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次例]Ⅰ. 序論 1Ⅱ. 本論 21. IMT-2000의 개념 32. IMT-2000의 목적 33. IMT-2000의 특징 34. IMT-2000의 역할 45. IMT-2000의 전략적 측면 46. IMT-2000의 문제점 67. IMT-2000의 문제점 해결 및 앞으로의 전망 8Ⅲ. 結論 12Ⅰ.序論흔히 21세기를 「기술의 무한경쟁시대」라고 말한다. 인간생명의 비밀을 밝히는 게놈(Genome) 프로젝트도 완성단계에 와있고 영화 같은 화질과 대형 화면의 디지털TV와 HDTV의 상용화도 곧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정보통신분야의 기술발전은 더욱 가속되어 지금보다 수백, 수천 배 빠른 네트워크가 지구촌을 하나로 연결하고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이 우리의 생활패턴을 크게 바꾸려 하고 있다. 21세기 무한경쟁시대를 주도하기 위해 우리 기업들이 기술개발과 우수인재 확보를 위해 투자하는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기술에서 주도권을 잡지 못한다는 것은 곧 도태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우리 기업들의 기술력은 이미 상당 부분 선진기업 수준으로 올라 있으며 특히 정보통신분야는 세계적 수준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그 대표적인 주자는 역시 CDMA방식 이동통신이다. CDMA기술을 세계 최초로 상용화함으로써 우리 기업들은 여느 선진업체에 뒤지지 않고 오히려 기술을 주도해 나가고 있다. 특히 CDMA기술을 기반으로 한 차세대 이동통신 IMT2000 기술은 해외전시회 등을 통해 세계 최고 수준임이 입증된 바 있다. 또한 지난해 말 표준기술을 선정하기로 한 국제통신연합(ITU)도 사실상 동기 및 비동기식 기술을 함께 인정함으로써 두 가지 기술을 모두 보유하고 있는 우리 기업의 사업전망을 밝게 해주고 있다. 이처럼 우리나라가 통신분야에서 세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CDMA 기술상용화를 이뤄낸 불과 4∼5년 전 일이었다. 이제는 전 세계 CDMA시장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우리나라를 빼놓고 이동통신이 중심이 될 통신산업의 미래를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다시 말해 적어도 통 가능한 2세대 디지털세대 디지털 이동전화를 거쳐 고속 무선 멀티미디어 서비스의 구현이 3세대 IMT-2000에서 가능한데, 이것은 기존의 각종 이동통신서비스를 하나로 통합하여 보다 확대된 멀티미디어 서비스를 공통 주파수 사용과 단일 기술표준으로 이용자가 세계 어느 곳으로 이동하더라도 하나의 단말기로 이동전화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목표로 연구 및 추진되어 온 서비스이다. 이동통신서비스는 음성 위주의 1세대 아날로그 이동전화에서 음성과 저속데이터 전송이 가능한 2세대 디지털 이동전화로 진화·발전하였으며, 3세대 IMT-2000에서는 고속데이터 네트워크로 발전하는 유선망과 같이 무선에서도 고속 멀티미디어 서비스를 실현하고, 보다 확대된 글로벌 로밍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1.IMT2000의 개념정보통신 발전사는 시공을 초월해 정보의 지체현상(遲滯現狀)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발전의 수레바퀴를 돌려왔다. 1876년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 발명한 전화에서 출발해 「언제 어디서나」통화할 수 있는 오늘날의 이동전화와 위성전화가 상용화되기까지 120년이 걸렸다. 90년대에 들어서면서 새롭고 다양한 이동통신 서비스의 대거 출현으로 언제, 어디서나,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의 대중화와 아울러 선택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게 되었다.다가오는 21세기 고도정보화 사회를 맞이하여 그 역할이 더욱 커지게 될 이동통신, 그러나 다양하게 개발된 현재의 이동통신 서비스는 각각의 서비스마다 구현하는 기술방식이 다르고, 같은 기술방식이라 하더라도 국가나 지역마다 사용하는 주파수 대역이 달라 무선통신 고유의 장점인 이동성을 완벽하게 실현하는데 근본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다. 또한 무선이라는 전송매체를 사용해야 하는 기술적인 제약으로 인해 멀티미디어 서비스와 같은 이용자의 증대된 욕구를 만족시키기에는 근본적인 어려움이 있다. 이러한 기존 이동통신 서비스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등장한 것이 바로 IMT-2000이다. 정보사회는 단순히 빠른 것만을 요구하지 않는다. 어떤 정보도 제약 없이al Mobile Telecommunications-2000'의 약자로 이동통신 서비스 플림츠(FPLMTS:미래공중육상이동통신)로 불렸다. 현재의 셀룰러나 PCS가 주파수 대역폭 제한으로 영상서비스가 어려 운데 비해 IMT-2000은 대역폭이 주파수각종 멀티미디어를 무선으로 주고받을 수 있게 해준다.이론적으로 이동 중에 단말기 화면을 통해 상대방 얼굴을 보면서 통화 할 수 있고 간단한 데이터를 보낼 수 있다. 위성과 연결돼 있기 때문에 기지국이 없거나 멀리 떨어져 있는 산간 지역 선박 위에도 통신서비스를 누릴 수 있다.5. IMT2000의 전략적 측면A. 기존 CDMA와의 호환성 유지 문제에 대해 퀄컴은 최근 유럽/일본의 W-CDMA 진영을 상대로 W-CDMA가 자신들이 이미 특허권을 가지고 있는 기술을 사용하고 있다며 CDMA-2000과의 협상을 하지 않을 경우 특허권에 대한 사용허가를 일체 제공하지 않겠다는 문서를 보냄으로써 GSM측의 강한 반발을 사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통합안을 둘러싼 논쟁의 밑바닥에는 단순한 특허권의 문제나 자신들의 기술이 세계시장을 정복한다는 감상적인 이유뿐만이 아니라 막대한 이권, 그것도 향후에 다가올 IMT-2000의 시장뿐만 아니라 현재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GSM 대 CDMA 간의 2세대 통신시장에서의 승부가 IMT-2000의 표준에 달려 있다는 절박함이 깔려있다는 점이 고려되어야 한다. 