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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바일 시대의 소셜(social) 리더십
    강요식 지음소셜 리더십PART1 소셜은 21세기 신대륙이다소셜(Social)은 과거 ‘사회적’이라는 의미로 쓰였고, 소셜리즘(Socialism)은 ‘사회주의’로 해석되었다. 그러나 이제 소셜은 웹(Web)상에서뿐 아니라 사회적인 관계, 즉 온라인 인맥관리를 뜻하게 되었다. 그리고 네트워크(Network)는 사람들이 일련의 관계에 의해 모인 관계망을 의미한다. 따라서 소셜과 네트워크의 조합인 소셜네트워크(Social Network)는 ‘사회적 관계망’이라 표현할 수 있다.소셜공간은 현실공간과 가상공간의 중첩지대이며, 오프라인과 온라인이 겹쳐진 온오프라인의 영역이다. 즉 현실의 리얼리티(Reality)가 가상공간에 가미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소셜공간의 대표적인 사례인 트위터의 타임라인이나 페이스북의 뉴스피드에는 항상 실시간으로 정보가 흐르고 있으며, 사람들의 의견과 반응이 즉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가상공간에 현실공간이 흐르고 있는 것이다.그렇다면 소셜랜드(Social Land)에는 어떤 것이 숨어 있을까? 첫째, 소셜랜드에는 사람이 있다. 지구촌의 수억 명이 공존하는 곳에 나의 벗이 숨어 있는데, 벗을 얻는다는 것은 곧 즐거움을 얻는 것이다. 둘째, 소셜랜드에는 경제가 있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서는 자연스레 비즈니스가 이루어지며, 경제가 움직이는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번다는 것은 곧 행복을 얻는 것이다. 결국 소셜랜드는 사람과 관계되는 네트워크의 즐거움과 경제와 관계되는 비즈니스의 행복감을 동시에 가질 수 있는 곳이다.‘소셜에서 도대체 무엇을 하기에 이렇게 야단법석일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소셜의 세상을 보여주지 않고 소셜을 설명하기란 참 쉽지 않다. 백문이불여일견이란 말이 있듯이 소셜입문을 위해서는 우선 계정을 만들고 시작해야 한다. 그것이 첫 번째다. “소셜하세요?”라는 질문에 언제까지 “시간이 없어서 나중에 하려고요.”라는 대답을 할 것인가?한편 소셜네트워크서비스는 21세기 민주화 운동의 기폭제로도 작용되고 있다. SNS 혁명은 페이스북으로’하고 정보를 나눈다. 둘째, 소셜리더십은 소통을 중요시한다. 셋째, 소셜리더십은 사람중심의 리더십이다. 따라서 소셜리더는 과거의 권위주의적 사고와 독점주의의 틀을 벗어나 사람중심의 경영사고를 가져야 한다. 넷째, 소셜리더십은 집단지성의 리더십이다. 다수 대 다수로 소통되는 구조이기에 쉽게 집단지성의 힘을 발휘할 수 있으며 협업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한편 소셜리더십의 성공적 발휘를 위한 소셜미디어의 전략적 도입은 다음과 같은 5단계의 절차를 밟는다. 첫째, 소셜웹의 환경을 이해해야 한다. 소셜웹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돕기 위해서 ‘소셜 교육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인데, 교육과정은 단계별로 기초, 실무, 심화교육과정으로 나누어 전문가로부터 교육을 받는 것이 좋다. 둘째, 조직에 맞는 명확한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소셜에 있어 부화뇌동은 금물이며, 소셜을 어떻게, 왜 해야 하는가에 대한 명확한 목표를 우선적으로 수립해야 한다.셋째, 조직에 적합한 소셜채널 선정과 실행 로드맵을 수립해야 한다. 