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문가 요청 쿠폰 이벤트
*영*
Bronze개인
팔로워0 팔로우
소개
등록된 소개글이 없습니다.
전문분야 등록된 전문분야가 없습니다.
판매자 정보
학교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직장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자격증
  •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판매지수
전체자료 10
검색어 입력폼
  • [건축] 생태건축에 관해
    - 목 차 -Ⅰ. 서 론--------------------------------1Ⅱ. 생태학적 고찰-------------------------21. 생태학의 개념과 한계--------------------------------22. 생태건축의 형태적 특성-------------------------------23. 생태계와 환경오염-----------------------------------2Ⅲ. 건축활동과 환경문제의 관련성-------------21. 지구의 환경문제-------------------------------------22. 건축활동과 환경문제의 상관관계------------------------33. 우리나라 도시의 환경친화성 평가-----------------------5Ⅳ. 생태계를 배려한 환경형성----------------51. 물의 활용------------------------------------------52. 흙의 육성------------------------------------------63. 수목의 창출----------------------------------------64. 동식물의 육성---------------------------------------7Ⅴ. 환경친화적 건축------------------------81. 환경친화적 건축의 개념과 목표-------------------------82. 재생가능 에너지의 효과적 이용기술---------------------93. 생태건축의 실례-------------------------------------9Ⅵ. 결 론-------------------------------14※ 참고문헌--------------------------15{Ⅰ. 서 론20세기는 도시화의 시대라고도 하는 것처럼 세계 각국에서 도시화가 급진전되고 있다. 1920년에 는 세계인구 중 3억 9천만명이 도시에 거주하고 있었던 것에 비해 1985년에는 19억 8천만명의 인구가 도시에 거주전히 약탈하여 스스로 멸망하는 것을 방지 하는 유일한 대안으로 인식되고 있다.환경오염과 관련하여 현재의 지구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이라는 명백히 구분되는 2개의 인간세계로 나 누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개발도상국(세계인구의 70%)에 있어서는 이용 가능한 식량과 자원의 부족이 해결해야 최우선 문제로 인간과 동물의 배설물에 의한 만성적인 오염과 질병이 야기되고 있다. 반면에 부유한 선진국에서는 농공업에 의한 화학적 오염이 유기물에 의한 오염보다 훨씬 심각한 실정으로 특히 선진국에 의해 주로 야기되는 공기와 물의 범지구적 오염은 지구상의 모든 인간을 위협하는 요소가 되 고 있다.Ⅲ. 건축활동과 환경 문제의 관련성1. 지구의 환경문제환경오염에 의해 야기되는 지구의 환경문제는 크게 지역환경 문제와 지구환경 문제로 대별할 수 있다. 전자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백히 드러나고 비교적 소규모 지역에 그 문제가 한정되는데 일반적으로 공 해라 불리는 문제가 이에 해당한다. 후자는 복수의 국가나 지구전체에 파급되는 문제로 가해자와 피해 자를 구체적으로 밝히기 어려우며 대부분 가해자가 동시에 피해자가 되는 구조를 지니고 있다.한편 지구환경 문제는 선진국의 끊임없는 욕구의 확대와 개발도상국의 인구폭발이 주 요인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지구환경 문제에 대해서는 지역환경 문제와는 달리 근본적인 원인을 규명하는 작업이 용이 하지 않으며 이를 해소하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도 현재는 마땅히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장기적인 관점에 서 그 해결을 위한 연구가 진행될 필요가 있다.지구환경 문제는 단일 국가 또는 특정지역에 국한된 개념이 아니라 복수의 국가나 지구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환경문제이다. 따라서 국가별로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문제도 있을 수 있으며 또한 시대와 함 께 문제의 종류도 변화되고 있다.이러한 각종 지구환경 문제 가운데 오존층의 파괴에 대해서는 이미 원인물질의 소비억제를 위한 국제합 의가 이루어져 구체적인 조치가 실시되는 단계에 이르렀다. 또한 산성비 문제에 대해서는 그 원인물질인 따라서는 풍 부한 지하수를 보유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러한 심층지하수는 수천년전의 빗물이 고여서 생성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우물 등을 통해 급속하게 지하수를 배출하면 지하수위가 낮아지고 수자원 이 고갈되어 주변지역의 생태계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러한 상황을 배경으로 지속적으로 사 용 가능한 수자원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대표적인 예가 지하댐이다. 지하댐은 매년 일정 시기에 집중되어 내리는 빗물을 지하에 저수하고 필요시 펌프로 물을 끌어 올려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다. 또 다른 수자원으로는 배수의 재이용을 들 수 있는데 사막화 지역에 있는 비교적 여유있는 도시에서는 하수도가 완비되어 있기 때문에 이를 고도처리하여 시가지의 녹화용수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이와 같이 사막화와 건축활동은 직접적인 인과관계는 없지만 건축활동을 위해 개발된 기술이 사막화 의 방지 또는 사막화지역의 수자원 고도이용에 활용될 수 있는 여지가 많다는 점에서 그 관련성을 찾 을 수 있다.6) 기타 지구환경 문제와 건축활동해양오염에 관해서는 육상의 폐기물이 주요 원인이라 할 수 있으며 대도시주변에서 배출되는 생활하 수가 해양오염의 주범이 되고 있는데 이것은 하수도의 완비와 배수처리의 고도화를 통해 대폭적인 환 경개선이 가능한 부분이다. 배수처리의 고도화에 대해서는 이미 전세계적으로 20년이상의 연구가 이 루어져 자연하천과 동등한 수준의 처리기술이 이미 선보이고 있다.야생생물종의 감소에 대해서는 건축활동의 경우 대규모 토목공사와 관련이 깊다. 최근에는 대규모 토목공사에서 환경영향평가를 통해 어느정도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이 진행되고 있지만 현재의 환경 영향평가는 이러한 야생생물종의 보전을 위한 적극적인 노력으로 볼 수 없다. 따라서 대규모 토목공 사에서는 동물의 이동용 통로나 야조류의 서식을 위한 서식처의 보존 등에 대한 적극적인 노력이 이 루어져야 할 것이다.나아가 개발도상국의 환경문제는 최근의 급속한 경제발전 과정에서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는데 아직 환경문제에 대한 인식이 있다.2) 자연지형의 보전주택지의 조성에서 무리한 평할지의 조성이나 다량의 절토 또는 성토를 피하고 적극적으로 기존의 자연지형내에 주택지를 계획함으로써 정비후의 주택에 대한 영향을 줄이고 자연재해를 방지함과 동시 에 생활환경에 대해 다양한 쾌적성을 주민에게 제공하게 된다.3. 