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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케팅] 대한민국 신세대 소비문화의 변화상 평가C아쉬워요
    Ⅰ서론사회가 고도로 발전하고 복잡화해지면서 소비의 형태들도 변화하고 있다. 특히 두드러진 사회현상 중의 하나는 이미 현 시대 소비주체로 급부상하고 있는 신세대들의 소비 행위이다. 이들은 상품의 현실적인 필요성에 따른 구매보다는 이미지의 선호에 따라 행동하며 유행이라는 나름대로의 기준을 더 중시한다 .이런 심리는 불가피하게 자신의 경제능력과는 상관없는 비합리적인 소비로 이어진다.어느 때부터인가 신세대는 소비 주체의 중심으로 부상했다. 신세대를 겨냥한 상품들이 쏟아져 나왔고, 그 상품들이 히트를 치기 시작했다. 신세대 소비자들은 기성세대와는 달리 충동구매가 강하고, 마음에 드는 상품은 꼭 사고야마는 집단 심리를 지닌 것이 특징이다. 이들은 물건의 용도 성보다는 상품의 이미지를 소비하는 세대로 볼 수 있다. 때문에 그 또래에서 인기 있는 브랜드는 가격의 고하를 막론하고 신세대 소비자 집단에게 점령당하고야 만다.Ⅱ본론1. 신세대 출현 배경신세대가 나타나게 된 역사적 배경신세대가 나타나게 된 배경을 보기에 앞서, 먼저 해방 이후 여러 세대들의 특징을 개괄 적을 파악해 보자.우선, 50 60년대의 전쟁세대들을 보자. 그들은 6.25라는 전쟁 속에서 극도의 궁핍한 상태를 경험했고, 또한 그러한 전쟁의 패해 의식 속에서 그들의 모든 가치들은 선과 악으로 구분되어 흑백 논리 속에 자리잡고 있던 세대이다. 이후 이승만 집권시기에는 정치적 부패가 극에 달했고 이후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의 '잘 살아 보세'라는 구호 한마디가 대국민적 설득력을 가질 수 있던 세대이다.다음에 70 80년대의 박정희, 전두환에 이르는 군사독재시절의 세대들을 보자. 이들은 소위 '한강의 기적'이라 할 만치 눈부신 경제 발전을 이룩했던 시기였으나 이와 아울러 산업사회의 계층 갈등이 뚜렷해지고 확대되던 시기였다. 이념적으로는 민주주의 에 대한 갈망이 사회 전반에 팽배해졌고, 후기로 갈수록 더욱 급진적인 저항성이 잉태되었다. 문화적 측면에서 보면, 기본적인 6 문화 수단 '전화, 냉장고, TV등'이 거의 , 문화적으로 획일화된 체제 아래에서 먹고살아야 했다, 모던 것은 생존의 욕구에 지배받았고 문화도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이 시기의 세대는 오로지 먹고사는 문제의 1차적 해결을 위해 지겹고 힘겨운 생활에 '찌들렸던 세대'인 것이다.7-80년대의 한국 사회는 먹고사는 문제에서 눈부신 희망을 발견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빈부 격차와 다수 국민의 정치적 무권리의 대가로서 이루어졌다, 여전한 생존권 위협과 정치적 탄압은 광범위한 저항을 불러 일으켰고 서서히 불붙기 시작한 반정부 투쟁은 정치의 세월을 태동시켰다. 생존의 욕구는 정치의 욕구로 정치적 문화의 욕구로 표출되었고, 이것이 당시의 사람들로 하여금 '정치의 세대'로 불릴 수 있도록 만들었다.90년대의 한국 사회는 전 세계적읜 그리고 국내적인 '정치 희망의 소실'과 함께 시작되었다, 급격한 사회변화의 꿈 대신 체제 내적인 점진적 변화와 안정이 분명한 가치관과 삶의 지향성 대신 무정형의 불만과 욕망이 자리를 잡아 나갔다. 계승해야 할 것들을 찾지 못하는 과거와 불투명한 미래 사이에서 정치의 욕구는 무한대의 욕망으로 대체되고 있다. 이 세대는 과거와 불투명한 미래 사이에서 정치의 욕구는 무한대의 욕망으로 대체되고 있다. 이 세대는 과거와 단절이 강조하되 뚜렷한 미래의 지향성은 불분명하다는 의미에서 '불안한 신세대'이다.신세대가 나타나게 된 사회적 배경90년대 현재의 신세대들은 대략 20대로 잡아 본다면 대부분 70년대 생이 된다. 이들은 고도 성장기의 산업사회에서 국가의 가족 계획에 따른 핵가족화의 영향하에 태어나서 초등학교 때부터 컬러TV를 보며 자라온 세대이다. 