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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성운동 평가B괜찮아요
    Ⅰ. 서 론우리 사회에서 여성은 한사람의 온전한 인간이 아니라 차별·억압당하는 반쪽의 인간이다. 여성은 태어나면서부터 여자인 죄 를 짊어지고 태어나 죽을 때까지 그 짐을 벗지 못한다. 여성이 있을 곳은 가정이며 부엌이고, 따라서 여성은 사회에 나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제한적이다. 결혼 전 직장을 가진다 하더라도 대부분의 여성들은 저임금을 받으며 종사할 수 있을 뿐이다. 뿐만 아니라 결혼·임신 퇴직의 제 1순위의 대상으로 여성에게 적용된다는 점 때문에 평생 직장을 가질 수 있는 권리마저 박탈당한다. 이렇게 우리 사회의 여성은 남성과 달리 사회적 노동에서 배제되어 가사노동에만 한정됨으로써, 그리고 사회적 노동을 하는 경우에도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지 못함으로써 남성에게 의존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종속적인 존재, 사회에서 유리되어 있어 사회의 발전에 기여하면서 자주적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차단 당한 존재이다. 이것은 우리 사회뿐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보이는 여성의 삶의 모습이다. 다시 말하자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은 가사노동 전담자로 규정되고, 사회적 노동에 대한 차별과 착취를 당하며, 남성에게 경제적·심리적으로 종속되어 있고, 남성의 성적 대상물로 상품화되며, 성차별적 사회의식과 문화의 만연으로 고통 당하고 있다.우리 나라의 경우,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함께 여성의 경제 참여율이 48.7%를 차지하게 되었고, 여성의 학력도 크게 신장하여 1998년 UNDP가 조사한 교육수준·국민소득·평균수명 등에 있어 남녀평등지수(HDI)를 측정한 바에 의하면, 163개국 중 한국이 37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여성의 정치·정책결정과정의 정도를 측정하는 여성학척도(GEM)의 경우 102개국 중 한국이 82위를 차지하여 여성의 정치·정책결정과정에의 참여와 관련하여 후진국임을 여실히 드러낸 바 있다.바로 이러한 남성과 달리 여성이 특수하게 당하고 있는 억압과 차별 그리고 착취의 문제가 여성문제 인 것이다. 여기에 항상 염두에찾고 있다. 실제 마르크스·엥겔스의 경우 역사의 발전과정의 원동력을 생산관계로 본 것과는 달리, 파이어스톤은 역사의 발전과정의 원동력을 생식을 둘러싸고 있는 남성·여성이라는 생물학적 계급, 이 두 계급의 상호투쟁, 이 투쟁과정에서 만들어진 결혼, 자녀의 재생산, 양육 등의 재생산 관계로 본다. 그런데 문제는 여성은 임신과 출산으로 인하여 원래 남성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으며, 남성은 여성의 성과 출산을 통제함으로써 여성을 지배해 왔다는 것이다. 따라서 파이어스톤은 여성 억압의 뿌리가 생물학적인 것에 있기 때문에 마르크스주의자가 노동자들로 하여금 계급혁명을 요구한 것과 마찬가지로 생물학적 혁명을 요구한다. 기본적으로 노동자들이 계급혁명에 성공하기 위하여서는 생산수단을 장악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성들도 성적 계급을 철폐하기 위해서는 생식조절 수단을 장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계급사회의 경우 공산주의 혁명의 궁극적인 목적이 계급의 구분을 없애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성해방을 위한 혁명의 궁극적인 목적은 성이란 계급의 구분을 완전히 없애는 것이다. 특히 여성의 재생산 기능을 인고수정 등 과학기술 방법에 의해 대체할 때 생물학적 가족과 남성의 여성에 대한 성적 통제는 사라지고 남녀간의 성적 차이는 더 이상 문화적으로 문제시되지 않는다. 