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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론
    제1부 神論I. 하느님 체험에 대한 성서의 증언"하느님께서 예전에는 예언자들을 시켜 여러번 여러 가지 모양으로 우리조상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마지막 시대에 와서는 당신의 아들을 시켜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통해서온 세상을 창조하셨으며 그 아들에게 만물을 물려주시기로 하셨습니다. 그아들은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찬란한 빛이시요, 하느님의 본질을 그대로간직하신 분이십니다".(히브1, 1-3)그리스도교의 이해에 의하면, 하느님에 대한 인간적 서술인 신학은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고유한 말씀(계시)를 통하여 가능하다. 하느님은 인간의 본성과 행동에 부합하는 방식을 활용하여 역사 안에서 당신의 위대한 구원행위를 통하여 당신 자신을 계시하신다. 그리고 인간 역시 다가오시는 하느님에 대한 올바른 인식없이 그 분 가까이 나아갈 수도, 그 분의 구원행위에 참여할 수도 없다.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다가오고 만나는 그리고 관계 맺는 자리는 이 세상의 한 가운데 역사 안에서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하느님을 인식하는 방식은 인간의 이성과 자연을 통한 인식이 아니라, 일차적으로 역사 안에서 전개되는 하느님의 구원행위를 통한 체험에 있어야 한다.하느님께서 일찍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하셨던 방식들과 그리고 성서 안에서 증언되는 이 백성으로부터 정화되고 성장한 신앙은, 하느님에 대한 우리 체험과 인식의 항존하는 원천이다. 하느님은 역사 안에서 구원을 위한 말씀과 행위를 통하여 당신의 가장 내면적인 존재를 드러내고 그리고 당신의 본질을 알려준다. 구약성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그러한 하느님과의 만남과 관계의 체험을 언어로 증언해 주고 있다. 구약은 또한 신약의 하느님 체험과 인식의 배경이 된다.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의 하느님을 항상 염두에 두고 하느님에 대해 말씀하신다(마태 22,23-"나는 아브라함의 하느님이요. 이사악의 하느님이요, 야곱의 하느님이다") 위에서 인용한 히브리서의 구절처럼, 구약에서 몸소 선택하신 사람들(아브라함, 모세, 예언자들)을 통하여하는 것을 굽어 살피셨습니다. 그리고 야훼께서는 억센 손으로 치시며 팔을 뻗으시어 온갖 표적과 기적을 행하심으로써 모두 두려워 떨게 하시고는 우리를 에짚트에서 구출해 내셨습니다".(신명 26,5-8)성조설화의 가장 간결하고, 가장 오래된 형태이다. 이 형태에 따라 창세기 12장 이하의 성조들에 대한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다. 그리고 그 성조들의 이야기 핵심에는 "하느님의 약속"이 자리하고 있다. 이 하느님의 약속이 성조들의 다양한 하느님 체험을 일관성 있게 구성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준다: "내가 너와 함께 있다". 창세 12, 1; 15, 1-8; 26, 24; 28, 13-15. 이 약속은 단절되지 않는다. 그것은 역사 안에서 지속되고 특정 순간에 실현되며 또 성취된 약속은 새 약속을 보장해주는 보증이 되면서 미래를 향하여 개방된다. 계약의 하느님은 당신 약속에 끝까지 신실하시며 인간과 더불어 역사를 엮어가게 된다.구약의 모든 사건을 지배하고 있는 하느님은 물론 야훼이다. 