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이나 광고에 나타난 컬러의 경향Ⅰ.서론언어를 초월하여 가장 강력하게 어필할 수 있는 도구는 무엇일까? 전 인류에 해당하는 공감각적인 감성대 는 없을까? 색의 활용이 가장 두드러지는 광고를 보면 그 컨셉트와 시각적인 비주얼의 주조색 이 맞지 않아 전혀 다른 메시지를 주는 경우가 많다. 이는 광고의 성공 여부뿐만 아니라 자칫 매체의 강력한 힘으로 인하여 소비자들의 색채 심리를 어지럽힐 수 있다. 여성스러움을 강조하려는 기업 광고나 음식 광고의 주조색 이 청록이나 청색이라든지, 학습지 광고에 빨간색 이 등장하는 경우는 반대색을 적용한 대표적인 경우다. 역발상 으로 반대색을 사용하여 어필하려는 경우도 있지만 제작자나 광고주의 의도와 전혀 상반된 결과를 낳기도 한다. 튀는 광고, 기억에 남는 광고이기 이전에 광고 자체는 시각적인 문화이기에 공적인 매체로서의 역할이 중요하다.색의 이미지는 크게 5개 군으로 나눌 수 있다. 그 다섯 색은 빨강, 노랑, 초록, 파랑, 자주이며 각각 넓은 영역으로 각자의 톤을 포함한다. 여기서 말한 5가지 기본색은 모두 대표적인 색상의 분류 영역이다. 디자인에서 사용 빈도가 높고 일상 생활에서도 기본이 되는 색 중에서 보라를 제외한 빨강, 노랑, 녹색, 파랑, 검정의 기본 5색이 갖는 공감각적인 이미지에 대해서 얘기해 보자.Ⅱ.본론Ⅰ. 색의 유혹에 빠져든 세상1. 빨강-화에 따라 다른 느낌빨강은 가장 힘차고 역동적인 색이다. 사랑을 상징하는 색임과 동시에 분노와 복수의 색이다. 종교적으로는 하늘인 성령의 색임과 동시에 악마인 사탄의 색이다. 신분을 나타낼 때는 중국 공산당의 경우처럼 노동자와 혁명의 색이면서 왕과 추기경의 상징 색이기도 하다. 물론 위의 빨강을 정밀하게 측정하거나 조사해 보면 모두 같은 색은 아니다. 모두 빨강 색상 계열일 뿐 전문적으로 분류하면 세분화된색으로 색 이름부터 색채 좌표까지 모두 다른 색이다.빨강은 어떤 색과 만나느냐에 따라 여러 가지의 느낌을 준다. 원색의 빨강이 분홍과 만나면 육체적인 사랑, 유혹 등을 의미노랑을 즐겨 사용한 화가는 빈센트 반고흐(Vincent Van Gogh)다. 인상파 화가들이 주로 칙칙한 톤으로 부드럽고 여성스러운 그림을 그린 반면, 그는 주로 노랑을 사용하여 광적이고 화려한 느낌을 표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그림에 특히 노랑이 강렬한 이유는 당시 비싼 카드뮴을 사용할 수 없어서 싼 노란색인 크롬을 사용해 두껍고 둔탁하게 칠했던 것인데, 그것이 후세에 더욱 강해진 노랑의 의미에 그의 광ㄱ기가 더해져 강한 인상으로 남게 되었다.3. 녹색-동양과 서양간의 큰 차이우리나라 사람들은 녹색을 참 선호 한다. 녹색이 자연에서 온 색이며 자연을 상징하고 순수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녹색을 좋아하는 사람은 으레 순수하고 자연지향적인 성향을 보인다. 우리의 전통적인 의식 속에도 녹색은 좋은 의미를 많이 담고 있다. 우선 자연 경관에서 온 색인 유록색, 춘록색, 유청색, 녹색, 초록색, 취람색 등이 있는데, 이들 중 상당수는 우리 조상들이 기나긴 겨울을 보내며 봄을 학수고대했던 이미지가 담겨 있는 색이다. 예를 들어 춘록색은 겨우내 움츠렸던 버들가지에 물이 오르며 처음으로 돋아나는 어린잎색이다. 유록색은 며칠 뒤 봄기운이 좀 더 들어간 버들잎색이고 유청색은 완전히 핀 버들잎색이다. 이처럼 우리 조상들의 녹색에 대한 사랑과 서술은 유별났다.녹색은 아리따운 규수를 말하기도 한다. 깊은 규방에서 곱게 자란 양가댁 규수를 표현할 때 녹색을 사용했던 것이다. 모 여대의 학교 마크가 녹색인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원래 전통적으로 동쪽을 사랑했고 지향했던 선주(船主)들이 동쪽에서 돋아나는 기운을 느끼며 생각했던 청색을 눈에 보이는 봄의 기운과 연결해서 청과 녹을 함께 서술하기도 했다. 따라서 청색과 녹색이 그 의미상 같은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 사람이 청색과 녹색을 같이 본다는 것은 색을 구분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봄의 기운으로 상징성을 같이 봤기 때문이다.반면 미주를 포함한 서구에서 녹색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우선 자연미와 중립성을 중 가장 많은 사용 빈도를 보이고 있는 색 역시 파랑이다. 그 이유는 파랑이 긍정적이고 젊음을 지향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파랑을 지나치게 사용하면 개성 없고 무미건조한 분위기를 연출하기 쉽다. 또한 기계적이고 논리적인 집단으로 보일 수 있으므로 개성 있고 독특한 파랑을 개발해서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일반적으로 파랑은 가장 조용하고 후퇴되어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색이기도 하다. 녹색이 자신을 숨기는 색이라면 파랑은 자신을 보여 주면서도 조용한 색이다. 따라서 파란색의 실내는 조용하면서도 침착하다. 실내가 소란스럽고 정신없을 때 실내를 파란색 분위기로 만들면 그 특유의 차가운 분위기로 인하여 실내는 조용한 침묵의 공간이 된다.역사 속의 파랑은 어떤 이미지였을까? 우리나라는 젊은이의 기상과 호연지기를 상징하는 색으로 파란색을 사용했고 그 의미는 청화 백자에도 남아 있다. 영국에서는 귀족과 귀족남의 정절을 상징하는 색으로 사용하여 이 상징은 물망초, 치커리 등의 꽃말로 자리잡기도 했다. 따라서 국왕의 영원한 상징인 정절로 만들어진 색이 로열 블루다. 로열 블루가 국왕의 권위를 나타낸 데에는 이처럼 정절과 침묵이 동반되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사용하는 또 다른 귀족적인 파랑으로 울트라 마린 블루가 있다. ‘바다를 건너온 색’이라는 뜻의 울트라 마린은 로마 사람들이‘동양에서 온 신비’라는 의미로 귀하게 여긴 색이다. 