그동안 GSM은 CDMA보다 한발 앞서 2세대 이동통신 시장에 진출함으로써 시장을 선점하고 있었으나 후발 주자인 CDMA가 상대적으로 우수한 기술임을 앞세워 급격하게 2세대 통신시장을 잠식해 왔다. 그러나 중국이나 중남미, 동유럽 등 아직도 무한히 남아 있는 잠재적인 2세대 시장에서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이들 시장의 신규사업자들에게 현재의 2세대 시스템이 향후 다가올 IMT-2000세대에서도 호환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필수적일 수밖에 없다.이에 따라 유럽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제출한 표준안이 채택될 가능성이 훨씬 많은 현 만명◆2002년 338만명◆2003년 574만명◆2004년 824만명 등으로 증가할 전망이다.당연히 통신회사들은 21세기 청사진을 그리는데 IMT-2000을 빼놓지 않고 있다.직접 서비스를 하지 않더라도 IMT-2000의 그늘을 벗어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21세기의 통신 패권은 결국 누가 IMT-2000에서 승자가 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하겠다. 세계 각국이 벌써부터 IMT-2000 국제 표준 제정과정에서 치열한 세력싸움을 펼치는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E. 정통부는 IMT-2000 사업자수와 관련, 3~5개 범위에서 결정할 방침이다. 사업자 선정방법의 경우 과거와 같은 사업계획서(RFP) 심사방식과 함께 IMT-2000 사업용 주파수를 경매에 부쳐 고가를 써낸 컨소시엄에 사업권을 주는 주파수 공매(公賣) 방식도 적극 검토키로 했다.통신업체들은 2~3년 전부터 IMT-2000 사업을 추진해왔지만 정부가 구체적인 IMT-2000 서비스 도입일정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이에 따라 IMT-2000 사업권을 따내기 위한 업체들의 물밑경쟁이 앞으로는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통신서비스 업체, 장비 및 단말기 제조업체들간의 전략적 제휴와 짝짓기 등 이합집산이 활발히 벌어질 전망이다.현재 드러내놓고 사업권 확보전을 벌이고 있는 그룹은 대략 4~5개. 먼저 데이콤·신세기통신·하나로통신 등 3사는 IMT-2000 사업을 위해 컨소시엄을 결성하기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또 한국통신과 한국통신프리텔이 손을 잡았으며 삼성전자와 한솔PCS도 컨소시엄을 형성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SK텔레콤도 외국업체와의 전략적 제휴를 맺고 반드시 사업권을 확보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LG텔레콤은 데이콤의 실질적인 주인인데다 하나로통신 인수까지 노리고 있어 데이콤 컨소시엄에 합류하거나 아예 컨소시엄을 주도할 수도 있다.IMT-2000 사업권의 향방에 따라 국내 통신산업 재편도 가속화할 전망이다. 이동전화회사들은 IMT-2000 사업권을 확보하지 못하면 퇴출될 것으로 보고 필사적으로 사업자들은 전 유럽을 서비스 제공지역으로 삼을 수 있고, 나아가 전 세계를 시장으로 만들 수 있다는 기대를 갖고 있다. IMT-2000사업에 많은 업체들이 경쟁적으로 뛰어든 것은 이동통신을 결합한 M-Commerce(이동전자상거래)의 가능성을 크게 보았기 때문이다. 현재 전송속도를 비롯해 콘텐츠, 이용 요금 등 여러 가지 문제 때문에 이동전자상거래가 활성화되어 있지 않지만, IMT-2000사업으로 기술문제가 해결되면 그 수요가 엄청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소비자들이 M-Commerce를 얼마나 사용할 것인지는 미지수다. 유럽에서는 현재 WAP(휴대폰에 사용하는 무선 웹 브라우저의 일종)를 이용한 무선 인터넷 서비스의 경우 사용자가 거의 없어 고전하고 있다. 그리고 미국에서의 한 조사에 의하면, 응답자의 과반수가 휴대전화를 이용한 전자상거래는 유료로는 사용하지 않겠다고 응답하고 있고, 특히 휴대전화로 상거래를 하겠다는 사람들의 비중은 10% 이하로 나타났다. 1300여만명의 사용자를 확보하고 있는 일본 도코모의 아이모드(i-mode)서비스는 독특한 경우에 해당된다. 결국 소비자가 원하는 서비스를 누가 잘 개발하느냐에 따라 수익성은 달라지겠지만, 그래도 천문학적인 초기투자를 정당화하기에는 너무 위험한 사업이 아니냐는 판단을 사업자나 투자가들이 갖기 시작한 것이다.B. 기술 개발의 국산화 미비이러한 사실은 우리 국내 상황을 돌아보아도 비슷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IMT-2000은 '국가적 사업’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경제적 산업 기술적 목표가 설정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특히 정부와 민간의 공감대가 마련되지 않음으로써 또 한차례 중복투자와 과잉경쟁이 생길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서비스 사업자들이 거액의 시설투자와 분담금 부담을 줄이기 위해 초기단계부터 지분의 20∼30%를 외국기업에 매각키로 한 것도 ‘국부 유출’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연세대 경제학과 정갑영교수는 “IMT2000 사업은 엄청난 투자와 기술이 드는 만큼 디지털경제를 촉진다.
