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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엠파이어스타일시대 복식과 종류 평가A좋아요
    1. 엠파이어스타일 시대(1789∼1815) 복식1. 역사적 배경과 복식의 특징19세기에는 18세기에 일어난 산업혁명의 완성기로서 과학의 발달로 인한 산업의 기계화와 자본주의 사회가 형성된 시대이다. 사회계급에 있어서 자본주의 사회의 특징인 소시민의 등장으로 자유주의, 민주주의가 발달하면서 근세까지 지속되어온 왕실과 귀족중심의 패션에서 일반 시민을 중심으로 하는 대중적인 패션으로 전환되었다. 특기할만한 사실은 직물생산의 기계화로 의복재료가 대량으로 공급되고 19세기 중기에 재봉틀이 발명되면서 복식사상 처음으로 기성복의 생산과 보급이 추진되었다.기성복발달의 또다른 요인은 1870년 이후 의복이 용도와 기능별로 세분화되어 홈드레스, 테니스복, 수영복, 비치웨어 등으로 나뉘어지게 되어 복잡한 디자인의 가운과는 달리 간단한 의복종류를 생산하는 것이 쉬워진 점이다.19세기 복식의 시대구분은 복식사학자에 따라 연대가 조금씩 다르나 편의상 다음과 같이 나누었다.♧ 엠파이어스타일 시대 : 1800 ∼ 1820♧ 로맨틱스타일 시대 : 1820 ∼ 1850♧ 크리놀린스타일 시대 : 1850 ∼ 1870♧ 벗슬스타일 시대 : 1870 ∼ 1890♧ S자형스타일 시대 : 1890 ∼ 1910엠파이어 스타일 시대는 엄밀하게 말해서 나폴레옹이 황제에 즉위하여 프랑스를 다스렸던 10년 간을 의미한다. 1789년 프랑스혁명 이후 1815년 나폴레옹 1세의 제1제정까지 30년간은 복식에 있어서 이제까지의 귀족풍이 무너지고 새로운 방향이 모색되었던 시기이다. 즉, 르네상스 시대 이후 18세기 말까지 약 300년의 귀족문화를 구가한 호화스런 의상은 프랑스 혁명으로 급격히 변화되어 새로운 모드가 생겨났다.로코코의 귀족사회는 권력과 재산, 그리고 미와 우아함을 목적으로 하였기 때문에 생활은 향락에 넘쳤으며 권력을 중시하여 많은 특권을 누리었다. 이에 반해 자유, 평등을 기본으로 하는 시민사회는 권력에서 벗어나 인간의 자연적인 감성에서 발생되는 순수한 것에 생의 목적을 두었기 때문에 장식된 화려함보로뜨(culotte)를 입고 부드러운 견으로 만든 자보(jabot)를 즐겨 착용하였다.이에 반해 자코뱅당의 혁명파 청년층은 실용적인 복장이 우세하여 옷감과 색깔이 수수한 모직물로 된 실질적이고 간소한 복장을 즐겨 착용하였다. 따라서 짧고 꼭 끼는 뀔로트 대신 길고 헐렁한 판탈롱(pantaloon)에 까르마뇰(carmanole)이라고 하는 시민적 상의를 입은 것으로 귀족들의 복장과 구별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자유와 평화를 얻은 유럽인 전부가 실용성을 중요시하였으므로 일어난 현상이라 볼 수 있다.남자복장의 기본형은 코트로서 프락을 입었고, 바지로서는 꼭 끼는 뀔로트또는 발목길이의 헐렁한 판탈롱에 조끼로서 질레를 한 벌로 입었다.(1) 코트(coat)19세기 코트의 종류에는 5가지 주요 스타일이 있다. 즉 18세기부터 19세기 말까지 유행된 프록 코트 (frock caot), 1830년대까지는 day suit로서 입었으나 19세기 말까지는 이브닝 드레스로 입은 테일 코트(tail coat), 1840년대부터 신사들이 입은 재킷과 코트의 앞자락이 직각으로 잘리지 않고 뒤꼬리 부분과 사선으로 연결된 모닝 코트(morning coat), 그리고 1860년대부터 입기 시작한 것으로 앞 뒤에 박스 프리츠(box pleats)가 있고 같은 감으로 된 벨트가 있는 노포크 재킷(ncrfolk jacket)등이 있다.