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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무원 노조에 관한 고찰
    - 목 차 -Ⅰ. 서론Ⅱ. 공무원 노동조합 왜 필요한 것인가1. 노동기본권 종류와 정의2. 우리나라 법률에서의 공무원 노동기본권3. 공무원 단체(공무원 노조)란 무엇인가4. 공무원 신분의 특수성5. 공무원 직장협의회6. 공무원 노조 필요성에 대한 정부의 대안7. 공무원 노조설립이 행정발전에 미치는 영향8. ILO(국제노동기구)의 노동기준과 외국의 사례Ⅲ. 신분보장에 관한 공무원 교섭문제1. 우리나라의 공무원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한 입법방향2. 노동기본권 보장의 구체적 입법방향Ⅳ. 결론‘공무원 노조의 설립’어떻게 바라봐야 하는 것인가(공무원 노동기본권 보장에 관한 고찰과 적용범위)Ⅰ. 서론현재 참여정부의 수립 이후로 우리나라는 수많은 노사와 사업자의 갈등이 빚어져 왔다. 박정희 정권시대부터 쌓여져 왔던 근로자의 불만과 정당한 권리들은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를 넘어서 참여정부에 이르러 폭발적으로 분출을 하게 되었다.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해 투쟁을 하였고 물리적 가압을 당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자신들의 권한을 조금씩 찾아가게 되었다. 노무현 정권에 이르러서는 개인사업자의 노조뿐이 아니라 교조나 공무원 노조처럼 공직에서 근무를 하는 근로자들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투쟁대열에 들어서게 되었다. 이번 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공무원 노조의 단체행동권을 국민의 합의를 통해서 이루겠다는 선거공약)들도 등장했으며, 나 또한 공무원의 직업에 관심이 많은지라 이번 강의를 통해서 ‘공무원 노조에 관한 고찰’을 발표하고자 한다.과거 우리 사회는 많은 근로자들을 위한 노동권 보장문제로 노사관계의 대립이 빈번히 발생하여 왔다. 공무원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며 공무원을 근로자인 국민의 한 주체로 인정을 함으로써 공무원의 노동기본권 보장을 두고 중요한 사안으로 인정되어 정부와 첨예한 대립이 진행되어 왔다. 지난 국민의 정부는 ‘공무원 직장협의회’를 인정한 후, 현재 ‘공무원 노동조합’의 허용여부를 두고 논의가 활발할 뿐만 아니라 공무원 사회의 관심사가 되고 있는 상황이다.가진다.4) 단체행동권근로자가 파업이나 태업 등 그 주장을 관철할 목적으로 업무의 정상적인 운영을 저해하는 행위, 즉 쟁의행위를 할 권리이다. 근로자가 단체행동을 함에 있어서는 그 목적?방법?절차상의 한계를 존중하여야 하는데, 외국의 경우 공무원의 단결권과 단체교섭권은 함께 인정하지만 단체행동권은 분리하여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경우가 대부분임을 볼 수 있다. 이는 단체행동의 결과가 국가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기 때문에 취한 조치라 하겠다.노동쟁의조정법(제12조 2항) “국가, 지방자치단체 및 방위산업에 관한 특별 조치법에 의 해 규정된 근로자는 쟁의행위를 할 수 없다"고 규정?헌법재판소(1993) 공무원의 노동쟁의 행위를 전면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현행 노동쟁의 조정법 제12조는 일부 공무원의 단체행동권을 인정한 헌법 제33조 2항에 합치되지 않 음으로 개정하여야 한다는 헌법 불합치 결정?철도노조원의 경우 쟁의행위가 가능하다는 1991년의 대법원 판결과 함께 공무원단체의 단체행동권 제한에 대한 기본 시각이 변화2. 우리나라 법률에서의 공무원 노동기본권우리나라 헌법 제33조 제1항에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바로 제2항에서 ‘공무원인 근로자는 법률이 정하는 자에 한하여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라고 하여 공무원의 노동기본권 보장을 법률에 위임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국가공무원법 제66조 제1항과 지방공무원법 제58조 제1항에서 ‘공무원은 노동운동 기타 공무 이외의 일을 위한 집단적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된다. 다만, 사실상 노무에 종사하는 공무원은 예외로 한다’고 하여 공무원에 대하여는 원칙적으로 노동기본권이 혀용 되지 않음을 명백히 하고 있다. 