수목의 창출1) 대기의 정화수목이 지닌 대기정화 기능에 관한 근거는 호흡작용에 의해 방출되는 CO2에 비해 훨씬 많은 양의 CO2를 흡수하고 이를 동화시킨다는 점이다. 나아가 수목은 SO2의 흡착에 대해서도 효과가 높다. 또 한 綠被率과 호흡기 계통의 질환에 의한 사망율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도 보고되고 있기 때문에 대기의 정화에 있어 수목은 절대 부족해서는 안되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2) 미기후의 완화수목은 스스로의 蒸發散에 의해 기온을 강하시킨다. 여름철에 공원이나 가로수 아래쪽은 다른 지역 에 비해 3-10℃ 정도의 온도차이를 보인다고 한다. 따라서 수목이 울창한 주택지는 천연의 에어컨을 지닌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에너지절약에 도움을 줌과 동시에 수목을 통해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이 주민에게 심리적인 효과를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3) 방 풍일반적으로 수목과 방풍에 대해서는 겨울철의 계절풍으로부터 주거를 지켜주는 방풍림이 잘 알려져 있다. 수목의 방풍효과는 식물의 높이와 관계가 있으며 감속량은 식재밀도와 깊은 관련이 있다.4) 소음의 경감수림에 의한 소음의 감소효과는 흡음에 의한 경감, 거리에 의한 경감, 차단물에 의한 경감 등의 효용 이 있다. 또한 수목의 밀도나 지형, 기상조건, 음원의 종류 등 다양한 요인과의 관련에 의해 그 효과 의 정도가 차이를 나타낸다. 가장 관계가 깊은 것이 수목의 밀도인데 조밀한 상태에서는 약 2배의 차 음효과가 나타난다고 한다. 다만 일반적으로는 잎사귀의 양이 많은 수목이 입체적으로 밀식되어 있을 경우에만 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따라서 환경공생주택에서는 물리적인 소음경감을 기대하기보다 는 소음원과 피해자 사이에 존재하는 차단벽의 설정에 따족시키기 위해서는 집열면적과 저 탕량을 모두 크게 한다. 보조열원과 태양열이용이 적절하게 균형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2 자연순환형이나 수도직결형은 주택이나 住棟내의 급수위치에 따라 급탕압력이 부족한 경우도 있 다.3 겨울철의 동결방지를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4 태양열의 집열을 위해서는 넓은 집열기를 지붕면에 부착하는 등 주변기기를 포함하여 주택의 외 관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주변의 주환경에 위화감을 주지 않도록 하는 배려가 필요하다.2) 태양광 발전시스템(1) 시스템태양전지의 發電原理는 반도체의 光電效果를 이용한 것이다. 따라서 태양전지를 이용한 태양광 발 전은 태양에너지를 직접 전기로 변환하기 때문에 가동부분이 없고 보수도 비교적 용이하다. 또한 규모에 관계없이 일정한 발전효율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설치개소에 따라 모듈화된 배치가 가능하 다.주택에 대한 적용은 주택의 지붕 등에 설치한 태양전지를 주호 및 주동내의 일반 조명이나 동력용 으로 이용하는 방법과 개개 기기에 태양전지를 전원으로 셋팅하여 이용하는 방법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태양전지 환기시스템은 지붕일체형 태양전지나 지붕면에 부착한 태양전지에 의해 발전을 행하고, 직접 환기장치를 운전시키는 시스템이다. 이를 이용하여 고기밀, 고단열주택의 환기, 통풍의 확보, 집합주택의 공용환기시스템(풍도) 등에서 이용이 계획되고 있다.(2) 계획시 유의할 점태양광 발전은 환경에 미치는 직접적인 부하가 0이라는 사실과 연료가 필요없다는 점, 가동부분이 없기 때문에 소음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 운반이나 시공이 용이하다는 점, 유지관리가 간단하다는 점 등 매우 우수한 이점을 지닌 반면, 현 단계에서는 kW당 200만엔정도로 가격이 매우 높다는 점 이 보급의 가장 큰 장애요인으로 작용한다.앞으로 변환효율의 향상이나 새로운 소재의 개발 등으로 저렴화가 진행될 것으로 보이지만 현 단 계에서는 일부 모델주택을 제외하고 집합주택의 일부 공용전원이나 공원, 광장의 분수나 모뉴먼트 에 대한 이용, 환기동력 등 주호내의 일부 보조.
    공학/기술| 2001.12.15| 16페이지| 1,000원| 조회(538)
    미리보기
  • [답사] 부석사답사 평가A좋아요
    {부석사(浮石寺) 발표 자료 및 답사 보고서-------------------------------------------------------------------------------------개요Ⅰ서론1.조사대상 선정 --------------------------------------------------- 22.조사 목표 ------------------------------------------------------- 2Ⅱ본론1.창건과 중창 ----------------------------------------------------- 21)신라시대 ------------------------------------------------------ 2(1)초창(2)신라하대의 중창2)고려이후의 부석사 ----------------------------------------------- 42.부석사의 불교사적 위치 -------------------------------------------- 51)신라 화엄종의 종찰2)부석사와 아미타 신앙3.가람의 입지 ----------------------------------------------------- 54.가람 ----------------------------------------------------------- 61)신앙적 배경 ---------------------------------------------------- 62)석단 ---------------------------------------------------------- 73)축 ------------------------------------------------------------ 8(1)일반적 해석 --------------------------------------------------- 8(2)두개의 안대 --------------------------------------------------- 8(3)무량수전의 축과 아미타부석산에서 의상은 강경에 주력하고 화엄관을 닦는 청빈한 수행자였다. 특히 그가 제자들을 거느리고 소백산이나 태백산 등지에 초가를 짓고 강경을 하거나 토굴에서 화엄관을 닦았다는 기록을 통해서 부석사가 오늘날과 같은 대가람을 이루었다는 부분에 의문이 남는다. 또한 그의 제자들이 하나같이 소외 계층의 인물들이었던 것도 이런 생각을 뒷받침해 준다.3창건설화부석사의 창건과 관련된 선묘설화 는 석의상전 에 유일하게 실려 있다. 설화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의상대사가 당(唐)에서 알게 된 선묘가 의상이 귀국하는 길에 바다에 몸을 던져 용이 되어 의상을 보호·인도하였다. 의상이 자신의 교학을 펼치기에 적합한 곳이라 여긴 곳에 이미 다른 종파의 무리들이 부석사 창건을 방해하자, 이때 선묘가 용으로 변신하여 나타나 공중에서 거대한 바위를 떨어뜨렸고, 이를 본 기존의 무리들이 항복하여 부석사의 창건이 이루어진다.{▲ 그림 이름의 기원이 된 斧石(부석)지금도 무량수전 서측에 浮石 이라 새겨진 바위가 있고, 그 앞 뜰에는 석룡(石龍)이 묻혀 있다고 하며, 또 선묘의 위패를 모신 선묘각이 무량수전의 동북측에 있다.