① 프락(frac)프락은 영국에서 전래된 상의로써 프랑스에서는 루이 16세 때 아 비 아라 프랑세즈 대신 공복으로 착용된 것으로 혁명기(1789∼1795년) 때에도 전시대와 같은 형태의 프락을 입었다. 즉 앞단이 허리부터 단에 걸쳐 사선으로 재단되었고 뒤 중심은 갈라져 있는 것이 보통이었다. 프락의 가장 특징있는 부분은 뒤꼬리 부분이 연미상으로 된 것으로 이러한 현상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변화가 없이 계속되고 있으며 칼라는 스탠드 칼라이다. 1890년대 초기에는 동철제의 단추가 두 줄로 달려 있는 프락이 유행되었는데, 이 두줄 단추여밈은 주로 장식용이어서 잠그지 않고 편한 복장인 길고 헐렁한 판탈롱을 입었다.2 판탈롱(pantaloon)프랑스혁명을 계기로 나타난 판탈롱은 제정시대 때는 꼭 맞게 되어 때로는 구귀족의 뀔로트와 외관이 비슷해짐에 따라 니트직이나 신축성 있는 직물로 만들었다. 옥감은 세로 줄무늬가 있는 것이 유행되었다.3 위싸르트(hussarde)꼭 맞는 뀔로트는 집정시대에 위싸르트라는 바지로 대치되면서부터 자취를 감추게 된다. 위싸르트는 무릎 정도 길이의 뀔로트와 판탈롱을 합한 바지로 엉덩이에는 적당한 여유가 있고 무릎아래 부터는 꼭 맞는 형태이다. 이것을 위싸르트 판탈롱이라고도 한다.(3) 질레 (gilet)질레는 수수한 색의 프락과 단색으로 된 판탈롱에 명쾌한 색상을 부여시켜 주는 의복으로서 중요했다. 형태는 종전의 것과 큰 차이가 없으나 길이가 허리선까지 짧아졌고 칼라는 작아졌으며 라펠이 있고 앞단은 두줄단추여밈으로 한 것이 많았다. 소매가 없는 것이 보통이다.재료는 눈에 띄는 색의 줄무늬나 단색의 피케를 사용하였다. 앙글로와야블파의 질레는 특히 선명한 색으로 만들어 주목을 받았다.(4) 슈미즈 (chemise)프랑스 혁명 후 복장이 간소화됨에 따라 이제까지의 장식적인 슈미즈 대신 장식이 없는 것으로 실용적인 슈미즈가 나타났다. 1807년에는 많은 장식이나 부드러운 주름장식이 없는 산뜻한 슈미즈가 모든 계층에 유행되었다. 따라서 프릴이나 레이스를 붙인 화려한 슈미즈는 주로 야회복으로 사용되었고, 보수적인 노신사만이 평상시에도 프릴을 많이 단 화려한 슈미즈를 프락 밑에 입었다. 이와 같이 슈미즈가 간소화됨에 따라 그 외관보다도 청결함에 관심을 기울여, 멋쟁이 신사는 하루에 두 번씩 깨끗한 슈미즈를 갈아 입는 것이 상식이었다.슈미즈는 주로 흰 리넨으로 12∼13cm 정도의 스탠딩 칼라를 세우고 그 끝은 뾰족하게 하여 뺨에 닿도록 입는 것이 멋쟁이의 복장이었다. 동시에 슈미즈의 소매끝에는 10cm 정도의 커프스를 달아 흰 커프스가 상의의 소맷부리로부터 보이도록 했다. 이와 같이 칼라와 커프스가 단순화 된 것, 은 의상에도 반영되었다. 1796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와 결혼하여 1804년에 프랑스 황후가 된 조세핀은 당시 패션리더가 되었다. 조세핀을 중심으로 창조되는 모드는 지극히 단순한 실루엣을 특징으로 하면서 옷감의 우아함과 아름다움, 다채로운 자수장식 등에 의해서 부르조아의 취향을 나타내었다. 직선 실루엣이 특징인 엠파이어 스타일은 제1제정시대에 전성을 이루었으므로 이러한 명칭이 붙여진 것인데, 실제로는 이미 집정시대 고전적인 아름다움이 완성되어 제1제정 이후 다시 유행되었다.1821년 경부터 나폴레옹 제정이 흔들리기 시작하자 복장양식도 차차 무너져 새로운 실루엣으로 변화되었다. 즉 어깨가 넓어져 소매 윗부분을 부풀리고 허리를 가늘게 조이고 스커트 폭은 차차 넓어져, 직선형의 실루엣에서 곡선과 각도를 가진 고딕양식으로 변형되어 갔다. 