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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시경제] 각국의 지급준비금에 대한 이자지급
    1. Friedman의 논리Friedman에 의하면 성장하는 경제하에서 민간독점기업은 제품의 공급을 증가시키기만 하면 수익을 무한하게 증대시킬 수 있지만 정부는 과도한 화폐발행으로 인해 오히려 정부수익을 감소시킬 수 있다. 이는 화폐의 추가적인 발행이 민간의 정부에 대한 청구권의 실질가치를 떨어뜨려 정부의 수익을 늘리기도 하지만 실질국민소득의 규모가 커지고 있는 상황하에서 민간의 화폐수요규모가 커짐으로써 발생하는 정부수익에 대한 증가효과가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상쇄될 수 있기 때문이다.이상과 같은 주장은 최적화폐량(OQM) 자체가 정부에 의해 자체조달이 가능하다는 논리를 제시하고 있다. 즉, 정부가 m의 수익을 이용해서 실물자본을 구입하고 그것으로부터 투자자금 m을 조성한다. 그리고 πm의 수익과 투자기금수익(rm)으로 기존화폐발행액에 대한 이자를 지급한다. 정부는 πm뿐 아니라 rm까지의 수입이 가능하기 때문에 화폐에 대한 이자 지급이 가능하다.V=πm+rm=Rm즉, 일반인이 맡긴 예금액에 대한 지준금에 대해서도 이자를 지급해 줌으로써 최적화폐량(OQM)을 달성할 수 있다.2. 주요국의 지급준비금에 대한 이자지급 현황2.1. 미국미국의 지급준비제도는 1980년에 개편된 이후 현재까지 그 골격이 유지되어 오고 있다. 그 주요내용을 항목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지급준비제도의 적용대상 기관은 1980년 예금금융기관 규제철폐 및 통화관리법 에서 규정한 모든 예금수취기관(국법은행, 주법은행, 상호저축은행, 저축대출조합, 신용조합 등)이다.지급준비대상채무는 거래계정, 비개인정기예금과 유로커런시 채무(euro-currency liabilities)로 구성된다.지급준비율 수준은 거래계정의 경우 예금규모별로, 비개인정기예금의 경우에는 계약기간별로 각각 차등 지급준비율이 부과되며, 유로커런시채무의 경우에는 동일 지급준비율이 부과되고 있다. 1992년 4월 이후의 지급준비율을 보면 순거래계정의 경우 4백만달러 이하는 면제되고 4백만달러 초과 51.9백만 달러이하의 예금잔액에 대 0%로 다시 인하하여 사실상 지급준비의무가 면제되고 있다.지급적립 방식은 순거래계정의 경우에는 2주일 평잔 2일 이연 적립방식을, 비개인정기예금 및 유로커런시채무의 경우에는 2주일 평잔 30일 이연 적립방식을 채택하고 있다.지급준비금은 미 연준 가맹은행과 연준에 예금계정을 개설하고 있는 금융기관의 경우 각 지역 연준에 직접 예치하여야 하고, 연준 비가맹 금융기관의 경우에는 연준에 계정을 보유하고 있는 다른 지급준비대상기관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예치토록 하고 있다. 연준은 각 금융기관에 대하여 지급준비금의 일부를 시재금(vault cash)의 형태로 보유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연준에 예치된 지급준비금에 대해서는 이자를 지급하지 않으며 금융기관의 실제보유 지급준비금이 필요지급준비금에 미달하는 경우에는 부족액에 대하여 재할인금리에 연 2%point를 가산한 이율을 적용하여 과태금을 부과하고 있다. 다만 계약에 의해 일정규모 이상을 예치토록 한 결제준비계정(clearing balance)에는 이자를 지급하고 있다.스펜서(Milton H. Spencer)는 그의 저서 Contemporary Economics에서 지급준비금에 대한 이자지급에 관한 찬반논쟁의 각기 논점을 소개한 후 미국 FRB가맹은행의 무이자 지급준비금예치에 따른 비가맹은행과의 불공정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으로 가맹은행의 지급준비금에 대한 이자지급을 허용하는 법안을 제정할 것을 주장한 바 있으나 미국은 1980년 예금금융기관 규제철폐 및 통화관리법(Depository Institution Deregulation and Monetary Control Act;MCA)"의 제정으로 비가맹은행뿐만 아니라 저축대출조합, 신용협동조합 등 모든 예금 수취 금융기관으로 지급준비제도를 확대 적용하였다.2.2. ECB지급준비대상기관은 모든 신요금융기관(credit institution)이며 지급대상채무는 예금, 금융채, 단기금융상품(money market paper) 등이다. 금융기관 보유현금은 지급준비자산에서 제외되 거주자와 비거주자로 구분하여 비거주자에 대한 채무에 대해서는 높은 지급준비율을 적용해 왔으나 1995년 6월 이후에는 모든 예금에 대해 거주자 및 비거주자를 구분하지 않고 단일 지급준비율을 적용토록 하고 있다.지급준비금 예치의무대상기관은 제도도입 당시에는 신용은행 및 저축은행만을 대상으로 하였으나 1983년 이후 저당은행 및 건축대출조합까지 확대 적용하고 있다.지급준비대상채무의 범위는 표시통화를 불문하고 거주자와 비거주자의 요구불예금, 정기예금 및 저축예금과 단기 및 중기 차입채무 등으로 되어 있는데 만기 4년 이상의 예금 및 차입채무는 지급준비대상채무에서 제외하고 있다.지급준비율은 모든 지급준비 대상기관에 대하여 동일한 율을 적용하되 예금종별로는 각기 다른 율을 적용하고 있는데 1987년 2월 1일 지급준비율 조정 이후 요구불예금은 6.6%∼12.1%, 저축성예금은 4.15%∼4.95%의 비교적 높은 수준을 유지하였으나 1995년 8월 1일부터 요구불예금은 2%, 저축성예금은 1.5%∼2%로 대폭 인하하였다. 그러나 유럽경제통화연합(European Economic and Monetary Union:EMU)의 3단계가 1999년 1월 1일부터 발효됨에 따라 EMU 가입국가의 통화정책 수립에 관한 권한은 유럽중앙은행(ECB)으로 이양되어 1998년 12월 1일 제정된 ECB의 최저지급준비금의 적용에 관한 규정 에 따라 1999년 1월 1일 이후 2%로 통일되었다.지급준비금 보유 형태는 미국과는 달리 시재금은 지급준비금으로 인정하지 않으며 독일연방은행에의 예치금만을 지급준비금으로 인정하고 있다.독일의 경우에도 미국과 마찬가지로 지급준비금에 대한 이자는 지급하지 않으며 필요지급준비금에 부족이 발생할 때에는 롬바르크대출 금리에 연 3%point를 더한 이율 내에서 과태금을 부과하고 있다.2.4. 영국영국의 지급준비 대상기관은 인가은행, 외국은행의 국내지점, 예금수취기관 등 은행법상 금융기관 및 국립지로은행으로 되어 있으며, 기금준비 대상 채무가 1천만 파운드 미만인드화 전환액으로 되어 있다.지급준비율은 다른 나라의 경우와는 달리 모든 지급준비대상 채무에 대하여 단일율(uniform ratio)을 적용하고 있는데, 1981년 8월 현금준비제도 도입이후 1986년 8월에 종전의 0.5%에서 0.45%로 인하한데 이어 1992년 1월 이후 0.35%를 유지하고 있다.지급준비금은 독일 및 일본과 마찬가지로 전액 중앙은행에 예치하도록 하고 있으며 동 예치금에 대해서는 이자를 지급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지급준비금 부족에 대한 제재규정은 없으나 영란은행이 해당 은행에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다.2.5. 프랑스프랑스의 지급준비제도 적용대상 금융기관의 범위는 은행뿐 아니라, 할부금융회사, 부동산금융회사, 저축금고, 도시신용금고, 예금공탁금고, 프랑스부동산금고, 국립신용회사 및 지역개발회사 등 제2금융권에 속하는 금융기관 모두 포함된다.