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문학 수용의 역사漢文은 중국을 중심으로 하여 한국, 일본, 동남아 등지에 전파되어 수천년간 지속되어 왔다. 중국이 한대 이후 분열기가 짧고, 통일된 시기는 대단히 길어서 한 방언이 채용되어 국어가 될 기회가 없었으며, 2천년간의 과거(科擧)시행의 지속으로 동아시아에서의 漢文의 권위는 보존될 수 있었다. 한문(漢文學)이 한국문화의 중심을 이뤘던 만큼 한문으로 대표되는 중국의 문화는 한국문화 전반과 문학사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한국 문학사를 살펴보며 중국문학과 문화의 유입과 수용과정을 살펴보자.한문학이 언제 중국으로부터 한국으로 유입되었는지 정확한 연대는 알수 없지만, 대개 B.C.108년에 한무제(漢武帝)가 우리 나라에 사군(四郡)을 설치하여 이것이 약 4세기 동안 계속하였으며 중국보다 훨씬 미개하였던 우리 나라가 이것을 계기로 비약적인 발전을 하였으며, 한문학도 이동안에 본격적으로 유입되고, 우리 선조들 사이에 차차 학습되었다. 이후 삼국시대에는 唐太宗이 태학을 증설하여 다수의 외국 유학생을 수용하게 되자, 실제로 신라 등에서 몇천의 유학생들이 唐으로 파견되었고, 그들의 질적양적의 성과는 중국문화 유입에 막대한 공헌을 하였다. (한국한문학의 효시이자 최고라고 할 수 있는 최치원(崔致遠, 857∼?) 또한 당 유학파로 唐朝의 과거에도 급재한 인재였다.)또한 唐朝에서는 儒家만을 특별히 강요하지 않고, 불교, 도교에 대한 탄압이 심하지 않아 세개의 종교가 같은 세력을 유지했는데, 문학적으로는 왕유의 불교적 경향, 이백의 도교적 경향, 두보의 유가적 경향을 신라와 당과의 자유로운 교류를 통해 한국문학에서도 수용하게 되었다.고려에 이르러서는 과거제의 시행으로 한문학이 더욱 성행하게 되었으며, 당이망하고 난 후 宋의 문학이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고려의 한문학자들은 송의 문선文選과 동파東坡를 중심으로 도학보다는 문학에 중점을 두었으며, 이인로, 최자, 이규보등 한시문의 대가들이 이당시 당, 송 시문의 영향을 받았다.조선시대의 한문학에서는 두가지 큰 변화가 있었는데, 한가지는 한문소설의 성행이고, 또 한가지는 새 경향의 한문학이 대두하였다는 것이다.한문소설은 대략 신라말, 고려초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라는 견해가 많은데, 실제로 에 있는 최치원의 이야기는 문장으로나 구성으로나 당대 성행하던 전기소설과 비교하여도 별 손색이 없다. 그러나 이후 이것을 이어 발전시키지 못했는데, 조선初에 이르러서야 明의 구우의 소설 에 영향을 받은 김시습의 의 출현으로 겨우 맹맥을 잇게 되었다. 흔히 명청소설 의 유입의 영향으로 조선의 한문소설과 국문소설이 나온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나, 명·청에서 이미 소설이 그 시대를 대표하는 문학이 되었듯 조선에서도 한문이건 국문이건 간에 소설이 다른 문학에 못지 않게 발전할 사회적 조선이 성숙하였다. 이는 외국문학을 전입하고 소화하는데 있어 주체적인 조건이 충분히 구비되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서울에 거주하며 새로운 세력으로 떠오른 서이(胥吏)와 중인(中人)계급이 그들만의 시류를 형성하였고, 의 박지원을 중심으로하는 서류(庶流)계 양반들이 여전히 한문, 당시만을 고집하는 전통적인 양반계급에 대항하여 청조의 문학을 본받아 기득권층을 비판하였다.