또한 파랑은 무한한 상상력을 주는 공상의 색이기도 하다. 파랑은 우리가 흔히 우주를 표현할 때 사용해 무한한 공간 속 상상의 세계를 표현한다. SF 영화의 대부분이 파랑의 배경과 색채 타이틀을 사용하는데 파랑이 가진 상상과 무한한 공간을 체험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반면 파랑은 근대 화가에게 있어서 비탄과 슬픔의 색이기도 했다. 파블로 피카소의 경우 시안(Cyan)색을 중심으로 파리 뒷골목의 서정적이고 슬픈, 가난한 노동자의 생활과 그들의 감성을 표현하기도 했다. 이는 뒤이은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야 한다.Ⅱ. 색이 살아 있는 광고- 심플 컬러는 힘이 세다1. 센걸 잘 만드는 사람의 요령한번에 수천만부가 팔리는 베스트셀러를 50권 넘게 써낸 사람이‘쓰는 법’에 관한 책을 냈다. 쇼생크 탈출>, , 의 작가 스티븐 킹(Stephen Edwin King)의 창작론 가 그것이다. 이 책에서 그가 고른 잘 쓴 글, 임팩트 있는 문장들은 전부가 다 심플하다. 군더더기가 없는 것이다. 자기가 써야 할 내용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 그래서 자기 글에 자신감이넘치는 사람은 불필요한 수식어로 문장을 꾸밀 필요를 못 느낀다는 게, 쓰기만 하면 히트를 치는 스티븐 킹의 주장이다.글이 이러하다면 비주얼은 어떤가? 성공한 브랜드의 컬러 씀씀이를 보면 아티스트들이야말로 일찌감치 이 법칙을 깨달은 사람들 같다. TV 광고, 인쇄 광고 하나하나를 만들 때는 수천, 수만 가지의 컬러를 잡아내지만 정작 중요한 로고라든가 패키지 등은 하나의 컬러만 쓰고 파스텔 톤보다는 원색을 자신있게 쓰기 때문이다.2. 고추장, 칠리소스, 토마토는 힘이 세다고추장 한 숟가락에 밥을 비비는 순간, 입 안에 침이 가득 고인다. 타바스코 소스를 뿌리는 순간, 피자는 훨씬 맛있어 진다. 케첩을 찍어야만 진정 후렌치 후라이를 먹는 기분이나며 포도잼보다 딸기잼이 더 달콤하게 느껴진다. 빨간색이 식욕을 돋운다는 일반적인 원칙이 가장 강하게 통하는 곳이 바로 정육점이다. 그래서 파란 정육점은 하나도 없다. 고기 파는 집 불빛은 빨개야 한다.세계적인 브랜드는 어떤가? 맥도날드와 버거킹, KFC는 경쟁사지만 로고색에 있어서는 차별을 두지 않는다. 전부 빨강이다. 피자헛도, 도미노피자도 빨강이며 패밀리 레스토랑 TGI, 토니로마스도 빨강이다. 우리 나라사정도 마찬가지다. 롯데제과로 출발한 롯데그룹의 로고도 최근까지 빨강이었으며 오리온제과가 전신인 동양그룹도 역시 빨강을 택했다.먹는 사업의 빨강에 대한 사랑은 로고에서 끝나지 않는다. 100여 년 전, 빨강 하나를 자기 색으로 정한 코카콜라는 마케팅 전 영역에서 빨강만 황이 그랬기 때문에 ‘샛노란 은행잎’을 주인공으로 한 주택은행의 TV 광고, 몇 편의 계속되는 인쇄 광고는 눈에 잘 보였다. ‘은행이 활짝 피었습니다. 은행이 주렁주렁 열렸습니다.’의 카피처럼 활짝 눈에 띄었다.좋은 소식을 알리는 카피에 노랑은 적격이다. 국민은행의 마케팅 수단인‘별’이 주택은행의 노란색으로부터 온 건지도 모르겠다. 너무나 짧은 캠페인이었고 별 자체가 단색으로 표현하자면 노란색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택은행의 ‘노란색 은행잎’캠페인 이후 국민은행과 우리은행, 하나은행이 비교적 일관된 컨셉트와 디자인을 시도했고 계속해 오고 있다. 노란색만큼이나 기분 좋은 변화다.5. 녹색, 말 그대로 그린피스어떻게 하면 잘 보일까? 어떻게 하면 소비자를 자극해서 지갑을 열게 할까? 무관심한 소비자의 눈길을 끌어 그 머리 속에 스타카토를 찍는 일이 광고라면 녹색은 광고와는 안 어울리는 색이다. 빨주노초파남보의 가시광선 한가운데 있는 이 색은 누군가를 자극하는 색이기는커녕, 흥분된 사람까지도 진정시키는 색이기 때문이다. ‘그린피스(Green Peace)’같은 환경단체라든가, 공익단체가 쓰기엔 제법 훌륭하지만 ‘SALE’이라고 쓰기엔 참 차분한 색이다.스타벅스는 잘 팔리지 않을 것 같은 이 녹색으로 간판과 인테리어, 패키지와 광고까지 도배했다. 왜 하필이면 녹색을 골랐을까? 이 궁금증에 대한 답은 스타벅스의 최고 경영자 하워드 슐츠(Howrad Schultz)의 인터뷰 내용에서 짐작할 수 있다.“스타벅스는 단지 이익을 내는 회사로 성장하는 것 이상으로 보다 야심찬 것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스타벅스는 좋은 커피에 대해 모든 소비자들을 가르칠 사명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황폐한 일상생활 속에 있는 소비자들을 낭만과 경이로움을 주는 커피숍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분위기를 계획하고 있습니다.”단순히 커피만을 팔아 치울 요량이었다면 녹색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스타벅스는 녹색을 택함으로써 시애틀은 물론 여기 서울까지 전 세계 회색 빌딩 숲 한 가운데 스타벅스란 나무보라다.
목 차★구조기능주의적 사회운동이론1. 집합행동의 가치부가이론(1) 구조적 유인성(Structural conduciveness)(2) 구조적 긴장(Structural strains)(3) 일반화된 신념의 형성과 확산(Growth and spread of a generalized belief)(4) 촉발요인들(Precipitating factors)(5) 참가자의 행동동원(Mobilization of participants for action)(6) 비효율적인 사회적 통제(Inefficient operation of social control)2. 체계불균형이론3. 종합적 평가★사회심리학적 사회운동이론1. 혁명의 J-곡선이론2. 인지부조화이론3. 상대적 박탈이론(1) 거어의 상대적 박탈이론(2) 파이어라벤드의 상대적 박탈이론4. 종합적 평가★구조기능주의적 사회운동이론집합행동에 관한 구조기능주의적 접근은 사회의 구조와 변동에 관한 구조기능이론의 관점과 전제에 기초하고 있다. 