지급준비대상채무의 범위는 거주자의 프랑스예금, CD, 금융채, 환매조건부 채권매도액 및 외화채무 등으로 되어 있는데 만기 2년초과 예금, 주택저금, 서민저축통장예금 및 저축금고의 A형 통장예금(이자소득세 면제)은 지급준비대상에서 제외되어 있다. 또한 지급준비대상 채무중 3천만 프랑 이내의 채무에 대하여는 해당 지급준비율의 1/2을 적용하고 금융기관의 신설 영업개시 후 예금잔액이 1억 프랑에 도달할 때까지는 지급준비를 면제하고 있다.지급준비금의 보유형태는 전액 중앙은행인 프랑스은행에 예치금으로 보유하도록 하고 있는데 프랑스은행과 직접 예금거래가 없는 금융기관은 연합회 등을 통해 프랑스은행에 예치토록 하고 있다.지급준비금에 대하여 이자는 지급하지 않고 있다. 일시적인 지급준비금 부족이 발생한 경우에는 그 부족액에 대하여 1일물 콜금리(월평균)에 연 3%point를 더한 이율을 적용하여 과태금을 부과하고 있는데 만성적 또는 고의적인 지급준비금 부족이 발생한 경우에는 연 44%의 고율을 적용한 과태금을 부과한다.2.6. 일본일본의 지급준비 대상기관은 도시은행, 장기신용은행, 외국은행 국내지점 등 은행금융기관뿐만 아국제거래계정(Special International Transaction Accounts) 예치금잔액은 지급준비대상채무에서 제외하고 있다. 금융채에 대한 지급준비율은 은행 및 장기신용은행에 대해서만 부과되고 있다.지금준비율의 적용에 있어서는 농림중앙금고를 제외한 전 대상 금융기관에 대하여 동일한 율을 부과하되 대상 채무별로는 각기 다른 율을 부과하고 있는데 1991년 10월 16일 변경된 이후 현재까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지급준비금은 전액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에 예치하도록 하고 있는데 일본은행과 당좌거래가 있는 기관의 경우에는 당좌예금으로, 다른 지급준비대상 금융기관의 경우에는 기타 예치금으로 보유토록 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 등과는 달리 금융기관의 시재금은 필요지급준비금의 보유액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그러나 미국과 마찬가지로 일본은행에 예치된 지급준비금에 대하여 이자를 지급하지 않고 있으며, 실제보유 지급준비금이 필요지급준비금에 미달하는 경우는 그 부족액에 대하여 재할인금리에 연 3.75%point를 더한 이율로 과태금을 부과하고 있다.2.7. 대만지급준비대상기관은 예금은행과 우체국이며 대상채무는 예금, 신탁, 기타부채 등이다. 금융기관보유 현금도 지급준비자산으로 인정되며 중앙은행 예치금은 갑호준비금과 을호준비금으로 나누어진다. 은행이 수표를 발행할 경우 그 발행금액에 해당하는 액수를 중앙은행에의 갑호 준비금이나 현금으로 보유하여야 하는데 갑호준비금은 금융기관간 지급결제를 위해 사용가능하다. 필요지준금에서 위의 갑호 준비금과 현금을 제외한 금액이 을호 준비금인데 이는 인출이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금융기관간 지급결제용도로 사용할 수는 없으나 이를 담보로 중앙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을 수 있다. 갑호준비금에 대해서는 이자를 지급하지 않지만 을호준비금은 연 4%의 이자를 지급한다.3. 우리나라의 경우우리나라의 지급준비제도는 은행금융기관을 대상으로 한 지급준비제도와 비은행금융기관을 대상으로 한 지급준비제도로 대별된다. 은행금융기관에 대한 지급준비제도는 1950년 「다.
    경영/경제| 2002.12.13| 7페이지| 1,000원| 조회(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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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아시아 금융위기의 원인 평가A+최고예요
    Ⅰ. 아시아의 금융위기1997년 태국을 시발로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한국 등 아시아 여러 나라들에서 번진 통화위기의 불길은 여전히 잡힐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일부 나라들은 모라토리움 일보 직전에서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에 의해 간신히 위기국면을 넘겼지만 불안과 혼란은 상존하고 있다. 근래에 이르러 회자됐던 이른바 '아시아·태평양 시대'는 시작과 함께 종료를 맞이하고 있는 느낌이다. 아시아의 경제위기는 그 자체로 그치지 않고 미국, 유럽의 동요와 나아가 세계경제 전체의 공멸로 이어질 수 있는 우려도 없지 않다.아시아의 경제성장은 종종 기적에 비유된다. 그러한 경제기적을 가능케 한 국가주도 발전 경험을 유교자본주의라고도 말한다. 그러나 유교자본주의는 정부가 기업을 관치금융에 의해 도와주고 이 과정에서 정경유착과 지대수수가 이루어지는 부정부패의 소지를 안고 있다. 이러한 관주도 경제운영 방식은 지구화 시대에는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 개방된 글로벌 경제아래에서 국제규범은 국가의 중상주의적 역할에 제동을 걸뿐만 아니라 국내기업도 민족의 이해 보다 자본의 논리에 더 충실하게 움직이기 때문이다.아시아 경제위기의 근인(近因)은 국가 주도 경제발전 방식의 한계에 있지만 원인(遠因)으로 핫 머니를 중심으로 한 초국적 금융자본의 투기에도 있다.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총리가 세계금융계의 큰손 소로스를 '돼먹지 않은 투기꾼'이라고 비난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겠다. 투기성 핫 머니는 국경의 장벽이 없어진 지구 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주식과 채권을 중심으로 하는 포트 폴리오 투자를 통해 돈굴리기를 한다. 그렇다고 이러한 사이버 머니의 장난에 아시아 금융위기의 책임을 모두 돌려서는 안된다. 우리의 경우 국제금융시장에서 기업과 은행의 방만한 차입과 무리한 대출에 더 큰 문제가 있음은 물론이다.어쨌든 세계 금융거래가 무역거래의 무려 40배에 달하는 작금의 현실에서 자본거래는 실물거래를 보완하는 수준을 넘어 투자수익이라는 독자적 이해에 따라 움직인다. 앞으로는 선후진국을 부실화의 우려가 있는 은행과 금융회사에 대해 대손충당금을 증액 적립할 것을 명령하면서 확산되었다.주가도 대형 부동산회사의 부도를 우려한 외국인 투자가들의 주식매도의 확대로 97년 3월 5일에 SET(Stock Exchange of Thailand)지수가 26point 하락하는 급락세를 보여 1992년 이래 최저치를 보였다.97년 5월초에 Natural Park사 등 대형부동산회사의 추가적인 부도소식이 전해지면서 태국 주식시장은 폭락장세를 보여 SET지수가 626.57까지 하락하였다. 97년 5월 9일에는 바트화에 대한 투기적 공격이 다시 재연되자 태국중앙은행은 84년부터 유지해 온 복수통화군제도의 포기루머를 불식시키기 위하여 바트화의 환율결정방식을 현행대로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내었다. 97년 5월 14∼16일 기간중 태국 중앙은행의 외환시장 개입과 외환통제조치에 힘입어 태국의 바트화가치는 일시적으로 회복되는 기미를 보이기도 하였다.97년 6월 30일 태국의 Chavalit총리는 바트화에 대한 투기적 공격에도 불구하고 평가절하는 없을 것이라고 발표하였으나 7월 2일 사실상의 평가절하를 의미하는 관리변동 환율제도(managed floating)의 도입을 발표하였다.