그러나 야훼의 이름은 모세에 의해 이스라엘의 역사 안에 처음 등장하게 됨(출애 3장 참조)으로, 성조들의 하느님은 엘/엘로힘으로 알려져 있다.하느님을 나타내는 엘 명칭은 힘, 권능, 완전성 등을 의미한다. 그의 존재는 단순히 현존해 있는 것이 아니라, 강력하게 작용하는 힘을 나타낸다. 그리고 엘 명칭은 일차적으로 술어적 기능을 가진다. (Micha-el: 누가 하느님과 같으랴, Rapha-el: 하느님이 구원하셨다, Gabri-el: 하느님의 사람, 하느님은 막강한 분으로 나타나셨다, Emmanu-el: 우리와 함께 계신 하느님, Isra-el: 하느님과 겨루어 이기다 등)야곱설화(창세 32,25-32)는 지금까지 감추어 계셨던 하느님의 출현을 전해 준다. 하느님께서 그와 겨루고, 축복하시고 그리고 그의 술어가 되어 주신다. 야곱은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꾸고 장차 하나의 민족으로 불리게 될 것이다. 야곱이나 민족으로서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가까움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엘은 이 민족에게 머주지 않으려는 듯하다(야뽁 근처에서의 야곱과 겨루는 하느님, 창세 32,29 비교). 모세의 소명 설화에서 야훼는 모세에게 그와 그의 민족을 돕고자 하는 분으로 계시되고 있다. 모세의 물음에 하느님은 야훼라는 이름을 알려주면서도 정확한 뜻을 밝히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월적 신비의 영역에 계시는 하느님이 사람에게 다가오시고 그리고 그를 통하여 역사 하고자 한다.야훼의 어원은 동사 'hajah'이다(있다, 존재하다, 살다, 그가 저기에 있다, 저기에 있는 그). 이 동사는 단순한 존재만을 나타내지 않는다. 동적이며 능동적인 성격을 표현하는 역동적인 말이다. 그러므로 "나는 너희를 위하여 그곳에 있고자 한다. 나는 너희들이 경험할 수 있는 방법으로 너희와 함께 있으려 한다" 라고 해석해도 가능하다. 역사 안에서 약속을 통하여 사람들과 함께 나-너의 관계를 맺고자 하는 하느님의 현존 양식을 보여주는 이름이다.야훼는 현존하시는 분이다. 있음은 현존, 여기 있음(Da-Sein)을 의미하고 있다. 그 안에서 야훼는 역사 하신다. 야훼는 이름을 밝힐 필요가 있는 그런 신은 아니다.. 인간은 야훼를 포착해서는 안 된다. 야훼를 소여되어 있는 것에로 편입해서도 안 된다. 인간은 야훼를 체험할 것이고, 그리고 체험한다. (감추임과 동시에 드러남)야훼는 본질적으로 체험 개념이다. 무엇이 체험되는가? 그것은 하느님의 현존을 통하여 "함께 있음"(출애 3, 12)의 체험이다. 야훼는 혼자 자존하는 분이 아니라, '함께' '위하여' 현존하는 분이다. 초월적인 하느님은 인간과 세상의 무한한 간격을 좁히기 위하여 역사 안에 들어오심으로써 당신 자신을 초월하는 무한한 자유를 행사하신다. 근접할 수 없는 하느님은 강한 분(엘)이지만 백성의 생활에 동참하는 현존과 억압받는 백성을 해방하는 위업을 통해 역사의 주인으로 나타나신다. 이 모든 일은 야훼가 당신 자신을 초월하는 절대적 자유의 행사로 인해 이루어진다. 야훼는 나로서 역사 안에서 인간과의 관계를 통하여(너와 함께) 인간을 위하여 착하고 있는 농경민이었고 그들의 종교는 농경문화의 필요성에 맞는 풍요다산을 비는 제의로 나타났다. 반대로 이주해 들어오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유목민 혹은 반유목민이었고 이들의 문화는 주로 목축문화였다. 또한 이들의 종교는 농경민에게 필요한 정도의 요구로써만 만족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따라서 종교의 결합은 필연적이었다. 초기에는 야훼신앙과 가나안의 종교가 불균형을 이룬 채 병존하다가, 점차 융합되었다.가나안 사람들의 신들 중에는 최고의 신으로 통하는 엘(엘 엘리온 El Elijon -지극히 높으신 분)이 있다. 