구조기능론은 사회를 그 구성부분들의 상호의존적인 체계로 규정하면서, 그와 같은 사회체계는 균형과 통합을 유지하는 안정된 체계라고 가정한다. 또한 사회체계는 그 구성부분들의 변화에 의해 체계에 불균형과 긴장이 발생하게 되면, 체계의 적응적 변동에 의해 다시 균형을 회복해 나아가는 자기규제적인 체계로 개념화된다. 따라서 구조기능주의자들은 집합행동을 체계의 구성요소(규범, 가치, 제도 등)들의 불일치나 괴리 등으로 인한 구조적 긴장 혹은 불균형에서 비롯되는 변동지향적인 사회적 행동으로 본다. 스멜저는 집합행동을 규범과 제도수준에서의 변화를 추구하는 규범지향적 집합행동과 가치와 이념 수준에서의 변화를 목적으로 하는 가치지향적 집합행동으로 나누었다. 따라서 구조기능론에서의 집합행동이 지향하는 사회변동은 규범적 수준의 제도적 변동뿐 아니라 사회질서의 핵심적 가치의 근본적 변화를 추구하는 혁명적 변동도 포함된다.1. 집합행동의 가치부가이론탈콧 파슨즈의 사회체계론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스멜저는 집합행동을 구조적는 반체제적인 혁명운동의 성격을 띤다.(2) 구조적 긴장(Structural strains) 사회적 정의의 애매성, 사회적 요소들간의 괴리, 일부 사회적 범주의 박탈 등으로 인해 사회적 긴장이 조성되었을 때, 사회운동이 발생한다. 새로운 지식이 발견되거나 도입되거나 새로운 가치관이 확산되어 기존의 규범과 가치의 현실과의 적합성이 낮아졌을 때, 또는 급속한 사회변동으로 인해 규범적인 표준과 사회적 조건간의 괴리가 발생했을 때, 또는 일부의 사람들이나 집단이 부, 권력, 위세 등에서 명백한 손실이나 박탈을 경험하게 되는 사회적 조건 등에서 사회운동을 발생시키는 구조적 긴장이 조성된다.(3) 일반화된 신념의 형성과 확산(Growth and spread of a generalized belief) 불만스러운 현재의 사회문화적 환경에 대한 진단, 현재의 사회문화적 환경을 재구성해야 된다는 신념, 변화지향적 운동의 전략과 전술에 관한 공유된 신념의 형성과 확산이 사회운동발생의 필수적인 조건이다.(4) 촉발요인들(Precipitating factors) 구조적 긴장을 전형적으로 나타내는 사건의 발생으로 많은 사람들의 행동을 촉발하는 계기가 된다. 흔히 촉발요인의 발생을 방아쇠효과라고도 말한다. 또한 촉발요인은 일반화된 신념을 특정한 대상이나 사건, 또는 상황으로 집중시키는 효과를 가져온다.(5) 참가자의 행동동원(Mobilization of participants for action) 많은 사람들이 집합행동에 참여하도록 동원하는 과정이다. 사회운동은 초기의 발생단계, 열광적인 동원의 단계, 제도화와 조직의 단계를 거쳐 발전한다고 할 수 있는데, 행동의 동원은 주로 두 번째 단계에서 이루어진다. 동원은 효과적인 지도자, 운동과정에서의 특정 전술의 성공과 실패 등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6) 비효율적인 사회적 통제(Inefficient operation of social control) 흔히 집합행동은 사회통제기제가 약화되거나 비효율적으로 작용하는 상황에서 더욱 촉진된다.2.자의 등장, 혁명적 정당의 출현과 조직 강화, 또는 다른 나라와의 전쟁에서 패배하는 등의 ‘역기능의 촉진제’가 있으면 혁명은 더욱 가속화된다. 존슨은 더 나아가 역기능이 엘리트의 문제해결 능력을 초과하게 되면 권력 디플레현상이 일어나고, 정치적 폭력의 통제를 위한 엘리트의 무력사용의 정당성조차 잃게 되는 권위의 상실을 거쳐 혁명적 변동이 진행된다고 하였다.그러므로 존슨의 논의에서 체계의 불균형은 혁명의 필요조건이지만, 정치적 엘리트가 역기능에 효율적으로 대응하면서 적절한 통제를 수반할 때, 혁명을 무마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혁명은 엘리트의 부적절한 대응과 그로 인한 권위의 상실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다.헌팅턴은 1960년대에 전세계 여러 지역에서 광범위하게 나타난 정치적 폭력과 불안정을 집중적으로 분석한 결과, 그러한 현상은 대규모의 사회변동, 경제적 근대화 및 경쟁집단들의 동원화에 직면하여 정치적 제도화가 너무 늦게 진행됨으로써 나타나는 갈등의 극단적인 사례들이라고 결론지었다. 즉 근대화혁명은 정치적 근대화와 사회경제적 근대화간의 괴리로 인해 새로이 성장한 사회세력들이 정치과정으로 흡수되고 동원되지 못함으로써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헌팅턴의 혁명이론은 급속한 사회경제적 변동, 새로운 사회세력의 동원, 정치적 제도화라는 세가지의 요인을 중심 개념으로 하고 있다.급속한 사회변동이 혁명의 기본 조건이라는 헌팅턴의 주장이 함축하고 있는 것은 혁명이 전통사회에서 근대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과도기적 현상이며, 따라서 안정적인 전통사회나 고도로 발달된 산업사회에서는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 반면에 근대화과정에서의 사회경제적 변화에 비해 정치적 근대화와 정치발전이 뒤지는 사회에서 혁명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또한 사회경제적 변동으로 인해 형성된 새로운 사회세력이나 엘리트들이 정치참여의 통로를 가지지 못할 때, 이들은 자신들의 목표를 관철하기 위해 강력한 요구를 내세우게 되고, 이에 대응해야 할 기존의 정치조직이나 제도가 경직적일 때 혁명발생의 조건이 성숙된다는 불가능하다. 이러한 문제점은 혁명적 상황이 언제 어떻게 발생할 것이라는 것을 예측할 수 없게 할 뿐 아니라, 집합행동이 가져올 다양한 결과들에 대해서도 설득력있는 설명을 제시하기 어렵게 한다. 예를 들면 혁명을 겪고 난 어떤 국가가 의회민주주의적인 체제를 택할 것인가, 아니면 권위주의적인 정치체제로 나아갈 것인가를 예측할 수 없다.또한 구조기능론적 집합행동이론은 혁명적 변동을 기존의 정치엘리트나 정치제도가 구조적 긴장과 불균형을 질서있는 ‘적응적 변동’을 통해 해결해 나아가지 못하는 예외적이고 극단적인 경우로 보는 경향이 있다. 