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자료서양건축사(저자 : 정영철 , 출판사:세진사)서양의 건축문화 (炯楔 출판사)http://leecy78.com.ne.kr/intro/bank/HYENDAE/6/noname28.htmhttp://www.gunnet.co.kr/history/western/14-Greek.htmhttp://100.naver.com/search.naver?adflag=1&cid=AD*************&where=100&command=show&mode=m&id=8160&sec=1&query=%B0%C7%C3%E0%BE%E7%BD%C4http://whitemedia.x-y.net/work/contest/main2-3.htmhttp://bowhow.wo.tohttp://myhome.naver.com/tovia/archi/a1.htmhttp://www.fractal.co.kr/art/westart/index.htmhttp://art.hongik.ac.kr/~cas/text/western_artwww.a21.co.kr/witharch건축양식 建築樣式 (style of architecture)이란,건축의 재료나 기술 또는 풍토 ·민족 ·시대 등에 따라 서로 다른 건축의 기본적 형태를 말한다.각종 조건이 복합하여 생겨나는 건축양식은 크게 나누어 원시형태, 동아시아의 목조형태, 중앙 ·서아시아의 찰흙이나 벽돌로 만든 형태, 유럽 ·미국의 석조나 벽돌로 만든 형태, 현대건축 등 5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이것들은 또 각각 시대양식으로 구분할 수 있다. 유럽을 예로 들면 그리스 ·아르카이크기(期), 고전기(古典期), 헬레니즘기, 초기 그리스도교기, 로마네스크식, 고딕식, 바로크식, 로코코식, 아르누보식 등이다. 그리고 현대건축에서는 건축가의 개성에 입각한 작가의 양식에 따라서 르코르뷔지에양식, 라이트양식, 가우디양식 등으로 분류되기도 한다.양식의 해명으로 건축의 성격을 밝힐 수 있고, 그것이 만들어진 환경과 사회 또는 시대의 성격도 밝혀낼 수가 있다. 그리고 정신생활 ·문화생활 등 무형의 로 된 커다란 입구현관의 두가지 주된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디자인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이 두 부분이었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외부공간과 내부공간 사이의 판테온의 놀라운 대조는 설계자에 의해 미리 의도되었던 것으로 보인다.(17) 판테온의 건축적 형태파테온에 있어 수평과 수직의 축은 성공적으로 통합되어지고 있다. 즉 통로와 목표가 의미있는 전체를 형성한다. 주 수평축은 외부의 직사각형 모양의 마당에서 시작하여, 출입공간을 가로질러 토툰다의 주 앱스에서 끝난다. 이 앱스 부분의 아치는 맞은편 출입구 부분의 아치와 마찬가지로 엔타블레이춰를 뚫고 치솟아 있다. 이러한 형상의 두 아치는 천장에 있는 원형의 개구부와 관계를 맺으며, 주 수평축을 보강한다. 로툰다의 중심을 통과하는 교차수평축은 약화되어 있다.수직축은 로툰다의 중심을 통과한다. 로툰다의 내부에 있어 주 수평축은 반구형 돔을 가진 원형공간이 만들어 내는 중앙집중적인 효과로 인해 불분명하게 되어지며, 이때 수직축이 중앙집중식 배치의 주 구성요소가 된다. 로툰다의 내부공간은 율동적인 분절에 의해 매우 효과적으로 구성되고 있다.(18) 판테온의 건축적 의미"판테온은 하늘을 표상한다." 라는 문장은 이 건물의 주된 의미를 가장 잘 말해주고 있다. 로툰다의 내부공간은 하늘에 대한 생각이 추상화된 것이다. 판테온은 수직의 성스러운 차원을 수평의 세속적 차원과 통합시키고 있다. 여기에서 하늘과 세속이 교차된다. 판테온은 모든 인간에게 공통적인 영원한 염원 즉 자신을 초월하고, 자신을 신성한 것과 합치시키며, 이 공간이 봉헌된 신들과 함께 있고자 하는 염원을 표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건물 역시 근본적으로는 바실리카 울피아처럼, 제국과 여러신의 영원함을 전달하는 정적인 공간으로 남아 있다. 인간은 이거대한 초인간적 공간에서 제외되고 있다. 내부공간은 분절이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체에 근거한 척도로 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이는 분명히 고도로 발달된 내부공간은 분절이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체에 근거한 척소들의 질서와 비례에 의한 조화와 통일의 건축미를 창출과거의 건축요소들과 규범을 이용하여 새로운 건축을 창조해내는 알베르티의 건축구성 원리를 잘 예시한 작품- 성 안드레아 성당, 만투아, 1472~1512년- 성 프란체스코 예배당, 리미니, 1446년▶ 브라만테 (Donato Bramante, 1444~1514년)- 초기에는 화가로서 활동- 브루넬레스키, 알베르티,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영향을 받아 집중식 평면을 탐구- 성 베드로 교회, 최초 계획안로마 교황청의 현상설계에 당선된 집중식 평면 계획안- 템피에토, 로마, 1502~13년 ▷성 베드로의 순교지에 건립된 기념예배당그리이스의 신전과 로마의 판테온의건축요소를 혼합한 건축물터스칸 주범양식으로 조각작품과 같은 느낌의 건축물- 성 마리아 델라 파체, 로마, 1504년▶ 안토니오 다 상갈로 (Antonio da Sangallo, 1845~1546년)- 브라만테의 제자로서 브라만테의 영향을 받음- 파르네제궁, 로마, 1535~50년브라만테 풍의 고전적 주범, 규칙성, 단순성을 이용하여 완전한 조화와 균형, 조소성 기념성을 표현3층은 후에 미켈란젤로가 증축▶ 미켈란젤로 (Michelangelo Bounaroti, 1475~1564년)- 화가, 조각가를 거쳐 건축가로 활동- 르네상스 양식의 법칙, 규칙성에서 벗어나 건축을 시각적, 조소적 예술로 간주하여 개성적이고 독창적인 작품활동- 르네상스 후기 매너리즘 양식의 선구자적 역할- 메디치가의 능묘, 플로렌스, 1521~29년- 라우렌치아 도서관, 플로렌스, 1624~26년- 캄피돌리오 광장, 로마, 1539~47년원로원 건물의 중심으로 양측에 입면이 동일한 호민관과 미술관을 직각으로 배치하여 좌우대칭의 사다리꼴 형태의 광장을 형성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가마상을 중심으로 한 광장바닥의 타원형 문양은 세계의 중심을 상징- 성 베드로 성당, 로마, 1506~1626년∇브라만테가 돔에 의한 집중형 평면으로 최초계획후에 미켈란젤로가 브라만테으 집중형 평면계획에 전면열주와 현관을 교과과정에 도입했다.