그리고 중 고등학교 시절에는 입시 교육이라는 획일화된 교육을 통해 개성을 박탈당한 세대이자. 청소년을 겨냥한 대중 문화의 발달로 인하여 문화 생활이 확대 된 세대이다.또 한편으로는 광주 항쟁, 87년 6월 투쟁, 노동자 투쟁 등 급변하는 정치적 상황에서 자라온 세대이기도 하다. 이들은 90년대 초반, 그러니까 사회주의의 몰락 등 여러 정치적 격변 속에서 다원주다.다시 말해서 복장자율화에 의해 형성된 개성의 세대를 둘러싸고 있던 사지선다형 제도교육의 벽은 이들에게 진정한 개성을 획득 할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하지 않았으며, 이것은 이들에게 역으로 '반 권위적 개성'에 대한 강렬한 지향'의 형태는 자못 냉소적이다. 즉 신세대들은 기성의 지배 체제를 반발하지만, 신세대 자신들 역시 그러한 지배 체제 내에 편입되어 있는 분절된 한 개인일 뿐 이러한 왜곡된 관계들을 부정할 힘이 없다는 것이다. 결국 신세대들의 저항의식은 기성세대에 대한 싸늘한 무관심과 아울러 개인적인 세계에 대한 몰입으로 드러난다. 이들에게는 "결코 시간이 멈추어질 수는 없고 "되는 것은 단지 하나뿐", 그것은 "바로 지금이 그대에게 유일한 순간이며 바로 여기가 단지 그대에게 유일한 장소이다."라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노래, 인 것이다.그외에 한국의 신세대에게 나타나는 특징들을 본다면 대표적인 특징으로 신세대의 자기중심적 경향을 들 수 있다. 자기중심적 경향은 한국처럼 전통사회의 규범이 사생활의 폭을 축소하던 지금까지의 관점에서 보면 이기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이러한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은 신세대가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않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러한 사고방식은 개인의 독창성과 창의성을 개발하는 데 중요한 몫을 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친 자기중심적인 태도는 아직도 강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유교적인 사회규범의 측면에서 볼 때 적지 않은 저항이 예상된다.신세대의 가장 큰 특징은 전자매체에 의해 양육된 최초의 세대라는 것이다. 전자매체러는 TV도 있고 PC도 있다. 이같이 전자매체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자라 앞으로 올 새로운 문명에 가장 신속하게 적응할 세대가 될 것이다.신세대는 문화적인 취향에 있어 잡식성이다. 이 같은 특성이 이들을 신세대라 부르게 된 이유가 될 것이다. 이들에는 오페라나 서양의 고전음악을 좋아하는 부류가 있는가 하면 또한 '서편제'나 '아! 고구려 전'의 인기에서도 보여지듯이 한국의 전통문화에 대한 호기심화에 가속도를 붙게 한 것이다. 신세대는 남들이 가진 것은 갖기 싫어하는 개성파이다, 이러한 이들의 특성에 맞추기 위해서는 이들의 감성을 연구해야 하고 이에 따라 새로운 제품이 만들어 져야한다. 이 같은 사실은 가전제품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가전제품의 경우 색상과 모양이 획일적이면 젊은이들에게 배척된다. 그래서 이제는 개전제품이라는 말이 나오게 되었다. 신세대의 감성은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차종의 색깔에서도 잘 드러난다. 현대의 액센트, 기아의 아벨라, 스포티지 등이 신세대가 선호하는 차종인데 검은색이 아예 없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권위의식이 무너지고 여성 및 젊은 운전자가 즐어나면서 일어나게 된 변화이다. 