이상의 내용을 종합해 볼 때 의상 당시 부석사 아주 청빈한 형태의 사찰이었을 것이다.(2)신라 하대의 중창의상의 법손인 신림 이후 부석사는 인적·물적 측면에서 변화했다. 신림은 많은 인재를 길러내며면서 부석사의 화엄종을 크게 중흥시켰고 규모면에서도 크게 변모하여 현재 부석사의 기본 구조라고 할 수 있는 대석단과 석등, 석룡, 장대석, 석탑 등이 경문왕 무렵에 건립되었다. 대규모의 사찰 건립이 가능했던 것은 신림이 배출한 수많은 화엄대덕들이 국가로부터 상당한 물질적인 자원을 받았기 때문이라 생각된다.화엄종의 본찰인 부석사는 신라 하대에는 대석단 위에 세워진 거대한 가람으로 많은 대중들이 생활하는 곳으로 변하였고 승려가 되기 위해 처음 출가하는 곳으로 유명해졌다.2)고려 이후의 부석사(1)고려시대지금 부석사에 전해지는 화엄경판은 고려시대 이곳의 주지인 원융 대덕(圓融大德, 964산에서 다시 서남쪽으로 뻗은 줄기에서 위치한다. 동쪽으로는 문수산, 남쪽으로는 학가산의 맥이 휘어들고 서쪽으로 소백산맥이 휘어돌아 거대한 울타리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 위치하였다. 이는 풍수지리상으로도 뛰어난 길지(吉地)에 속한다.부석사가 들어선 터는 그리 넓은 편이 아니다. 게다가 구릉지에 위치하고 있어 경사가 심하다. 그러나 부석사에 들어서면 협소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오솔길을 따라 절을 들어서면 높직한 석축단에 의하여 구분된 터에 드문드문 건물이 배치되어 있어 뒤돌아볼 여유를 가질 수 있고 내려가는 길에는 건물 지붕 위로 보이는 전면이 조망이 시원스럽게 펼쳐지기 때문이다.부석사가 이곳에 자리잡은 것은 소백 연봉의 장관을 바라볼 수 있는 경승지이거나 조용한 수도처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예로부터 지리적·군사적 요충지로 신라 변경 관문에 해당되는 죽령을 경영하려는 의도도 있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봉황산 옆 마아령을 넘으면 충청도 영춘 땅에 이를 수도 있었다.선묘 설화의 내용도 당시의 정치적 상황에 근거한 것이라 한다.{) 빛깔있는 책 부석사 51p삼국 통일 당시 정부에 반대하는 세력이 운집한 죽령을 확보하기 위하여 왕이(선묘설화의 용) 의상을 도와 다른 무리들을 몰아내고 통일신라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화엄종의 중심 사찰을 이 곳에 건립한 사실을 말하는 것이라는 것이다.그 동기가 어디에 있든 부석사의 입지 조건은 완벽하다 할 수 있고, 그 터를 고른 의상 조사도 뛰어난 안목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도면2 부석사배치도4. 가람부석사는 전형적인 고려시대의 산지가람이다. 산지나 구릉에 지어진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찰과 마찬가지로 중심축을 따라 입구에서 안으로 들어갈수록 공간의 위계(位階)가 높아지도록 배치되어 있다. 자연석으로 정교하게 쌓은 석축단이 여러 단으로 지형을 따라 높아졌고 제일 높은 석단 위에 본전인 무량수전이 놓이게 된다. 기승전결의 구성이라 말할 수 있는데 사찰 입구에서 천왕문까지의 도입공간이 기(起)라면 대석단 위 범종각까지가 전개해 를 따라가다 돌출되어 있는 작은 봉우리이다.그렇다면 왜 하필 두 개의 안대를 가져야 하는가? 교리적인 차원에서 무량수전과 그 안대(안산)로 이루어지는 관계는 미타정토를 상징하며, 나머지 축과 도솔봉과의 관계는 미륵정토를 상징한다고 설명하고 있다.3두개의 절-입체적인 중첩{▲ 법당 자리로 추측되는 잔디밭가. 법당의 존재에 대한 기록1849년 발간된 에는 안양루 아래에 법당이 있었다고 했고, 겸재 정선의 에도 법당이 뚜렷이 그려져 있다. 법당 건물의 흔적은 없어졌지만, 아직도 남아있는 한 쌍의 괘불대는 법당 중심 정면에 놓였던 구조물로 법당의 정확한 이름은 기록에 남아 있지 않다. 단지 부석사가 화엄종찰인 것에 비추어 비로자나불을 모시는 대적광전이지 않았나 추론할 뿐이다.나. 두 개의 절과 안대과거 법당이 있을 때의 부석사 모습을 상상해 보면, 부석사는 법당을 중심으로 삼는 아랫부분과 무량수전을 중심으로 하는 윗부분의 두 부분으로 구성되었을 것이다. 즉 아랫부분은 도솔봉을 안대로, 윗부분은 안산을 안대로 삼아 각각의 영역을 형성하게 된다는 해석이 가능해진다.다. 두 개의 절과 축굴절된 축이 하나의 선을 구성하지 않고 두 개로 나뉘어진 이유도 설명된다. 즉 아래 축은 법당(대적광전)을 종착점으로 삼아 형성되고, 다시 법당 옆을 비껴 설정되는 안양루-무량수전 축을 따라 윗부분으로 오르게 되는 복합구조를 갖게 되어 두 번의 클라이맥스를 체험하도록 의도된 것이다. 지금의 모습보다 훨씬 복합적이고 입체적인 구성과 의도에 실로 놀랄 따름이다.라. 두 개의 절과 석단{▲ 두 번째 대석단 (안양루 대석단)과거 법당의 존재에 대한 해석에 따르면 왜 회전문(터)에서 무량수전까지의 9개의 단이 다시 두 개의 대석단으로 구획되는가에 대한 설명도 가능하다. 회전문 대석단은 법당영역을 비교적 평지로 만들기 위한 것이고, 안양루 대석단은 무량수전이 속하는 위 영역을 위한 것이다. 또한 평면적인 구성만으로는 법당이 뒤쪽의 안양루를 가려버리기에 일단 멈춘 흐름을 다시 유도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높은 곳에 위치한 안양루 및 무량수전의 모습이 제대로 시야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의도장면은 마치 화엄사에서 우각진입 했을 때와 흡사하다. 우각진입은 진입축을 바꿈으로써 건물의 모서리가 보여 공간이 넓게 느껴짐과 동시에 건물의 강조를 의도한다. 그런데 부석사 범종루 진입에서는 진입축을 그대로인데 건물축이 틀어져 이러한 효과가 나는 것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평범하지 않은 일에 감탄을 하기 때문이다. 이로써 부석사에는 간접적인 우각진입 효과도 도입되었다 할 수 있다.{▲ 프레임 안으로 보여지는 안양루{▲범종각 누하 진입2안양루에서의 누하진입다음 두번째 누하진입은 안양루에서 일어난다. 안양루는 그 일부가 단의 선 안으로 들어가 단이 樓의 일부를 올리는 형태이다. 따라서 진입하는 사람은 樓 바닥으로 직접 오르게 되어 있어 가장 극적인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이는 봉정사에서도 마찬가지인데 봉정사에서는 樓 아래가 부석사와 같이 열주로 되어 개방되어있지 않고 문의 형상을 띠어 다소 차이가 있다. 봉정사의 누하진입을 작고 부드럽다 한다면 부석사는 크고 대범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안양루에서 바라본 무량 수전과 석등{▲ 안양루 누하 진입3누하진입의 효과부석사는, 무량수전이 있는 단 자체가 높이차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주위를 건물로 둘러싸지 않아도 지형적 안정감이 있다. 따라서 시각적 변화를 주는 쪽으로 진입공간을 유도한 것으로 보인다.누하진입은 진입시 느끼는 공간감과 되돌아갈 때 느끼는 공간감에 차이를 부여한다. 진입할 때처럼 내려갈 때도 앞의 광경이 바로 시야에 들어오지 않고, 樓를 통과해야만 펼쳐지기 때문이다. 경사를 내려갈 때 느끼는 불안감도 樓로 인해 감소된다. 내려가는 경사에서는 계단만 감지되기 때문에 높이 있다는 느낌이 덜해진다. 일단 평평한 단 위로 내려왔을 때 아래 풍경이 보이면서 높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2)계단부석사의 기본 틀은 석단들의 나눔에 의해 만들어지고, 그 석단들은 계단들에 의해 연결된다. 이러한 계단들은 부석사 전체의 흐름을 유도하는.
