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자동차 유동성 위기 원인과처리과정 중에 문제점 분석과 목 : 노사관계론교수명 : 황선길 교수님제출일자 : 2001년 6월 29일제출팀:대우자동차 2조-B팀성 명 : 최혁재,박상화,김형종,신진수이찬영,정소영,임지현<목 차>1.서 론2.세계자동차 시장의 재편가.세계자동차 시장 재편의 원인과 분석나.세계 자동차 시장 재편과정 중에 GM과 대우3.99년 8월 대우자동차의 유동성 위기 원인가.대우 그룹의 문제(1)재무구조상의 문제(2)국내 자금 시장의 후진성나. 대우차 문제(1)자체 기술 부족의 문제(2)판매 방식에서의 문제(3)수출과 해외생산에서의 문제다.대우차 유동성 위기를 초래한 GM의 음모4.유동성 위기 후 대우자동차 처리과정과 신자유주의가. 세계 자본 이동과 그 본질 분석나. 김대중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외자유치 정책과 그 현황다. 정부의 신자유주의 노선에 따른 대우자동차 사태 처리5.결론1.서 론2.세계자동차 시장의 재편가.세계자동차 시장재편의 원인과 분석자동차산업은 기초소재산업에서부터 기계산업 나아가 전장산업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전후방 관련 효과를 창출하면서 국가경제 발전의 원동력이 된다. 이 때문에 드러커는 자동차산업을 "산업 중의 산업"(industry of industry)이라 불렀다. 이런 자동차산업에 포드의 마쓰다 경영권 인수, 크라이슬러와 벤츠의 합병, 르노의 닛산 경영권 인수 등과 같은 메가톤급 구조개편이 급격히 진행되었다. 이 같은 자동차 업계가 대 경쟁 시대로의 이행은 글로벌 과점체제론이 등장하면서 급속히 빨라지게 되었다.이러한 대경쟁 시대의 이론적 근거가 되고 있는 글로벌 과점체제론은, 80년대 초 보스턴컨설팅사가 90년대에는 세계 10대 메이커만 살아남을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확산되기 시작했다. 이것은 더욱 강화돼 21세기에는 연산 400만대 이상 6개 정도의 거대 다국적회사만 생존할 것이라는 주장으로 이어졌다. 이 시나리오에 따르게 되면 대우와 기아는 물론, 현대도 이들 6개 자동차회사에 편입될 수 밖에 없다.그러나 세계 자동차산업은 각 계열사로부터 파견 형식을 취하여 대우자동차사업의 인건비 부담을 크게 덜어주는 편법을 사용하기도 하였다.또 대우차 군산공장의 경우 3년간 (주)대우에 경영을 위탁하는 등 대우그룹 내에서 자동차 사업과 관련된 불공정내부거래 및 분식회계의 가능성은 도처에 널려 있기 때문에 대우 내부인들조차 진실을 파악할 수 없는 상황은 문제점을 발견하고 개선한다는 경영활동 자체가 불가능 했을 것임을 짐작케 한다.가.대우 그룹의 문제(1) 재무구조상의 문제단기자금 유동성 곤란을 대량의 회사채와 기업어음 발행으로 대처하여 자금의 악순환구조를 더욱 악화시켰다. 그룹 전체로 97년 말 대비 98년 8월말 현재 회사채 5조 9080억원, CP 12조 9380억원이 증가하였다. 이로 인해 총차입금은 단 8개월만에 17조 5310억원이 증가하여 97년 말 대비 161% 증가하였다.대규모 설비투자 없이 단기간내의 과다한 부채증가는 자금사정이 이미 심각한 상황이었음을 반증한다. 98년 상반기는 연리 20~30%대의 사상 초유의 고금리 상태였고, 실제 대우는 98년초 30%대의 회사채를 발행하였다. 이런 금리로는 국내 시설투자가 전혀 불가능하고 사실상 전혀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환율은 98년 1월 평균 1,572.90원(₩/U$), 2월 평균 1,640.10원, 3월 평균 1,378.80원으로 해외투자도 사실상 불가능한 시절이었다.이 시점에서 차입금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은 진행중이던 설비투자를 계속하였거나, 국내외 특히 해외 채무의 상환연장이 불가능하여 무리하게 고금리로 차입하여 상환자금으로 투입한 결과로 보이며, 일부는 이자등 가중된 금융비용에 충당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98년말 결산기준 자료에 의하면 그룹전체 차입금 46조 1,533억원 중 장기차입금은 6조 1,563억원으로 13.3%에 불과한 반면 단기차입금은 24조 938억원으로 무려 52.2%에 이르렀다. 이미 장단기 차입금의 파행적 구조는 대우그룹의 위기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었다.이러한 단기간의 대규모 차입은 그룹전체의 엔진을 개량한 1,500cc급의 엔진을 보유하고 있을 뿐이다. 1,800cc 이상 엔진의 경우 호주의 GM 홀덴 등으로부터 전량 수입하였기 때문에 채산성을 맞추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더욱이 GM 홀덴이 기술적으로 뛰어난 업체가 아닐 뿐 아니라 엔진과 트랜스미션간의 조화를 이루는 것이 중요한 자동차에서 자체 개발한 파워트레인을 보유하지 못한 것은 설계변경 등에서 커다란 장애 요인으로 작용했다.요컨대 대우의 연구개발 기능에서 현재 최대의 문제점은 파워트레인 개발 능력의 취약, 그리고 테스트 설비의 부족으로 인한 시간과 비용상의 손실이다.제품개발은 기획에서 생산에 이르기까지 기획부서와 마케팅 및 영업, 구매, 기술연구소 등이 유기적으로 연계되면서 조직역량이 발휘되어야 하는 고도의 경영활동이다. 그러나 부족한 경영자원과 의사결정권한의 상부(사실상 김우중 1인) 집중으로 인하여 부서간의 협조와 논의는 자주 한계에 부닥쳤으며, 결국 시스템의 완결성은 충분히 발휘되지 못했던 것으로 판단된다.