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여전사 변영주-‘낮은 목소리’로 찍은 ‘진실의 큰외침’-변영주 감독(34).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으로서 그는 지난 7년 세월을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과 함께 했다. 그는 “그 시간 내내 할머니들과 연애를 했다”고 말했다. 노처녀인 변감독이 ‘연애의 산물’이라고 말하는 것은 위안부 할머니들의 삶을 소재로 한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 ‘낮은 목소리’와 ‘낮은 목소리2’, 그리고 ‘숨결’이다. ‘낮은 목소리’와 ‘낮은 목소리2’는 한국영화사상 유례없이 일반 극장에서 개봉됐고 일본 전역에서도 상영됐다. ‘낮은 목소리’는 야마가타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오가와 신스케상, 브뤼셀 국제독립영화제에서는 심사위원대상을 받았다. 뉴욕여성영화방송인협회가 발표한 ‘세계 여성영화 23선’에도 선정됐다. 또‘낮은 목소리2’는 낮은 목소리’와 함께 베를린국제영화제 영포럼 부문에 초청받았으며 타이완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메리트 프라이즈상도 받았다.한국의 여성영화와 다큐멘터리영화를 대표하는 변영주감독이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92년 겨울. 제주도 기생관광 실태를 다룬 자신의 첫 다큐멘터리영화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을 준비할 때였다. 일본군 위안부였던 어머니의 수술비를 마련하려고 매춘에 나선 한 여성의 이야기가 계기가 됐다. 모녀 2대에 걸쳐 위안부가 된 얘기였다. 그는 두번째 작품으로‘낮은 목소리’를 기획했고‘기록영화제작소 보임’을 설립해 제작에 착수했다. 그러나 제작은 쉽지 않았다.‘나눔의 집’에서 만난 할머니들은 영화를 찍자는 변영주 감독을 냉대했다. 그 동안 수많은 매체에서 자신들을 보도했지만 결국 이용당하기밖에 더했느냐며 그를 밀쳐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세상과의 소통을 거부하는 사람들, 그들에게 자신의 영화를 소통의 도구로 내주자고 다짐했다. 이를 위해 그는 매일 ‘나눔의 집’을 찾았다. 그는 옛날 노래를 배워 할머니들에게 불러드리면서 1년을 그냥 놀면서 보냈다. 과거 이야기에 대해선 일절 물어보지 않았다. 그러자 할머니들이 먼저 낮은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렇게 놀지만 말고 영화를 찍을 거면 찍자는 것이었다. 다큐멘터리 낮은 목소리 의 제작은 이렇게 시작됐다. 93년 9월부터 촬영에 들어가 99년 9월까지 ‘낮은 목소리’ 낮은 목소리2’‘숨결’이 차례차례 완성됐다. 연애기간’이었다는 변감독의 말과 달리 제작과정은 달콤함과는 거리가 멀었다.‘위안’이라는 이름 아래 자행된 강간의 피해자가 자신의 몸에 새겨진 고통을 되새김질하는 것은 또다른 아픔이었다. 그것을 찍는 행위 또한 고역이었다.영화계에서 여성 영화감독은 아직도 낯설다. 1955년작 ‘미망인’의 박남옥 감독 이후 장편 영화감독으로 활동한 여성은 98년작 ‘미술관 옆 동물원’의 이정향 감독까지 9명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영화의 역사가 80년이 넘는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아직은 극소수 세력인 셈이다. 국내 여성감독 가운데 6호인 변영주감독은 유일한 다큐멘터리 감독이기도 하다. 어릴 때부터 영화광이었던 그는 이화여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영화운동집단‘장산곶매’와 여성영화집단 ‘바리터’ 등에서 활동했다. 단편영화 ‘작은 풀에도 이름이 있으니’(90)의 시나리오와 촬영, ‘우리네 아이들’(90)‘전열’(91) 등의 촬영과 편집을 맡았다. 데뷔작은 제주도 기생관광의 실태를 다룬 장편 다큐멘터리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93)이다. 93년 ‘기록영화제작소 보임’을 설립한 그는 ‘낮은 목소리’ 와 ‘숨결’ 외에도 ‘잊혀진 장인 양주남 감독’(98)을 연출했다. ‘기록영화제작소 보임’(공동대표 변영주·신혜은)의 ‘보임’은 영화는 관객에게 보여짐으로써 재창조된다는 의미와 인간의 현실을 직시하는 다큐멘터리 정신을 담고 있다. 여성에 대한 편견과 의심이 덫처럼 널린 영화계에서 변영주 감독이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데뷔작‘아시아’를 비롯, 일관되게 여성문제와 인권문제를 지속적으로 다뤄왔고 특히 3편에 이르는 ‘낮은 목소리’ 시리즈를 통해 역사의 진실이 과거에 머무르지 않도록 복원해 냈다. 변영주 감독은 다음 작품으로 극영화를 기획하고 있다. 유령으로 떠도는 1920년대 악극단 배우와 현대 여성의 만남을 소재로 한 판타스틱 영화다. 평생을 다큐멘터리와 함께 할 작정이라는 그는 바로 그 이유만으로도 많은 이들에게 소중한 존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