    공학/기술| 2001.12.15| 23페이지| 3,500원| 조회(1,145)
    미리보기
  • [답사] 도산서원답사 평가A+최고예요
    Ⅰ. 도산서원1. 개요도산서원 : 사적 제 170호위치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산 61특징 : 서원 양식을 정립한 최초의 서원2. 연혁퇴계 이황(1501∼1570) 선생이 1557년(명종 12년) 도산서당(陶山書堂)과 농운정사( 雲 精舍)를 짓던 도중 1558년 8월 나라의 부름을 받아 서울로 올라가면서 건물의 설계도 옥사도 자(屋舍圖子) 한부를 벗 이문량(李文樑)에게 주면서 중 법련(法蓮)을 시켜 마무리하게 했 다. 그러나 법련(法蓮)이 갑자기 죽고 정일(淨一) 이라는 중이 계속 일을 맞아 1561년(명종 16년), 이를 완성하였다. 그 후 제자 정사성이 입학할 때 그의 아버지가 역락서재(亦樂書齋) 를 지어주었다. 여기에 하고직사가 덧붙여진 것이 도산서당의 모습이다.1570년 퇴계가 세상을 떠나고 3년상이 지나자 제자들은 선생을 모실 사당과 서원을 짓기로 결정해서 사후 4년인 1574년에 서원 창건을 시작했다. 그 다음해인 1575년 선조 임금이 한석 봉의 친필 현판을 하사하여 사액서원이 되었다. 건물들이 모두 낙성된 것은 1576년이었다.{) 유홍준, 「나의문화유산답사기 3」, p.151김봉렬, 「이땅에 새겨진 정신」, p.1951819년(순조18년)에 동광명실(東光明室), 1930년에 서광명실(西光明室)이 세워졌다.1969년 5월 도산서원 일원을 사적 제 170호로 지정하고 두 번의 보수공사를 거쳐 1970년 12월 8일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문화재관리국, 「도산서원중수지」, p.30{그림 1 도산서원 배치도Ⅱ.{그림 서당영역(빨간색)과 서원영역(파란색)도산서원의 배치1570년 12월 퇴계가 운명한 후 제자들은 선생의 위패를 모실 사당 건립을 시작했다. 도산 서원 건립에 가장 중추적인 역할을 한 인물은 조목이었다. 조목을 주축으로 한 제자들은 서원 의 위치를 두고 고민했을 것이다. 당연히 퇴계의 연고지인 도산 계곡에 자리잡아야 하지만, 이미 도산서당 일곽이 조성되어 새로운 터를 잡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선생의 숨결 이 깃들당부분퇴계선생 생전의 건물들로 위쪽 서원 건물들과는 달리 검소하고 조촐하고 조용한 분위기를 띠고 있다.{그림 6 평면도1.1.{그림 5 도산서당도산서당퇴계선생이 기거하던 건물이다.정면 5간, 측면 1간, 건평 27.9㎡의 맛배 홑처마{) 부연이 없는 처마집이다. 양측은 협칸이 있어 서측은 방과 동측은 대청마루의 뒷간을 옆으로 달아지어 평상을 깔았다. 마루위는 연등천정{) 천장을 만들이 않고 서까래가 그냥 노출돼 보이도록 한 것으로 하였다. 가구는 자연석 주초위에 각주를 세워 납도리{) 도리는 구조부재 중에서 가장 위에 놓이는 부재로 서까래를 받는다. 단면형상에 따라 원형의 도리를 굴도리 방 형이 도리를 납도리라고 부른다.와 보를 사괘{) 기둥머리를 + 자로 터서 보와 창방 및 도리 등을 내려 꽂는 맞춤법로 얹어 받쳤다. 지붕구조는 원래 맛배지붕으로 하였던 것으로 생각되나 후에 양측 협간을 세워 옆으로 빗닿게 이어놓았다. 서 원내의 건물로서는 가장 오랜 건물이다. 기단은 자연석 기단을 가공없이 바르게 쌓았고 뜰에 는 담장을 잘라 정우당이란 조그만 연못을 두어 경관을 이루고 출입문은 사릿문으로 되어 있 다.{그림 농운정사1.2.{그림 농운정사 단면도{그림 농운정사 평면도농운정사문도들이 거처하며 공부하던 건물이다.工자형의 특이한 평면을 가진 8간, 건평 46.6㎡의 홑처마집이다. 남측은 양측의 두드러진 2 간과 툇마루로 되어있고 중앙간 및 후면 양측간은 방으로 되어있다. 기단은 막돌 자연석을 가 공없이 쌓아 이룩하고 양측간의 각주는 중앙간의 각주보다 55㎝ 높였고 이로 인하여 중앙간 의 처마는 양측간의 처마밑으로 들어가 도리선에서 끊겨있다.{그림 하고직사1.3. 하고직사하인들의 거처 겸 서비스 공간.ㄷ자형 민가 건축양식으로 됐고 건평 50.6㎡, 총 9칸의 납도리 맞배 집이다. 대청칸은 측랑칸보다 20㎝ 정도 높였고 기단도 경사를 이루어 지형을 따라 이루었으나 전면만 자 연석을 가공없이 사용하여 쌓았고 지붕은 대청칸과 측랑칸의 높이 차 이를 단 없이 합각을 이용하여에 적절히 배치하였다.전체를 가로지르는 중심축 설정은 건축에 강한 구심점을 갖는다. 이는 유교의 질서체계에 걸맞은 건축기법으로 보통 비중이 있는 건물을 축선 상의 마지막에 두어 위계성을 높여 간다. 일반적으로 경사진 지형에 자리잡은 서원의 전학후묘(前學後廟) 배치개념은 그러한 유교적 정연성이 잘 드러나 있는 기법이라 하겠다.2.1 강학구역{그림 전교당2.1.1.{그림 전교당 평면도전교당도산서원의 중심되는 건물로 1574년(선조 7년)에 건립. 각종 행사시 강당으로 사용. 정면 도산서원현판은 선조 임금이 사액한 것으로 글씨는 한석봉이 어전 앞에서 쓴 친필이다.보물 210호로 지정. 건평 49.6㎡로 정면 4간, 측면 2간의 팔작지붕 홑처마 굴도리집이며 서 측 1간은 온돌방이며 그 외 3간은 마루 대청으로 강당의 역할을 했다. 대청 전면은 문짝 없이 터져 있고 후측 및 동측에는 2짝 판문을 달았다. 