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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학기술] 기술문명과 멘델
    보고서를 시작하며지난해 12월 26일 미국의 생명공학회사 클로네이드는 인간복제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지난 3월 일본에서 태어났다는 3번째 복제아기의 사진을 공개했고 최근에도 복제아기가 태어났다고 발표했다.“인간복제가 가능하다, 불가능하다”라는 논쟁으로 세계의 첨단과학은 신만이 가능하다고 믿었던 생명의 탄생까지 그 영역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이번 보고서를 준비하면서 나는 어떤 주제에 대해 보고서를 작성할 지에 대해 많은 고민에 빠졌었다. 처음엔 전공과 관련된 벤츠나 핸리 포드 같은 과학자들에 관한 보고서를 준비할려고 했었다. 하지만 우연히 4월 27일에 방영된 인간복제에 관한 TV프로를 시청하고서 나와는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일들에 대해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한국인들도 그 프로젝트에 신청한 사람이 있으며, 한국이 인간복제의 전초기지로 의혹의 눈길을 받고 있다는 것이 나에게 더 관심을 불러 일으킨거 같다. 어차피 전공에 관계되는 과학자들은 앞으로도 접할 기회가 많기에 나의 전공과 직접적인 관계는 없지만 내가 현재 관심을 가지게 된 인간복제에 관한 보고서를 준비하기로 했다. 그러던 중에 유전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됐다. 현대 유전학의 창시자 멘델, 이를 토대로 DNA의 구조를 발견한 왓슨과 크릭...나는 DNA의 구조를 밝혀냄으로써 유전학과 더 나아가 분자생물학이라는 새로운 과학의 문을 연 왓슨과 크릭에게 학문의 기본적 틀을 마련해준 멘델에 관한 책을 읽기로 결정했다.멘델이 영향을 준 왓슨과 크릭의 발견은 21세기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는데, 이렇게 계속되는 노력 중 하나가 바로 유전체(게놈)라는 인간의 유전자 전체를 지도로 만들려는 인간 유전체 계획이다. 인간 유전체 계획은 인간의 모든 유전자와 유전체를 이르는 염체들의 염기 서열을 완벽하게 파악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이 염기 서열 정보는 기초과학에서 중요할 뿐 아니라 태어날 아기에게 유전자 질환이 있는지 찾아내고 치료하는 데도 큰 도움을 줄 것이다. 또 유전자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유방암 같은 질병에 걸릴예로부터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왔다. 왜냐하면 인간 자신들 사이에서나, 사육하는 동물, 재배하는 농작물에서나, 같은 종의 개체에서 형태적으로 상이한 특성이 나타났을 때에는 어디서나 유전의 영향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특성들을 생물학자들은 ‘형질’이라고 불렀는데, 형질은 눈이나 꽃의 색처럼 질적인 것일 수 도, 사람의 키, 동물의 성장속도, 옥수수 이삭의 알갱이 수와 같이 양적인 것일 수도 있다 현존하는 생물들이 이러한 형질들을 그들의 양친 또는 더 먼 조상으로부터 물려받고 있다는 것은 일찍부터 확실했다. 그러나 서로 다른 눈동자 색을 지닌 양친으로부터 어떻게 한 아이는 아버지의 형질을, 다른 아이는 어머니의 형질을 갖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이해하지 못했다. 흔히 아이들의 형질은 양친의 형질이 서로 혼합되어 나타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생물의 형질이 환경, 특히 영양과 기후 조건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점차 알게 됨에 따라 유전 현상은 차츰 더 복잡한 것으로 생각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처음 식물을 재배하고 가축을 사육할 수 있게 되면서, 좋은 형질을 갖는 생물이 좋은 형질과 더불어 좋지 않은 형질도 함께 다음 대로 물려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번식 목적으로 식물의 품종을 선발하기 시작했고, 또 점차적으로 새롭고 더 유용한 식물과 동물의 품종을 만들어 냈다. 