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서구인을 비롯한 외국인에게 있어 일본인은 모순덩어리로 여겨진다. 일본인은 최고도로 싸움을 좋아하는가 하면 동시에 얌전하며, 군국주의적인 동시에 탐미적이며, 완고하면서도 또한 적응성이 풍부하며, 보수적이면서도 또한 새로운 것을 즐겨 받아들인다. 그러나 서양인들의 눈에는 모순이라고 비쳐진 일본인들의 행동은 그들에게는 전혀 모순이 아니었다. 덕(德)과 악덕(惡德)은 서양인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으며 독특한 것이었다. 그것은 불교적인 것도, 유교적인 것도 아니라 일본적인 것이었다.2차 대전 당시에 행해진 일본인들의 모든 행위는 그들의 인생관을 알고, 인간의 의무 전반에 관한 그들의 신념을 아는 자료가 되었다. 일본은 계층 제도를 수립하기 위해 끝까지 싸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세계 모든 나라는 국제적 계층 조직 속에 제각기 일정한 위치가 주어져야 하며 하나의 세계로 통일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질서의 지도자는 물론 일본인인데 일본은 위로부터 아래까지 계층적으로 조직된 유일한 나라이며, 따라서 '저마다의 알맞은 위치'를 가져야 할 필요성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또한 일본은 이 전쟁을 '미국인의 물질에 대한 신앙과 일본인의 정신에 대한 신앙과의 싸움'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의 소형 비행기로 적군의 군함 속으로 뛰어들어 자폭하는 조종사들은 물질에 대한 정신적 승리의 교훈이 되었다. 이들 조종사들이 유명한 가미카제(神風)특공대이다. 심지어 일본 방송은 전투에서 정신은, 죽음이라는 자연적인 사실조차도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일본인에게 있어 군인으로서의 명예란 '죽을 때까지 싸우는 것' 이었다. 절망적 상황에 몰렸을 때 대개의 일본군은 스스로 목숨을 끊던가 수류탄을 들고 적진을 향해 돌진하던가 둘 중의 하나였지 순순히 항복하는 일은 없었다. 일본군에게 포로가 된 미군은 '항복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치욕스런 자였다. 일본군들은 한 미군 포로가 자기 이름을 본국 정부에 보고하여 자기들의 생존을 알려달라고 의뢰한 가족권 안으로 돌아오면 일체의 형식적인 예의를 벗어버리는 것과는 달리 일본에서는, 예의를 배우며, 세심한 주의를 가지고 이행되는 곳이 바로 가정이다. 일본인은 누구나 우선 가정 내부에서 계층 제도의 습관을 배우고 그것을 경제 생활이나 정치 생활 등 넓은 영역에 적용한다.이들이 계층 제도를 존중하는 것은 숨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데 그것은 절대로 '강권에 의한 것' 이 아니다. 위계 서열은 가족 내의 연장자와 연소자 간, 남자와 여자 사이에 모두 적용되는데 낮은 지위에 있는 사람은 연장자나 높은 지위의 사람에게 존경을 표시하여야 하고, 반대편은 그만큼의 권리와 책임을 가진다. 연장자의 특권은 그가 마치 폭군처럼 멋대로 권위를 행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적, 정신적 재산의 관리자와 유사한 행동을 하게 된다. 가정에서 아버지는 일가의 명예를 유지하는 강한 책임을 갖게 되는 것이다.일본은 일본 역사의 전체 기간을 통해서 현저한 계급적 카스트적인 사회였다. 일본의 봉건 사회는 복잡한 층으로 나눠지고, 각자의 신분은 세습적으로 정해졌다. 황실과 궁정 귀족 밑에 신분 순으로 무사(사무라이), 농민, 공인, 상인의 네 가지가 일본의 카스트였다. 입을 수 있는 의복, 사먹을 수 있는 음식, 생활할 수 있는 주택의 종류도 그 사람의 세습적 신분에 따라 규정되었다. 또 그 아래에 사회 밖으로 추방당한 천민 계급이 있었다. 그들은 직업을 영위하도록 허가가 주어지긴 했지만, 정식의 사회 조직 바깥에 방치되었다.