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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의 분석
    16장 문화의 분석 -네이던 글레이저(Nathan Glazer)미국에서 다양한 소수 인종 집단의 사회ㆍ경제 궤도와 문화간의 관계는, 문화의 역할과 국가의 운명이라는 더 큰 논의 속에 포섭되었으며 덧붙여 아시아의 가치에 대한 논의도 이루어졌다.미국의 인종집단은 훨씬 거대한 규모의 사회와 국가와 문명의 일부분으로서 미국에서 자신들의 삶을 시작했으나, 곧 문화 변용(變容)과 동화의 과정을 통해 보다 규모가 큰 미국 사회에 묻혀버린 집단이다. 이러한 집단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예전에 정해 놓았던 경계선은 다른 종족간의 결혼, 개종, 변화하는 정체성 등을 통해 차츰 흐려진다. 그러면서 그들은 거대한 미국 사회와 미국 문명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3,000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고, 수억의 사람들이 엇비슷한 용모를 갖추고 있으며, 아시아의 광활한 지역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힌두 문명으로부터 미국에 이주해 온 수백만 인도인들의 경제ㆍ사회ㆍ정치 차원의 변화는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이 사실은 일반적으로 문화나 문명이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건, 우리가 인도의 운명에 대한 문화나 문명의 역할 및 미국 인도인들의 경제 진보에 대한 역할을 고심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무언가 다른 생각을 하게 됨을 일깨워 준다.20세기의 '문화''인종(race)'은-유전적 특징-을 말한다. 인종과 문화 사이에는 어떤 관련성이 있어 보이는데 대체로 위대한 인종은 색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다. 루스 베네딕트의 『문화의 패턴(Patterns of Culture)』에서는 집단과 차이를 비(非)유전과 비인종의 기준으로 설명했고 1950년대와 1960년대에는 미국의 대학에서 널리 읽혔다. 인종상의 설명은 항상 보수적이거나, 혹은 그보다 더 나쁘게 여겨졌다. 진보적 인류학자들은 사회적 설명의 한 범주로서의 인종을 거부하고 또 매도했다. 반면 문화적 설명은 자유롭고, 긍정적인 듯 보였다. 인종은 바꿀 수 없지만 문화는 변화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인종과 문화 사이에는 논리적이라기보다 현실적인 필연성이 있고 한 국가나 집단이 번성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문화를 이용하는 방식이 내키지 않기 때문에 문화를 긍정적으로 여기지 않는다. 따라서 문화적 설명은 프란츠 보아스, 루스 베네딕트, 마거릿 미드의 시대에 누렸던 자유주의적이고 진보주의적인 풍토를 차츰 잃어가고 있다. 어쨌든 인종은 불변하지만, 문화는 그렇지 않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문화가 인종 못지 않게 불변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물론 진보적인 인류학자들은 문화가 변화 가능하다고 본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특성들을 변화시키기 위해 문화에 개입하기를 몹시 조심스러워 한다.문화는 모든 것을 포괄하는 일종의 스펀지와 같은 개념-최초의 인류학적 정의에는 유전적인 특징은 물론 한 집단을 차별화 시키는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었다-이다. 따라서 일종의 설명 변수(explanatory variable)로서 문화에 의존한다면 인종에 의존하는 만큼이나 정치적인 문제들은 야기할 수 있다.분석 수단으로서의 문화∴첫 번째 모델화☞ 위대한 전통-교회법 교본, 의례(儀禮), 성직(聖職), 위대한 역사적 전통-은 현재의 집단과 개인들에게도 영향을 준다.- 미국의 민족 집단과 인종 집단은 어떤 문화적 특징을 가진 거대한 인구에서 무작위로 빠져나온 집단이 아니다. 가령 미국에 있는 100만 명의 중국인들은 그보다 천 배쯤 규모가 큰 중국을 대표하지 않는다. 즉 미국에 있는 모든 인종 집단들이 그들의 문화를 대표하지 않는다. 그들 역시 문화를 가지고 있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문화는 아닌 것이다.따라서 첫 번째 모델화는 큰 덩어리의 전반적인 문화를 미국 이주자들을 특징짓는 특정 변수들로 나누어야 한다. 1950년대에 시카고대학의 인류학자였던 로버트 레드필드(Robert Red-field)와 밀턴 싱어(Milton Singer)는 문화 속에서 위대한 전통(great tradition)과 사소한 전통(little tradition)을 한꺼번에 다루어야 한다는 개념을 발전시켰다. 물론 위대한 전통의 일부는 그대로 전해지긴 하지만, 그것들은 시골의 경우 위대한 전통과는 거의 무관한 토착 전통들과 혼합되고, 도시의 경우 대중매체의 보편 문화와 뒤섞이는 바람에 변형되고 왜곡될 수밖에 없다.우리는 위대한 전통의 어떤 특징이든 사소한 전통에는 거의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사실과 위대한 전통의 계승자인 엘리트층이 이주자들 가운데 별로 없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예를 들어 과학과 학문에서 유태인의 성과를 설명하는데 있어, 유태인 전통을 이용한 해석은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우리 세대에 실질적인 성과를 이룬 많은 이들의 부모가 서구 교육은 말할 것도 없고 유태인의 전통 교육조차 거의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런 부모들 가운데 일부는 실제로 문맹(文盲)이었으며,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대부분의 부모들은 기도서를 읽는 수준이 고작이었다. 따라서 오늘날 위대한 전통의 후손들에게 그런 역사적 연관성을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에 위대한 전통을 언급한 다음, 현재의 집단과 개인들에게도 그 역사적 연관성이 인정된다고 주장하는 방식은 너무 손쉬운 전개이다.∴두 번째 모델화☞ 이주자들이 이주국에 도착하면서 발견하게 되는 주의 환경, 경제상태, 이용 가능한 기회, 정착한 지역의 특성에 주목해야 한다.예를 들어 만약 저소득 계층의 흑인들을 설명하는데 있어 선입견이나 문화의 역할을 결정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동일한 연령과 동일한 교육 및 동일한 지리적 장소를 갖추고 있는 집단들을 서로 비교, 검토하는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차이를 분석하기 위해 설명 모델(explanatory model)을 설정하는 것은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문제는 설명 모델을 설정하면서 발생한다. 즉 차이를 설명하려 할 때 비(非)문화적 특징들을 어떻게 분리하는가가 쟁점이다. 어떤 집단이 남들보다 잘 살건 그렇지 않건, 문제의 집단은 문화적 설명을 거부하기 십상이며 모든 집단은 우월자보다는 희생자처럼 보이는 게 더 이익이라고 생각한다.문화적 설명은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 우리가 조정하는 각각의 특징들과 서로 복잡하게 뒤얽혀 있다. 대개 유태인들은 자신들의 소득과 수입에 관한 뉴스가 새어나가기를 꺼린다. 인구 조사는 따로 종교에 대해 묻지 않으며 따라서 유태인들은 인구 조사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유태인 보호조직들은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인구조사에서 종교에 대한 각종 질문들을 거부한다. 반면 개별 인종으로서 인구 조사에 포함된 모든 아시아인들은 다양한 이유로 자신들의 성공을 통계학적으로 입증하려고 애쓴다. 그들 중에는 약간의 혜택을 가져오는 피해자 지위(victim status)-그들이 현재 수입이나 직업과 상관없이 자신들이 상당히 불리하게 차별 받고 있다는 주장-에 의지하려는 이들도 있다. 아시아인들이 피해자 지위를 지속하려는 노력에서 어떤 왜곡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여를 들어 중국계 미국인 역사학자 존 쿠오 웨이 첸(John Kuo Wei Chen)은 안정적인 편친(偏親)가족이 아시아계 학생들이 성공을 거두게 된 주요 원인이라는 입장에 이런 형식화는 하나의 복잡한 현상을 단순화 시켰으며 아시아 문화는 변화지 않는다는 고정관념이라고 주장했다.