후에 사람들은 여러 가지 다른 형지들을 가지고 있는 동물들을 교배하여, 좋은 특성이 많이 조합된 새로운 품종을 만들어 낼 수도 있게 되었다. 18세기 말엽에 선구적인 동물 육종가들은 형질이 어떻게 유전되는가를 알아내고자 힘썼다. 그러나 부모와 자손이 서로 닮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서로 닮지 않는 경우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설명할 수는 없었다. 이때 멘델은 실험용 식물로 완두콩을 사용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새로운 연구 방법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확실하게 그리고 쉽게 구분되는 대립 형질을 가진 두 개의 순종을 교배했다. 이와 같이 멘델은 유전 전달을 분석하는 문제를 가장 단순7~18세기의 계몽운동과 프랑스 혁명의 영향을 받은 Moravia인들 사이에서 성장했다. 그들은 철학과 진보적 과학의 융합에 의해서만이 이상적인 사회의 발전을 가져올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멘델은 박물학의 기본원리를 충분히 배웠다. Kunin에 있는 동안 Schreber신부는 새로운 과수변종의 재배를 권장하였으며, 백작부인으로 하여금 프랑스로부터 접목감을 들여오게 하여, 마을전체에 보급하였다. 신부는 사제관 정원에 과수 양묘장을 마련하여 교구민에게 그 재배법과 변종간의 접목 기술도 가르쳤다. 멘델은 Opava의 인문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그곳 교사들은 모두 열성적인 박물학자들로서 새로이 건립된 그곳 박물관에 여러 가지 동식물 표본을 제공하였을 뿐만 아니라 매우 유익한 기상학적 관측도 많이 하였다.1840년 가을 그는 Olomouc 대학 부설 철학연구소의 2년 제 과정에 입학하게 되었는데, 이 과정은 정규 대학에서 공부하기 위한 필수적인 전제 조건이었다.대학 출신 교수들이 이 연구소에서 강의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Fux교수는 기본적 원리를 논술한 수학 교과서의 저자로서, 그의 원리는 후일 멘델이 자신의 실험결과를 설명하는데 매우 중요한 구실을 하였다.1843년 9월 멘델은 드디어 Brno 수도원의 견습수도사로 들어가게 되었다. 멘델은 교구민의 이익을 위하여 자기 자신의 자연과학 연구에 심혈을 기울일 수 있었다. 멘델에 대해서 Napp 원장은, 그는 자연과학과 물리학 연구에 공헌한 바가 크며 중학교의 자연과학 대리교사 역할을 잘 해낸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하여 멘델은 Vienna의 물리학 연구소에서 수도원이 지급하는 돈으로 장차 정식 교사가 되기 위한 예비교육을 받게 되었다. 멘델이 수도원에 들어갔을 때 Klacel은 노련하고 경험 많은 식물학자로서 식물 교잡에 능통하여 멘델의 스승이 되었다. 그 당시 수도원의 사조는 박물학자로서의 멘델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1849년에 멘델은 인문고등학교의 교수로 파견되었다. 이것이 바로 멘델의 인생의 갈림길이었다. 그는 대학에서 수강한 전체 시간의 70%가 된다.멘델이 수행한 연구와 관련하여 흔히 가지게 되는 의문점은 멘델이 실험 계획과 가설을 구체화하는 데 대학의 공부가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는가 하는 것이다. Vienna 대학에서 멘델이 수강한 학과목 기록을 오스트리아 식물학자로 잘 알려진 Marilaum을 비롯한 그 당시 사람들과 비교하여 보면 멘델과 같이 이상적으로 학과목을 수강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와 같이 멘델은 앞으로의 연구를 위하여 준비를 올바르게 하였는데 유전실험을 계획하고 학설을 세우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이 이 대학에서 수강한 학과목에 나타나 있다.이처럼 멘델은 자신의 가설을 증명하고자, 모델식물로 택한 완두로 10여 년이 소요될 장기간의 실험에 대해 치밀한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멘델이 Vienna에 도착했을 때, 여러 대학에서는 식물체가 세포로 구성되어 있으며, 따라서 식물체의 다양한 기관들은 모두 세포로 구성되어 있음을 막 가르치고 시작하고 있었다. 