그 양상은 귀족적인 화려함을 나타냄과 동시에 낭만적인 분위기를 풍겼다.이 당시 여자의상으로서는 슈미즈 가운, 로브와 스펜서, 외투로는 플리스와 르뎅고뜨, 속옷으로는 페티코트, 드로즈 등이 있었다.(1) 슈미즈 가운 (chemise gown)총제정부시대 영국에서 도입된 고대풍의 슈미즈 가운이 유행되었다. 슈미즈 가운은 마치 그리스의 도릭키톤처럼 헐렁하고 단순한 통형으로 하이 웨이스트에 부드러운 느낌이 나며 목둘레는 데콜테되었다. 소매는 대체로 짧았으므로 팔꿈치까지 오는 장갑을 끼었다. 색은 대체로 흰색이며 스커트 단에는 꽃이나 잎을 수놓은 폭넓은 장식단이 붙은 것이 많았고, 길이는 땅에 끌리어 한 손으로 무릎이 보일 정도로 끌어 올리고 다니는 것이 유행되었다. 이 고대풍의 슈미즈 가운의 매력은 형의 단순함과 천의 부드러움에 있기 때문에 얇은 모슬린사 등을 사용하여 신체가 비칠 정도였다.슈미즈 가운에는 마치 그리스의 히메이션을 연상케 하는 크기가 다양한 투명하고 장식적인 숄을 걸쳤다.집정시대의 복식은 총제정부시대의 것을 그대로 계승하였는데, 슈미즈 가운은 이 시대에 와서는 가슴을 더욱 넓게 파고 전체적으로 부드럽고 얇은 옷감을 사용하여 직물로 더욱 호화스럽게 만든 것이다.이 로브 드 꾸르의 목둘레는 사각으로 가슴을 깊이 판 것이 많았지만 어깨를 드러낼 정도로 많이 파진 것은 아니었다. 목둘레에 꼴레뜨를 달았는데, 이 꼴레트는 모슬린에 풀을 먹여 곱게 주름잡은 것을 데콜테 넥크라인을 따라 한겹에서 세겹까지 겹쳐 단 형태이다. 이와 같은 꼴레트는 목이 파진 데콜테 네크라인 뿐만 아니라, 하이 네크라인에도 사용되었으며 대관식 이후 많은 의상에 이용되었다. 복식에 이러한 요소는 19세기 여자 의복에서 장식적인 요소로 귀중한 자리를 차지하였다.1808년 경부터 나폴레옹제정은 전성시대를 맞이하여 1811년 경에는 생활양식도 호화스러워졌다. 나폴레옹의 두 번째 황비 마리 루이스는 죠세핀의 뒤를 이어 그 당시 패션리더로 그녀의 의상은 수를 화려하게 놓거나 의복전체에 금·은박을 하여 호화스럽게 치장하였다.1808년 경 엠파이어 스타일에도 다양한 변화를 보여 부드로운 스커트는 단이 넓어지고 스커트 길이는 발목이 보일 정도로 짧아지게 되었다. 소매와 목둘레에도 변화를 보여 소매는 단순한 의상형태에 변화와 환상을 주는 주요부분으로 짧게 퍼프한 소매, 어깨에서 드레이프를 내며 짧게 묶어준 소매, 긴 소매를 여러 줄로 묶어준 매머룩 소매, 퍼프된 짧은 소매 위에 투명한 천으로 된 긴 소매를 겹치는 것과 같은 여러 가지 형식이 있었다.②로브 드 빼르깔르(robe de percale)로브 드 빼르깔르는 올이 치밀하고 얇은 면의 일종인 빼르깔르로 만든 로브로 1804∼1825년 경 여름 의상으로 애호된 것이다. 형태는 직선적인 실루엣에 하이 웨이스트로 드레스 길이는 발이 보일 정도였다. 소매는 특징적인 매머룩 슬리브이고, 등에는 좁고 긴 주름을 잡아 얇은 옷감의 특성을 잘 나타내었으며, 목에는 곱게 주름잡은 꼴레트가 어깨를 덮은 드레스이다.(3) 외투복식을 한층 돋보이게 하는 외투의 종류는 간편한 스펜서와 칸주·플리스·르뎅고뜨에 이르기까지 다양하였다.①스펜서(spencer)스펜서는 총제정부시대부터 방한용 외투로서 유행되었.
    인문/어학| 2001.10.21| 16페이지| 1,000원| 조회(4,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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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례의 정의 및 종류 평가A+최고예요