    인문/어학| 2002.07.18| 3페이지| 1,000원| 조회(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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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국인들은 왜 선불교에 빠지는가? 평가B괜찮아요
    어느 날 저녁, 캠브릿지 선원에서의 법문이 끝난 뒤 한 제자가 숭산 선사에게 물었다."사람이 무엇입니까?"선사가 되물었다."내가 그대에게 묻는다. 사랑이 무엇인가?"제자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선사가 말했다."이것이 사랑이다."제자는 여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선사가 다시 말했다."그대가 나에게 묻고 내가 그대에게 묻는 것, 이것이 바로 사랑이다.") 스티븐 미첼 엮음/ 류시화 옮김, 『부처님 이마에 담뱃재를 털며』, 청맥, 1990.# 들어가는 말내가 선불교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만행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1,2』이라는 책을 통해서 이었다.『만행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1,2』는 하버드 대학에서 종교철학을 공부하던 현각스님이 불교에 입문하기까지의 사연을 담은 책으로 처음에는 그저 흥미 있는 이야기에 불과하였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나서 나는 외국인들은 왜 불교에 빠져드는가에 의문을 갖게되었다. 특히 한국의 선불교는 어떤 의미를 갖고있는가? 선불교란 무엇인가? 대승불교나 소승불교는 많이 접했지만 선불교에 대해서 전혀 몰랐다. 이 리포트를 통해서 특히 숭산스님의 법문을 중심으로 선불교가 무엇이며 외국인들이 한국의 선불교에 관심을 갖는 이유에 대해 나의 생각을 정리해보고자 한다.서론 - 선불교란 무엇인가?선(禪)은 본성에 대한 깨달음을 말한다. "나는 누구인가?" 모든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무엇무엇이다." 이 말은 마른 지식(dry cognition)적인 철학의 시작이다. 그런데 이 말을 뒤집어 보면 생각하지 않을 때는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이러한 의문이 참선수행의 시작이다. 소승불교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자전거를 타고 혼자 가는 것과 같다. 열심히 페달을 밟으면 힘들겠지만 언젠가는 목적지에 도달할 것이다. 그것은 우선 이 고통의 세계에 대해 가르친다. 우리는 고통을 만들어내는 이분법적 세계인 이름과 모양이라는 영역에 산다. 이 이분법적 세계를 벗어 던지면 열반이라는 절대의 세계로 갈 수 있다. 그 세계에서는 오고 가는 것, 삶과 죽음, 행복이나 슬픔언제나 다른 중생들과 함께 행동한다. 따라서 대승불교는 우리 수행이 모든 중생들과 함께 자유의 길로 가는 것에 대한 얘기이므로 마치 버스나 기차를 타고 가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선불교는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 다른 사람을 위해 백 번 좋은 일을 하더라도 자기를 깨닫지 못하면 소용없으므로 자기 자신을 깨달으라는 것이다.) 숭산 / 현각엮음, 『선의 나침반2』, 열림원, 2001, 11∼15쪽.선(禪)은 인도에서 발생한 것이지만 선사상(禪思想)은 중국에서 형성되었다. 인도에서의 선은 불교뿐만 아니라 고대의 인도문명 이래로 인도의 여러 사상이나 종교 및 철학 등 모든 사유의 근간이 되고 있다. 그것은 즉, 요가(yoga)라고 불리는 명상법(瞑想法)인 것이다. 지금 여기서 선사상이라고 하는 것은 인도에서 발생한 선이 중국에 전래되어 독자적인 불교사상으로 형성되면서 중국인들의 생활종교로 승화된 조사선(祖師禪)의 사상을 말한다.따라서 우리는 먼저 선과 선사상을 혼동하지 말고 정확히 그 의미를 바로 알아야 할 것이다. 선은 불교의 실천적인 입장으로 항상 좌선(坐禪)을 기본으로 하고 있으며 그러한 좌선의 자세와 외형적인 방법은 고대 인도의 요가와 고금을 통해 전혀 다를 바가 없다. 문제는 그러한 자세를 통하여 그 사고방법에 있어서 각각의 시대와 지역에 따라 크게 변화가 있었다는 역사적인 사실이다. 여기서 선과 선사상을 구별하고, 또 선의 역사와 선사상이란 제목을 붙이는 이유도 이 때문인 것이다. 따라서 역사적으로 살펴볼 때 인도선, 중국선이 있고 또 한국선이 있다.오늘날 국제적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는 요가는 인도선의 하나이며, 또한 동남아 불교권의 여러 나라에서 수행하고 있는 선법은 중국이나 한국에서 널리 실천 수행하고 있는 간화선(看話禪)과는 다른 위빠사나(vipasyana>라고 하는 명상법을 사용하고 있다.그런데 오늘날 새로운 동양의 마음이며 인류의 지적 유산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는 선불교(禪佛敎; ch'an-buddhism)는 중국 당대 뛰어난 선승(禪僧)들의 예지롯한 전세계에 걸친 해외교포로 부처님의 정통 법맥을 이은 30여 명의 전법제자(傳法弟子)를 배출하였다. 전세계 각처에 50여 개의 사찰과 선원을 창건하였고 수만 명의 신도와 수행을 지도하고 있다.한국의 절에서 일반 신도들은 선을 고차원적인 수행으로 여기어 거의 관심을 갖지 않고, 기복 신앙적인 수행을 해왔다. 숭산스님은 한국인 제자들로 하여금 미국인 제자들과 함께 좌선을 하도록 함으로써 그런 관습을 무너뜨렸다. 1976년부터 숭산스님의 가르침과 영향력은 급속히 확장되었다. 이것은 아주 직선적이고, 가급적이면 직접 대면하여 가르치는 스님의 스타일과 방대한 양에 이르는 제자들과의 서신 왕래에 크게 힘입은 것이다.그 당시에 무각스님이었던 스티븐 미첼이 1976년『부처님께 재를 털면』이라는 선사님의 책을 편집하여 그로브 출판사에서 간행하였다. 이 책은 제자들과의 대화, 선문답, 선사들의 이야기, 그리고 대부분 평범한 미국인 제자들과 주고받은 서신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은 바로 베스트 셀러가 되었고, 이 책을 읽은 많은 이들이 스님에게 매료되어 제자가 되었다.