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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사] 수원성
    화 성 (HWASONG FORTRESS )화성은 사적 제3호로서 조선조 제22대 정조대왕 재위시 1794년 1월에 착공하여 1796년 9월에 완공되었으며, 축성시 48개 시설물이 있었으나 시가지 조성, 전란 등으로 인하여 일부 소멸되고 41개 시설물만이 현존하고 있다. 또한 화성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 신청되어 1997년 12월 유네스코 총회시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었다.머리말지금으로부터 600년쯤 전인 1394년(태조3년), 노쇠한 고려(高麗)왕조를 뒤엎고 새로이 조선(朝鮮)왕조를 개창한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는 새 왕조의 도읍으로 한양(漢陽)을 선정하여 이도(移都)하고 도성(都城)과 왕궁을 마련하는 대역사(大役事)를 일으켰다. 그로부터 꼭 400년 후인 1794년(정조 18년), 갖은 파란 끝에 왕위에 올라 왕권의 강화를 꾀하였던 조선 22대 임금 정조(正祖)는 한양 남쪽 100리에 있는 수원에 화성(華城:`수원성'은 일제 시대 이후 붙여진 별명이며 원래의 정식 명칭은 `화성'이다.)이라는 성곽을 축조하여 그에 둘러싸인 신도시를 건설하는 대역사를 일으키고 있었다. 정조(正祖)시대에 건설된 화성(華城) 즉, 수원성은 우리 민족 문화의 위대한 성과물 중 하나이다. 전장 6km에 달하는 성곽과 많은 부속건물, 도시기반시설과 생산기반시설들의 총화로 이루어진 자족적 계획도시 수원의 건설은 조선 역사상 서울 건설 이후 가장 대규모의 도시 건설 사업이었다.수원성은 전체 길이 약 5.4킬로미터의 돌로 쌓은 성벽과 이 성벽에 부수된 여러 가지 형태의 방어시설, 4개의 출입문으로 구성되어 있고 성벽으로 둘러 쌓인 중앙에 행궁이 자리 잡고 있다. 수원성이 위치한 지세는 서쪽에 팔달산이 있고 그 반대쪽인 동편에도 나지막한 구릉이 있으며, 이 동서 경사지 사이를 북에서 남으로 개천이 흐르고 그 주위에 약간의 평지가 펼쳐진 곳이다. 이 동서의 구릉 사이 평지에 수원부의 시가지가 전개되고 있으며 시가지를 둘러싸면서 성벽이 팔달산의 정상으로부터 반대쪽 구릉의 정상으로 이어지 준비하면서 느낀 가장 큰 보람이었다. 수원성이란 이름은 일제 시대때 부쳐진 이름으로 정식 명칭은 화성(華城)이다. 관광 안내소에서 수원성이라 말하자 화성이라고 고쳐 답해주시던 분들에서 얼마나 수원성이 아닌 화성이란 이름에 얼마만큼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게 해 주었다. 이외에도 느낀 것이 우리나라에도 이러한 문화 유산이 있구나 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TV나 책에서 보던 서양의 고대성들을 보며 감탄만 할 게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먼저 우리가 우리 가까이 있는 화성과 같은 문화 유산을 보고 나서 외국의 그것들을 보는 것이 정당한 순서가 아닌가한다. 우리 바로 옆에 이만큼 자랑스런 역사의 유산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먼 곳만 바라보고 있었다는 점과 우리 것에 너무 무지한 점을 부끄럽게 여기며 반성해 보는 기회가 되었다.수원시민들이 무척 부러워졌다. 이전에 진주성을 다녀 온 적이 있는데, 그곳의 경관과 그러한 문화 유산을 가진 진주사람들을 부러워 한 적도 있다. 그것보다 더 큰 규모와 내용을 가진 화성을 가진 수원 사람들을 보며 느끼는 감정은 어떠하랴.또한 수원성은 아름답고 부분부분에 섬세한 고민과 배려가 돋보이는 성이다. 설계할 때는 공학적, 군사적 측면만이 아니라 미학적 측면까지도 고려했다는 생각이 든다.역사적 관점을 떠나 오늘날의 평범한 시각으로 보아도 수원성은 낭만과 아름다움이 있는 길이다. 역사가 아니라 동화 속의 세상과 같은 아름다움과 고전적인 분위기에 젖어 보고 싶다면 수원성 만한 곳도 없을 것 같다. 성벽을 따라 주변 조경이나 시설이 나무랄 데 없이 잘 되어 있었다. 깃발을 꽂고, 군데군데 군관 복장을 한 안내원(안내원인지 경비원인지 그냥 계신 분인지는 잘 모르겠는데)도 계시고, 기왕이면 옛날의 무기와 무장한 병사들의 인형들도 죽 세워 놓으면 금상첨화겠다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또한 관광객들은 성을 따라 도는데 안내소는 관광 길과 동떨어진 곳에 있다. 이는 사용자의 입장에서 다시 한 번 신중히 생각해야 할 문제다. 하여간 수원시민이 대단포루와 같다. 화포를 감추어 두고 위아래에서 한꺼번에 공격할 수 있도록 한 성곽 시설물 중에서 가장 중무장된 시설이다. 지대위에는 벽돌로 3량 집을 지었고 원형기둥 3개는 성 밖으로 물리었다. 외면의 아래 너비 7.27m 위에 줄어든 너비 6.06m이며, 좌우 아래 너비는 8.82m, 높이는 들보의 높이와 비슷하고 두께는 처마 두께와 비슷하다. 외면 지대위에는 대포 혈석 2개를 뚫었고, 좌우면에는 3개의 혈석을 놓았다. 위에는 벽돌로 쌓았고 상면은 판자를 깔았으며 총안 15개를 뚫어 놓았다. 외면은 총안 위 전안 4개를 뚫었고, 내면은 성곽에 의지하여 전부 돌로 쌓았으면 그 위에 판문을 설치하였다. 성벽 아랫부분까지 구조물이 설치되었으나 성안에서는 외관상 단층누각만 있는 것으로 보인다. 포루에는 서포루, 북포루, 동북포루, 동1포루, 동2포루가 있다.3. 서남암문서남암문(西南暗門)은 화성의 서남쪽 서남각루 입구에 위치한 암문으로서 남쪽 436m에 위치에 있다. 암문이란 성의 샛문으로 성곽의 굴곡된 부분이나 으슥하고 후미진 곳, 수목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축조하여 적이 모르게 양식이나 무기 등의 물자를 반입하거나, 사람들이 은밀히 내왕 할 수 있게 만든 비밀 통로이다. 이곳은 다른 4개 암문과는 달리 암문 위에 건물을 지었는데, 이를 포사라고 한다. 문의 크기는 겨우 말 한 필이 드나들 수 있을 정도로 작으며 문 위는 보통 성곽처럼 되어 있다. 이 서남암문은 170m 길이의 용도가 시작되는 곳이며, 또한 밖으로는 화양루(서남각루)에 이어지는 통로(용도)가 나있어 암문중에는 제일 중요한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문은 전으로 홍예를 만들어 쌓았는데 규모는 안쪽 너비 2.12m, 높이 5.58m 이고, 바깥쪽 너비는 1.81m, 높이 1.82m 이다.4. 서남각루 (화양루)각루는 성곽의 돌출된 요지 중 비교적 높은 위치에 누각을 세워서 성곽주변을 감시하거나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설치한 시설물이다. 서남각루는 일명 화양루(華陽樓)라고도 하는데 서장대와) 혹은 화성장대라고 부른다. 성안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했으므로 성 바깥의 모습이나 성 안의 모습이 모두 한 눈에 들어온다. 1794년(정조 18년) 화성 축조당시에 세워진 2층의 누각과 대 뒤에 팔각 노대를 쌓았고, 그 옆에 3칸의 군무소를 지었으나 서장대 복원시에는 군무소(후당)을 복원하지 못하였다. 서장대에 오르면 사방 100여리가 한눈에 보이며 노대는 팔각으로 되어 각 방위를 알려주며, 전쟁시에는 장대를 방어하기 위하여 쇠뇌를 발사하도록 되어있었고, 군무소는 지휘본부의 사무를 처리 하던 곳이다.화성장대는 크지 않게 지었으나 이 층으로 지어서 위엄을 한껏 뽐내려 하였다. 여덟 모 난 긴 돌로 주춧돌을 삼아서 그 위엄에 걸맞도록 했다. 