기단은 중도에 변형되어 장대석으로 전면을 쌓아 올렸으나 원래는 막돌로 쌓았던 흔적이 있고 기단위 바닥은 도중에 시멘트 몰탈로 발라 놓아 변형된 것이다.{그림 17 동재2.1.2.{그림 16 서재동·서재원생들이 기숙하는 곳으로 강당 전면에 대칭으로 자리하고 있어 강당과 함께 교육공간의 핵심을 이룬다. 동재를 박약재(博約齋), 서재를 홍의재(弘毅齋)라 한다.정면 3간, 측면 2간의 툇간을 가진 건평 24.5㎡의 맛배집 홑처마집으로 동 서 같은 건물.{그림 동광명실2.1.3.{그림 동광명실-전교당 앞마당에서동·서광명실서원의 장서고(藏書庫)이다. 동광명실은 1819(순조 19년)에 세운 건물로 역대 왕의 내사서 적과 선생이 친히 보시던 수택본이 있고, 서광명실은 1930년에 증건된 건물로 문도를 비롯한 국내 유학자의 문집 등 근래에 발간된 각종 책들이 있다. 1,217종에 4,917권이 보관되어 있으 며, 현재 전국 서원 가운데에서 장서로는 고서와 진본이 가장 많다. 현재는 도난의 우려로 유 물전시관에 보관되고 있다.정면 3간 측면 1간, 건평 12.5㎡의 맛배, 굴도리, 누고직사와 사당 사이의 동선에 위치해야한다. 제수를 담당하는 유사가 하룻밤을 지내 기 위한 온돌방, 제수상을 보관하기 위한 마루방, 그리고 평소 에 제기들을 보관하기 위한 제기고가 필요하다. 보통은 이 세 기능을 한 건물 안에 수용한다. 이상이 전사청의 교과서적인 건축계획 각론이다.도산서원의 전사청은 이상의 계획각론들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상고직사에서 사당에 이르는 내부동선 상에 위치를 잡았고, 모든 필요기능을 갖추었다. 그러나 일반적인 전사청과는 전혀 다른 형식을 창안했다. 두 개의 2칸 건물을 동서로 나눠 세워서 동쪽은 주청으로, 서쪽은 제 기고로 삼았다. 역시 금기시된 2칸 짝수칸을 구애치 않고 채택했다. 주청은 마루 한칸과 온돌 방 한칸으로 구성되어 유사가 제상을 마련하고 보관하는 곳이다. 제지고는 전돌은 깐 봉당 한 칸과 마루 한칸으로 이루어져 노비들이 제기와 음식재료들을 지고 와서 내려놓는 반입구 기 능에 편리하게 구성됐다.전사청을 두 개의 마주보는 건물로 분리함으로써 그 사이에 마당이 생겼다. 이 마당을 지나 샛문을 열면 바로 사당마당 측면으로 진입한다. 고직사에서 사당에 이르는 연속동선을 확보 하면서 건물을 배치하여 가장 원론적이면서도 가장 독창적인 전사청을 창조했다. 이른바 기 능의 프로그램이 형태로 바뀌고, 위상적 동선이 공간으로 치환된 뛰어난 예를 보여주고 있다.{그림 상고직사2.3.{그림 상고직사{그림 높이차를 합각을 이용해서 처리함상고직사측면 1간의 ㅁ자형으로 총칸수 20간 건평121.2㎡ 홑처마 납도리집이며 지형을 따라 대청칸 은 회랑칸보다 70㎝가 높고 중앙에 대청마루와 양측에 온돌방을 드리고 측랑에는 부엌과 광 으로서 사용하고 전랑에는 대문과 사랑방이 배열되어 있다. 자연주초석위에 각주로 주두없이 납도리집으로 꾸며 졌으며 일반 민가주택형식을 취한 건물이다. 특이한 것은 대청칸과 층랑 칸의 높이 차이를 지붕에서 단 없이 합각을 이용하여 처리하였다는 것이다.{그림 중심축3.{그림 좌우의 방향적 위계[파란색 : 스승과 경전의 영역][빨간보할 수 있어서 충분한 제례공간을 활보할 수 있고, 강당에서는 제례절차를 지휘 감독할 수 있는 위치로 확보된다. 이러한 예는 도산서원과 병산서원, 두 곳밖에 없다.{) 김봉렬, 앞의 책, p.198두 곳은 퇴계나 그 수제자와 연고를 맺고 있다. 형식적인 규범보단 실질적인 변용을 중시했던 퇴계정신을 구 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그림 두 영역의 매개공간 광명실5. 서당과 서원의 매개공간서당 영역과 서원 영역 사이의 경계를 없애는데 공헌한 요소는 동서 광명실이다. 진도문 옆 에 서 있는 두 건물의 위치에 주목하자. 두 건물은 서원영역 바깥에 위치하지만, 누각형식으 로 처리해 서원 마당에서 출입이 가능하다. 다시 말해, 위치는 서원 담장 바깥이지만, 소속은 서원 마당에 속해 있는 이중성을 갖는다. 기존 서당 영역이세 보면 독립된 2층 건물이지만, 서원 마당에서 보면 마당을 감싸는 단층 건물이 된다. 이러한 이중성은 서당영역과 서원영역 을 통합하는 중요한 매개가 된다.Ⅲ. 도산서당 - 최소의 구조와 최대의 공간{그림 도산서당 평면도 - 파란색 부분은 변형 증축 부분1.{그림 동쪽마루 확장부를 표시하는 장치[사각기둥은 정식 한 칸을 표시, 줄마루와 팔각기둥은 확장부를 표시]외부적 확장이 집은 삼칸제도(三間之制){) 김동욱, 〈퇴계의 건축관과 도산서당〉,「건축역사연구」v.5 n.1, 한국건축역사학회 p.29금난수가 적은 「도산서당 영건기사」에서 서당을 가리켜 用三間之制 라고 정의하였다. 정면 3칸으로 구성된 모습을 가리킨다. 삼간지제는 하나의 보통명사로 쓰일 수도 있다. 그러나 단지 규모가 3간이라고 하지 않고 3 간의 제도를 사용하였다고 하였다. 이것은 3간으로 된 하나의 고유한 형식을 지칭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볼 수 있는 문제이다. 더 나아가 16세기 영남지방에 널리 산재해 있는 이와 유사한 규모의 여러 건물들을 생각할 때 이것은 당시 선비들이 학문처로 삼은 건물이 추구하는 하나의 전형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에 따라 건축 되었다고 한다.{) 금난수, 「.
