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입구소련이 붕괴되기 이전까지 중앙아시아는 우리에게 있어서 참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땅이었다. 더군다나 유목생활을 주로 했던 이들의 생활을 추적하는 일이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이제 중앙아시아는 우리에게 열려진 땅으로 인식되기 시작했고 중앙아시아의 여러 국가들에 대한 관심으로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중앙아시아의 왼쪽으로는 유럽이 오른쪽으로는 아시아문화가 만나는 곳이다. 이곳은 과거의 실크로드의 영광이 있었던 곳이다. 아래쪽은 이슬람문화가 있는 곳이다. 그리고 중앙아시아의 위로는 러시아가 자리를 잡고 있다. 이 중앙아시아가 가지는 의미는 동서의 문화가 만나는 곳으로, 이슬람문명와 기독교문명이 만나는 곳으로 문명의 충돌지이자 문명의 공백지로 자리를 매김해 갈 수 있다.최근에는 이곳에 많은 자원이 매장되어 있는 곳으로 알려지면서 성질을 달리하는 파워게임으로 돌입하고 있다. 이곳의 부존자원을 두고 미국과 유럽, 일본 그리고 이슬람권 국가들의 게임이 벌어지고 있는 곳이다. 우리나라도 이곳에 게임의 멤버로 참석을 하고 있다. 물론, 전세계의 모든 곳에서 나름대로의 게임의 법칙을 따라 게임이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이번에 '유목민이 본 세계사'라는 책을 통해 관심을 이곳 중앙아시아로 모으고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한 번 역사를 통해서 훑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유목민의 존재를 부가 시키기 위해 약간 과장된 부분도 있고, 또한 지나치게 서구에 대해 배타적인 부면도 보아지만 '상식'에서 벗어나 조금은 색다르게 세계사를 바라 보았다는 점이 신선하고 재미있는 책이다. 또한 유목민들의 활동을 재현하기 위해 중아아시아를 넘나들다보니 어느새 동양과 서양의 경계를 훌쩍 뛰어넘어 `세계사`의 안목을 제공해준다.남긴 문명과 남기지 않는 문명현재의 역사는 승리한 자의 역사이다. 이제까지 서구를 비롯한 이른바 `문명권`에 속하는 사람들의 관점과 생각에 따라 역사는 틀 잡혀 왔다. 그리하여 패자의 역사는 잊혀지고 왜곡 되기 마련 이었다. 게다가 이동형 국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사태를 자세하게 보면 이렇게 단순하게 국가의 형태를 정의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순수한 농경세계의 권력체라 생각되는 중화도 여러 왕조에서 목축내지 유목을 생업으로 하는 집단이 있었다. 몽골을 북쪽으로 쫓아내고 한족 중화를 부흥 시킨 듯 이야기 되는 명왕조 조차도 몽골시대의 유산인 다종족 혼합사회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이렇게 되면 우리가 생각해 왔던 정통적인 농경 중화왕조는 거의 찾아보기가 힘들어 지는 것이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역사의 전반에 걸쳐 실제로 존재했었던 것과는 동떨어 지게 정주형,농업형국가중심의 입장에서 과거의 사실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 졌다는 것이다. 그 선입관 속에서 정주, 농경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역사가의 두뇌에 정주, 농경을 무조건적인 방법으러 한단는 잘못된 생각이 생겨난 것이다. 이데올로기와 감정, 편견에 치우친 역사평가는 무의식적인 것이라 해도 무조건 피해야 한다. 과거에 `본래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보다 냉전하게 보고 거기에 한발짝이라도 더 올바르게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그에따라 이 책의 내용은 유목민 즉, 남기지 않은 문명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기록되지 않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부당하게 단죄받고 오해를 받은 그들의 이야기를 하고있는 것이다. 