여기서 ‘노동운동’이라함은 노동기본권 보장활동 즉 ‘근로조건의 향상을 목적으로 하는 노동조합 결성행위 및 그 활동’을 의미하는 만큼, 결과적으로 헌법에서 언급하고 있는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 모두가 일반 공무직장협의회가 아닌 노동조합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① 우선 단결권에 있어서 노동자는 노동조합법상의 노동조합 뿐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조직을 결성하고 가입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직장협의회는 자유롭고 자주적으로 단결할 수 있는 완전한 단결권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또한, 노조에 비해 매우 제한된 한계를 지니고 있는 직장협의회조차도 연합체금지, 전임자 금지, 근무시간 중 활동금지 등 법률과 시행령을 통해 제한된 틀과 통제 속에 가두어 두고 무력화시키고자 하는 것이다.② 가입범위노동조합법에는 그 이익을 대표하여 행동하는 자를 제외하고는 노조 가입을 보장하고 있다. 이러한 법 규정에 근거하여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있는 노동자의 범위를 노동조합에서 자율적으로 만드는 규약을 통해 결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직장협의회는 인사 등 핵심적인 업무와 심지어 운전종사자까지 가입이 금지되어 있고 나아가 기관장 마음대로 가입범위를 제한할 수 있도록 되어 있어 보다 많은 공무원을 포괄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③ 조직 운영 체계와 방식의 차이가) 노동조합○ 의결기관 : 총회, 대의원대회, 운영위원회(중앙위원회)○ 집행기관 : 상무집행위원회(노동조합의 실무부서장 참여)○ 임원 : 위원장, 부위원장, 사무국장, 회계감사나) 직장협의회○ 의결기관 : 총회, 대의원대회 또는 실무위원회, 협의위원회○ 집행기관 : 운영위원회 등 직장협의회 별로 다르다.○ 임원 : 대부분 회장, 부회장, 협의위원, 회계감사, 사무국장④ 총회의 기능과 운영의 차이모든 직장협의회에서는 총회를 최고 의결기관으로 하고 있으며, 기능에서도 임원의 선출, 불신임, 규정의 제?개정 등 노동조합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 운영에 있어서는 총회가 실질적으로 회원대중 전체의 의사를 결집시키는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과반수이상의 참석과 찬성이라는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조차 규정에 없거나 있더라도 지키지 않는 직장협의회도 있다. 노동조합의 경우 노동조합법으로 반드시 중요사항은 총회(또는 대의원회)를 거치도록 하고 합법적으로 이루어지게 됐다. 이러한 흐름에 따라 아래와 같이 일반 공무원의 노조활동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① 공무원은 사기업의 직원에 비해서 낮은 대우를 받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사기업에 준 하는 대우가 필요하다.② 공무원의 근로조건을 개선하기 위하여 단체 활동이 필요하다.③ 공무원의 권익이 부당하게 침해당했을 경우에 이를 구제할 수 있는 고충처리제도 등이 미흡하게 되면 공무원의 노조활동이 필요해진다.④ 사회의 다양한 계층에서 자신들의 권리보호 운동이 일어남에 따라 공무원들도 자신들이 적절한 압력단체가 될 수 있다고 인식하에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2) 정부의 대안① 노동조합은 헌법에서 규정하듯이 자주적인 단체이나 정부는 공무원 노조와 교원노조를 모두 일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 의한 것이 아닌 특별법으로 규율되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노동3권에 관하여 특별법 안에 규제를 가한다.② 단체교섭권의 행사에 있어서 교섭권과 체결권을 나누어 전자는 인정, 후자는 인정하지 않는다. 또한 단체행동권 역시 인정하지 않는다.③ 공무원의 직종에 따라 공무원노조의 가입대상을 부분적으로 제한하며 5급 이상의 공무원들은 가입대상에서 제외한다.④ 공무원의 경우 국민정서를 감안해 노동조합이라는 명칭 대신 공무원단체 또는 공무원 조합이라는 명칭을 사용한다.⑤ 쟁의행위를 금지하고, 교섭권은 외부단체 위임하며 연계 금지규정을 실시한다.)