    1. 제례(祭禮)의 정의제례는 제사를 지내는 여러 가지 의식과 예절을 말하며 조상에 대한 제사는 돌아가신 조상을 추모하고 생명의 근원에 대한 감사의 최소한의 표현으로 효의 한 방법이기도 하나 신명(神明)을 받들어 복을 받고자 하는 의미도 있다.과거의 유교적인 관습이 깊게 자리잡고 있었던 우리나라의 가정을 보면 제례가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의미가 되었으나, 현대의 가정에서는 종교적인 의미에서 제례가 아주 없을뿐만 아니라, 조상의 영령(英靈)에 대한 숭배심과 추모의 뜻이 나날이 희박해져 가고 있다. 이런 현상은 자기 자체가 생성될 수 있었던 그 근본인 선조들에 대한 최소한의 도의심(道義心)마저 고갈되어 가고 있는 안타까운 실정이다. 이것은 결국 나 스스로를 부정하는 발로이다. 조상의 은덕에 감사하지도 않을뿐더러 작은 성의라도 보이지 않은 현대인의 몇 몇 기본적인 생각 자체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더 심각한 상황으로 발전될 수 있다. 결국 근본이 없고 뿌리가 불확실한 가통으로 될 것이다.현대인은 개개인 누구라도 조상의 은혜에 감사할 줄 알고 진정한 추모의 정성을 지녀야 됨은 금수(禽獸)가 아닌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라면 결코 망각해서는 안될 진리이다.한 집안에서 4대(代)에 걸친 조상을 받들어 모셔온 것이 우리 민족의 고유전통이었으나 근래에 와서는 고유양속(固有良俗)도 시대의 조류를 따라 그릇된 평가를 내리는 사람들도 많이 생긴 것이 현실이다.개인적으로 내가 속한 가정에서 지내는 제례는 3대까지 걸친 조상을 모신다. 나의 할아버지와 증조할아버지 그리고 증조할머니까지 제례를 지낸다. 제사의 형태로는 기일제, 생신제, 연중절사를 지내는데, 그중 연중절사는 구정과 추석, 정월대보름만 지낸다. 나의 가족은 특별히 가지고 있는 종교는 없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제례는 당연히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간혹 주변의 가정을 보면, 종교(기독교)가 있다고 하여 제례는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다. 종교의 규율이 있다고 하여 제례를 행하지 않다고 하지만 자신들의 편의에만 맞춰서 한다든지 하는 그런 행사라도 있었으면 하는 것이 어떨까 하는 개인적인 생각이다.2. 제례의 종류예서 가운데에 일반적으로 통용하는 가례(家禮)와 사례편람(四禮便覽)에 나타나 있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제례의 종류에는 사당제·사시제·기일제·이제·묘제의 다섯가지와 그 밖의 제례로 기갑제·생신제·연중절사·흉제가 있으며 종교식 제례로 분류할 수 있다.(1) 사당제(祠堂祭); 사당에 조상들의 신주를 모셔 두고 제사를 드리게되는데, 외출할 때의 예로 출입례, 명절이나 초하루 보름 때의 제사와 집에 일이 있으면 고유하는 등 수시로 사당에 드리는 제사와 간략한 의식을 말한다. 사당에는 부모에서 고조부모까지 4대와 국가 사회에 크게 유공한 선조의 불천위 신주를 모신 곳이다.(2) 사시제(四時濟); 계절 따라 지내는 제례로서 봄에는 2월, 여름에는 5월, 가을에는 8월, 겨울에는 11월에 지내는데 지금은 향교, 서원, 전통 유가의 가묘에 남아 있기도 하나 거의 없어지고 있다.(3) 이제( 濟); 이제란 부모님께 올리는 제사를 말하고 부묘(父廟)를 이( )라고 부르며 가깝다는 뜻이다. 이제는 다른 제사와는 달리, 살아 계실 때 입은 부모의 은혜를 못잊은 자식이 가을의 추수를 마치고 부모에 대한 사모의 정을 이기지 못하여 정성 들여 지내는 제사이다.