유라시아를 둘러싼 역대 국가들이 어떤 식으로 유목민을 대했는지 그리고 그들이 어떠한 자료를 가지고있는지부터 조사를 해 나가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유목민들의 세력 형성과 그 발전 과정에 비추어본 현재의 유라시아와 그 주변의 역학관계를 설명한다. 저자는 그들의 관점에서 역사를 살펴보기 위해 다양한 수준에서 존재하는 다언어 문헌을 참고하였고, 유적 유물들도 중요하게 살펴보았다. 이러한 역사를 확실한 원사료로부터 조합하고 재구성하는 자체는 크게 변하기가 어렵지만 이러한 사료들을 좀더 새롭고 다른 측면에서 바라보려고 노력하고 있다.중화와 초원이 하나이던 시대중화와 초원은 원래 하나의 움직임이었당 태종은 `텡그리 카간`(천 카간)으로 불리게 되었다.돌이켜 생각해 보면 화이의 구별, 즉 중화에 대해 '이적'인 것을 설정한 '중화'는 문자 그대로 중앙에 있고 '이적'인 것은 밖에 있다는 이원세계의 이미지는 뒤에서야 생겨난 것이다. 진·한 이전에는 아직 의식에서조차 성립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서술과 논의가 현저한 것은 쓰는 사람의 머리속에 어떤 종류의 현저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당연한 것이지만. 중국은 처음부터 중국에 존재한 것은 아니었다. 현대 이미지로 과거를 역투영하여 가치를 부여하고 평가를 내리는 것은 실로 무서운 행위임에 틀림없다. 그런 사람들의 기록을 접하고 읽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중화주의에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은 그점에 대해 새롭게 깨우쳐 주고 있으며 세계를 다르게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중국의 세계가 평소 알던 식의 세계만은 아니라는 점을 일깨우쳐 주고 있는 것이다.무제 이전의 한이 흉노에게 조공을 바치며 그 보호를 받던 처지였다거나. 수당 제국은 탁발(타브가츠)씨 국가 였다거나, 송보다 거란(키타이), 여진국가가 더 대표성이 있다거나, 몽골제국이 진정한 세계사의 문을 열었다거나 만주족에 의한 청제국이 오늘날 중국의 원형을 만들었다거나 하는 사실은 중화주의에 입각한 정통왕조 사관에서 누락되거나 왜곡되어 있기 십상이었다. 이런 기록의 한계를 뛰어넘어 유목민의 눈으로 시대를 다시 조망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만만치 않은 일을, 그것도 일반 독자도 읽을 수 있도록 쉽게 풀어쓰고 있다는 점만 하더라도 이책은 가치가 있다. 승자의 기록속에 감추어진 패자의진실을 찾아내려는 노력이 돋보인다고 할수 있을 것이다.민족을 초월한다는 것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민족, 국가의 개념은 대단히 강고하고 딱딱한 어의와 이미지를 동반하고 있다. 그것은 대개 프랑스 혁명을 계기로 근대 석구에서 만들어진 가치관에 기초하고 있다. 경우 200여년 전의 일이다. 국가와 왕조에 선행되었던 '선험적'으로 '네이션'이 상정되었다혈통이니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유목민은 기본적으로 어느정도는 유랑을 하고 또 필요에 따라서는 외부 종족과 전쟁을 해야 한다. 그럼으로서 자연스럽게 피가 섞이고 그러면서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 분명 중앙 아시아에서 일어났던 투르크족이 가장 최근에는 인도 아리안족처럼 서양인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바로 그런 피섞음의 과정이 아닐까싶다. 몽골의 후예라고 자처하는 타타르족을 보고 코사크 족을 보라.자기 자신을 강하게 해 주는 것은 받아들인다. 