멘델이 Vienna 대학에 갔을 때는 식물학 연구소가 둘로 갈라져 한쪽은 Frenzl 교수가 이끄는 식물통계학 연구소로, 또 한쪽은 Unger 교수가 이끄는 식물생리학 연구소로 분리된 후였다. Frenzl은 배가 단지 화분 세포로부터 발생한다는 견해의 지지자였고, 반면에 Unger는 배의 기원에는 양친이 모두 기여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멘델은 Unger 쪽이었고, 학술 활동에 있어서 Unger가 소개한 용어들을 사용하였다.독일의 식물학자 Gartner는 1849년에 발표한 방대한 논문에서 잡종 형성에 관한 실험적 연구를 정리하였다. Gartner 책의 표지 안쪽에 언급되어 있는 완두콩의 형질이 쌍을 이루고 있다는 내용은 멘델의 주목을 끌었고, 나중에 완두콩을 실험 식물로 택하게 된 원인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양친의 요소와 형질들을 가지고 잡종의 기원과 발생을 설명하는 것은 식물생리학은 물론 여러 가지 다른 형태를 가진 식물들의 분류에도 중요하다고 Gartner는 지적했다. 멘델은 그의 논문 서두부고 부른다)에서 순수한 품종끼리 교배시켜 얻은 식물은 오직 한 형질만을 보인다. 하지만 원래 식물에 있었던 형질 중에 이 F1 세대에 나타나지 않는 것도 있었다. 식물들은 모두 황색과 녹색, 큰 키와 작은 키, 주름진 씨와 둥근 씨중 한쪽에 속했다. 부모식물의 형질이 뒤섞여 있는 식물, 즉 둥근 씨와 주름진 씨를 함께 맺는 식물은 전혀 없었다. 이 F1 세대를 번식시킨 F2 세대에서는 결과가 또 달라졌다. F1 세대에서 사라졌던 형질들이 다시 나타났다. 예를 들어 주름진 씨를 맺은 F1 세대 식물에서 둥근 씨를 가진 자손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뒤섞이는 일은 없었다. 식물은 모두 황색 아니면 녹색이었고, 모두 둥근 씨 아니면 주름진 씨를 맺었다. 멘델은 F2 세대 식물을 형질별로 셌다. 그는 둥근 씨를 맺은 식물이 5,474개체, 주름진 씨를 맺은 식물이 1,850개체였으며, 황색 식물이 6,022개체, 녹색 식물이 2,001개체라고 기록했다. 각각의 비율은 약 3 대 1이었다.이 비율을 이용해 멘델은 유전을 좌우한다고 믿는 어떤 규칙 또는 법칙을 만들었다. 우선 그는 각 식물에 ‘인자’(유전자라고 부른다)가 두 개씩 있고 이것이 각 형질을 통제한다고 했다. 그리고 각 인자는 강한 것과 약한 것 두 종류가 있다고 가정했다. 강한 인자는 약한 인자보다 우성이었다. 멘델의 법칙에 따르면 강한 인자 두개를 물려받은 식물은 강한 형질을 갖는다. 그리고 강한 인자 하나와 약한 인자 하나를 물려받은 식물도 강한 형질을 가지며, 오직 약한 인자 두개를 물려받은 식물만 약한 형질은 갖는다. 이 공식은 멘델이 관찰한 3 대 1비율과 일치했다. 오늘날 우리는 멘델의 강한 인자를 우성 유전자라고 하고, 약한 인자를 열성 유전자라고 한다.멘델 법칙의 핵심은 각 형질의 인자가 독립적으로 유전된다는 것이다. 한 형질은 다른 형질과 관계없이 유전된다. 다시 말해 각 인자는 다른 형질의 인자와 상관없이 따로따로 다음 세대로 전달된다. 예를 들어 둥근 씨는 식물의 색깔과 연관이 없다. 왜
    자연과학| 2004.06.08| 7페이지| 1,000원| 조회(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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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인,인문,철학] 퇴계의 생애,학문과 사상
    나라가 떠들썩하다. 소위 지도층이라는 사람들 대통령과 정계, 제계... 정말 드러워서 듣기도 싫은일들만 뉴스에서 나온다. 초등학교때 도덕 교육이나 제대로 받았나 궁금하다.퇴계 이황 선생에 대한 책을 읽고 조사하면서 선생의 학문이나 사상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물론 나의 배경지식의 부족함과 관심이 없었던 이유에서 오는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선생의 생애를 보면서 내 자신뿐만 아니라 우리 나라 정치인들, 기업의 경영자들이 보고 배우며 또한 반성할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인물의 선정에 있어서 다른 나라의 위인보다는 퇴계 이황을 선정한 이유는 우리 나라의 위인에 대해서 더욱 알고 자긍심을 갖고 싶어서였다.