    공학/기술| 2001.12.15| 15페이지| 2,500원| 조회(1,251)
    미리보기
  • [답사발표자료] 금산사답사발표자료
    금 산 사 답 사 기 행유서깊은 미륵도량 모악산에서금 산 사 이 야 기위 치 전라북도 김제군 금산면 금산리 39번지(모악산) 금산사의 연혁 백제 법왕 599년 왕실의 번영을 기원하는 사찰로 산중암자 규모로 창건 신라 혜공왕 2년(서기 706년) 진표율사 중창 정유재란시 왜군에 의해 전소됨 창건설화 진표율사 : 점찰개법들어가면서...안 내 도산사로가는길모악성지석성문일 주 문일주문 금산사의 얼굴 절의 문은 부처님의 세계, 불국정토로 들어가는 문이다. 이 작은 부처님의 세계로 들어가는 첫번째 관문이 바로 일주문(一柱門)이다. 목조 맞배 지붕 양식 모악산 금산사 현판올라가는 길에금 강 문인왕상 2구와 사자를 탄 문수동자, 코끼리를 탄 보현동자 다포 양식, 정면 3칸, 측면 2칸천 왕 문불교의 수호신인 금강역사를 모신 전각 동쪽의 지국천왕, 남쪽의 증장천왕, 서쪽의 광목천왕, 북쪽의 다문천왕 악귀를 막고 중생의 마음속 잡념을 없애준다는 의미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당 간 지 주보물 제 28호 당간지주 당 간 : 절에 행사가 있을 때 절 입구에 당(幢)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이 깃발을 달아두는 장대를 당간(幢竿) 당간지주 : 장대를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 높이 3.5m로 양쪽 지주가 남북으로 마주봄 간대와 기단석을 완전하게 갖추고 있는 우리나라 당간지주 중에서도 가장 완성된 작품사진 볼까?보 제 루3칸의 2층 누각식 건물 개산 1,400년 기념관 법회와 강설, 대중집회의 장소로 이용사진 볼까?범 종 각불교 의식에 사용되는 사물(범어, 법고, 목어, 운판)을 보관 범종 지옥에서 온갖 고통을 받고 있는 중생들에게 부처님의 법음을 들려주기 위하여 하루에 인시, 오시, 술시 등 모두 세 번을 친다.대 장 전보물 827호 원래 뜰 가운데 세운 목조탑으로 불경을 보관하던 곳 지금은 예전의 기능은 없어지고 안에 불상을 모시고 있음 규모는 앞면 3칸 · 옆면 3칸 크기 팔작지붕, 다포 양식, 우물 천장사진 볼까?석 등보물 828호 3.9m 8각 석등 지대석은 방형판석, 하대는 원형, 목련 장식석 등명 부 전지장보살과 명부의 시왕을 봉인한 곳노 주보물 제 22호 실제로 무엇으로 사용한 것인지 그 용도를 알 수 없는 보기 드문 유물대 적 광 전평면 7칸, 측면 4칸의 다포식 팔작지붕 1986년 원인 모를 화재로 소실후 1994년 복원 수계, 설법 등 사원의 주요의식을 집행하는 곳사진 볼까?석 련 대보물 23호 석련대는 석조연화대좌의 준말로 불상을 올려놓는 돌로 만든 받침대 높이 1.52m, 둘레 10m육각 다층 석탑보물 27호 2.18m, 흑백의 점판암으로 제작 현재 2개층의 탑신과 11개의 옥개석만이 남음미 륵 전국보 제 62호 3층 목조건물로는 유일무이 무악산 금산사는 백제 법왕 2년(600)에 지은 절로 신라 혜공왕 2년(766)에 진표율사가 다시 지었다. 정유재란 때 불탄 것을 조선 인조 13년(1635)에 다시 지은 뒤 여러 차례의 수리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1층에는 '대자보전(大慈寶殿)', 2층에는 '용화지회(龍華之會)', 3층에는 '미륵전(彌勒殿)'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1층과 2층은 앞면 5칸·옆면 4칸이고, 3층은 앞면 3칸·옆면 2칸 크기 팔작지붕, 다포 양식 활주가 지붕 무게를 받치고 있다. 건물 안쪽은 3층 전체가 하나로 터진 통층사진 볼까?방 등 계 단보물 25호 상하 2개의 기단, 높이 2,57m석종형 사리탑사진 볼까?오 층 석 탑보물 25호 이중 기단위에 7.2m 5층석탑적 멸 보 궁방등계단에 참배하기 위해 건립한 예배전삼성각 나한전 조사전삼성각나한전조사전잣 나 무혜덕왕사 진응탑비보물 24호 혜덕왕사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만든 비 높이 2.77m, 너비 1.5m심원암 북강 삼층석탑보물 29호 고려시대 건립 높이 2.77m, 너비 1.5m내려가면서답사를 마치며다음으로..보 제 루종 무 소보제루로..성보박물관화 장 실보제루 왼편보제루에 들어서서보제루에서 우측 미륵전을 본 모습다음으로..석등으로..대 장 전대 장 전 활 주대장전 내부대적광전대적광전 추녀대적광전 기단부석련대로..미륵전 전경미륵전 좌측미륵전 우측미륵전 기단부미륵전지하통풍구미륵전 벽면 낙서방등계단으로..오층석탑으로..{nameOfApplication=Show}
    인문/어학| 2001.12.15| 36페이지| 3,000원| 조회(790)
    미리보기
  • [답사] 해인사답사
    해인사 답사 결과소요시간 : 왕복 5시간위치 : 가야산해인사의 구성 : 일주문→봉황문,명월당→국사단→해탈문,사운당→구광루→관음전→궁현당→경학원→대적광전→수다라장→법보전 으로 구성되어 있다.{해발 1430m의 합천 가야산 중턱에 자리잡은 해인사는 통도사,송광사와 더불어 법보사찰로 우리나라 3보사찰의 하나이다.신라 애장왕 2년 (802년)순응, 이정 대사에 의하여 창건되었다. 1490년 학조대사에 의한 창건이래 가장 규모가 큰 중창을 하여 오늘날 해인사 가람의 틀을 마련하였다. 숙종 21년(1695)년부터 고종 8년(1871년)까지 7번의 화재로 대부분의 건물들이 소실되었으나 장경각만은 그대로 보전되었다. 오늘날과 같은 모습은 조선 후기 순조 18년(1818년)에 중건이 근간이 되었다. 해인사는 거대한 가람의 규모에서 뿐만 아니라 법보 종찰로서의 비중도 매우 높다. 팔만대장경을 보유하고 있으며, 성철 스님이 계셨던 곳으로 유명하기도 하다.해인사의 이름은 화엄경중 해인(海印)삼매(三昧)로부터 따와 해인사 라고 명명하였다. 