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머리말일찍이 성이라는 것은 자연의 순리에 따른 종족보존의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인간에게는 이와 더불어 자신을 위한 행복의 수단으로도 이를 이용할 수 있었다. 쾌락도 인간에게는 하나의 행복으로 취급될 수 있다.하지만 아무리 미개한 민족이라 하더라도 어느 사회나 어떤 형태로든 성에 대한 통제가 있다. 물론 사회 문화적인 배경에 따라 허용과 통제의 규범은 각각 다르다. 1940년대에 킨제이가 실시한 남녀의 성생활에 대한 연구를 공식 발표함으로써 극히 사적인 영역으로 간주되었던 부분이 개방되기 시작했다. 1960년대 미국사회에서는 새로운 도덕관념으로 상호 진정한 애정이 있는 한 혼전 성행위를 허용한다는 성규범을 받아들여 부부간에만 허용되었던 성행위가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 오늘날의 성은 더 이상 억압적이거나 감춰져야만 하는 것이 아닌 공개적이고 개방적인 것으로 변화하고 있으며 성과 관련된 다양한 사회·문화적인 환경들이 현대사회의 독특한 성의식과 성문화를 만들고 변화시키고 있다.과거 한국사회에서는 뿌리깊게 막힌 유교사관으로 인하여 여성의 순결을 강요했음을 굳이 여기서 다시 상기시키지 않아도 우리는 잘 알고있을 것이다. 그러나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금 이 시점에서 과거 한국사회처럼 서로의 순결을 고수하는 사람을 찾기란 그다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물론 지금도 순결을 중시하는 사람들은 존재한다. 하지만 조선시대 여인네들처럼 가슴에 은장도를 품고 다닐 만큼 즉, 순결과 자신의 목숨을 바꿀 만큼 그렇게 순결을 중시하는 사람은 별로 없으리라 사료된다. 그만큼 순결이란 단어는 조선시대 여인을 연상케 하는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와는 조금은 동떨어진 것으로 여겨지고 있음에 사실이다.어쩌면 성이라는 것은 극히 개인적인 것이고 순결을 지키느냐 마느냐하는 것도 개인의 선택 문제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성이라는 것은 인간 혼자서 혹은 스스로 해결할 수 없으며 더구나 성생활로 인한 결과물 즉, 혼전 성관계로 인한 미혼모의 발생이나 질병이라는 조건에 약 8%, 사랑하되 합의없이의 조건에는 약 0.5%의 응답자가 응답했다. 약 50%의 응답자가 남녀간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하고 묵시적이든 공개적이든간에 상대가 큰 거부가 없다면 혼전에 성관계를 가져도 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결혼약속을 하면 혼전성관계를 해도 괜찮다는 20%의 사람들의 태도는 허용적인 편이지만, 결혼약속이라는 자체가 그렇게 되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부모와 친지들의 묵인이나 허락이 필요한 조건이라는 것을 감안해 볼 때, 겉으로는 허용적이지만 내심적으로나 실제적인 측면에서는 혼전 성관계에 대해서 매우 제한이 많은 태도라고 해석해 볼 수 있다.셋째, "서로 사랑하되 합의가 없이도 혼전성관계를 해도 괜찮다"는 문항에 매우 소수의 (약 0.5%) 응답자들이 대답을 한 결과는 사람들이 흔히 "사랑"을 혼전성관계에 대해 허용적 태도를 지닐 수 있는 합리적인 근거라고 생각했지만 사랑은 하되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요구에 의한 즉 합의가 없는 혼전 성관계에 대해서는 매우 부정적인 태도를 지니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사랑보다는 상호합의를 성관계의 더 중요한 조건으로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넷째, 혼전성관계에 대해 정말로 개방적인 사람들 "서로 사랑을 하지 않더라도 서로 합의만 있으면 혼전성관계는 해도 괜찮다"는 사람들도 약 8%에 이르고 있다는 사실은 주시할 필요가 있다. 이런 사람들은 혼전성관계에서 성관계 자체를 서로 사랑하느니 결혼할 것이니 하는 제한적인 조건과는 상관없는 남녀간의 합의에 의한 일상적인 "상호작용"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각자의 "상호작용"에 대해서 각자가 책임을 지는 것이라는 묵시적인 약속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결과 역시 성관계의 조건으로 사랑보다는 서로간의 합의를 중요시한다는 태도로 볼 수 있다.