숭산스님은 제자를 지도하는 방법의 하나로 시를 택하였다. 그리고 이를 네 가지 유형으로 지도하였다. 첫째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이며, 이 하나는 아무런 자성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었다. 즉 "선과 악은 위대한 스승이요, 막강한 마구니. 본래 감정도 없고, 의식도 없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개념상의 깨달음일 뿐 두 번째 단계에서는 말의 한계를 뛰어넘으면서도 이에 대답할 수 있고, 또 완전히 모순된 것과 주저하지 않고 직면할 수 있는가에 대한 답을 던진다.즉 "잡고 있다 하여도 얻을 수가 없고, 놓아버린다 하여도 얻을 수 없네"의 경지가 그것이다. 이 경계를 깨닫게 되면 마음의 고요를 얻게 되어 걸림이 없는 완전한 해방감을 얻게 되고 세 번째 단계인 돌 여자가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나무 닭이 소리를 내어 울기도 한다. 그 때 숭산스님은 말한다. "정해 주는 겁니다. 내 식만을 고집해서는 곤란해요.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는 말처럼, 그 나라의 법식을 존중할 줄 알아야 합니다. 각 개인에 맞추어 설법을 하는 것처럼 각 나라의 풍속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독일의 경우는 특별한 통제와 간섭이 필요 없어요. 목탁을 치고 설법 준비를 하기도 전에 미리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서 기다립니다. 반면에 프랑스 사람들의 경우는 반대예요. 시간이 다 되어야 어슬렁어슬렁 모이는 사람들이 프랑스인 이예요. 그게 바로 그 나라 사람들의 국민성이라는 겁니다. 무엇이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에요. 이렇듯 나라마다는 각기 다른 특성이 있습니다. 그것을 존중해야만 포교가 가능해요. 그래서 저는 어떤 나라에 가든지 그 나라의 영웅에 대해 험담을 하지 말라고 합니다.― 평범 가운데 숨겨진 비범이라 할 방편인 것 같습니다. 이걸 문화인류학자들은 문화적 상대주의라고 말하는데, 세계화된 사회의 국제적 매너 또한 그래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현재 우리 사회가 '세계화'하는 모습을 보면 걱정스런 부분이 아주 많습니다. 세계화가 곧 서구화인 양 무분별하게 서구를 뒤쫓는 경향이 대표적인 경우인데요, 상당히 걱정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좋은 예가 있어요. 한 15년 전쯤의 일입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한국 신도와 미국 신도들이 함께 모여 파티를 했어요. 그런데 아주 재미난 현상이 벌어졌어요. 미국 사람들은 다 젓가락을 사용해서 음식을 먹는데, 한국 사람들은 오히려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음식을 먹는 겁니다. 그래서 내가 그랬지요. "이건 거꾸로 된 게 아니냐." 하고 말이죠. 그러니까 미국 법사 한 사람이 뼈 있는 농담을 하더군요. "동양 문화 가운데는 본받을 게 참으로 많은데 동양 사람들은 그것의 중요함을 잘 모르는 것 같다."바로 그거예요. 우리 것 중에서 좋은 것은 반드시 지키고 남의 것 중에서도 좋은 것은 대범하게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동양의 정신과 소중한 전통을 버리ly don't know)”인 그 마음으로 돌아가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대화의 바탕을 우리는 미국식으로 ‘공안 인터뷰’라고 합니다. 이 공안 인터뷰의 특징은 스승과 제자가 마주한 그 순간의 상황에 최선을 다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그들은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있는 그대로의 세계’가 곧 진리임을 스스로 체득해 나가기 시작하는 것이지요.* 이 기사는 buddhapia.com 에서 발췌한 것입니다.숭산스님은 외국포교에서 가장 먼저 다른사람을 이해하려는 것에서 출발하였다. 그리고 모든 것들을 갑자기 한꺼번에 하려고 하지 않았다. 하나씩 하나씩 자신의 처지에 맞추어서 고쳐 나가야 하는 것을 강조하였다. 중생 교화라는 것도 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한꺼번에 교화시키기 위해서는 반발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것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작은 실천이 세상을 바꾼다는 사실을 깨닫는 일이다. 남에게 잘하라고 할 것이 없다. 스스로 잘하면 옆에 있던 사람도 따라하게 돼 있다. 나 자신을 정화시키는 일이 곧 세상을 정화시키는 일 인 것이다.숭산스님은 외국인들에게 편지를 통해서 많은 가르침을 주었다.선사님께지난번 선사님께서 주신 편지에 감사드립니다.저는 가족들과 친구들, 특히 부모님께 참선과 저의 수행에 대하여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질문을 하곤 합니다. "삶이란 무엇인가? 또 죽음이란 무엇인가? 삶에 있어서 올바른 일이란 무엇인가?" 그들은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하곤 하지만 결코 답을 알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렇게들 말합니다. "하느님만 아시지."많은 사람들은 저에게 일체 중생을 고통에서 제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삶은 고통이고, 이러한 사실을 우리가 변화시킬 수는 없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또한, 좌선을 하거나 염불을 하거나 절을 하는 일이 다른 이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합니다. 다른 이들과는 동떨어진 채 선원에서 항상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하고', '아무 것도 하지입니다.