소셜채널은 소셜미디어 또는 소셜웹 서비스라고 하는데, 현재도 많고 앞으로도 수없이 개발될 것이다. 따라서 블로그, 트위터, 페이스북, 유튜브 등에서 어떤 소셜웹 서비스를 선택할 것인가를 전략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가장 적합한 소셜채널을 메인으로 정하되, 포트폴리오 또는 소셜채널 믹스로 다양성을 반영하는 것도 좋다.참고로 소셜채널은 각각의 특성이 있다. 예로 트위터는 정보 흐름을 파악하는 미디어 개념이고, 페이스북은 친구 맺기라는 관계 형성의 개념이다. 그러나 페이스북도 마케팅 요소를 구현할 수 있는 부가서비스가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최근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은 상호 연동이 되어, 한 쪽에서 올린 콘텐츠가 동시에 게시되곤 한다. 소셜채널 선정이 끝나면 조직은 장단기적인 로드맵을 수립해야 한다.넷째, 소셜관리 전담조직과 가이드라인을 수립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미국의 IBM, 인텔은 각각 ‘소셜미디어 활용 가이드라인과 윤리코드’, ‘인텔 소셜미디어 지침’을 제시하고리더들에게도 중요한 리더십 요소다. 페이스북을 창업한 마크 주커버그는 창업 후 2년 뒤, 야후에게 10억 달러의 인수 제안을 받았지만 이를 거절했고, 그루폰의 창업자 앤드루 메이슨 역시 야후와 구글로부터 각각 20억, 60억 달러의 인수 제안을 받았지만 거절했다. 천문한적인 인수금액에 현혹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젊은 두 CEO의 소신 있는 행동은 우리에게 큰 교훈을 주고 있다. 소신은 리더에게 자신을 지키는 자존심이자 철학의 바탕이다.4) 소망을 키우는 리더: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마크 주커버그가 간절히 소망했던 일들은 이루어졌고, 그 소망들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만약 이들이 인류를 좀 더 멋지게 발전시킬 꿈을 꾸지 않았다면 지금은 어떤 시대가 되었을까? 컴퓨터 없는 세상, 윈도우 없는 세상, 소셜미디어가 없는 세상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들의 소망대로 책상마다, 가정마다 윈도우가 깔린 컴퓨터가 있고, 페이스북을 통해서 세계는 연결되고 이전보다 훨씬 개방되었다. 그러므로 소셜리더는 소셜미디어 시대에 부합하는 소망을 키워야 한다. 소망 없는 리더는 조직원의 자발적인 몰입을 유도할 수 없다.5) 소일이 멋스런 리더: 우리는 컴퓨터로 업무를 하면서 전화도 받는다. 커피도 옆에 놓고 마신다. 전화로 무슨 말을 했는지, 커피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른다. 오전 일과가 그렇게 지난 후, 오후에도 오전과 비슷한 일과를 보낸다. 이렇게 현대인은 자신도 모르게 ‘ADT(주의력 결핍 성향)’를 체험하고 있다. 리더가 조직원의 능력과 기술에 맞게 업무를 조정해 주어야 ADT를 예방할 수 있다. 아무튼 소셜미디어 시대에 소셜리더는 여가를 잘 보낼 수 있는 ‘소일의 멋’을 가져야 한다. 페이스북의 마크 주커버그는 업무시간에는 다른 리더들처럼 일에 빠져 지내지만, 일이 끝나면 직원들과 청바지와 티셔츠 차림에 맥주 마시는 것을 즐긴다고 한다.소셜세상은 경험보다 상상력이 지배한다매스미디어의 위력을 알았던 성공한 정치인의 경우처럼 소셜미디어를 재빠르게 활용한 사람이 겠다는 심사라고 볼 수 있는데, 진정으로 소셜의 원리를 이해한다면, 일정 시간을 투자해서라도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팔로워들에게 맞팔(팔로워를 팔로잉하는 행위)을 하는 아량을 보여야 한다.PART3 소셜리더에게는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소셜人, 이것만 하면 성공한다소셜 성공 3대 노하우는 개인의 자기관리와 조직의 경영관리를 수행해야 하는 소셜리더를 위한 소셜리더십의 핵심요소를 정리 비전론, 행복론, 성공론으로 정리한 것이다.1) 구체적으로 비전을 가꾼다: 비전론에 대한 답은 간단하다. 