위의 해석들을 기반으로 종합적인 결론을 하나 제시하자면 혼전순결에 대해 심리적으로나 실제 행동에서 거침이 없을 것으로 예상되는 사람들 즉 사랑 과 합의만 있으면, 사랑없어도 합의만 있으면의 조건과합의만 있으면 성관계를 해도 괜찮다 에 대한 나이별 응답{15-22세23-27세28세 이상미혼남성12%9%11%미혼여성5%9%12%사실 '사랑없어도... 합의만 있으면'이라는 성관계의 조건은 가장 개방적인 태도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실제적인 측면에서 남녀간의 사랑여부의 진실성과 확신성이 본질적으로 매우 어렵거나 애매하다는 점과 사회적인 제도나 규범을 떠나서 생각하면, 성관계의 여부도 인간상호간의 합의가 중요하다는 점을 감안해볼때, 어찌보면 '사랑없이도 합의만'의 조건은 본질적인 조건중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이 두 상대가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성인이라는 점을 전제해야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가치관은 현실적인 제반 사회적 여건 때문에 생각으로 지니고 있기도 어렵고 실제 실천하기도 어려운 측면이 많다.어찌되었든 20대후반의 남녀들은 남성들의 혼전성관계 허용조건으로 '사랑없는 합의'에 긍정적인 태도를 갖기 시작하고 있다.지금까지 위에서 순결에 대한 의식변화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의식은 사회변화에 뒤따라서 나타난다. 그러나 의식은 급격한 사회변화에 발맞춰 빠르게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물에 젖은 종이처럼 서서히 변화하는게 의식이다. 하지만 우리는 과거 70-80년대에 조사한 것과 90년대 후반에 조사한 내용이 조금은 다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확실히 우리의 의식은 조금씩 성을 개방하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순결에 대한 의식조차 무뎌지고 있음에 사실이다.그러나 문제는 순결에 대한 의식이 변화했다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에 따른 사회적 문제로 매춘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순결에 대한 의식의 변화는 성에 문란을 불러왔고 이는 대가를 바라고 성을 파는 매춘이 나타나게 되었다.2. 사회적 문제로써의 매춘1) 매춘의 정의과연 매춘을 어떻게 정의하여야 할 것인가? 매춘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이 세상에 단 한 명의 매춘부도 존재하지 않을 수 있고, 또는 이 세상의 모든 여성들을 매춘부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매춘을다리 비교적 높은 수준인 것이 특징이다. 또 호스테스나 안마사, 면도사, 맛사지걸, 콜걸 등과 같이 전업매춘유형 보다는 겸업형이나 부업형 매춘 등이 대부분이다.이제 성은 스트레스 해소에서부터 사교, 오락, 유흥, 퇴폐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이용된다. 또한 성은 인간의 가장 감각적인 부분을 자극하여 소비를 촉진시키려는 상품광고의 상업주의와 결합하여 소비전략의 도구로서 이용되고 있다. 성이 인간적인 속성을 상실한 채 사물화되고 객체화되는 것이다.우리는 '수용복을 입은 여성모델이 등장하는 자동차 타이어 광고', '구두의 선(線)과 여성의 몸매가 비유되어 번갈아 크로즈업 되는 CF', '남녀의 벗은 상반신이 나오는 환경을 생각한다는 어느 컴퓨터 신문광고' 등등의 광고를 일상생활에서 수없이 접하게 된다. 우리가 무심코 보아 넘기는 이런 상품광고는 여성의 성적 매력과 에로티시즘을 부각시켜 여성을 인격체가 아닌 하나의 사물, 이미지 또는 익명의 성적 대상으로 전락하게 만든다. 심지어 이런 광고도 있다. '여성의 68%가 경험이 있다. 여성의 99%가 관심이 있다.' 수영복을 입은 여자의 전신사진 옆에 새겨진 이 문안을 보면서 사람들은 아마 대부분 여성의 성겸험을 상상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변비치료와 다이어트에 좋다는 음료수를 선전하는 광고 문안이다. 