내 주머니에 항상 계시는 퇴계 이황 선생의 생애와 잘 이해는 안가지만 그의 학문과 사상을 통해 퇴계 이황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1. 퇴계 이황의 생애퇴계 이황선생은 연산군 7년(1501) 현재의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에서 출생하여 선조3년(1570) 에 돌아가셨다. 퇴계는 우리 나라에서 이름보다 호가 더 잘 알려진 학자이다. 아이들도 '퇴계'라 하면 잘 알지만, 퇴계의 이름이나 관향을 물으면 얼른 대답 못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물론 나를 포함해서 ....이것은 종래 우리 나라 선비 가문에 전해온 선조의 이름을 직접 부르기를 기피하는 관습에서 온 영향일 것이다. 퇴계의 성은 이(李)요 이름은 황(滉)이다. 자는 경호(景浩)요 관향은 진성(眞城)이다. 퇴계의 아버지 치는 6남 1녀를 남기고 퇴계가 태어난지 7개월 만에 4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는데 그가 죽기전에 일상 말하기를, "내 아들 가운데 능히 나의 업을 계승하는 자 있다면 죽어도 한이 없겠다"고 하였다. 여기서 나의 업이란 학문하는 일이다. 이런 아버지의 영향으로 뒷날 퇴계가 자라면서 수많은 서적들을 접하게 되었으니 그 영향이 얼마나 컸을 것인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퇴계의 어머니인 박씨 부인은 상당히 총명하며 덕이 높은 여인이었으며, 자녀들의 교육에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한 것으로 전해진다. 뒷날 퇴계의 인간형성이나 그의 학문 취향에 모두 직접적인 관계가 있었을 것이다. 다음으로 퇴계의 학문적 성장에 일찍부터 영향을 준 사람으로서 그의 숙부를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는 형인 퇴계의 아버지와 더불어 어려서부터 글읽기를 좋아하고 글짓기를 잘하였다. 퇴계의 숙부에 대한 묘갈문에서 보듯이 퇴계의 문학적, 시적 취미와 그 소양은 숙부의 훈도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생각된다. 퇴계가 글을 읽기 시작한 것은 여섯 살 때부터였다. 마침 이웃에 「천자문」을 해독할 줄 아는 어떤 노인이 있어 퇴계는 그에게 「천자문」을 배우기 시작했다. 퇴계는 6, 7세 때부터 이미 온순하고 공손하였다고 한다. 열두 살 때 병으로 휴직하고 집에 와 있던 숙부에게서「논어」를 배웠다. 13세와 15세 때에는 형과 사촌형을 따라 산에 가서 함께 독서할 만큼 성장하였고, 16세 때에는 사촌 동생과 친구를 데리고 천등산 봉정사에 들어가 독학하기도 하였다. 17세 때 안동 부사로 재임 중이던 숙부가 별세하여 물을 곳도 없게 되어 스승 없이 대부분을 혼자 공부하였다. 그 때문에 퇴계는 글자 한 자도 놓치지 않고 자기 힘으로 연구하게 되었고, 비록 옛 성현의 글이라도 의심을 가지고 파고들어 재해석하는 학문 방법을 개척하게 되었으며, 상당히 깊은 철학적 사색에 빠져 들어간 듯하다.21세에 허씨 부인과 결혼한 그는, 24세에 아들 준을 낳고 그해에 서울로 올라와 잠시 성균관에 유학하였다. 퇴계는 27세에 경상도 향시의 진사시에 응하여 수석을 차지하고 32세에 문과 별시, 33세에 경상도 향시에 합격하였고, 34세 때에 대과에 급제하여 이로부터 벼슬길에 나서게 된다. 43세 때까지 대체로 순탄한 관료 생활을 보낸다. 그러나 이때에도 끊임없이 학문 연마에 정진하였다.우리는 퇴계를 단순히 근신, 충실한 일개 관리로만 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 그는 국가의 장래를 위하는 원대한 식견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그가 45세 때 왜인의 걸화를 허락하라는 상소문을 올린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퇴계의 이 소문을 보면 임진왜란을 이미 예측한 말이라고 볼 수 있다. 흔히 율곡의 십만양병설(十萬養兵說)을 임란 예견의 명언으로 평하고 있지만 퇴계의 이 소문 또한 국가의 장래를 생각한 선견지명이라 할 수 있다.퇴계는 50세 이후에는 고향의 한적한 시냇가에 한서암과 계상서당 및 도산서당을 세우고, 그의 학덕을 사모하여 모여드는 문인들을 가르치며 성리학의 연구와 저술에 몰두하였다. 