(2) 판매 방식에서의 문제GM과 결별하면서 대우는 제품의 공백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여기서 신차종 3모델을 개발하기까지 대우가 선택한 것은 무이자할부판매를 통한 공격적인 영업전략이었다. 또한 대우는 광고 부문 등에서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여 부족한 모델을 갖고서도 승용차 시장을 꾸준히 회복해 나갔고 결국 1994년 한 해는 기아를 제치고 승용차 부문 2위 업체로 복귀하기도 하였다(대우조선 티코 포함).그러나 무이자할부판매는 대우자동차를 지원하기 위하여 대우계열사 전체의 부실화의 한 원인이 되었다. 업계의 자체 결의로 무이자 할부판매는 1994년 이후 다소 줄어들기도 하였으나, 비인기차종을 '밀어내기' 위한 무이자, 저이자 할부판매는 1990년대 내내 반복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 매출채권이 산더미처럼 쌓여 유동성위기와 대손 부담을 가중시켰다.한편 유통경로 측면에서 대우는 일찍부터 티코, 다마스, 라보 등의 경차 판매에 딜러시스템을 도입한 이후 1990년대 중반에는 일반 승용차에도 딜러 늘었다.이런 성공을 지켜본 GM은 1998년 1월, 대우자동차에 10억 달러를 투자, 대우자동차 지분 50%를 인수한다는 협상을 시작했다. 그리고 1998년 2월 2일, 대우그룹과 미국 제너럴 모터스 (GM) 는 '전략적 제휴'를 추진키로 원칙 합의하고 2일 양해각서 (MOU)를 교환했지만 구체적 지분참여방법, 경영권 참여 방법들은 추후 논의키로 발표되었다. 그 이후로 98년 10월 노무라 증권보고서를 필두로 시중에 그룹의 자금난설이 신빙성 있게 나돌 때까지, GM과의 협상은 이 '원칙적 합의'에서만 맴돌 뿐 구체적 내용의 진전이나 외자유치 없이, 질질 끌고 있을 뿐이었다. 한편 대우그룹의 회장인 김우중 회장은 1998년 내내, 대우그룹 회장으로서, 또는 전경련 회장으로서 정부의 재벌 구조조정안을 강도 높게 비판하며 재벌을 오히려 키워야 국가경쟁력이 생긴다고 역설하였다.대우가 '유동성위기설'을 잠재우기 위해 98년 12월, 구조조정안을 발표한 이후에도 그룹의 자금설은 사라지지 않았고, GM과의 협상은 협상을 하고 있긴 하되 내용에 진전이 없는 상태였다. 그 와중에 1999년 6월 11일 제주도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GM 코리아의 사장인 앨런 패리튼은 대우와의 협상은 계속 진행 중이지만, 현대와의 제휴가능성을 암시하며 대우차와 삼성차의 빅딜 추이를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는 요지의 발언을 하였다. 또 같은 해 6월 14일 GM은 한국시장 철수 1년 만에 새모델 '캐딜락 스빌'을 발표하며 스웨덴 사브의 국내법인인 사브 코리아의 판매망을 이용하여 한국시장 공략을 재개할 것을 발표하였다.GM의 이런 행보들로 대우자동차의 GM을 통한 외자유치는 가능성이 희박해 보였다. 또 99년 7월, 6개월 넘게 끌어오던 삼성차 - 대우전자의 빅딜이 삼성차의 법정관리로 대우그룹의 구조조정안의 기초가 흔들리게 되자 대우그룹은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에 빠져들게 되었다. 대우그룹의 구조조정안은 GM과의 제휴협상에 의한 외자유치와 삼성차 - 대우전자의 빅딜을 가정하여 만들어진 것이었고 신고제로 전환하기 시작하였으며, 1993년 6월 외국인 투자개방 5 개년 계획을 마련하여 투자업종의 자유화를 추진하였고, 1996년에는 '외자도입법'을 '외국인 투자 및 외자도입에 관한 법률'로 개정함으로써 제한된 범위에서 인수 합병 허용을 포함하는 등 그 개방 폭을 확대하였다. 그리하여 1980~1983년 동안 매년 평균 1억 8천 9백만 달러이던 외국인 직접투자가 1988년에는 12억 8천 4백만 달러로 증가하였고 1996년에는 32억 달 러로 꾸준히 증가하였다. 1997년 69억7천 달러로 증가했다. 요컨대 직접투자는 신자유주의 의 압박하에 김대중정부 이전부터 지속적으로 증대되어 왔으며, 정부에 의해 법적 제도적으 로 뒷받침되어 왔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대중정부의 외자유치 정책은 이전과 근본적으로 다른 특징을 가진다. 먼저 그 양적 측면에서 급속한 증대이며, 질적 측면에서 인수 합병식 직접투자의 급증이다.우선 양적인 측면에서 보면, 95년 월 평균 46건이던 것이 96년에는 81건, 97년에는 88건, 98 년에는 117건으로 급증하고 99년에는 10월에 1,591건에 100억 달러가 넘어서면서 175건에 달했다. 그 결과 우리 나라의 외국인 투자 순위가 93년 44위에서 95년 34위, 97년 32위, 그 리고 98년에는 21위로 급속한 증가세에 있음을 보여준다.그리고 질적인 측면의 특징은 직접투자에서 신규투자보다는 인수 및 합병형 투자가 급증하였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국내생산시설이 해외의 초국적 독점자본의 수중으로 팔려져 나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인수 합병식의 직접투자는, 국내기업의 자산매입, 영업권 양도 등을 통한 신규법인 설립 혹은 증자 참여를 통한 합작 투자까지 포함하면 98년 전체 직접투자의 65%가량 이른다고 한다.그런데 이러한 직접투자의 변화는 기본적으로 김대중 정부하의 법적 제도적 변화와 직결되고 있다. 즉 이전까지는 해외 초국적 자본에 의해 수동적으로 직접투자를 허용하였다면, 김 대중 정부는 이를 주도하였고 적극적으로 유치다.