태국의 바트화 가치는 변동환율제를 채택한 7월 2일 하룻동안 24.70 baht/dollar에서 29.55 baht/dollar로 16% 폭락하는 등 일주일 동안 20% 이상 폭락함으로써 외환위기가 공식화되었다.7월 11일 이후 태국의 금리, 환율면에서 평형관계를 유지하던 필리핀의 폐소화, 말레이시아의 링기트화, 인도네시아의 루피아화가 동시적으로 외환 투기의 대상이 됨에 따라 바트화도 다시 하락하였다. 특히 10월 중순 이후 대만의 주가폭락, 홍콩통화에 대한 투기적 공격, 일본의 금융불안 등의 형태로 외환위기가 본격화되자 바트화는 급락세를 보였다.1.2 외환위기의 원인태국 통화가치폭락의 주요 원인은 경상수지적자가 경제규모에 비해 지나치게 악화되는 등 거시경제가 근본적으로 건전하게 운용되지 못했기 때문행에 의한 외화 대출이 급증함으로써 부동산 부문에 과열 경기가 초래되었다.재정수지 또한 자본유입의 초기단계에서는 흑자를 시현함으로써 통화흡수요인으로 작용하였으나 95년 이후 재정적자가 확대되어 오히려 정부부문이 통화량 증가를 주도하였다.세 번째로 관리변동환율제를 채택하기 전까지 경직적인 준고정환율제도를 실시함으로써 심각한 무역적자에도 불구하고 바트화가 과대평가되어 향후 평가절하를 기대하는 환투기꾼들의 투기적 매각을 촉발하였다.환율정책의 경직성으로 인하여 통화정책의 유효성이 낮았기 때문에 태국 경제의 성장둔화가 가시화되는 상황에서 태국 정부가 신축적인 경제운영을 위해 조만간 변동환율제도를 도입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기대가 확산되었다.네 번째로 외환관리정책상의 미숙을 들 수 있는데 자본계정 거래에 대한 외환의 지급 및 해외이전이 국내시장 발달정도 및 금융감독체계의 구축정도에 비해 너무 일찍 자유화됨으로써 자본의 국경간 이동성 정도가 급속히 높아진 것이 그 이유이다.태국의 외환당국은 97년 5월에 있었던 소규모 바트화 위기시 도입하였던 일부 자본거래에 대한 외환통제를 너무 일찍 해제함으로써 외국인 투자가에게 자본 유출의 경로를 마련한 것이다. 즉, 외국인 투자가들의 바트화 시장접근이 5월 이후 금지되었다가 6월 13일에 해제됨으로써 채권 등 만기 도래한 투자자금의 지급과 해외이전이 자유로워졌다. 그러나 태국의 외환당국은 한국과는 달리 단기외채에 대비하여 외환보유고를 어느 정도 유지·비축하는 정책을 취해왔다. 97년 6월 당시 단기외채 대비 공적외환보유고의 커버비율이 68.8%로서 한국의 48.5%에 비해 현저히 높았다.다섯 번째로 금융기관의 부실화와 금리인하의 필요성 증가를 들 수 있다.태국의 금융시스템은 증권시장 등 자본시장의 발달이 미흡하여 상대적으로 은행이 금융자금의 대부분을 중개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는 경제 침체시 은행의 자산가치가 급격히 감소될 가능성이 많음을 의미한다. 이에 대해 태국의 금융감독당국은 부실 채권의 감소를 위한 조기시정조치를 단행에도 불구하고 동남아국가들에 대한 통화위기 의식이 팽배해지면서 루피아화 가치는 1997년 9∼10월 들어서도 계속 하락세를 보였다.통화가치가 계속 하락하자 증시침체, 기업의 달러표시 부채부담 가중, 정부의 고이자율 정책에 따른 기업의 자금조달비용 상승 등의 많은 문제점들이 노출되면서 국내 경제에 대한 극도의 불안감이 팽배해졌다. 주가 지수는 1997년 7월까지만 해도 700대롤 유지하였으나 8월 들어서는 500선으로 폭락하였으며 12월 들어서는 300선까지 하락하였다. 인도네시아, 태국 및 한국의 주가지수{96말97.7.27월말8월말9월말10월말12월말인도네시아*************47472401태 국831568*************66한 국651*************713761997년말 현재 인도네시아의 총외채는 1,374억 달러에 이르고 있는데 이중 50% 이상이 민가부채로서 달러에 대한 루피아화의 가치하락과 그와 동시에 나타난 엔화에 대한 자국 통화가치하락은 기업들의 외채 상환에 큰 부담이 되었다.2.2 외환위기의 원인첫 번째로 인도네시아의 루피아화 가치 폭락은 태국의 여파가 직접적인 원인이 된 것은 사실이나 근본적으로 당시 루피아화가 고평가 되어 있었고 경제 기반이 취약했다는데 기인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를 포함한 동남아 대부분의 국가들은 달러 중심의 환율정책을 유지해왔던 관계로 미 달러가 강세를 보이고 엔화가 약세를 유지하면서 이들 국가의 통화가 고평가 되었다. 인도네시아는 그 동안 꾸준히 자국 통화를 평가절하를 시켜왔음에도 불구하고 97년 7월에 16.5% 정도 고평가 되었던 것으로 알려져 왔는데 이는 환투기꾼들의 공격의 빌미를 제공하였다.두 번째로 인도네시아는 수입 원부자재 및 자본재와 자국의 저임 노동력을 결합하는 형태에 크게 의존하여 왔는데 중국과 베트남 경제가 부상하면서 이러한 수출구조로는 더 이상 국제 경쟁력을 유지하기가 어려웠다. 이러한 요인과 함께 세계 경제가 둔화됨에 따라 인도네시아의 수출 증가는 1995년 18.0%에서 1996년, 그리고 가전부문에서의 세계적 경기저하로 하여 한국경제는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수출총액의 거의 20%를 점하고 있던 16메가 메모리 칩의 가격은 세계적인 생산능력 과잉, 수요감소, 대만과 싱가포르의 신규 시장참여로 50불 이상 수준에서 1997년 중반에는 7불 이하로 주저앉았다. 한국 재벌들은 이러한 칩 부문의 생산설비 건설과 확장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했으며 대부분 달러기채의 단기차입에 의존했다. 뿐만 아니라 경기순환 주기상 하향국면에 있던 철강, 자동차, 조선 그리고 섬유 부문 등의 수익성 저하가 겹치면서 재벌들은 더이상 각 투자 부문간의 상호지원도 불가능하게 되었다.놀라운 것은 수출가격이 1996년에 이어 1997년에 더욱 악화되었는데도 당해 기업들은 채산성이 낮은 수출을 지속하였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수출 물량을 급격히 늘려 왔다는 것이다.1996년말 , 특히 1997년초 수출가격 하락과 시장 점유율 감소로 하여 지속적인 성장에 의해서만 오직 높은 부채비율을 감당해 나갈 수 있었던 재벌들은 더이상 채무이행을 감당하기 어렵게 되었다. 결국 그들은 도산하게 되었고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부실채권을 떠안게 된 은행들은 지불불능에 직면케 되었다.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했던 것은 그 동안 급속히 누증되어온 1,000억불의 단기성 달러 외채로써 그것들 모두가 1998년 말 이전이 만기일 뿐 아니라 그 중 400억불은 특히 1998년 3월 말 이전에 모두 만기가 도래하는 것들이었다. 게다가 그 동안 이어져 온 원화 강세로 하여 달러로 상환하게 되어 있는 달러 차입분의 상환 부담이 늘어남으로써 한국의 실질 외채규모는 1,500억불을 넘을 수도 있는 것으로 추정되기도 했다.이미 내연하고 있던 한국 금융시장의 혼란은 1997년 1월초 한보철강이 60억불 규모의 부채를 진 채 파산하면서 표면으로 끓어올랐다. 엄청난 기업부채의 원만한 해결 전망과 1,000억불 이상으로 추정된 -더군다나 70-80%가 1년 미만 만기인 - 단기성 외채의 연장 가능성에 대한 확신의 결여를 반영했다.