비전을 구체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세 가지 부분으로 알아보자. 첫째, 비전에 대한 글쓰기이다. 당신이 소셜리더를 꿈꾼다면, 비전을 글로 써서 자신의 소셜 공간에 알려보자. 비밀사항이 아니라면 친구들에게 공개함으로써 그 비전이 더 구체화되는 데 도움이 된다. 둘째, 비전에 대한 말하기이다. ‘말이 씨가 된다.’라는 말이 있다. 부정적인 말을 하면 그렇게 된다는 것이니 삼가라는 말이다. 이를 긍정적으로 보면 자신의 비전을 말로 반복하면 이루어지게 된다. 셋째, 비전에 대한 이미징이다. 소유하고 싶은 물건, 가고 싶은 장소, 닮고 싶은 롤모델 등을 이미지화한 것을 소지하면서 비전을 다짐하는 것이 효과적이다.2) 잘 정리정돈하면 행복하다: 일본의 경제평론가인 오마에 겐이치는 사람을 바꾸는 세 가지 방법으로, 시간의 배분, 만나는 사람, 사는 장소를 바꿔야 한다고 이야기했는데, 필자는 이것을 ‘잘 정리정돈하면 행복하다.’라는 명제로 설명하고자 한다.첫째, 시간정리다. 시간을 ‘시’ 단위로 세분화하고 시간을 보내는 내용도 업무와 자기계발, 충전으로 배분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일상적으로 보내는 시간 중에 불필요한 시간이 있는지를 파악하고, 있다면 당장 줄여야 한다. 둘째, 공간정리다. 자기 주변 정리를 잘하면 깨끗해서 좋고, 업무에도 능률이 오른다. 반대로 주변이 지저분하면 잡동사니 때문에 무기력증과 우울증이 생긴다. 그런데 주변을 정리하는 것도 습관이다. 보통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방치를지, 접촉 등 다양한 수단으로 상대에게 어필할 수 있지만, 소셜에서는 ‘글’이 기본적인 신뢰의 도구이다. 따라서 글에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 기교적인 수사어법보다는 진솔하게 자신의 상태와 생각을 기술하면 된다.2) 개방성을 표방하라: 소셜인이 소셜세상으로 등장할 때는 자신을 개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폐쇄된 상태의 소셜은 진전이 없고, 흥미를 잃게 되며, 스스로를 닫아 놓았다는 것을 상대가 먼저 알게 된다. 가림막을 쳐놓은 사람에게 어느 누가 먼저 접근하겠는가. 3) 창의성을 개발하라: 우리는 소셜에서 이미 성공한 케이스를 찾기보다는 자신만의 창의적인 케이스를 만들어야 한다.4) 지속성을 견지하라: 소셜에 등장하는 것은 마치 소설의 주인공이 되는 것과 같다. 그런데 이 주인공이 연약하고, 줏대 없고, 재미도 없는 한량이라면 독자는 더 이상의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떠나버린다. 그리고 한 번 떠난 친구는 다시 찾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소셜인은 정성을 다하여 친구를 맞이해야 한다. 이는 지속성을 견지하라는 말이며, 소셜활동이 단편소설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5) 신중성을 깊게 하라: 소셜네트워크에 생존하는 것은 자신을 그대로 노출하는 것이다. 그런데 자신을 얼마만큼 노출할 것인가는 스스로에 달렸다. 모든 개인 정보를 100% 노출하고 싶다면,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소셜은 공적인 장소이고 수많은 상대방이 있기 때문에 그러한 정보들이 어떻게 선용되고 악용되는지를 고려해야 한다.다음 5성 말라(Stop it 5) 는 부정적인 요인을 멀리하라는 뜻인데, 다음과 같다. 6) 강제성을 띠지 말라: 소셜에서 상대를 압박하는 분위기를 주면, 이는 상대에게 부담되고 결국 친구는 떠나게 된다. 7) 상업성을 표현말라: 소셜에서 상업성을 표방하는 것은 친구의 발길을 끊는 것과 같다. 만약 소셜미디어를 통해 어떤 이익을 창출하고 싶다면, 서두르지 말고, 자신의 의도를 우회적으로, 그리고 ‘밉지’ 않게 표현하는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 8) 혼돈성을 유발 말라: 소셜에서는 자신이다.