REPORT독 일 문 화 와 예 술주제 : 독일 문화 속의 유태인- 문학 & 음악담당 : 윤태원 교수님학과 : 상경계열제출 : 9910682, 임영효날짜 : 2001년 6월 14일 목차주제 : 독일 문화와 예술 속에서 유태인 - 그들의 독일 문화와 예술을 위한 공헌 & 독일에서의 반유태주의♣글쓰기에 앞서 - 주제 선택의 동기 및 리포트 작성 과정Ⅰ. 서론 - 독일 문화와 예술, 특히 문학과 음악 장르에서 각 3명씩 유태인 예술가들의 업적(창작활동)을 먼저 살펴보고, 그들 삶에 있어서 '유태인'의 의미를 고찰해 보겠다.Ⅱ. 본론 -1. 독일 그 안에 동화되고자 했던 유태인 예술가들- 독일을 사랑한 하인리히 하이네(작가)- 기독교 세계를 추구한 구스타프 말러 (음악가)2. 차별 속에서 자신이 유태인임을 자각하는 그들- 주변인으로서 프란쯔 카프카(작가)- 아놀드 쇤베르크(음악가)3. 독일 문화에서 존재를 부인 당하는 그들- 펠릭스 멘델스존(음악가)- 넬리 작스(작가)4. 기타 유태인계 독일 예술가들Ⅲ. 결론 - 작지만 큰 존재, 독일 문화와 예술 속의 유태인 예술가들 글을 쓰기에 앞서- 독일 문화와 예술과 나학기 초에 '독일 문화와 예술'에 관련해서 리포트를 하나 쓴다는 건 너무나도 손쉬운 과제라 생각했었다. 독일이라는 나라가 나한테 꽤나 친숙하게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작가 괴테, 교향곡 '운명'의 작곡가 악성 베토벤의 나라 독일의 문화와 예술에 관해서 쓸 것이 많을 것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학기가 시작되고 나서 리포트 주제를 본격적으로 찾기 시작하였다. "두 번이나 읽어서 익숙한'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나타난 시대상에 대해서 한번 써볼까? 아님 베토벤의 작품 세계에 대해서 연구해볼까!" 이러한 주제들은 너무 평범하거나 광범위한 주제여서 내가 평생에 단 한번 독일에 관해 리포트를 써보게 될지도 모르는데 나중에 기억에 남을 게 없을 것 같았다. 그 후 생각했던 건 "독일 현대 작가들 작품에서 나타난(예를 들어 파트리크 쥐스킨트 같은전에는 솔직히 말러가 누구인지 몰랐다. 하지만 12음계를 창시한 쇤베르크든지, 서양 음악에서 1900년 전후 최고의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 등은 분명 독일이 배출한 보배이자, 전 인류의 사랑을 받았던 예술가들이다. 이런 점만 보더라도 유태인들은 독일 문화(또는 예술)가 지금의 높은 명성을 얻는데 크게 공언하였다고 할 수 있다.유태인들은 서기 이래 항상 유태인이라는 이유 하나로 세계 각지에서 차별을 받으며 살아왔다. 본문에서 언급할 유태계 독일 예술가들 또한 예외가 아니다. 아니 역사 이래 유태인들이 가장 극심한 고통을 겪었던 곳이 바로 20세기의 독일이었다. 뒤에서 본격적으로 다루겠지만 몇 백 년 전 독일에서 활동한 유태인 예술가들은 유태인이란 이유 때문에 그들의 정당한 창작 활동을 보장받지 못한 경우도 많았고, 또 나찌 집권기에는 유태인 출신 예술가들의 업적이 책에서 깎이고, 삭제당하는 일도 겪었다. 어빈 슐호프 같은 이는 1942년 유태인 수용소에서 죽기도 하였다.이 글에서 다루는 중요한 테마가 두 가지 있다. 하나는 그들(독일의 유태인 예술가들)이 어떤 업적을 쌓았고(독일 문화에 공헌), 또 하나는 그들이 어떤 차별 및 탄압을 받으며 살아왔는가를 고찰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독일 문화와 예술이라는 광범위한 범위 그 중에서도 특히 문학과 음악 분야에 관심을 갖고 본문을 쓰겠다. 그 이유는 이 두 예술 분야에서 활약한 유태인들이 특히 많았기 때문이다. 그럼 지금부터 본격적인 얘기를 해보도록 하겠다.Ⅱ. 본론 -이제부터 등장하는 유태계 예술가 중에는 오스트리아, 체코 출신들도 있다. 그들을 독일문화에 아우를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이 들겠지만 같은 독일어권 국가이기 때문에 이들을 같이 독일 예술인으로 보겠다. 또한 20세기 예술가 중에선 나찌의 유태인 탄압을 피해서 미국, 스웨덴 등지로 망명을 떠난 이들도 있다. 작곡가 쇤베르크 같은 이가 그러한데 독일에서 태어났고, 처음에 창작활동을 하던 곳이 독일이었다면 독일의 예술가로 보겠다.본론에서는 6명의 유태계 독일 예 헤브라이즘의 전통으로부터 물려받은 기본적인 성향일 것이다. 그의 철학적 성찰과 역사에 대한 사유, 그리고 예술적 형상화에 대한 집착은 의심할 나위 없이 독일이상주의 철학 및 문학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그의 본성을 이루는 비판정신, 풍자와 반어, 기지와 해학의 고전적 전형을 보여주는 그의 철저한 비판정신과 현실 참여는 프랑스적 계몽사상과 본질적으로 상응하고 있다. 이 3개의 서로 다른 성향들은 때로는 상호 보완적으로, 때로는 갈등과 배척의 관계로서 하이네의 생애와 작품세계를 형성한다. 후세의 연구가들이 하이네를 특징짓게 한 '내적분열'이라는 말은 아마도 이처럼 복잡한 하이네의 내적구조와 연계되어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프랑스 망명 후 하이네가 그의 활동의 주요 과제로 삼은 것은 독일 국민에게는 프랑스 문화 및 혁명을 겪은 프랑스 사회의 실상을 제대로 보여주고, 프랑스 국민들에게는 독일 예술과 문화의 특성 및 독일 철학의 기원을 소개함으로써 이른바 독일 정신의 본질을 이해시키려는 것이었다. 그의 말대로 하이네는 유럽의 가장 중요한 두 문화권 사이의 중재자 역할을 자청하고 나선 것이다.반유태주의에 부딪히고 -바로 위에서 쓴 것과 같이 그는 유태인이었지만 한 사람의 독일인으로서 독일의 정체성을 찾는 데 그의 인생 후반기를 전념했다. 그는 진실로 독일을 사랑했던 독일인이었다. 