구분정부안공무원노조허용시기연내 입법화하되 시행은 법제정후 3년 유예(2006년 시행)연내 입법화, 2003.1 시행명칭공무원조합/공무원단체공무원노동조합조직대상-6급 이하: 일선기관, 자치단체의 지휘감독자 제외-공안, 질서유지 업무(군인, 경찰,소방 등)제외-관리, 운영, 업무(인사, 예산, 비서, 운전 등)수행자제외-공무원인 근로자는 직종 및 직급에 관계없이 가입가능-직무 성격상 사용자의 행위자 제외 (일반노동법적용)노동권인정범위-단결권과 단체교섭권을 허용-단체 협약체결권 및 단체행동권 불인정-일체의 업무저해행위금지-단결권, 단체교섭권(협약체소 우세하나 긍정적인 기능도 많으므로 정부는 의지를 가지고 입법 추진하게 된 것임?이 그것이다. ‘긍정적인 기능도? 있다는 말에는 공무원노조에 대한 행자부의 부정적 인식이 깔려있다. 문제의 핵심은 행자부 스스로 밝혔듯이 여론에 있다. 그러나 그 여론은 기실 한국사회의 여론시장을 독과점하고 있는 몇몇 언론권력들이 조장한?여론?이다. 공무원노동조합이 합법화하는 것은 시간의 문제일 뿐 움직일 수 없는 방향이다. 그 과정에 온갖 회유가 있을 게 분명하다. 공무원들의 대동단결만이 그 시간을 앞당길 수 있다. 강력한 대오 형성만이 기득권세력들의 회유를 이겨낼 수 있다. 그렇다. 한국 민주주의 수준이 오늘 공무원노조의 합법화를 가로막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진실은 공무원노조의 올바른 투쟁이 한국 민주주의의 수준을 높일 수 있다는 점이다. 공무원노조가 흔들림 없이 싸워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2) 정부측 주장① 공무원 단체를 인정하면 무책임한 행동을 자행할 뿐만 아니라 이기적 목적만을 추구할 수 있다.② 관리층의 인사권을 지나치게 제약하고 그들의 이익과 신분보장만을 강화할 수 있다.모든 인사 조치를 객관화 하여 관리층의 재량과 신축성을 제약하여 부학직원에 대한 통제와 행정능률의 향상이 곤란할 수도 있다.③ 민간 부분의 노동단체와 연계하여 정치세력화를 도모하고 노조 운동가, 노조 전임자를 위한 공무원이 등장함으로써 오히려 행정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④ 공무원들의 신분보장으로 인하여 안일함이 발생하여 실적제를 약화 시킬 수 있다.)-`공무원노조 의원입법`문제 많다공무원의 단체행동권, 노조명칭 사용 등을 제한하는 정부의 '공무원조합법안?이 국회에 제출돼 있는 가운데 이를 모두 보장하는 내용을 담은 '의원입법안?이 따로 발의돼 논란이다. 우리는 우선 '의원입법안? 발의에 동의한 의원들이 과연 이 법안을 한번쯤 읽어보고 서명했는지 묻고 싶다. 현행 노동관계법을 일부 손질한 듯한?의원입법안?에 너무 엉뚱한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공무원도 근로자이며 물론 노이다.
    경영/경제| 2005.01.19| 21페이지| 1,500원| 조회(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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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복궁 답사기 평가A좋아요
    Ⅰ. 경복궁(景福宮)으로 향하며경복궁(景福宮)이란 곳을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게 되었다. 25년을 살아오면서 조선시대의 얼과 역사가 살아있는 궁궐을 한 곳도 가보지 못하고 더욱이 자의가 아닌 타의로 가는 내 상황이 참으로 한심스럽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항상 새로운 것을 대하는 기분은 설레임이 생기기 마련이라 마치 고등학교 때 소풍을 떠나는 기분이 들어 전날 잠자리를 뒤척거리며 늦잠을 자고야 말았다. 하지만 늦잠을 잤다는 짜증보다는 경복궁에 대한 흥미와 설레임 때문에 기분 좋게 집을 출발 할 수 있었고, 간신히 시간을 맞추어 도착하게 되니 이미 많은 학생들과 그날의 행사로 인한 전통의상을 차려입은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또한, 날씨도 무척이나 좋아 오랜만의 나의 답사는 발걸음이 가볍기만 할 뿐이었다. 교수님께서 전에 수업시간에 말씀하셨듯이 아무런 지식이 없이 경복궁을 찾게 되면 그만큼 얻게 되는 것이 적다는 말을 새겼던지라 전날 인터넷을 통하여 여러 사이트를 통해 참고자료를 머릿속에 안고 갔던 나는 ‘경복궁을 낱낱이 파헤치리라’ 하는 부끄러운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우스울 뿐이다.지하철역을 통하여 매표소에 다다르니 경복궁의 얼굴이라 할 수 있었던 ‘광화문(光化門)’은 손님을 마중도 못한 체 자신의 집에 들이고 있다는 인상을 가장 먼저 느낄 수 있었으며,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며 경복궁을 답사한다는 내 자신이 어색할 뿐이었다. 