서장대를 짓기 위해1794년 8월 11일부터 한달 간 터를 다졌고, 9월 16일에 상량하였다.총리대신 채제공은 상량문에서 '준비를 철저히 한다면 누가 감히 우리를 업신여기겠는가?', '오직 화성의 생김새는 진실로 우리나라의 관문이자 요새이다. 이 중책을 맡을 사람은 장수이다.'라고 해서 장수의 역할과 화성의 중요성을 담았다. 그리고 '편안할 때에도 위태로움을 잊지 않는 것이 귀중한 것이다.'라고 적어서, 화성의 건설과 화성장대의 의미에 대해 지녔던 총책임자의 견해를 엿볼 수 있다.8. 서노대바로 아래에 있는 행궁을 보살펴야 하고 성 전체의 동정을 낱낱이 알아야 하며, 봉돈에서 받아들인 국경의 정보를 한눈에 볼 수 있어야 하는 곳이 서장대이다. 또한 서장대에서 내보내는 신호는 온 성의 군사들에게 전달되어야 한다. 이런 지리적인 이점을 감안하여 장대를 짓고 노대(서노대)를 만들었다. 서노대는 중국의 '무비지'에서 그 제도를 본떴지만 약간 달리 만들었다. 무비지에 따르면 노대는 위가 좁고 아래는 넓어야 하며 대 위에 집을 짓고 노수가 그 안에 들어가 쇠뇌를 쏘는 곳이라고 했다. 그러나 서노대에는 집을 올려 짓지 않았다. 화성의 형편에 맞추었던 것 같다. 누각은 없으며 대를 여덟모지게 깎아 지른 듯이 축조한 것이 특색이다. 한 면르기도 한다.12. 북포루북포루는 화서의 5개 포루 중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포루는 성벽을 돌출 시켜 만든 치성 위에 건물을 지은 것이며 성내에 있는 아군의 동향을 적이 알지 못하도록 설치한 시설물로 초소나 군사 대기소와 같은 곳이다. 포루 아래 성벽 여장(담장)에는 여러 개의 총구멍을 뚫어 적을 공격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13. 북서포루북서포루는 화성의 서북쪽에 설치한 포루로서, 1794년(정조18년) 축조 되었다. 포루는 화포를 설치해 두고 위아래에서 쏠 수 있게 되어 있는 성곽시설이다. 이 포루에는 지대 위에 대포혈석 2개와 좌. 우면에 3개의 혈석을 설치하고 위에는 벽돌을 쌓아올리고, 3면은 판자를 깔아 총안 25개를 설치하였다. 이 포루의 규모는 동북포루와 그 형태의 크기가 동일하며, 지대의 정면아래의 넓이가 7.27m 위의 넓이는 6.06m이며, 좌우는 아래 넓이가 8.79m, 높이는 8.33m이고 그 위에 벽돌로 5량 누각을 지었는데 3개의 원기둥은 성 밖으로 나와 있다. 누각의 지붕은 성 안쪽으로는 맞배 지붕으로 되어 있고 성 바깥쪽으로는 우진각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다른 포루와 다른 특징이다.14. 북서적대적대란 성곽의 중간에 약 82.6m의 간격을 두고 성곽보다 다소 높은 대를 마련하여 화창이나 활과 화살 등을 비치해 두는 한편 적군의 동태와 접근을 감시하는 곳으로 옛날 축성법에 따른 성곽 시설물이다.화성 축성 때에는 이미 총포가 전쟁에 사용되던 때이지만, 옛날의 축성법에 따라 적대를 만들어 창과 활 대신 총포를 쏠 수 있도록 총안을 마련하였다.장안문의 서쪽에 위치하고 있어 북서적대라 한다.15. 장안문중국의 역사에서 장안은 국가의 안녕을 상징하는 문자로 이른다. 정조가 북문의 이름으로 정해 태평성대를 구가한 중국 한?당의 서유이었다. 장안의 영화를 화성에서 재현하려 이름을 장안문이라 하였다.장안문(長安門)은 화성의 북문으로서 팔달문과 함께 화성의 가장 대표적인 건조물로서 서울서 내려오는 수원시의 관문이 되어 있으며, 그 웅장하고 의장적부른다.
    인문/어학| 2003.07.03| 15페이지| 1,000원| 조회(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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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육] 이스라엘의 교육 평가B괜찮아요
    목 차1. 서론2. 유대인의 교육원리1) 유대인과 랍비1 유대인2 랍비2) 유대인의 교과서1 제 1 교과서2 제 2 교과서3) 유대인의 유대교 교육과 교육원리1 유대교 교육2 유대인의 교육원리4) 교육체제 및 기관1 교육 체제2 교육 기관a. 직업 학교b. 기술 학교c. 농업 학교d. 군인 예비 학교e. 예시바(종교학교)f. 개방 대학교g. 히브리어 언어 학교h. 유스 알리야 학교i. 테크니온 공과대학교j. 히브리 대학교k. 바르일란 대학교l. 텔아비브 대학교m. 하이파 대학교n. 벤구리온 대학교o. 와이즈만 연구소3. 유대인의 역대 노벨상 수상자1) 슈무엘 요세프 아그논2) 메나헴 베긴3) 시몬 페레스4) 이츠하크 라빈4. 결론5. 참고문헌1. 서 론이스라엘의 교육은 귀중한 유산이다. 구세대의 전통을 따르고 있지만, 교육은 여전히 이스라엘 사회의 기본 가치이며 미래의 장을 여는 열쇠로 인식되므로, 교육 체제의 목표는 아이들이 자라서 윤리적ㆍ종교적ㆍ문화적ㆍ정치적 배경이 다른 곳에서 온 사람들이 함께 공존하는 민주적이고 다원적인 사회의 책임 있는 구성원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교육은 유태인으로서의 가치, 국토 사랑, 자유와 인내의 원리를 토대로 하는 한편, 국가의 지속적인 발전에 필수적인 과학과 기술의 재능을 강조하는 수준 높은 지식을 주입하려고 노력하고 있다.흔히들 세계에서 가장 머리 좋은 민족을 꼽으라면 유대인을 꼽는다. 그런 믿음아래 시작된 것도 나치의 유대인 학살이 아니던가? 하지만 정작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선천적으로 머리가 좋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유대인이 다양한 분야에서 뛰어난 두각을 보이는 것은 머리 때문이 아니라 자신들의 교육법 때문이라고 말한다. 노벨상 수상자 중 15%가 유대인이고, 미국 유명 대학 교수의 30%가 유대인이다. 아인슈타인, 프로이드, 토마스만, 번스타인, 로스차일드, 모건, 키신저 등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이다. 이처럼 과학, 심리학, 문학, 경제, 정치 등 각 분야를 망라하는 걸출한 인물들이 만들어지는 힘은 어디에서 오고 공고할 때까지 그치지 않는다. 랍비 중심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자녀, 교육, 결혼, 이사, 사업 등 모든 문제의 상담은 랍비가 하며 유대인이 경영하는 공장에는 랍비가 고용되어 있어 랍비가 사인을 한다. 또한 랍비는 하나님을 가르쳐 주는 영적인 리더이다.2랍비랍비는 나의 선생님 , 나의 주인님 이라는 뜻의 헤브라이어로, 라보니(rabboni)라고도 한다. 이 용어는 1세기에 이르러 보편화되었고, 이후 유대교의 지도자제도로 정착되었다. 랍비가 될 사람은 구약성서와 탈무드에 대한 연구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현대의 랍비교육과정에는 다양하고 총체적인 지도력 배양을 위한 과목들이 포함되어 있다. 일반 대학 4년 (언어 2년-히브리어, 헬라어, 아랍어, 아카드어 4개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석사 2년, 박사 4년 총 10년을 공부하면 성경, 탈무드를 연구할 자격이 주어진다. 그 기능은 유대교 내의 다양한 분파들에 따라 서로 다르다. 유대인들 사이에도 정통파 ·보수파 ·개혁파가 있어 분파마다 랍비에게 기대하는 역할이 따로 있다.일반적인 기능과 역할은 종교행사와 각종 의식을 주재하며, 각종 교육활동에 폭넓게 참여한다. 랍비는 성경(타나흐)을 회당(오후 2시 40분에 각 반에 10명 이내)에서 가르칠 수 있다. 