이러한 광고는 상품광고 그 자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왜곡된 성의식을 유포할 수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 있다. 여성의 성적 이미지를 이용한 이러한 광고외에도 TV 드라마나 쇼 프로그램, 여성지 등은 여성에게 성적 매력 갖추기를 부추겨 많은 여성으로 하여금 외모 가꾸기에 집착하도록 하고 있다. 여기에 각종 미인대회와 미용산업이 합세하고 있으며, 이러한 상품화 현상은 자본주의 경제의 속성과 맞물리어 더욱 확대된다.한편 성적 욕구 자체도 상품화되어 성에 대한 소비욕구를 끊임없이 만들어 내고 있다. 스포츠신문을 비롯한 황색 잡지, 포르노 비디오 거기다 미국이나 일본으로부터 수입된 저질문화가 말초적이고 흥미위주의 성을 추구하도루고 있다 하겠다.2. 청소년 성매매의 실태최근 우리 사회에 청소년 성매매(원조교제)가 급격히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그 배경에는 10대들의 왜곡된 성의식이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자녀안심하고학교보내기 서울협의회 주최로 열린 ‘성매매청소년 보호대책 심포지엄’에서 고성혜 연구위원이 발표한 논문 ‘비행 청소년의 성매매에 대한 태도’에 따르면 비행청소년의 76.0%가 ‘성매매를 일종의 아르바이트’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연구위원은 지난 7월 서울시내 청소년 보호시설 15곳에 수용 중인 남녀 10대 청소년 353명(남 179명·여 17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하여 결과를 발표했다.1 왜곡된 성의식이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상당수가 ‘성매매’ 자체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매매가 ‘큰 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응답자가 전체 53.8%에 이르는가 하면 “매춘은 성욕이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필요하다”는 응답도 75.6%에 달했다. 특히 여자 응답자의 경우 상당수가 ‘정신이 순수하면 윤락행위를 해도 무방하다’(63.1%), ‘여성의 가치는 성적 매력에 있다’(84.9%)는 등의 반응을 나타냈다.청소년들은 성매매를 일삼는 어른에 대한 처벌에 있어서도 관대한 경향을 보였다. “성매매를 한 청소년은 처벌받아야 한다”는 데 대해 응답자의 74.2%가 ‘그렇다’고 답한 반면, “성매매를 한 성인이 처벌받아야 한다”는 비율은 35.1%에 불과했다.고성혜 연구위원은 “일부 비행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조사이긴 하지만 청소년들의 성의식이 예상 밖으로 심하게 왜곡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청소년 상담과 교육·생활보호 등 실질적인 복지 프로그램 개발이 시급하다”고 말했다.2 성매매 실태서울지검 소년부 박성동(박성동) 검사가 발표한 ‘청소년 성매매 실태 및 대책’에 따르면 지난해 7월 청소년성보호법 시행 이후 청소년성매매 사범은 계속해서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지난 4월 검찰의 1차 발표 당시, 작년 7월부터 지난 3월까지 검찰과 경찰에박했다.
지금 우리 한국언론은 전환기에 서 있다. 한편에서는 정치권력의 민주화로 전반적인 언론자유의 신장을 목격하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구태의연한 모습과 함께 지금까지 있었지만 주목되지 않았던 현상들이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구태의연한 모습이란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한 권위주의적 정치풍토에 의해 언론의 권력 눈치보기가 과거와 별로 달라진 것이 없고, 언론이 자신의 의제를 설정하기보다는 권력이 설정한 의제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존재했었지만 주목되지 않았던 점은 언론에 대한 자본 즉 소유주와 광고주의 영향이다.우리 언론은 민주화와 언론자유의 신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권력에 의해, 그리고 사주에 의해 자유로운 언론활동이 심한 제약을 받고 있다. 