사람이건 문명이건 모두 받아들여서 자기것으로 흡수해버린다. 생각해보라. 모래바람, 황무지, 맹수들이 우글거리는 초원/사막지대에서 살아가고자 한다면 어떻게 대비해야 할 것인가. 농경사회처럼 취사선택을 하기에는 너무도 선택의 폭이 좁다.유라시아 전체의 역사를 살펴보면 그 가운데 흥망· 생멸했던 정치집단, 왕조, 국가권력의 대부분은 근대 서구형의 국가관을 기준으로 보아서는 애매하고 완만하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윤곽·내용도 선명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 오히려 근대 서구 문명이 생각할 수 있었던 국가상이야말로 인류사에 있어서 그다지 보편 타당성을 갖지 않는 편협된 것일지도 모른다고 저자는 생각하고 있다. 또한 근년 세계의 이목을 끌로 있는 '민족분쟁'을 조망하면 서구류의 '네이션 스테이트'의 과념이 오히려 '민족문제'를 조장시키고 현저하게 하고 있다는 생각조차 들게 한다.유라시아의 역사는 이제까지 이러한 서구류의 국가관에 사로 잡혀 연구되고 있었다. 하지만 유라시아 동서를 잇는 역사의 주역이었던 중앙 유라시아 유목민과 그 정치 집단은 '민족'을 초월하는 무엇이 있었다.유라시아 세계상유럽과 아시아를 합하여 유라시아 라고 부른다. 최근에는 여기에 아프리카를 포함하여 '아프로 유라시아'라고 부르고 있다. 이 유라시아는 옛날부터 인류사의 무대였다. 유라시아와 북아프리카 육지의 동·서에는 커다란 해양이 있었기 때문에 이 태평양과 대서양이라 불리는 해양은 장기간 인간의 이동을 어렵게 하였다. 인간의 역사에서 대해향을 여행할 수 있는 선박이 . 그리고, 이들 지역은 서로의 문명이 만나서 충돌하는 일이 없을 정도로 서로 떨어져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단지 정착문명의 발생지일 뿐이다. 정착문명이외에 바로 유목문명이 있었다. 정착문명은 잉여생산물로 인해 도시가 발전하게 되고, 사회구조가 체계화, 계층화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특성상 문자의 필요성으로 기록문자의 발전을 가져오게 되고, 자신들의 문명을 후대에 전달할 수 있었다. 유목문명도 정착문명이 발생한 비슷한 시기에 전세계에 특히 유라시아대륙에 넓게 분포해 있었지만, 잉여생산물로 인한 도시의 발전과 성장은 없었기에 유목문명을 대표할만한 도시로 남아있는 것이 없다. 아니, 도시를 만들어서 생활했다면, 그들은 이미 유목문명이 아닌 것이다. 유목문명의 역사와 영역이 중앙아시아의 역사와 영역이 되는 것이다. 흑해의 드네프르강에서 카스피해, 아랄해, 발하슈호, 바이칼호, 아무르강까지 정착문명과는 전혀 충돌할 염려가 없는 곳에 넓게 형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즉, 유목문화가 초기 중앙아시아 지역의 주된 문화를 형성하고 있었고, 정착문명에 못지않은 큰 영역을 형성하고 있었던 것이다.세계의 문화를 이야기할 때 동양과 서양으로 나누어서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이 동양과 서양이라는 것은 정착문명의 기준으로 본 것이고 그 중간에는 유목민족이 위치해 있다. 이 유목민들은 인류의 역사상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유목민들에 의해서 중앙유라시아는 하나의 '세계'가 돌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농경을 하지 않고 도시에서도 살지 않으며 정착생활을 영위하지 못하던 유목민들은 서구를 중심으로 하는 근대국가의 틀에서 보면 물론 주변화에 불과한 존재였다. 그 때문에 역사상에있어서 유목민들과 그들이 만들었던 국가도 주변화·외소화되었던 것이다.그러나 그들이 없었다면 인류의 세계와 역사는 지금도 한 곳만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되었을 것이다. 유라시아와 북아프리카라는 '대륙의 세계'는 유목민을 중추로 한 중앙 유라시아가 없었다면 내부에서 연결될 수 없었을 것이다. 중앙 유라시아로부터 사방을 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