하지만 이미 교수님과 우리 학생들은 다 모여 있던 상태라 반드시 집에 가기 전에 ‘해태(海苔)’를 볼 수 있는 광화문 정문을 지나서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나는 이번 레포트의 주(主)는 감상문라는 생각에 이론적인 설명을 채우는 것보다 나의 주관적인 느낌과 생각에 기초하여 과제를 써보도록 하겠다. 답사는 아는 것을 그저 확인하기 보다는 보이는 부분을 기본으로 하여 자신의 생각을 그려내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앞으로 나오는 개요의 순서는 내가 그저 걷고 방문했던 시간적 과정으로 특근정전이 원래 초의 모습과는 다르게 증축이 되고, 재건이 되었을지언정 근정전이 지닌 역사에서의 중요성은 그 얼을 아직도 이어왔다고 생각이 든다. 그래서인지 북악산을 배경으로 근정전과 품계석, 삼도, 박석, 주위를 둘러싼 배경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드라마에서나 보던 임금의 모습과 신하들의 엄숙하고도 정열 된 모습의 의식이 보이는 듯 했다.근정전에서는 특히 교수님께서 많은 설명을 해주셨는데 이는 근정전이 지닌 상징과 중요성이 분명 다른 건물들보다는 그 의미가 더욱 크기 때문일 것으로 생각된다. 태조 이성계가 새로운 나라 조선의 분위기 쇄신을 위해 경복궁을 빠르게 만든 것과 그 것으로 인해 부실공사의 시발점이 되었다는 재미난 이야기나, ‘양반 사회’라는 신분배경의 출연배경, 경복궁이 불타버린 계기가 임진왜란이 아닌 노비문서의 소각을 위한 당시 백성들의 소행일 수도 있다는 부분은 무지의 나를 다시 한번 느끼게 하는 순간이었다.근정전 마당의 바닥을 보면 일정한 규격이 아닌 마음대로 생긴 화강암들이 깔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박석’이라 불리는 것들로 ‘왕실에서 반듯하고 평평한 돌들이 아닌 하필 이런 돌들을 깔게 되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생겨났다. 내 사견으로는 이러한 돌들이 뚜렷한 신분제 사회의 특성을 지녔던 조선시대에 엄격하고 예민한 의식에서 일정하지 못하고 여유로운 분위기로 당시의 관료들에게 조금은 긴장을 줄여주는 요인과도 관계가 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또한, 한편으로는 경복궁을 건설하던 자가 높으신 분의 조기건설(早期建設)의 압력을 이기지 못해 가공을 하지 못한 돌들을 그냥 갖다 놓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해보았다.바닥의 돌들을 언뜻 보면 고리 같은 것을 볼 수 있었다. ‘저 것이 고문도구의 용도로 쓰이는 것이 아닌가?’ 하는 궁금증이 생기어 자료를 찾아보게 되었는데 내 생각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것을 알 수 있었다. 즉, 연회나 행사가 베풀어질 때 햇볕이나 비가 내리는 것을 막아줄 천막을 치는 도구로 그 큰 마당을 전부 칠 수 있는 천막이 서기가 앉아 있었던 자리, 또한 갖가지 왕의 존엄을 나타내기 위한 상징물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내심 부푼 기대를 안고 안을 들여다 본 나는 어색하고 깨끗하지 못함에 기대만큼의 실망을 가졌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을 나의 실수로 분명하게 깨달은 것은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가 잠자리에서이다. 분명 근정전 내부는 왕이 마지막으로 거처한지가 100년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난 어제도 왕이 살았던 그 분위기와 냄새, 화려함을 기대했던 것이다. 참으로 어리석은 실수가 아닐 수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근정전 내부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왔기 때문에 난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근정전 내부를 연상 할 수 있었다. ‘일월오봉병’은 교수님께서도 설명 하셨듯이 당시 조선시대가 중국의 제후국이었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예라는 것에 이견(異見)이 없다. 하지만 전날 찾아본 자료로는 ‘일월오봉병’이 임금에게 향한 백성들의 칭송과 나라 융성의 염원, 그리고 우주 질서에 대한 외경심과 오악의 숭배사상이 혼재 되어 있는 그림이라 하였으나 내가 아무리 본들 그러한 것을 느낄 수는 없었고, 다만 ‘도교의 오악(오행)’이 인간의 길?흉?화?복과 관련이 있는지라 무엇인가 연관이 있을법하다는 생각만 가질 뿐이었다. 