특히 언론사주의 편집권에의 간섭과 영향은 큰 문제라 할 수 있다. 정치권력의 통제는 과거보다 많이 약화된 반면, 과거에는 정치권력에 가려 별로 주목되지 않았던 사주의 통제권이 점점 더 크게 부각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 언론은 정치권력의 약화에 따른 힘의 공백을 메우면서 새로운 권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막강해진 권력기구는 공공철학 보다는 시장의 논리에 우선한 사주들의 절대적인 통제 하에 있다. 사주의 이윤을 추구하는 경영적 관심이 언론인의 언론의 공익성 또는 공공성을 추구하는 편집적 관심에 우선하는 것이다.독일어권에서는 흔히 외부로부터의 특히 정치권력으로부터의 언론의 자유를 외적 자유, 소유주로부터의 자유를 내적 자유로 구별한다. 내적 자유는 편집권을 의미한다. 과거에는 외적자유만이 문제되었다면 오늘날에는 외적자유가 상대적으로 신장되면서 내적 자유의 문제가 더 크게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의 경우 정치권력이나 대광고주는 소유주나 경영진이 간부를 통해 간접적으로 언론활동에 간섭하기 때문에 또 소유주나 경영진이 정치권력이나 대광고주의 눈치를 보거나 의중을 헤아려 스스로 자기검열을 행하려 하기 때문에, 내적자유 또는 편집권이 꼭 소유주나 경영진으로부터의 자유라고만 한정할 수는 없다. 경에서 민주화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특히 언론사 내부에의 민주화 운동을 활성화 시켜야 한다. 그리고 편집권을 보장하여 언론의 공적 기능을 지향하는 일 선 언론인들에게 언론활동의 자유를 보장하여야 한다.시장과 경쟁의 문제자본주의 국가에서 언론업은 일반적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사기업으로 운영된다. 그리고 그것은 필연적으로 시장에서의 경쟁을 수반하게 된다. 그런데 경쟁은 종국적으로는 경쟁을 줄이고 독과점을 낳는 경향이 있어. 우리 언론계에도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독과점은 어느 경우에나 바람직하진 않지만 언론의 경우는 특히 더 그러하다. 언론이 독과점화하면 사상과 의견의 다양성이 약화되고 소수의 언론이 비대한 권력을 행사하는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언론업계의 경쟁은 언론 내용의 다양성과 질을 보장하는 선의의 질적 경쟁이여야지 다양성을 줄이고 질을 떨어뜨리는 양적 경쟁이여서는 곤란하다. 그런데 우리 언론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경쟁은 언론내용의 다양성과 질적 향상을 위한 경쟁이라기 보다는 먹느냐 먹히느냐와 같은 처절한 생존 경쟁적 측면이 강하다. 독과점으로 이어 지는 그런 과당 경쟁은 마땅히 지양되어야 한다.시장에서의 경쟁이 더 질 높은 정보를 발굴하게 하는 자극제가 되어 저널리즘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도 있다. 말할 것도 없이 그런 질 적 측면에서의 경쟁은 고무되어 마땅하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시장에서 경쟁하는 자본주의적 언론에서는 이윤 극대화를 추구하는 자본의 논리가 지배하게 되어 언론의 공익성보다는 상업성이 우선시 되고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는 저급한 내용이 지배적이게 된다. 시장에서의 경쟁에 쫓기면 언론들의 주된 관심사는 민주시민에 필요한 공익적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수용자를 끌어 들일 수 있는 오락적 정보를 제공하는 것에 모아지게 된다. 그렇게 되면 언론이 흥미위주의 진부한 내용을 선정적으로 제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면서 언론은 수용자가 그런 내용을 원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말하거나 수용자가 원하는 것을 소유하고 있다. 이 밖에 종교재단이 신문을 소유한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는 재단법인 순복음선교회가 100%, 는 재단법인 통일교 유지재단이 55.7%, 은 재단법인 대구교구 천주교회 유지재단이 87.35%의 주식을 소유하고 있다.