즉 질서있는 변동은 일반적인 경우이고 혁명적인 변동은 예외적인 경우인 것으로 이해함으로써, 집합행동을 비일상적 사회운동으로 보는 뒤르켐적 전통을 충실히 수용하면서도, 뒤르켐이 말한 일상적 집합행동에 대해서는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이와 같은 문제점들은 물론 일반이론으로서의 구조기능론이 지니는 문제점과 맥을 같이 하는 것들이다.★사회심리학적 사회운동이론집합행동에 대한 사회심리학적 접근은 사회를 충족된 또는 좌절된 욕구와 기대를 가진 개인들의 집합으로 개념화하면서, 원칙적으로 사회체계보다는 개인을 분석단위로 설정한다. 이 접근은 집합행동이나 혁명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심리적 동기에 관심을 집중시키면서, 다른 모든 사회현상과 마찬가지고 집합행동 역시 인간의 마음속에서 시작된다고 전제한다. 집합행동에 대한 사회심리학적 접근의 특징은 개인적인 특성이나 불만스러운 마음의 상태와 같은 개인적인 수준에서의 요인을 집합행동의 설명요인으로 설정하는 데 있다. 예를 들면 권위주의적 퍼스낼리티를 지닌 사람, 소외되었거나 아노미상태에 있는 사람,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그 전형적인 예이다.1. 혁명의 J-곡선이론집합행동에 대한 사회심리학적 접근은 심리적 좌절감이 공격적 행동을 일으킨다는 존 돌라드 의 좌절-공격이론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집합행동의 사회심리학적 접근을 본격적인 혁명이론으로 발전시킨 최초의 학자는 데이비스였다. 데이비스게쉬웬더는 먼저 인지부조화이론의 기본가정들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1) 모든 개인들은 현실적인, 정의적인, 또는 규범적인 인지들을 포함하는 인지의 틀을 지니고 있다.(2) 특정한 인지의 틀은 현실적인 인지와 규범적인 인지간의 관계에 따라 조화 또는 부조화의 상태에 있다고 할 수 있다.(3) 인지부조화는 개인들에게 불만과 긴장을 일으키며, 기존의 인지를 바꾸거나 새로운 인지를 추가함으로써 인지부조화를 완화시키려고 한다.(4) 인지부조화를 감소시키려는 시도는 현실세계의 변화를 추구하는 형태로 표현될 수도 있다.(5) 인지부조화를 감소시키려는 시도는 간단한 시도로부터 복잡한 시도로 발전하며, 가장 복잡한 형태의 시도는 전체사회를 변화시키려는 시도로 표현된다.이상과 같은 가정에 기초해서 게쉬웬더는 사회운동 및 혁명을 발생시키는 사회적 조건들을 사회경제적 조건들의 변화에 의해 다음과 같은 가설들로 설명하려고 하였다.(1) 현실적 인지는 과거의 사회경제적 조건과 현재의 사회경제적 조건에 대한 인지, 그리고 양자간의 시간적 간격을 포함한다. 그리고 낮은 수준의 조건보다는 높은 수준의 조건을 자신의 바람직한 조건으로 정의한다.(2) 과거의 사회경제적 조건보다 현재의 사회경제적 조건이 더 높은 개인들은 자신의 조건이 향상되었음을 인식하고, 보다 높은 수준으로의 계속적인 향상을 기대한다. 그러나 그들이 기대하는 미래의 조건과 현재의 조건과의 괴리는 인지부조화를 일으킨다.(3) 현실적 인지는 준거집단의 과거 및 현재의 사회경제적 조건에 대한 인지를 포함하며, 또한 자신과 준거집단이 경험한 향상의 속도를 포함한다. 만일 양자간의 격차가 있었다고 인지하면, 인지의 부조화가 발생한다.(4) 현재의 사회경제적 조건이 과거의 사회경제적 조건보다 낮은 개인들은 자신의 조건이 악화되었음을 인식하고, 계속적인 악화를 두려워할 것이다. 따라서 과거 및 현재의 조건간의 비교는 인지부조화를 일으킨다.(5) 인지부조화를 감소시키려는 시도는 사회를 변동시키려는 시도로 표현될 것이다. 그리고 변동지향적다.
국화와 칼제 3장 각자 알맞은 위치 갖기일본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본인의 견해가 어떠한지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일본과 우리는 질서와 계층제도에 대한 신뢰와 자유와 평등에 대한 신앙이 극단적으로 틀리다.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그 나라 사람에 입장에 서서 한번 더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일본인의 계층제도에 대한 신뢰야말로 인간 상호관계 및 인간과 국가와의 관계에 관해 일본인이 품고 있는 관념 전체의 기초가 된다. 가족, 국가, 종교 생활 및 경제 생활 등과 같은 그들의 국민적 제도를 기술함으로써 우리들은 그들의 인생관을 이해할 수 있다. 일본인은 국내 문제와 마찬가지로 국제 관계 역시 계층 제도의 관점에서 보아 왔다.일본은 근래 두드러지게 서구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귀족주의적인 사회다. 사람들과 인사하고 접촉할 때는 반드시 서로간의 사회적 간격의 성질과 정도를 암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태평양 여러 민족과 같이 ‘경어’가 있다. 상대방이 친한 사람인가, 손아랫사람인가, 윗사람인가에 따라 각기 다른 말을 쓴다. 또한 이와 함께 허리를 굽히는 인사와 꿇어앉는 예의를 행한다. 이러한 동작은 모두 세밀한 규칙과 관례에 의해 지배된다.절에 대한 상식은 여러 가지이므로 배워야 한다. 어려서부터 배워야만 제대로 할 수 있다. 적당한 행동에 의해 끊임없이 서로 인식해야만 하는 계급의 차이는 단순한 계급적 차이가 아니라 성별, 연령, 두 사람 사이의 가족 관계나 종래의 교제 관계 등이 모두 반드시 고려되어야 할 사항이다. 같은 두 사람 사이에도 처지가 변하면 그것에 알맞은 존경이 요청된다.가령 민간인이었을 때 친했던 사이여서 인사 즉, 절을 안 했지만 그들 중 한쪽이 군복을 입게 되면 평복을 입은 친구 쪽이 경례를 한다. 계층 제도를 지켜가는데는 무수한 인간의 균형을 유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일본인 생활의 계층적 조직은 계급간의 관계에서도, 가정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철저하다.