근정전에서 사정전으로 가는 길에 ‘드무’라는 화재예방의 목적을 가진 커다란 솥(?)을 볼 수 있었다. 교수님은 쓰레기통처럼 생겼다고 하셨는데 그 말을 들으면서 왠지 안에는 물보다 담배꽁초가 많이 들어 있겠구나 하는 짐작을 할 수 있었다. 관광객들이 경복궁을 구경하면서 일부 생각이 없는 사람들이 자연스레 쓰레기통으로 착각을 할 수 있는 생김새였던 것이다. 그러나 ‘드무’는 비록 이렇게 쓰레기통처럼 생기고, 화재를 진압하기에 실용적인 도구는 아니었을지라도 적어도 예기(禮器)로는 볼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3. 사정전(思政殿)왕이 근정전에서 외부로부터 오는 관료를 만나고, 국가의 의식을 행하는 외전(外殿)이라면 사정전은 왕의 공식집무실로 볼 수 있는 내전(內殿)이다. 왕이 나라를 다스가장 비슷한 것일까?’ 하는 의문에 대한 답은 아쉽게도 찾을 수 없었다. 다만 강녕전이 창덕궁의 내전에 큰 불이 났던 적이 있는데 이를 복구할 때 경복궁에 남아 있던 건물들을 옮겨다 지으면서 강녕전이 창덕궁의 연침인 ‘희정당’으로 변했다는 재미난 일화를 읽게 되었다. 때문에 강녕전은 새로 복원 된 것으로 창덕궁의 희정당과 경복궁의 강녕전의 미묘한 관계를 알게 되었다.강녕전에서 우리는 그날의 행사인 ‘궁중조회-상참의(常參儀)’를 볼 수 있었다. 텔레비전의 사극에서나 보던 장면을 직접 보게 되는 것 때문에 왠지 모를 신기함이 들었으나 엄숙함을 만들기 위해 호위하던 무사들의 억지스런 강한 눈빛에 조금은 웃음이 나왔다. 또한, 일부 관광객들이 의식을 진행하는데 있어 그 열을 가로 질러 가는 통행에 눈살이 찌푸려진 것도 사실이다.5. 교태전(交泰殿)강녕전이 왕의 침전이라면, 교태전은 왕비의 침전이라 할 수 있다. 즉, 왕비가 궁궐 안에 살며 활동하는 내명부를 비롯한 여러 층의 여인들을 다스리고, 조선의 왕과 왕비가 만나 왕자를 낳는 중요한 목적이 있는 곳이다. 교태전에 대한 지식이 없을 시, 이름에 대해서 정말 재밌게 생각하고 있었다. 교태(嬌態)와 교태(交泰)의 동음이의 현상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는 사극 속에서의 왕비들이 업무보다는 자신의 권력과 욕심을 위해 싸우는 장면을 많이 보게 된 것도 이와 같은 연상작용을 일으킨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교태전은 경복궁의 중심축에 일직선으로 배열되어 있는 건물들 가운데 마지막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왕자를 낳는 대업이 존재하던 중요한 곳이다.문득 경복궁의 왕비의 침전이 교태전이라면 다른 궁궐들의 왕비의 침전은 이름이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이 생겨 개인적으로 찾아보게 되었다. 먼저 ‘창경궁(昌慶宮)’의 왕비의 침전은 ‘통명전(通明殿)’이다. 통명전에서의 ‘明’은 일월(日月)의 밝음을 가리키는 것으로써 ‘日’은 왕을 가리키고 ‘月’은 왕비를 나타내는 것이다. 즉, 왕과 왕비가 ‘통(通)’을-개인적으로 정말 재미없었던못과 흰 돌기둥이 받치고 있는 정자(亭子)를 볼 수 있었다. 그 유명한 경회루임을 단번에 느낄 수 있었으며 어찌 보면 경복궁보다 더 유명하고, 만원권의 지폐를 통하여 수없이 보아왔던 그림을 실제로 보게 되는 순간이었던 것이다. 경회루답게 커다란 규모와 화려한 모습이 화창한 날씨와 어울려 출입이 금지 시 되어 있었지만 억지로라도 가까이 가서 보고 싶은 충동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태종이 당시 세자로 책봉되어있던 양녕대군이 썼다는 현판을 신하들에게 자랑을 하고 만족을 하였다는 일화는 유명하지 않은가?경회루의 주변에는 많은 외국인들과 다른 학교의 학생들이 있었으며, 사진을 찍으려는 수많은 사진사들을 볼 수 있었다. 교수님은 우리들에게 무엇인가를 설명을 하셨는데 나는 교수님의 말씀보다는 경회루 주변의 모습과 배경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그리 하였는지 교수님의 설명을 제대로 듣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중간 섬의 소나무와 호수 가장자리의 버드나무, 그날따라 맑았던 하늘이 감탄을 자아낼 뿐이었고 또한, ‘지금도 이렇게 절경(絶景)인데 가장 아름다웠다는 연산군 시대의 경회루는 과연 어떠했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누군가가 그랬듯이, 경회루를 천상의 세계라 비유한 것과 세조시대 ‘구종직’의 일화를 떠올리며 그들의 마음을 십분 이해할 수 있었다.경회루의 지붕을 보니 잡상(雜像)이라 불리는 조각들이 있었는데 그 수를 가만히 세어보면 11개인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는 다른 건물이 일반적으로 5개였던 것에 비해 경회루의 그 상징성과 중요성을 잘 드러내는 것이라 할 수 있었다. 또한, 정자를 버티고 있는 커다란 돌기둥들이 정말 인상적이었는데 먼저 기둥뿌리가 윗몸보다 굵어서 장대하고 육중한 건물을 지탱하기에 안정적으로 보였으며 비록 지금은 없지만 장관(壯觀)을 만들어냈다는 돌기둥의 반룡조각이 더 없이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경회루에 가까이 다가가 2층 내부의 천장과 경회루 주변의 돌난간들을 자세히 보고 싶었으나 출입을 허용치 않아 멀리서 밖에 바라볼 수밖다.