언론이 국가나 기업이나 개인에 의해 소유되지 않고 바람직한 제 3의 형태로 소유된 경우도 없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것이 6만여 주주에 의해 국민주 방식으로 소유된 이다. 의 경우는 많은 제주도민들과 사원들에 의해 소유되어 있다. 의 경우는 재단법인 강진기 언론문화재단이 78.63%, 매일경제신문사 사우회가 20.79%를 소유하고 있어 재단법인 및 사원 소유의 형태로 되어 있다여기서 한 가지 분명히 할 것이 있다. 제3의 소유 형태를 띤 언론이 상업적인 목적의 언론보다는 언론의 공적 기능의 수행에 상대적으로 더 효과적일 것으로 보여 선호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대기업이나 개인 또는 가족에 의해 소유되고 이윤을 추구하는 상업적 언론이 공적 기능에 반하는 것은 아니다. 언론의 공적 기능은 언론이 언론상품을 통해 돈벌이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비의도적으로 수행되는 측면이 강하기 때문에 상업성 그 자체가 공적 기능을 수반한다고 할 수도 있다. 상업적인 언론은 상업적인 고려 때문에 공적 기능에 위배될 수도 있지만 바로 그 때문에 공적 기능을 더 잘 수행하는 측면도 있다. 언론상품이 수익성이 있으려면 우선 질 높은 언론상품을 만들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좋은 저널리즘적 활동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구미의 언론에서 보듯, 기업이나 자본가가 소유하거나 개인 또는 가족이 경영하는 상업적인 언론이 꼭 저질인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런 언론들 가운데는 세계적인 권위지들이 많다. 가족신문인 와 가 대표적인 예라 하겠다. 언론의 질과 공적 기능의 수행은 소유방식에 의해서보다는 소유주와 경영진의 양식과 전통의 문제에 의해서 더 좌우된다.경영과 편집의 문제일반 제조업은 물질을 가공하여 상품으로 판매한다. 따라서 일반 제조업은 물질만을 다루게 된에 우선시키고 어디까지나 공공성 속에서 상업성을 추구해야 한다는 언론의 공공철학을 확립해야 한다. 특히 한국에서와 같이 언론사주의 힘이 절대적인 곳에서는 언론사주와 사주를 대리하는 경영진들이 투철한 언론의 공공철학을 확립하지 않으면 안 된다.구미 특히 영국이나 미국에서는 편집진의 자율성을 보장한다는 편집권에 대한 뚜렷한 개념이 없다. 대신 언론에 대한 간섭 특히 정부 간섭으로부터의 언론의 자유가 주창될 뿐이다. 이들 나라에서는 언론에 대한 외부 특히 정부의 간섭을 일선 언론인들이 아니라 사주나 간부들이 방어해 왔다. 그리고 일선 언론인들이 편집의 자율성을 언론사주나 간부가 존중하는 것을 불문율로 하고 있다. 따라서 일선 언론인들이 편집의 자율성을 외칠 필요가 없다. 이 점에 있어서는 신문이나 방송이나 마찬가지다. 영국의 BBC는 포크랜드 전쟁 때 적국인 아르헨티나의 발표보도를 둘러싸고 그 보도를 막으려는 영국정부와 대립한 적도 있다. 영국이나 미국에서는 정권이 언론의 자율성을 침해할 때마다 언론사의 책임자가 나서서 거사 적으로 그에 대항했다.일례로 케네디 대통령은 1963년 백악관에서 의 신임 발행인인 아서 옥스 설즈버걱와 저녁 식사를 하면서, 미국의 베트남 정책을 망쳐 놓는다고 생각한 그 신문사의 데이비드 할버스탬 기자의 베트남 철수를 강경하게 요구했다. 그렇지 않아도 할버스탬은 철수예정이었고, 후임자도 이미 내정되어 있었다. 설즈버거는 이 문제를 제임스 레스턴 워싱턴 지국장과 상의 하였으나 "그들이 원하는 대로는 해줄 수 없다."는 답변을 듣고 할버스탬으로 하여금 쌌던 짐을 다시 풀도록 하였다.는 1971년 국방성 기밀 문서를 폭로하면서, 미국정부의 압력을 예상하고, 정부와 싸우는 과정에서 재정적으로 핀치에 몰릴 경우에 대비하여, 경영진은 신문사의 건물을 조금씩 매각하려고 까지 하였다. 그 당시 부사장 이였던 제임스 레스턴은 부장회의를 열어 다음과 같이 한바탕 연설을 했다고 한다."지금부터 는 정부와 싸운다. 상당한 압력이 예상된다. 재정적으로 핀치에 몰릴명령을 정당한 것으로 여겨 아무런 이의 없이 복종하기 때문이다. 군대나 직장에서 직무와 관련하여 상사가 부하에게 행사하는 힘이 바로 권위의 대표적인 한 형태다.이러한 권위는 전문지식, 법, 보상, 위협, 인격에 의하여 발생한다. 이 가운데에서도 전문지식이야말로 이의 없이 가장 분명하고 효과적으로 복종을 이끌어내는 힘이라 할 수 있다. 어떤 분야에 고도의 전문지식을 갖춘 사람을 그 분야의 '권위'라고 부르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전문지식이 곧 권위인 것이다. 