또한 미쉬나, 미드라쉬를 가르치는 사람은 반드시 랍비에게 일정 교육을 받아야 한다. 또한 지역사회를 위한 구제와 봉사활동에도 관여하며, 여러 형태의 공동체 사업을 지원하기도 한다. 일부 랍비는 생계를 위한 직업을 가지면서 시간제 봉사직으로 랍비의 업무를 수행하기도 한다. 공식으로 임명받은 랍비가 없는 경우 공동체 내에 의식을 행할 만한 경건함과 인격을 구비한 사람이 랍비의 역할을 수행할 수도 있다. 14세기 이후 랍비들에게 봉급이 지급되었는데, 이는 생활에 구애받을 경우 그 직책수행에 차질을 빚기 때문이었다. 신약성서에서 예수는 제자들이 랍비라는 경칭으로 부르는 것을 경고하였는데, 이는 하나님이 그들의 참 교사이며 그들은 모두 형제들 이기 때문이었다.2) 유대인. 과거 5천년 동안 벌어진 수많은 유태교의 현인들의 이야기가 토론식으로 담겨 있는 것으로, 이는 하나의 끝없는 토론거리에 끈질기게 결론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듣기보다는 질문하라 또 중요한 교육법은 질문을 많이 하게 한다 는 것이다. 이스라엘에서는 학교에 가는 자녀에게 선생님께 질문 많이 해라 라고 말한다.그들은 자녀에게 선생님 말씀 잘 들어라 고 얘기하지 않는다. 말은 잘 듣는 착한 아이가 나중에 커서 훌륭한 어른이 된다는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아이가 말수가 적다는 것은 사회성이 약하거나, 바보스럽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그래서 이스라엘에서는 말없는 아이는 선생님들의 특별관심대상 이 되기도 한다. 질문을 많이 하게 하는 것은 호기심을 자극하여 창조성, 개성을 살리는데 중점을 두기 때문이다. 요즘 교육개혁의 목표가 창의성 개발을 위한 교육이라는데, 그 방법으로 눈여겨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학교에서 돌아온 자녀들에게 오늘 학교에서 뭘 배웠니? 라고 묻기보다 오늘 학교에서 무슨 질문을 했니? 라고 물어보는 것이다. 천년 전부터 내려오는 탈무드 에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교사는 혼자 지껄여서는 안 된다. 만일 학생들이 말없이 듣고만 있으면 많은 앵무새를 길러내게 되기 때문이다. 교사가 말을 하면 학생들은 그것에 대해서 질문을 해야 한다. 그리하여 교사와 학생이 주고받는 말이 활발하면 할수록 교육의 효과는 오르게 된다. 대부분 교사의 일방적인 강의식 수업이 이루어지고, 학생이 질문을 하는 경우가 없는 우리의 수업시간을 생각해보면, 앵무새를 길러낸다는 말이 비슷하게 들어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의 개성을 존중하는 유대인 교육의 또 다른 장점은 개성을 살리는 교육을 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부모들은 자녀 스스로가 개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아주 자랑스럽게 여기고 대견스러워 한다. 아직 학생인 자녀가 머리에 무스를 바르고, 꼬랑지 머리를 기르고, 유별난 옷을 입어도 그것 때문에 아이를 야단치지는 않는다. 남과 달라 보이고 싶어하정부가 교육 재정의 72%를 제공하고 나머지는 지역 당국과 다른 곳에서 확충한다.고등 교육의 체제는 단지 하나의 학사 과정을 수여하는 대학과, 대학이 학문 적으로 책임을 진 지역 단과 대학 과정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런 모든 체제는 법률에 의해 전적으로 학교와 행정부에 의해 조정되며, 학문을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에게 개방되어 있다. 자질이 부족한 학생과 새로운 이주민들은 대학이 준비한 일년 코스의 준비 과정 프로그램에 다녀야 하며, 이를 이수한 학생들만 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 고등 교육 기관들은 고등 교육을 위한 의회와 정부의 추천을 받고 대통령의 임명을 받아 운영된다. 교육부와 문화부의 지시를 따르는 이 의회는 대학 교수들, 지역 사회의 대표들, 그리고 적어도 한 명 이상의 학생으로 구성되어 있다. 등록 허가ㆍ학위 수여 관계, 고등 교육과 과학 연구의 발전 및 재정에 대해 정부에 보고하는 것이 그들의 임무이다. 각기 다른 분야의 네 명의 원로교수와 경제 또는 공업 분야의 두 명의 자명 인사로 구성된 의회의 기획부와 졸업 위원회는 자금 할당 문제에 있어서 고등 교육 학교와 정부 사이에 중재자 역할을 하며, 정부와 고등 교육 위원회에 일반 예산 제안과 발전 예산 제안을 제출하고, 승인된 예산을 적절하게 배당하며, 여러 학교 간의 친밀한 협력을 증진시킨다. 고등 교육에 대한 약70% 이상의 예산은 공공 기금으로 충당되며, 20%는 학생의 수업료, 나머지는 여러 개인 단체에서 받는다.2 교육기관이스라엘의 교육은 개개인의 능력과 기호를 존중하는 것을 중요시한다. 어린이의 단계와 수준에 맞추어 능력을 발전시키는 것이 어린이가 가지고있는 잠재력을 최대한 개발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다양한 교육방법과 프로그램으로 창의력을 키워주고 어릴 때부터 컴퓨터를 다루게 하여 재능과 인지개발을 돕는다. 이런 프로그램들은 영재아동들과 특별히 관심을 가진 어린이들에게 과외활동을 통해 진행된다.교육을 국가목표의 최우선으로 여기기 때문에 1994년 GNP의 9%가 교육비로 책정되었으며 계대 연구 분야는 세계적으로 가장 광범위하게 다루는 곳으로 정평이 나 있다.k. 바르일란 대학교(1955년 라마트간에 설립)근 2,000년의 포로생활 이후 토라 와 국가가 다시 하나가 되었음을 의미하는 이스라엘 땅에서의 유대인국가 성립은 유대백성들에게 괄목할 만한 역사적 의미를 지닌 사건이 되었다. 이같은 새시대의 도전에 부응하기 위해, 더 나아가 전통적인 유대인의 정체성과 현대적인 삶의 적절하고도 창조적인 조화를 위해, 그리고 3,000년의 유대적 가치와 교훈 위에 세워진 20 세기 이스라엘을 발전시키기 위해 바르일란 대학교가 1955년에 설립되었다. 짧은 35년 어간에 바르일란 대학교는 80명에서 10,000여명의 학생들이 학업 하는 과학적이고, 전문적인 그리고 유대교 연구 분야의 연구에 있어서 중심적 인 대학으로 급성장하였고, 국가의 종교적 사고와 이스라엘 국가 방침을 위해 주도적인 대변인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이 대학교의 학생 분포도는 약 60%가 종교인 학생이고 나머지 40%는 비 종교인 학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같은 특징이 이스라엘 사회의 번영에 활력이 되는 대화, 자유로운 토론, 협력 그리고 상호이해를 촉진시켜주고 있다.주로 사회과학 분야의 여러 교과 과정에서 현대적 자유 교육과 유대교의 정신적인 가치를 접목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현대과학과 전통을 접목시키며 물리, 수학, 의료화학, 경제, 통계학, 발달심리, 음악학, 성경, 탈무드, 유대법과 같은 다양한 과목들이 있다.l. 텔아비브 대학교(1956년에 설립)이스라엘의 문화, 재정 그리고 산업중심지에 자리하고 있는 텔아비브 대학교는 90여개 이상의 학과를 지닌 9개의 대학과 65개의 연구소를 지닌 교육과 연구의 주요 센터이다. 이 대학의 기초는 3개의 조그마한 연구기관들(Tel Aviv School of Law and Economics, Institute of Natural Sciences, Institute of Jewish Studies)이 텔아비브대학교를 형성하기 위하여 함께 모였던 .