(4) 사갑제(祀甲濟); 회갑 전에 돌아가신 부모의 회갑이 되는 날에 드리는 제사이다. 살아 계실 때 회갑 잔치를 못해드렸기 때문에 돌아 가신 뒤라도 무심히 지나치지 않고 올리는 제사로서 기제의 의식과 같으나, 헌작(술을 오리는 일)을 3잔만 하는 것이 아니고 여러 잔을 드릴 수 있는 것이 다를 뿐이다.(5) 생신제(生辰濟); 돌아가신 부모님의 생신날을 맞아 지내는 제사이다. 그러나 이 생신제는 돌아가신 부모의 삼년상을 지내기 전까지만 지낸다.(6) 연중절사(年中節祀); 연중절사란 명절을 맞아 조상에게 제사 지내는 것을 말한다. 민속 명절에는 원정(元正 : 설), 원소절(元宵節 : 대보름;정월15일), 삼진(三辰 : 3월3일), 한식, 단오(忌日濟 또는 忌濟); 기일이란 부모가 돌아가신 날을 말하는데 기라는 것은 금한다는 뜻으로 다른 일하기를 꺼리어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이날을 휘일(諱日) 이라고도 하는데 휘는 피한다는 뜻으로서, 기와 휘의 뜻이 비슷한 말이다.기제는 해마다 사망한 날에 지내며 직계 자손들이 빠짐없이 참여하며 가까운 친척이나 친지도 선대의 은덕을 기리며 슬퍼하면서 추모의 정을 새롭게 하여 지극한 효성의 마음으로 제사를 지내야 한다. 제주는 고인의 장자 또는 장손이 되며 이들이 없을 경우에는 차자 또는 차손이 제사를 주제한다.상처한 경우에는 남편이 주제자가 되어야 하나 그의 자손이 제주가 되며 자손이 없는 남편 제사에는 아내가 제주가 된다.제삿날 3일 전부터 재계( 戒)를 힌다. 재계란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 부정한 일을 멀리 하는 것을 말한다.제를 행하는 사람은 남녀 간에 마음을 가다듬고, 심신을 깨끗이 하기 위하여 목욕을 하고 새옷으로 갈아 입으며 음식과 행동을 삼간다. 술을 마시는 일과 고기를 먹는 일을 삼가고 남의 조문을 가지 아니하며 음악도 즐겨 듣지 않고 그 밖의 흉한 일이나 더러운 곳에 참여하지도 않으며 가지도 않는다.가) 제수(祭需)차리는 법; 제수란 제사에 쓰이는 제물을 말하며 정성을 다하여 깨끗하게 차려야 한다.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는 제상, 병풍, 돗자리, 향로, 향합, 모사 그릇이 있어야 하고 제수를 담을 제기가 있어야 한다.신위(고위) 신위(비위)메 잔 국 수저 메 잔 국국수 고기 적 생선 떡탕 탕 탕 탕 탕포 숙채 간장 침채 김치 식혜(나물) (동치미)대추 밤 배 감 기타 조과생과축판 모사 향로 향함 퇴주그릇 제주메(밥),삼탕(소탕, 육탕, 어탕), 삼적(소적, 육적, 어적), 채소(산채, 야채, 택채(콩나물), 침채(동치미), 편(떡), 포(북어, 건문어, 건전복, 오징어, 육포), 유과(산자, 채고강정, 매작강정), 당속(옥춘, 오화당, 원당, 빙당, 매화당, 각당),다식(녹박, 송화)전과(연근, 생강, 유자), 과일(대추, 밤, 감…), 제주(제일 남쪽 앞에 과일줄로 4과를 쓸 때는 대추, 밤, 배, 감(조율이시)을 순서대로 진설하고 6과를 쓸 때는 조율이시 순으로 놓고 뒤에 기타 생과나 조과를 진설한다. 그 뒷줄 즉 넷째줄에는 나물과 포혜(말린 생선과 식혜), 간장, 김치 등을 놓고 셋째줄에는 탕줄이며, 둘째줄에는 적과 고기, 자반 국수, 편을 놓고 첫줄에는 메, 잔대(술잔), 국, 시첩 순으로 진설 하면 된다.☆제수의 진설하는 방법이나 제사순서와 방법이 사색당파, 신분 가문에 따라 다소의 차이가 있으나, 정성이 중요하다. 제찬 진설의 방법에 관해 기억해 둘 말들이 있어 소개한다.