법에 의한 권위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강제력을 배경으로 한다. 보상에 의한 권위는 어떤 형태로든 보상이 있어야만 행사될 수 있다. 인격에 의한 힘은 가장 순수한 권위이기는 하지만 모호한 측면이 있다. 옛부터 아는 것이 힘이라 했다. 오늘날의 정보화사회에서는 정보가 힘이라고 일컬어지기도 한다. 교수나 의사나 변호사와 같은 전문인들이 누리는 권위를 보라. 비전문가가 감히 이들 전문가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지 못한다. 그들은 자신의 전문분야에서 막강한 권위를 갖게 된다. 그들의 권위는 그들이 가진 전문지식에서 나오는 것이다. 언론인에게도 자기 담당분야에 관한 전문지식이 갖추어져 있다면 그에 따른 권위를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의 취재와 관련하여 그 밖의 사람들이 함부로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게 될 것이다.전문화 시대임에도 전문화되지 않은 기자는 안팎으로 취약하게 된다. 우선 자신의 담당영역에서 전문성을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에 취재원으로부터 무시를 당할 가능성이 있다. 말하자면, 성의 있는 취재협조를 받기가 어렵다. 그리고 자기의 담당분야에 전문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주체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전문가를 비롯한 타인에 의존해야 되고 따라서 그들의 영향을 받게 된다. 이는 곧 외부 간섭이나 통제에 취약하게 된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그는 전문지식의 부재로 잘못되거나 왜곡된 정보를 가려내는 데에도 서툴고, 언론을 조작하려는 기도를 쉽게 간파하지도 못한다. 따라서 언론인은 편집에서의 자율성과 독립
REPORT생명의 기원과 진화교수 :신주옥날짜 : 2001년 6월13일대학 : 공과대학학과 : 기계공학부학번 : 9722111765성명 : 최동규생명과 그 기원생물과 무생물의 차이는 무엇인가? 또 생명이란 무엇인가? 생명이란 모든 생물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속성 또는 특성이라 할 수 있으며, 생물에는 이른바 생명현상 또는 생명활동이 수반된다. 모든 생물체는 세포로 이루어지고, 모든 생물체는 세포의 작용으로 살아간다. 아메바는 하나의 세포로 이루어진 생물이다.생명의 정의지금까지 내려진 생명에 관한 정의를 몇 가지 살펴보면, 생물학의 발달과 더불어 생물의 특성으로 열거되어 온 것은 유기물질을 바탕으로 구성된 생체유기물질의 생산, 하나의 세포로부터 시작되는 성장·구성·조절성·자극반응성·물질대사·증식 등 여러 가지가 있으며, 이들 중 한 가지 또는 몇 가지를 가지고 생명을 정의해 보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자연계에 존재하는 무생물에서도 앞에 든 것과 유사한 현상이 발견된다든지 이러한 생물의 특성을 기계적인 현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생명을 엄밀히 정의하기는 매우 곤란하다. 그렇지만 상당히 널리 보급된 정의도 있다. F.엥겔스에 의한 “생명이란 단백질의 존재양식이다.”라는 정의가 그것인데, 이 정의는 물질대사를 생명현상의 기본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이 정의는 생물체내에서 일어나는 모든 물질대사는 효소라는 단백질이 주체가 되는 사실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물질대사에 대해 주목한 것은 생물체가 끊임없이 물질의 출입과 변화, 그리고 이에 수반되는 에너지의 전환 및 출입을 경험하면서 일정한 평형을 유지하고 있는 점에 주목한 것과도 연관이 있는 일이다.생체론에서는 이러한 동적평형과 위의 계층구조를 생명현상의 두 가지 특징으로 들고 있다. 그런데 동적평형이 뜻하는 것은 생명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붕괴, 즉 죽음이 존재한다는 사실인데, 생과 사는 표리일체의 관계에 있음을 나타내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1940년대에 이르러 핵산의 중요성이 인식되기, 그후의 연구에 의하여 복잡한 구조를 갖는 생물의 자연발생은 부정되었다. 