    인문/어학| 2002.05.19| 20페이지| 1,000원| 조회(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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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섬유염색] 섬유별 염색방법 평가A+최고예요
    ♠ 섬유별 염색방법1. PET/셀룰로오스의 염색최근 이 분야에서 CPB 공정이 주목받고 있으며 다음 공정들이 특이할만 하다.가. 2욕 Pad-Themosol/Pad-Batch 공정종래의 CPB 염색법에서는 PET가 먼저 염색되고 셀룰로오스가 염색된다. 이 공정은 높은 수세견뢰도가 요구될 경우 추가로 건조과정이 필요하긴 하지만 중간 환원세정을 생략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또한 Two-Batch 방식에서는 피염물에 대한 중간검사를 할 수 있다. 만일 중간에 환원세정을 하지 않을 경우, 세룰로오스를 CPB 공정으로 염색할 때 피염물에 호료가 말라 붙어 있어 문제를 일으킬 수 있으며 이로 인하여 수율손실과 마찰견뢰도가 불량해질 수 있다.나. 1욕 Pad Thermosol/CPB 공정이 방법에서는 염료를 알칼리 없이 함께 사용할 수 있다. 그 다음 피염물을 건조시킨후 열고착 시켜서(Thermosol) 상온으로 냉각시킨다. 반응성 염료는 알칼리와 혼합된후 Padding에 의해 고착되고 통상의 CPB 공정에서 처럼 숙성시킨다. 수세는 확포식 수세기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일반적으로 이러한 종류의 혼방섬유에서는 Pick-up이 낮기(45~50%) 때문에 가능한 일정하게 Pick-up이 이루어졌는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PET/ 셀룰로오스 혼방제품에서 셀룰로오스가 충분히 팽윤되도록 속도와 침지시간(dip)을 설정해야 한다. PET/레이온에서는 2~3초의 침지시간이 필요하고 PET/면 혼방물에는 보통 1~2초 정도면 충분하다.호료가 분산염료에 대한 이염방지제로 쓰일 수 있으나 두 섬유간의 염료이동이나 섬유속으로의 확산을 방해할 수도 있으므로 아크릴레이트를 기초한 호료를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피염물은 가능하면 110~120℃에서 건조하여야 한다. IR 장치에 의한 예비건조가 특히 권장된다. 기계가 너무 커서는 안되며 수분을 지나치게 빨리 제거하는 등의 급속건조의 위험이 없도록 정확히 설정되어야 하며 특히 피염물을 서서히 가열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IR 장치에서 가열이 급격히2. Nylon 섬유의 일반적 염색법Nylon에 속하는 섬유는 분자구조 중에 -CONH-, NH2, -COOH의 두기를 갖고 있으므로 견, 양모와 같은 단백질계 섬유의 염착성과 유사하다.그러나, -CH2기의 수가 많고 염착관여기가 적으므로 섬유는 단백질계의 섬유에 비하여 보다 높은 소수성기를 나타내며, 100%의 습도중의 흡수율은 그보다 1/4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또 전형적인 열까소성을 가지고 있으며, 일면 아세테이트 섬유의 염색성과 유사한 염색성을 갖는다. 따라서 이 계의 섬유는 견, 양모용의 염료에 친화성이 있는 동시에 아세테이트용의 염료로서도 염색이 잘 되며, 또 직접, 황화, 배트, 아조익 염료와 같은 섬유소계 섬유용 염료에 대하여서도 견, 양모용 또는 아세테이트용의 염료보다는 못한 어느 정도의 염착성을 가지고 있으나, 견뢰도가 약하므로 실제로는 그다지 사용되지 않고 있다.또 Nylon 6와 Nylon 66의 염착관여기가 같으므로 염색에 적용되는 염료는 같으나 그의 중합도와 섬유의 형태가 다른데, 전자가 일반적으로 염착력이 크다.Nylon 6는 CO-NH의 결합의 방향이 분자쇄에 대하여 동일하지만 Nylon 66는 인합(隣合)된 것이 역방향이며, 따라서 수소결합의 양에 차이가 있다. 이것이 Nylon 6이 66보다 약 40℃가 낮은 융점(Nylon 6의 융점은 212~219℃, Nylon 66의 융점은 249~255℃)을 나타내는 하나의 원인이며, 또 Nylon 6의 이염성의 원인이 된다. 그리고 Nylon 6의 연화도(軟化度)는 180~190℃, Nylon 66은 225~235℃이다.표 2. Nylon 6과 Nylon 66의 비교 항목{원료융점(℃)연화점(℃)TgNylon6ε-caprolactam215~220180~19040℃부근Nylon 66adipi acid hexamethylenediamine249~255225~23540℃부근Nylon 6보다 Nylon 66은 염료가 흡수되는 비결정영역이 적으므로 포화염착량이 적고 또 염색속도가 늦다. 염료의위 Builder로서 첨가된다. 이들 알칼리를 가해주는 또 다른 하나의 목적은 흡착되는 음이온 계면활성제 산성염료에 대한 염색성을 방해하므로 이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pH를 10이상으로 하기 위한 것이다. 계면활성제의 농도는 그의 미셀 형성 임계농도 부근, 즉, 음이온성제는 0.2∼0.5%, 비이온성제는 0.05∼0.2%이다.정련할 때의 직물의 실지 조작에는 장력이 걸리지 않는 확포상 연속정련기나 tensionless- jigger 등을 쓸 수 있고 어느 기계나 장치를 쓰든 불필요한 외력이 걸리지 않도록 하며, 구김이 생기지 않도록 할 것이고, 특히 스프직물에 있어서는 잔털이 일거나 필링이 생기지 않도록 조심할 것이다.