하지만 하이네는 유태인이라는 운명 때문에 반강제적이면서도 반자의적인 이민 생활을 해야 했다. 특히 그가 프랑스로 피신했던 이유는 반유태주의에 증오심을 느꼈기 때문으로 36개나 되는 군주국으로 이루어진 봉건체제와 국수주의적 풍조에 혐오감을 느꼈다. 파리로 간 하이네를 독일인들은 친불파, 유태 하이네 등으로 부르며 비난을 퍼부었다. 또한 본 대학에서 수학할 당시에 슈레겔의 주목을 받은 것에 감격했으나 대학 당국의 정치적 보수주의와 자신에게 쏠린 반유태주의에 싸움을 건 결과 대학과 학생들 모두에게 소외되고 말았다.이처럼 남달리 조국 독일을 사랑했던 그에게서 특별히 '유태인 자각'은 엿볼 수 없다 유일한 낙으로' 삼다가 1924년 페결핵으로 41세의 짧은 생애를 마쳤다. 요양차 베를린과 빈에 잠시 머문 것을 빼면 그는 출생지 체코 프라하를 떠난 일이 없다.유태인으로서의 자각 -카프카는 독일어를 사용하는 소수 민족 중에서도 소수파인 유태인 사회의 일원으로서 성장했다. 카프카는 1910년 베르타 판다 부인의 집에서 개최되는 강연의 밤에 정기적으로 참석했다. 이 판다 서클을 통해 종교 문제에 대해 눈을 뜨게 된 카프카는 이때부터 유태교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유태의 역사와 문학에 관한 서적을 탐독했고, 히브리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는 죽기 1년 전에도 베를린의 유태문화전문학교에 나갔다. 1923년에는 발트해 연안 뮬리츠에서 만난 19세의 폴란드 정통 유태인 도라 디아만트와 만나 깊은 애정 관계에 빠져들었다. 베를린의 유태인 공동 피서지에서 위생 보조원으로서 일하고 있던 그녀는 최후까지 카프카의 곁에 머물렀다. 프라하에서의 어두웠던 과거를 잊고 처음으로 행복을 만끽하던 카프카는 1924년 프라하의 유태인 묘지에 안장되었다.앞에서 언급하였던 하인리히 하이네라든지, 구스타프 말러와 달리 그는 자신이 유태인임을 숨기려 하지도 않았고, 또 자신의 유태인 정체성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는 유태인 프란쯔 카프카였다.2. 아놀드 쇤베르크 (1874 - 1951, 오스트리아 태생 작곡가)0.3%의 위력, 이영걸 편저, 일굼출판사 (296p부터 - )음악가 쇤베르크 -쇤베르크는 오스트리아 빈의 유대인 상인의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자무엘은 빈의 유태인 제2지역에서 조그만 신발가게를 경영했고, 형 하인리히와 사촌 나호토는 직업가수였다. 유아 때부터 음악에 흥미를 가져 8세 때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고, 얼마 후 바이올린 이중주곡을 작곡하여 천재성을 발휘했다. 1901년부터 베를린에 체류하는 3년 동안 지휘자로 활약하다가 슈테른 음악원에서 교편을 잡기도 하였다. 다시 빈에 돌아온 이후에는 알반 베르크, 안톤 베버른 등 우수한 제자들을 가르쳤다. 그가 '3아카데미의 지휘자이기도 했으므로 멘델스존도 후에 그 합창단에 들어가 노래도 하고 자작도 발표하였다. 1829년에는 바하의 '마태 수난곡'을 작곡가가 죽은 뒤 처음으로 공개 연주하여, 바하의 위대함을 새삼 사람들에게 인식시켰다. 그리고 그 해에 영국으로 건너가 자작의 제1교향곡을 연주하여, 필하모니 협회로부터 명예 회원으로 추대되었다. 1835년 멘델스존은 라이프치히의 게반트하우스 관현악단의 감독이 되었다. 그리고 그의 지휘자로서의 재능과 창조력, 음악에 관한 놀랄만한 박식함으로 라이프치히를 유럽에서도 중요한 음악 중심지로 만들었다. 그 후 멘델스존의 인기는 독일과 영국에서 점점 높아졌다. 그러나 1844년 이후 멘델스존의 건강은 급격히 나빠졌다. 1847년 누이 판니가 급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졸도했던 그는 요양에 들어갔으나 그해 11월 38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나찌 정권 하의 멘델스존 망각화 -앞에서 예를 들었던4명의 유태인 예술인은 그들이 사회활동을 할 때 반유태주의 속에서 창작활동을 해왔다. 그 반면 지금의 멘델스존은 유태인으로서 차별받았다는 기록은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그는 행복한 음악가였다. 펠릭스라는 이름 자체가 '행복'을 뜻하듯이 그는 인생의 밝은 면만을 보고 살았다.에 당시 잊혀져 있던 바하의 '마태수난곡'을 지휘, 상연하여 바하 재발견의 길을 열었다. 음악사에 있어 최고의 공적으로 꼽히는 이 바하 부활연주에 대해, 나치스는 멘델스존의 스승인 젤터에게 그 공을 돌렸다. 멘델스존이 이를 지휘한 사실은 어쩔 수 없었던지 젤터가 세세한 부분까지 가르쳤기 때문에 멘델스존의 지휘가 가능했다는 궁색한 설명을 붙일 정도였다. 또한 멘델스존을 비난하였던 바그너를 인용해 가며 멘델스존이 독일 음악에 끼친 악영향을 개탄하였다. 멘델스존이 세상을 떠난 다음 영국에서는 1859년, 런던의 수정궁 광장에 동상을 세워지고, 1892년에는 라이프찌히의 게반트하우스 앞에도 기념상이 건립되었다. 그러나 1933년, 나찌 정부는 유태인의 음악이라 하여 멘델스