에 대해서오래된 영화 '매트릭스'를 다시 보게 되었다. 물론 예전에 한번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 남은 기억이라곤 액션이나 뛰어난 특수효과에 감탄한 것뿐이었다. 그리고 그 이후에 여러 패러디 영화를 보면서 웃었던 것이 다였다. 하지만 이번 한국사회의 이해 레포트를 써야 했기에 큰맘 먹고 DVD로 구입을 해서 다시 보게 되었다. 처음엔 무척이나 의아했었다. '한국사회의 이해 레포트에 웬 매트릭스?' 물론 다른 영화도 있었지만 극장가서 영화 볼 형편도 아니었고 비디오플레이어는 없고 DVD플레이어만 있어서 구입하기 쉬운 타이틀인 매트릭스를 선택한 이유도 있었다. 아무튼 영화 자체로 레포트를 쓴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고 더더구나 사회학적으로 분석하기란 정말로 쉬운게 아니어서 그 전에 봤던 것처럼 가벼운 마음보다는 진지하게 그리고 분석하는 입장으로 이 영화를 보게 되었다. 과연 이 영화가 그렇게 진지하게 논할 가치가 있는 영화인가? 라는 생각으로 플레이 버튼을 눌렀을 때, 나는 내 생각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매트릭스가 이런 영화였다니! 예전에 볼 땐 이 영화가 일본 애니메이션과 홍콩무협영화 그리고 CF때 써먹던 특수효과를 짬뽕 짜깁기해서 만든 단순한 B급 SF물인 줄 알았지만, 생각이 바뀌었다. 매트릭스는 현대사회의 여러 문제점을 제시해 준다. 기계문명의 발달로 인간들은 현실과 가상공간을 구분하지 못하게 되었다. 매트릭스에선 매트릭스라는 가상공간속에 살면서도 그 매트릭스가 현실이라고 교육받은 인간이 아무런 생각없이 살아간다. 매트릭스는 잘못 길들어진 인간의 무지한 모습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렇다면 현실도 과연 영화처럼 컴퓨터에 의해 지배될 수도 있는 걸까? 물론 영화 매트릭스는 미래에 대한 진지함을 보여주진 않는다. 오히려 오락에 가깝고, 미래는 액션을 만들어 내기 위한 소품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영화는 가상공간과 미래에 대해 의심할 만한 몇 가지 징후를 보여준다. 그건 때론 오해와 곡해를 불러일으킬 만도 하지만, 또 우리가 경청하고 의문을 품을 만한 얘기를 던져 주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우린 영화 를 볼 필요가 있다. 이후 '제2의 코엔 형제'라 불리우는 워쇼스키 형제는 참으로 재미있는 얘기를 생각해 냈다. 인공지능 컴퓨터가 지배하는 최첨단 미래 사회. 가상현실이 지배하는 이 세계에선 인간의 한계란 없다. 그들의 기억 세포에 정보만 입력시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유도, 쿵푸, 가라데, 태권도 등. 이제 그들은 아날로그 세계에 갇혀 있을 필요가 없다. 모든 기발한 상상력을 동원하여 무한대의 액션을 창조해 낸다. 현란한 쿵푸 기예, 총알을 막아내는 파워액션, 건물벽과 천장을 달리는 3차원 액션, 총알보다 빠른 초고속 스피드 액션, 모든 액션은 가능하다. 그리고 여기에 컴퓨터가 지배할 테크노 문명의 문제를 집어넣고, 그 공간을 미래가 아닌 가상현실이 지배하는 현실, 즉 1999년으로 이전시킴으로써 단순한 액션을 뛰어넘어 미래와 현재에 대한 우리의 문제를 의심하도록 만든다. 그럼으로써 미래는 미래의 문제가 아닌 현재의 문제가 된다.'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성경의 구절처럼 진실과 자유, 거짓과 통제를 양편에 놓고 벌이는 이 게임은 '빨간 약'과 '파란 약'중 하나를 선택하면서부터 시작된다. 빨간 약을 선택한자는 메시아를 따라 새로운 부활의 세계로 나가게 된다. 그러나 '파란 약'을 선택한 자는 지금 그 상태의 프로그램화된 삶을 살게 된다. 조건은 단 하나. 시작하면 끝을 봐야 한다는 것. 약을 선택한 순간 게임은 3차원의 시공간을 넘어 4차원의 가상세계로 이어지고, 액션은 황당함을 넘어 '신'의 세계로까지 이어진다. 물론 영화 는 미래에 대한 진지함을 보여주진 않는다. 오히려 오락에 가깝고, 미래는 액션을 만들어 내기 위한 소품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영화는 가상공간과 미래에 대해 의심할 만한 몇 가지 징후를 보여준다. 그건 때론 오해와 곡해를 불러일으킬 만도 하지만, 또 우리가 경청하고 의문을 품을 만한 얘기를 던져 주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우린 영화 를 볼 필요가 있다.우선 영화는 사이버네틱이 지배할 미래 세계에서의 진실과 자유의지를 말한다. 워쇼스키 형제가 보기에 세상은 거짓과 통제로 충만해 있다. 그건 어쩌면 AI로 만들어 진 가상의 세계, 가상현실일지 모른다. 그 세계를 지배하는 건 컴퓨터이고 우린 단지 그들이 입력한 정보에 의해 살아간다. 그렇다면 우린 누구인가? 우린 누구에 의해 통제 당하는가? 컴퓨터에 의해? 아니면 우린 우리 스스로의 의해? 미래는 인간이 자유의지를 품을 만한 공간인가? 다른 한편 영화는 디지털 문명에 대해 경고한다. 0과 1로 격자처럼 짜여진 데이터베이스의 방 속에 갇혀진 존재. "그들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길러지는 것이다"는 '모르피스'의 진술처럼, 사람들은 원하지 않는 곳에 있으며,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고 단지 원하는 것처럼 착각하며 살아간다고 말한다. 그럼으로써 그들은 살아가야 할 이유도 모르고 그냥 살아간다. 그렇다면 인간을 지배/통제하고자 하는 근대의 기획은 사이버네틱(cybernetic) 세계에서 완성된 것인가? 가상공간은 근대의 기획을 완성한 데이터베이스의 감옥인가? 더구나 영화는 그 근대적 기획의 완성을 인간이 아닌 컴퓨터에게 이전시킨다. 그 속에서 인간은 거세의 대상이자 치유의 대상이 된다. 그들의 기억과 욕망은 프로그램화되고 매트릭스 안에 갇히게 되며, 그 매트릭스를 벗어나는 순간 그들은 바이러스가 되어 백신 프로그램에 쫓기게 된다. 모든 알고리즘이 컴퓨터에 이전되어 인간이 오히려 지배받게 되는 세상, 조지 오웰(J.Owell)이 상상했던 '1984년'은 현실이 될 것인가?우선 '매트릭스'는 모든 곳에 있는 것, 즉 세계로 설정된다. 그러나 그건 또한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우릴 지배하고 조정하는 힘으로 각인되며, 진리로부터 우리의 눈을 가리는 것이고 현실이 아닌 것들을 실제 하도록 만든다. 곧 '매트리스'는 우리의 의식 내면에서 우리를 통제하고 지배하는 힘으로 '내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하지 못하게 하는 원인으로서 제공된다. 쉽게 말해 그것은 우리의 의식 내면, 즉 무의식의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힘이 매트릭스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노예이면서 노예인 줄 알지 못하며,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자유로운 상태라 착각하고 살아간다. 도대체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만든 것일까? 