또한 남녀란 구분도 사라져 남녀간의 사랑, 여성간의 사랑도 자유롭게 되고, 여성들은 자유롭게 직장생활을 즐길 수 있다.파이어스톤과 함께 급진주의 여성해방론자로 알려진 케이트 밀레트(Kate Millet)의 『성의 정치학』(Sexual Politics)에서도 이런 경향을 볼 수 있다. 특히 밀레트는 여성 종속에 대한 근원보다 여성 종속에 대한 이유를 찾는 일에 주력한다. 그녀는 종속의 이유로 생물학적 현상보다 문화·이데올로기 차원에서 원인을 찾는데 그것이 바로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이다. 따라서 여성이 해방되기 위하여서는 무엇보다 가부장제 이데올로기 하에서 쌓여진 남녀간의 지위·역할·기질 등을 철폐하므로, 여기서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에 대한 투쟁 되었으나, 전쟁이 발발하게 되었다.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WSPU는 정부와 휴전하고 전쟁 수행을 도왔다. 특히 정병 활동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였다. 1917년에는 팽크허스트 모녀는 여성당을 결성하였는데, 동일임금, 모성보호, 결혼법 개정을 지지하였다. 1918년에 종전이 되자, 여성투표권 문제가 다시 한번 의회에 제기되었다. 그러나 여성들의 전쟁시의 노력을 인정하여, 혹은 그들의 호전성이 다시 재개되지 않을까라는 우려에서인지는 몰라도 정부는 30세 이상의 모든 여성에게 투표권을 부여하였다. 1928년에는 여성의 투표연령이 남자와 같은 21세로 낮추어졌다.그러나 카톨릭 국가에서는 여성참정권을 반대하고, 평등권을 주장하는 페미니스트들은 멸시되고, 무시당했다. 카톨릭 국가나 보수적인 국가들은 자유주의에 대한 두려움으로 여성에 대한 참정권 부여가 지연되었고, 제 2차 세계대전 이후에 가능해졌다.평등권 획득을 위한 여성운동은 여성 대부분의 삶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하였으며, 이러한 평등권 페미니즘은 계급과 정치의 경계선을 쉽게 이동 가능했던 나라에서만 성공하였다. 영국과 스칸디나비아 제국의 페미니스트들은 자유당·사회당과 함께 운동을 벌였으며, 정치적 평등권 획득을 위한 조직에는 중산계급과 노동계급 차이와 변수에 따라 여성운동은 평등권 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으로 분리되어 전개되었다.평등권 운동은 중산계급과 자유주의자를 중심으로 전개되었으며, 남성에 대한 투표권이 아직 보통선거권으로 확대되지 않은 사회에서 특히 재산이 있는 여성들에 대한 참정권 운동에 초점을 맞추었다. 반면에 사회주의 운동은 노동계급여성 및 동조자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는데, 주로 경제적인 문제들과 자본주의 전복에 초점을 맞추었다. 프랑스, 러시아,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독일에서는 이두 계열의 여성운동 단체들이 대립하였으며, 따라서 영국에서 볼 수 있었던 페미니스트 집단간의 연합은 다른 유럽국가들에서는 불가능했다.19세기 유럽, 캐나다, 미국 등지에서 페미니스트는 남녀 양성의 유사성에 기반을 부터 이루어 왔던 문맹 타파, 초보적 여권 의식의 계발, 여성 직업권 등 부르주아적 요구를 반영하였다.그리고 1920년대 초, 일본 유학을 하였던 여성들 중 몇몇이 문학잡지를 통해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는 인습과 성도덕으로부터 탈피를 외쳤다. 이들의 연애관은 미혼 남녀의 자유 연애를 뛰어넘어, 부모에 의해 자기의 뜻 없이 결혼한 남자의 연애를 그르다고 할 수 없다는 주장까지 이른다. 그리고 일엽 김원주는 정신적으로 청산이 되어 있다면, 언제든지 처녀로 자처할 수 있다 는 신정조관을 주장하였다. 당시 사회 단체, 여성 단체에서의 결혼문제가 주로 축첩·초혼 반대, 강제 결혼 반대 등 당사자의의사가 무시된 결혼풍습에 대한 비판이었던 것에 비하면 그들의 주장은 매우 파격적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기존의 도덕관념을 지나치게 앞질렀고, 당시 민중 여성들이 처해 있던 상태에 무관심했다. 