·생동숙서(生東熟西)라 하여 김치는 동쪽, 나물은 서쪽에 놓으며, 어동육서(魚東肉西)라 하여 생선은 동쪽, 고기는 서쪽에 놓는다. 동두서미(東頭西尾)라 하여 생선의 머리는 동쪽, 꼬리는 서쪽으로 향하도록 하고, 좌포우혜(左脯右醯)라 하여 포는 왼쪽, 혜는 오른쪽에 놓고 건좌습우(乾左濕右)라 하여 마른 것은 왼쪽, 젖은 것은 오른쪽에 놓는다. 홍동백서, 접동잔서란 말도 있으나 적중한 말이 아닌 것 같다.나) 출주(出主); 출주는 사당으로부터 기일을 맞이하여 신주를 정침으로 모셔 내는 의식이다. 주인이 사당에서 분향하면 축관은 출주축을 읽고 나면 집사가 정위와 부위의 신주를 받들어 앞서면 주인과 주부가 뒤를 따른다. 주인은 주독을 열어 모든 고위신주(考位神主)를 내어 모시고 주부는 모든 비위신주( 位神主)를 내어 모신다.다) 지방(紙榜); 지방은 신주가 없을 때 임시로 만드는 조상의 표상이다. 지방은 백색 한지로 만들며 신주의 모양과 같이 위쪽은 둥글게하고 아래쪽은 평평하게 하며 크기도 신주의 몸체 앞면의 크기와 같이 높이 24센티, 너비 6센티 정도로 한다.신주는 주상 내외분을 따로 만들지만 지방은 한 장에 내외분을 함께 쓰기도 한다. 사진이나 초상화를 모실 때에도 반드시 글씨로 된 신주나 지방을 함께 모시는 것이 바람직하다. 위의 경우 고위(남자 조상)의 사진은 위패나 지방의 서쪽에 모시고 비위(여자의 조상)의 사진은 위내는 순서※ 제사는 다음과 같은 순서로 지낸다.·강신(降神); 강신이란 신위께서 지상에 내려오셔서 음식을 두시기를 청한다는 뜻이다. 강신에 앞서 제주가 신위를 모셔 오는 뜻으로 대문 밖까지 나갔다가 들어오며, 지방에 따라서는 제사를 지낸 후에는 신위를 전송하여 대문 밖까지 나갔다가 들어오는 풍속도 있다.강신은 제주 이하 모든 참사가(參祀者)가 차례로 선 다음 제주가 신위에 앞에 나아가 끓어 앉아 분향하고, 우집사(右執事 : 아들이나 조카가 맡는다)가 잔에다 술을 조금 따라 제주에게 주면 제주는 이를 받아서 모사 그릇에 세 번 나누어 붓고 빈잔을 우집사에게 되돌려 주고 일어나서 재배한다.그런데 강신은 지낼 때에 향을 피우는 것은 위에 계신 신을 모시고자 함이요, 술을 따르는 것은 아래에 계신 신을 모시고자 함이라고 한다.·참신(參神); 강신을 마치면 제주와 모든 참사자가 신위를 향해 재배한다. 신위를 모셨을 때는 참신을 먼저 하고 지방일 때에는 강신을 먼저 한다.·초헌(初獻); 초헌이란 제사 때에 처음으로 신위에게 술을 올리는 것을 말한다.제주가 신위앞에 나아가 끓어 앉으면 좌집사가 제상의 고위(考位) 앞에 놓인 잔반을 집어서 제주에게 주고, 우집사가 잔에 술을 가득 붓는다.제주는 술이 담긴 잔반을 왼손으로 잡고 오른손으로 술잔을 들어 모사 위에 세 번 부은 다음 다시 두 손으로 잔반을 받들어 집사에게 주어 고위에게 올린다.비위( 位)에게도 이러한 절차로 잔에 술을 부어 올린다. 그리고 메의 뚜껑을 열고 저(箸:젓가락)를 고른 다음에 뒤로 조금 물러나 끓어 앉았다가 독축이 끝나면 두 번 절한다.집사는 아헌 전에 잔반의 술을 퇴주(退酒) 그릇에 붓고 빈 잔반을 본디의 자리에 놓아 둔다.·독축(讀祝); 독축이란 축문(祝文)을 읽는 것을 말한다. 축문은 초헌이 끝난 다음 제주와 모든 참석자들이 끓어 앉고 제주의 왼쪽에 축관(祝官)이 끓어 앉아서 읽는다.♧축문은 엄숙한 분위기를 조성(造成) 하기 위해 목소리를 가다듬은 다음에 천천히 크게 읽어야 한다.축문 읽기가 끝나면다.
    인문/어학| 2001.10.21| 10페이지| 1,000원| 조회(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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