TQM (Total Quality Management):LG Chemical Six Sigma 운동 사례를 중심으로과목: 생산관리제출일: 2001.4.10담당교수: 김 용진 선생님제출자: 2조사학과 9507056 양성제상경 9610169 김태우상경 9610331 신민수상경 9610584 조완우기전 9631504 임재신경영학과 0020218 진 윤〔목차〕I. 서론II. 품질경영II-1. 품질1-a 품질의 의미1-b 품질의 종류1-c 품질관리의 역사II-2. TQM2-a TQM의 정의2-b 품질 경영 추진방법II-3. Six Sigma3-a 6시그마란?3-b 6시그마 탄생의 기본적 배경3-c 6시그마의 정의3-d 6시그마 프로세스3-e 6시그마 핵심 역할 '벨트'3-f 6시그마의 지도원리3-g 6시그마의 성공요소III. LG ChemicalIII-1 LG화학 연혁III-2. LG의 품질관리 도입 및 계획III-3. LG 품질관리(6시그마) 과정 및 결과IV. 사례를 정리하며I.서론IMF 경제위기는 우리에게 아픔을 주는 동시에 귀중한 교훈을 주었다. 그 동안 많은 사람들이 한국 등 아시아 위기상황을 진단하고 경제위기의 원인으로 회계처리 관행의 국제화와 투명성, 경쟁 확대, 기업과 정부의 조직 문화적 변화 등 해결방법을 제시하고 있다.세계 2위의 경제대국인 일본도 공식확인 부채액은 4조5천억 달러, 부실채권, 기업부채 부분까지 합하여 총부채를 10조 달러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일본의 경제침체의 원인으로 관료주의, 보수성향, 인맥구조, 계산 불감증, 네 가지를 근본원인으로 지적하면서 일본의 유교적 전통을 비판하고 있다.그렇다면 이러한 경제위기에 대한 처방과 교훈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품질경영에서도 적용되는 말이다. 가정, 기업, 국가 모두 별개의 사회 공동체처럼 보일지라도 MANAGEMENT 입장에서 보면 같은 처방을 내릴 수 있다.미국은 1970년대 초부터 약 15년간을 줄곧 무역적자, 재정적자에 시달렸으나 1980뿐만 아니라 인간의 품질, 그리고 조직 전체의 품질을 향상시키는 관리 운동이다.5)전사적 품질 경영(TQM) :70년대 들어서부터 미국의 경쟁력은 국제시장에서 점점 경쟁력을 잃기 시작하였다. 반면에 일본과 독일의 경쟁력은 점점 더 강화되었다. 그래서 미국의 경영자들은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안을 강구하기 시작하였고 그래서 나온 것이 TQM이다. TQM은 기존의 품질관리와는 달리 품질관리 개념을 제품 자체에서 조직시스템의 차원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최고 경영자의 품질방침에 따라 국제적으로 경쟁력있는 품질을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현장작업자에서부터 최고 경영층에 이르는 고객위주의 전사적인 품질 향상운동이면 고객지향의 제품개발 및 품질보증체제를 중요시한다.2. TQM(Total Quality Management)2-1. TQM의 정의전통적인 품질의 개념인 '사용의 적합성'은 1956년에 파이겐바움이 '하버드 비지니스 리뷰(Harvard Business Review)'에 기고한 전사적 품질관리(TQC : Total Quality Control)라는 소비자지향적인 개념으로 바뀌면서 더욱 발전하였다. 이후 일본의 TQC라는 보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품질관리 운동으로 이어짐으로써 사회적인 연계성이 더욱 강한 품질개념으로 전개되었다.TQM은 운영, 제품, 서비스의 지속적인 개선을 통해 고품질과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전 종업원의 체계적 노력을 말한다. 단순히 제품기능의 결함을 발견하고 그것을 제거하는 것 이상을 뜻하는 것으로, 품질향상을 달성하기 위해 기업의 혁신적인 경영기법으로 활용할 수 있다. TQM은 프로세스(process)를 평가하기 위해 분석하며, 지속적으로 개선을 추구한다. 또한 조직이 변화될 때에도 일관성 있게 변화하며, 지속적으로 종업원을 교육시킨다. 따라서 TQM이란 품질을 통한 경쟁우위를 확보하기 위하여 고객만족, 인간성존중, 사회에의 공헌을 중시하며 최고경영자와 전 임직원이 끊임없이 혁신에 참여하여 기업문화의 창달과 기술개발을 통해 기업격 예를 들면 상향식 의사결정(BOTTOM-UP) 과 집단문화 소집단 활동과 미국인의 일반적 성향 예컨대 하향식 의사결정(TOP-DAWN)방식 일할 때 매뉴얼에 따라서 일하는 방식이나 리더를 중심으로 일을 처리하는 경향과 일본 기업을 따라잡기 위한 미국기업의 집념이 융합되어 완성된 산물인 것이다. 따라서 6시그마의 연구는 바로 품질관리의 총체적인 연구인 셈이다.3-3. 6시그마의 정의첫째, 통계적 측정치(statistical measurement)다.객관적인 통계수치로 나타나기 때문에 제품이나 업종, 업무 및 생산 프로세스가 다르더라도 비교할 수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고객만족의 달성 정도와 방향 위치 등을 정확히 알 수 있게 해주는 척도다. 즉 "제품과 서비스, 공정의 적합성을 재는 탁월한 척도"인 셈이다.둘째, 기업전략(business strategy)이다.경쟁우위를 갖게 해주기 때문이다. 시그마 수준을 높이는 만큼 제품의 품질이 높아지고 원가는 떨어진다. 그 결과 고객만족 경영을 달성할 수 있다.셋째, 철학(philosophy)이다.6시그마는 기업 내의 사고방식을 바꿔 버린다. 무조건 열심히 일하는 것보다는 "스마트하게" 일하게 하는 철학이 바로 6시그마다. 이 운동은 제품을 생산하는 제조방식에서부터 구매오더를 작성하는 방식까지 모든 작업에서 실수를 줄이는 일이다.그렇다면 6시그마의 패러다임을 어떻게 조직에 심을 수 있을까. 공정능력을 10~20% 높이자고 말하면 어느 정도 수긍한다. 그러나 1백배 향상시키는 운동을 제안하면 직원들은 당황하게 마련이다. 따라서 이런 수치적인 접근보다는 실행사례를 중심으로 운동을 펼쳐 나가는 게 좋다.예컨대 놀랄만한 향상(Quantum Improvement)을 이룬 사업장을 벤치마킹해 유익한 사례나 방법, 기술 등을 적용하도록 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 종합적인 품질에 초점을 맞추면서 프로세스를 유지해 나가면 조직은 1백배 이상의 개선을 이뤄낼 수 있다. 