    인문/어학| 2003.12.19| 8페이지| 1,000원| 조회(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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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남전의 실상과 상황.. 평가A좋아요
    월남의 실상과 상황. 敗亡의 교훈근 400만명이 죽거나 다친 30년간의 월남 전쟁은 공산주의자들에게 패망하는 것으로써 끝을 맺었다. 미국은 월남전쟁에 1,500억 달러의 돈을 들였고, 미군 장병 5만명 이상을 월남전에서 잃었다. 우리국군도 1965년 이래 8년간 월남 땅에서 피흘려 싸웠다. 공산화된 크메르와 월남은 이 모든 희생의 의미와 가치를 빼앗아가 버렸다. 모택동은 " 모든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고 했거니와 공산주의자들의 폭력주의의 본질이 다시 한번 증명된 것이다. 어떤 사람은 베트콩의 공격이 격화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자 "티우 정권이 미국의 원조를 계속 확보하기 위해 과장보도를 하고 있을는지도 모른다"고 했었지만, 그런 추측과 의심이 얼마나 근거 없는 낭설이었는가 하는것이 증명되었다. 공산주의자들의 침략을 과소 평가하는 것이 잘못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때가 늦은 때였다. 월남전에 참전한 바 있는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프랑스 살랑 장군은 "월남의 앞날에는 대량학살이 있을 뿐이다. 적어도 300~400만명이 총살당할 것이다" 라고 했다. 크메르에서는 이미 정부군의 위관급 이상의 장교와 공무원, 그들이 가족 및 민주시민들이 살해되고 있다는 보도가 전해지고 있다. 참으로 소름끼치는 일이다. 월남전에는 두 가지의 전쟁이 있었다. 하나는 "피 흘리는 전쟁"이요, 다른 하나는 " 피 안흘리는 정치 전쟁" 이다. 결국 월남은 "피 흘리는 무력전쟁" 과 "피 안 흘리는 정치전쟁"이라고 하는 두개의 전쟁에서 모두 지고 만 것이다. 왜 월남은 이같이 허무하게 지고 말았을까?가. 월남과 미국의 내부의 문제점은 무엇이었나?1) 월남 전쟁은 내전(內戰)이 아니다.책을 읽어보면 월맹의 궁극적 목적은 월남 전 지역과 라오스, 캄보디아에 공산 정권을 수립하는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런 목표를 가지고 있던 월맹이 제네바(Geneva) 협정을 어기면서 테러, 암살, 국지적인 게릴라전을 전개시킨 것이다. 이런 점을 살펴보면 월맹은 분명 월남에 대한 적대행위이고 침략전쟁이며 자유민주주의도 아니고 공산주의도 아닌 중립을 채택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학생들은 학업 때문에 전장을 나가지도 않는 혜택을 누리고 있으면서도 의견을 일치해 조국에 도움을 주지는 못할지언정 반정부 운동을 벌이고 있었다는 것이 나는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다. 대표적인 예로 'Nam'이라는 월남 의대생이 반정부시위를 펼쳐 구속 후 석방이 되었는데 그를 민중의 영웅이라며 떠받드는 학생들은 조국을 공산주의에 팔기로 작정을 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또, 그런 그들을 보며 정부는 어떤 생각을 했을 것인가....결국 월남의 학생들은 자신들의 의무는 다 하지 않고 정부 비판만을 앞세웠기 때문에 월남의 사태가 오늘과 같은 공산화의 결과를 가져왔다고 해야 할 것이다.4)지도자(指導者)의 지지도와 당시의 사회상은?당시 월남의 정부는 1000여년동안 중국의 지배를 받으면서 부정부패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진 상태였다. 반면에 북의 지도자 '호 지명'은 청렴결백으로 당시 국민들에게 많은 본보기를 보여주는 사람이였다. 인사정책의 실패, 만연된 부정부패, 토지분배의 실패, 정직하지 못한 위정자의 거짓은 분열의 길을 열게되는 초석이 된 것이다.결국 그들은 전시상황에서 내부 지식인들을 반정부주의자들로 만든 장본인이 된 것이다. 