물러난 후에도 조정에서는 성균관 대사성, 홍문관과 예문관 대제학, 공조판서, 예조판서, 의정부 우찬성, 판중추부사 등 계속하여 높은 관직을 제수하였으나, 거듭 사직 상소를 올려 받지 않았으며 마지못해 잠시 나갔다가도 곧 사퇴하여 귀향하기를 반복하였다. 대체로 퇴계는 벼슬의 품계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사퇴하는 경향을 보였으며, 실제로 정3품 이상의 벼슬은 하나도 받아들인 적이 없다. 끊임없이 사퇴하려는 퇴계의 뜻과 놓아주지 않으려는 임금의 뜻이 항상 교차하여 문서상의 임명과 사퇴가 계속된 것이 노년기의 특징이다. 퇴계가 이처럼 관직을 사양한 것은 사림을 적대시하는 문정왕후와 윤원형 중심의 외척정치를 못마땅하게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퇴계는 주자학 연구에 몰두하였기 때문에 학문적 취미가 어떠한 것보다 컸기 때문이다. '퇴'는 물러선다는 뜻이니 벼슬에서 물러선다 해서 '퇴거계상(退居溪上)'의 뜻으로 퇴계라고 한 것 같다. 그는 한서암에서 5년을 거처하다가, 모여드는 학도들을 감당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한서암 주변이 한적하기만 할뿐 산수의 경치를 결여하고 있다고 하여, 도산 남쪽 산수 좋고 그윽한 곳에 새로 터를 구하여 당사를 새로 짓고 '도산서당' 이라고 이름하였다.퇴계의 죽음은 유교에서 이상적으로 보는 죽음의 일례였다. 퇴계는 70세 되던 1570년 12월 8일 세상을 떠났다. 이에 앞서 그는 11월초에 병환으로 강의를 그만두고 제자들을 돌려보냈는데, 그 소식을 듣고 조목 들 몇 사람의 제자들이 찾아와 간병을 하였다. 12월 3일 자제들에게 다른 사람들로부터 빌려온 서적들을 돌려보내게 하였으며, 12월 4일 조카에게 명하여 유서를 쓰게 하였다. 이 유서에는 '조정에서 내려주는 예장을 사양할 것', '비석을 세우지 말고 조그마한 돌의 전면에다 「퇴도만은진성이공지묘(退陶晩隱眞城李公之墓)」라고만 새기고, 그 후면에는 간단하게 고향과 조상의 내력, 뜻함과 행적을 적을 것' 등이다. 선비의 품격은 생애를 마치는 죽음의 자리에서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그의 저술 가운데 천명도설과 천명도설후서(1553), 고봉 기대승과의 8년간에 걸친 사단칠정논변(1559-1566), 주자서절요(1556), 자성록(1558), 전습록논변(1566), 무진육조소(1568), 성학십도(1568) 등은 한국유학사상사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대표적인 저술이다.2. 퇴계 이황의 학문과 사상퇴계사상의 특색은 정주학의 입장을 취하며, 정주계 중에서도 주리적 이기이원론의 철학을 견지하면서,특히 사칠설과 같은 심성론의 이론적 탐구를 병행하는 주지주의적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퇴계는 기대승과의 사단칠정론을 통하여 한국 성리학의 특징인 심성론을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수양론의 실천방법을 정밀하게 규명함으로써, 조선시대 성리학의 기본 틀을 정립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이기론성리학의 이기론은 인간과 사물의 존재를 그 구조와 근원에서 이(理)와 기(氣)의 개념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마음(心)을 이(理)와 기(氣)가 결합한 것이라는 기본 인식 위에서 성(性-성품)과 정(精-감정)을 통섭하는 주체로 파악하였다. 퇴계의 사상은 정자, 주자의 입장을 바탕에 둔 정주학의 토대 위에서 세워졌다. 그리하여 정주 계통의 성리학설을 기본 입장으로 하여 퇴계는 이와 다른 이론이나 학설을 배척하였다. 불교나 도교와 같은 다른 사상은 말할 것도 없고, 같은 성리학이라 하더라도 심학이라 불려지는 양명학이라든지 화담계의 기일원론에 대한 배척이 가장 강력했다. 주자의 학설 사상과 틀리는 것은 모두 진리성을 잃은 것으로 아는 것이 퇴계의 사고 방식이었다. 이런점은 지금까지 우리나라 주자학의 편협성으로 지적되어 왔는데 그러나 실천하는 주체의 입장에서 퇴계는 그러한 엄격주의를 가짐으로서 그에게 학문 사상적 우월성을 가져다주었고 또한 결함도 가져다주었다.○ 심성론이처럼 퇴계는 정주의 입장을 자신의 학문적 토대로 하여 출발하였지만 깊이를 더하여 감에 따라 독자성을 띠게 되었는데 그 좋은 예가 심성론 특히 사단칠정론이다.