과대한 기계문명으로 자원을 소진했던 인류는 생존을 위해 기계에 의존하였고, 21세기 어느 시점인가 개발된 인공지능은 급기야 인간을 뛰어 넘어 인간을 지배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운명은 아이러니 하게도 인간이 가지고 있는 전기에너지와 열을 자원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고, 이를 위해 컴퓨터는 인간의 두뇌에 플러그를 연결하고 그들의 과거를 지배하기 시작함으로써 그들을 노예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그들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과거, 즉 무의식의 지반에 프로그램을 입력해 놓음으로써 인간을 자신의 도구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들이 보는 것은 거짓과 허위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단지 컴퓨터가 만들어 놓은 세계에 살고 있는 부속물에 불과한 것이다.문명의 발전에 따른 인간의 무의식에 대한 지배. 어쩌면 워쇼스키 형제는 자연으로부터 문명으로의 탈출하는 과정을 오이디푸스(Oedipus)의 죄의식으로 설명한 프로이드(Z.Freud)에 깊은 영향을 받았는지도 모른다. 적어도 프로이드 말대로라면 문명이 극도로 발전한 가상공간에서는, 인간은 문명사(文明史) 이래 이드(id)가 최대한 억제되고 통제되어야 하며, 그런 한에서 초자아는 프로그램화되어 이드 속에 자리잡아야 한다. 그래야만 인간은 보다 완벽한 문명으로 나아갈 수 있으며, 생물학적 상태에서 사회적 상태로, 그리고 가상공간의 세계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이드를 통제할 것 같은 가상공간은 오히려 이드의 촉발로 이어진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인터넷 사이트들은 근대의 체계를 비웃으며, 이상하고 야릇한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있다. 오히려 근대의 통일성은 규범과 이성에 바탕을 둔 사회적 계약[루소]은 사라지고 있으며, 사회는 과연 통일성, 다시 말해 초자아가 있느냐란 의문이 제기될 정도로 다양해지고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컴퓨터의 세계, 즉 비트들의 세계는 이렇다. 그들은 짧게 나뉘어, 더 이상 나뉘어질 수 없는 상태에서 이진법의 부호를 부여받고 컴퓨터의 세계로 들어간다. 그 속에서 그들은 어떤 다른 것들과도 서로 충돌하고 갈등함이 없이 잘 붙기도 하고 떨어지기도 하고 지워지기도 하고 만들어지기도 한다. 그들은 지배하는 것은 오로지 단 하나, 프로그램일 뿐이다. 프로그램은 이들을 생성시킨 신이며, 이들을 소멸시키고 변형시킬 권리를 갖고 있는 전지전능한 단 하나의 신이다. 그러니 만큼 비트들의 세계는 프로그램에 의해 관리되고 통제된다. 의 세계는 마치 그렇게 조직되어 있다. 그들은 프로그램에 의해 만들어 졌으며, 프로그램에 의해 프로그램 되어 움직이고 살아간다. 그들은 마치 단자처럼 자신의 이데아로 충만한 것 같지만, 그것은 결국 신의 예정된 조화를 위해 움직이는 단위일 뿐. 그들에겐 초자아에 대항할 이드의 준동도, 욕구도, 그런 욕망도 없다. 이드는 완벽하게 초자아와 일치된다. 프로그램에 의해 시뮬레이트됨으로써...
중세 기독교 교육의 역할중세 기독교 교육에 대한 평가Ⅰ.序言교육이란 한 사람이 그 사람이 속한 사회의 풍습이나 제도, 가치관 등 일종의 문화라고 불리우는 것에 동화하여 가는 평생의 과정이라고 생각 할 수 있다. 따라서 사람들은 문화권속에서 키워지고 성장되어 나가는 것이다.유교 문화권에 속한 사람들은 유교의 가르침에 따라서, 불교 문화권에 속한 사람들은 불교의 가르침을 따라서, 기독교 문화권에 속하는 사람들은 기독교의 가르침을 따라서, 그리고 그 밖의 문화권에 속한 사람들은 각각 자기네들의 전통을 따라서 그들 나름대로의 문화를 형성했다.여기에서는 그러한 기독교 문화권에 있던 중세의 기독교 교육과 그것이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를 알아보고자 한다.Ⅱ.本論ⅰ.중세초기의 교육카롤링왕조의 왕들, 특히 카알대제는 소위 카롤링朝 르네상스라고 알려진 문예운동을 주도했다. 이는 제국을 통치하고 관리하는 식자층을 양성하고, 제국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담당하는 성직자들의 자질을 유지하려는 정책적 배려와 맞물리는 것이었다.카롤링왕조 시대에는 그리하여 카롤링제국의 도처에 수많은 학교가 세워졌다. 이 학교들은 당연 성직자들에 의해 지도되었고, 기본적인 식자능력의 계발에 기여했다. 카알대제 자신은 모든 수도원과 주교구 성당에 학교를 세울 것을 명했고, 실제로 교육은 교회의 업무라는 전통이 수립되었으나, 그 密度가 충분하다고 볼 수는 없었다.10세기경 再次 외부의 침입을 받은 유럽에서 모처럼 싹트기 시작한 교육과 문화의 창달은 좌절되었다. 많은 곳에서 학교는 존립이 위태롭게 되고, 극소수의 수도원과 성당학교가 겨우 명맥을 유지하게 되었다.ⅱ.성당학교 (Cathedral School)와 도시의 속인학교11세기말과 12세기초에 사회적 안정이 확보되면서, 당시의 일반적인 사회발전에 힘입어 지식에 대한 요구가 확대되기 시작했다. 12세기초부터 수많은 학교가 생겨나면서, 지식과 교육에 대한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이와 같은 요구에 부응하여 주로 도시에 소재했던 주교좌 성당에 학교가 세워졌다. 중세초기에는 수도원이 외부인에 대해서도 약간의 교육기능을 담당했었으나, 12세기경부터 수도원은 이러한 관행을 중단하고 성당학교(Cathedral School, schola)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사실상 수도원은 12세기 시토 수도회의 개혁운동에서 보듯이 중세초기와 같은 지위를 더 이상 누릴 수 없었다. 즉 시토 수도회는 그 개혁적 면모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 기독교적 수도자의 이상에 헌신하는 근본주의적인 성격을 갖는 보수적인 운동이었다. 이제 문화와 종교의 중심은 수도원에서 도시에 위치하는 대성당, 그리고 성당학교로 옮겨졌다.여기에서 도시와 학교의 연관관계를 주목하여야 한다. 즉 도시의 주민들, 특히 경제적 여유가 있는 상인들이 학교를 특히 필요로 했다. 