정련에는 일반적으로 60~80℃의 온도, 10분~3시간의 처리시간이 필요하다. 그리이스, 기계유 등으로 심하게 때가 묻은 부분은 정련에 앞서 미리 적당한 용제로 이들을 제거해 주거나, 또는 뜨거운 진한 비누용액으로 패딩해서 3~4시간 동안 roll로 감아 방치했다가 정련하면 된다.(나) 표백순나일론 제품이나 나일론이 함유되어 있는 섬유제품을 표백할 때에는 이 섬유가 산화제에 의하여 손상을 받기 쉬운 성질이 있다는 것을 고려하여 적당한 표백제를 선정하도록 하고 또 표백조건도 너무 가혹하게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표백제로 흔히 쓰는 차아염소산소다 용액으로 처리할 때는 나일론은 쉽게 염소를 흡수하여 클로라민을 형성하지만 이 성질은 탈염소제로 처리하여도 염소가 제거되지 않는다. 따라서 차아염소산 소다로 표백한 나일론제품은 저장 중 황변하며 다음에 햇빛에 들어내면 빠른 속도로 섬유를 퇴화시킨다. 다른 산화제인 과망간산칼리의 산성용해도 나일론을 상하게 할 뿐 아니라 섬유내부에 저장되는 2산화망간이 쉽게 제거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러한 물질들은 표백에 써서는 안 된다. 과산화수소는 비교적 좋은 표백효과를 주지만 저장 중 복색되는 경향이 있으며 처리온도를 50℃ 이상으로 해줄 때는 섬유를 상하게 하는 경향도 있다.(그러나 과산화수소수는 나일론/양모 혼방품유에서 이들 염료를 직접 면염료(Direct Cotton dyes)라고도 한다. 그 뒤 이 원리에 의해 새로운 품종이 합성되었는데, 대개 아조기(-N=N-)를 주체로 한 직선상 구조를 하고 있으므로 Hydrosulphite (Na2S2O4)와 같은 환원제에 의해 파괴되어 탈색된다. 또한 수용성을 갖게 하기 위해 술폰산기내 -SO3Na기를 가지고 있다.직접염료의 특징을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1) 물에 가용성이며 수용액은 콜로이드성을 나타내며 알칼리를 첨가하면 가수분해가 촉진된다. 그러나 산성에서는 대부분 침전 된다.직접염료의 진한 용액에 HCl, H2SO4을 가하면 색소산으로 침전한다.D-SO3Na + HCl ―→ D-SO3H + NaCl여기에 Alkali를 가하면 Na+염이 되어 용해한다.D-SO3H + NaOH ―→ D-SO3Na + H2ONa2CO3는 염착을 완만하게 하고 침투를 좋게 하며, 염색 얼룩을 없애므로 완염제라고 한다.2)면, 아마, 레이온 등의 셀룰로오스 섬유에 직접 염착하지만 색상이 선명치 않으면 일광, 세탁견뢰도 등도 별로 좋지 않다.3)경수를 사용하면 Ca++, Mg++에 의해 침전이 일어나므로 경수를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4)수용액은 색소음이온이므로 긴사슬 모양의 알칼리 (CnH2n+1)를 가진 양이온 활성제로 처리하면 양자의 결합에 의하여 난용성의 색소가 형성되어 수세, 세탁견뢰도가 향상된다.5)다른 염료에 의한 성질 : 직접염료의 용액에 염기성 염료의 용액을 가하면 결합하여 유색 침전이 생긴다. 이것은 직접염료의 색소산과 염기성 염료의 색소입자가 결합하여 침전됨에 기인하여, 이 원리는 Topping에 응용된다.직접염료에 의한 셀룰로오스계 섬유의 염착이론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셀룰로오스 섬유를 물에 침지하면 팽윤하며, 침투압에 의하여 섬유속의 비결정 부분의 쇄상 분자는 서로 떨어져 간격이 넓어진다. 이와같이 셀룰로오스 섬유는 팽윤상태에서 결정부분이 서로 셀룰로오스의 쇄상분자로 망상으로 묶여 있고, 그 망목 구조내를 염료 분자는 어느on)염료, 페나트랜(Fenanthrene)염료 등이 여기에 속한다.·일반법(IN법) : 비교적 높은 알칼리 농도에서 염색, 염색온도가 높고 염류를 첨가하지 않음.·온염법(IW법) : 중간정도의 알칼리 농도로 염색. 염색온도가 조금 낮고 염류를 첨가하여 염색·냉염법(IK법) : 저농도의 알칼리를 사용하여 염색. 염색온도가 낮고 다량의 염류를 첨가하여 염색·특별방법(IN특별법) : IN법보다 센 알칼리성 염액에서 염색. 기타조건은 IN법과 동일이들 4방법간의 차이는 가성소오다와 히드로술파이트의 양 및 염색온도 등이다.(다)아조익염료에 의한 염색나프톨(Naphthol) 염료 또는 불용성 아조염료라고도 한다. 이 염료는 분자중에 발색원자단인 아조기(-N=N-)를 가지고 있으나, 수용성기(예: -SO3Na, -COONa)가 없기 때문에 물에 녹지 않는다. 따라서 염색방법도 수용성 염료와 같이 직접 염색할 수는 없고, 하지제와 현색제를 섬유상에 결합시켜 불용성 아조염료를 생성하여 염색한다.(라)황화염료에 의한 염색이 염료는 주로 면과 같은 식물성 섬유에 사용하며 견에도 사용할 때가 있으나 양모에는 전혀 사용치 않는다. 염색방법이 간단하고 가격이 저렴하며, 염색물은 일광, 수세, 세탁견뢰도 등이 우수하나 색상이 선명치 않다. 특히 염료로부터 유리된 황이 산화되어 섬유중에 황산이 생기기 때문이다. 산, 알칼리에 난용이고, Na2S, Na2S2O4의 Alkali성 환원성 용액에 잘 용해한다. 즉, 염료구조 중에 -SH-, -S-, -S-S-의 결합이 환원되어 가용성이 된다.염색은 직접 염료의 목면 염색 때와 같이 염욕에 황산소오다, 혹은 식염과 같은 중성염을 넣어 염착을 촉진시킨다.(마)반응성 염료에 의한 염색1반응성 염료의 정의종래의 염료에 의한 염색은 염료 분자와 섬유간의 일어나는 이온결합, 수소결합, 반데르발스결합 혹은 흡착의 물리적 유지 등 약한 결합에 불과했으나 근래 섬유의 수산기 또는 아미노기를 이용하여 염료의 반응기의 공유결합에 의해 섬유와 염료를 화학적으로 결다.