프로세스와 고객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이 고객만족과 기업번영의 길이다. 대한 기존의 개념을 뒤엎고 있다. 이전에는 눈에 보이는 비용이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회손실, 실패코스트, 에러코스트 등의 분석 방법이 있었지만 이것도 하드적인 측면을 다루는데 그쳤다. 당연히 비용을 줄이고자 할 때도 목표 자체가 낮았다. 일반적으로 저품질에 따른 코스트라고 하면 저조한 수율, 검사시스템 코스트, 품질보증 코스트, 폐기 비용, 재생산 코스트 등을 들 수 있다. 서구기업의 경우 이 비용은 전체 매출의 4 8%인 것으로 조사돼있다. 그러나 COPQ가 다루는 코스트는 더 깊은 단계의 비용까지 포함하고 있다. 예를 들면 잦은 설계변경 지시는 새로운 비용의 추가를 의미한다. 사이클타임이 길어지고 지나치게 품질에 집착해 생산비가 늘어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밖에 납품지연, 매출 저하, 브랜드 이미지 손상 등에 따른 비용 추가 요인도 만만치 않다. 서구기업의 COPQ는 매출액의 15 35%에 달하고 있다. 바로 이런 보이지 않는 비용낭비 요인을 찾아내 없애는 것이 6시그마가 추구하는 품질혁신운동의 한 가지 지도원리다. 회사 업무 시스템 전체에서 이런 비용의 크기를 조사하고 줄여나가기 위해서는 회사 전체의 공통척도로서 통계적 지식이 필요해진다. 비용 개념을 COPQ로 통일하면 모든 종업원은 "경영적 관점에서 보면 지금의 상태에 대해 하루 빨리 무언가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인식에 도달하게 된다.또 하나의 지도원리인 CTQ는 COPQ로 파악한 총 비용을 어떻게 줄이느냐는 방법론이다. 부적합 품질로 인해 비용이 발생한 만큼 품질과 품질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를 발견해 개선해 가는 것이 곧 비용을 줄이는 길이다. 따라서 CTQ의 접근 방식은 사업적 관점에서 볼 때 핵심적인 요인, 곧 모든 업무시스템의 품질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중점을 좁힌 뒤에 조직 전체가 그것을 개선하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6시그마는 CTQ의 관점을 사내에서가 아니라 고객의 소리에서 찾고자 한다. 고객이 원하는 스타일, 납기, 물량을 대지 못하면 그 품질은 의미가 없기 기반을 확고히 구축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LG화학은 경영혁신팀을 구성하구 워드베스트 제품 및 품질 혁신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LG화학은 세계 일류제품을 세계 최초의 제품 그리고 세계 최고제품과 동등 또는 우위가격을 받는 제품 , 품질 기준 및 가격결정권자로서의 지위를 갖는 제품으로 정의하고, 현재 세파계항생제 중간체, 피안커(제초제), 부스틴(산유촉진제) 등 전체 제품의 10% 이하에 불과한 일류제품 구성비를 오는 2001년까지 30% 이상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다.또한 이를 수행할 일류화 실행팀에 대해서는 제품별 Product Owner 선정 R&D 투자 집중 등을 집중 추진키로 했으며,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위해 팀별 분기 1회의 Consensus Meeting은 물론, 평가 및 파격적인 보상 등을 실시할 계획이다. LG화학은 일류제품을 이러한 품질경영을 위해 미국의 최신 품질경영 방법인 6시그마를 도입하여 단순히 제품의 품질개선 뿐만 아니라 다른 유수의 경쟁회사들과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기업 전략의 방편으로 삼고 있다. 이러하듯 LG화학에서 6시그만의 도입은 품질경영과 더불어 기업의 생사를 결정짓는 중요한 시도인 셈이다.사업구조의 고도화와 세계 일류 제품 확보 위해서 전자상거래 시스템을 도입하여 B2B시장을 선점하고 프로세스의 개혁을 통해 value chain의 혁신을 시도하고 있다.LG화학의 구체적인 세계 최고수준 품질 확보 방안은 다음과 같다.LG화학은 품질경쟁력을 통한 최고의 고객만족을 실현하기 위해 현재 3.9시그마 수준인 품질을 99년 말 4.5시그마 2000년 말 5.5시그마 2001년 말 6시그마로 높여 나간다는 방침이다.이를 위해 오는 소사업부장 이상의 간부를 대상으로 한 품질 챔피언 교육을 시작으로 사무기술직 현장사원 등 전사적인 6시그마 교육을 실시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LG화학은 올해 안에 마스트블랙벨트(MBB) 블랙벨트(BB) 등 6시그마 전문가 45명을 양성하고, 내년 중에는 미 GE사 수준인 160명, 2001년엔 30다.