일본에서 예의범절을 배우며 세심한 주의를 가지고 이행되는 곳이 바로 가정이다. 그들에게는 성별과 세대의 구별과 장자 상속권에 입각한 계층 제도가 가정생활의 근간이다. 일본의 ‘효도’는 직접 얼굴을 마주치는 한정된 가족 간의 문제이다. 이것은 아버지와 할아버지, 형제 및 직계 비속 정도를 포함하는데 머무는 집단 속에서, 세대나 성별, 연령에 따라서 자기에게 알맞은 위치를 차지하는 것을 뜻한다. 여자는 연령에 관계없이 남자 형제 모두에게 머리를 수그린다. 결코 내용 없는 몸짓이 아니다. 머리를 수그리는 사람이, 사실은 자기 뜻대로 처리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일에 있어서 자기 뜻대로 행동할 권리를 승인하는 것이며, 절을 받는 사람은 그 사람대로 그 지위에 당연히 돌아가는 책임을 승인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목 차Ⅰ.서론Ⅱ.본론1.전공1) 전공을 선택하게 된 동기2) 대학(학과)에 따른 전공 선택의 동기3) 전공 공부 시간4) 취업준비를 위해 하루에 전공 공부하는 시간5) 전공을 포기하고 다른 공부를 할 의향이 있는지 여부6) 전공이 취업에 도움이 되는지 여부2.취업준비1) 취업을 하기 위해 가장 비중을 두고 준비하는 것2) 취업정보 경로3취업선택 시 고려할 사항1) 희망 직종2) 취업 시 근무지 선택의 기준4.입사서류에 출신대학교란 폐지 여부5.취업에 대한 부담감Ⅲ.결론Ⅰ. 서 론인간은 사회적 동물로서 다른 사람과 협력하고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는 과정 속에서 성장하고 진보해 나아간다. 이러한 사회 조직 속에서 더불어 살아가기 때문에 인간의 행동은 개인에게만 국한 되어 있지 않고, 각종 사회의 조직 속에서도 수행되어 공동의 활동과 생활에 부합되는 것이다. 우리들은 위와 같은 과정들 속에서 삶을 영위하면서 자아의 성취목적을 위해 더욱 고취시킬 수 있게 되는 무엇이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직업이다. 따라서 직업은 개인의 성취욕뿐만 아니라, 사회발전에도 공헌하기에,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직업이 인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기 때문에 직업선택의 중요성을 과히 간과할 수 없겠다.)직업선택의 방향을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시기는 바로 대학생 때 이다. 물론, 중?고등학교 때부터 진로를 정하고 그에 맞는 대학에 진학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학생활을 기점으로 자신의 진로와 취업에 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결정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직업을 생각하게 된다. 따라서 보다 나은 사회인으로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발판을 마련해줄 수 있는 대학생활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대학생으로서 한번쯤 생각해보아야할 중요한 문제가 되는 것이다.하지만 계속되는 경제침체로 인해 취업의 문은 점점 좁아져 가고 있으며, 예전처럼 대학만 들어가면 안정된 직장을 보장해주는 시대는 이미 지나간 지 오래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학을 졸업하더라도 취업에 대한 보장0%1.0%100.0%자연과학대학Count57526461620152%37.5%3.3%17.1%30.3%10.5%1.3%.0%100.0%체육대학Count44121600036%11.1%11.1%33.3%44.4%.0%.0%.0%100.0%예술대학Count26432501582%2.4%7.3%52.4%30.5%.0%1.2%6.1%100.0%기타Count86921172164%12.5%9.4%14.1%32.8%26.6%3.1%1.6%100.0%TotalCount54*************24242068%26.4%7.5%17.5%31.3%15.0%1.2%1.2%100.0%단과대학별 분석결과도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나의 관심분야와 일치(31.3%), 진학 시 성적(26.4%), 나의 적성(17.5%), 취업 및 졸업 후 진로(15%), 주위의 권유(7.5%), 사회적 인식(1.2%) 등의 순서로 전공 선택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이를 각 단과대학 별로 살펴보면, 인문대학과 자연대학, 농업대학의 경우에는 타 대학에서 비교적 높게 나타난 ‘나의 관심분야’보다 ‘진학 시 성적’이 더 높게 나타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농업대학의 경우에는 ‘진학시의 성적’이 ‘나의 관심분야’보다 무려 4배 이상의 비율을 보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적성이나 관심분야 보다, 진학 시 성적에 의해 농업대학에 진학한 학생이 60% 가까이 이른다는 것은 농업을 기피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결과라고 할 수 있겠다. ‘취업 및 졸업 후 진로’에 대한 전체평균이 15%였던 것에 비해 가정대학에서는 2.9%로 큰 영향을 주지 못한 반면, 진학 시 성적(34.3%)과 주위의 권유(11.4)가 비교적 높은 비율로 나타났다. 법과대학과, 사범대학, 수의과대학, 의과대학은 자신의 적성이나 진학 시 성적 보다 ‘졸업 후의 진로’가 각각 29.7%, 33.3%, 40%, 38.7로 가장 높게 나타났는데, 이런 현상은 어려워진 취업난과 맞물려 전문직을 선호하는 최근의 경향을 그라는 질문에서는 흔히 말하는 인기 학과와 비인기 학과 학생들의 취업에 대한 고민을 단적으로 알아볼 수 있었다.