더욱이 적과 싸워야 할 군(軍)까지 타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고 하니 이미 그 순간부터 월남의 패망은 정해져 있던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후에 '무조건 항복'을 하게 되는 월남의 모습은 부정부패의 산실인 정부와 먼저 싸워야 할 외부의 적보다 자신의 정부에 반감을 더욱 갖게 된 학생들을 비롯한 지식인 모두가 일조를 한 셈이 될 것이다.5)미국과 월남의 국민의지(國民意志)는?책을 보면 '군대는 국민의 군대이며, 국민의 지지가 없이는 이기지 못한다'고 하였다. 나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를 하는 편이다. 참고로 나는 군대에 있을 때 항상 내가 왜 이곳에 있는가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항상 결론은 내 가족, 내 친구들을 지키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나 자신을를 벌였다. 참으로 데모 만능의 시대와도 같았던 것이다.7) 위험(危險)에 대한 극복노력은?어떤 일을 하기 전 두려움이 앞장서면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긴장과 두려움으로 인해 자기실력의 십분의 일도 발휘 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결국 월남전에선 이 같은 경우가 적용이 되면서 미국은 자국내의 국민들의 반전운동에 두려움을 가지게 될 수 밖에 없었다. 반면에, 월맹은 엄격한 언론통제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으며 월남 내에서 휴전이라는 명분아래 미국을 돌려보낼 수 있던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8) 국내조건은?당시 월남에는 이미 월맹에서 파견된 공산분자들이 언론, 예술, 정부, 정치 심지어는 군까지 각각의 분야에 널리 퍼져 있었다. 게다가 반정부주의자, 공산주의자, 탈영병까지 통제를 하여야 했다. 그렇게 강한 통제가 필요한 상황이었지만 당시 월남 국민의 지식 수준은 너무 낮았고 아직 잘 부합하지 않는 민주주의적 방식으로 통제를 하기에는 무리가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반면에 월맹은 라오스와 캄보디아로부터 전 국경에 걸쳐 지원을 받았고 이곳에 병력을 보존 하였으며 동원령과 징집에서 뛰어난 통제력을 가진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월남의 상황과는 극히 대조됨으로써 후에 승리를 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된 것이다.9) 공포(恐怖)의 통제와 공황(恐慌 : Panic)의 현상월남군은 첨단 미군장비로 무장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공포와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였기 때문에 피난민들 사이에서 증발 할 수 밖에 없었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두려움은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게 하고 쉽게 포기를 하게 만드는 작용을 하고 있다. 결국 월남군은 110만명이나 되는 많은 숫자와 막강한 화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싸움다운 싸움을 한 번 하지도 못하고 자멸하고 만 것이다.이것은 군을 지휘하는 지도부도 문제가 있었지만 결정적인 것은 자기자신의 두려움과의 싸움에서 이기지 못했다는 것을 부정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두려움을 느껴 흔적도 없이 증발해 버린 군대를 국민들이 본다수의 인원으로 목적을 극대화하게 효과를 볼 수 있었다. 반면에 미군의 공세는 정부의 간섭으로 인해 적의 심장부를 노릴 수 없었고, 야전군 사령관은 본국의 눈치를 살피느라 시간과 노력을 낭비함으로써 올바른 공세 활동을 하지 못했다.4)집중(集中), 절약, 기동(機動)의 원칙 적용은?책에는 집중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전투력이 필요하고, 결정적인 목표에 집중을 하기 위해서는 결정적이지 못한 지역의 전투력을 과감하게 절약해야 하며, 기동이 보장되지 못하면 전투력 집중이 불가하니 이 세 원칙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법이다라고 하였다.