    경영/경제| 2011.10.18| 8페이지| 2,000원| 조회(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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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슬람 바로보기
    이슬람 바로 보기이슬람 바로 보기중동은 정확히 어느 지역을 가리킬까?‘중동’이란 지역적 개념은 영국이 19세기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리며 세계를 지배하는 대영제국으로 탄생하면서 등장했다. 오랫동안 유럽인들이 놀던 물은 지중해 바다가 그 한계였다. 그들은 지중해를 세계의 전부로 인식하며 수천 년을 살아 왔다. 그러다가 15세기 말 신대륙 발견을 시작으로 유럽인들에게는 신비 속에 가려져 있던 동방의 여명이 밝아 오기 시작했다. 아울러 땅 끝으로 생각한 동방의 지평선도 점점 넓어지게 되었다. ‘근동’(Near East)은 그리스 발칸 반도를, ‘극동’(Far East)은 중국, 한국, 일본을 그리고 ‘중동’(Middle East)은 그 중간에 있는 지역을 가리킨다. 오늘날 중동은 북아프리카, 아라비아 반도, 이란, 터키, 아프가니스탄 등 상당히 넓은 지역을 포함하는 개념이다.무엇이 이슬람 탄생을 가능하게 했을까?이슬람 역사를 다루는 데 있어서 그 출발점을 이슬람교 창시자 무함마드의 탄생 지점인 570년으로 보는 경우가 많지만, 시대를 몇 세기 앞당겨 이슬람교 탄생 이전의 아라비아 반도 상황을 최대한 복원해 보는 것은 신선한 출발점이 되리라 생각한다.무지의 시대(이슬람 탄생 이전의 아라비아 역사): 선사시대부터 아라비아 사막은 목축을 하던 ‘베두인 족’과 오아시스 주변의 도시에 정착해 농사를 짓고 대상무역을 하던 ‘쿠라이시 족’의 고향이었다. 비록 이들만의 자체적인 문명은 없었지만 5,000년간 아라비아 셈족 여인들은 수많은 자녀들을 근방의 수메르, 아카드, 바벨론 등의 도시국가로 보냈고 이들의 타고난 원시적 용맹은 무기력한 도시 문명에 활기를 불어넣곤 했다.아라비아 반도(비잔틴과 페르시아 사이의 샌드위치): 이슬람교 탄생 이전의 아라비아 역사는 한마디로 ‘비잔틴 제국’과 페르시아 제국 으로 불리는 두 강대국 사이에 낀 샌드위치 역사로 표현할 수 있다. 비잔틴 제국은 395년에 로마가 ‘동서’로 나뉜 뒤 476년 서로마 제국이 멸망된 후 홀로 남은 동로마 제국가 40세 되던 해에 여느 때처럼 메카 근교의 히라산 동굴에서 명상을 하던 중 천사 가브리엘의 계시가 임했다. 이로써 당시까지 문맹이었던 무함마드는 하루아침에 글을 깨우치고 이슬람교를 창시하게 된다. 하지만 메카에서의 전도활동은 신통치 않았고, 메카의 중상류층인 쿠라이시족은 무함마드를 국가 경제를 위협하는 급진주의자로 여기고 핍박하기 시작했다.헤지라, 이슬람력의 시작: 전도를 시작한 지 9년째 되던 619년, 무함마드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던 아내와 삼촌이 세상을 떠나면서 박해는 더욱 심해졌다. 이후 무함마드는 전도 대상을 메카 주민들에서 메카를 찾아오는 순례자로 바꾸었다. 이때 유대인들이 세운 도시인 메디나에서 온 카즈라즈 부족의 순례단이 무함마드에게서 이슬람에 대한 설교를 듣고 깊은 인상을 받고 돌아갔다. 