그리고 새롭게 가족의 틀이 강화되던 상황에서 그 틀을 넘으려는 개인적 시도는 그들에게 비난과 비극적인 결과를 가져왔다.뚜렷한 이념이 정립되지 못한 상태에서 계몽 수준의 민족주의 여성운동은 노동자·농민 운동의 성장, 사회주의 유입, 일제의 민족 분열 책동에 대한 대응으로 분화·발전하기 시작하였다. 사회주의 여성해방이론에 기초를 두고, 최초로 결성된 여성운동 단체는 1924년 결성된 조선 여성 동우회였다. 무산 여성의 해방을 내건 동우회는 여성 노동자층에 관심을 갖고 동우회 간부의 인천 노동 총동맹회 파견, 노동 야학, 선전 활동, 여성에 관한 조사 활동, 여성 직업 조합 설립 등의 활동을 하였다.여성 노동자들은 한말에 출현하여 숫자상으로는 많지 않았으나 여성 노동자 가운데 공장 노동자의 비율이 꽤 높았고, 이들의 대부분은 방직, 제사, 고무, 정미업에 종사하였다. 이 여성 노동자들이 민중 여성 운동에 불을 지폈다. 여성노동자들은 열악한 노동조건에 대항하여 도망·탈주라는 소극적 저항에서 노동 조건을 향상시키기 위한 직접적인 투쟁으로 나아갔다. 이때 가장 많았던 것이 임금인상, 임금 인하 반대 등의룹을 만들어 노동자들을 의식화하고 이를 기반으로 기관지를 비롯한 출판물을 간행하고 유인물을 배포하였으며, 각종 비밀 집회와 투쟁을 통해 노동자를 획득해 갔다. 그런데 여성 노동자가 집중된 공장에서 여성 노동자를 조직화하고 대중 투쟁을 선도하는 데는 학생운동의 경험을 가진 여학생들의 역할이 컸다. 이들은 조직원으로서 노동 현장에 투신하여 여성 노동자를 획득하는 중간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렇게 해서 조직된 선진 노동자들은 이론 무장을 하고 실천을 통해 단련되어, 파업 투쟁 등 여성 노동 운동을 주도해 갔다. 혁명적 노동조합은 비합법적 조직이었고, 많은 경우에 일차적으로는 선진 노동자조직을 지향하였다. 그런데 일제의 탄압 아래 활동의 지속성이 보장되지 않아 여성부의 설치와 활동은 그리 활발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여성 노동자들의 대중적 진출은 활발하였다.여성노동자들은 1930년 부산 조선 방직, 평양 고무 공장 총파업을 통해 폭발적인 힘을 분출시키면서 그들의 특수 요구를 명확히 제기하기 시작하였다. 이 같은 여성 노동자의 투쟁력 고양을 기반으로 해서, 처음에 임금 인하 반대의 요구를 내걸고 일어난 파업은 산전산후 3주간 휴양 및 생활 보장, 수유 시간 자유 등 여성 노동자의 특수 요구를 포함한 광범한 사회적 권리를 획득하는 투쟁으로 발전하였다. 또한 그 밖의 동일 노동 동일 임금 요구는 민족적 성적 차별을 안고 있었던 상태에서 비롯된 것이고, 모성보호는 출산과 육아의 부담을 안고 있는 기혼 여성노동자의노동권 확보를 위해 절박한 것이었다. 이처럼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 현장에서 투쟁 슬로건으로 제시되고 있었다.일제의 탄압으로 1930년대 전반 농민운동도 반합법 혹은 비합법활동을 하였다. 이때 농민들은 소작권 문제만이 아니라 토지문제와 일제의 수탈적 농정 반대 등 근본적인 농업문제를 제기하였고, 여성농민의 조직과제를 중요하게 다루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1930년대 전반기 농민 운동의 운동 방침은 여성 농민 정책을 포함하였으며, 실제 활동에서도 농민 조합의 여성부다.
    사회과학| 2001.11.29| 30페이지| 1,000원| 조회(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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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가족론