프랑스에서는 T. 가르니에가 재료·구조·구성 등을 새로운 경향으로 개척하고, 1901~04년에 '공업도시계획안'(Cite industrielle)을 제안하고 1917년 이를 발간했다. 그는 근대건축, 근대도시를 위해 철근 콘크리트를 사용할 것을 주장했다. 1903년 A. 페레는 파리의 프랑클랭가(街) 공동주택에서 철근 콘크리트의 기술적인 가능성을 과시했다. 한편 미래파 운동은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는데, 대표적인 건축가 산텔리아의 미래도시 설계가 1914년 밀라노에서 전시되었다. 그는 도시는 새로운 기술 시대의 상징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미래도시에 대한 확고한 환경을 제시할 것을 역설했는데, 1914년 '미래파 건축선언'으로 발표되었다. 독일을 중심으로 1920~25년경에 전개된 표현주의 건축은 제1차 세계대전의 패전과 제2제국의 붕괴에 따른 혼란에 대한 반작용으로, 개인적인 차원에서 예술의 내적인 느낌을 철·유리·콘크리트를 사용해 표현하는 조형적인 외부형태를 추구했다. 관련 건축가는 B. 타우트, E. 멘델존 등이다.1917년 레이덴에서 조직된 네덜란드의 데 스테일(de Stijl)은 예술 및 디자인 운동으로서, 큐비즘의 영향을 받아 서로 직교하는 직선과 단순하고 명확한 표면을 사용하며 더욱 추상적인 건축 형태 언어의 순수성을 추구했다. 이 운동에 참여한 대표적인 건축가는 J. J. 오우트, G. 리트벨트 등이다. 위트레흐트에 세운 리트벨트의 슈뢰더 저택은 데 스테일의 건축 내용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예이다.르 코르뷔지에는 근대건축의 이론적인 기초가 된 〈건축을 향하여 Vers une architecture〉(1923)를 발간하고 국제주의 건축을 지지했다. 그는 주거·도시 문제에 관해 언급하고 이에 대한 새로운 제안을 했다.볼셰비키 혁명 후의 소련은 1920년 V. 타틀린의 제3 인터내셔널 결성 이후 건축 모델은 자연보다는 기계적인 미학임을 주장한 구성주의 건축이 대두되었으나 1930년대에 스탈린 정부가 근대건축을 싫어하여 고전다.(10) 콜롯세움 혹은 플라비우스 원형투기장콜롯세움은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에 의해 시작되어서 그의 후계자인 티투스 황제에 의해 그에게 봉헌되었다. 이것은 그리이스의 극장을 원형극장으로 확장시킨 것으로, 로마인이 발명한 건물형식이다. 이 타원형의 투기장은 50000명 이상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으며, 경사가 가파른 좌석열로 둘러싸여 있다.하부구조는 방사상의 동심원 통로들로 된 복잡한 구조를 이루고 있는데, 이 통로들은 콘크리트 터널 혹은 교차 볼트로 덮여 있어서, 그 상부에 있는 좌석열의 하중을 지지하고 있다. 본래 구조체의 상부에는 큰 장대들이 설치되어 있어서 그늘을 만들어주기 위한 천막을 칠 수 있게끔 되어 있었다.투기장 하부의 지하실에는 동물우리, 검투사의 막사, 그리고 같이 싸우게 될 동물과 인간뿐만 아니라 무대장치를 올렸다 내렸다 할 수 있는 기계장치 등이 있었다.외부는 아래층의 아치로 형성된 출입구들로 그 특징적인 면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 출입구들에 의해 짧은 시간안에 넓은 관람석이 채워지고 비워질 수 있었다. 윗층의 개구부들은 관람석이 열에 신중하게 맞추어지고 있으며, 이 관람석의 열은 외벽의 지지주와 여기에 부착된 경사벽에 의해 지지되고 있다.외벽은 그 쌓기에 있어 석재들을 건식으로 결합시키고 있는데, 그리이스 건축에서처럼 못으로 고정시키고 있다. 그런데 중세 때 와서 금속을 얻기가 힘들어지게 됨에 따라 금속이음들이 약탈당하게 되었으며, 오늘날 이런 상태에서, 차들이 내는 진동으로 인해 돌이 움직여져 전체구조가 붕괴될 위험에 처해 있다.외벽의 높이는 48미터이며 세층의 각각은 아치와 볼트 축조방식에 있어 로마식의 특징적인 조합을 보여주고 있다. 각 아치는 연속되는 인방을 위에 얹고있는 2개의 부착기둥에 의해 틀이 짜여있다. 이러한 것은 로마식 아치-오더라고 불리우는데, 벽을 분절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이러한 수법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에 알베르테에 의해 다시 사용되었으며, 그 이후 신고전주의 건축에서도 사용되었다.위에서 기술한 배열방식은 구
{지은 지 오래된 건축물을 대상으로 재투자함으로써 부동산 가치를 극대화하는 건축기법으로 “제2의 건축”이라고도 한다. 우리 말로 표현하자면 “전체 또는 부분개조”에 해당되는데 주거공간과 상업공간이 그 대상이 된다.주거공간의 리모델링은 효율적인 공간확보와 생활 동선을 편리하게 하기 위해 한정된 주거공간을 리모델링하는 일로, 바뀐 생활문화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새로운 디자인으로 구성원의 편의를 도모하는 공간을 만드는 데 주안점을 둔다. 부동산 가치를 보존하기 위한 재테크수단으로도 활용되고 있는데 주거공간 리모델링은 단독주택과 공동주택 두 가지가 있다.상업공간의 리모델링은 낡고 오래된 임대용 건물이나 도소매 상가 건물 등 주로 상업용 건물을 현대감각에 맞춰 개조하는 일이다. 새로운 디자인과 건축마감재로 리모델링함으로써 건물의 효과를 최대화할 수 있는 재테크수단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특히 건축물의 뼈대를 전혀 건드리지 않고 시공하므로 신축 건물에 비해 공사비가 훨씬 적게 드는 장점이 있다.선진국의 경우 리모델링 비중은 전체 건설시장의 30퍼센트를 웃돌고 있으며 이웃 일본 또한 70퍼센트에 육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에서도 지난 1990년대 초반부터 서울 강남의 저층아파트를 중심으로 유행, 재건축이 힘든 고층아파트나 단독주택으로까지 확산되었다.또한 1970년대 이후 개발붐을 타고 전국적으로 대거 신축된 대형빌딩의 개보수 수요가 급증하고 있으며, 1999년 5월부터 기존 건물의 용도변경이 쉬워져서 소규모 주택이나 상가들의 재단장붐이 일어났다. 게다가 2002년부터 발효되는 지구온난화 방지협약 또한 리모델링 시장을 부추기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 리모델링은 성장잠재력이 높은 각광받는 사업분야로 부상할 것으로 전망된다.{- 설비의 마모, 부식, 파손이 심한 경우 보통 물리적 노후화라고 부르고 있으며 이는 운전상태와. 장비 및 기자재의 내구연한과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고 일반적으로 가장 중요시하고 있는 노후. 