    경영/경제| 2001.03.30| 12페이지| 1,000원| 조회(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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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모에 대하여 평가A+최고예요
    1. 스모의 유래스모의 출발점은 민간에서 행해지던 자연발생적인 단순한 힘겨루기 놀이에 있었으나, 한편 신화나 궁정의례와 관련되면서 그 내용에 상징적인 요소를 첨가하기도 하고, 흥행적인 면으로도 조직화되고 세련되어 왔다.우악스럽게 힘만을 겨루는 것이 아니라, 종교 의례적인 요소를 연출하며, 또한 엄격하게 예의 범절을 지키는 가운데, 아기자기한 요소를 볼거리로 제공하는데 그 묘미가 있다. 이런 묘미를 잘 엮어서 발전시켜 온 스모는 오늘날 인기 스포츠이자 '일본의 국기(國技)'로 정착되기에 이르렀다.기록에 나타난 스모의 기원을 논할 때는 대개 「古事記」나 「日本書紀」의 신화를 인용한다. 물론 신들의 세계를 이야기하는 과정에 등장된 스모이기 때문에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고대인들의 소모에 관한 인식을 읽어 낼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된다.다케미카즈치신(建御雷神)과 다케미나카타신(建御名方神)이라는 두 신이 벌인 힘겨루기 내기에 관한 기사나, 노미노스쿠네와 다이마노케하야(當麻蹴速)의 격투에 관한 기사는 일본의 스모에 관한 역사를 말할 때면 반드시 등장되는 이야기이다.흥미롭게도 일본의 스모에 관한 가장 오래된 사실은 우리의 역사와 관련되어 있다. 서기 642년에 왕이 백제에서 온 사신을 환대하기 위하여 궁정에서 병사들 가운데 장사를 뽑아 스모를 하게 했다는 기록이 「日本書紀」에 전해지고 있다.그 후 스모는 정기적인 궁정의례의 하나로 오랜동안 행해졌다. 중앙집권의 강화를 위한 목적으로 왕은 신하들을 불러서 여러 가지 형식으로 여는 잔치인 세치에(節會)를 계속했다. 세치에 가운데는 스모세치에도 있어서, 440년간이나 지속되었던 일은 스모의 역사와 성격과 방향을 결정짓게 했다.중세에 권력이 조정으로부터 무사들의 손으로 넘어가자, 스모는 무사들 사이에 전쟁을 위한 연습이나 일상의 신체 단련 등, 이른바 실전용의 무술로서의 실용적 의미가 강조되었다. 가마쿠라막부 설립 후 1189년에 장군 미나모토요리토모(源賴朝)는 가마쿠라의 쓰루오카하치만신사(鶴岡八幡宮)에서 스모 대회 그 목적을 벗어나서 리키시 자신들의 생계 유지의 수단으로서 상업성을 띤 흥행물로 바뀌어 갔다.이 무렵에 형성된 스모 대회의 흥행적인 성격은 오늘날에도 잘 전승되어 있다. 요즘에도 매년 6차례씩 정기적으로 열리고 있는 본대회인 오오즈모의 양식은 간진스모의 양식을 이어받은 것이다. 간진스모는 처음에는 교토와 오사카를 중심으로 흥하더니, 1750년을 전후하여 에도로 주도권이 옮겨졌다. 이에 따라 스모를 운영하는 조직도 효과적인 흥행을 할 수 있도록 변화되었다. 서민문화의 대두라는 당시의 사회 체제에 맞추어 스모 집단의 인적 구성과 경기진행 제도 등을 정비하던 것도 이 시기였다.도쿠가와(德川) 막부가 붕괴되고 메이지유신에 의한 새로운 정치제도는 지금까지의 영주의 비호 아래서 활동하고 있던 리키시들에게 한동안 큰 타격을 주었다. 문명 개화의 풍조에 따라서 젊은 관리들로부터 [스모란 벌거숭이로 사람들 앞에서 추는 미개한 춤]이라며 비하되었다.설상가상, 1871년에는 단발령이 발표되어 리키시들도 일반인들처럼 머리를 짧게 자르라는 명령이 있었다. 리키시들의 독특한 모양의 상투머리를 금지한다는 일은 리키시들로서는 매우 치욕적인 일이자 스모를 모독하는 일이라고 여겼다.그러나 마침 몇몇 고관들 가운데는 스모 애호가가 있었다. 이들의 힘으로 리키시들에게는 단발령을적용하지 않는다는 예외 조항을 두어, 리키시들은 전통적인 머리 모양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오늘날에도 리키시들은 전통적인 리키시 상투를 틀고 스모에 임하고 있다.스모가 다시 인기 회복의 기미를 보였던 것은 1889년 왕이 친히 스모를 관람하던 때부터였다. 그 후 1909년에는 스모 전용 경기장인 '고쿠기칸(國技館)'이 도쿄 시내의 료고구(兩國)에 건립되어 13,000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게 되자 스모 관람은 바야흐로 대중성을 띠게 되었다. 1925년 무렵부터는 매스미디어의 발달에 힘입어 전국민의 관심을 불러모으게 되었다.2. 스모경기의 진행 및 장소거한들이 샅바만 두른 채 혼신의 힘을 다해 힘과 기술을 겨루는 경기발견된다.경기 전후에 손바닥을 치고 손을 모았다가 벌리고, 다리를 올렸다 내렸다 바닥을 힘있게 밟는 일, 이긴 리키시가 다음에 싸울 자기편 리키시에게 물을 떠주는 일, 소금을 쥐었다가 힘껏 뿌리는 일, 상금을 받을 때 손을 좌우로 흔드는 일 등등 스모에는 의례적인 색채와 예절이 매우 중시되고 있다. 현대 스포츠의 하나인 스모 가운데서 우리는 스모의 흥행성과 종교적 성격을 동시에 발견하게 된다.일년에 여섯 차례씩 열리는 큰 스모대회를 가리켜 혼바쇼(本場所)라 하는데, 혼바쇼를 통해서 오늘날 일본 스모의 모습을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매번 15일간의 일정으로 진행되는 혼바쇼는 텔레비전과 라디오를 통해서 전국에 중계 방송되며, 신문과 잡지에서도 현장의 모습을 생생하게 소개함은 물론, 스모 세계의 숨겨진 이야기까지 구석구석 찾아내어 상세하게 보도한다.혼바쇼는 신년을 맞이하여 1월에 도쿄에서 열리는 하쓰바쇼(初場所)를 필두로, 3월에 오사카의 하루바쇼(春場所), 5월에 도쿄의 나쓰바쇼(夏場所), 7월 나고야, 9월 도쿄의 아키바쇼(秋場所), 11월 규슈의 후쿠오카에서 열리는 규슈바쇼(九州場所) 등의 여섯 차례의 정규대회가 열린다. 스모 리키시(力士)들은 하루에 한경기씩 연간 총 90일간의 대장정을 치러야 한다.혼바쇼가 열리지 않는 날에는 맹훈련을 해야 할뿐만 아니라 각 지방이나 외국을 순회하며 하는 스모, 후원 단체나 팬들에게 인사를 해야 하는 등 일년내내 바쁜 나날을 보낸다.혼바쇼가 끝날 때면 심판 위원들은 리키시들의 시합 성적에 따라 랭킹을 새로 정해둔다. 이 랭킹 일람표를 반즈케라고 한다. 반즈케는 성적이 좋은 리키시의 이름을 위쪽에 큰 글씨로 쓰고, 성적순에 따라 점점 아래쪽으로, 점점 작은 글씨로 써나간다. 입문한지 얼마 되지 않는 리키시는 반즈케에 이름이 오르지도 못한다. 리키시들은 열심히 훈련을 거듭하여 실력이 향상됨과 동시에 반즈케의 제 이름이 점점 위로, 점점 큰 글씨로 적히게 되므로, 반즈케의 변화에 대해 민감하지 않을 수 없다.혼바쇼 15일 동쇼마와시(化粧廻し)를 두르고 칼을 든 두 리키시의 호위를 받으며 등장한다. 요코즈나는 도효에 올라가서 바닥을 힘차게 밟기도 하고, 손을 힘차게 올렸다 내렸다, 벌렸다 오므렸다 한다. 이는 땅과 하늘의 신에게 도효에 부정이 타지 않도록 비는 의식이다. 