이는 그들의 직업 활동 상, 계약을 체결하거나 영업실적에 대한 기록의 필요성 등에서 문자능력을 더욱 절실히 필요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중세후기에는 도시참사회가 운영하는 도시학교의 등장까지 보게된다. 교황청은 1179년부터 모든 성당에 학교기능을 갖추도록 하였다. 이는 우선 교사를 배치하는 일로 시작하여, 적어도 희망하는 자에게는 최소한의 문자능력을 전수하도록 하였다.성당학교의 목적은 물론 사제양성에 있었다. 그러나 12세기부터 점증하는 사회적 요구로 인하여 보다 높은 수준의 교육이 행해지게 되었다. 국가와 교회, 도시 모든 측면에서 단순한 식자능력이상의 전문지식-특히 법률지식-을 갖춘 인력이 요구되었다. 따라서 학교에서는 고급의 지식에 접근할 수 있는 언어, 즉 라틴어의 구사능력이 철저히 주입되기 시작했다. 이를 위해, 또는 이로 인해서 라틴고전의 이해수준이 일층 높아지게 되었다. 이미 중세성기의 수도사들 사이에는 Vergilius와 Cicero가 애독되고 학습되었다. 기독교의 종지와 큰 갈등 없이 로마의 고전이 수집되고, 연구되었으며, 作文에까지 모방되었다. 이러한 이유에서 이 시기의 古典연구에 대한 증대된 관심에서 "12세기 르네상스"를 운위하게 되었다.13세기경부터 성직을 지망하지 않는 俗人知識人이 대량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즉 학교는 중세에서 오랫동안 성직자양성소의 역할을 담당했다. 그러나 이제 성직과 무관하게, 문자능력, 산술능력으로 새로운 출세의 경력을 개척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들은 성당학교 보다 도시의 속인학교를 선호하였다. 이제 교육기관의 운영과 그 혜택이 서서히 성직자와 교회에서 벗어나 속인에게도 개방되기 시작했다. 물론 이와 같은 속인교육이 아직 철저히 뿌리내린 것은 아니었으나, 이는 허다한 문화적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즉 교육 및 학교의 言語로서 라틴어 이외 각 지방의 俗語(vernacular language, Volkssprache)가 文語로서 이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까지 전해지는 중세유럽의 문헌전승에서 드러나듯이 12세기를 고비로, 특히 13세기부터 일상의 계약, 재판, 법률, 행정문서에서는 점점 더 압도적으로 俗語가 이용되기 시작했다. 학교는 이와 같은 변화에 영향을 미치고, 또 영향을 받았다. 물론 이렇게 양성된 속인지식인은 아직 근대적인 의미에서의 "전문적인 학자", "자유직업 지식인"으로서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들은 대다수가 市政이나 군주들의 지배·행정기관의 말단에서 書記로서 생존의 기반을 발견했다. 그러나 이들의 존재, 이들의 활동이야말로 사회의 文明化, 합리화의 개시를 알리는 것이었다.ⅲ.성당학교의 발전11,12세기 북프랑스의 많은 성당학교들이 "7개 자유교양학과(septem artes liberales, seven liberal arts)"를 교수하는 곳으로 명성을 얻게 되었다. 나아가 이들 성당학교의 교육은 기본 교과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었다. 일찍이 샤르트르(Chartres)의 주교 풀베르(Fulbert)는 저명한 문예학교(교양과목)를 세웠으나, 곧 이어 랑(Laon)은 신학으로, 오를레앙은 법학으로 유명해졌다. 특히 대도시 파리는 알프스 이북에서 가장 큰 학문의 중심지로 성장했다. 7자유교양학과는 이미 고대 로마인이 확립해놓은 교과였다. 일반적으로 카롤링시대부터 중세학교의 교과과정은 3 단계로 나누어진다. 초·중등교육에 해당하는 기초적인 라틴어의 읽기와 쓰기, 셈, 노래, 약간의 문법과 날짜계산법을 학습하는 단계, 그리고 7 교양학과가 전개된다. 이것은 다시 2 단계로 나뉘어 문법(grammatica), 수사학(rhetorica), 변증법(dialectica)의 3 과(trivium)와 산술(arithmetica), 기하(geometrica), 천문학(astronomica), 음악(musica)의 4 과(quadrivium)로 구성되어 있다. 물론 이 교과는 모두 라틴어로 교수되었고, 사실 라틴어의 올바르고 능숙한 구사능력을 완성하는데 중점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세의 성당학교와 대학에서는 모두 라틴어로 교수와 토론, 시험이 이루어 졌는데, 이러한 전통이 유럽대학에서는 부분적으로 18, 19세기까지 지속되었다.이러한 성당학교(schola)를 중심으로 그 곳에서 교수활동을 하는 교사들에 의해 사상적 논의도 활발해 졌다. 이런 이유에서 중세성기의 철학을 schola철학이라고 부르게 되었다.ⅳ.대학12세기말 13세기초에 교사와 학생의 공동체로서 형성. 오늘날 西歐語에서 공통적으로 대학을 의미하는 University의 어원은 universitas magistrorum et scholarium(교사와 학생의 공동체)의 universitas에서 유래하였다. 이 말 자체는 '공동체'라는 의미로서, 도시의 시민'공동체', 또는 동업조합의 '공동체'(즉 길드), 농촌의 촌락'공동체'에도 적용될 수 있으며, 실제로 사용되었다. 대학은 말하자면 그 구성원의 이익을 보호하고, 공통의 이익(교육)을 증진시키기 위해 결성된 길드였다. 이 길드의 주도세력에 따라 두 가지 타입의 길드, 즉 대학이 있었다. 이태리의 볼로냐 대학과 같이 학생이 주도하는 대학과 파리대학과 같이 교사(magister)가 주도하는 대학이 그것이다. 이러한 지식인들의 조합은 당대의 문서에 studium generale, studium privilegiatum, academia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지칭되었는데, 볼로냐에서 최초로 universitas magistrorum et scholarium이 형성되었다.