화의 유형입니다.- 경제적인 노후화는 물리적인 상태는 양호환경관리법 등. 이 대표적입니다.- 마지막으로 노후화가 원인이 아닌 건물주의 필요성에 의한 용도변경으로 건물용도에 부합되기 위. 한 설비의 리모델링이며 대부분 근생건물이나 상가 건물에서 흔히 볼 수 있으며 근래에는 건물전. 체의 용도변경으로 인해 전체설비의 교체와 신설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또, 복원 및 보존의 경우. 는 주로 역사적인 건물을 들 수 있는데 대부분 현대의 건물에 적용하고 있는 설비가 필요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1) 리모델링은 신축하는 것에 비해 적은 돈으로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시 말하면 신축대비 30∼50%정도의 투자로 값진 효과를 볼 수 있다.2) 리모델링시 건축법이 신축 당시의 것으로 적용된다는 것이다. 주차장법 강화 등의 까다 로운 개정 건축법 규정의 제한을 받지 않기 때문에 때에 따라서는 좀더 효율적이고 자유 로운 공간 구성이 가능하다. 단, 증축을 하면 증가된 면적이 신규 주차장법을 적용한다.3) 공사기간이 신축에 비해 많게는 6개월 이상 적게는 2개월 정도 단축할 수 있으며, 이로 인한 민원발생이 극히 적다.4) 리모델링후 건물고급화로 인하여 재산가치 상승은 물론 임대시 임대료를 높이 받을 수 있으며 팔 경우에도 다른 건물에 비해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리모델링을 한다고 해서 모두 수익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잘못된 계획으로 오히려 공사비 회수도 못하는 경우도 더러있다. 주로 용도를 변경할 경우에 해당되는데 주변에 대해서 충분히 조사, 업종을 선정하고 디자인 방향을 정해야 이를 피할 수 있다.리모델링 수익성!최근 리모델링 시장이 정부의 지원책과 대기업들의 참여 그리고 수요자들의 인식변화로 인해 급속히 커지고 있다.지난, 2000년 5월 부터 아파트를 제외한 단독, 다가구, 다세대, 주택등을 근린생활시설로 자유롭게 바꿀 수 있도록 허용했으며, 반대로 연면적 660㎡(200평)이하, 5층 이상인 건물을 고쳐 전세나 월세를 놓을 수 있게 하였다.주택을 근린생활시설로 또는 업무용 시설로 바꾸는 용도가톤급이다. 같은 자리라도 '먼저냐 나중이냐'에 따라 장사매출은 천차만별이다. 장사와 같이 리모델링에서도 상권이 차지하는 비중은 굉장히 크다.리모델링의 파급효과건물성능 개선의 목적은 기존건물의 구조적, 기능적, 미관적, 환경적 성능이나 에너지성능을 개선하여 거주자의 생산성과 쾌적성 및 건강을 향상시킴으로써 건물의 가치를 상승시키고 경제성을 높이는 것이다. 이와 같은 건물성능개선을 통하여 기대할 수 있는 파급효과는 다음과 같다.- 자원절약건물성능 개선의 주요분야인 에너지성능 개선은 국가에너지 소비의 약 1/4을 차지하는 건물부문에서의 에너지소비를 절감함으로써 국가경제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고 전량수입에 의존하는 석유자원절약에 기여하게 된다. 또한, 건물성능개선은 건물의 수명을 연장시킴으로서 건설분야에 투입되는 막대한 자원을 절약할 수 있게 된다.- 환경보전건물의 에너지소비는 CO2발생과 선형적 함수관계에 있다. 최근 지구온난화의 문제로 탄산가스 배출제한 의무화가 세계기후변화협약에서 추진되고 있는 상황에서 건물성능 개선은 건물분야에서의 탄산가스 배출을 저감시킴으로써 지구환경보전에 기여하게 된다. 또한 건물의 수명이 연장됨으로써 건물폐기에 따른 각종 환경폐기물의 발생을 억제할 수 있게 된다.{국내현황국내의 경우 지난 7,80년대 건물 대부분이 양적팽창 위주의 졸속개발로 건축의 질적수준이 빈약하고 건물의 유지관리가 소홀했기 때문에 성능이 크게 떨어질 뿐만 아니라, 지난 10여년 동안 이루어진 사회구조의 급속한 변화와 기술의 발달에 대응하지 못하지 때문에, 건립된지 10년 이상 된 건물들을 리모델링 대상으로 한다면 전체 기존건물의 약 47.7%에 해당하는 막대한 시장규모가 될 것이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의 시장예측조사에서도 2010년을 기준으로 우리나라에서 리모델링 시장의 규모는 전체 건축시장의 15∼20%를 차지하면서 연간 약 19조원대의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리모델링 해외 현황1. 유 럽우선 사회가 성숙된 유럽의 경우 주요 15개국의 리모델링 시장 규모성되어 1995 년에는 전체 건설시장의 25.2%를 점유할 정도로 성장하였다.{위에서 밤힌것 같이 리모델링 사업은 건설사업의 새로운 분야로 시장규모가 국내·외적으로 확대추세에 있으며 그 향후 전망 또한 상당히 낙관적이라 할 수 있다.{건물성능 개선의 목적은 기존건물의 구조적, 기능적, 미관적, 환경적 성능이나 에너지성능을 개선하여 거주자의 생산성과 쾌적성 및 건강을 향상시킴으로써 건물의 가치를 상승시키고 경제성을 높이는 것이다. 이와 같은 건물성능개선을 통하여 기대할 수 있는 파급효과는 다음과 같다.자원절약건물성능 개선의 주요분야인 에너지성능 개선은 국가에너지 소비의 약 1/4을 차지하는 건물부문에서의 에너지소비를 절감함으로써 국가경제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고 전량수입에 의존하는 석유자원절약에 기여하게 된다. 또한, 건물성능개선은 건물의 수명을 연장시킴으로서 건설분야에 투입되는 막대한 자원을 절약할 수 있게 된다.환경보전건물의 에너지소비는 CO2발생과 선형적 함수관계에 있다. 최근 지구온난화의 문제로 탄산가스 배출제한 의무화가 세계기후변화협약에서 추진되고 있는 상황에서 건물성능 개선은 건물분야에서의 탄산가스 배출을 저감시킴으로써 지구환경보전에 기여하게 된다. 또한 건물의 수명이 연장됨으로써 건물폐기에 따른 각종 환경폐기물의 발생을 억제할 수 있게 된다. 건축물 리모델링의 파급효과건축시장의 확대건물성능개선은 지금까지 신축건물 위주의 건축시장을 기존건물까지 크게 확장함으로써 건설경제의 활성화에 기여하게 될 것이다.신고용창출건설시장의 확대는 건설고용을 자연스럽게 확대하게 된다. 그러나 건물성능개선산업의 활성화에 따른 고용은 기존건설고용과는 달리 새로운 전문지식과 기술을 필요로 하는 고용이어야만 한다.{{침실:: 침실의 기능 ::주기능인 취침공간 이외로 수남 갱의 작업 휴식등의 부기능도 고려하여 각기 능이 부합되도록 계획되어야 한다.:: 침실의 분류 ::사용자의 용도에 따라 주침실, 어린이 침실, 노인침실, 객용 침실 등으로 분류된다.:: 침실의 위치 ::일조 통풍조건의 색채계획 ::특별한 원칙이 없고 침실 사용자의 기호에 따라 좌우되므로 개인이 좋아 하는 색을 주도색으로 개성있고 안락한 분위기가 연출되도록 한다.:: 침실의 마감재료 ::내구적이고 실용적인 것보다 아름다운 것 주인의 마음에 드는 것으로 선 택하는 것이 좋다.