시합이 정정당당하고 무사히 진행되기를 빈다는 의미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이런 의식이 끝난 다음에 비로소 동편과 서편의 리키시들이 등장하여 힘과 기량을 겨루게 된다.스모를 보고 있노라면 우리의 씨름과 그 진행 과정이 매우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도효에 오른 두 리키시는 맞붙어 싸우기에 앞서서 몇가지 의례적인 행위를 한 뒤에야 승부에 들어간다.먼저 리키시가 도효에 오르면 한쪽 발을 들어올렸다가 힘껏 내리는 동작을 한다. 몸의 긴장을 풀며 정신을 집중시키기 위한 동작이다. 동군과 서군의 리키시는 도효의 코너에 놓인 물통의 물을 국자로 퍼서 몸을 깨끗하게 한다는 뜻으로 입을 헹구고 종이로 입가의 물기를 가볍게 닦아낸다. 바로 앞에 싸웠던 리키시 가운데서 이긴 리키시가 자기 편의 다음 리키시에게 종이와 물을 떠주며 승리의 운이 이어지기를 기원한다. 진 편의 리키시는 물을 떠주지 않고 그대로 물러가기 때문에 진행위원이 떠주는 물과 종이를 받아 입을 헹구고 물기를 닦아낸다.리키시는 도효 가운데로 나오면서 놓여있던 소금을 한 움큼 집어 허공에 흩뿌린다. 이것은 소금으로 도효의 부정을 씻어낸다는 의례적인 행위이다. 보기에도 시원한 감을 주기 때문에 리키시들은 소금을 보다 멋지게 뿌리기 위한 연습도 한다.제한 시간에 이른 두 리키시는 웅크린 자세로부터 힘차게 일어나면서 격돌하는데 이를 다치아이(立合い)라고 한다. 다치아이의 힘찬 모습이야말로 스모의 핵심적인 장면이다. 힘껏 상대방을 밀어내며 자신에게 유리한 태세를 만들고 다음 공격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다치아이에 연결되는 기술 또한 볼만한 대목이다. 작전은 순간적인 판단으로 정해야 한다.리키시는 상대방에게 이기기 위해서 손, 발, 머리, 허리 등을 써서 여러 가지 기술을 않는다. 상체를 손바닥으로 치는것은 허용되나 주먹으로 때리거나 발로 차거나 머리를 잡아당기는 등의 행동은 엄격히 금지된다. 그리고 시합이 계속 대등하게 진행되어 심판의 판정으로 승자가 가려지더라도 승자 혹은 패자는 항의할 수 없으며 미소나 찡그림 이상의 표현을 해서도 안 된다.매우 드믄 일이기는 하지만 도효 위에서 허리에 두르고 있던 마와시가 풀어져 내리면 역시 심판이 패배를 선언한다. 마와시는 긴 천을 접어서 허리에 두르고 뒤에서 매듭을 지어 묶을 뿐, 풀어지지 않도록 실로 꿰매거나 다른 도구는 쓰지 않는다. 이밖에도 반칙을 해서 지는 경우가 있다. 주먹으로 상대방을 때리기, 상투를 휘어잡기, 손가락으로 급소를 찌르기, 양 손바닥으로 동시에 얼굴을 때리기, 마와시의 앞부분에 손 집어넣기, 목 조르기, 발끝으로 배차기, 꼬집기 등은 반칙패가 되어 심판은 군배를 올려 상대 리키시의 승리를 선언한다.'마쿠노우치’경기가 있기 전에 좋아하는 선수들에게 상금을 기증할 후원회사들은 경기장 주위를 둘러싸며 회사의 이름이 적힌 광고용 깃발을 걸어놓는다. 이깃발의 크기가 클수록 상금의 액수는 높아지는데 경기가 끝난 후 심판은 이 깃발ㄴ을 우승선수에게 건네준다. 우승자는 경기장의 가장자리에 웅크리고 앉아서, 영광스러운 우승을 의미하는 '테가타나'(손을 칼모양으로 뻗침)라고 불리는 제스처를 취하며 상을 받는다. 대회의 우승자는 현금과 트로피, 쌀과 '사케'(쌀로 빚은 술)등의 다양한 상품을 수여 받는다. 대회 기간동안 우승기록을 세운 '오제키’순위내의 선수들은 장외공연, 기술, 투혼 등의 3가지 부문에서 특별상을 받는다.여기에도 또한 현금보너스가 주어진다. 선수들에게 주어지는 또 다른 상으로는 '요코즈나'에 오른 낮은 순위의 선수들에게 수여하는 '킴보시'(최고 스타상)가 있다. 킴보시를 수상하면 남은 활동기간의 봉급이 크게 인상된다.4. 선수들의 생활견습선수들은 주로 고등학교 재학 중에 모집된다. 소년의 가족이 동의하면 ‘오야카타’(선수촌 감독)는 그를 견습생으로 받아들이는데
    인문/어학| 2001.01.23| 10페이지| 1,000원| 조회(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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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럽통화동맹(EMU) 평가A+최고예요
    Ⅰ. 유럽통합의 역사유럽통합의 역사는 유럽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것이다. 유럽은 지정학적으로 국가간 국경이 맞닿아 있어 수많은 분쟁과 전쟁을 경험하면서도 그 해결을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그 속에서 기독교와 그리스·로마 문화라는 종교적·문화적 공통성은 유럽통합을 가속화시키는 요소로 작용했다.다분히 역설적이기도 하지만 진정한 유럽통합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시작됐다. 전쟁의 참혹함을 경험한 유럽은 물질적·정신적·도덕적으로 피폐해졌고, 세계사 속 리더의 자리를 미국과 소련에 물려줘야만 했다.유럽통합의 궁극적 목표는 유럽의 경제적 번영과 정치적 평화다. 그 중 경제통합의 일차적 목표는 공동시장을 형성해 경제적 효율성을 증진시키는 것으로 설정됐으나, 보다 큰 의미는 경제정책과 정치외교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유럽합중국의 기초를 세우는 데 있다.2차대전 직후 국제통화제도는 달러 중심의 고정환율 금본위제인 브레튼우즈체제에 의해 운영됐고 미국은 달러화의 위력으로 정치·군사·외교·경제 등 모든 면에서 최대강국으로 군림하게 된다. 그러나 60년대 후반 군비 과다지출 등으로 미국의 국제수지가 악화되고 1973년 유류파동으로 경제침체가 장기화됨에 따라 브레튼우즈체제는 서서히 동요된다. 미국의 경기침체는 금 보유고 축소로 이어지고 달러의 국제적 신인도 하락으로 달러 환율은 불안정해진다.결국 1971년 닉슨 대통령이 달러의 대대적 평가절하와 금태환 정지를 선언하면서 브레튼우즈체제는 국제유동성과 신인도 사이의 근본적 딜레마를 극복하지 못한 채 붕괴되고 만다.이에 유럽 각국은 자국 화폐의 가치상실을 우려, 공동환율제도를 비롯한 통화제도 보완에 나서기 시작한다. 이후 달러 약세에 따른 유럽 내 충격완화와 통화안정성 확보를 위해 1979년 경제통화동맹의 기초라 할 수 있는 유럽통화제도(EMS : European Monetary System)가 출범한다. 이와 함께 유럽기준통화단위인 ECU(European Currency Unit)와 환율조정기구인 ERM(Exchange Rate리히트 조약) 마스트리히트조약은 EMU의 구체적인 일정뿐 아니라 통화기구, 통화정책, 환율안정 등에 대한 광범위한 결정과 통화통합을 위한 각국의 경제수렴조건을 명문화한 조약이다. 이 조약은 EMU를 3단계로 나누어 추진할 것을 법제화했다. 