비인기 학과로 구분되어지는 공과대학은 53.2%, 농업대학은 62.0%, 자연과학대학은 60.8%, 인문대학은 59.6%의 학생들이 전공을 포기하고 취업을 위해 다른 공부를 할 의향이 있다고 밝힘으로써, 이 네 대학 학생들 중 절반이 넘는 학생들은 자신의 전공이 취업에 그다지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공과대학과 자연과학대학의 이 같은 결과는 최근 이공계 학생들의 취업난이 심각해진데다 자연과학 분야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지원이 부족한데 따른 것으로 보여 진다.특히, 인문대학은 공과대학보다 높은 59.6%의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는 순수 학문에 대한 기피 풍조와 맞물려 해석할 수 있다. 취업난이 어려워짐에 따라 대학이 학문의 연구하는 곳이 아닌 취업을 위한 발판의 장이 되면서 순수학문을 하는 인문대학은 더욱 설 자리를잃어가고 있는 것이다.농업대학은 62.0%로 대학들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이는 정보화 산업이 주A29Total전혀 안한다10분 미만10분이상 ~30분 미만30분 이상 1시간 미만1시간 이상 2시간 미만2시간 이상 3시간 미만3시간 이상 4시간 미만4 시간 이상1Count*************1419363% within A10830.9%8.5%7.7%14.0%19.3%10.5%3.9%5.2%100.0%2Count*************713349584% within A10817.6%5.1%8.7%17.8%24.5%12.2%5.7%8.4%100.0%3Count7*************5894641% within A10812.0%2.8%6.6%11.1%26.4%17.5%9.0%14.7%100.0%4Count42*************445% within A1089.4%1.3%4.3%9.0%21.3%18.7%13.7%22.2%100.0%5Count4123150420% within A10820.0%5.0%1적인 경제 불황과 취업대란은 또 하나의 고난의 문을 통과해야만 한다는 부담감을 안겨주고 있다. 이미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취업에 대해 대학생들은 어떤 준비를 하고 있으며 어떠한 방식으로 자신의 미래를 설계해나가고 있는지 알아보자.1) 취업을 하기 위해 가장 비중을 두고 준비하는 것대학생이 진로를 준비하면서 고려하는 요인들은 매우 다양하다. 그 중에서 대학생들이 무엇에 가장 비중을 두고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조사를 해 보았다.‘취업을 위해 가장 비중을 두고 준비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외국어준비’ 가 37.3%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이와 같은 결과는 대학생들이 외국어에 대해 많은 부담감을 느끼고 있으며, 취업 시 수준 높은 외국어 실력을 요구하는 사회 현상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FrequencyPercentValid PercentCumulative PercentValid외국어77337.337.437.4컴퓨터944.54.541.9전공48923.623.665.5경력1617.87.873.3외모 성형271.31.374.6시험47923.123.297.8기타462.22.2100.0Total206999.7100.0MissingSystem6.3Total2075100.0또한, 오늘날 외국어 교육 열풍이나 조기 유학의 열풍이라는 사회현상과도 관련지을 수 있다. 대기업에서는 영어실력을 중시하고 실제 사회에서 인정받는 직업을 얻기 위해서는 영어실력정도는 필수라는 인식과 그런 상황들이 전공이나 학교를 불문하고 전국의 모든 학생들은 저마다의 타고난 소질과 특성을 전혀 무신한 채 영어완전정복 이라는 재래식 무기를 가지고 대기업이라는 먹이를 향해 벌떼처럼 모여드는 형국을 빚어내고 있는 것이다. 일부 언론들은 안정성과 경제적인 외형만을 쫓아 대기업만을 선호하는 이런 학생들의 어리석은 집중자세를 탓하고 있지만 문제의 본질은 다른 곳에 있다. 대기업 아니면 성공이 아니라는 그릇된 사회적 인식이 팽배해져있고 이런 불온사상에 힘입어 대기업들은 학벌지상주의적인 편향된 사원선370.570.770.7관리직1416.86.877.5반전문‘ 기술직1125.45.482.9사무직2059.99.992.8판매직11.5.593.4서비스직733.53.596.9생산직7.3.397.2농어민7.3.397.6가정주부4.2.297.810462.22.2100.0Total206999.7100.0MissingSystem6.3Total2075100.0요즘 대학생들은 취업 시 어떠한 직종을 희망하는지 알아보았다. 위의 표와 같이 전문직 70.5%, 관리직 6.8%, 반전문 기술직 5.4%, 서비스직 3.5%순으로 나타났다. 표 분석결과를 보면 전문직을 선호하는 경향이 매우 강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와 같은 현상은 취업하기 힘든 사회를 반영하여 안정성 있는 전문직을 선호한 것으로 보인다.대학생의 직업에 대한 선호는 2003년도 취업에 대한 조사결과와 비슷하게 나타났다.) 2003년 결과를 살펴보면 전문직 58.3%, 관리직 13.3%, 사무직 12.9%, 서비스직 3.6% 등으로 조사되었다. 2003년에도 전문직의 선호경향이 매우 강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는 2002년 조사에서도 나타난 것으로 많은 대학생들이 장기적인 기업 비전이 없거나, 부족한 급여 및 복지제도 등 열악한 근무조건 때문에 안정적인 직업으로 눈을 돌리게 만든 것으로 분석된다. 2002년 조사에서는 전문직 66.4%, 관리직 13.7%, 반전문 기술직 14.4%, 사무직 3.4%, 판매직, 서비스직은 각각 0.7%인 것으로 조사되었다.) 서비스직의 경우 2002년에는 0.7%로 조사되었으나, 2003년, 2004년 취업에 대한 조사에서는 서비스직에 3%가 넘게 응답한 것으로 보아 많은 직업 중 지루하고 틀에 박힌 직업보다 대학생들의 흥미를 중시하고 자신의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직업을 예전보다 많이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우리나라 직업선호의 대세는 현재의 경제상황에 의하여 좌우되는 것 같으며, 자신의 적성을 진지하게 고려하는 것보다는 안정적인 직종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2) 취업.