내가 대학에 입학한 초기 그러니까 5년전 쯤 나는 아이삭 아시모프라는 작가에 심취해서 파운데이션, 로봇, 두뇌로의 여행, 그리고 여러 가지의 과학에 관한 서적을 많이 읽었다. 이번에 인지과학에 대한 레포트를 작성하기 위해 '컴퓨터와 마음'이라는 책을 빌려서 읽다가 너무 지루하기도 해서 생각난 김에 '두뇌로의 여행'이라는 책을 다시 빌려보게 되었다. 이 책의 주요 내용은 사람이 아주 작아져서 식물인간이 된 사람의 머리속에 들어가 그 사람의 머리에 저장된 기억을 꺼내온다는 이야기다. 전에 읽었을 때는 잘 몰랐지만 다시 읽게 되자 인지과학적인 사고를 도입하여 처음 읽을 땐 그저 무비판적으로 작가의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고 다른 각도, 즉 아시모프의 환원주의적 생각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과연 사람의 생각이 뇌세포의 생물학적, 생리학적 설명으로 환원될수 있는가? 그렇다면 아시모프의 다른 소설 즉 파운데이션 또는 로봇에 나오는 로봇(주인공과 우정을 나누게된다.)처럼 컴퓨터도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생기게 된 것이다. 이제 위의 두가지 아니면 또 다른 의문(말로 표현하기는 힘들지만..)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자.우선 "컴퓨터와 마음(인지과학이란 무엇인가)"의 내용에 대해 언급해보자.이책은 우선 계산 가능성, 시각, 학습과 기억, 사고, 의사소통(언어), 의식과 무의식으로 분류를 하고 나누어서 설명을 한다. 각각의 Part가 서로 독립적이 관계가 없는 것 같지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연관의 깊이가 깊어져 갔다.우선 계산 가능성의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계산은 정보처리적 접근에서 도출되는 개념으로서, 여기서는 산술적 계산의 의미가 아니라 하나의 정보상태를 그 정보처리체계 내에 내장된 원리 또는 규칙에 따라 기계적으로 다른 정보상태로 전환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따라서 인간의 심적 현상을 정보처리과정으로 이해한다는 것으로 튜링의 가정을 받아들여 하나의 알고리즘으로 표현가능하다고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모형화될수 있다고 보고 계속되는 이야기들의 근간이 된다.두 번째 단원에는 시각에 관한 이야기이다. 시각은 단순한 광학과는 다르다. 시각은 단지 광학을 우리가 catch하는 것뿐만 아니라 일생동안 만들어진 지식과 경험과 함께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시각이 어떻게 삼차원적 심적 모형을 구성하는지, 대상을 파악하는 무의식적 추론을 형성하기 위해 개인적인 지식이 어떻게 사용되는지를 연구하게 된다. 이는 마(Mar)의 21 over 2차원 스케치와 삼차원 모형, 신경심리학적 증거에 의해 확정된다. 그러나 과연 이러한 지식의 축적이 학습경험과 배워온 것을 회상하는 능력인가?세 번째 단원에서는 위의 의문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시각은 세계에 대한 삼차원적인 표상을 우리에게 제공하고, 행위하기 위해서는 역동적인 정보로 충만하고 시각 표상과 유사한 모델이 설정되어야만 우리가 세계를 통해 움직이고, 수족을 움직여 특정 위치로 갈 수 있다. 단순한 반사는 감각기들과 척수의 운동 뉴런들을 상호 연결하는 신경회로의 성질들에 의존하지만 걷기와 같은 다른 움직임들은 생득적으로 결정된 프로그램들에 의해 지배된다. 또 다른 움직임들은 사전에 계산되고서 궤도를 신중하게 수정해 나가면서 천천히 수행될 수도 있다. 움직임의 조직화는 궁극적으로는 통제 위계에 의존하지만, 많은 형태의 피드백에 의해 조절된다. 각 수준에서의 계산은 병렬적으로 수행되어 나온다. 그리고 각기 다른 수준에서 나오는 정보는 공통적인 표상틀 내에서 통합되는 경우들이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행위들에 대한 처방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과연 이를 생각하는 사고, 마음이라는 것이 있는 것일까?네 번째 부분에서는 위의 의문인 사고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사고 중에는 백일몽, 계산, 추리, 귀납, 창조가 있다. 이중에서 중요한 것은 연역, 귀납, 창조이지만 저자는 창조에 더욱 주목한다. 창조적인 활동인 소설, 그림, 음악은 전형적으로 기존의 장르의 관습 속에서 수행되어 간다. 과학 역시 과학자의 창조과정도 정상적인 기존 패러다임의 제약 속에서 일어난다. 이런 창조자는 적어도 초기 제약조건들을 사용하여 아이디어를 생성하고, 그 결과는 개정이나 정교화를 요구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생성단계에서는 사용될 수 없는 제약조건들에 의해 통제된다고 볼 수 있다.다섯 번째 부분인 의사소통(언어)에서는 인지과정의 핵심과정이며 인지의 주도구이자 형식이라는 점에서 또 표상은 의미의 문제라는 점에서 중요한 역할을 강조한다. 언어학은 언어의 문법적 구조, 언어와 인지와의 관계, 의미론, 활용론, 자연언어 처리 등 인지과정의 핵심 도구인 언어 정보처리의 문제를 논리적 분석, 실험, 시뮬레이션 등의 방법을 적용하여 연구함으로써 인지심리학과 인공지능학 그리고 철학의 교량적 역할을 한다. 최근의 통사론과 의미론의 연구는 의미론과 유리된 통사론 연구의 부적절성과 수리논리학에 근거한 전통적 의미론과 유리된 통사론 연구의 부적절성과 수리논리학에 근거한 전통적 의미론 연구의 부적절성을 들어내고 인지적 설명의 중요성을 부각시켜, 철학, 심리학, 논리학, 언어학 등의 의미론의 문제를 종합적으로 접근해야 할 것임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인간의 의사소통은 근본적으로 의도에 의존하고 있다. 즉 화자가 의사 교환적인 의도를 갖고 청자는 발화를 이해하려고 한다면, 이러한 것들은 청자에 의해 포착되게 된다. 