제1단계(1990년 7월1일∼1993년 12월31일까지)에서는 회원국간 그리고 회원국과 제3국간의 자본 이동에 관한 규제를 완전히 철폐하고 경제·재정·통화문제에 관한 회원국들 간의 긴밀한 협력을 강화하며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확보한다. 제2단계(1994년 1월1일∼1998년 12월31일까지)에서는 유럽통합을 주도해 나갈 유럽통화기구(European Money Institute)를 설립하여 회원국간 경제수렴을 촉진하며 EMU 출범에 필요한 구체적인 준비를 담당하도록 한다. 마지막 제3단계(1999년 1월1일부터)에서는 유럽중앙은행제도(European System of Central Bank)를 창설하고 단일통화를 도입함으로서 EMU를 공식 출범시킨다. 이 단계에서는 순수고정환율제가 채택된다.개정 및 재정안정화 협약 서명이 있었다. 1998년 5월 2∼3일에 브뤼셀에서 EU 특별정상회담이 열려 초기 참여국으로 11개국이 확정되고 EMU 참가국간 환율과 참가국 통화의 전환환율(conversion rate)을 결정하였다. 98년 7월 1일에 본부가 있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유럽중앙은행 업무 시작되었다. 1998년말에 각국 통화와 유럽단일통화 `유러'간의 환율을 결정하였다.유러화 도입은 3단계로 나눠 진행한다. 1999년부터 시작되는 1단계에서는 금융기관 기업 관공서 등이 장부상의 거래로만 유러화를 사용한다. 주식·채권과 같은 증권들도 유러화로 표기한다. 물론 유러화를 도입, 시행하는 11개국은 통화환율이 1999년부터 유러화에 고정되고 더이상 변하지 않는다. 유러화의 지폐와 동전이 실제로 시중에 유통되는 것은 2단계 일정인 2002년 1월 1일부터이다. 이때부터 6개월간 일반인은 자국화폐와 유러화를 함께 사용하면서 유러화를 천천히 ir) 노동당 정부로서도 EMU 참가여부 및 시기 결정이 가장 힘든 정책결정 사안이었다. 국가의 경제적 이익을 고려할 경우 조기 참가가 유리하나, 국민여론은 국가주권 침해와 파운드화 포기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EMU 참가에 극히 부정적이었다.그러나 EMU가 99년에 출범함에 따라 과거 보수당 정권 때처럼 애매모호한 태도를 계속 보이는 것은 국론 분열의 심화는 물론 국익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 더욱이 최근 외환시장에 영국의 EMU 조기참여 기대감이 확산되고, 국내 산업계는 물론 영국에 진출해 있는 외국계 기업들 (GM, Toyota, BMW 등) 마저 EMU 조기참가를 촉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브라운(Gordon Brown) 재무장관은 지난 1997년 10월 27일 '2002년이후 EMU 참가’를 주된 내용으로 하는 영국정부의 EMU정책을 공식 발표하였다. 노동당 정부는 EMU 정책을 영국의 국운과 직결되는, 가장 중요한 의사결정이라고 역사적 의의를 부여하고 있는 상태이다. 노동당 정부는 EMU가 성공할 경우, 영국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기본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EMU 참가여부를 결정할 때에는 국민투표 실시할 예정이다. 현재 영국은 차기 총선(2002년 5월) 이후 참가할 계획으로 차기 총선 이후 EMU에 바로 참가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작업 착수 중이다. 2002년 Euro지폐 및 주화 통용에 대비한 구체적인 준비작업중이며, 99년 Euro도입에 대비한 산업계의 준비작업 가속화를 유도하고 2002년 이후 EMU참가에 대비, 민관 합동으로 준비작업을 하고 있다.그리고 EMU대비 민관 상설위원회(중앙은행 총재, 산업연맹회장, 재무부 장관, 무역위원회 위원장, 영국 상공회의소협회 회장등 5인으로 구성) 출범시키고, EMU 대응준비 세미나를 전국을 순회하면서 개최하고 있다.유로화의 출범과 관련하여 세계금융시장에서는 11개 유로화 창설회원국들의 잇따른 금리인하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즉, 1998년 10월말 이태리 등 여타 회원국로 실행하는 기구로 위상이 약화된다.의 역할이 어떻게 설정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현재 유럽 국가들의 최대 과제는 평균 10%를 초과하는 고실업 현상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를 위해 새로 집권한 독일, 프랑스, 영국 등 EU 회원국의 좌파정부들은 재정지출의 증가와 긴축적 통화정책의 완화 등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예를 들면, 이태리 정부는 회원국의 중앙은행들이 유럽중앙은행의 출범 이후 초과로 보유하게될 막대한 규모(약 2000억 달러 이상으로 추산 됨)의 달러화를 각 회원국의정부로 이관시키고 이를 매각함으로써 재정 지출 증대를 위한 재원을 마련하자고 주장한 바 있다.또, 16년만에 집권한 독일의 사민당도 임금부대비용의 경감을 통한 기업경쟁력 강화를 도모하는 한편, 특히 분데스방크에 대해서는 추가적 금리인하 등의 압력을 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유럽중앙은행과 일부 회원국 중앙은행들은 이러한 회원국 정부들의 정책노선에 대해 매우 강경하게 반발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그 한 예로서, 유럽중앙은행의 뒤젠버그(Duisenberg) 총재가 스페인, 포르투갈, 스웨덴 등 3개국의 금리인하를 발표하는 11월 3일의 기자회견 석상에서『(실업 등의) 구조적인 경제문제들을 통화정책을 수단으로 하여 해결할 수는 없다』는 견해를 분명하게 밝힌 사실을 들 수 있을 것이다.또 독일 분데스방크도 이러한 유럽중앙은행의 정책기조에 찬성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독일의 신정부가 원하는 추가적 금리인하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종합적으로 평가하건대, 유로화 출범 이후 단일통화정책과 단일외환정책을 실시하는 책임을 맡게 될 유럽중앙은행과 EMU에 참여하는 11개 회원국의 정부 사이에는 통화정책의 결정과정에서 이러한 긴장관계가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여진다.한편에서 유럽중앙은행은 국제법적인 지위를 가진 마스트리히트조약에 의해 매우 강한 통화정책적 독립성을 보장받고 있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 회원국 정부들은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는 고실업을 해소해야 조기에 사용이 확산 될 것으로 예상된다. 