    공학/기술| 2001.12.23| 14페이지| 1,000원| 조회(4,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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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양문화사, 일본문화] 일본의 문화
    1. 노오(能)노오는 약 600년의 역사를 가지고 舞踏, 劇, 音樂, 詩등의 요소가 섞인 일본의 전통 예술 중에서 가장 뛰어난 무대예술이라고 평가를 받는 일본의 전통 연극이다.노오는 교겐(狂言)과 더불어 일본에서 완성된 연극 가운데 가장 오래 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노오에는 한때 권세 있고 호화스러운 생활을 하던 자가 죽어서도 성불을 하지 못한 망령이 되어 옛날의 영화를 이야기하고 지나가던 자가 불공을 드려서 성불시킨다는 줄거리가 흔하다. 그것은 과거의 귀족세계에 대한 동경이며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 과거에 대한 추억이며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인간의 본질이나 정을 그린 것이다. 노는 이러한 비극적인 연극인 까닭에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며 그만큼 깊이도 있다. 노오는 본질적으로 불교의 존재관을 반영하는 의식적 기원이 담겨있으며, 배우는 신의 세계와 인간계를 잇는 중재자의 역할을 연기하는 제사장과 같은 것이다. 연기자가 얼굴에 가면을 쓰고 사설을 외우는 자의 말과 반주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는 지극히 높은 경지로 상징된 연극 양식이다. 여기서 말하는 지극히 높은 경지라는 것은 유현의 세계이다. 노오는 미적차원으로서 유현을 표방한다. 노오에서는 이 유현을 미의 최고경지라 한다.또 한토막 한토막으로 생략되어 표현되는 동작 하나 하나 가운데에는 인생의 묘미가 압축되어 있으며 무표정한 노오 가면에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수백만의 표정이 숨어 있는 것이다. 노오는 일본인이 만들어낸, 오랫동안 일본인이 지켜 봐 온 무대 예술이다.1-1. 노오(能)의 역사노오의 기원은 정확하지 않지만 8세기경 중국의 산악(散樂)이 일본에 전해져 이것은 사루가쿠라고도 했으며, 사람이나 동물의 흉내를 내거나 기술을 부려서 사람을 웃기는 것이었다. 이것은 도시에서 또는 신사나 절의 제례나 여흥 등으로 상연되면서 제법 인기가 높았으며 13세기쯤 되면서 다시 여기에 연극적인 요소가 가미되었다.14세기 중엽부터는 각지에 있던 풍년을 기원하는 민족예능인 뎅가쿠(田樂), 흉내 예능인 사루가쿠(猿樂), 연희자라면 다양한 감정표현이 가능할 것이므로 오히려 '무한표정'이란 말이 어울린다고도 한다. 하지만 '중간표정'이란 말과 별 차이는 없는 것 같다.노오의 탈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오키나멘은 대체로 유화한 표정을 가진 노인탈이다. 이 노인탈은 우리나라의 하회탈 중 양반탈과 비교되는데, 양자가 모두 따로 움직이는 턱, 이른바 '절악(턱이 움직이는 것)'을 달았다. 그러나 그것은 후기 노오에서는 없어진다. 다음에 '죠멘(尉面)'이란 탈이 있다.'죠(尉)'란 노인을 뜻하며, 신이며 신성을 지닌 노인, 고귀한 사람 따위의 본체를 나타내는 탈이다. 이 탈 가운데 '아쿠죠멘(惡尉面)'은 사납고 무섭게 보이는 노인탈이다. 대소(大小)의 아쿠죠멘이 있다. 이 종류의 탈은 기악면(技樂面)의 영향이 남아 있는 탈에 속한다.다음에 '베시미멘'이 있다. '베시미'란 '헤시미'라는 말이 와전된 말로서 양 입숙을 악물고 힘을 준 표정이다. 도깨비 같은 괴물인 텡구(天狗)탈을 큰 베시미라 하고 지옥의 귀신탈을 작은 베시미라 한다. 다음으로 눈알이 튀어나온 것이 특징인 도비데(飛出) 란 탈이 있다. 그리고 남자탈이 있다. 남자탈에는 크게 나누어 영계(靈界)의 남자와 보통 남자의 두 종류가 있다. 영계의 남자는 초현실적 세계엣 온 남자로 신령, 혹은 영웅의 영혼탈이다. 그리고 보통 남자탈에는 '헤이타(平太)'라는 무장의 얼굴을 한 장년 남자탈이 있으며, 이 밖에 젊은 남자와 소년의 탈이 있다.다음으로 여인탈이 있는데 노오에서는 이 여인탈이 가장 대표적인 탈로 알려져 있다. 그 중에서도 젊은 여인탈이 유명하다. 고모테(小面), 와카온나(若女), 마고지로(孫次郞)의 탈 등이 있다. 고모테는 귀여운 여인탈이고, 와카온나는 나이가 젊음을 나타내는 탈이다. 마고지로는 탈 제작자의 이름을 딴 것이다. 젊은 여인탈에는 '조온나(增女)'와 '나키조온나(泣增女)'의 탈이 잇는데, 조온나란 조아미라는 탈 제작자가 만든 아름답고 기품있는 여인탈이다. 여인탈에는 '마스가미(十寸髮,增髮)'란 탈이 있다. 광란의와키는 본래 관객의 대표자와 같은 역으로 등장하는 것이며, 따라서 정확한 의미로는 시테의 상대역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므로 보통은 시테와 와키가 노오의 배우인 것처럼 생각되지만 실은 시테 한 사람이 주인공이며 나머지는 모두 시테를 중심으로 행동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시테는 노인이 되고 귀공자가 되고, 여자가 되고, 신이 되고, 귀신이 될 필요가 있으나 와키는 관객의 대표자로서 대신이라든가 신관, 중, 수험자 등 어디까지나 현세의 사회인의 일원으로 분장하므로 탈을 사용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다른 관점에서 말한다면, 시테는 전설이나 이야기 속의 인물로 등장하지만 와키는 시테가 분장하는 인물과 동시대의 인물이 아니고 관객과 동시대인으로서 등장한다. 이런 점들을 보더라도 노오는 본래 시테를 위주로 성립한 연희였음을 알 수 있다. 비극인 만큼 광녀(狂女)가 나오는 경우도 있다. 사랑에 우는 여인, 자식이 죽은 부모 등 그 역할도 다양하다. 다음에, 연희자들 이외에 '우타이(謠)'라고 하는 요코쿠(謠曲, 배경음악)만을 노래하는 제창단이 있다. 이들을 지우타이(地謠)라고 한다. 제창단은 보통 여덟명이지만 열명일 경우도 있다. 말하자면 노오에서 합창부 역을 맡고 있는 것이다. 모두 남자로 구성되며 지우타이가 나오지 않는 노오는 하나도 없다.요곡의 장단은 여덟 박자의 리듬으로 지배된다. 7, 5조 12음의 일본어의 운율을 8박16분음에 맞춰 노래하는 것이다. 이것을 '히라노리(平乘)'이라고 하는데 3자 2박으로 배분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독특한 박절법(拍節法)에 따른다. 또 '츄노리(中乘)'와 '오오노리(大乘)'가 잇다. 츄노리는 2자 1박으로, 전쟁 또는 수라의 난리 사회의 광격이라든가 지옥의 묘사, 귀신의 활약 같은 장면에 사용되며, 오오노리는 1자 1박의 리듬으로 무용적인 움직임의 주가 되는 부분에 사용된다.무대에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갈 때, 한마당 자리가 아닌 것은 두 단계로 구성해서 연희를 할 필요가 잇다. 즉 시테가 현재 살아 있는 인간으로서 무대에 오를 때종류로 분류되어 상연 순서가 규정되어 있는 것도 서, 파, 급의 원칙에 따른 것이다. 이 5종목의 노우의 상연순서에 따른 공연 방식 혹은 구성상의 분류를 고반다테(五番立)라 하여 일반적으로 이 구성에 따라 상연된다. 여기서 다섯 가지 연희곡목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자.서에 해당하는 초벌 거리(와키 노오)는 '신 노오(神能)'라 할 수 있는 품격 있고 당당한 구성이지만 희극적 곡절이 적다. 신의 영접이나 기원·봉축을 하는 것으로 시테는 주로 신이나 정령으로 나타난다. 두 번째 거리는 수라 거리 (슈라모노)라고도 하며, 대개 옛날의 겐지(源氏)나 헤이케(平家)의 무장들이 죽은 후 생전에 지은 죄로 수라도(修羅道)에 떨어진 괴로움을 연희하는 것으로 파의 전단 부분에 해당한다. 주로 『헤이케모노가타리』(平家物語)에서 취한 경우가 많다.세 번째 거리는 주로 젊고 아름다운 여성을 시테로 하며, 보통 '가즈라 거리'라고 하는 노오의 중심 부분이다. 노오의 이상인 가무중심의 우미한 정서가 가장 짙게 배어 있으며 연희에서 최고의 자리를 차지한다. 