{욕실:: 욕실의 규모 ::욕조 세면기 변기를 한공간에 둘 경우 욕실의 크기는 4㎡이며 세탁을 겸용한 경우 5㎡정도가 필요하다.:: 욕실의 유형 ::입욕 배설 세면의 기능배치에 따라 1실형, 2실형, 3실형.:: 욕실의 조명 계획 ::방수형 조명기구를 사용하고 수증기가 많을때에는 어둡게 느껴지므로 100lux 정도의 밝기가 필요하다.:: 욕실의 색채 계획 ::오늘날 색에대한 다양한 시도는 특정색을 사용해야 한다는 원칙이 무시되고 있다.:: 욕실의 마감재료 :: 욕실은 기본적으로 방수성, 방오성이 큰 마감재료를 사용한다.거실:: 거실의 기능 ::휴식과안락의 장소로서 정서생활이나 손님접견 장소 식사등 다목적 기능을 위한 가족 단란의 장소{:: 거실의 위치 ::각실의 중심공간이므로 평면계획시 일조와 전망의 조건이 가장 좋은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남향 또는 남동향 남서향에 위치하며 현관 복도 계단등과 같은 연결통로에 근접시켜 거실의 독립성 안정성을 유지하여야 한다.:: 거실의 규모와형태 ::1. 거실의 규모 거실의 이상적인 규모는 1인당 최소한 4-6m2 이며 거실크기 이외에도 통행의 유무 평면형의 영향도 같이 고려해야 한다.TV시청을 위하여 거실 한 벽면은 적어도 3,100-3,600 mm 정도가 필요하다.2. 거실의 형태 : 정방형보다 은변이 너무 좁지 않을정도의 장방형이 가구배치와 TV 시청에 효과적이다.:: 거실의 유형 ::거실의 유형은 거실 전용으로 사용하는 경우 개방적 공간으로 처리할 경우 다용도로 사용하는 경우로 구분될 수 있다.1. 응접실 겸용 거실2. 서재 겸용 거실3. 부엌 식당 겸용 거실4. 취미생활 겸용 거실5. 홈바(Home bar)겸용의 거실{:: 거실의 가구와 배치 ::거간이다.
{ 산업 혁명 이후의 디자인 변천산업 혁명 이후의 디자인 변천아르누보1. 턴 오브 더 센추리(Turn of the century)올드 구디즈(Old Goodies)는 무엇이 good이었을까? 또한 벨 에포크(Bell Epoque, 아름다운 시대, 1880∼1900)라는 것은 누구에게 아름답게 빛나는 시대였던가?그것은 신흥 부르조아지의 상승기였다. 현대로의 서막인 동시에 과거의 환영을 농후(濃厚)에게 남긴 일막이기도 했다. 따라서 어느 사람에게 있어서는 귀족적 우아한 잃어버리는 애석한 시절이었으며, 어느 사람에게는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이 강하게 의식되기 시작하는 시절이었다.러시아는 별개로 하고, 보불전쟁 종결의 1871년부터 제1차 세계대전까지의 동안에, 유럽에는 전쟁이 없었고 사회에는 평화가 가져온 향락적 분위기와 함께 세기말적 퇴폐기와 무정부주의 등 새로운 사상들이 잡탕처럼 공존하였지만, 그 나름대로 안정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루이 아라공(Louis Aragon)의 『현실의 세계』에 의하면 - 인간을 놀라게 하고 의표를 찌르는 것과 같은 것은 그 모든 것을 세기말이라고 명명하고, 천진한 사람들은 그런 식으로 가볍게 받아들여 안심하고 있었다. 게다가 이 말에는 큰 기대가 잠재해 있었다. 어떤 마법의 지팡이를 한번 흔들면 세계의 시작과도 같이 기다리던 1900년이라고 하는 순간으로 모든 것이 변하고 새롭게 빛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아닐까 하고 모두 희망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결국 1890년 전후에는 하나의 저류(低流)가 있었다. 급기야는 종말을 맞이한 19세기의 일체를 잔재, 낡아빠진 사상을 불식(不息)시키려고 하는 욕구였던 것이다.'새로운 것'에 대한 원망(願望)에 대응하여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에는 "에펠탑(the Eiffel Tower)"과 "기계관"이 출현했다. 에펠탑의 건설 계획에 대해서는 문화인이 강경한 반대운동을 일으켰지만, 이 새로운 랜드마크(Landmark)는 상당히 특이한 것이다. 1891년 3월에 사망한 쇠라(Georges Seurat카고파-그것들의 별들은 거시적으로는 확실히 아르누보의 변주를 이루지만, 각자 뉘앙스를 다르게 하고 있었으며 결코 성운의 핵심에 있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이후의 디자인 사조에서는 오히려 외곽의 모든 별들의 영향력이 중요했다고 할 수 있다. 어떻든 어느 것이나 협의의 아르누보에서 잘려 나와 단독으로 설명해야 할 큰 존재였다. 그러한 의미에서 아르누보 성운의 중추는 벨기에와 프랑스였다.당시 공업 선진국이었던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은 세기말 아방가르드 예술의 대거점(大據點)이었다. 젊은 학도 츠바이크(stefan Zweig)는 하계휴가의 여행지를 완벽히 검토하고 뜻을 벨기에로 결정했던 것이다.벨기에서 아르누보의 형태는 현저하게 추상성이 풍부하여, 꽃모양 등은 준엄하게 거절되었다. -"벨기에 곡선"(리네 베르쥬)의 대표인물 빅토르 오르타는 낭시(Nanci)파의 루이 마조렐과 같이 클레이(clay - 점토)모델을 만들어서 건축이나 가구를 디자인한 것처럼, 그의 조소적 디자인의 비밀은 그 주변에 있었던 것 같다.한편 반 데 벨데는 기능 우선주의자이며 그런 이유로 오르타와는 달리 작가 생명이 길었다. 그는 아루누보의 창시자이자 이론적 지주로 주목되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일찍이 묘사적 장식의 배제를 제창하고 "장식은 항상 기능을 암시하고 이성에 기초를 두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제언했다.쇠라 숭배의 화가로서 출발한 그는 러스킨/모리스/톨스토이/바쿠닌/니체의 저작의 영향을 받아, 생활 환경의 미적 형성이야말로 예술가의 생명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결혼을 계기로 디자인의 길에 들어선 것은 새로운 가정에 필요한 세간의 모든 것에 '형태의 속임수'를 느끼고 스스로 디자인하지 않으면 마음이 놓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일찍이 모리스의 『레드 하우스』과 같은 상황이었다. 가구, 인테리어, 식기, 금세공, 그래픽 등 모든 종류의 디자인분야에 활약한 그의 본래의 특색은 흐르는 듯한 형태의 금속제품과 가구에 있다고 생각한다.반 데 벨데는 당시 가장 영향력이 풍부한 저술가의 한 사람이기데 1857년 프란츠 요셉 황제의 칙령에 의한 성벽 철거와 환상(環狀)도로 "링"의 출현으로 링 슈트라세(Ring strass) 체제하에서 문화전반에 걸쳐서 새로운 움직임이 일어났다. 