천황은 바로 '알맞은 위치'의 최상부에 존재한다. 따라서 아래로는 천민에서 위로는 천황에 이르기까지 위계제도가 빈틈없이 짜여진 사회에서 살아가는 일본인들은 다른 어떤 나라 사람들보다 지도처럼 정밀하게 규정되고 모든 사회적 행동이 정해진 세계 속에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에도막부 시대에 가장 뚜렷이 나타나지만, 천황 제도와 쇼군(將軍)제도, 신도와 기타 종교 등의 여러 영역에서 각 주체가 자신의 분수에 맞게 위치를 지키며 공존하는 행동양식은 일본사회에 일관되게 나타나고 있다.동양등감을 준다. 일본인이 "나는 누구에게서 온을 입었다."라고 말하는 것은 "나는 누구에 대하여 의무의 부담을 지고 있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그들은 그 채권자나 은혜 입힌 사람을 그들의 '온진(恩人)' 이라고 부른다.온은 첫째이며 최대의 의무, 즉 '천황의 온(皇恩)' 에 대해서 사용되는 경우에는 항상 무한한 헌신이란 의미로 사용된다. 그 아래에 부모의 온이 있는데 이것은 부모로부터 받은 현실적이고 일상적인 보살핌과 수고이다. 또한 일본인은 교사와 주인에 대해서도 특수한 온을 느낀다. 어떤 사람에게서 온을 받는다는 것은 중대한 일이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대단한 짐이 된다. 또한 온의 힘은 항상 단순한 개인적인 기호를 짓밟을 수 있는 정당한 권리를 가진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그런데 일본인은 우연히 다른 사람으로부터 온을 받음으로써 보답의 빚을 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비교적 인연이 먼 사람으로부터 뜻밖의 은혜를 입는다는 것은 일본인에게 가장 큰 불쾌감을 느끼게 하는 일이다. 이웃 사람들이나 옛부터 정해진 계층적 관계에 있어서는 일본인은 온을 받는 번거로움을 알고 있으며, 또한 기쁘게 그 번거로움을 받아들여 왔다. 그러나 상대가 단순히 지인이거나, 안신과 거의 대등한 인간의 경우에는 매우 불안하게 생각한다. 그들은 될 수 있는 한 온의 여러 가지 결과에 휩쓸리는 것을 피하고 싶어한다.온(恩)이란 부채이기 때문에 갚지 않으면 안 된다. 일본인은 양(量)에 있어서나 또 계속 기간에 있어서나 무제한적인 온에 대한 보답(報恩)과, 받은 분량과 똑같이 갚고 특정한 기한에 끝나는 보답을, 각기 다른 규칙을 가진 별개의 범주로 나누고 있다. 채무에 대한 한없는 변제는 '기무(義務)'라고 불리는데, 이에 관해서 일본인은, "받은 온의 만분의 일도 결코 갚을 수 없다." 고 말한다. 기무는 양친에 대한 보은인 '고(孝)'와, 천황에 대한 '주(忠)' 라는, 두 종류의 의무를 일관해서 말하는 명칭이다. 기무라는 이 두 개의 의무는 모두 강제적이어서 어느 누구도 면할 수 없다.위한 일체의 수고로움을 조상에 대한 효심에 의존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일본인은 대단히 분명하게 자신이 받은 사랑과 보호를 자식에게 베풂으로써 조상의 은혜를 갚는다고 말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제도화된 집안의 범위를 뚜렷이 제한하고 있으므로, 이 기무의 대상이 되는 사람의 수효도 따라서 분명히 한정되어 있다.천황에 대한 주(忠)는 일본인에게 있어서 최고의 의무이다. 1945년 8월 14일 일본이 항복했을 때 세계는 이 주가 정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큰 힘을 발휘한 사실을 목격하였다. 전쟁 중의 일본인은 매우 호전적인 국민이었으나 천황이 입을 열자 전쟁은 끝이 났다. 일본은 아직 전투력이 분쇄되지 않았는데도 무조건 항복을 수락한다는 막대한 대가를 주로서 스스로에게 요구하는 능력을 사용하였다. 패전에 있어서도 최고의 법은 여전히 주였던 것이다.일본인이 잘 쓰는 말에 "기리(義理)처럼 쓰라린 것은 없다."는 말이 있다. 