18세기 후반이후에는 논쟁의 대상이 되었던 것은 미소한 생물의 자연발생이었다. 육즙의 부패나 포도즙의 발효를 둘러싸고 푸셰와 논쟁을 벌이며 연구를 거듭하던 파스퇴르는 유기물을 함유한 액체를 멸균한 후 공기와 접촉시켜도, 공기 속의 미생물이나 포자를 적당한 방법으로 없애면(백조머리 플라스크를 이용함) '자연발생'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실험적으로 증명하여 자연발생의 부정에 성공하였다.(2) 우주 기원설1860년을 전후하여 생명관에 또다른 획기적 사건은 다윈이 저술한 '종의 기원'(1859)이었다. 생물진화과정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면 지구에서 가장 원시적인 생물에 이르게 된다. 그러면 가장 원시적인 생명체는 어떻게 발생하게 되었는가? 생명에는 기원이 있을 것이라는 논리적인 결론과 생물의 자연발생은 없다는 실험결과 사이의 모순이 생긴다.이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생물의 배종이 다른 천체에서 지구로 떨어져 발전했다는 설이 나타났다. 독일의 리히터가 1865년에, 영국의 W.T.켈빈이 71년에 생명의 배종을 고형입자가 우주공간에서 날아오든가 또는 천체끼리의 충돌로 생물을 부착하고 있는 파편이 우주공간으로 흩어져 날아와 지구로 떨어졌을 것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또 스웨덴의 물리학자 S.A.아레니우스는 원시생물이 우주에서 광압을 타고 지구에 도달했다는 이론적 가능성을 제시했다(1903, 1908). 오늘날 이 설은 부정되었는데, 가장 큰 이유는 우주공간에 존재하는 여러 고에너지 방사선에 견딜 수 있는 생명체는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주기원설은 본질적으로 지구의 생명 기원이라는 문제가 다른 천체의 생명기원이라는 문제로 전가되기 때문에 설사 그 설이 옳다하더라도 진정한 해결이 되지 않는다는 문제점이 있다.(3) 물질진화론이것은 물질 진화의 귀결로 생명이 나타났다는 것인데, 생명의 자연발생이나 우주기원설 대신, 오늘날에는 지구의 생명은 지구에서의 유기물진화의 결과로 생겼다는 생각이 일반적이다소련철학자들 중에는 사물의 생성문제를 논한 사람이 많았다. 그 중 한 사람인 엠페도클레스는 지·수·풍·화 4원소의 결합 분리로 경험세계의 생멸의 사실을 설명하려 하였고, 동물체의 여러 부분이 발생하여 지상에서 결합되었다고 했으며, 아낙사고라스는 사람은 물고기 모양의 조상에서 유래하였다고 설명하였는데 흔히 사람들은 이들의 설이 진화관념의 효시라고 여긴다. 또 아리스토텔레스는 생물의 여러 부류가 완전의 정도에 따라 관계적으로 연쇄를 이루어 배열되어 있다는 자연의 단계를 설명하여, 이것이 근세에 와서 동물을 하등한 것과 고등한 것으로 분류하게 하고 진화사상을 낳게 한 토대가 되었다고도 한다. 근세에 들어와서 진화사상이 어느 정도 뚜렷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중엽 프랑스였고, 그 배경은 뉴턴 역학의 기본적 관념이 프랑스에 보급되어 자연의 인과적 변화의 관념이 확립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체계적인 진화론을 처음으로 제시한 사람은 라마르크이다. 그는 '동물철학'(1809)이라는 저서에서 동물분류학·생명론·감각론과 함께 진화사상을 상세하게 기술하였다. 라마르크는 무기물에서 자연발생한 미소한 원시적 생물이 그 구조에 따라 저절로 발달하여 복잡하게 된다는 전진적 발달설과 습성에 의해 획득된 형질이 유전함으로써 발달한다는 설을 함께 설명하였다. 그는 전자로는 큰 동물 부류들이 단계적으로 배열됨을 설명하고 후자로는 종의 다양성을 설명하려고 하였다. 또한, 그는 동물은 내부감각으로 생기는 욕구로 진화한다고도 하였다. 라마르크의 학설은 당시에 실증적인 생물학이 대두되고 있는 때였으므로 허무한 사변이라고 묵살되거나 배격되었다. 그 이유는 당시 비교해부학자·분류학자였던 창조론자 G.퀴비에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진화론을 확립한 사람은 C.R.다윈이다. 그는 저서 '종의 기원(The Origin of Species)'에서 자연선택설을 근간으로 하여 새로운 종이 생기는 메커니즘을 설명하였는 데 변이의 원인 중의 한 가지로 라마르크의 용불용설도 채용하였다. 그러나 다윈은 라마살고 있다. 이미 알려진 것만 해도 동물이 약 120만 종, 식물이 약 50만종이며, 아직 알려져 있지 않은 것들도 상당한 수로 추산된다. 