".... 인디언들이 존 스미스 대위을 묶어서 포우하탄 추장 앞에 놓인 돌 위에 눕힌 후 몽둥이로 머리를 내리치려고 했다. 그 때 추장의 딸인 포카혼타스가 뛰어나와 자기 손으로 그의 머리를 감싸고는 그를 구하기 위해서 자기 머리를 그의 머리 위에 놓았다...."'포카혼타스'는 디즈니가 만든 33번 째 장편 만화영화이자 최초로 '실제' 인물을 주인공으로 해서 만든 만화영화로서, 주인공 포카혼타스의 탄생 400주년에 맞춰 1995년에 개봉되었다. 전세계에 팔리고 있는 디즈니 영화의 물량을 볼 때 이제 디즈니 만화영화들은 심심풀이 껌이나 땅콩이 아닐뿐더러 수많은 어린이들에게 그저 꿈과 희망을 전해주는 수준에만 머물고 있지도 않다. 바야흐로 디즈니는 아이들이 세상을 어떻게 보아야하는가를 '즐거운 방법'으로 가르쳐주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방법에 있다.한국사람들에게야 포카혼타스이건 '인어공주'에 나오는 에리얼이건, 또는 '라이언 킹'에 나오는 주인공 심바이건 간에 다 그저 만화영화의 주인공일뿐이지만, 미국사람들에게 포카혼타스는 한국의 심청이나 콩쥐에 해당하는 의미를 갖는 인물이다. 다시 말해서 그녀는 모든 어린이들이 성장과정에서 필수적으로 접하는 동화의 아름다운 여주인공이다. 미국 중서부에 있는 도서관 두 개를 조사해본 결과 포카혼타스에 관한 서로 다른 어린이용 책이 26가지나 있었다니, 포카혼타스를 모르면 한국에서 온 '간첩'임에 틀림이 없다. 게다가 그녀는 실제로 존재했던 인물이었고 미국의 건국사에 등장하는 당당한 역사 인물이 아닌가!과연 포카혼타스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도대체 어떤 인물이기에 인디언들은 그녀의 이름이 나오면 분개를 하고 만화영화가 나왔을 때 치욕적이라는 말들을 했을까? (미국 원주민 인디언들이 포카혼타스에 대해서 느끼는 생각들을 모아놓은 인터넷 홈페이지를 들러보면 그들의 감정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다. 예를 들면, 포카혼타스는 포우하탄 부족의 추장인 포우하탄(자기 부족의 이름을 자기 이름으로 가져왔다)의 딸로 1595년에서 1596년 사이에 오직 한 명, 자기 자신뿐이었다.존 스미스의 기록에 의하면 사랑스러운 인디언 공주인 포카혼타스가 무리를 헤치고 뛰어나와서는 죽을 위험에 처해있는 이방인인 자기의 머리를 감싸안았고, 아버지가 백인들을 공격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포카혼타스가 위험을 무릅쓰고 어둠을 가로질러 존 스미스에게 알려줌으로써 자기가 백인 정착민들을 구하게 되었다는 장면이 나온다. 아름다운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논리적으로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 도대체 자기의 가족, 종교, 동족을 다 져버리고 느닷없이 적을 구한다는 게 가능한 이야기인가.군인으로서는 많은 글들을 남겨서 아예 저작전집이 출간될 정도인 존 스미스는 1624년에 쓴 글 에서, 인디언들에게 잡혔다가 포카혼타스의 도움으로 살아났다는 이야기를 비롯해서 지금 우리가 디즈니 만화영화를 통해서 알고 있는 이야기들을 남겼다. 그러나 한 가지 이상한 점은 그가 이전에 쓴 글들에서도 그 사건을 언급했지만 포카혼타스에 대한 언급도 없었고 도움을 받아서 탈출했다는 내용도 전혀 없었다. 예를 들어서, 1608년에 쓴 글인 를 보면, 포우하탄 추장에게 잡혔지만 친절하게 대해주었고 일찍 석방시켜준다고 약속했다는 내용만 나올 뿐이다. 그리고 1612년의 글 에서도 순진한 인디언들의 호감을 사서 그들과 친교를 맺은 후 제임스타운으로 돌아왔다고 써있을 뿐이다.정리해보면 존 스미스가 '그 사건'을 겪은 것은 1607년이고 그것을 기록에 남긴 것은 1624년이다. 그 때는 포카혼타스가 죽은 지 이미 7년이나 지난 때였고 그녀의 남편 존 롤프가 죽고 나서도 2년이 지난 후였다. 다시 말해서 존 스미스 자신 말고는 그 사건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진 이후에야 그 이야기가 등장했다는 말이다.한 가지 덧붙일 것은 존 스미스의 포카혼타스 이야기와 매우 유사한 것이 이미 영국에 알려졌다는 점이다. 이야기의 전개는 대충 이렇다. 후안 오르티스라는 군인이 플로리다 탐험 도중이던 1528년에 실종되었다가 12년만에 드 소토에게 발견되었다. 그는 인디언들에게 붙하였을 테고, 정복자의 편에 가담하여서 "오늘날까지 이스라엘 중에 거하"게 되었으며(여호수아 6장 25절), 신앙의 용사로 인정받게 되었다탐험심에 가득한 주인공이 다른 종교를 믿는 다른 나라의 왕에게 붙잡히고, 죽을 위험에 처해졌으나 아름다운 공주가 구출해주고는 개종을 해서 그와 함께 행복하게 살았다는 식의 이야기는, 한 마디로 기독교를 믿는 유럽 사회에서 매우 진부한 이야기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로 근거가 없어 보이는 존 스미스의 주장이 미국의 역사 중에서도 정사에 당당하게 들어가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그 사건'이 있고 나서 한참 동안이나 주목을 끌지 못하던 포카혼타스가 화려하게 부활한 것은 그녀가 죽고 나서 200년이나 지난 후인 19세기 초반에 들어서였다. 