    인문/어학| 2002.07.18| 8페이지| 1,000원| 조회(2,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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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년 월드컵 평가A+최고예요
    피버노바의 반지름은 10.8cm지구 적도의 반지름은 6억 3780만cm6월 한달 동안은 지구에는 피버노바의 월식이 있었다.만나는 사람마다 축구로 시작해서 축구로 끝나는 이야기를 했고 대한민국이라는 국호가 새삼스러웠으며 태극기를 보면 가슴이 뭉클해졌다. 월드컵을 통해 나는 많은 것을 알았다. 한번도 가본 적은 없지만 유럽 발칸반도에는 슬로베니아라는 나라가 있으며, 세네갈은 프랑스의 오랜 식민지였다가 세네갈공화국으로 독립하였고, 파라과이 강이 흐르는 곳에는 파라과이가 있다. 아직 월드컵 이후에 여러 가지 사회현상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이르다. 하지만 월드컵과 월드컵 이후의 우리 나라 변모과정 그리고 스포츠와 문화에 대해서 서술하고자 한다.* 서론 - 월드컵1) 성격축구의 왕중왕을 가리는 월드컵 대회는 올림픽과 함께 지구촌의 양대 스포츠 이벤트로 꼽힌다. 규모로는 올림픽과 비교하기 어렵지만 전세계적인 관심도의 측면에선 오히려 올림픽을 능가한다. 올림픽은 20개 정도의 종목을 치르는 종합대회인 반면 월드컵은 축구라는 단일 종목으로 이 같은 호응을 받는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TV 시청자수가 연간 2백60억 명이었으나 94년 미국 월드컵 때는 3백20억 명이었다는 점도 이를 증명해 준다.월드컵은 '황금 알을 낳는 거위'다. 역대 월드컵에서 적자가 났다는 기록은 아직 없는 반면 78년 아르헨티나 대회 이후에는 대회마다 수입이 평균 54%씩 증가하고 있다는 통계가 있다. 당시 3천6백86만 달러였던 대회 수입이 94년 미국 대회 때는 2억2천5백만 달러로 16년 사이 약 6.4배 증가했다.특히 3백58만7천5백38명의 역대 최다관중을 동원한 미국대회의 경우 대회조직위 발표에 따르면 관광객 유치와 고용창출, 광고효과 등으로 40억 달러(약 3조2천억원)의 총수입을 기록했다. 월드컵은 현재 전세계 191개국 회원국이 가입하고 있는 국제축구연맹(FIFA)이 주관하고 있는 대회로서 대회기간이 15일정도인 올림픽보다 약 2배정도 길다는 특성을 광하는 동안, 정치인들은 애국주의와 국가주의 증폭을 만족스러워했다.하지만 월드컵은 하나의 축제로서 자리잡고 있다. 스포츠와 인간, 현대 사회와 스포츠, 스포츠와 국가(민족)주의, 슈퍼 정부(국제 체제)의 역할, 그리고 세계 시민운동의 미래를 살 필 수 있는 좋은 계기인 것이다. 따라서 월드컵을 상업적 타락으로부터 건져내 '밑으로부터의 대중 축제'로 승화시켜야 한다.2) 국제축구연맹(FIFA)의 규모 및 성격「국제축구연맹(FIFA)공화국」 - 세계 스포츠계에서 차지하는 FIFA의 위상을 대변해 주는 별칭이다. FIFA가 거느리는 회원 협의회는 아시아(41), 아프리카(50), 남아메리카(10), 북중미(29), 유럽(45), 오세아니아(8)등 6개 대륙연맹 소속 1백83개 국가협회를 포함하여, FIFA에 직접 속해 있는 8개 국가 협회, 2개 준 협의회 등 모두 1백 93개다. 올림픽을 주관하는 국제 올림픽 위원회(IOC)의 회원국이 1백 97개임을 감안하면 그 규모가 올림픽 이상이다.FIFA는 세계 축구계를 통합하면서 월드컵, 월드유스대회, 월드유스 주니어대회, 올림픽 등을 주관한다. 또 6개 대륙연맹으로 하여금 본 연맹대회의 예선과 그 밖의 독자적 대회를 개최토록 하고 있다. 유럽과 남미의 최강 프로클럽이 격돌하는 세계 클럽 유럽 선수권도 FIFA의 주관대회이다. 하지만 기능적인 면에서는 이처럼 여타 스포츠조직과 같지만 프로와 아마츄어가 공존하면서 활동한다는 점은 FIFA의 고유한 성격이라 말할 수 있다.FIFA의 중심 축은 집행위원회와 총회로 구성되어 있다. 21명으로 구성되어 있는 집행위원회는 총회 관할 사항 혹은 특정 기구들에 위임되어 있는 사안을 제외한 모든 것에 대한 결정권을 갖는다. 또 언제든지 임시총회를 소집할 수 있다. 집행위원회 밑에는 재정 조직 올림픽 심판 기술 등 14개 상임위원회가 있으며 이들은 집행위원회에 업무보고를 한다. 총회는 2년마다 열리며 정관과 규칙들을 개정하는 기능을 한다. 이 외에 상설 행정 기구인 사무국과 경기규칙을 전담수입의 2%를 비상 예비비로 한다. 이와 같은 FIFA의 기금과 대회운영을 수입의 일정 비율로 정해 놓았기 때문에 월드컵 축구대회는 항상 이익을 남길 수밖에 없다. 순이익 중 70%는 본선 참가국에 배당하며 나머지 30%는 대회 조직 위원회의 몫이다.3) 월드컵대회월드컵 대회는 총 15회가 개최되었는데, 연맹규정상 동일 대륙별 축구연맹 소속 국가에서 연속하여 대회를 개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유럽지역이 8회, 남미지역이 4회, 북중미지역에서 3회가 개최되었다. 2002년 월드컵은 사상 최초로 아시아(한국 . 일본 공동개최)에서 개최되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역대 월드컵 대회 개최 결과 >회년도개최국참가국수경기수대회기간개최도시수경기장수총관중평균관중11930우루과이13181813434,50024,13921934이탈리아16171888395,00023,23531938프랑스151816910484,00026,83341950브라질152223671,337,00060,77351954스위스13261966943,00036,26961958스웨덴*************,00024,80071962칠레16321944776,00024,25081966영국163220781,614,67750,45991970멕시코163222551,673,97552,312101974서독163825991,774,02246,685111978아르헨티나163825561,601,21542,374121982스페인24522914171,856,27735,698131986멕시코2452308122,407,43146,297141990이탈리아24523112122,517,34848,411151994미국245231993,587,53868,991자료: 2002년 월드컵 축구대회 유치위원회 "월드컵 축구 편람" (1995)* 본론 - 2002년 월드컵이 우리에게 남긴 것.1) 길거리 응원길거리 응원의 주체는 10대와 20대 젊은이들이었다. 자유로운 사고를 가로막는 냉전의 굴레와 민주화라는 시대적 부담에서 벗어난 이들은 아무런 제약 없까 이들의 의식과 행동은 외면적 격렬성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이고 배타적인 국가주의의 소산이 아니라, 소극적이고 자기 보존적인 공동체주의의 소산에 가까운 것이다. 