바로크 양식에 식상해 있던 이 거리의 시민들은 계속해서 나타나는 이색적인 건물을 주시하게 되었을 것이다.1894년 하제나우어의 후임으로 오토 바그너(Otto Koloman Wagner)가 미술 아카데미의 교수로 취임했다. 아주 유명한 취임기념 강연 '근대 건축'에서 그는 역사주의로부터의 결별을 표명한다. "양식과 구조의 소재는 항상 그 시대의 정신을 반영하지 않으면 안 된다."-이때, 그가 "활용할 수 없는 것은 아름답지 않다."라고 선언하면서 모던 무브먼트(Modern Movement) 는 시작된 것이다.그는 이론에서뿐만 아니라 실제 작품에서도 뛰어난 모습을 드러냈다. 유명한 암 슈타인호프 교회(Am Sfeinhof Kirche)나 우편 저금국(貯金局)의 구성은 언제나 신선함을 불러일으킨다. 이 교회의 스테인드글래스나 마죠리카 하우스의 파사드는 아끼던 제자 모저(Koloman Moser)가 담당한 것이다. 또한 미래지향적인 바그너는 칼스프라츠 역사(Karlsplatz hof - 驛舍)의 설계에 처음이자 본격적으로 프리패브 공법을 도입했다.{그리고 말러(Gustar Maler)가 국립 가극장에 취임한 1897년, 기존의 권위를 부인하는 젊은 예술가 집단《분리파》가 클림트(Gustar Klimt)를 중심으로 발전해서, 회화·건축·공예·디자인을 포함한 예술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분리파(빈에서는 세세션 sezession)의 중심을 이루는 요세프 호프만(Josef Hoffmann) / 요세프 올브리히(Josef M. Olbrich) / 콜로먼 모저(Koloman Moser)는 모두 오토 바그너의 문하생이다. 바그너 자신이 분리파에 참가한 것은 결성 후 2년이 지난 다음이었지만 그는 이 일파의 정신적 지주였다.다음해에 올브리히의 설계에 의한 "분리파관(館)"이 완성되면서 청년들은 거점연합왕국을 구성하는 4지역은 서로 다른 나라이다.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에서는 민족과 기질이 달라서 서로 반발하고 있었으며, 1885년 프란시스 뉴베리아가 글래스고 미술 학교의 교장으로 취임하면서 윌리엄 모리스파의 경향을 전하게 되었다.글래스고는 수도 에딘버러에 이어서 스코틀랜드에서 2번째로 큰 도시로, 성립된 것은 6세기경이다. 17세기부터 도시로 번영하기 시작했고 산업혁명 이후로 방직, 공업제품, 조선 등의 중공업을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 1811년에는 인구가 영국에서 2위에 달했으며 유럽의 대표적인 공업도시가 되었다. 증기기관의 발명자 와트와 로케트호의 스티븐슨도 이 지역 출신으로 글래스고를 달리는 철도망은 당시 세계 최장(最長)이었다.그 글래스고의 미술학교에서 '4인조' "the Four"라고 불리는 찰스 레니 매킨토시(Charles R. Mackintosch) / 허버트 마크네어 / 맥도날드 자매(sister Markdonald)가 나오게 되었는데 조형의 세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 일으켰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마가레트와 프란시스 자매는 4인조 외의 사람들과 결혼했다. 매킨토시 부부는 장미를 좋아해서 상징적인 모티브로서 자주 디자인에 사용했다. 교장의 지원으로 장미처럼 활짝 피게 된 4인의 조형은 당시 최고의 유행을 불러 일으켰다. 정통 아르누보보다도 스트로크(stroke)가 길고 그들의 커브는 소박하고 우아하며 힘이 있었다.驛?매킨토시는 1896년 콤파티션을 거쳐서 모교인 글래스고 미술학교의 교사를 설계하게 되는 영예를 얻게 되었고 건축가로서의 부동의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신선한 느낌의 이 건축물은 건축 사상 모더니즘의 중요한 계기로 여겨지고 있다. 페브스너는 그를 르 코르뷔지에에 비견하며 "공간 처리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마술사"로 평가받으며 "매킨토시의 손이 닿은 건물은 음악적이면서도 수학적인 하나의 추상예술로 변한다"라고 감탄했다. 기디온도 매킨토시의 조형을 프랭크 로이드 라이크와 비교하면서 칭찬했다.4인조는 같은 해에 런던의 아츠 & 크래프츠 마리네티(Pillippo Tommaso Marinetti)는 1909년 미래파 선언을 하며 "기계의 다이나믹"을 제창했다. 그러나 제1차 대전을 통해서 테크놀러지의 모순이 폭로되었다. 전후의 다다이스트들은 미래파와 마찬가지로 과거의 미를 부정하면서 기계기술에 대한 무가치한 신뢰를 조소했다. 피카비아(Francis Picabic)가 언뜻 보면 그럴 듯해 보이지만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는 기계를 정밀하게 묘사함으로써 기계 찬미 경향에 대해서 통렬한 비판을 했다.아르데코와 그 주변1. 아르데코의 융성아르데코라는 명칭은 1925년 파리에서 행해진 "Exposition internation arts decoratifs et industriels moderness"에서 유래한다.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 다음 해에 프랑스에서 결성된 「미술가 장식가 협회」(SDA)의 회장 에겔은 이 전시회를 1915년에 개최할 계획이었지만 대전(大戰)의 예감 등으로 연기되었다가 이 해에 드디어 실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참가국은 프랑스와 일본을 포함해서 22개국이었다. 이 엑스포에 집약된 디자인 스타일이 처음으로 "아르 누보" 후에 "아르데코"라고 불리게 되었다. 그러나 그 구성은 상당히 애매하다.프랑스의 아르데코는 두 주류로 나뉜다. 하나는 가구작가 J. E. 룰만(Jacqies Emile Ruhlmann)을 중심으로 한 델리케이트한 예술인과 엘레강스한 전통 그룹, 다른 하나는 장 퓨이포르카(Jean Puiforcat)의 은기(銀器)로 대표되는데, 불필요한 장식을 배제하고 단정하고 현대적인 폼을 추구한다.아르데코전이 열린 파빌리온에서는 모던파와 장식파가 경쟁을 벌였다. 건축부분의 그랑프리는 구성주의자 멜리코프 설계의 소련관이 획득했다. 르 코르뷔지에의 "에스프리 누보관"의 참신함도 주목을 끌었다. 그러나 바투 설계의 "콜렉터 파빌리온"이나 보와를 설계의 "봉마르쉐 백화점관"등은 장식적인 경향이 현저했다. 이 파빌리온에 진열된 공업제품, 공예제품에도 마찬가지로 두 주류가 있었다. .