유러는 통화가치가 검증되지 않은 문서상의 통화이지만, 환위험 제거, 환거래 비용의 절감 등 많은 이점을 보유하고 있다. 2002년 이전에 대부분의 비현금거래가 유러화로 결제될 전망이다. 소비자들은 초기에는 다소 혼동을 겪을 것이나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일상 생활에서의 유러화 사용이 점차 보편화될 것이다. 현금은 아니지만 신용카드, 수표, 전자현금 등의 형태로 유러화 사용되는 것이다.유러화가 국제통화로 사용됨으로써 EU는 많은 경제적 혜택을 향유할 것이다.첫째로 연간 300억 달러(EU GDP의 0.5%)의 외환거래 비용 절감 효과가 있다. 유러경제권이 누리게 될 국제적 세뇨리지(seignorage)는 연간 25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세뇨리지는 국제통화를 보유한 국가가 누리는 경제적 이익을 말하는데, 한 예로 미국은 경상수지 적자에도 불구하고 외국으로부터 돈을 빌려서 이자를 지급할 필요가 없으며 發券으로 대처가 가능하다.둘째로 역내무역에 있어서 최대 장애물의 하나였던 통화장벽이 제거됨으로써 유럽국가간 교역이 대폭 활성화될 것이다. 특히 현재 전체교역의 60%를 차지하는 역내교역 비중이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일 예로 남부유럽 국가들의 저렴한 상품이 독일, 프랑스 등 핵심국가로 유입될 수 있다. 앞으로는 세제, 사회보장제도, 예산, 노동시장 등의 분야에서도 수렴과 통합이 가속화될 전망이다.셋째로 유럽금융시장의 확대되어 주식시장 및 채권시장이 급성장하여 미국에 버금가는 거대 금융시장 탄생할 것이다. 유럽주식시장은 저금리, 공기업의 민영화, 기업간 M&A 증가, 국가간 주식투자 활성화, 막대한 연기금의 증시 유입 등 각종 好材 기대를 기대하고 있다. 넷째로 성장률이 상향되고 고용이 증가될 것이다. EU경제는 오는 2010년까지 연간 0.3%p 추가성장과, 2.0%p 실업률 감소 효과가 발생(IMF 예측)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지중해연안의 라틴계 국가들과 아일랜드가 상당 기간 경제성장의 혜택을 누릴 것으로.
    경영/경제| 2001.01.22| 8페이지| 1,000원| 조회(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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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적자금백서
    생산일 : 00. 9.19報 道 資 料-------------------------------------이 자료는 2000년 9월 23일 조간부터 사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제 목 :「공적자금 백서」발간주요내용□ 정부는 공적자금에 대한 국민의 이해와 관심을 높이기 위해 공적자금의 조성·운용 및 회수에 이르기까지 상세한 내용을 담은 백서를 발간하였음ㅇ 정부는 공적자금에 관한 궁금증이 쉽게 풀릴 수 있도록 친절히 설명하려고 노력하였음- 공적자금의 지원을 연대기 형식으로 상세하게 기술하였고 이외에도 금융권별, 지원주체별로 공적자금 지원내역을 밝히는 등 다양한 측면에서 설명하였음- 또한, 공적자금 관련기관(금감위, 예금보험공사, 자산관리공사)의 주요 의결사항과 일지를 첨부하였고 전문용어에 대해서는 '참고'를 통하여 설명하였음- 연구기관의 자료, 외국의 사례 등을 최대한 인용하고 관련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하였음□ 정부는 공적자금 백서 발간을 계기로 향후의 공적자금 운용이 더욱 투명하고 객관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며 그 일환으로 구조조정이 마무리될 때까지 1년 단위로 백서를 발간할 예정임 공적자금 백서의 구성과 주요 내용보도자료 생산과 : 금융정책국 금융정책과 (☎ 500-5341)재정경제부 공보관Ⅰ. 백서의 구성□ 백서는 "공적자금의 조성, 지원 및 회수, 성과와 평가" 등 3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체분량은 약 530여 페이지임ㅇ 제1장에서는 공적자금의 조성배경과 조성내역을 설명- 97년말 우리 경제의 모습과 위기발생의 원인을 서술한 후 금융구조개혁의 원칙, 체계 등을 설명하고 공적자금 조성의 필요성을 언급- 부실채권정리, 증자지원, 예금대지급 등 목적별로 공적자금 조성내역을 설명ㅇ 제2장에서는 공적자금의 지원 및 회수현황·전망을 설명- 공적자금의 개념을 정의한 후 공적자금의 지원원칙과 의사결정체계를 서술하고, 시기별·금융권별·자금지원주체별 공적자금 지원내역을 상세히 설명·시기별 지원내역에서는 "외환위기 직후의 초기 구조조정 시기, 1998년 4월환하는 것이 아니고 지급보증만을 하였으므로 정부예산이나 국가부채에는 포함되지 않고 양 기금이 동 채권을 상환할 수 없을 경우에 최종적으로 정부의 부담으로 귀착되는 정부의 우발채무임(IMF기준)□ 편의상 공적자금과 구별하여 지칭하고 있는 "공공자금"이란 금융구조조정을 위해서 지원된 자금중 64조원의 공적자금이외의 다른 자금들을 총칭하는 것으로ㅇ IBRD, ADB로부터의 차관자금, 국유재산관리특별회계에서 금융기관에 현물출자한 자금, 공공자금관리기금에서 금융기관의 후순위채권을 매입한 자금, 국책은행에 대한 출자금, 자산관리공사 또는 예금보험공사가 차입한 자금을 포함ㅇ 동 자금은 64조원의 공적자금이 조성되기 이전에 지원되거나 법률적으로 공적자금으로 지원하기 곤란한 경우에 지원된 것으로서 해당 법령에 따라 국회승인, 국무회의 의결 등의 절차를 거쳐 조성된 것임2. 공적자금의 투입이 불가피한 이유(p.31)□ 예금자 보호ㅇ 회생가능성이 있는 금융기관은 도산하지 않도록 공적자금을 지원함으로써 예금을 보호하는 한편ㅇ 객관적인 경영평가 결과 회생가능성이 없는 금융기관은 퇴출을 시키는 대신에 공적자금을 통하여 예금을 지급하게 됨- IMF위기 이후 많은 금융기관이 퇴출되었더라도 안심하고 금융기관에 예금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공적자금의 지원에 힘입은 바가 큼□ 금융중개기능의 회복을 통한 경제위기의 극복ㅇ 금융기관이 부실해져서 도산하게 되면 금융중개기능이 마비되어 기업이 제대로 활동할 수 없고 결과적으로 국민경제 전체가 침체되고 실업이 증가될 수 밖에 없음ㅇ 금융기관을 건실하게 함으로써 이러한 외부효과를 조기에 차단하고 최소화하고자 공적자금을 지원하였고 그 혜택은 전국민이 누리는 것임□ 금융기관 스스로의 자금조달 곤란ㅇ 금융기관을 건실하게 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나, 경제위기하에서는 자산가격과 대외신인도의 하락으로 다른 금융기관, 기업, 외국자본 등으로부터의 자금조달이 사실상 곤란ㅇ 재정이 대체로 흑자기조를 유지해 온 우리나라의 경우 재정을 통한 자금조달이 좋은 대안이 