나머지는 말 그대로 이런 자기 존재의 최소한의 거처로서의 민족사회를 발견하는 기쁨, 정체성의 불안과 혼란으로부터 해방된 환희 그리고 정말 오랜만에 마음껏 누려보는 충만한 절대긍정의 상태에 대한 안도감의 표현이다. (한계레21, 2002.07.04, 415호)즉 놀고싶다는데 우리사회는 마음놓고 놀게 해주는 판이 없었다. 나는 교내 동아리활동의 일환으로 월드컵 경기를 야외에서 상영하였다. 그 사실이 뿌듯하면서도 나도 그랬지만 그렇게 재미있게 뭔가를 즐겨본 것은 처음이었다. 누군가의 간섭도 받지 않고 즐기기면 되는 것이었다. 그 속에서 우리는 공동체를 발견하게된 것이다.2) 코리아 브랜드“한국팀의 경기는 전 아시아인으로 하여금 자랑과 자긍심을 느끼게 했다.”(6월 21일 중국 )“한국이 이룬 4강 성과는 아시아 전체의 영광이다. 이 제 한국은 아시아를 대표하는 맏형이 됐다.” (6월 22일 )“축구역사상 월드컵에서 지고도 25일 밤의 한국처럼 환호한 나라는 없었다. 그들은 ‘훌륭한 패자’였다.” (26일 영국 )한국팀의 승전보가 이어지면서 이번 월드컵은 세계에 한국을 알리는 최대의 기회가 됐다. 세계 언론은 연일 한국팀의 선전과, 수백만 `붉은 악마'들의 뜨거운 응원열기, 깔끔한 대회운영에 찬사를 보냈다. 영국 BBC방송은 “평화적이면서 열광적인 응원문화가 한국의 브랜드로 정착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한·일 월드컵으로 인한 '코리아 국가 브랜드' 인지도 상승은 앞으로 한국 경제의 성장에 지속적으로 큰 밑거름 역할을 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물론 국가브랜드 가치 상승의 효과가 구체적으로 얼마나 되는지에 대해 말하는 것은 아직 시기상조다. 실질적인 월드컵 효과는 앞으로 이번에 얻은 성과를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애초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큰 효과를 가져오리라는 데 대해서는곳에는 60인치 초대형 플라즈마디스플레이패널(PDP) 텔레비전과 차세대이동통신 단말기 등 온갖 첨단 기기를 전시해, 전문 박람회를 개최한 것 이상의 효과를 얻었다. 따라서 우리 나라의 앞선 정보기술력 홍보는 한국 제품에 대한 인지도와 신뢰도를 높이는데 큰 기여를 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번 월드컵 기간에 우리의 정보기술 수준이 과대 포장된 측면도 많았다고 지적한다. 인터넷 분야만 해도 우리 나라 초고속인터넷가입자가 1천만 명을 넘어서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인터넷 이용자 분포를 보면 아직도 경제활동에 관계없는 10∼20대 초반 비율이 비정상적으로 높다. 실제 인터넷 호스트나 웹사이트 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가운데 중·하위권으로 분류되며, 특히 전자상거래 활성화에 중요한 보안 서버 수는 인구 1만 명 당 24개인 미국이나 15개인 영국 등과 견줘 크게 낮은 0.5개에 불과하다. 또한 전문인력도 부족하다. 정부가 그 동안 막대한 예산을 들여 정보통신 인력의 증대에 힘을 쏟아왔지만 정작 산업현장에선 쓸만한 사람이 없어 질적인 인력양성 프로그램이 절실하다.4) 사회시스템의 인식전환이번 월드컵대회는 사회학적인 측면에서 볼 때 향후 우리 사회의 시스템을 재설계하는 데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국가대표팀의 조직구성에서 기존 네트워크 출신이 아닌, 가장 `마이너리티'(소수자)일 수 있는 외국인 감독을 임명해 그에게 전권을 부여했고, 감독은 선수 선발에서 그 동안 소외되어 온 선수들을 과감히 기용했다. 이전에는 왜 이러한 시도가 성공하지 못했을까? 그것은 한마디로 순혈주의가 주는 장점만을 생각했지 그 폐해는 간과했기 때문이다. 순혈주의의 가장 큰 장점은 신뢰, 즉 사회적 자본의 증대다. 우리 사회는 그 동안 사회적 자본의 부정적 측면은 간과하고 사회통합에 기여하는 긍정적 효과에만 초점을 맞춰왔다. 하지만 이제는 이 사회적 자본이 어떠한 색깔을 가진 사회적 자본이었으며, 더불어 그 동안의 사회통합이 진정한 의미의 통합이었던가에 대한 의문다.
    사회과학| 2002.07.18| 8페이지| 1,000원| 조회(8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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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씨] 달성서씨
    1. 서씨(徐氏)의 유래와 본관1) 徐(서)씨佳城(가성)서씨, 廣城(광성)서씨, 慶北(경북)서씨, 慶州(경주)서씨, 軍威(군위)서씨,金海(김해)서씨, 羅州(나주)서씨, 南陽(남양)서씨, 南原(남원)서씨, 南平(남평)서씨,達城(달성)서씨, 達川(달천)서씨, 丹陽(단양)서씨, 潭陽(담양)서씨, 唐城(당성)서씨,大邱(대구)서씨, 大田(대전)서씨, 密陽(밀양)서씨, 福興(복흥)서씨, 扶餘(부여)서씨,峯城(봉성)서씨, 瑞山(서산)서씨, 瑞原(서원)서씨, 舒川(서천)서씨, 석강(석강)서씨,水原(수원)서씨, 淳昌(순창)서씨, 安東(안동)서씨, 安城(안성)서씨, 驪州(여주)서씨,連山(연산)서씨, 延安(연안)서씨, 연천(연천)서씨, 鹽州(염주)서씨, 영성(영성)서씨,禮泉(예천)서씨, 原州(원주)서씨, 龍宮(용궁)서씨, 蔚山(울산)서씨, 宜寧(의령)서씨,義城(의성)서씨, 義州(의주)서씨, 利川(이천)서씨, 仁川(인천)서씨, 長城(장성)서씨,全州(전주)서씨, 浙江(절강)서씨, 晋州(진주)서씨, 昌寧(창녕)서씨, 천천(천천)서씨,淸州(청주)서씨, 忠州(충주)서씨, 坡州(파주)서씨, 平當(평당)서씨, 平澤(평택)서씨,咸陽(함양)서씨, 咸平(함평)서씨, 海州(해주)서씨, 黃山(황산)서씨.2) 본관은 이천(利川)·달성(達城)·장성(長城)·연산(連山)·남평(南平)·부여(扶餘)·당성(唐城)·평당(平當)·복흥(福興)·의령(宜寧)·남양(南陽)·황산(黃山)·염주(鹽州)·군위(軍威)·가성(佳城)·봉성(峰城)·용궁(龍宮) 등 20본 가까이 현존한다. 그러나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는 153본,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에는 176본이 기록되어 있다.서씨의 대종은 이천서씨이며 나머지는 모두 이천서씨에서 분파된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증보문헌비고》나 《조선씨족통보》에는 이천서씨에서 달성·장성·연산·남평·평당·부여 등이 갈린 것으로 기록되어 있고, 부여서씨의 시조는 서수손(徐秀孫)으로 되어 있으나 《만성대동보(萬姓大同譜)》에는 부여서씨의 시조가 백제 의자왕(義慈王)의 태자인 부여 융(扶餘隆)(大將軍) 서두라(徐豆羅)가 있었습니다.