퇴계는 4단이란 이(理)에서 나오는 마음이고 칠정이란 기(氣)에서 나오는 마음이라 하였으며, 인간의 마음은 이와 기를 함께 지니고 있지만, 마음의 작용은 이의 발동으로 생기는 것과 기의 발동으로 생기는 것 두 가지로 구분하였다. 즉 선과 악이 섞이지 않은 마음의 작용인 4단은 이의 발동에 속하는 것으로, 이것은 인성(人性)에 있어 본연의 성(性)과 기질(氣質)의 성(性)이 다른 것과 같다고 하여 이른바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을 주장하였다. 기대승은 이황에게 질문서를 보내어, 이와 기는 관념적으로는 구분할 수 있으나 구체적인 마음의 작용에서는 구분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퇴계가 고봉에게 의견을 묻는 편지를 보냈던 것이 8년에 걸친 퇴계와 고봉 사이에 벌어진 사칠논쟁의 발단이 되었다.
    인문/어학| 2002.12.03| 4페이지| 1,000원| 조회(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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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산관리,품질관리] Six Sigma를 통한 삼성SDI
    제 1 장 목적 및 방법제 1 절 목적1997년 1월 한보그룹의 부도사태 이후 수많은 대기업들이 차례차례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이때 한국의 종합주가지수는 400선 까지 내려갔었으며 외국의 신용은행들은 한국의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하였다. 결국정부는 IMF에 구제금융 공식요청을 하게 되기까지 이르렀다. 우리 나라 기업들은 이러한 사태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였고 품질을 통한 경쟁력확보를 위해 더욱더 노력하게 되었다.1999년 10월 GE의 회장인 잭 웰치가 한국에 왔을 때 한국의 많은 학자들을 비롯하여 대기업의 최고 경영자들이 그의 연설을 듣기 위해 모여들었다. 그는 이 시대 최고의 경영자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1995년에 도입한 6시그마 경영 전략은 세계각국의 기업인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우리 나라의 기업에서 역시 6시그마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미 여러 대기업에서 6시그마를 실행하여 성과를 보이고 있다. 이 새로운 경영기법은 과거의 경영전략들 보다 더욱 구체적인 실행방법을 제시하였다. 그래서 현재 6시그마 신드롬이라고 까지 할 정도로 많은 기업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6시그마는 20세기 최고의 경영기법이다'라는 말을 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이러한 경영전략을 사전에 아무런 준비를 거치지 않고 실행하여 실패를 맛본 기업도 있다. 6시그마를 도입하기 전에 6시그마의 본질을 이해하고 그것을 실행하기 위해 준비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먼저 알아야 할 것이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다른 기업에서 실행하여 성공한 기법을 마구잡이로 도입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일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떤 약이든지 자신의 체질에 맞는 약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어떤 경영전략이든지 실패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먼저 도입하고자 하는 경영기법의 내용을 충분히 숙지하고, 도입하고자 하는 회사에 적합한지 검증을 하고 도입하여야 하며, 아울러 일과성의 행사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목표를 분명히 하고 지속적으로 추진해야만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품질에 관한 연구는상 실현될 수 있는 가장 낮은 수준의 에러로 인정되고 있다. 