○徐居正의 作品觀1)작가와 작품徐居正이 남겨 놓은 諸 文集을 통해서 徐居正은 詩人이요, 隨筆家요, 批評家로서 손색이 없는 文豪라고 할 수 있겠다. 그의 東人詩話나 筆苑雜記는 이러한 면모를 가장 잘 나타내고 있다는데 큰 의의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그는 批評家로서 詩의 근원을 氣에 두었고, 詩를 짓는 이치에서는 用事의 태도를 指向하였다.) 李敬惠. 徐居正 硏究(筆苑雜記를 中心으로)서거정이 작품을 보는 기준은 그 작품 자체의 優劣에 있다기 보다 그 작품을 지은이가 누구인가에 있다고 보여진다. 그 작품의 작자가 어떤 신분의 사람인가에 따라서 작품의 순위를 매겼기 때문이다.음력 9월에 처음 얼음이 어니 임금이 「얼음나르는 노래」를 지었다. 이 시의 서문을 서거정이 썼다."天地의 文이 있고 聖人의 文이 있는데, 해 달 별들과 산 냇물 풀 나무는 天地의 文이다. 태평성대여야 나타나는 상서로운 별과, 이삭이 많이 달린 벼가 이 文 중에는 지극한 것이다. 『書經』에 있는 세상을 깨우치는 글과 堯舜 임금의 명령과 禮樂등 여러 文物制度는 다 성인의 문인데 이 중에는 임금님의 글이 문의 지극한 것이다.")徐居正, 『四佳文集』卷四·4「御製飛氷詩序」천지의 문은 천지가 창조되면서 생겨났다. 해와 달과 별들은 허공에 널려서 하늘의 문이 되고 그 아래 산과 물이 솟고 흘러서 땅의 문이 되었다. 여기에 다시 초목이 자랐다. 여기서 말하는 문은 글이라는 좁은 뜻은 아니다. 형상을 가진 모든 것, 무늬진 것의 뜻을 가지고 있다. 성인이 이 자연의 문채를 본받아서 획을 그리어 글자를 만드니 사람의 문이 점점 밝아졌다. 이와 같이 생긴 천지의 문과 성인의 문중에서 제일 지극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천지의 문 중에는 상서로운 별과 이삭이 많이 달린 벼(嘉禾)이고, 성인의 문 중에는 임금의 글이라는 주장을 폈다.御製의 글 다음에는 임금과 관계를 맺고 지어진 응제가 꼽힌다. 문 중에 제일인 임금의 글과 서로 관련을 맺고 지어진 글인 만큼 신분상 신하의 글이라해도 임금의 글 다음가는 위치를 가지고 있다. 應製時는 신하로서 임금과 시로써 서로 주고받기는 그렇게 자주있는 기회는 아니다. 그래서 벼슬한 신하로서의 글 중에서도 응제시는 높은 평가를 받았다.시는 뜻을 말하는 것이요, 뜻은 마음이 가는 바다, 그러므로 그 시를 읽으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대개 높은 벼슬을 하는 이의 시는 기상이 호탕하고 가멸차며, 벼슬하지 못한 선비의 시는 정신과 기상이 맑디맑고, 스님의 시는 정신은 메마르고 기상이 궁핍하다 옛날에 시를 잘 보는 이는 이처럼 나누어 보았다.이 글을 보면 "벼슬하는 이의 시, 벼슬하지 못한 선비의 시, 스님의 시의 순서로 시를 순위 정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스님의 시가 제일 빠지는 이유는 채소와 죽순의 기운이 그러하게 하였다고 여겼으며, 서거정이 문집의 서문을 써 준 계정 스님은 그 시가 일반 스님의 시와는 달리 높이 나부끼고 뛰어나서 멋대로 구김없이 탁티어 잡티가 없다고 보았기 때문에, 전해서 없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계정집』의 서문을 쓰는 이유가 바로 계정스님의 시는 보통 스님들의 시와 다른 점에 있음을 밝혔다.결국 임금의 시는 천지 자연의 문채를 닮은 것이기에 제일 훌륭함은 말할 것도 없고 다른 사람들의 시문과는 더불어 한자리에 할 수도 없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한문학에서 임금의 글은 어떤 시문집에도 실려 있지 않다. 임금의 시문은 따로 책을 매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정신은 개화기까지 계속 지켜졌다. 다음이 벼슬한 선비의 시인데, 그 중에서도 응제시라하여 임금과 주고받은 시거나 임금의 명에 의해 지어진 시문을 말했다. 이는 제일인 임금의 글과 겨루기를 한 것이기에 임금의 시문 다음으로 칠만한 것으로 보았다. 다음이 벼슬한 선비의 시로서, 풍성하고 화려하고 웅장한 기상이 있는 글이라고 보았다. 이런 관점은 작품보다 작가를 우선으로 보는 것이며, 그 작가의 인간됨, 그 중에서도 그의 기상을 특히 기준삼는 태도로 보아서 시문에 있어 기를 매우 중시한 점을 알 수 있다. 다음이 벼슬하지 못한 선비의 시요, 제일 보잘 것 없는 시가 스님의 시라고 평했다.2) 時의 品格서거정은 시의 품격을 풍성하고 화려하고 호방한 것을 제일로 생각했다. 서거정이 60세(1479)때 지은 「保閑堂集序」는 어느 누구에게 써 준 문집의 서문보다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四佳集序」에는 李穡이래 최고로 꼽힌 인물이 서거정이다. 그런 서거정이 이 서문을 쓰는 자체를 대단한 영광으로 여겼다. 왜냐하면 申叔舟는 道를 갖춘 완벽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또한 공과 업적이 뛰어나고 문벌도 좋았다. 이런 신숙주인 만큼 그의 문장은 훌륭한 것이 분명하다고 보았다."문장의 됨됨이는 豪建 富贍하여 뛰어나며 문장을 만드는 솜씨가 대단하다. 일부러 꾸미지 않아도 공교하고, 옛글과 같아 그 平易한 것은 嘉禾나 異麥과 같아서 지극한 맛이 저절로 있다. 그 정채가 찬란한 것은 瑞雲이나 景星과 같아서 저절로 그 빛이 드러나 봉사나 귀머거리도 보고 들을수 있다.")徐居正, 『四佳文集』卷四·32「保閑堂集序」가화ㆍ이맥은 『六經』에 맞수라는 뜻이며 서운ㆍ경성은 글 중에 이것 이상이 없다는 단언이다. 이는 모두 태평성대에 대한 구가이며, 세상에 道가 널리 펴있다는 찬송이니 당시의 時運이 이만큼 좋다는 두둔이다.서거정이 제일로 치는 응제시가 바로 富贍ㆍ華麗ㆍ雄壯해야 한다고 보는 것도 서거정이 어떤 시의 품격을 높이 보느냐는 사실의 증명이 될 것이다.서거정이 말하는 氣가 승해야 한다고 보는 것도 풍성하고 화려하고 웅장한 품격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서거정은 다른 이들이 시를 보는 기준과 사뭇 달랐던 사실을 다음 표에서 확인할 수 있다. 『東文選』과 『靑丘風雅』 『國朝時刪』에 뽑힌 申叔舟ㆍ崔恒ㆍ權弘ㆍ成侃ㆍ成石璘ㆍ柳方善등의 시를 표로 만들어 보았다.시 인東 文 選靑丘風雅國朝時刪기 타시기 타申 叔 舟514(19)010崔 恒717(24)010權 弘10(1)000成 侃84(13)3102成 石 璘72(9)311柳 方 善94(13)453이 표를 보면 서거정이 시를 뽑는 기준과 金宗直과 허균이 시를 고르는 안목이 서로 차이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역시 서거정이 문집의 서문에 극찬을 한 신숙주ㆍ최항 등의 時文이 『東文選』에는 많이 뽑혀 있으나 『국조시산』과『청구풍아』에는 그렇지 않다.앞의 사실 들을 종합해 보면, 서거정은 풍성하고, 화려하고, 웅장한 시의 품격을 높이 인정했던 것 같고, 그 작품보다, 그 시문을 지은이의 신분이 작품을 고르는데 큰 영향을 준 것이 사실이라는 생각이 든다.지금까지 서거정이 시를 평가하는 기준을 살펴보았다. 작품 자체를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를 기준으로 작품을 평가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임금의 시인 御製, 임금과 관련된 應製時가 좋은 시이고, 선비 중에서 벼슬한 이의 시를 높이 평가하였다. 