서씨(徐氏)라는 성은 왕이 하사했다는 기록도 전해지고 있다. 서씨사적정해(徐氏史蹟精解)에 따르면, 기준(箕準)의 후손인 만주(萬周)라는 사람이 나이 40살에 사슴의 목숨을 구해준 어느 날, 신라 문성왕(文聖王)이 그 이야기를 듣고 기특하게 느껴 왕의 눈에 들어 만주에게 서씨(徐氏)의 성을 내리고 뒤를 보살펴 줌으로 신(神)의 가호로 안일하게 되었다는 뜻에서 이름을 신일(神逸)로 고쳤다고 한다. 오늘날 이천서씨(利川徐氏)는 모두 서신일의 후손이며, 달성(達成), 장성(長城), 연산(連山), 평당(平當), 남평(南平), 남양(南陽) 등 7파의 서씨가 나뉘었고, 모두 서신일(徐神逸)의 후손이라고 한다.서씨의 대부분은 이천 서씨이고, 역사상 빼어난 인물을 많이 배출한 집안은 대구 서씨이다.삼대 정승에 삼대 대제학을 지낸 집으로 대구 서씨를 비롯하여 청송 심씨, 청풍 김씨가 있을 따름으로 그 중에서도 6대에 걸쳐 삼정승 삼대제학을 낸 집안은 대구 서씨 뿐이다.1985년 인구 및 주택 센서스에서, 144,335가구에 611,206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씨는 옛 문헌에 165개의 본관이 있었으나 10개의 본관 이외에는 시조 및 유래를 알 수가 없어 아쉬움을 남긴다.2. 達城(달성)서씨의 기원1) 달성(達城)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1 고대- 변한 때는 탁순국.757년(신라 경덕왕 16), 수창군, 하빈현, 화원현, 현효현, 해안현으로 개명.2 고려- 940년(태조 23), 수창군은 수성군으로, 현효현은 현풍현으로 개명.1143년(인종 21), 대구현에 현령을 파견하고 하빈현을 영속시킴.3 조선- 1414년(태종 14), 수성과 해안현이 대구현에 영속.1419년(세종 1), 대구현을 군으로 승격.4 근대- 1896년, 경상북도 대구군과 현풍군으로 편제.1914년, 대구부 승격, 달성군 설치.현재, 대구광역시 달성군 지역.2) 達城(달성)서씨의 기원달성서씨(達城徐氏)는 이천서씨(利川徐氏)에서 분관(分貫)되었다고는 하지만 그 내력달성 서씨(達城徐氏)는 시조(始祖) 서진(徐晋)이 고려조(高麗朝)에서 봉익대부(奉翊大夫)로 판도판서(版圖判書)를 지냈고, 그의 아들 기준(奇俊)과 손자 영(穎)에 이르기까지 3대(代)가 달성군(達城君)에 봉해졌다. 그리하여 후손들이 달성(達城)에 세거(世居)하며 관향(貫鄕)을 달성으로 하게 되었으며, 후대로 내려와 현감공파(縣監公派 : 濟)·학유공파(學諭公派 : 渡)·판서공파(判書公派 : 涉)·감찰공파(監察公派 : 近中)·진사공파(進士公派 : 錫蓮)·생원공파(生員公派 : 錫蓂)·진사공파(進士公派 : 錫笭)·참판공파(參判公派 : 宗一)·종사랑공파(從仕郞公派 : 震) 등 9파로 갈라져서 세계(世系)를 이어왔다.4) 가문을 빛낸 대표적인 인물(人物)달성서씨는 조선시대에 상신 9명, 대제학 6명, 왕비 1명을 배출했는데, 이것은 고려시대에 이천서씨가 많은 인물을 낸 것과는 반대로 조선시대에 달성서씨에서 많은 명신과 학자가 나왔음을 의미한다.시조의 증손(曾孫) 균형(鈞衡)이 1360년(공민왕 9)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간관(諫官)으로 있으면서 신 돈의, 방탕한 횡포를 탄핵하는 직언(直言)을 서슴지 않았고 잦은 왜구의 침입에 대비한 군의 중요성을 역설하였으며 그의 아들 침은 정몽주(鄭夢周)의 문하(門下)에서 학문(學問)을 연마하여 조선(朝鮮)이 개국(開國)한 후 조봉대부(朝奉大夫)로 전의소감(典醫少監)을 지냈다.침의 아들 3형제 중 장남 문한(文翰)은 승사랑(承仕郞)으로 광흥창 부승 (廣興倉副丞)을 거쳐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현감(縣監)을 지냈으며, 차남 문간(文幹)은 중시(重詩)에 올라 역시 현감을 역임했고, 막내 문덕(文德)은 숙부(叔父)인 송화 부사(松禾府使)에게 출계(出系)하여 이조 정랑(吏曹正郞)과 만경 현감(萬頃縣監)을 지냈다.대사간 충(衷)의 증손 한정(翰廷 : 진사 균의 아들)은 세종(世宗) 때 진사(進士)로 태학(太學)에서 학문(學問)을 연구하였고, 1455년(세조 1) 수양대군(首陽大君)이 단종(端宗)을 몰아내고 왕위(王位)를 찬탈하자 이를 개탄하여절하였다. 그후 그의 충절(忠節)을 기려 사림(士林)에서 충의(忠義)라 사시(私諡)하였고, 1980년 8월 14일 대한민국건국포장(大韓民國建國褒章)이 수여되었다. 근대에 와서는 죽림(竹林) 재승(在承)의 장손(長孫) 병극(丙極)이 전국 사림의 공의(公議)에 의하여 사업비(事業費) 일체를 전담하여 경북 영풍군 단산면 사천리(慶北榮豊郡丹山面沙川里)에 백산서원(白山書院)을 건립하여 전사 청(典祀廳)을 비롯한 부속건물을 세우고 경내(境內)의 조경(造景)과 진입로 공사를 완료하여 선조(先祖)의 위패를 봉안하였다달성서씨의 대표적 인물은 세종에서 성종에 이르는 6대 왕조에서 6조(六曹)의 판서와 대제학 등을 역임하고 학자로도 유명한 거정(居正)이다. 그의 종현손인 약봉(藥峰)은 선조 때 5도의 관찰사와 호조·형조·공조 판서 등을 역임했으며, 서인(西人)이 주동한 인조반정(仁祖反正)을 고비로 약봉의 일가는 전성기를 맞았다. 약봉의 네 아들 경우(景雨)·경수(景需)·경빈(景)·경주(景) 중에서 경우는 우의정에 오르고, 경주는 선조의 부마가 되었다. 4형제 중에서도 둘째 경수와 넷째 경주의 집이 특히 번창하여 경수의 현손 종제(宗悌)의 딸이 영조비가 되고, 종제의 현손 용보(龍輔)가 영의정이 되었으며, 경주의 집에서 영의정 6명과 좌의정 1명, 대제학 5명이 나왔다. 특히 종태(宗泰)·명균(命均)·지수(志修)의 3대 상신(三代相臣)과 유신(有臣)·영보(榮輔)·기순(箕淳)의 3대대제학(三代大提學)이 유명하고, 또 명응(命膺:大提學)·호수(浩修:直提學)·유구(有:吏判)의 3대는 다같이 문명이 높았다. 달성서씨의 세칭 '약봉집'은 선조에서 고종에 이르는 약 300년간 정계를 주름잡았으며, 숙종 때 서씨로서 참판급(參判級) 이상이 30여 명이나 되었으니 그 번창한 정도를 능히 알 수 있다. 그런데 달성서씨는 서울에 올라와 벼슬을 지낸 경파(京派)와 고향에 남아 벼슬과는 인연 없이 지내온 향파(鄕派)로 크게 갈라진다. 두 파는 다같이 한을 시조로 하고 있지만, 경파는 한의 6대손인 익진 것이다.사랑채 제일 왼쪽에는 빈소방이 있는데 대부분의 사대부 집에서 사당을 따로 만들었던 것을 생각하면 사당이 있다가 없어진 것 같다. 툇마루에 앉으면 앞의 넓은 들과 문수산이 멀리 보이고 뜰에는 목련 등을 심어 은은히 감상할 수 있게 하였다.서씨고가는 안채와 사랑채를 철저히 분리하고 있는데,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오른쪽으로는 사랑채로 통하는 중문이 따로 있고 곧바로 가면 안채로 통하는 문이 있다.마당도 안마당과 바깥마당이 따로 있어 남녀 간 생활공간을 철저히 분리하고 있다. 