창건이념이 이름에서부터 나타나듯이 화엄철학, 사상을 널리 펴고자 하였다. 해인삼매의 뜻은 일체여심조, 즉 一心(일심)에로의 회복을 목표로 삼는 길이 명시되어 있다.@해인사의 배치와 공간구조해인사는 해발 1430m의 가야산 서남쪽 중간에 움푹하게 들어간 대지 위에 서남향의 가람을 형성하고 있다.산지형 가람배치로서 공간의 수직적 이동, 적극적 공간체험이라는 측면에 있어 평지형 가람배치보다 흥미롭다.사찰건축은 다른 전통건축에 비해 동선이 길며, 신도들을 원하는 최종 목적지까지 자연스럽고 쉽게, 변화를 체험하면서 도달시키고자 축선을 설정하게 된다. 해인사의 경우 절간앞에 문들을 여러게 놓아 종심을 깊게 형성하고 지형조건에 맞게 중심 구성축을 평행 이동하여 설정하고 있다. 즉 봉황문과 해탈문을 지나 구광루를 거쳐 대적광전과 법보전을 잇는 축선은 우측에서 좌측으로 이동하고 있다.일주문은 지나면 양쪽으로 잣나무가 도열하듯 서있어, 심공형 진입방식을 이룬다. 산으며, 바로 이 선상의 정점에 고려대장경을 보관한 경판고, 수다라장과 법보전에 위치한다.일설에는 해인사의 이러한 가람 배치가 행주형국(行舟形局)이며, 가야산 중턱에서 해인사를 굽어보고 있는 마애불이 바로 이 해인사라는 배를 잘 가게 하는 도사공이 된다고 한다. '바다에 비친 그림자'라는 뜻의 해인사와 너무도 잘 어울리는 이야기다.주요건물해인사는 도입부의 일주문, 봉황문, 해탈문. 전개부의 구광루, 삼층석탑. 중심부의 대적광전 . 결말부에 속하는 대장경판으로 구성되어 있다.일주문{요즘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일주문 형식이 언제부터 절 앞에 세워졌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삼국시대에는 남문이나 당간 또는 중문 등이 사찰 앞에 세워졌고 일주문은 기록이나 유구로 보아 없었던 것이 확실하다. 그러나 통일신라시대나 고려시대에 들어와서 산지 가람이 많이 조영됨에 따라 남문의 형식을 간소화시키는 경향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되며 이것은 절의 영역을 주지시키는 간결한 대문 형식에서 발전하여 결국 일주문과 같이 간결한 출입구로 변한 것으로 추정된다. 일주문은 보통 기둥을 좌우 양측에 하나씩만 두고 그 상이에 화려하게 다포 형식을 꾸미는 것이 보통 조선시대 남이 있는 일주문 형식으로 보아 알 수가 았지만 양산 통도사나 부산 범어사와 같은 일주문은 3칸 출입구로 조영하여 4개의 기둥을 세워서 포집을 짜았다.이곳의 일주문은 紅霞門(홍하문)이라고도 부르며 정면에는 근대 서예가인 해강 김유진의 글씨로 伽倻山海印寺(가야산 해인사)란 혀판을 걸었고 뒷면에는 박해근이 쓴 海東第道揚(양(해동제일도량)이란 현판을 걸었다.문 앞에는 일제 때에 쌓은 듯한 잘 다듬은 계단과 함께 장대석축위에 갑석을 얹은 대지 위 양측에 화강석을 잘 다듬어 초석을 각각 1개씩 놓고 직경 약 60센티미터 되는 둥근 기둥을 세워 그 상이에 창방과 평방을 도려 짜아 그 위에 내3출목 7포작과 외2출목 5포작의 다포계 맞배집을 꾸미었다. 기둥머리에서 내외로 뻗은 창, 평방을 받치기 위하여 기둥의 앞뒤에는 버팀목을 두어 측면으로 보른쪽의 국사단이 마치 정면에 있는 것같이 보이고, 왼쪽으로 꺾여 올라가는 계단 위로 기다란 해탈문이 균형을 이룬다. 이 하나의 공간적 장면은 고적적인 조형미학에서 말하는 많은 가치를 가지고 있다. 균형과 조화, 정적과 역동성, 비대칭적 대칭성 등.미학적 수사보다도 흥미를 끄는 것은 국사단의 위치와 성격이다. 가야산에는 산신이 있고 해인사 가람 터에는 이 터의 형국(形局)을 주관하는 토지신이 있다. 국사단(局司壇)이란 이 토지신을 위해 마련한 건물이다. 가람을 수호하고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건물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국사신앙은 불교의 정통적인 신앙이 아니라 한국 전래의 토속신앙의 대상이다. 그래서 건물의 명칭도 전(殿)이나 각(閣)이 아니라 단(壇)이다. 이 건물은 도저히 불교의 성스런 가람 안에 둘 수 없는 건물이다. 그러나 가람건축을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기능을 하는 것이어서 무시할 수도 없다.넣을 수도 뺄 수도 없는 성격의 건물을 봉황문과 해탈문의 사이, 본격적인 불국토가 시작하기 바로 직전의 경계에 위치시킴으로써 절묘한 해법을 개발했다.교리적으로 사천왕상이 있는 봉황문은 아직 신중(神衆)들의 미망의 세계이고, 해탈문 이상이 깨달음의 세계라 할 수 있다. 불국토인 연화장 세계는 해탈문부터라 할 수 있지만 봉황문부터 이미 가람은 시작하고 있다. 따라서 그 사이는 가람의 내부일 수도 있고 바깥일 수도 있는 공간적 경계다. 국사단이 위치하기에는 가장 적절한 위치다.봉황문을 들어서면 국사단의 정면은 뚜렷하게 부각되어 다가온다. 그러나 여기서 그치지 않고 왼쪽 위로 계단이 이어지면 그 위의 해탈문이 말없이 서 있다. 어서 올라오라고 권하는 자세로.국사단은 중요한 건물이다. 그러나 중요하지 않은 건물이기도 하다. 봉황문과 해탈문 사이의 이 공간은 국사단의 이중적 성격을 대변하듯 지형적으로 교리적으로 이중적인 경계의 공간이다.해탈문{봉황문을 지나 약 30미터 거리를 두고 전자와는 축을 달리하여 놓인 문이다. 정면 6칸 측면 2칸 우진각지붕에다 동측에서해인사 가람의 중심영역을 구성토록 하였다.새로 지은 구광루 건물은 얼른 보면 옛 구광루와 비슷하게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관찰하면 건축 구조에서 크게 바뀐 부분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새로 지은 현재의 구광루에는 옛 구광루의 진입공간 형식이 지켜지지 않았다. 