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역사란 무엇인가일반적으로 역사`라 불리우는 것에는 두 개의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하나는 과거의 사실 전체로, 지극히 객관적인 사실로서의 역사이고, 하나는 역사가에 의해 선별되고 선택된, 이른바 역사가의 해석으로서의 역사이다.액턴과 같은 19세기의 역사가들{) 과학으로서의 역사를 주장한 실증주의 역사학파은 사실을 매우 존중했다. 그들은 풍부한 지식의 기록과 객관적 사실의 수집에 몰두했고, 언젠가는 그것들로 인해 완전한 역사`를 쓸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생각은 후에 조지 클라크 교수의 비판을 받게 되었는데, 이 두 사람의 의견은 결국 그 시대의 사회관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역사란 무엇인가 라는 물음에 답하려 할 때 우리들의 답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우리 자신이 처해있는 시대적 위치를 반영하게 된다.Ⅱ.객관적 사실로서의 역사랑케는 역사의 도덕화에 대해 항의를 제기하면서 역사가의 임무는 그것이 진정 어떠하였는가`를 보여주는데 있을 뿐이라고 하였다.실증주의자들은 우선 사실을 확인하고 다음에 거기서 결론을 끌어내라고 주장했는데 그것은 과학으로서 역사를 뜻하는 것이며, 영국의 경험주의적 전통과 일치하는 것이었다.{) 경험주의적 지식론은 주체와 객체의 완전한 분리를 전제로 한다. 이것은 순수 객관적인 사실로서의 역사를 추구 하는 실증주의자들의 태도와 일치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실증주의 역사가들은 역사는 확증된 사실이 집합으로 구성되어 있고, 역사가들은 그 사실들을 정확하게 입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였다. 또한 그들은 역사란 의심의 여지가 없는 객관적 사실들을 최대한으로 많이 편찬함으로써 성립된다고 생각하였다. 실증주의 역사가들로서는 역사의 토대는 확고한 사실들을 끊임없이 쉬지 않고 쌓아 올리는 데 있다는 신념, 사실은 스스로가 말하며 사실은 아무리 많아도 지나치지 않다는 절대적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관은 도대체 역사적 사실이란 무엇인가`의 문제에 봉착하게 되었다.과거에 대한 모든 사실이 반드시 역사적 사실이 되는 건 아니다.{) 카는 여기서 시저의 루비콘강 도하와 방한복판에 테이블이 있다는 두 사실을 비교하는 예를 들고 있다.- 3 -역사적 사실을 과거에 관한 그 밖의 다른 사실과 구별하는 기준은 무엇이고, 역사적 사실이란 무엇인가?어떤 역사가에게나 공통적 기초적 사실이 있고, 이것이 역사의 뼈대를 이루고 있으나 이러한 공통된 기초적 사실을 역사가들이 사용하는 원료에 속하는 것이지 역사 그 자체에 속하는 것은 아니다. 또 기초적 사실은 사실자체의 어떠한 성질 때문에 스스로 부각되는 것이 아니라 역사가들의 선험적인 결정에서 비롯된다. 사실은 스스로 말한다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어떤 사실에게 발언권을 줄것인가, 어떤 순서와 맥락으로 이야기하게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역사가이기 때문이다.과거에 대한 단순한 사실이 역사적 사실로 바뀌는 것은 역사학자에 의해 취급할 가치가 있는 사건이라고 인정되어지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이렇게 역사가에 의해 끌어 올려진 사실은 그 속에 담고 있는 주장이나 해석을 다른 역사가들이 타당하고 의미 있는 것으로 받아들일 때 역사적 사실이 된다. 결국 역사적 사실로서의 지위를 결정하는 것은 해석의 문제이며 이 해석이란 요소는 모든 역사적 사실속에 들어가기 마련이다.Ⅲ. 역사가의 해석으로서의 역사역사에 있어서의 사실의 우위 및 자율성이라는 학설에 최초의 도전이 제기된 때는 19 세기말이었다. 20 세기초 이탈리아 학자 크로체는 모든 역사는 현대의 역사라고 선언하는 역사철학을 제창하기 시작했다. 그는 역사가의 주임무는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평가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같은 생각은 1차 대전이후 실증주의, 사실주의 사조가 물러가면서 유행하기 시작했다.크로체는 영국 사상가 콜링우드에 영향을 미쳤는데, 그의 견해는 역사철학은 과거 그 자체나 과거 그 자체에 대한 역사가의 사상이 아니라, 상호관계에 있는 그 양자를 다루는 것이다 라는 말로 요약될 수 있는데, 과거의 행위는 역사가가 그 배후에 깔린 사상을 이해하지 못하는 한 그에게 있어 무의미한 것이 된다. 그러므로 모든 역사는 사상의 역사 이며 역사는 역사가 자신이 연구하고 있는 역사의 사상이 그의 마음속에 재구성된 것이다. 이러한 재구성 자체는 경험적 과정이 아니며, 또한 사실의 단순한 나열에 그칠 수도 없다. 이것이야말로 사실을 역사적 사실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 있어 오크쇼트 교수는 역사는 역사가의 경험이며 역사는 오로지 역사가에 의해서만 만들어진다 라고 말했는데 이 비판은 몇 가지 진리를 밝혀준다.첫째, 역사의 사실은 순수한 형태로 존재할 수 없으므로 순수 그 자체로 우리 앞에 나타날 수 없다. 역사적 사실은 기록자의 마음을 통해 항상 굴절되기 마련이므로 역사책을 읽을 때 우리는 책에 실린 사실보다 책을 쓴 역사가에 대해 일차적인 관심을 두어야 한다.역사적 사실이 어떻게 선택되어질지는 전적으로 역사가의 손에 달려있고, 역사가는 대체로 자기가 원하는 사실을 손에 넣으려 한다. 곧 역사란 해석이다.두 번째, 역사가는 자기가 연구하는 사람들의 마음과 그들의 행위내면에 있는 사상을 상상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역사가가 자신이 쓰고 있는 사람과 어떤 형태로든 마음의 접촉을 갖지 않으면 역사는 씌어질 수 없다.세 번째, 오직 현재의 눈을 통해서만 우리는 비로소 과거를 볼 수 있고 과거를 이해할 수 있다. 역사가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에 속해있으며, 인간 존재라는 조건에 의해 자기시대에 속박 당한다. 역사가가 사용하는 말부터 떼어놓을 수 없는 시대적인 함축을 갖고 있다. 지금까지의 콜링우드의 사관의 통찰을 통해보면 거기에는 몇 가지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역사 서술에서 역사가의 역할의 강조를 논리적 귀결점에 까지 끌고 나가보면, 결국 어떤 객관적 역사든 배제하게 되어 곧 역사란 역사가가 만드는 것이 된다.콜링우드는 가위와 풀의 역사 에 반대하다가 마침내는 역사를 인간이 머릿속에서 짜내는 것으로 본다는 견해에 이르렀다. 그러나 현존하는 해석이 어느 것이나 객관적이지 못하다고 해서 이해석이나 저해석이나 마찬가지라거나, 역사상의 사실은 원칙적으로 객관적 해석에 속하지 않는다는 식은 곤란하다. 산을 여러 각도에서 보면 모양이 달라진다고 해서 산에는 무한한 모양이 있다고 하는 것은 할 수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