또 집밖 대문 앞에는 사각형 연못 한 복판에 둥근 섬을 만들고 나무를 심어 도교적인 색채를 농후하게 보여 준다. 연못을 집밖에 만들어 색다른 공간 느낌을 주고 있는 것은 다른 고가와는 상이한 점이다(풍수상 집안에 우물을 파면 화재가 자주 일어난다하여 집밖에 연못을 만들었다 한다).그 외 특징으로 집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담은 두께가 두껍고 견고해 아직까지 원형을 유지하고 있으며 특히 담 위에는 이끼가 낀 기와가 그대로 얹혀 있다. 또 대문이 서쪽으로 나 있는 것도 특징이다. 20세기초에 나온 풍수서를 보면 민택삼요(民宅三要)라 해서 안방, 대문, 부엌의 방향과 위치는 서로 상관관계가 있고 매우 중요한 것으로 여겨 집주인의 사주팔자를 봐서 그 방향을 정했다고 한다.재미있는 것은 안채 뒤뜰 중간에 담을 쌓아 장독대를 부엌쪽이 아닌 반대쪽에 설치해 놓은 것이다. 이는 살림을 사는 종들이 함부로 된장이나 간장을 퍼가지 못하도록 하고, 장독 출입 때에 반드시 주인의 눈에 띄는 안마당을 거쳐가도록 하였다. 마치 행랑채를 안방에서 잘 보이는 곳에 배치해 감시의 눈길을 멈추지 않았던 것과 같다.현재 서씨고가는 지은 지 2백년 이상 돼 곳곳이 허물어져 가고 있다.울산지역에 과거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고가가 제대로 보존되고 있지 않은 것을 생각하면 시급히 문화재로 지정해 보존 관리해야 변형과 파손을 막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3. 達城(달성)서씨와 관련된 이야기{1) 달성공원삼한 시대에 부족국가였던 달구
    인문/어학| 2002.06.11| 9페이지| 1,000원| 조회(2,6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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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성다향제 평가A좋아요
    자연환경을 최대한 이용해서 관광지를 개발하는 "보성"Ⅰ.서론 - 보성의 일반적 현황과 지역축제Ⅱ.본론 - 보성 다향제1) 다향제의 배경2) 다향제 프로그램3) 다향제가 갖는 의미Ⅲ.결론 - 진정한 지역축제로서의 장(場) 보성Ⅰ.서론 - 보성의 일반적 현황과 지역축제2002년 5월 5일부터 12일까지 보성에서는 일림산, 체육공원, 다원, 대원사를 일대로 보성군을 주최로 하여 제28회 『보성다향제』가 있었다. 우리는 화창한 토요일(5월 11일) 대한 다원에서 열린 차문화 행사에 참여하였다. 푸른 양탄자 위를 거닐면서 녹차재배를 하기에 알맞은 자연환경을 갖은 보성이 부러웠다. 이러한 자연환경을 이용하여 관광을 개발하고 환경을 보존하면서 수익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다면 좋을 듯 싶다.{(1)보성군의 역사보성군의 역사를 삼국시대에 거슬러 올라가면 마한지역에 속해 있었으나, 백제의 근초고왕때 백제에 병합되어 군의 명칭을 '복홀(伏忽)' 이라 불렀다.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러 경덕왕 16년(757년), 군현의 명칭을 모두 중국식으로 개정하면서, 처음으로 '보성군'이라 부르게 되었다.{1973년 7월 1일 본군 문덕면 한천리가 승주군 송도면에 편입된 대신 1983년 2월 15일 고흥군 동강면 장도리와 그 해역이 벌교읍에 편입되었다.1984년에 기공하고 1991년에 완공된 주암 다목적댐 공사로 인해, 본군 문덕면의 8개리, 복내면이 7개리, 율어면의 2개리 일부 지역들이 물속에 잠기게 되었으며, 1998년 현재의 행정구역은 면적 663.14(㎢)로서 2읍, 10면, 126개의 법정리(행정리 314)와 593개소의 자연부락으로 이루어져 있다.2001년 12월말 인구수는 59,526명(22,826세대)과 외국인 109명으로 2000년 12월말 대비 1,897명 감소했고 보성군의 인구는 84년 이후로 계속적으로 줄어드는 추세이다.(2)보성군의 지역축제보성은 산, 바다, 호수가 어울어진 지역이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녹차 밭과 율포 바닷가를 중심으로 해서 국내에서 유일하게 지하 제 를 통해 우리 국악의 저변확대에 많은 공헌을 하고 있다. 현재 중요무형문화재 5호 판소리 심청가 인간문화재인 조상현 명창은 보성소리의 정교한 애절함을 대중화시킨 분이다. 근대 판소리 유파로 인정된 보성소리를 완성한 송계 정응민 명창은 백부인 정재근 명창과 함께 운현궁과 어전을 무대로 활동하며 중고제의 거두 이동백 명창에게 기초를 다지면서 서편제의 비조인 박유전 명창이 창제한 강산제 수련을 거듭하였고 훗날 동편제 김세종판의 춘향가를 더하여 보성소리를 완성했다. 이러한 역사를 바탕으로 근대 판소리 성지인 보성의 위상을 국내외에 선양하고 판소리 문화의 계승 발전과 문화의 저변 확대를 위해 민중의 소리문화인 서편제 보성소리 축제를 98년 1회로 개최하게 되었다.Ⅱ.본론 : 보성 다향제(1) 다향제의 배경전라남도 보성군 보성읍 봉산리, 회천면 영천리 일대에는 연간 200여 톤의 차가 생산되는전국 최대의 다원이 형성되어 있다. 동국여지승람과 세종실록지리지 등의 기록에 의하면 보성은 옛 부터 차나무가 자생하고 있어 녹차를 만들어 왔고, 지금도 문덕면 대원사, 벌교 징광사지 주변에는 야생 차나무가 자라고 있다. 또한 득량면 송곡리에는 마을 이름이 다전(茶田)으로 불리우고 있어 옛 기록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보성다원의 시초는 일제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39년에 일본인 차 전문가들이 우리나라 최적의 홍차재배지로 선정된 보성에 인도산 차종자를 수입하여 재배하기 시작하였다. 지금의 보성다원이조성된 것은 1939년 활성산 자락에 30ha의 차밭 조성을 시작으로 한때는 590ha를 조성 재배했으나, 현재는 국내 녹차생산량의 약28% 정도인 425ha를 재배 관리하고 있다.보성 다향제의 주최는 보성군이며 주관은 다향제 추진위원회 그리고 문화관광부, 농림부, 전라남도 대한산악연맹에서 후원을 하고 있다.우리는 다향제에 참여하면서 다향제를 주관하시는 공무원에게 다향제의 취지에 관해 인터뷰를 하였다.우리 지역 군민이 6만인데 타지역 주민이 보성에 20만 정도가 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2 국내 녹차의 실적현황에서 본 우리의 방향국내 녹차 재배면적은 1999년에 1,431ha로서 이중 경남은 27.9%인 399ha였다. 최근 건강식품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다. 