메카에서 성과가 없어 고심하던 무함마드는 개종자 70명과 함께 622년, 메디나로 이동하는데 이 해는 이슬람 역사에서 무척 의미 있는 해가 된다. 바로 622년을 기준으로 이슬람 달력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슬람에서는 메디나 이주를 ‘헤지라’(거룩한 천도)라 하고, 이때 무함마드와 함께 이주한 70명을 ‘무하지룬’(이주한 자)이라 부르는데, 이들은 기독교의 12사도와 같은 최고의 존경과 권위의 대상이 된다.메디나에서의 첫해, 유대인 포섭작전메디나에서 거대한 아랍 부족들을 개종시킨 무함마드는 곧 유대인 공동체에 관심을 기울렸다. 무함마드는 유대인들을 이슬람으로 개종시키면 이들의 재력과 잘 정비된 신학이 이슬람 전파에 엄청난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유대인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무슬림들이 기도할 때 유대인처럼 예루살렘을 향해 기도하도록 명령했다. 하지만 무함마드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유대인 개종자는 소수에 불과했다. 이후 유대인에 대한 무함마드의 태도와 전략은 점차 적대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적대감은 624년 1월, 무슬림들의 기도 방향을 예루살렘에서 메카로 바꾸면서 공식화되었다.이슬람 전사들은 어떻게 순식간에 3개 대륙을 정복했을추어 나갔다. 아울러 이슬람을 통치 이데올로기로 확고하게 다지기 위해 다양한 사본이 돌아다니던 꾸란의 정본을 편집했고 나머지 사본들을 모두 불태웠다. 이에 대해 오스만의 반대파인 알리 진영은 오스만의 통치를 ‘족벌정치’라고 맹비난했고, 독실한 무슬림들은 오스만이 꾸란 사본을 불태운 것에 격분했다. 정복전쟁의 최전선에서 싸운 베두인 부족전사들은 오스만의 인사이동에 불만을 느꼈고, 결국 이집트에 주둔한 군대들이 불만을 토로하기 위하여 메디나로 왔고, 이 가운데서 이탈한 항명집단에 의해 오스만은 암살되었다.알리(수니파와 시아파 갈등의 시작): 오스만을 암살한 항명집단은 알리를 새로운 칼리프로 옹립했다. 그러나 알리는 오스만 암살의 배후 세력으로 지목되었고, 복수를 외치는 오스만의 친족인 시리아 총독 무아위야와 657년 시핀 전투를 벌이게 된다. 역사는 이 전투를 무승부로 기록하고 있고 그 결과 이슬람 제국은 동쪽의 쿠파를 중심으로 한 알리와 서쪽의 다메섹을 중심으로 한 무아위야의 세력권으로 양분되었다. 그러나 661년 알리가 살해되면서 힘의 균형이 무아위야에게 기울었다. 무아위야는 분열된 이슬람 세계를 통합하는 한편 칼리프위에 올라 우마이야 왕조를 세웠다. 무아위야는 선출로 칼리프를 뽑는 전통을 무시하고 아들 야지드에게 칼리프위를 세습했으며, 야지드에게 위험한 인물이었던 칼리프 알리의 차남 후세인을 견제하고자 했다. 후세인은 자신을 칼리프로 추대하려는 지지자들의 초청으로 메카를 떠나 은밀히 이라크의 쿠파로 향했으나, 카르빌라에서 우마이야 가문의 충복 우바이둘라 빈 지야드에게 살해당했으며, 그 일가족이 몰살당했다(680년 10월). 이러한 후세인의 비참한 최후가 알려지자 이라크 지방은 알리 가문에 대한 동정과 반(反)우마이야 정서가 고조되었으며, 결국 이들은 후세인의 죽음을 순교로 받아들이며 하나의 종파로 발전하게 된다. 이들을 '시아 알리(알리의 추종자)' 혹은 '시아'라고 부르게 되었으며, 결국 무슬림 종파가 수니와 시아로 나뉘는 분기점이 되었다.압바스 왕조는 어국 동부의 혼란을 수습하면서 혜성과 같이 등장했다. 200년간 이어지던 제국 동부의 혼란에 종지부를 찍고 셀주크조의 통치자는 자신을 이슬람 세계의 왕을 의미하는 ‘술탄’으로 선포하며 정복전쟁에 나선다. 1071년 반(Van)호 전투에서 셀주크조는 비잔틴의 주력군을 대파했고 비잔틴 황제인 로마누스 4세까지 포로로 잡아감으로써 유럽 전체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십자군원정(이슬람을 향한 유럽의 반격): 비잔틴 대군을 격파한 1071년 반 호 전투를 기점으로 그동안 비잔틴 제국의 영토였던 소아시아는 이슬람을 앞세운 셀주크군으로 인해 터키화가 시작된다. 