파의 중단에 해당한다. 네 번째 거리는 파의 후단에 해당하며 잡 노오(雜能)라 하는 것으로 초벌, 두 번째, 세 번째, 다섯 번째 거리 이외의 모든 곡목을 포함한다. 여러 잡다한 종류를 포함한 것으로 사랑·질투·복수 등 인간적인 감정이 많이 나타나 있다. 여기에 속한 노가 가장 많고 문학과도 관련성이 가장 깊다. 다섯 번째(기리노)는 하루의 상연곡 중 마지막거리로서 급의 부분에 해당한다. 마지막 마당인 후막이다. 시원하고 팔팔한 템포가 빠르게 진행된다. 하루의 마지막에 상연하는 노로 초현실적인 존재가 시테로 등장한다.그런데 이와 같은 다섯 마당 구성은 현대 노오에서는 흔치 않으며, 하루 한 종목 내지 세 종목의 프로그램이 보편적으로 상연되고 있다. 신 노오(神能)인 와키 노오는 축제나 경사 시에 상연되는 정도이다. 실제 노오의 연희 구성은 주연자인 시테가 일단 분장실에 들어가 휴식하고 다시 등장하는 복식 노오와, 중간 휴식이 없볍고 개운한 맛이 있는 희극성을 지닌 서민극인 대사극이 서로 잘 조화를 이우면서 오늘날의 노오가쿠(能樂)를 발전시켜 온 것이다. 중세 무로마치시대에 간나미(觀阿彌), 제아미(世阿彌) 부자(父子)가 사루가쿠 노오를 예술적으로 발전시켰을 때 이미 교겡은 노오에 흡수되어 버렸다. 그 후 에도시대를 거치면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노오의 상연종목은 노오와 교겡을 번갈아 일번(一番, 한 연목)씩 상연하는 형식을 취하게 되었다.2-2. 쿄겡의 종류쿄겡과 같이 단순하고 소박한 형태를 갖춘 드라마는 오랜 세월 동안 즉흥적으로 이야기를 꾸며 나가는 '애드 립' 시대가 계속되었다. 대본 같은 것도 만들지 않고 간단한 협의를 통해 이야기 줄거리며 댓, 움직임을 정해 놓고 임기응변으로 무대에서 연희하는 방법으로 맥을 이어왔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쿄겡 대본은 1570년에 씌여진 "텐쇼오 쿄겡본(天正狂言本)" 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이는 이야기의 줄거리를 적는 식의 아주 간단한 기술법을 취하고 있다.쿄겡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진다. 첫 번째가 본쿄겡(本狂言)인데 이는 원래 노의 내용과 다른 독립된 독자의 제재와 줄거리를 가진 연목(演目)을 말하며 노오와 노오 사이에 상연되는 것이다. 그저 쿄겡이라고 할때는 이 본쿄겡을 말하는 것인데 여기에는 약 260종에 이르는 다양한 작품이 있다. 두 번째로는 아이쿄겡(間狂言)으로 전장·후장으로 구성된 복식노(複式能)에서 전장의 시테가 퇴장하고 후장이 시작될 때까지의 막간(幕間)에 상연되는 쿄겡이다. 노오 연희에서 노오의 주제와 내용 등을 알기 쉽게 설명하는 나레이터의 역할을 하며 노오 조연자와 같이 어울리기도 한다. 노오와는 약간 이질적인 성격의 연기를 하는 칼잡이, 뱃사공, 수도자의 종복 등 신분이 낮은 역을 담당한다. 세번째가 삼바소(三番三)인데 경축, 경사를 위한 독특한 쿄겡으로 오곡풍요를 기원하는 춤을 춘다.쿄겡의 종류는 시테(노오와 쿄겡에서 주역을 맡은 사람)의 연희상 성격, 인물상, 작품 주제에 따라 구분되는데 유파에 다라 분류법이나 곡.
    인문/어학| 2001.12.23| 15페이지| 1,000원| 조회(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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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 대학의 이해 평가C아쉬워요
    현대사회는 급변하고 있다. 다양한 기술과 전문화된 분야가 하루에도 쉴새 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작금의 현실에서 이 사회는 그에 맞추어 전문화된, 또는 전문화 될 수 있는 고급인력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그러한 요구에 대한 논의는 구체적으로 대학이 그 종착점이 되어 사회의 대학으로의 파급효과, 즉 시대적 요구에 대한 각 대학들의 반응들을 통하여 여실히 드러내고 있으며, 이제는 사회에서 대학에 그들이 필요로 하는 전문인력양성을 직,간접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실정이며, 대학 또한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지 않을 수만도 없는 게 현실이다.대학의 발전방향에 대한 교육개혁안의 검토 -대학교육개혁안에서 나타난 대학교육의 성격, 학부제 도입, 연구중심/대학원 중심대학 추진- 들도 대학교육은 급변하는 현대사회에서 요구하는 고급전문인력의 양성에 부응하여야 한다는 대학에 대한 사회적 요구 충족이 강조되는 입장 하에 이루어진 것 대안들이라 할 수 있다.급변하는 현대사회에서 요구하고 있는 전문적 지식과 전문인 양성에 있어서 문제 해결 능력이라는 것은 제한된 범위에서의 조건들을 근거로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는 것이다. 대학은 사회의 변화에 맞추어 변화되어져야 하는 수동적인 입장에 서 있어서는 안 되며, 그렇게 생각되어져서도 안 된다. 대학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사회적 요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바탕으로 하고 그 위에서 무언가를 찾아보고자 한다면, 그것은 이미 '대학'이 가지는 진정한 의미와 가치가 될 수 없다. 대학은 오히려 사회의 변화를 주도해 나갈 수 있는 입장에 설 수 있어야 하며, 그래야만 한다. 대학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는 사회에 의해 변화되어지고 그 변화를 제대로 잘 수용해야 하며, 그럴 수 있어야 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급변하는 사회에 방향성을 제시해주며, 사회변화를 수용하는 측면이 아니라 오히려 그 사회변화를 이끌고 나갈 수 있어야 함에 있다. 대학은 사회의 변화에 이끌려 가는 것이 아니라 주도해 나가는 위치에 있을 수 있어야 하며 그것이 대학이 가지는 진성하는 데 영향을 주는 예견적 계획 및 구상이라고 하였으며, 오천석은 교육이념을 교육의 ‘지향할 바’라고 규정하고, 포괄성, 보편성, 기본성, 일관성, 지속성, 긍정성의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한편 정범모는 이념의 수준을 단계적으로 고려하여, 표언명문한 수준의 이념, 논의수준의 이념, 합의수준의 이념, 토착문화수준의 이념 등으로 설명하였다. 한국은 교육법 제1조에 “교육은 홍익인간의 이념 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완성하고 자주적 생활능력과 공민으로서의 자질을 갖추게 하여 민주국가 발전에 봉사하며, 인류공영의 이상실현에 기여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하여 교육이념을 밝히고 있다.여기서도 명시한 바와 같이 교육이념은 교육목적 ·교육목표와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교육이념은 교육목적을 포함하고 교육목적은 교육목표를 포함한다. 그러므로 목적을 달성할 수단적 의미로 목표를 고려하는 것이 보통이다. 결국 교육이념 ·교육목적 ·교육목표는 질적으로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고, 실제로 도달해야 할 성과 또는 지향하는 바의 현실화에서 거리적 ·시간적 차이를 두고 있을 따름이다.대학의 이념을 초기에 제시한 사람으로 베를린 대학을 세운 훔볼트(Humboldt)는 물질면에서 잃어버린 것을 지식의 힘을 통해 보상해야한다고 했다. 1810년 9월 29일 베를린대학이 창립된 것은 훔볼트가 한 말의 정책적 구현이랄 수 있다. 그에게 있어 대학의 자유와 국가의 간섭은 상호 대립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인 것이었다. 국가는 간섭을 해서는 안되지만 지원은 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예를 들어 교수충원이나 시설 지원이 해당되겠다. 