구광루밑을 통해 대적광전 잎으로 나가는 통로는 사라졌고, 그 대신 구광루 건물 밖 양쪽으로만 낸 계단으로 사람들이 오르내리도록 바뀌었다. 이로 인하여 해인사 가람 전체의 중심축이 갖는 의미와 상징성은 반감하였다. 신축한 구광루는 사상과 삶을 반영하고 담는 그릇인 건축이 어떻게 보전되어야 하는 가를 우리들로 하여금 다시 보듬게 하였다.사찰 전각의 처마 아래에 감도는 바랜 단청 빛깔, 기둥과 창살의 정갈한 나뭇결을 사람들에게 불심을 일으키게 한다. 거기에는 그렇게 지어진 건물 이면에 내재하며 작용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새로 들어선 구광루는 비록 해인사 가람배치의 특성을 크게 잃게 하였지만, 창건 이루 설정한 가람배치의 기본틀이 워낙 튼튼하기 때문에 지금도 해인사는 새로 이루어진 불사의 벗어남을 받아들이며 그것을 고요하게 잠재우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구광루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다른 사찰들에서도 자주 볼 수 있다. 옛 고승들이 일구어낸 가람의 향기도 지키고, 오늘날 승도들의 수행과 예불에 필요한 도량의 공간을 제대로 가꾸고 만드는 지혜를 모으는 일이 현대 사찰이 안고 있는 과제중의 하나다.보경당(불교회관)이건물은 근래에 불교회관으로 지어졌다. 여러 큰 불사에 집회장과 법당으로 쓰이도록 설계되었는데 해인사의 다른 건물들에 견주어 지나치게 크게 지어진 감이 없지 않으나, 지하층도 크게 내어 여러모로 쓸모있게 지어진 집이므로 불사 때에 유용하게 사용된다.관음전구광구 오른쪽에 관음전이 있다. 현재 승가대학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약 100여명의 스님들이 경전을 연마하고 있다. 건물의 현관은 궁현당과 같이 두 개인데 그 하나는 심검당이다. 심검이라는 말은 모든 번뇌를 베어 버릴 수 있는 지혜의 칼을 찾진 것이다.독성이란 스승없이 혼자 깨우친 성자, 즉 독수선정(獨修禪定)을 말하는데, 한국 사찰에서 독성이란 단군신앙의 불교적 전개라 볼 수 있다. 이의 불교적 수용도 산신이나 칠성과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삼성각(三星閣) : 산신, 칠성, 독성을 함께 봉안한 전각대적광전대적광전과 삼신불{불교교리가 발달함에 따라 부처님의 본질을 규명하려는 노력은 마침내 법신(法身), 보신(報身), 화신(化身)의 삼신불사상을 출현시키게 된다. 그와 같은 사상에 의해 삼신불을 모신 법당을 대적광전, 대광명전, 비로전, 또는 화엄전이라고도 한다. 대적광전에는 중앙의 법신 비로자나 부처님을 중심으로 하여 왼쪽에 보신 노사나불, 오른쪽에 화신 석가모니불을 모시는 것이 통례지만, 사찰에 따라서는 법신 비로자나불, 보신 아미타불, 화신 석가모니불을 모시는 경우도 있다.한편 대적광전에는 이와 같은 삼신불과 더불어 삼신불탱화가 모셔진다.지정번호:유형문화재 제256호지정일자:1985년 11월 14일소재지: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규모: 정면 5간,측면 4간재료:목조와가시대:조선시대이 불전은 해인사를 창건하던 신라 애장왕 3년(802)에 순응, 이정 두 스님이 창건하였는데 창건 당시에는 2층으로된 건물로 비로전이라 하였다. 그 후 조선 성종 19년(1488)에 인취, 인혜 두 대기의 시주 후 학조대사가 중건할 때 대적광전으로 개명하였다. 이 뒤 여러 차례 소실되었고 현재의 건물은 고종 8년(1871)에 소실되었던 것을 다시 중건한 것이다. 정면 5칸, 측면 4칸의 오량구조로 팔작지붕을 한 다포계 건물이다. 특히 10개의 안두리 높은 기둥이 배치되어 원래는 이것이 위층까지 연결되어 겸재 그림에 보이는 2층 정면 4킨의 주칸이 되었던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지대석과 면석 그리고 밑 모서리에 내반곡 몰딩을을 둔 갑석으로 반듯하게 짜인 기단 위에 다듬은 초석을 배치하고 그 위에 든든히 생긴 곧은 두리 기둥을 세워서 가구를 짜았다. 내부에는 마루 위에 짚 넣은 자리를 깔고 위에는 반자를 짜았는데 고주의 안 있다.
    인문/어학| 2001.12.15| 16페이지| 2,500원| 조회(945)
    미리보기
전체보기
받은후기 12
12개 리뷰 평점
  • A+최고예요
    4
  • A좋아요
    1
  • B괜찮아요
    3
  • C아쉬워요
    2
  • D별로예요
    2
전체보기
해캠 AI 챗봇과 대화하기
챗봇으로 간편하게 상담해보세요.
2026년 04월 18일 토요일
AI 챗봇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 AI 챗봇입니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2:44 오전
문서 초안을 생성해주는 EasyAI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의 20년의 운영 노하우를 이용하여 당신만의 초안을 만들어주는 EasyAI 입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작업을 도와드립니다.
- 주제만 입력하면 AI가 방대한 정보를 재가공하여, 최적의 목차와 내용을 자동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 장문의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작성해 드립니다.
- 스토어에서 무료 이용권를 계정별로 1회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체험해 보세요!
이런 주제들을 입력해 보세요.
- 유아에게 적합한 문학작품의 기준과 특성
-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