액센트의 경우 적회색, 연보라, 연녹색, 진보라가, 그리고 아벨라의 경우는 남청색, 분홍색, 녹색 등의 색이 주조를 이루는 것은 이 같은 현상을 잘 보여주는 증거이다.신세대는 모방성과 개성이 모두 강한 세대이다. 이는 이들이 새로운 문화에 대한 호기심과 흡수력이 강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동시에 잠재된 창의력이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의 신세대는 이런 측면에서 외국의 유행이나 노래를 모방하겠지만 결국에는 자신들만의 청소년 문화를 이룰 가능성이 크다.3. 신세대의 소비형태거리에 흘러 넘치는 유행은 자기 표현을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옷에만 국한하지는 않는다. 중고생에서부터 대학생에 이르기까지 학생이라면 열 가운데 아홉은 배낭 같은 가방을 메고 다닌다. 그 중에서도 이스트팩이나 잔스포츠 같은 미국산 브랜드가 절반이 넘는다. 남자들도 많은 수가 대부분 머리를 여자들처럼 긴 것을 볼 수 있다.무선 호출기는 초등학생들까지 사용하는 생활 필수품으로 정착했고 핸드폰 사용자도 얼마전 천만 명을 돌파했다. 시간이 곧 돈인 비즈니스맨들의 업무용 기기가 이제는 학생들도 손쉽게 사서 쓰는 기호품이나 패션 상품으로 자리를 잡았다. 서울 신촌에서 만난 한 대학생은 "친구여섯 명 가운데 다섯이 핸드폰을 가지고 있다. 특별히 필요하지는 않지만 값도 싸고 편해서 들고 다닌다."라고 말했다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유행에 충실 할 수밖에 없다.유행이 획일화하는 또 다른 이유는 하나의 지배적인 경향에서 벗어나는 것의 한국 사회가 잘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프랑스 파리에서 10년동안 유학하고 귀국한 모대 사회학과 현 아무개 교수는 옷과 헤어스타일 때문에 고통스럽고도 오랜 적응 기간을 거쳐야했다. 화려한 꽃무늬가 있는 와이셔츠, 넥타이와 짧은 머리에 무스를 바르기를 좋아했던 그는 귀국 후 교수 사회에서 '또라이' 취급을 받았다. 겉으로야 물론 멋있다고 한마디씩 했지만, 그의 옷, 헤어 스타일과 관련해 좋지 못한 이야기들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그는 수군거리는 뒷이야기를 감당하지 못해 화려한 셔츠를 흰색으로 바꾸었고 이발관에 가서도 '뒷머리를 이부로 깎느냐, 살이 하얗게 드러나도록 깎느냐'를 두고 한참 고민해야 했다고 털어 놓았다. "일상 생활에서 집단 문화가 너무 강하다. 우리 사회는 튀는 모습을 용납하지 않아 지금도 개성 죽이기를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자행하고 있다"라고 그는 말했다.사회 심리는 튀는 것뿐만 아니라, 유행에 처지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이화여대 앞 준오미용실에서 헤어 디자이너로 7년째 일하고 있는 은현숙씨는 대부분의 손님이 '유행을 따르지 않으면 뒤진다, 촌스럽다'라는 강박 관념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손님들은 탤런트 누구처럽 해달라는 말을 자주 한다 특이한 스타일을 제안했을 때 받아들이는 사람이 드물고 개성보다는 일반 유행에 치우치는 경향이 많아 헤어 디자이너로서 별 재미가 없다"고 말했다.대중 매체, 특히 90년대 들어 텔레비전이 큰 힘을 발휘하면서 브라운관 스타들이 어느 때보다 강력한 ' 패션 리더' 로 떠올랐다. 대중은 옷과 액세서리, 안경 등으로 자기를 표현하는데 별로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 아무개처럼'만 하면 촌스러움은 일단 면하기 때문이다. 백화점 매장에서 손님을 맞을 때면 ' 이것은 누가 입었던 옷이다' 라는 말이 가장 잘 먹힌다. 손님들 가운데도 아예 취향이나 체형에 관계없이 최진실처럼, 이승연처럼, 김희선처럼, 이다.