이러한 훔볼트의 대학이념을 Schelsky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훔볼트의 대학개혁이란 베를린대학 창설이 주목표가 아니다. 근대국가가 지향해야될 문화국가를 실현한다는 데에 그 목표가 있다.”훔볼트는 중세의 단순한 학습기관이 아닌‘연구대학(Forschung-Universitaet)’라는 개념을 확립하였다. 즉 대학에서 이루어지는 학문관은 대학교육을 단순한 직업교육으로 전락시켰다. 훔볼트는 이에 반발하였다. 훔볼트는 대학의 건학이념을‘일반적 인간교양’즉, '학문에 의한 교양' 이념을 밝혔으며 실용주의와 사회요구로부터 순수학문을 옹호하는 철학을 구심점으로 하는 대학을 설립하게 되었다.19세기 초 빌헬름 폰 훔볼트가 구상한 새로운 대학 이념은 당시 새로 건립된 베를린 대학의 기본 이념이 되었다. 베를린 대학의 건립이 현대적인 대학으로의 발전을 향한 결정적인 첫 걸음의 의미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문제는 훔볼트적인 대학 이념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가 하는 점이다. 일각에서는 훔볼트적인 대학의 종말을 주장한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한 최종적인 결론을 내리기 위해서는 먼저 훔볼트의 이념이 당시의 대학 교육 개념과 어떠한 차이가 있는가 하는 점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첫 번째 차이는 훔볼트의 학문 개념 자체에서 찾을 수 있다. 당시에는 학문을 하나의 완성된 체계로 간주하여 왔다. 그와 달리 훔볼트는 학문이란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하나의 과정이며, 그러한 과정에서 제기되는 질문을 통해서 모든 연구의 최종적인 해답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견해는 오늘날까지도 유효한 학문의 진리로 간주되고 있다.두 번째 결정적인 차이는 당시 대학들이 직업 교육을 중심으로 하는 전문 대학의 성격을 지녔던 것에 반해, 훔볼트가 학문이란 역동적인 통일체를 구성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던 점이다. 그의 관점에서 대학이란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의 공동체일 뿐만 아니라 학문간에 상호 교환과 협력을 통해서 서로 자극을 주고 도움을 얻을 수 있는 자유로운 학문의 장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학문이 지속적으로 발전하려면 대학이 연구와 교육을 통합하여 수행하는 기관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렇게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학문의 세계에 들어오는 사람은 지속적인 발전의 일부가 되어야만 하며, 이렇게 되려면 정신과 생활이 모두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이 그의 견해였다.훔볼트가 그 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훔볼트적 대학 이념 그 자체가 그 유효성을 상실했다고 보는 견해에 대해서는 이견이 적지 않다. 더욱이 대학이 통합된 학문의 장으로서의 역할을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현재 독일 대학 개혁의 모델로서 미국식 대학 체제를 도입할 것을 주장하는 사람들조차도 반론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문제는 훔볼트가 말한 연구와 교육의 통합을 기반으로 하는 그런 학업 즉, 목적이 뚜렷하지 않고,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의 자유로운 공동체를 기반으로 하는 대학이 오늘날에도 가능하며 그러한 이념을 앞으로도 고수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다. 훔볼트적 관점에서 볼 때, 대학의 중간 시험이나 학사 규정을 상상하기는 어렵다. 또한 수백 명의 학생으로 가득 메워진 강의실과 세미나실은 분명히 학문 공동체로서의 이상에 어긋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학 개혁과 관련된 논의는 훔볼트가 말한 사제간의 자유로운 공동체를 기반으로 하는 학문을 통한 교육이 오늘날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문제로 그 초점이 모아지고 있다.이후 종교개혁은 중세 말 및 근세 초 유럽사회의 총체적인 변화과정과 그 맥락을 같이 한다. 이미 중세 말부터 인간성 회복을 지향하는 움직임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으며, 그에 따라 교회는 경제적, 정치적, 이념적으로 많은 도전을 받게 되고 그 권위가 계속 실추되어 갔다. 정치적으로 세속적인 지배세력인 국왕을 중심으로 하는 강력한 중앙집권적 통일국가가 발전하게 되어 교황의 보편적인 지배권력을 견제하게 되고, 경제적으로는 상업을 근간으로 하는 새로운 시민계층이 형성되고 자유상업도시가 발달하여 교회의 사회경제적 기반이었던 봉건제도를 지속적으로 와해시켜 갔다. 또한 이념적으로는 르네상스의 인문주의가 기독교적 지배이데올로기의 허구성을 더욱 여실히 드러내 주고 있었다. 그리고 십자군원정의 실패, 흑사병의 창궐, 새로운 지리상의 발견 그리고 여러 과학적 발달 등도 기독교와 봉건질서의 붕괴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와 같이 교황을 중심으로 하는 당시 기독교 세 대립은 교육 분야에도 나타나는데, 양측은 사상투쟁과 세력 확장을 위해 청소년 교육의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고 양측은 경쟁적으로 교육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천주교는 대학을 소위 도전과 개혁의 온상으로 간주하고 경계하였으며 개신교는 대학을 전승되어 온 구태의연한 세계관과 가치체계를 고집하고 전통적 강의 형식과 교육내용에 붙잡혀 있는 보수세력으로 보고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하였다. 신교는 합리적 신앙과 사회적 도덕 도야를 목적으로 근대적 인격적 기독교도 양성에 있었고 구교는 반종교 개혁으로 카톨릭 전도자 양성에 있었다. 그러나 천주교와 개신교가 각자의 입장에서 대학을 서로 다르게 보면서도 대학의 유용성을 인정하고 대학을 육성하는 정책을 펴는데는 동일한 입장을 가졌다. 천주교 국가들 안에 있는 대학들은 교황이 부여한 특권을 계속하여 누린데 반해 개신교 국가들 안에 있는 대학들은 황제와 봉건 제후들이 부여한 특권을 누렸다. 이를 계기로 근세의 대학은 중세기적 교수형식들과 교육목적들을 쇄신하기에 이르렀다.19세기는, 라폴레옹의 침략 전쟁에서 나타나듯이, 여러 국가들이 자국의 세력강화를 위해서 국민에 대한 보다 철저한 국가 관리가 요구되었다. 동시에 산업혁명으로 인해서 일정한 기초적 능력을 지닌 수많은 공장 노동자들이 요구되었다. 이러한 국가ㆍ사회적 필요성에 따라 각 국가들은 교육을 직접 관리하려고 하는 경향을 지니게 되는데, 이러한 경향을 일컬어 국가주의 교육이라고 한다. 즉, 근세사회의 교육적 특징 가운데 하나가 개인 또는 특정 사회계층의 필요에 의해 교육이 이루어졌다는 점인데, 19세기에는 국민에 대한 교육을 국가가 직접 책임지고 관리하려는 경향, 즉 국가적인 학교제도나 의무교육제도 등이 나타나게 된다. 이러한 경향은 개인이 책임지던 교육을 국가와 사회가 책임지는 교육으로 전환시켜 교육의 공교육화, 대중화에 기여하였다. 따라서 국가주의는 보다 많은 서민들에게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교육의 민주화, 평등화에 크게 이바지했다고 할 수 있다.
    사회과학| 2001.11.07| 6페이지| 1,000원| 조회(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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