Ⅰ. 오 브 제1. 오브제의 개념▶르네상스 이래로 회화란 어떻게 하면 2차원의 평면위에 3차원의 현실(對象)을 눈에 보이는 그대로 재현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회화의 목표였고 그 존재이유(存在理由)가 되는 것이였다. 따라서 그들은 합리적(合理的)이고 과학적(科學的)인 방법으로 투시법(透視法)을 발명하여 공간(空間)을 소유(所有)하려 했고, 명암법(明暗法)의 사용(使用)으로 대상을 소유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그러나 그들의 생각이 결국은 환영(幻影)즉 일루션(illusion)에 그치고 만다는 각성은 20세기에 이르러서야 일어났다. 따라서 2차원의 평면위에 옮겨놓았다고 하는 3차원의 대상이란 결국 인간 의식(意識)에 우의를 둔 자연(自然)에 대한 인간 정신의 표상(表象)이거나 감각에의해 조작(造作)된 투영물(投影物)에 지나지 않는 허상에 다름 아니라는 철저한 인식적(認識的) 기반위에 결국 세계(世界)란 대상세계(對象世界) 외(外)의 아무것도 아니라는 자각(自覺)으로 태어난 것이 바로 오브제라 할 수 있다.▶일반적으로 물체 , 객체를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오브제란 지각하고 사고하는 인간이라는 주체에 대립하는 객체로서의 대상을 말한다. 영어로는 object, 프랑스어로는 objet, 로서 의 뜻을 갖거나 혹은 를 의미하는 말이다. 이를 물체, 대상, 사물 이라는 우리말로 정의하기엔 그 뜻을 이해 하는데 약간의 문제가 있다. 미술에서는 자연물과 공업제품, 일용품등의 물체로부터 습관적인 용도와 의미를 제거함으로써 인간과 사물과의 관계를 새롭게 재조명하려고 하였다. 주제와 대조적으로 이용한다. 쉬르리얼리즘의 운동에 있어서 특수한 어휘로서 사 용되기 시작하여 사람과의 일상적인 관계를 빼앗음으로써 의식의 밑바닥에 작용하려고 한 물체적 작품에 적용되었다. M.뒤샹이 1917년에 기성품 변기를 《샘(泉)》이라는 주제를 붙여 전람회에 출품한 것과 같이 다다이즘 시대에는 기성의 일용품이나 기계부품 등이 반예술형식의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초현실주의에서는 다시 자연물·수학적인시각체험(視覺 驗)을 확장시켰으며 오브제의 즉물적(卽物的) 특성(特性)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세계관(世界觀) 및 물체관(物 觀)이 탄생하게 되었다.오브제라는 용어(用語)는 이라는 라틴어에서 유행한다. 흔히 오브제는 으로 정의되기도 한다. 보다 인간적으로 말해서 오브제라는 용어는 의 반대개념이며, 그것은 때에 따라서 , 또는 을 의미한다. 오브제가 주제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의식(意識)되기 시작한 것은 후기인상파 이후, 정확히는 세잔느의 입체파를 거친 현대미술(現代美術) 의 형성기 이후부터이다.▶주지하는 바와 같이 현대미술에 처음으로 화면위에 실물 오브제를 도입한 것은 1912년 브라크(George Braque), 피카소(Pablo Picasso)에 의해 시도된 빠삐에 콜레(Papier Colle) 기법에서였다. 이들은 화면 구성상의 효과를 노리거나 어떤 질감의 강조, 현실감의 표현을 위해 신문지라든가 악보, 상표등의 인쇄물(印刷物)을 화면위에 부착시킴으로써 회화가 단순히 외계(外界)의 대상을 재현하는 것으로 그치게 하지 않고 물체를 직접 부착하여 실재감(實在感)을 표출(表出)시켜보려 했던 것이다.그러나 이러한 입체파 화가들이 도입한 물체를 엄격한 의미로서의 오브제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단지 조형상(造形象) 의 효과를 노리는 것으로 그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 우리의 의식일반(意識一般)에 존재하고 있는 물체와 현대미술(現代美術)에서 말하는 오브제와는 어떻게 다를 것일까가 문제일 것이다.일반적으로 사물(事物)이라 하면 우리의 의식(意識)앞에 던져진 명분, 대상(對象) 정도의 의미를 갖는데 불과하였으나 현대미술에서의 사물(事物), 즉 오브제의 의미는 라루스 사전에 의하면 사고(思考) 되어진 것, 사고(思考)하는 존재(存在)나 주체(主 )에 대립하는 것, 오늘날의 말로써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유별나게 촉각의 감각능력을 움직이는 것이다. 라고 풀이한다. 이렇게 볼 때 현대(現代)에 있어서의 사물이란 근대(近代)의 미술가(美術家)들이 사물(안된 '움직이는 오브제', 일상적인 물체에 약간의 수정을 가하여 다른 형태와 다른 의미의 '해석된 오브제', 등으로 구분되고 구체화된다.2. 초현실주의 작가들의 여러 가지 오브제(1) 자연물의 오브제 : 광물, 식물, 동물 따위(2) 미개인의 도구나 주술적인 물체(3) 수학상의 오브제 : 수학적인 원리에 의해서 구성된 입체적 모형따위(4) 발견된 오브제 : 흔히 오브제라면 이것을 가리킬 만큼 일반적인 것으로 표류물, 나무뿌리 등 모든 오브제는 발견된 오브제라 할 수 있다.(5) 해석된 오브제 : 이를테면 발견된 오브제인 나무뿌리를 약간 가공해서 거꾸로 놓으면 전혀 다른 물체의 모습으로 보이기도 하는데, 이것이 바로 해석된 오브제 이다.(6) 재해의 오브제 : 화재가 난 뒤 어떤 물건이 불에 타서 예상 할 수 없을 만큼 초(超) 조형적으로 변형된 경우(7) 기성품의 오브제 : 실용을 목적으로 만든 기성 제품에 단순히 서명을 함으로써 예술품으로 전이시킨 것(8) 움직이는 오브제 : 어떤 종류의 자동 인형이나 풍차 따위와 같은 것으로 콜더의 모빌 등이 여기에 속한다.(9) 상징 기능의 오브제 : 달리가 발명한 것으로 인간의 잠재의식에 직접호소한 것등이 있다.3. 오브제의 전개양상(1) 큐비즘에서의 오브제큐비즘은 20세기 초 자연과 인간을 기본적이고 기하학적인 단순한 형태로 환원시켜 사물을 입체적으로 분석하여 평면에 나타낸 조형활동이었다. 큐비즘이 의도하는 근본적인 표현은 사실주의였는데 큐비즘의 창시자인 쿠르베(Gustare Courber)는 미술가로서 할 수 있는 기능적인면 중에서 자기 자신의 눈으로 확인 할 수 있는 것만을 포착하는데 조력을 집중시켰다.큐비즘의 역사에 있어서 세잔(Cezanne)의 미술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는데 세잔은 직접적인 문자 그대로의 사실주의라는 측면에서 보면 덜 사실주의였지만 인상주의 보다는 더 성실하게 시각적 지각 자체의 복잡한 심리과정을 반영 하였다.세잔을 비롯한 큐비스트(Cubist)들은 서구 회화의 전통적인 사실성 추구에서 표현되 예스테브의 「나무 세 세 그루가 있는 언덕」(1948)에서는 전경의 언덕 위에 서 있는 세 그루의 나무와 중경의 골짜기, 그리고 원경의 비탈이 여러 공간으로 나누어져 그려졌다.이처럼 마티스와 레제, 그리고 예스테브 등의 입체파 화가들은 대상을 작가의 내적 시각에서 분리하고, 결합하는 방식을 도입하면서 새로운 시각적 충격을 주었다. 