    경영/경제| 2004.09.23| 6페이지| 1,000원| 조회(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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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경제] 북한 경제의 전망 평가A+최고예요
    북한경제의 현황과 전망한은조사자료 2000-3 2000. 8한국은행 조사국{이 자료는 일본 외무성의 위탁연구 보고서인 김정일체제 하의 북한경제, 현황과 전망 (2000. 1월)을 요약·정리한 것임북한경제의 현황과 전망----------------------* 조사국 북한경제팀(Tel: 759-4414, Email: nkstdteam@bok.or.kr)머 리 말1. 본 보고서는 1999년 일본 외무성으로부터 위탁받은『김정일 체제하의 북한경제의 현황과 전망』의 연구결과를 종합한 것임2. 북한은 김일성 주석의 사망 이후 경제가 한층 악화되어 식량위기와 같은 극도로 어려운 경제상황이 계속되었으 며, 그 동안 권력을 계승하고 군을 중심으로 체제를 굳혀 나간 김정일 총비서는 경제재건에 본격적으로 착수한 것으로 보임앞으로 북한의 경제재건이 어떠한 방식으로 진행될 것인가 하는 점이 김정일 체제의 행방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이는데, 북한경제의 실태와 경제정책의 구체적인 내용은 자료부족으로 인해 명확하게 알려지지 않고 있 음본 연구서는 김정일 체제하의 북한경제의 현황과 향후 전망에 대하여 가능한 객관적으로 분석하였으며, 북한경제 의 기본노선에 관하여 간략하게 언급한 후 최근 북한경제의 전반적인 상황과 북한의 대응 및 향후 전망을 파악하 고 농업, 식량문제, 공업조직의 재편문제 및 대외경제 문제 등 개별분야에 대한 현황을 분석하고 전망함3. 본 연구서는 아래의 각 위원이 연구회를 조직하여 연구를 담당소목 휘부 : 일본 무역진흥회 아시아 경제연구소 지역연구 제 1부 연구주임영목 전행 : 재단법인 라디오 프레스 이사전중 희여언 : 일조 무역결제협의회 사무국장중천 아언 : 일본 무역진흥회 아시아 경제연구소 지역연구 제 1부 연구원4. 이 보고서의 의견은 모두 개인의 견해임2000년 1월 편집자 소목 휘부차 례요약ⅰ서장 : 기본 경제로선과 문제점(소목 휘부) 11. 김정일 정권의 기본 경제로선 22. 경제난에 대한 구체적인 대응책 3제 1장 : 당면 경제정책과 경제실적(영목 전제{ ㅇ북한은 1994년 이후「농업제일주의, 경공업제일주의, 무역제일주의 방침」을 표방하였으나 1998년 1월 1일 발 표된 3대 신문 공동사설에서 세 가지 제일주의 대신 농업과 동시에 중공업(석탄, 전력, 철도운수, 금속공 업)을 우선하는 새로운 방침을 채택― 이러한 방침전환은 경공업과 무역면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달성하여 다음 단계로 중공업의 부흥도 달성하여야 한다는 건설적인 면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전력, 에너지 사정이 경제를 어렵게 할 정도로 악화되어 석탄· 전력공업의 회복을 당면 과제로 인식한 때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음ㅇ1999년 3대 신문(노동신문, 조선인민군, 청년전위)의 신년 공동사설에서도 1998년의 노선을 답습하여 농업은 강성대국 건설을 위한 천하의 대본 이라고 주장하는 동시에 전력과 석탄을 인민경제의 생명선 이라고 강조― 공동사설은 1999년 경제목표를 인민경제 전 부문에서 생산을 정상화하고 국가경제를 자기궤도 위에 확고하게 올려놓아 인민생활을 안정, 정상화시키는데 있다 로 설정ㅇ공동사설은 또 농업에 대하여 금년에는 농업에 전국가적인 힘을 주력하여 먹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된다 고 주장하고 감자생산에서 혁명을 일으켜 적지적작·적기적작의 원칙에 따라 