    Ⅰ. 서론오늘날 현대 산업사회에서는 인구가 도시로 집중되고 직업을 따라 거주지가 바뀌면서 자녀들은 결혼 후에 부모로부터 독립하여 따로 사는 것이 보편화되고 있다. 또한 여성들의 교육수준이 높아지고 직장여성이 늘어나면서 부자관계가 주축을 이루던 가족구조도 부부중심의 가족구조로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수직적인 부계 직계가족구조로부터 사랑과 평등을 기본으로 하는 부부중심의 가족구조로 변화하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과정에서 새로운 가치관은 기존의 전통적 가치관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 채 충돌하거나 겉돌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따라서 결혼생활에서 행복과 안정을 얻기 위해서는 부부간의 애정, 상호 존중, 수용 그리고 만족감이 전제되어야 한다. 서로 무관심하고 적대시하며, 서로를 수용하지 못하고 자기중심적인 태도를 견지하면 서로에 대한 불만과 불안이 높아져 마침내 부부생활에 금이 가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19세기 이후 근대화의 본격적 진행으로 가족제도의 급변, 가족의 외적 ·내적 구조 및 가족관계에까지 변화를 초래하였다. 따라서 이러한 변화는 가족의 불안정성을 증가시키는 요인으로 등장하여 가족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때 상황과 시기를 잘 고려하여 적응하면 가족의 발전을 꾀할 수 있으나, 가족원간에 상호작용이 원만하지 못하고 역할 수행을 할 만한 능력과 자원이 충분하지 못하면 가족 내에 갈등과 긴장이 극대화되어 가족의 화합은 깨어지고 해체되는 현상이 나타난다.가족의 핵을 이루는 부부가 어떤 이유로든 가족의 공동생활을 이루지 못하고, 결혼과 가족관계를 해소시키는 것을 우리는 흔히 이혼이라고 한다.본론에서는 이러한 이혼이 증가되는 원인과 이혼에 따른 문제점 등을 알아보고, 이혼경험자의 실제 사례를 인터뷰한 내용을 보기로 한다.Ⅱ. 본론전통적으로 한국사회에서 부부는 '백년해로'해야 하는 것으로, 여자는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참고 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최근 이혼에 대한 인식은 많이 달라지고 있다. 부부에게 문제가 있으면 불행한 상태에서구결과에 따르면 수입이 많은 부인이 수입이 적은 부인보다 높은 이혼율을 보인다. 특히 여성이 취업할 경우 남편 이외의 남성을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어 재혼 가능성이 높으므로, 결혼생활의 갈등이 심각할 경우 이혼을 고려하게 되는 것이다. 넷째, 성의식의 변화이다. 결혼생활에 있어서 성문제의비중이 과거보다 매우 중요하게 된 점이다. 결혼생활의 적응은 성적 적응과 높은 상관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부부간의 성적 일치성이 클수록 부부간의 일치도도 증가한다. 과거와는 달리 현대사회에 와서 여성들의 성이 자유로워지고 결혼에 있어서 성적인 문제를 중요시 여기게 됨에 따라 이로 인한 문제로 이혼을 제기하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 다음으로는 자녀수의 감소와 더불어 자녀에 대한 가치관의 변화를 들 수 있다. 자녀의 수가 많아 이혼에 부담이 되던 과거와 달리 자녀수가 감소하여 자녀의 수 때문에 불행을 참고 견디면서 자신을 희생하고 자신을 구속하겠다는 의타적인 사고는 점차 감소되고 있다. 또한 자녀보다는 자신의 삶을 더 중요시하거나 이혼 후 자녀도 훌륭히 양육하면서 자신도 새 출발을 하겠다는 생각이 증가하여 자녀에 대한 부담이 줄어들었다. 그 외의 원인으로는 결혼에 대한 의미 변화와 사회적인 유대감의 약화를 들 수 있다.이러한 원인들로 인한 이혼은 그에 따른 문제점들을 수반한다. 이혼은 부부관계를 인위적으로 해소시킴으로서 한 가족을 붕괴시키고 가족원 개개인에게 변화를 요구하게 된다. 대체로 이혼을 긍정적인 측면보다 부정적인 측면으로 볼 수밖에 없는 것은 이혼이 부부간의 강들을 해결하는 수단으로 보기에는 여러 가지 부담이 많기 때문이다.자녀양육의 문제를 비롯하여 경제적 문제, 정서적 문제, 사회관계문제 등이 그것이다.