었다. 또한 경·율·론을 정리, 편찬한 주체도 남성들이었으므로 여성에 대한 편견과 몰이해가 이 전적에 배어들게 되었을 것이다.따라서 남성도 하기 힘든 수행의 최고 경지에 여성이 오를 수 없다는 몰이해를 갖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경론에 보이는 것이다.
    인문/어학| 2001.07.01| 8페이지| 1,000원| 조회(5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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