농업구조를 개선하고, 이모작을 대대적으로 시행하여 종자혁명을 강력 하고 지속적으로 추진하여야 할 것이며, 강원도를 시작으로 토지정리작업을 전대중적 운동으로 넓혀나가야 할 것 을 주장― 이러한 과제 중 이모작은 1998년의 공동사설에서 언급되었으나 감자혁명은 1998년의 공동사설에서는 언급되지 않고 처음으로 언급된 것이 특징― 1999년의 공동사설에서는 1998년과 같이 전력과 석탄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는데 이미 건설중에 있는 대규모 수 력발전소의 조업을 최대한 서두르고 자강도의 모범을 배워 중·소형 발전소 건설을 지속적으로 강력하게 추진*하는 동시에 석탄공업부문에서는 굴진과 갱건설을 우선하고 탄상을 더욱 많이 정비하여 석탄생산을 증대시켜야 할 것 을 주장* 1998년의 사설은 중·소형발전소, 기타7,1606,762(-5.6)4,858(-28.2)4,532(-6.7)3,748(-17.3)GDP20,83320,93415,42212,80210,587GDP 성장률(%)0.55-26.3-17.0-17.3인구(100만명)20.7321.0621.3821.7022.021인당 GDP(달러)1,005994721590481주: ( )내는 전년대비 증감율(%)3. 김정일의 현지지도ㅇ김정일 총비서는 1998년부터 본격적인 현지지도를 실시― 과거에는 시찰대상 기업·경제단위만 중점 지도하였으나 1999년 1월 16일부터 21일에 걸쳐 이루어진 자강도 현지지도 이후부터는 그 지방전체의 경제상황을 파악하여 구체적인 지시를 하는 등 김일성식의 현지시찰 활동을 수행ㅇ현지지도 내용도 단순한 통과의례에 그치지 않고 상당히 현실적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음― 특히 1 현지지도의 성과를 확인하기 위한 재방문(1998년 6월, 희천 공작기계 종합공장을 시찰하고 그 해 10월 재방문) 2 현지간부와 협의회 개최(1999년 3월, 함경남·북도 시찰시 기업간부를 소집하여 금속공업 발전에 관한 협의회를 개최) 3 현지지도시 새로운 방침의 제시(자강도 시찰중 중소형 발전소 건설을 전대 중적인 운동으로 전개할 것을 지시하였으며 양강도 대홍단군 시찰에서 감자재배 혁명을 지시)하는 등 김정 일 총비서 자신이 직접 앞장서서 경제재건에 나서고 있다는 사실은 북한의 정책결정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 고 있음* 1999년부터 대대적으로 시작된 강원도의 토지정비 사업은 김정일 총비서가 1998년 5월 전선시찰중 강원도 창도군 대백리에서 논밭이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것을 보고 강원도의 토지를 정비하라는 지시를 내리자 현장에서 관계부문 간부협의회가 즉석에서 개최되어 결정된 사업으로 알려지고 있음― 김정일 총비서의 지시는 사회주의 건설의 백과사전으로 기능하고 있으나, 최고지도자 지시의 절대화가 초래할 피해 가능성에도 유의할 필요가 있음현지지도 주요내용(1998년중){날짜현지지도 내용1·16∼21일자강도의 인민경제 각 부문화할 것을 요구 하였으나, 경공업에 대하여는 경공업혁명의 불꽃을 더욱 높혀 인민소비품 생산면에서 새로운 고양을 일으켜 야 할 것으로 지적하는데 그침― 농업에 대하여는 농민의 의사를 집대성하여 정당성이 확증된 주체농법을 철저하게 관철할 것을 주장하는 동시에 종자혁명과 감자 농업혁명, 이모작을 추진하고, 가축을 대량 사육할 것을 강조― 또한 양어사업을 전대중적으로 전개하고, 토지정리와 산림조성등 국토관리사업도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을 요 구― 1999년 사설에서 포함되지 않았던 가축증가 와 양어전개 가 새롭게 등장하여 북한전역에 대대적으로 선전 되었으나 의미는 크지 않은 것으로 보임― 1997년부터 1999년까지 3년간 연속하여 공동사설에서 나타난 식량문제 해결은 2000년 사설에서 사라졌는데 이는 식량문제가 다소 완화되고 있음을 시사ㅇ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농업사정은 