국내 녹차재배지역은 전남이 높은 비중을 차지하며 특히 보성군이 차시험장의 설립과 함께 국내 주요주산지임에는 틀림없다. 전국 차 생산량을 살펴보면 1999년 1,109톤으로서 경남의 생산량은 전국의 9.3% 정도이다. 세계의 차 최대 생산국은 인도와 중국으로 인도와 경우 2000년 1,471천톤 정도의 차가 생산되었다.현재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녹차는 약 1,000톤 정도인데 2001년 인구 4,800만명이 국민 1인당 80g의 녹차를 소비한다고 가정했을 때 한해 녹차 소비량은 3,840톤이 소요된다. 앞으로 재배기술의 향상된다고 하더라도 국내 생산량은 2,200톤에 불과 하므로 1,640톤이 외국으로부터 수입되어야 할 실정으로 녹차 재배면적의 확대가 요구되지만, 재배면적의 확대 및 수입자유화에 따른 녹차의 다량 수입시 피해도 생각해야하는 시점이다.우리나라의 녹차현황을 보아서도 알 수 있듯이 점점 늘어나는 녹차의 소비량과 그에 비해 부족한 녹차의 생산량을 우리나라의 농업생산 방법 면에서 접근해야 할 것이다. 모자란 인력난과 기계화된 농업정책을 구축하는 정부의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2) 다향제의 프로그램1 알림산 철쭉제·주관 : 대한산악연맹 전남지부, 다향 산악회·장소 : 일림산·주요행사 : 철쭉제례, 꽃사랑 사진촬영대회, 가족·향우등반대회2 군민 한마음 잔치·89년 제4회 다향제부터 군민의 날 행사와 병행하고 있다.·장소 : 공설운동장, 실내체육관·주요행사 : 전야제, 시가행진, 성화봉송, 기념식, 민속시연, 체육행사, 열린음악회3 차 문화 행사※우리는 주로 차문화 행사에 참여하였다.·주관 : 보성차문화회·장소 : 다원, 체육공원, 대원사·주요행사 : 다신제, 차잎따기 경연대회, 차아가씨 선발대회, 차만들기 경연대회, 들차 회표현, 학 보성에는 예전에 잠깐 지나간 적은 있었는데 행사에 참여하는 것은 처음이었 거든요..... 버스에서 내려 다원으로 들어가 자연이라는 냄새가 나는 곳에서의 첫 느 낌...물론 축제여서 사람들 때문에 한적하게 구경할 순 없었지만 그래도 도시를 떠 나 있다는 그 자체가 너무 좋았어요.....◎연주: 네... 저두요... 레포트 때문에 온 관광이지만 좋은 구경한 것 같아서 정말 다음에는 순수한 관광차원에서 왔으면 하는 바램이 있어요... 그런데 차잎따기 행사가 아침 일찍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관람할 수 없어서 좀 아쉬웠던 것 같아요....◎다운: 맞아......우리도 서둘러서 간다고 갔는데도 우리가 갔을 땐 거의 끝날 무렵이었잖 아.....같이 하고 싶었는데.....◎연주: 네... 저도 너무 하고 싶었어요.....◎다운: 그리고 차잎따기 행사장을 찾아가는데 안내 표시가 없어서 불편했던 것 같아...◎지혜: 맞아요.... 안내 표지판이 좀더 자세하고 많이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어 요.... 그리고 아직까지는 보성 다향제가 전국적인 행사가 아닌 지역주민들만의 참 여로 이루어져서 앞으로 다행제가 군민 잔치가 아닌 전국적인 행사로 자리잡기 위 한 노력이 필요할 것 같은데......우리는 차밭을 뒤로하고 한·중·일 3국 차문화 교류대회 행사가 있는 대원사로 향했다.대원사에 간략하게 소개하면 전라남도 보성군 문덕면 죽산리 천봉산(天鳳山)에 있는 사찰이고 종파는 대한불교조계종, 창건시기는 503년(무령왕 3)인 역사가 1500년이나 된 유명한 사찰이다. 우리는 행사 전에 도착하여 티벳 박물관을 관람할 수 있었다. 티벳 박물관은 1층에 티벳불교의 지도자 달라이 라마 기념실이 있다. 달라이 라마 기념동상과 강연자료 사진집, 비디오 등 티벳불교 자료들과 오래된 탕카, 보석으로 쓴 불경, 사물함, 밀교 법구 등 격조 높은 티벳 예술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2층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직계 후손인 석가족의 장인들이 만든 불상을 모신 법당이 있고, 천수관음상과 6년 고행상이하고 있다. 기차여행에 참여 할 수는 없었지만 기차로 보성의 여러 관광지를 여행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도 꾸준히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3) 다향제가 갖는 의미지역관광업계와의 효과적인 연계를 통한 경제 파급효과 확산 축제의 수입문제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축제조직자에게는 모든 축제관람객이 축제장소 내에서 쓴 총지출로 인한 수입이 중요한 재정적 지표이며, 관광의 관점에서는 개최 지역을 방문한 축제관광객의 음식, 숙박, 쇼핑으로 지출한 관광지출이 축제수입보다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다시 말해서 축제에서 쓴 지출과 여행중이나 축제개최지역내에서 쓴 지출에는 서로 다른 의미가 있다. 관광 지출은 축제지출과 달리 새롭게 여겨질 수 있으며 또한 그 소득효과가 증가되는 것이라고도 이야기할 수 있다. 이것은 주로 지역의 관광업체들이 얻은 파생 소득으로 볼 수 있다. 축제관광객이 호텔, 기념품점, 식당 등에서 쓴 관광지출과 축제개최장소 내(內)에서 쓴 지출을 비교하면 둘 다 지역경제에 중요한 자원이 될 수 있지만 관광지출이 축제장소내의 지출보다는 훨씬 높은 경제 효과를 창출한다. 그러므로 지역축제를 기획함에 있어 축제프로그램 자체에만 치우치지 않는 지역의 관광자원 또는 음식점 및 숙박업체 등과의 효율적인 연계가 매우 중요하다. 〔표1 참조〕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보성의 관광객 수 증가는 보성의 관광수입의 증가와 일치함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일차적인(순수 관광에서 얻어지는)수익이 아니라 부차적인 수익과도 관련이 있음을 의미한다.Ⅲ. 결 론-진정한 지역축제로서의 장(場) 보성(1) 지역축제로서의 바람직한 방향축제에는 축제를 통합할 수 있는 정신적 지주개념이 있어야 하고 축제의 상징과 이미지를 드러낼 수 있는 축제의 주요 테마(theme)가 설정되어야 한다. 특히 다양한 프로그램의 나열 이전에 집중적으로 지역 축제를 상징하고 이미지화 할 수 있는 주제가 무엇인가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처음에는 잔치로 시작하여 차츰 축제로 키워 나가는
    인문/어학| 2002.06.11| 7페이지| 1,000원| 조회(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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