예전에 살았다가 멸종된 것들은 현재 살고 있는 종들보다도 더 많았으리라고 여겨진다. 이 많은 생물들 중에서 어떤 것들은 서로 매우 비슷하고 또 어떤 것들 사이는 차이가 매우 크며, 하등한 것도 있고 고등한 것도 있다. 그러면 이와같이 다양한 생물들의 유래는 어떠할까. 예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든 종류의 생물은 신이 따로따로 창조한 후 변하지 않고 고정되어 있다는 창조설을 믿고 있었는데 오늘날에도 그런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자연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생물은 진화한다는 이론이 대두되었다. 생물의 진화를 정의하는 일은 간단한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도 않다. 진화론을 확립한 C.R.다윈은 진화를 ‘변화를 따르는 유래’라고 했고, 실제로는 생물의 계통성을 주안점으로 하여 새로운 종의 기원, 즉 새로운 종이 형성되는 과정을 중심으로 논하였다. 진화란 생물이 환경 속에서 생식을 통하여 대를 이어가는 사이에 변화해 가는 것을 의미한다. 보통 구조나 기능에 있어서 간단한 것으로부터 더욱 더 분화하고 복잡한 것으로 발전하며, 적은 수의 종류로부터 많은 종류로 갈라져 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아마 무난한 정의일 것 같다. 한편, 생물체를 부분적으로 볼 때에 어떤 기관이 발전적인 방향으로 변하는 데 대하여 어떤 기관은 퇴화하는 현상도 있다. 이러한 것도 진화의 일면이며 퇴화는 진화의 반의어가 아니다. 진화문제를 다룰 때 흔히 지구상의 최초의 생물의 기원, 즉 생명의 기원문제를 다루는데 이것은 화학적 진화로서 생물의 진화와 구분한다. 물론 화학적 진화와 생물의 진화는 일련의 현상이다. 진화는 생물의 역사문제이며, 더구나 유사 이래의 세월에서는 진화라고 할 만한 큰 생물의 변화는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므로 진화는 간접적으로 유추할 수밖에 없는 현상이다. 진화를 증명하는 사실로 거론되는 것은 거의 모두 생물이 진화한다는 가정으로 설명발생학상의 증거위에서 언급한 상동기관은 발생적으로 공통성을 나타낸다. 서로 다른 무리의 생물의 어떤 기관은 성체에 있어서 각각 특수한 형을 하고 있지만, 그 발생과정을 보면 같은 규범에 속하며, 공통된 기형에서 출발하여 특수화한 것같이 보이는 것이 있다. 예를 들면, 척추동물인 어류·양서류·파충류·조류·포유류의 성체의 동맥궁은 각각 특수하지만 발생과정을 보면 모두 어류의 것과 같은 형으로 형성되었다가 발생이 진행됨에 따라 제각기 특수화한 것이다. 서로 다른 동물 무리의 유생형이 유사한 경우도 많다. 환형동물과 연체동물의 어떤 것들은 트로코포아 유생을 함께 가지며, 극피동물의 유생과 반색동물의 별벌레아재비류의 유생은 비슷하고, 갑각류의 처음 유생기는 모두 노플리우스유생이다. E.헤켈은 ‘개체발생은 계통발생을 반복한다’고 했다. 이것을 생물발생 원칙 또는 반복설이라고 한다. 이 원칙은 생물의 발생과정에서 조상생물의 형태가 반영된다는 것을 강조한 점에서 중요하지만, 오늘날에는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이와 같은 발생학상의 사실들은 생물들이 공동조상에서 유래하여 갈라지면서 변해왔음을 암시한다. 유생형의 유사성은 상동기관의 존재와 더불어 유연관계를 따지는 데 매우 중요하다.⑸ 비교생리학 및 생화학상의 증거비교혈청학에서 밝혀진 항원항체반응을 이용하여 동물사이의 관계를 조사해 보면 분류학적으로 가까운 것일수록 반응이 강함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생물이 공동조상으로부터 자손이 갈라져 나와 진화함에 따라 처음에는 같았던 체내 단백질의 종류와 구조가 차차 달라졌음을 뜻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실제로 생물 사이의 유연관계의 판정에 이 반응을 이용하고 있다. 이를테면,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꼬리가 없는 원숭이류(유인원), 긴꼬리원숭이류, 원시적인 영장류의 순으로 그 반응이 약해진다. 고래류는 포유류의 여러 목 중에서 우제류에 가장 가깝다는 것이 알려져 있다. 해산동물의 혈액성분을 조사해 보면 하등한 무척추동물에서부터 어류로 감에 따라 그 항상성을 유지하는 방식이 발달되어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