사람이란 기무(義務)를 갚지 않으면 안 되는 것과 같이 기리를 갚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기리는 기무와는 종류를 달리하는 일련의 의무이다. 주(忠)와 고(孝)는 일본이 중국과 공유하고 있는 덕목으로, 일본은 이 두 가지 개념에 여러 가지 변화를 주기는 했지만 동족적 유사성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기리는 일본이 중국의 유교에서 받아들인 것도 아닐뿐더러 동양의 불교에서 받아들여진 것도 아니다.기리에는 옛날에 받았던 친절에 대한 답례에서부터 복수의 의무에 이르는, 서로 이질적인 여러 가지 잡다한 의무가 복잡하게 포함돼 있다. 어떤 일본인 사전의 설명에 의하면 기리는 '올바른 도리, 사람이 좇아야만 될 길, 세상에 대한 변명 때문에 본의 아니게 하는 일'로 되어 있다. 여기서 '본의 아니게(unwillingly)'라는 말이 기무와의 다른 점을 보여 주고 있다. 기무란 어떤 사람에게 그것이 아무리 곤란한 요구라 하더라도 태어나자마자 동시에 맺어지는 강력한 고삐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당연히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의무이다. 따라서 기무가‘본의 아니게' 라고 정의의무는 사무라이의 덕과 동일시되는 것으로서 수많은 전통적 문예 작품 속에서 칭송되고 있다.일본인들은 기리의 갚음은 정확히 같은 양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점에 있어서 기리는 기무와 반드시 구별되어진다. 기무는 가령 어떤 일을 하더라도 도저히 완전하게는, 아니 완전에 가까운 정도까지도 갚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기리는 무한정한 것이 아니다. 그리하여 가능하면 언제나 노력(勞力)이든 물건이든지 간에 서로간에 주고 받은 복잡한 관계를 기입한 기록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일본인은 상대편에서 받은 선물보다 더 큰 선물을 보내는 것을 터부시한다. 그러나 기리는 만일 갚는 일이 기한보다 늦어지면 마치 이자가 느는 것처럼 커진다.이름에 대한 기리란 자기 자신의 명성에 오점이 없도록 하는 의무이다. 그것은 이전에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은 특정한 은의(恩義)에 구애됨이 없이 자기의 명성을 빛내는 여러 가지 행위이다. 따라서 그것들은 자기 위치에 맞는 예절을 다하는 것에서 직업적 명성을 드높이는 일을 포함한다. 또한 이름에 대한 기리는 비방이나 모욕을 제거하는 행위를 요구한다. 비방은 자신의 명예에 어두운 그림자를 던지는 것이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지 벗어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 명예 훼손자에 대해 복수하지 않으면 안 될 경우도 있고, 자살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경우도 있다. 일본인은 자신의 명예를 손상하게 하는 일을 그저 가볍게 얼굴을 찡그리는 정도로 끝내지 않는다.일본인은 세상에 대한 기리가 친절을 갚는 의무이며, 이름에 대한 기리가 복수를 주로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로서 기리를 구별하지는 않는다. 서구의 여러 언어들이 이 양자를 감사와 복수라는 전혀 상반된 범주로 나누고 있는 사실은 일본인에게는 분명히 이해되지 않는다. 일본에서는 훌륭한 사람은 모욕에 대해서도 그가 받은 은혜만큼이나 강하게 느끼며 어느 쪽도 그것에 보답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훌륭한 행위이다. 사람이 기리를 지키고 오명을 씻는 한, 결코 침해의 죄를 범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빚을 갚아 셈을 치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