따라서 경영혁신 수단으로서의 6시그마 운동은 제품설계 제조 및 서비스의 품질 산포를 최소화해 규격상한과 하한이 품질 중심으로부터 6시그마 거리 (1백만 개중 3.4개)에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통계용어에 불과한 6시그마를 기업경영이 도달해야 할 목표치로 설정하는 것이 6시그마 운동의 출발점이다. 6시그마의 목표달성을 위해 필요한 도구는 "6시그마 기법", 그 기법을 활용해 회사전체가 하나가 돼 추진하는 활동을 "6시그마 활동"이라 부른다.제 2 절 6시그마의 특징첫째 통계적 측정치(statistical measurement)다. 객관적인 통계수치로 나타나기 때문에 제품이나 업종, 업무 및 생산 프로세스가 다르더라도 비교할 수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고객만족의 달성 정도와 방향 위치 등을 정확히 알 수 있게 해주는 척도다. 즉 "제품과 서비스, 공정의 적합성을 재는 탁월한 척도"인 셈이다. 둘째, 기업전략(business strategy)이다. 경쟁우위를 갖게 해주기 때문이다. 시그마 수준을 높이는 만큼 제품의 품질이 높아지고 원가는 떨어진다. 그 결과 고객만족 경영을 달성할 수 있다. 셋째, 철학 (philosophy)이다. 시그마는 기업내의 사고방식을 바꿔 버린다. 무조건 열심히 일하는 것보다는 "스마트하게" 일하게 하는 철학이 바로 6시그마다. 이 운동은 제품을 생산하는 제조방식에서부터 구매 오더를 작성하는 방식까지 모든 작업에서 실수를 줄이는 일이다. 그렇다면 6시그마의 패러다임을 어떻게 조직에 심을 수 있을까. 공정능력을 10~20% 높이자고 말하면 어느 정도 수긍한다. 그러나 1백배 향상시키는 운동을 제안하면 직원들은 당황하게 마련이다. 따라서 이런 수치적인 접근보다는 실행사례를 중심으로 운동을 펼쳐 나가는 게 좋다. 예컨대 놀랄만한 향상(Quantum Improvement)을 이룬 사업장을 벤치마킹해 유익한 사례나 방법 기술 등을 적용하도록 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 종합적인 품질에 초점을 획기적인 의미를 지닌다. 6시그마는 또 진정한 의미의 "전사적인 품질운동"이다.제 5 절 6시그마 성공의 키포인트6시그마의 성공을 위한 첫 번째 핵심요소는 리더십이다. 다른 많은 경영혁신 방법론과 마찬가지로 최고경영자의 의지와 강력한 뒷받침을 요구한다. 이점에 있어서 우리 나라의 기업은 강점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으나 장기적인 안목과 지속성이라는 점에서 어려움이 예상된다. 대부분의 6시그마에 성공한 기업들은 짧게는 4년에서 5년, 6년의 기간에 걸쳐 지속적으로 추진한 결과 가시적인 성과들을 얻었다. 이처럼 장기간이 필요한 것은 6시그마 의 속성상 불가피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 나라의 경우, 이 기간이 상당하게 줄어들 수 있겠으나 적어도 2-3년의 기간은 필요하리라 생각된다. 또 한가지 리더십과 관련하여 중요한 점은 최고경영자의 "위치 고수" 이다. 최고경영자의 잦은 교체는 지속적인 프로그램의 진행을 막는 결과를 초래한다. 리더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6시그마에 대한 Vision을 모든 구성원이 공유하여 새로운 도전을 하도록 하는 일이다.6시그마는 "데이터에 기초한 관리"를 강조한다. 6시그마에서 개선의 도구로 통계적 방법들을 많이 사용하고 있는 바, 우리가 잘 알고 있다시피 통계적 도구들은 "투명한 데이터" 없이는 무용지물이다. 우리 나라 기업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의 하나가 이 부분일 것이다. 투명한 데이터는 사실 그대로의 데이터를 의미할 뿐 아니라 분석에 필요한 형식을 갖춘 데이터를 의미한다. 현재 6시그마를 도입하는 기업에서 강조되고 있는 것은 "데이터 수집" 이 아니라 "데이터를 분석하는 도구" 이다. 많은 방법론을 배우지만 정작 쓰고자 할 때는 이를 적용할 데이터가 없다. 주어진 데이터를 분석하고 해석하는 방법을 배우지만 정작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은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 "투명한 데이터" 는 상당 부분 "사람"의 문제와 연계되어 있으며 가장 시급한 해결 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6시그마를 시작하기 위한 준비 단계로 "데이터 수집 체계nnovation) 추진하고 있었으며, 제조부문의 혁신 활동으로 표준품질생산방식 (SQM : Standard Quality Management)을 추진해 왔다.