그리 밝지 않은 것으로 전망― 북한의 농업부진은 구조적인 문제로, 일기불순과 같은 자연적인 요인에도 불구하고 일정한 수준에 이르기까 지는 상당히 오랜 시일이 소요될 것으로 보임― 외화부족에 따른 에너지 부족현상은 산업활동뿐만 아니라 인민생활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 북한이 외부로부터 기술·자본을 도입하는데에는 폐쇄정책과 사회간접자본의 미정비가 커다란 장애요인으로 대두되고 있는데, 북한이 핵미사일을 둘러싸고 수년동안 폐쇄정책을 취함에 따라 외부의 투자의욕이 크게 감퇴되고 있어 북한이 지속적으로 개방노력을 기울이지 않을 경우 북한경제가 침체상태에서 벗어나기는 어 려울 것으로 전망제 2장 농업·식량문제1. 자연재해 현황ㅇ북한의 언론기관은 1994년의 우박피해, 1995∼1996년의 대홍수, 1997년의 가뭄, 1998년의 이상기온으로 농업이 큰 피해를 입은 것으로 보도― 북한당국은 최근의 농업부진과 식량난은 이러한 엄청난 자연재해 때문인 것으로 주장ㅇ북한은 1999년에도 자연재해를 입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조선중앙통신은 북한 대부분의 지역이 연속적인 가뭄으로 벼와 옥수수등 곡물생산에 엄통계국은 1999년 8월 27일, 1995∼1998년중 102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였으며 이 중 아사자는 27 만명에 불과하다고 추정― 북한의 수해대책위원장 대리가 1,000명 당 사망률이 1995년의 6.8명에서 1998년에는 9.3명으로 늘어났다고 언급한 점에 비추어 볼 때 1995년 이후 4년간 사망자수가 평년보다 최대 22만명 증가한 것으로 추정 가능ㅇUNICEF(UN아동기금), WFP(세계식량계획), FAO(UN식량농업기구)는 1998년 9월 북한당국의 협력을 얻어 북 한아동의 영양상태에 관하여 최초로 과학적인 조사를 실시― 생후 6개월∼7세까지의 아동 1,76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결과, 심각한 영양불량 아동이 16%로 나타나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높은 비율로 나타났음― 특히 그중 만성 영양불량(발육불량)아동이 62%에 달하여 장기간에 걸친 식량부족의 영향이 현저하게 나타나 고 있으며, 심각한 영양불량 상태에 빠진 아동의 비율이 가장 높은 계층은 생후 6개월에서 3세까지의 아동 으로서 그 중 1∼2세 아동이 30%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가. 배급현황ㅇ북한 양정성에 의하면 1998년중 협동농장원 633만명은 수확 후 1인당 평균 곡물 146㎏을 배급받은 것으로 알 려짐(하루 평균 400그램 상당)― 농민들은 자류지의 수확과 야생식료의 조달이 가능하여 별다른 문제가 없으나 배급소에만 의존하는 비농민들 의 경우 식량문제가 심각한 실정북한의 곡물배급 표준량{구분배급량아동0 세100g1∼ 2 세200g3∼ 6 세300g7∼12 세400g13∼15 세500g어른학생 및 일반노동자700g중노동 종사자800g병사800g노인300g자료:한국 통일부ㅇ1995년부터는 이러한 배급 시스템마저 완전히 기능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특히 1996, 1997년중에는 사실상 거의 모든 배급이 중단상태에 빠진 지방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짐― UN에 제공된 북한의 자료에 의하면 1998년 4월부터 5개월간 배급소의 식량배급은 완전히 중단― 1999년중사실임
    경영/경제| 2000.10.17| 66페이지| 2,000원| 조회(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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