시로서 좋지 않은 것은 벼슬하지 못한 선비의 시거나, 스님의 시라고 결론짓고 있다.시의 品格은 화려하고 호방하며 웅장하고 부티가 나는 시를 높이 평가하였다. 이런 품격을 서거정이 좋아하여 남의 이런 품격의 시를 높이 평가하고, 스스로도 이런 품격의 시를 짓기에 힘썼다. 應製時가 바로 이런 품격이며 서거정은 應製時에 있어서도 일가를 이루었음이 이와같은 그의 시적 이론과 실제의 조화에서도 나타난다고 생각한다.3)文學觀徐居正의 文學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道門一致思想을 바탕으로 用事論的 태도로 문필작업에 임했다는 사실이다. 용사란 말할 것도 없이 經書나 史書 또는 諸家의 詩文이 가지는 特徵的인 觀念이나 사실을 二·三의 어휘에 집약시켜 元觀念을 보조하는 觀念蘇生이나 觀念倍化에 援用하는 修辭法이다.) 李敬惠. 徐居正 硏究(筆苑雜記를 중심으로)서거정은 '詩의 用事는 마땅히 來處가 있어야 한다'고 하고 또 "옛 사람들이 用事함에 있어서 어떤 사실을 그대로 쓰기도 하고 그 사실의 뜻을 반대로 하여 쓰기도 한다.(古人用事 有直用事 有反其意而用之者)"라고 하면서 直用其事보다 反其意而用之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려운 것이라고 하였다. 徐居正은 그의 『竹堂記』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아마도 대란 그 성질이 곧으니, 곧으면 邪曲하지 않고, 그 속이 비었으나 비면 받아들일 수 있으며, 통하되 마디가 진 것은 體가 되고, 절이 있으되 잘 꺾어지는 것은 義가 되고, 여러 가지 아름다운 점을 갖춘 것은 仁이 여러 德을 포함한 것이요, 겨울에 알맞은 것은 智에 속한 것이요, 우뚝히 뻬어나고 굳세게 굽힐 줄 모르는 것은 勇의 기상이요, 사시를 통해서 가지와 잎새를 바꾸지 않는 것은 그 지조요, 눈과 서리를 무시하고 겨울을 나는 것은 굳건한 그 절개요, 봉황새가 아니면 깃들지 못하고, 군자가 아니면 벗할 수가 없으니 그 덕이 아니라면 되겠는가.……신후는 儒者이니 物을 헤아리고 이치를 窮理하는 학문이 반드시 이에서 얻은 바 있다고 본다. 그러나 나는 들으니 窮理의 學을 귀하게 보는 것은 힘써 실행하는 것을 중히 여기는 때문이다.
Ⅰ.공연을 가기 전에국민학교 6학년 때인가 담임 선생님의 제의로 예술의 전당에서 한국무용을 본적이 있었다. 지금 나의 기억으로는 그때 공연한 것이 죽은 사람의 넋을 위로한다는 살풀이였었다. 뭐가 뭔지도 모르는 어린 나이로서, 상당히 정적이고 무변화인 그 공연은 나에게 어떤 메시지를 안겨다 주기는커녕 상당히 지루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부턴가 나는 한국무용이나 전통무용이나 하면 으레 상당히 지루하고 재미없는 것으로 여겨 왔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나의 생각이 완전히 변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 수업을 들으면서 확실히 달라진 한가지는 조금이나마 우리 것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고, 또, 공연을 보면서 뭔가를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국립 국악원에서 한 중려라는 공연은 우선 이름부터 생소했다. 좀 늦은 이유로 모든 공연은 보지 못했지만 그 공연 하나하나 마다 열심히 노력한 흔적이 보였고 우리 것을 지키려는 마음이 숨어 있는 것 같았다. 춤사위는 아름다웠고 가야금, 민요는 듣기 나쁘지 않았다.여기에서는 무당춤을 중심으로 하여(제일 관심 있게 본 것) 남도민요, 산조, 상사별곡을 통해서 본 가사의 유래와 형식, 무고 에 관해서 알아보려고 한다.Ⅱ.공연ⅰ.무당춤1. 무속(巫俗)의 정의무속은 민간층에서 무를 중심으로 하는 전승적(傳承的)인 종교적(宗敎的) 현상(現像)으로서 민간신앙(民間信仰)의 한 형태(形態)라 말할 수 있다.그러나 무(巫)를 중심으로 하는 민간층의 전승적인 종교적 현상을 무속이라할 대, 어떤 것을 무로 본다는 무의 성격한계(性格限界)에 따라 무속의 성격이 결정된다. 중국은 고대로부터 무의 남녀 성별을 구분해서 무(巫)와 *으로 표기(表記)했고, 한국에서도 고려사와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 무*이라 표기되어 무의 남 여 성별을 구분하여 여무(女巫)를 무(巫), 남무(男巫)를 *이라는 뜻으로 사용하였으며, 이와 같은 용어가 근래에도 학계에서 사용되고 있다. 또 현재 국내에서 지역별로 무(巫)의 성격과 명칭상의 차이가 있으며, 이에 대한 하게의 견해차문제해 사회적으로 정착 제도화 되면서 무의 신비적인 영력이 점차 생기고 제의의 사제권만 남아 이것이 제도적으로 혈통을 따라 세습되고 있는 것이 세습무로 보이기 때문에 항신무계통의 정통무가 그 전승상의 역사적 변화로 성격상의 차이를 가죠오게 된 것이라 생각되고, 또 무의 종교적 제의의 개성적 표현인 정통한 굿의 기능에는 성격상의 차이가 없으므로 이 계통의 세습무도 일차적 무로 볼 수 있다.3) 무속의 정의무속은 앞에서 논의된 무의 정의와 무의 한계에 입각한 개념의 무를 중심으로한 민간층의 전승적인 종교적 현상이라 말할 수 있다.여기서 민간층의 전승적인 종교적 현상이라는 데에는 민간층에서 생활을 통해 전승되는 자연종교적 현상 곧 민간신앙의 한 형태라는 단서가 붙는다. 이와 같은 무속의 종교적 현상을 가리켜 종교의 입장에서 무교(巫敎)라 하기에는 많은 문제가 뒤따른다. 그렇다고 해서 무속이라 호칭한다 하여 종교적인 입장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그러나 무속이 넓은 의미로는 민간층에 의한 전승적 문화현상이라는 입장에서 일차적으로 민속권에 속하는 것이지만, 분석적 입장에서 본다면 무속이 민속권속에서도 무를 중심으로 한 민간층의 종교적 현상이므로 무속에 대한 종교적 비중을 두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4) 巫俗의 종교사적 성격현재 한민족의 다수 보편적 기층인 민간층의 종교는 민간신앙이다. 불교, 도교, 유교, 기독교 등의 외래종교가 들어와 장구한 역사와 더불어 조직적 체계 밑에서 끈질기게 포교활동을 계속하였지만 불교나 유교의 경우는 소수의 지식층에 머물었고, 기독교의 경우도 도시나 일부 지방에 국한된 실정이어서 외래종교는 언제나 한국의 외적 표층의 종교로 머물게 되었다 외래종교인 도교는 아예 민간신앙 속에 용해되어 그 잔영마저 찾아보기 힘든 형편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이와 같은 외적 표층의 종교 이면에는 내적 기층의 종교로 민간신앙이 존재하여 외래종교가 이속으로 파고 들어갈 겨를이 없었다는 것을 말해 주는 동시에 민간신앙이 한국의 종교적 기층을 이루어 왔다는 것을 실증해 주고 있. 