이 회사가 지난 1996년 10월 국내 처음 이 경영방식을 도입, 현재까지 총 1천8백76억원의 비용절감 효과를 거두고 있다. 이 회사는 지금까지 국내 4백75건, 해외법인 94건 등 총 5백69건의 프로젝트를 6시그마 경영 아래 완성시켰다. - 중략 - 이와 함께 6시그마 추진에서 핵심적 역할을 할 블랙벨트 양성을 위한 교육에 나섰다. 또 6시그마 자격제도인 벨트 체계를 도입, 간부 승격을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따도록 했다. 지난해 초에는 6시그마 경영을 전 사업장으로 확대했다. 삼성은 벨트의 최고봉인 마스터 블랙벨트 2명을 비롯하여 블랙벨트 38명, 그린벨트 1천1백68명, 화이트벨트 6천9백28명 등을 확보하고 있다. 이 회사는 전사적으로 6시그마 수준에 도달하는 시기를 2000년으로 잡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9년 3월 11일)지금부터 9페이지까지는 아래의 인터넷사이트에서 그대로 인용한 것입니다.http://www.samsungsdi.co.kr/ → SDI 소개 → 경영혁신→ 경영혁신의 TOOL → 6시그마삼성SDI의 6시그마 추진과정*6시그마 운동 추진 필요성21세기는 '무한경쟁의 시대'이다.경쟁은 기업경영의 전 분야에 걸쳐, 장소와 시간에 관계없이 벌어지는데, 기업의 경쟁력은 코스트(비용)를 줄이거나 상품 품질을 향상시키는 것만으로 높아지지는 않는다.제품 품질은 물론 서비스의 품질, 판매와 구매, 회계 등 전 관리 프로세스에서 총체적으로 경쟁력이 높아질 때만 살아 남을 수 있다. 21세기형 경영기법으로 불리는 6시그마(Six sigma)는 바로 무한경쟁시대 최상의 무기로 각광 받고 있다.*도입 및 전개삼성SDI에서는 97년부터 GE를 벤치마킹하고 전 경영진부터 교육을 받으면서 6시그마를 국내 최초로 도입하였고, 2000년부터 본격적으로 미국 6시그마 컨설팅업체인 SBTI에서 챔피언 및 BB격의 없는 토론을 하는 등 Top-Down식 6시그마 정착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SDI의 경영혁신은 6시그마로 일원화 선언:전임원 4일간 6시그마 챔피언 교육 완료 (CEO부터 솔선수범:전임원 GB벨트 취득)전 임원이 챔피언 플래닝 수립, 추진 (예외 불허용)매월 1회 챔피언의 날 개최 (격의 없는 토론, 챔피언복장 착용)3대에 걸친 CEO의 지속적 6시그마 리더십 (월간단위, 주간단위 보고제도 운영)교육 및 컨설팅: 세계 최고 수준의 미국의 컨설팅 기관(SBTI)과 1년동안 컨설팅 계약을 체결하여 회사내 가장우수한 인력을 선발하여 Black Belt를 양성교육을 실시하였으며, 2001년부터는 사내강사를 활용하여 체계적인 6시그마 아카데미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현재 국내 전사원이 White Belt를 취득하였고, Green Belt는 1108명이 취득하였다.프로젝트 : BB 프로젝트수행은 경영전략과 연계된 핵심과제를 챔피언이 직접 선정하고 BB가 이를 수행하는 Top-Down식으로 전개하고 있으며, 대상범위는 협력업체를 포함한 제조, 비제조, R&D 경영 全부문에 6시그마 프로젝트 동시 진행하고 있다. 공정한 Project효과금액 산출을위해 FEA(Financial Effect Analyst) 제도를 두고 있다. FEA는 6시그마 프로젝트의 원활한 수행을 지원하며, 단계별로 필요한 재무정보와 기법을제공하고 효과 산출의 정확도 제고하여 각 사업팀의 모든 프로젝트 효과를 프로젝트 초기부터최종단계까지 검증 효과의 정확도 제고는 물론 전사 차원의 일관성과 평가/보상의 공정성을 유지하는데 목적이 있다.제 2 절 6시그마 도입 배경삼성SDI은 6시그마 경영 방식을 도입하기 이전에도 품질개선운동으로 사무간접 부문에는 프로세스 이노베이션방식, 제조부문에서의 표준생산방식과 같은 회사 나름대로의 방법에 의해 경영개선을 추진하고 있었다. 그러나 경영혁신 방법이 분산되어 개선의 상승효과를 극대화시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시스템의 안정과 프로세스 혁신의 완성도가 점차 있다.
    경영/경제| 2002.12.02| 16페이지| 1,500원| 조회(4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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