그래서 의도라는 것이 중요하다.여섯 번째 부분에서는 의식과 무의식, 즉 위에서 말한 '의도'(의지)라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필자는 심적 구조에 대한 하나의 이론을 제시한다. 의식적인 마음은 분명하게 구조화된 상징들의 계열처리에 의존하고, 무의식적인 마음은 분산적인 상징 표상의 병렬처리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무의식적인 마음인 감정을 계산주의적 관점을 함께 취하는 틀을 만든다면, 로봇도 감정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즉 로봇이 우리와 같은 감정들을 가질려면, 로봇 역시 우리와 동일한 욕구와 동일한 사회적 목표를 가지며, 동일한 내적 부호에 의해 조절된다면 가능하다는 것이다.마지막으로 인지과학은 인간이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학문이 아니다. 인지과학은 인간에 대해 계산적 접근, 신경과학적 기초의 강조, 다학문적 접근으로 과학사적으로나 순수이론적, 응용공학적 측면 등 현대사회를 이루는데 많은 공헌을 했다. 즉 인지과학은 인간의 마음의 작용과 관련된 각종 인간활동과 그 산물의 이해, 설명, 개선을 위한 개념적, 이론적, 방법론적 틀을 제공해 주는 포괄적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한권을 쭉 읽으면서 느낀 것은 한마디로 새로운 시각이다. 이책을 번역한 이정모 교수님의 말을 약간 인용하면인지과학의 영향은 우리의 일상적, 학문적인 사고방식에 이미 상당히 점진적으로 스며들어왔다. .... 이 책은 컴퓨터, 마음, 두뇌, 정보사회, 인식론 등에 관심있는 일반인들이나 인지과학과 관련된 분야의 학문을 하는 사람들에게 인지적 패러다임을 익히고 구체화하는 디딤돌의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여 내 생각을 대변해 줬다.이 글의 처음에 언급했듯이 로봇, 두뇌로의 여행등의 소설을 생각했을 때 생기는 의문, 즉 컴퓨터도 인간과 같은 마음, 생각을 가질 수 있는 것인가? 단지 소설의 공상일 뿐인가? 컴퓨터가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인간의 머리에서 일어나는 생각, 의식이라는 것이 사실은 전기적인 흥분일 뿐, 우리에게 특별한 마음이란 것은 없는 것인가? 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로봇을 읽어보면 주인공과 정교하게 만들어진 로봇이 서로 파트너로 함께 일하면서 우정을 쌓게된다. 그리고 이 로봇은 나중에 파운데이션 10권에 은근슬쩍 등장하여 친구인 인류를 지키기 위해 달에서 파운데이션의 주인공을 돕는 역으로 등장하게 된다. 그렇다면 로봇도 과연 인간과 같은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우선 먼저 이야기를 하자면 아니라고 본다.우선 "인지"란 말을 살펴보자. 인지란 말은 사실 너무 광범위하므로 우선은 생각하기 쉽게 사고라는 말, 또는 생각이라는 말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자. 그렇다고 해도 사고가 좀더 우리들에게 친밀하게 사용하기는 하지만 정의를 내릴려고 하면 명확하게 정의내리기 힘들다는 것은 금방 깨닳을 수 있다. 그러나 명료하게 정의하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이 책에서 처럼 사고를 백일몽, 계산, 추리, 귀납, 창조의 5가지로 분류를 할 수는 있을 것이다. 여기서 앞의 백일몽, 계산, 추리, 귀납의 경우에는 매우 고등수준의 사고수준을 요구한다. 그러나 창조의 경우 어떤 한순간의 창발적인 생각을 출현시키기 때문에 과학적인, 생리적인 현상으로 설명하기 힘든 무의식적인 영역에서 어떤 생각이나 개념들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리고 중국어방 논변, 튜링검사에 관한 논의, 컴퓨터의 심적인 내용(지향성) 문제, 상식의 문제, 화용론에서의 한계 등 지금 까지 나와있는 많은 증거들을 볼 때 컴퓨터는 사고를 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하지만 여기서 의문이 드는 것은 나의 생각이 과연 옳은 것인가? 하는 점이다. 나 자신과 다른 사람들 모두 "컴퓨터가 사고를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거의 100% "감히 어떻게 컴퓨터가 사고를 할 수 있겠어?"와 같은 인간 중심적인 사고에 의한 선입견을 가지고 문제를 대하게 된다. 그리고 대부분은 컴퓨터는 사고를 할 수 없다라는 결론에 도달하는 방향으로 갈 것이다.(100%라고 봐도 좋다) 하지만 학문을, 진리를 추구하는 학생으로써 그러한 오류에 쉽게 빠질 수는 없지 않는가? 그리고 개인적인 생각인데 "할 수 없다"라고 못을 박아버리면 아무 것도 얻는 것이 없다. 그냥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의심이 우리의 인류를 발전시켜 왔고, 여기서도 필요한 자세인 것 같다. 쉽게 말해서 컴퓨터가 생각을 할 수 있는가? 없는가? 의 질문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컴퓨터가 사람과 비슷하게 만들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중요하다고 본다.(앗!!! 써놓고 보니 실용성을 추구하는 공대생 특유의 자세가 나와버렸군요....(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