월맹은 전투의 집중, 절약, 기동을 효과적으로 잘 이용한 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때를 기다리며 게릴라의 위장작전으로 미군과 연합군의 전투력을 분산시키는데 성공을 하였기 때문이다. 반면에 미군과 연합군은 적의 핵심기지나 본부를 우선순위의 목표로 삼지 않았기에 전투력이 흩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결국 병력집중이 사실상 불가했으며 그럼으로써 자신들이 가진 전투력을 십분 활용하지 못하고 임무를 완수하지 못한 체 본국으로 철수를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5)지휘통일은 잘 되었나?군대에 가면 내무실이나 중대장실, 대대장실에 모두 직속상관의 명판이 붙어 있다. 그리고 부대원들은 이것을 항상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이것은 명령계통의 일관성의 중요함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한 예이다. 우리는 우리의 직속상관의 명령으로만 움직일 수 있는 것이며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라는 말을 미리 예방하기 위한 차원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명령체제에서는 이런 지휘통일 일관성의 중요함을 깨닫지 못한 체 허점을 드러내고 말았다. 단일화된 지휘체제 대신에 협동 및 협조라는 원칙으로 각급 지휘관을 묶어 두었으니 그들이 충돌하고 불협화음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인 것이다. 사소한 갈등도 전장에서는 큰 일이 될 수 있는 것인데 형평성에 맞지 않는 대우가 군인들의 사기에 크게 영향을 미쳤으며 전투력이 손실이 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6치적 임무까지 맡고 있었기에 단편적이고 통일적이지 못한 상태가 계속 되었던 것이다. 더욱이, 공산국가들의 견제까지 항상 신경을 써야 했기에 조직적인 면에서도 효율성을 찾아보기가 힘들었다.8) 부자(富者)의 전술, 가난뱅이 전술원래 사람은 처음부터 없었던 사람보다 가졌던 사람이 모든 것을 잃게 되었을 때 심리적으로 더욱 심한 좌절을 느끼며 인생에 대한 회의를 느낀다고 한다.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가 미군과 연합군이 떠난 뒤 남게 된 월남전의 군인들이 될 수 있겠다. 그들은 전쟁시 미군의 도움으로 발전된 무기를 가질 수 있었으며, 물자 원조에 있어서도 신속하게 이루어 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미군의 원조가 사라지자 그들은 공황을 느끼게 되었으며 처음부터 가지지 않고 시작한 월맹군보다 적응기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다. 고난과 궁핍을 겪으면서 강해진 월맹과는 분명 차이가 있는 순간이었던 것이다.결국 월남은 미군과 연합군의 원조 삭감이란 인풋(input)으로 가난과 사기저하라는 과정을 통해 전쟁에서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한 체 패배(output)라는 결과를 갖게 된다. 오합지졸.....물론 월남은 조국마저 분열된 국론을 가진 상황에서 목숨을 바쳐 조국을 수호해야 한다는 의지가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다.9) 미 행정부의 간섭(干涉)미국 정부는 실상 본인은 전쟁터에 가보지도 않았으면서 전쟁터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 가는 군인들에게 너무나 많은 간섭을 했다. 분명 이론(理論)과 전쟁에서 겪은 실전경험은 틀릴 수밖에 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들의 정치목적을 군사적인 곳까지 손을 뻗친 셈이었다. 결국 야전에 나가 있는 군인들은 자신들의 기회를 제대로 이용할 수 없었고 적에게는 그 기회와 시간동안 전력을 다듬을 수 있는 여유까지 준 셈이었다. 내 소견으로는 전쟁을 지도하는 자는 이론적인 면에서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보다는 '노장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라는 말을 남긴 멕아더처럼 실전경험이 풍부한 사람만이 자격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설픈 지식.
    인문/어학| 2003.03.15| 9페이지| 1,000원| 조회(6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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