이들에게 자연은 보이는 데로 서술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화가의 오브제적 성격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르네상스 이후 받아들여져 왔던 - 세계는 입방체이며, 그 중심에 인간이 존재한다 - 생각이 폐기되고 말았다. 그리고 입체파 화가들은 단일 시점의 원근법에 의해 입체감을 표현하던 전통적인 방식을 해체하고, 순수한 시각에 의한 회화의 자율성을 획득하고자 노력하였던 것이다.입체파 화가들의 가장 큰 관심사 가운데 하나는 공간의 차원에 관한 것이었다. 즉, 사물의 위치를 서로 이동시켜 가면서, 운동에 의해 4차원을 도입하기도 하였다. 이들은 전통적인 공간감을 배체한 채, 색채나 형태만으로 화면을 구성하고자 시도했는데, 이를 위해 필요하다면 공간과 대상 자체를 왜곡시키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입체파의 이러한 노력은 19세기 인상파의 회화적 성과를 진지하게 받아들인 결과였다. 고갱이나 세잔느에게서 화면 구성의 의미, 화면의 고유한 가치의 의미를 습득하였고, 반 고흐로부터 색채의 의미를, 고갱에서는 아라베스크의 의미와 화면의 표면적 공간을 새롭게 삼각형으로 구성하는 의미를 배웠던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의미에서 20세기 초 입체파의 성과는 19세기 인상주의 회화의 총결산이기도 하였다.한편, 입체파는 전통적인 형태 표현에 익숙해진 관습들을 파괴하기 시작하였다. 입체파에게 세계의 절반은 체계적이고 나머지는 경험적인 모습을 띠고 있었다. 따라서 사실주의와 작가의 주관이 뒤섞여 있었고, 이것은 입체파의 성과이자 한계였다. 그러나 어찌되었든 작가가 대상을 화면에서 왜곡시켜도 사람들이 거부감을 느끼지 않게 된 것은 입체파의 노력 때문이었다 커다란 성과가 있다고 할 수 있다.(2) 다다이즘 (Dadaism)에서의 오브제다다이즘(Dadaism)은 제 1차 세계대전 중에 일어난 현실 비판운동이다. 큐비즘과 미래주의의 영향, 전쟁으로 무너진 유럽 문명사회의 합리주의라는 기존의 가치관에 대한 회의와 혼돈 가운데 제시된 모든 사회의 가치, 의식을 부정하는 것으로 스위스의 취리히에 예술가들이 모임으로서 서로 다른 개성으로 규정지어진 다다(Dada)라는 운동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미술운동으로서의 다다이즘 역시 기존의 가치를 부정하는데에서 출발하였는데 표현양식으로서는 전통적인 페인팅(Painting)기법을 부정한 꼴라쥬(Collage)와 오브제 작품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이들은 물체를 관념의 위치에서 떠나게 함으로써 실용적 관계로부터 심미적관계로 전환시켰고 이들의 오브제는 대부분이 조형적이기를 거부하고 하나의 전제되어진 대상, 논리의 싫증을 도입한 것이 아니라 지극히 우연적이고 충동적인 모습으로 선택되어졌다.{가장 대표적인 작가라 할 수 있는 마르셸 뒤샹(Marcel duchmp) 은 1913년 자전거 바퀴를 요리용 의자 위에 고정시켜 완성한 를 시작으로 1917년에 이라는 작품을 제작하게 된다. 이라는 작품은 레니 메이드(Ready made)의 오브제인 남성용 소변기를 거꾸로 두어 새로운 이미지를 창출하는 작품으로 오브제 사상의 모체가 되고 있기도 하다. 이를 계기로 오브제는 예술 표현 방식의 일환으로 화면 속에 조합되거나 구성되는 일상적 물체의 의미보다는 단지 예술가에 의해서 '선택' 되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예술화 ' 된다는 사고를 갖게 했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은 어디까지나 이성을 기본으로 하는 미술형식을 부정하기 위한 의도에서 생겨난 것이어서 드디어는 사물 그 자체의 무의미만 남기게 되었고 초현실주의자들의 오브제 변성을 예고하게 되었다.(3) 쉬르리얼리즘(Surralism)에서의 오브제1924년 브레통(Andre breton)에 의해서 '쉬르리얼리즘'이 발표되면서 표면화 되기 시작한 쉬르리얼리즘은다.
{현행교육과정의 문제점과 그 대안*학과 특성상 실업계 고등학교의 디자인과 교육의 문제점과 그에 맞는 대안을 생각해 보았습니다.1. 7차 교육과정의 가장 큰 특징2. 실업계고등학교는 고등학교단계의 직업교육변화3. 실업고 디자인과의 실정-7차 교육과정 편제 및 단위 배당표4. 장단점5. 맺음말1. 7차 교육과정의 가장 큰 특징초등학교 1학년∼고교 1학년까지 10년간은 `국민공통기본 교육과정'으로 정해 10개 과목을 배우게 하되 학생별로 `수준별'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고교 2.3학년은 `선택중심 교육과정'으로 정해 학생들이 학업수준과 적성에 맞게 자율적으로 배울 과목을 선택하게 하는 것이다.초등학교부터 고교 1학년때까지는 그야말로 국민으로서 갖춰야 할 기본 소양을 공통적으로 익히게 하고 고교 2.3학년때는 진로에 맞춰 각자 다른 심화과정에 집중하게 해 전국민이 초.중.고 과정을 똑같은 과목만 배워 대학에 가는 이른바 `붕어빵'교육에서 벗어나게 한다는 것이다.이처럼 고교 2.3학년때 전면 선택과목제가 도입됨에 따라 지금과 같은 인문계.자연계.예체능계 등 계열 구분이 사라진다.고교 1학년때 배우는 국민공통기본 교육과정에 포함된 과목은 국어, 도덕, 사회(국사포함), 수학, 과학, 기술.가정, 체육, 음악, 미술, 영어 등 10개 과목이다.고교 2.3학년때 배우는 선택중심 교육과정에는 26개 일반선택과목과 53개 심화선택과목 등 총 79개 과목이 포함돼 학생들이 선택하도록 했다.2. 실업계 고등학교는 고등학교 단계의 직업 교육 변화1지식·정보 사회의 도래에 따라 직업 교육의 중심축이 고등학교 단계에서 대학 단계로 이동,2실업계 고등학교 교육이 종국 교육에서 계속 교육 체제로 전환,3다가오는 21세기는 지적 능력과 창의력에 바탕을 둔 직업의 종류가 더욱 다양하게 증가될 것이므로 급변하는 직업 세계에 각 개인이 유연하게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 방향으로 전환,4선진국의 고등학교 단계 직업 교육 동향이 보통교과 교육을 강화하여 기초 직업 능력을 배양하고, 직업인으로서 필요한 폭넓고 기초적인 지식과 기술뿐만 아니라 사업 사회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전이 능력을 배양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는 점을 감안하여, 6차 교육과정과는 교육 과정의 구성과 내용면에서 많은 질적인 변화를 꾀하였다. 