엘은 성조들을 통해서 본 바와 같이 야훼와 동일한 하느님으로 받아들여진다. 우선 엘은 땅의 주인으로 나타난다. 야곱은 엘과 겨룬 후 그 땅에서 살 수 있는 권리를 얻고 그 땅의 주민으로 인정받는다(창세 32,22-32) 그리고 넓은 의미로 엘 엘리욘은 "하늘과 땅을 만드신 분"(창세 14, 19), "창조의 창조주"로 표현되고 있다. 이로써 이스라엘 종교는 고대 가나안 종교의 유산을 받아들였으며 그것을 야훼로 흡수시키고 있다.가나안의 신들 중에 땅을 소유하여 풍요다산을 관장하는 젊은 신 바알(Baal -주인, 소유)이 있다. 바알은 죽었다가 다시 소생하는 식물의 신으로도 나타난다. 죽었다가 다시 소생하는 신에 관한 제의극이 가나안인들의 종교제의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다. 이 제의극의 중심 구성요소는 성혼(聖婚)에 있다. 가나안인들은 땅의 풍요로운 생산은 바알과 그의 배우자 아스다롯 사이의 성적관계에 달렸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인간은 신들의 성혼에 방관해서는 안되고 바알의 성관계를 의식을 통해 재연함으로써 자연의 번성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여기서 성전에서의 매음제도가 매우 중요한데 이것은 풍요다산을 촉진시키는 것으로 생각되어 거행되었다.이러한 가나안의 종교관은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매우 생소하였고, 바로 이 바알 신에 의해 야훼신앙은 위기를 맞게 된다. 이 위기 의식에서 여호수아는 세켐에서 야훼께 대한 신앙고백을 새롭게 하는 뜻에서 하여금 자신의 비천함을 고백하게 만드는 하느님의 거룩함의 속성이다. 그러나 그 거룩함의 속성은 인간을 끌어당기는 힘이며, 야훼가 인간을 사랑한다는 것을 가리킨다. (호세 11,9.11) 거룩함은 하느님이 속된 인간을 당신에게로 끌어당기시어 정화시키는 힘이다.(이사 6,5-7)성스럽다(qados)는 희브리어에서 세속적인 것 일상적인 것과 분리된 뜻과 순수한 반짝이는, 비추이는 등의 말과 함께 사용되었다.(에제 1장 '병거발현'참조) 성서적 언어습관에서 성스러운 것은 신적인 것, 완전히 다른 것을 의미한다. 성스러운 하느님은 모든 인간적인 것 위에 높이 서 계시는 두려우신 분, 접근할 수 없는 분, 초월적인 분이시다. (시편 111,9; 1사무 6, 20) 거룩하신 하느님에 대한 인간의 반응은 공포와 전율 뿐이다(이사 8, 13; 29, 23 ). 그러나 거룩하신 분은 이스라엘을 선택하고 자비를 베푸는 선하신 하느님이라는 특성도 있다.성스러움은 일차적으로 도덕적 윤리적 면과는 연결되지 않으나 도덕적 유니적 금령과 밀접하게 관계되고 있다 (성법전에서): "너희는 거룩하여야 한다. 나, 야훼, 너희의 하느님은 거룩하기 때문이다"(레위 19,2) 사람 또는 사물이 성스럽다고 특징지워질 수 있다면 이것은 특히 신적인 것과의 관계를 문제삼는 것이다. 성스러운 것은 특수한 속성으로 신성에 속한다.1.4. 왕정시대의 하느님- 예언자들의 하느님, 말씀의 하느님- 한 분이신 하느님(유일신)왕정시대 예언 사상의 특징은 다음 세 가지 특징 가운데에서 살펴볼 수 있다.야훼는 세상의 주인이시며 왕이다. 그는 세상의 창조자이기 때문이다. 야훼는 뭇 백성을 정의로 심판하시는 재판관이다. 야훼는 모든 원수를 쳐 없애시는 강하신 하느님이다. 이러한 사상에는 야훼 하느님이 자연과 역사의 주권자라는 주장이 들어 있다.* 한 분이신 하느님(유일신) : "들어라, 이스라엘, 야훼는 우리 하느님이시다. 야훼는 단 한 분이시다"(신명 6, 4) 라는 원칙을 규정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야훼 외에 어떠한 다.
    인문/어학| 2001.10.17| 13페이지| 1,500원| 조회(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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