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두 사람이 모여 살던 가족이 이혼을 하게 되면서 개별적인 생활로 돌아가게 된다. 남성의 경우에는 이제까지의 부부생활에서도 생계담당자 역할을 담당해 왔기 때문에 경제적인 어려움보다는 자신의 의식주를 혼자 해결해야해 가정불화를 낳게 되고 이것이 심각하게 커지게 되어 이혼을 하게 되었다.Q2. 이혼 전 5년 동안 결혼생활을 유지하였는데, 위의 이유라면 어떻게 그 기간동안 결혼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까?- 당시에는 경제적인 어려움이 없었고, 약간의 성격의 차이가 있어 조금 망설여지기는 했지만, 자녀를 임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조금씩 양보하고 맞춰가며 살기를 노력했었다. 하지만 한계를 느껴 이혼하게 되었다.Q3. 이혼 시 자녀문제는 어떻게 하였습니까?- 이혼 시 쌍방의 합의하에 아버지가 양육하기로 결정하였고, 그 이후부터 줄곧 아버지인 내가 양육하고 있다.Q4. 이혼 후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입니까?- 자녀양육이 가장 어려운 문제였다. 무엇보다도 자녀들에게 어머니가 없다는 것이 가장 문제였다. 특히 어머니의 손길이 많이 필요한 초·중등학생 시절에 어머니가 없기 때문에 포기해야했던 일이 많았다.(특히 아들이 고등학교에 다닐 때 전교회장 후보에 올랐었는데, 뽑히고 나서의 어머니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데 어머니가 없는 이유 때문에 아들이 스스로 포기한다고 했을 때 마음이 많이 아팠다.) 딸의 경우 이혼당시에 태어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았을 때인데, 어머니가 없어 아이를 차에 태우고 다니며 우유를 먹이면서 키웠는데 많이 힘들었다.혼자 아이를 키우는데 있어서 아버지의 역할과 어머니의 역할을 동시에 해야 했으므로, 바깥일과 가정 일에 모두 신경을 써야 하는 것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고, 많이 벅찼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자신밖에 없는 자녀들을 생각하며, 더 열심히 살기 위해 노력했다.Q5. 자녀들이 어머니를 그리워하지 않습니까?- 워낙 어린 시절부터 같이 살지 않아서 인지 거의 그리워하지 않는다. 사실 마음속으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모르지만 겉으로는 표시하지 않는다.Q6. 정상가족과 비교할 때 이혼가족으로서 특별히 느끼는 것은 무엇입니까?- 가장 큰 것은 어머니가 없기 때문에 늘 부족함을 느꼈을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과 불완전한 가족으로 인해 늘 안정감이 없었다는 느낌을 버릴 수 대한 생각은 없습니까?- 부모님이나 아들의 권유가 있기는 하지만 재혼 생각은 없다. 이유는 재혼을 함으로서 얻는 긍정적인 면보다 부정적인 면이 더 많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먼저 아이들에게는 생모가 있다. 그것을 알고 있는 아이들에게 새로운 사람이 엄마가 된다면 아이들이나 계모 사이에 많은 갈등이 빚어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재혼의 상대자가 나의 아내로서의 자리만을 원하고, 자녀들의 엄마가 되는 것을 원치 않을 경우가 생길지도 모르기 때문에 재혼을 원하지 않는다. 또한 재혼할 사람의 고생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통념상 '계모'로서 그녀가 느껴야 할 고통이나 아이들이 반항할 시에 그 상대방이 느낄 무게감을 생각한다면 행복하기보다는 오히려 또 다른 불행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족에 대한 생각① 가족의 개념 한 가정을 이루고, 혈육을 나누고, 함께 사는 것이다. 그리고 가정 안에서 자기의 위치를 지키며 주어진 대로 각자 노력하며 살아가는 것이 가족이다.② 가족의 태도·기대 가족의 태도는 가족 구성원에 대한 관찰이라고 본다. 