이 단골형의 무는 제도화된 무라는 특징이 있는 반면에 영력이 없어 제의의 일방적인 사제의 기능을 갖고 있다 단골형 무의 성격적 특징을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① 혈통에 의한 사제권의 세습② 사제권에 의한 일정지역관할권의 전승③ 무속상으로 제도화된 점④ 항신체험이 없어 영력이 없으며, 그래서 구체적인 신관이 학립되어 있지 않다.⑤ 신을 향해 일방적인 가무로 정통 굿을 주관하는 사제(3) 심방형단골형과 같이 무의 사제권이 혈통을 따라 대대로 전승되는 세습무로서 무속상 제도화된 일면을 보이면서 영력을 중시하여 신에 대한 구체적(具體的)인 신관이 확립되어 있는 무다. 이와 같은 무는 제주도에 분포되어 있는 세습무인 심방이다. 심방형의 무는 단골형과 같이 사제권이 제도상으로 혈통을 따라 세습되어 인위적으로 성무(成巫)하나 단골형이 신에 대한 인식(認識)이 극히 희박한 데 반해서 심방형은 영력을 중시(重視)하며, 신관이 구체적으로 확립되어 있다는 점이 단골형과 다른 심방형의 차이이다.그리고 심방형이 무당형과 같이 영력을 중시하고 신에 대한 인식이 확고하나 심방형은 무당형과같이 신이 직접 몸에 항신하지 않고 제의(祭儀)에서 무점구(巫占具)를 통해 신의(神意)를 물어 전달한다. 이상과 같이 심방형이 단골형과 다른 점이 있으면서 또 무당형과도 다른 이 두가지 차이점을 그 특징으로 볼 수 있고, 이 양자의 특징을 종합해 보면 심방형은 단골형과 무당형의 중간형이란 귀결점(歸結點)에 도달하게 된다. 그러면서 심방형이 제의(祭儀)에서 무당형과같이 신(神)과 무(巫)가 일원화(一元化)하지 못하고 단골형과같은 이원화(二元化)된 위치에 있는 점으로 보아 단골형 쪽에 더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심방형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① 혈통에 의한 사제권(司祭權)의 세습, 제도화② 영력을 중시하며, 신의 인식이 ㅣ확고하여 구체화된 신관이 확립되어 있으나 자가의 신단은 없다.③ 직접적인 항신(降神), 교통(交通)이 없이 무점구(巫占具)를 통해서만 신의를 물어 점(占) 침④ 신을 향해 일방적인 가무(력을 가지고 신과 직접 교통(交通)되지만, 영력이 없는 세습무는 제의(祭儀)의 격식에 주력하였을 것이라 생각된다.세습무 중에도 제주도 심방의 경우는 영력을 중요시하므로 무악(巫樂)의 가락이 빠른 타악기 위주이며, 항신무 중에도 경기도 일원(一圓)에서는 피리, 젓대, 가 사용되는 예외적(例外的) 사실도 있다.무(巫)의 성별을 놓고 남부지역과 북부지역을 비교해 볼 때, 남부지역은 남무가 우세하고, 북부지역은 여무가 우세한 실정이다. 남부 세습무, 즉 제주도의 경우는 남무인 심방이 무의 주류가 되고, 호남, 영남지역이 경우도 무의 사제권(司祭權)이 남성 위주로 전승되면서 남성이 제의 진행 전체를 관할하고 거리풀이 과정에 사제(司祭)로 직접 등장한다. 그러나중부, 북부지역 항신무의 경우는 무의 수적(數的)인 면이나 제의 주도권에 있어서 여성이 절대적이다. 간혹 남무인 박수가 있으나 수적인 면에서 아주 극소한 편이다.이와 같은 남부지역과 북부지역에서 서로 상반되는 무(巫) 성별상의 차이문제도 무의 영력을 기반으로 야기된 문제로 보인다.남부지역과 중부, 북부지역 특히 남쪽과 북쪽의 서로 상반되는 항신무와 세습무의 차이점으로 집약되었고, 여기서부터 오는 남과 북의 상반되는 무속상의 모든 차이가 무의 영력을 기준으로 해서 달라지게 된것이라 생각된다.무속 속에서 한국의 전통적 뿌리를 찾는다거나 한국사상의 근원을 찾으려 했던 것이 지난날 선학들의 관심사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관심사는 방법론의 모색을 구상 내지 동경하면서 관심사에 머물러 온 느낌을 준다.무엇이 무속을 한국인에게 살아 있는 현재적 종교현상으로, 그리고 뿌리 깊은 전통적 기층문화현상으로 만들었느냐는 것은 정작 분석되지 않았다. 본 연구의 성과로 얻어진 원본 사고의 미분성에 기반을 둔 동일성에 의한 순환지속성의 결과를 가져와, 영원존재를 희구하는 민간인의 심성적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결과가 되어 무속이 민간인의 생활 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는 원인이 밝혀졌다. 또한 원본 사고의 미분성이 사고, 언어, 행동을 통해 창법과 음계, 꾸밈음 등이 차이를 보인다.경상도 민요는 장단이 비교적 빨라 흥겹고 경쾌하며 함경도와 강원도 민요는 탄식하거나 애원하는 듯한 가락이 많아 그들이 삶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알 수 있다. 경상도 지방의 밀양 아리랑, 강원도 아리랑, 그리고 함경도 지방의 애원성, 신고산 타령, 궁초댕기 등이 잘 알려진 동부민요이다.제주도 민요는 섬 지방이라는 지역적 특성 탓인지 육지보다 노동요가 많고 섬사람들의 음악성이 잘 나타나 있다. 널리 알려진 제주도 민요로는 이어도산아, 오돌뜨기, 소 모는 소리, 톱질소리, 방아 찧는 소리 등이 있다.판소리라는 말은 어떤 이야기를 소리로 엮어 벌이는 판이라는 뜻이다. 명창들은 전수 받은 소리를 그대로 하지 않고 스스로 고쳐나갔기 때문에 소리의 발성과 가락, 사설들이 조금씩 달라지게 되었다. 판소리의 유파로는 서편제, 동편제, 중고제가 있다. 동편제는 섬진강을 중심으로 위쪽인 남원, 운봉, 구례, 순창 등지의 중심으로 명창 송홍록의 법제를 공부한 소리를 말한다. 섬진강 아래쪽인 광주, 부성, 나주 등지를 중심으로 한 명창 박유전의 법제를 서편제라고 한다. 중고제는 경기도와 충청도 지방을 중심으로 명창 김성옥과 영계달이 자주 부르던 소리이다. 동편제는 대체로 씩씩하고 당당하며 서편제는 부드럽고 애절하다. 중고제는 동편제와 서편제의 중간 정도이다. 이런 유파들은 오늘날에는 지역적인 차이를 떠나 소리의 짜임새를 평가하는 근거로만 작용한다. 판소리는 원래 열두 마당이었으나 현재 불리는 판소리는 춘향과, 심청가, 홍보가, 수궁가, 적벽가등 다섯 마당이다. 여기서 마당이란 판소리 한 편을 뜻한다.잡가는 서울을 중심으로 전문 소리꾼들에 의해 널리 불리던 노래이다.조선 말엽 가곡, 가사, 시조, 판소리 등 성악이 번창하자 서민들 노래 중에서 노래에 뛰어난 재주를 가지고 있던 소리꾼들이 오래전부터 전해오던 서울지방의 노래를 발전시켜 만든 노래가 잡가인 것이다. 잡가는 사설이 길어 긴잡가라고도 하고 앉아서 부른다 해서 좌창이라고 한다.서서 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