술탄 말리크 샤(1072~1092)는 1079년 시리아와 팔레스타인을 빼앗고 소아시아 징벌을 계속 감행한 결과 1092년 니케아 정복과 함께 비잔틴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은 바로 물 건너의 적과 마주보는 상황이 되었다. 결국 비잔틴 제국의 황제인 알렉시우스는 같은 기독교 세력인 로마 교황청에 구조 요청을 할 수 밖에 없게 된다.로마 교황 우르반 2세는 비잔틴 황제인 알렉시우스의 구원 요청에 화답했고, 이로써 1096년 1차 십자군 대원정이 시작되었다. 1차 십자군은 1097년에 니케아를, 1098년에 안디옥을 회복하고, 1099년 최종 목표인 예루살렘을 차지했다. 불과 3년만에 놀라운 대승을 거둔 1차 십자군은 예루살렘 왕국과 그 북쪽으로 4~5개의 소왕국을 세웠다. 그러나 이라크 상부의 모술에서 세력을 얻은 이마드 알-딘 장기가 1144년 십자군 왕국인 에데사와 알레포를 차례로 탈환하게 된다. 이 위험이 유럽에 알려지며 20만 대군의 2차 십자군이 출병하지만 계속된 참패만 맛보다가 초라하게 퇴각했다.3차 십자군은 또 다른 영웅인 영국의 사자왕 리처드를 탄생시켰다. 종교는 달랐지만 진정한 기사도 정신을 알고 있던 리처드와 살라흐 알-딘(살라딘)은 1192년 휴전 협정을 맺는다. 조건은 예루살렘에 대한 무슬림의 권리를 인정하는 대신 해안선을 따라 늘어선 십자군 소왕국들의 영토와 기독교인들의 예루살렘 순례를 보장하는 것이단이 머물렀는데, 그곳의 총독은 이들에게 간첩죄를 적용해 모두 처형하고 상품을 모두 압수했다. 징기즈칸은 항의하는 사절단을 보내고 총독의 신병을 요구하지만 무함마드는 오히려 사절단을 모두 죽임으로써 두 번째 실수를 범했다. 이로 인해 1220년 10만의 칭기즈칸 군대는 40만 군대가 지키던 호라즘의 주요 도시인 오트라르, 부하라, 사마르칸트, 메르브, 니샤푸르를 차례로 정복했다. 이로써 호라즘은 순식간에 공중분해 되었다. 이때 몽골은 러시아까지 진군하여 1222년 오합지졸인 러시아군을 격파하게 된다. 이로써 서구와 이슬람은 세계 최강인 몽골군의 위력을 한 번씩 맛보게 된다.유럽의 초토화: 몽골 제국의 2대 칸이 된 오고타이(1229~1241)는 1235년 러시아와 유럽 원정을 결의하고 원정군 총수로 칭기즈칸의 장남인 주치의 아들인 바투를 임명했다. 바투는 12만 원정군을 이끌고 1237년 볼가 강을 건너 유럽에 진입했다. 그리고 러시아의 도시들은 몽골 기마군단의 말발굽에 추풍낙엽처럼 떨어지고 무자비하게 학살당했다. 1241년 바투가 이끄는 몽골군은 2만 명의 폴란드-독일 연합군과 조우했으나 연합군은 순식간에 궤멸되었고 몽골군은 적군 중 전사자들의 귀를 잘랐는데, 9개의 큰 부대가 가득 찰 정도였다고 한다.바그다드 함락, 압바스 왕조의 최종적 멸망: 4대 칸이 된 몽케(1251~1259)로부터 이집트 정벌의 명령을 받은 훌라구는 1253년 다시 이슬람 세계에 나타나게 된다. 이슬람은 1258년에 바그다드가 점령되고 구차하고 질긴 목숨을 연명해 오던 압바스 왕조 칼리프의 숨통이 끊어졌다. 이로 인해 이슬람 세계에는 칭기즈칸의 손자인 훌라구를 초대 칸으로 하는 ‘일 한국’이라는 몽골 왕조가 세워졌다. 훌라구의 일 한국은 친 기독교적인 분위기에서 출발했는데 훌라구의 어머니인 도쿠즈 카툰이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인이었기 때문이다.최후이자 최대의 이슬람 제국인 오스만 터키는 어떻게 탄생했을까?오스만 터키의 발흥: 몽골군의 말발굽이 사나운 먼지를 휘날릴 때 터키족의 한 일파었다.
    인문/어학| 2011.10.18| 9페이지| 1,000원| 조회(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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