부모와 자식간에 늘 서로를 관찰한다면 서로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 수 있다. 서로가 원하는 것을 표현하기 전에 먼저 발견하여 그것을 서로에게 행동으로 보이는 것이 가족에 대한 태도이며, 그것이 가족간의 기대에 만족을 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③ 가족의 가치 가정은 사회화의 기관이다. 이 작은 사회에서 서로 협동하며 공동체 생활을 함으로서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을 배워나가고, 상대방을 통해 나 자신을 일깨워 갈 수 있는 것이 가족의 가치라고 생각한다.〔사례2〕성별 : 여나이 : 32세학력 : 전문대졸직업 : 종합병원 임상병리과 근무(월 150∼200만원 수입)거주지 : 서초동의 원룸(18평-전세)자녀 : 1녀(현재 양육하고 있지는 않음)계층구분 : 중하층결혼유형 : 연애혼이혼유형 : 협의이혼(이혼 후 혼수로 해간 물건은 모두 회수)이혼 후 생활경력 : 4년Q1. 이혼하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당시의 결혼을 하기로 마음을 먹후 전 시댁과의 왕래는 어느 정도인가?- 거의 하지 않는다. 시부모님께서 연락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 현재 아이가 6살이 되었는데, '엄마는 외국에 공부하러 가있다'는 말씀을 아이에게 하며, 엄마가 어딘가에 있다는 것을 알도록 한다. 이것은 전남편이 재혼을 할 경우 새로 들어올 여자를 아이의 엄마라고 하기 위함인 것 같다. 굳이 왕래라 한다면 아이의 생일 등 특별한 날에 선물을 보내는 것이 전부이다.Q4. 아이에 대한 그리움을 없습니까?- 좀 보고싶기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대로 지낼 만 하다. 사실 지금까지도 일을 한다는 것에서 큰 만족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아이에 대한 그리움은 그다지 크지 않다. 비록 내 손으로 기르지는 못하지만, 그 아이가 앞으로 잘 자라고, 잘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해 주는 것이 나의 몫인 것 같다. 나중에 아이가 성장해서 나를 보고 싶어한다면 볼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보지 않겠다.Q5. 이혼 후 어려운 점은 무엇입니까?- 나 스스로 느끼는 어려움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친정 부모님 입장에서는 딸이 이혼한다는 것에 대한 걱정이 크셨던 모양이다. 이혼녀에 대한 주위의 따가운 시선을 가장 걱정하셨다. 사실 그 점에 대해서는 나도 부담감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이혼 초에는 후회하는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다른 데에서 만족감을 얻으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전보다 더 많은 취미활동을 했다. (지금은 컴퓨터 관련 자격증이 4개가 있다.) 이혼 후 이혼남녀만이 등록할 수 있는 카페(사이버상의 모임)에 가입했다. 이를 통해 이혼으로 인해 느끼는 아픈 점이나 힘든 점들을 함께 공유하며, 나눈다. 아이를 양육하고 있지 않아서인지 이혼 후 크게 느끼는 어려움은 없는 것 같다. 굳이 이야기하자면 이혼녀라는 이유 때문에 주위에서 나를 가볍게 생각하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와 이렇게 혼자 살아가는 것이 최상의 방법인가, 아니면 재혼을 해야할 것인가의 고민정도이다. 항상 강한 모습으로 지내려고 노력한다.Q6. 경제적인 어려움은 없습니까?-
    사회과학| 2001.11.16| 9페이지| 1,000원| 조회(6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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