이렇게 역사적으로 보면 한국 문학은 많은 부분에서 중국문학의 영향을 받아들이고 문자마저도 중국의 한자로 통용되었던 까닭에 중국의 문학작품에서 많은 부분 제재나 소재, 주제나 사상을 수용하였다.♠ 시가에서의 한중 문학의 비교와 수용, 그리고 그 예중국문학의 원류는 고대 詩經과 楚辭로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는데, 시경과 초사는 각각 북방과 남방의 문학을 대표하는 글로써 지역과 작자에 따라 내용에 있어서도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시경과 초사에서 발전한 중국문학은 후대로 넘어가면서 다양한 시체를 생산해내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학장르의 생성에도 영향을 끼쳤다. 또한 시경과 초사에서 보여준 문학정신은 후대의 작가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었을뿐 아니라 한국의 문학사조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시가 문학에서 보면 고려시대에 한시문의 대가로서의 최충, 이인로, 최자, 이제현, 이규보 등은 주로 중국의 당, 송의 시문, 특히 이백과 두보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되었다. 이규보는 이백과는 기질적인 동질성을 지니고 있을뿐만 아니라 그 스스로를 李唐白이라고 이를 정도로 이백을 흠모하고 그의 시작품을 탐구하면서 이백의 시풍을 닮기에 힘썼다. 그리고 이규보는 서사시에서도 중국의 역사 사실을 제재로 취급하였다. 이를테면 그의 서정시 는 천보년간 이후 당현종 이융기의 방탕한 궁중생활을 소재로 한 43수의 연시 형식으로 된 영사시이다.李白의 영향을 받은 시인으로 또한 송강 정철을 들수 있는데, 이백의 세속에 대한 초월(名利榮達에 대한 仙風)과 공명심, 즉 공명적 야심과 출세 사이에서의 사상적 갈등, 또한 그 사상적 모순을 술과 시로써 구하려 했던 점까지 동경하여 그의 작품에 반영하였다. 송강의 대표적 가사집 과 에서는 이백을 상징하는 李謫仙이라는 인물이 등장시키며, 이백이 노산폭포를 두고 지은 시를 인용해 노산보다 십이폭포의 奇觀이 더 낫지 않느냐며 이적선에게 묻는 기백을 보이기도 한다. 송강의 가사집은 비록 제목은 《시경(詩經)》이나 《초사(楚辭)》에서 따온 것이지만 내용은 순수한 우리말을 구사한 창작으로 이백의 초월적이고 풍류적인 영향과 국어적 매력을 십분 활용한 훌륭한 작품이다.한편 이백과 함께 한국 시가에 큰 영향을 준 인물로는 두보杜甫가 있다. 단시정형(短詩定型)의 금체(今體)는 특히 율체(律體)에 뛰어나 엄격한 형식에다 복잡한 감정을 세밀하게 노래하여 이 시형의 완성자로서의 최고의 명예를 얻었던 두보는 그에 앞선 육조(六朝)·초당(初唐)의 시가 정신을 잃은 장식에 불과하고, 또 고대의 시가 지나치게 소박한 데 대하여 두보는 고대의 순수한 정신을 회복하여, 그것을 더욱 성숙된 기교로 표현함으로써 중국 시의 역사에 한 시기를 이루었고, 그 이후 시의 전형이 되어왔다.두보의 시 작품과 시풍이 한국에 미친 영향은 크다. 고려시대에 이제현(李齊賢) ·이색(李穡)이 크게 영향을 받았고, 중국인 채몽필(蔡夢弼)의 저작인 《두공부초당시전(杜工部草堂詩箋)》, 황학(黃鶴) 보주(補註)의 《두공부시보유(杜工部詩補遺)》 등이 복간(復刊)되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그의 작품이 특히 높이 평가되었는데, 《찬주분류두시(纂註分類杜詩)》가 5차례나 간행되었고, 성종(成宗) 때는 유윤겸(柳允謙) 등이 왕명을 받아 그의 시를 한글로 번역한 전역서(全譯書) 《분류두공부시언해(分類杜工部詩諺解:杜詩諺解)》를 간행하였으며, 또 이식(李植)의 저서 《찬주두시택풍당비해(纂註杜詩澤風堂批解)》 26권은 두시(杜詩)가 한국에 들어온 이후 유일한 전서(專書)이다. 