버지니아를 벗어나서는 별로 알려지지도 않았던 이 이야기가 다시 살아난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비록 전쟁을 통해서 얻어낸 것이라고는 해도, 영국으로부터의 분리(1776년의 독립)는 당시 미국인들에게 모국 문화와 역사로부터의 단절을 의미했다. 자기의 뿌리를 잃은 식민지 이후의 미국인들은 뭔가 자신들만의 이야기, 자신들만의 전통을 갈구했다. 비록 당시 미국인들의 대부분이 유럽출신이었다고는 하지만 사실 그들에게는 건국신화 등과 같이 그들을 하나의 국가로 묶어줄 구심점이 없었다. 바로 이때 한 지역의 출발을 알리는 설화는 새로운 국가의 지속과 안녕을 보장해주는 좋은 '꺼리'가 된 것이다. 미국인들이 자기들의 역사를 파고들기 시작했을 때 그들의 로맨스는 부활했고, 포카혼타스는 식민지 시절의 미국을 지킨 수호천사의 모습으로 점점 떠올랐다. 별 근거가 없는 믿음이 필요가 없는데도 오래 지속되지는 않는다. 그녀는 교회와 국가 입장에서 볼 때 더 없이 좋은 '껀수'였다. 그녀는 자기 동족의 입장에서 보면 반역을 저지르고 스스로의 문화와 종교를 저버린 배신자였다. 그러나 우리는 배신을 저지르더라도 자기 쪽으로 오는 경우에는 문제삼지 않는다. 더구나 그녀는 사랑의 화신이 아닌가. 그녀는 백인들었고 끊임없이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포카혼타스와 관련된 수많은 미술과 문학작품들도 추상적인 충성심을 보고 만질 수 있는 것으로 전화시켜놓은 것에 불과하다. 그래서 포카혼타스는 이제 미국 문화의 모든 곳에 스며들어 있으며, 배 이름, 여관 이름, 광산 이름, 도시 이름, 지역 이름, 회사 이름, 그리고 작가들의 필명에도 포카혼타스는 엄연히 살아 있다. *그러나 포우하탄 인디언들은 그렇게 당당하게 살아남지를 못했다.제임스타운의 사업(주로 담배 등의 농업)을 담당하던 '버지니아 회사'(The Virginia Company)는 도달할 수 있는 곳까지의 땅을 준다는 정책을 1619년에 실시하였고 그로 인해서 영국에서 이주해온 백인들의 수는 급격하게 늘어났다. 그들에게는 그 땅이 인디언들의 땅이라는 사실은 안중에도 없었다. 백인들은 점차 땅을 차지해갔고, 1644-46 전쟁에서 패한 후 인디언들은 이제 '자기 땅에서 유배당한' 소수자의 길을 갈 수밖에 없었다.* 1620년에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메사추세츠의 플리머스 항구에 도착한 사람들을 '순례자'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도 1793년부터의 일에 불과하다. 당시 점차 세력을 잃어가고 있던 조합교회(Congregational Church)가 다시 세력을 규합하기 위해서 잊혀져가던 '순례자 도착 사건'을 신화화해서 주목을 끌게 만들었던 것이다. 실제로 남북전쟁 전의 사람들은 이 '순례자들'을 이교도들에게 교리를 전파하러온 성경의 선지자와 같은 인물들로 여겼다. 그러나 적어도 1622년 이후 제임스타운에 살던 영국인들은 인디언들을 선교하는 것에 아무런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들은 '야만인들'과 거리를 두던 개신교도들이었으며, 그들이 관심을 가진 것은 오직 자기가 원하는 땅을 차지하는 데에 있었다.포카혼타스 신화 만들기앞에서 언급되지 않은 '진실'의 일부를 밝혀보면 다음과 같다.제임스타운을 이끌던 존 스미스는 화약사고로 화상을 당해서 1609년에 영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는데(디즈니의 '포카혼타스'에서는 추장을 구하려다가 대신해서 총관을 지배하는 수준에 머물지 않는다. 미국 국회의사당에는 미국 건국의 기초가 되는 네 개의 벽화가 그려져 있는데, 포카혼타스의 세례장면은 당당하게 그 중의 하나를 차지하고 있다. (이 네 개의 그림들은 몇 년간의 논쟁을 거쳐서 1836년에 확정이 되었는데, 어떤 근거로 이것들이 선택되었는가도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당시 백악관과 국회에 제임스타운 후손들이 가진 영향력을 고려하면 포카혼타스가 한 자리를 차지한 것은 그리 놀라울 일이 아니다.) 이 그림은 매우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녀가 저버린 인디언들은 여전히 '야만적'인 복장을 하고 옆에 서 있고, 그녀는 순결한 흰색 드레스를 입고 백인 목사와 다른 백인들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다. 남북전쟁 전인 18세기 중엽에는 석판이나 동판 등을 이용한 싼 인쇄물이 평범한 서민들을 대상으로 하여 돈을 버는 사업이었는데, 이때 메이플라워호를 탄 '순례자'의 도착과 더불어서 포카혼타스의 존 스미스 구출 장면은 매우 인기 있는 주제였다. 그 결과로 미국의 많은 가정들이 건국신화를 재생산하는 장면을 일상적으로 접하면서 살 수 있었다. 역사는 변화하고 발전하는 것이라지만, 이미 발생했던 역사에 대한 해석도 변화하고 발전한다. 특히 요즘처럼 글을 읽고 쓰는 능력이 보편화되지 않았고 그럴 시간도 충분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그게 가능했던 사람들이 지나간 역사를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서 역사는 변해갔다. 예술가들은 존 스미스가 남긴 '구출 신화'가 가진 극적인 측면을 과장했고, 버지니아의 대농장주들은 자신들의 뿌리가 되는 포카혼타스의 귀족성을 강조해갔다. 버지니아의 정치가이자 법률가였던 윌리암 워트는 1803년에 쓴 '영국 스파이의 편지들'이라는 글에서 포카혼타스가 존 스미스를 구했기 때문에 미국의 건국이 가능했다고 썼다. 그에 따르면, 그녀는 "유럽인들의 우수성"을 잘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자기 동족이 정복당할 것"임을 예견했으며, 피비린내 나는 학살을 피하고 "인디언과 백인들 사이의 모든 차이를" 없애기 위해서 존 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