실채권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있는 요주의여신(당시 3개월이상 연체) 50조원까지 포함한 불건전여신을 총 118조원*으로 추정* 실제 확정치는 112조원 수준ㅇ 향후 기업구조조정과정에서 기업의 자구노력을 통해 부실채권이 축소될 가능성도 있는 점을 감안하여 정리해야 할 부실채권의 규모를 100조원으로 예상ㅇ 부실채권 매입소요: 25조원- 100조원의 부실채권중 손실분담차원에서 금융기관이 50%를 부담하고 나머지 50%를 자산관리공사에서 반값수준에서 매입정리한다고 가정ㅇ 증자소요: 16조원- 100조원의 부실채권 정리과정에서 발생하는 매각손 50조원에서 대손충당금 기적립액 15조원을 차감한 35조원의 순손실에 대한 증자와 BIS비율 8%미만 은행의 추가증자소요 4조원을 합한 39조원을 총증자소요액으로 추정- 손실분담차원에서 증자소요의 50%는 금융기관이 부담하고 나머지 19조원을 정부가 지원하는 것으로 추정·단, 이미 98.1월에 제일·서울은행에 3조원을 출자하였으므로 신규증자지원소요는 16조원으로 함ㅇ 예금대지급 소요: 9조원- 정리중인 종금사, 향후 정리가 예상되는 금고, 신협, 증권사의 예금대지급소요를 전망ㅇ 이에 따라 총 50조원의 자금을 추가조성하기로 결정⇒ 98.5월현재 정부보증을 받아 기사용했던 14조원*의 자금과 합하여 총 64조원의 공적자금이 조성됨(*예금보험기금 6.5조원, 부실채권정리기금 7.5조원)·예금보험기금 : 31.5조원 ---→ 43.5조원·부실채권정리기금: 32.5조원 ↑ 20.5조원12조원이관(99.8월, 국회변경동의)7. 공적자금 지원내역(p.65)가. 총 괄□ 64조원의 채권발행자금을 통한 공적자금은 채권발행시한인 99년말까지 전액 사용ㅇ 이중 25.3조원을 회수하여 약 18.6조원을 재사용ㅇ 용도별로 보면 증자에 24조원, 예금대지급 등에 24조원, 예보를 통한 자산매입 등에 4조원을 사용하고, 부실채권 정리에 30조원을 사용(회수재원 활용분 포함)* 공적자금 사용실적(회수분 재사용 포함)(단위: 조원)구 분예금보험기금부실채권정리 활용하여 출자에 28.7조원, 출연·예금대지급에 26.3조원, 자산매입등에 4조원을 지원하였음* 자산관리공사로부터 차입한 자금 2조원으로 투신사의 출자한 자금을 포함□ 정부ㅇ 10.2조원의 국유재산을 제일·서울은행, 한국·대한투신, 특수은행에 현물출자를 하였고,- 총 4차례에 걸쳐 공공자금관리기금을 통하여 은행의 자본확충을 위해 후순위채 6.4조원을 매입하였으며,- 정부예산을 통하여 특수은행의 증자를 위하여 2.3조원을 사용하였음* 이외에도 한국은행의 수출입은행에 대한 증자(7천억원)가 있음8. 공적자금 회수현황과 향후전망(p.248)가. 공적자금 회수현황□ 자산관리공사는 2000년 8월말 현재 매입부실채권 75.7조원(장부가기준)중 약 45%수준에 달하는 34.1조원을 국내외 매각 또는 자산담보부증권의 발행 등을 통해 정리하여 17.9조원을 회수ㅇ 34.1조원의 부실채권을 매입할 때 투입한 공적자금은 15.9조원이었기 때문에 부실채권의 정리를 통해 자산관리공사는 1.9조원의 매각이익을 거둠□ 예금보험공사는 2000년 8월말 현재 투입한 59조원의 공적자금중 7.5조원을 회수하였는 데ㅇ 이는 예보의 투입자금 회수방법중 아직 보유주식의 매각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데 원인** IMF와의 합의사항: 정부보유주식의 제값매각을 위해 정부출자은행의 경영정상화가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2002년하반기이후부터 매각을 개시하기로 함ㅇ 예보는 공사내 채권회수전담조직의 설치, 파산재단의 감사위원참여 등을 통해 회수에 노력하는 한편ㅇ 정부도 2000년초「금융산업의구조개선에관한법률」및「예금자보호법」의 개정을 통해 예보의 자금회수기능을 강화- 예보 직원이 영업정지된 금융기관의 경영관리인, 청산 또는 해산된 금융기관의 청산인·파산관재인의 역할을 수행- 부실금융기관이 부실에 책임이 있는 임직원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게을리 할 경우 일정한 요건하에 예보가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대신하여 행사나. 향후 공적자금 회수전망□ 공적자금은 잠재적 부실의 우려는 있으나 회수가능성이 있는 도래함ㅇ 예금보험공사의 경우 2001년 1.5조원을 시작으로 2006년까지 채권의 만기가 도래하고 이자융자 상황은 2001년부터 도래함10. 공적자금 지원의 성과(p.263)□ 신용경색해소를 통한 경제위기 극복ㅇ 자금중개기능 회복을 통한 신용경색 현상을 완화* 기업자금조달 추이(증감, 조원)9798992000상반기은행대출(신탁포함)17.9-3.619.016.1(중소기업)4.2-1.317.59.5(대 기 업)13.7-2.31.56.6회사채(순)13.832.21.5-9.5주 식3.113.541.08.2CP(순)9.816.6-17.91.6* 자료 : 한국은행, 금융감독원- 외환위기 직후 30%대까지 올랐던 금리도 98년 중순이후 외환시장의 안정과 금리인하 정책에 힘입어 99년 하반기에는 회사채금리가 사상 처음으로 한자리수로 하락ㅇ 금융중개기능의 정상화로 기업들이 자금을 원활히 조달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실물경제도 상승세로 반전- 경제성장률 : △6.7%(98) → 10.7%(99) → 12.8(2000.1/4)- 실업율 : 6.8(98) → 6.3(99) → 5.1(2000.1/4)□ 국제신인도 회복ㅇ 국제신인도 : 외환위기 직후 "투자부적격" → "투자적격"* 국가신용등급 추이S&P종전97.10.2411.2512.1112.2398.2.1799.1.2511.11AA-A+A-BBB-B+BB+BBB-BBBMoody's종전97.11.2812.1112.2199.2.1212.16A1A3Baa2Ba1Baa3Baa2Fitch IBCA종전97.11.1811.2612.1112.2398.2.299.1.196.242000.3.30AA-A+ABBB-B-BB+BBB-BBBBBB+□ 금융산업 체질 개선의 전기 마련ㅇ 97말이후 2000.7말까지 480개의 회생불가능한 부실금융기관을 인가취소·합병소멸·해산 등을 통해 정리ㅇ 구조조정결과 금융기관의 효율성과 생산성이 크게 제고* 금융기관의 인원감축 및 효율성 개선인원수(명)1인당 자산(억원)*97말98말증감97말98말증감일반은행114,61975치)
    경영/경제| 2001.01.22| 23페이지| 1,000원| 조회(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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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4월 21일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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