현대의 것으로는 이병주(李丙疇)의 《두시언해비주(杜詩諺解批註)》(1958), 양상경(梁相卿)의 《두시선(杜詩選)》(1973) 등이 알려져 있다.또한 한국의 고대시학은 중국고전 시학의 영향을 받았는데, 주로 시론, 시평과 잡설을 기술하는 한국의 고전시화는 중국고전시화의 영향을 받아 쓰여진 일종 시론이다. 중국의 경우 구양수에 의해 최초로 시화라는 말이 쓰였고 송대에 와서 성행하였으며, 조선에서는 이규보의 , 이인로의 , 최자의 에서 시작하였다. 이런 시화에서는 시가의 뜻과 정을 강조한 주의론(主意論), 주기론(主氣論), 성정론(性情論), 성령론, 및 천기론등 모두 일정한 정도에서 중국고전시학의 영향을 받은 시론이다.이규보가 에서 무릇 시는 뜻을 으뜸으로 삼고 , 뜻은 또한 기를 으뜸으로 삼는다 고 강조한 것이나, 최자가 에서 시문은 기를 으뜸으로 삼고 기는 성 (性)에서 발하며 뜻은 기에 의지하며 말은 정에서 나오며 정이 바로 뜻이다 라고 지적한 주의론, 주기론, 성정론, 천기론 등 견해는 중국고전시론에서 강조한 의 기는 뜻을 말한다 , 의 시는 뜻에 있고 마음은 뜻으로 되고 그것을 말하면 시로 되고 속에서 움직이는 정을 나타내면 말로 된다 등의 시론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조선의 실재에서 더욱 풍부화되었다.♠ 소설 문학에서의 비교와 그 예, 와 소설 문학에서 보면 대표적인 예로써 중국 명나라 초 구우(瞿佑)의 의 영향을 받은 조선초의 김시습의 를 들 수 있다. 는 문언체로 쓴 단편으로 책이름은 '초의 심지를 잘라서 불을 밝혀 가며 읽을 만한 진기한 이야기'란 뜻으로, 당시 문예가 다시 고문(古文)에 복귀코자 하는 시대의 정신을 따라 명대에 들어와서부터 당시에 유행하던 백화체(白話體)의 소설을 배척하고 당나라 사람이 지은 염정(艶情)소설을 즐겨 모방하여 신이하고 괴이한 내용을 섞어서 남녀의 정사를 문어체로 기술한 것으로 걸작이라고 할만한 단편의 괴기소설집이다.는 전기소설집으로 으로도 불리는 이 소설은 전반부에서는 살아 있는 남녀간의 사랑을 다루고 후반부에서는 산 남자와 죽은 여자의 사랑을 다루고 있어서 애정소설 가운데서도 구조 유형상 명혼소설(冥婚小說) 또는 시애소설(屍愛小說)에 해당된다.金時習은 의 기법과 체제를 가지고 우리나라의 인물과 배경을 환상적으로 그려내어 를 만들어 냈으며, 이때의 독자로서 공식적으로 처음 등장하는 사람도 바로 김시습이다. 그러나 배경을 우리 나라로 하고 우리 나라 사람을 등장시켰다는 점에서 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자주적인 성격을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소설의 전반부에서 주인공은 힘겹게 사랑을 성취해 가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여기서는 '효'라는 전통적인 도덕규범과 대치하기도 한다. 후반부는 그같은 강렬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사랑이 외부적 요인으로 인해 파괴되고 좌절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의 소설적인 특성을 살펴보자면,첫째, 주인공들이 한결같이 재자가인적(才子佳人的) 인물이라는 점,둘째, 문장 표현이 한문 문언문(文言文)으로 사물을 극히 미화시켜 표현한 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