따라서 그 특징을 보면 평생 교육 체제안에서의 계속 교육과 졸업후 산업체 취업을 목표로 하는 종국 교육을 동시에 추구하는 교육과정으로의 전환을 꾀한 점이다.실업계 고등학교의 목표는 학생에게 직업인으로서 기본적 교양을 함양시키며 관련 직업 분야의 직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기초 전문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여, 자신에게 맞는 진로를 선택할 수 있고 급변하는 직업 세계에 창의적으로 적응하여 자아를 실현하도록 설정하였다.3. 실업고 디자인과의 실정7차 교육과정의 특징중 수준별 교육과정에 있어서,실업고 학생들의 특징인 국,영,수 과목의 미흡한 부분을 중심으로 실행하고 있다.학교 특성상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입시를 대비하여 조금더 자세히 배우고 싶은 학생들의 지원하에 소액의 비용을 지불하고 방과후 운영하고 있다.사교육비를 줄이는 차원으로 방과후 교육활동이 활성화 되고 있다.워드프로세서와 같은 의무적인 자격증의 시험이 있을 때에는 그 시험일자에 맞추어 학습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컴퓨터실과 뎃생실, 사진실 등은 방과후 2∼4시간정도 개방하여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하였다.클럽활동에 있어서는 매월 마지막 토요일에 전일제로 운영하며 교사,학생들의 기호와 능력을 최대한 살려서 클럽 활동반을 편성하며 다양한 활동 부서의 마련을 위해 전교사가 1개의 활동 부서를 담당하도록 하였다. 활동 영역을 학교 밖으로까지 확대하여 지역사회의 시설과 장소를 최대한 활용하고, 필요한 최소의 경비는 수익자가 부담을 원칙으로 하였다. 지도교사는 자신의 특기와 소질에 따라 부서를 선택하며, 전문적인 지도가 어려울 경우 전문 강사를 초빙하거나 외부의 장소에서 현지 지도를 받도록 하였다.{7차 교육과정 편제 및 단위 배당표2002학년도 입학자 -그래픽디자인과교과교과구분과목본교교육과정기준선택주체학기별 배당 단위수계2002년2003년2004년학교학생121212이론실습이론실습이론실습이론실습이론실습이론실습이론실습전 문 교 과계열필수공업입문4411114정보기술기초6622116기초제도1212242448소계*************48이론중심교과(12단위이하)디자인일반6611226·소계66··1·1·2·2·6·이론실습통합교과소묘*************4416컴퓨터그래픽*************디자인1010223310영상미술*************3색채관리66121224전산계산실무44224소계*************4112131157재량활동교과재량(10단위)컴퓨터그래픽44111122디자인66336소계1010141428전문교과 이수단위 계**************************4. 장단점제7차 교육과정에서 수준별 교육과정(국민공통 기본 교과중 국어, 사회, 수학, 과학, 영어 등 5개 교과는 수준별 교육과정을 편성, 운영하여야 한다)을 도입한 근거는 우리 나라의 현행 초·중등학교 교육과정은 보통 수준의 다수 학생을 대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개인별 능력 차이가 충분히 고려되지 못함이었다. 그 결과 잘하는 학생은 쉬운 내용이어서 수업 시간이 지루하게 되고 못하는 학생도 어려운 내용이라서 수업 시간이 마찬가지로 지루한 것은 물론 학습 부진의 누적을 가져오게 되고, 이는 국가적·개인적으로 교육력의 낭비이므로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고 학생들의 능력, 적성, 필요, 흥미에 대한 개인차를 최대로 고려함으로써 학생 개개인의 성장 잠재력과 교육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수준별 교육과정을 도입한 것이다.국민 공통 기본 교육 기간의 수준별 교육과정은 학습 능력이 떨어지는 학생의 학습 결손을 예방할 수 있도록 보충학습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국가가 국민의 기초·기본 교육을 책임지고자 하는 의도에서 도입된 것이다.학급당 학생 수는 양적인 지표이기는 하나 수업의 과정에서 개인차가 고려될 수 있는 중요한 필요 조건이 된다는 점에서 수준별 교육과정 운영을 위한 우선적인 지표라고 할 수 있다. 학급의 크기가 작아진다고 개인차를 고려한 수업(교육)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며 다만, 이러한 여건이 잘 갖추어지면 교육과정은 더 잘 실천될 수 있는 것이다.학급의 크기를 줄이는 것보다 본질적으로 더 중요한 조건이 바로 `교육과정의 개별화' 또는 `교육과정의 다양화' 문제이다. 즉, 학생 각자의 적성과 능력에 적절한 교육 프로그램이 제공되며, 그러한 교육을 가능하게 하는 제반 교육 여건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개인차를 고려한 교육, 즉 교육의 개별화는 실현될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교육과정의 개별화나 다양화는 학급의 크기와 함께 또 하나의 중요한 교육의 질적 지표이다.능력별로 학생을 구별하여 수업을 실시할 경우 일부 하위 수준 학생들은 피해 의식이나 소외감 또는 자신감의 상실 등의 문제를 갖게 될 가능성이 있다. 비록 수준별 교육과정 운영을 통해 전체적인 학습 속도가 높아지고 대다수의 학생들은 더 만족스러운 학교생활을 한다고 해도, 소수의 학생이나마 스스로 피해를 입는다고 느낀다면 이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따라서, 학생 및 학부모의 열등감을 조성하지 않도록 학교에서 운영의 묘를 살려 실시해야 할 것이다.내년부터는 중학교에서도 사실상 우열반을 편성해 가르친다고 한다. 이것은 일정 수준에 다다르지 못하면 진급하지 못하고 다시 재이수 과정이나 특별 보충학습을 해야된다는 건데 이 과정에서 탈락한 학생이나 그 부모가 받는 스트레스, 충격은 얼마나 클까 염려된다. 특히, 우열반을 편성하기 때문에 이 우열반에 들지 않으려는 학생들의 갈등과 열등반 학생에 대한 친구들의 왕따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주변 엄마들과 함께 얘기해보면 아이가 열등반에 편성될 경우 아이를 재이수 과정에 보내지 않겠다고 하는 엄마들이 대부분이다. 당사자인 학생들도 거의 다 재이수 보충학습에 가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정서가 민감한 사춘기 아이들을 열등반으로 내몬다면 달갑게 가서 열심히 배우겠다고 할 아이가 얼마나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